하늘에서 내린 불을 면한 소돔 주민들의 후예, 남녀양성의 사람들을 소개하며.
La femme aura Gomorrhe et l’homme aura Sodome.
알프레드 드 비니
독자는 기억할 것이다. 그날(그 저녁에 게르망트 대공비가 야회를 열기로 되어 있던 그날) 방금 이야기한 대로 공작 부부를 찾아뵙기 훨씬 전에, 나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렇게 망을 보던 중에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특히 샤를뤼스 씨에 관한 것이면서도 그 자체로 워낙 중대한 일이어서, 지금까지, 곧 그 일에 걸맞은 무게를 실어 마땅한 만큼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나는 그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미루어 왔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그 근사한 전망대를 떠나 있었다. 집 꼭대기에 나를 위한 듯 아늑하게 마련된 그 자리는, 브레키니 저택으로 이어지는 부서지고 들쭉날쭉한 비탈을 굽어보았고, 프레쿠르 후작네 마구간의 장밋빛 종탑이 이탈리아풍으로 흥겹게 꾸며 주고 있었다. 공작 부부가 막 돌아올 참이라고 여겼을 때, 나는 계단에 자리를 잡는 편이 더 편하리라 느꼈다. 망루를 버린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그러나 하루 중 그 시각, 곧 점심 식사가 막 끝난 무렵에는 아쉬움이 덜했다. 그 시각에는 아침나절처럼, 브레키니-트렘 가문의 하인들이 거리 탓에 그림 속 조그만 형상으로 오그라든 채, 먼지떨이를 손에 들고 그 가파른 벼랑을 느긋하게 기어오르는 모습을, 불그레한 능보 위로 그토록 어여쁘게 도드라진 커다랗고 투명한 운모 조각들 뒤에서 볼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지질학자의 관조할 거리는 놓쳤어도 적어도 식물학자의 것은 남아 있어서, 나는 계단 창의 덧문 틈으로 공작부인의 작은 나무와 그 귀한 화초를 엿보고 있었다. 그 화초는, 어머니들이 혼기 찬 딸을 “내놓듯” 하는 그 집요함으로 안뜰에 드러나 있었고, 나는 그 있음직하지 않은 곤충이 하늘의 우연을 빌려, 바쳐졌으되 버림받은 암술을 찾아와 줄지 자문하고 있었다. 호기심이 차츰 나를 대담하게 만들어, 나는 일층 창까지 내려갔다. 그 창 역시 덧문이 반쯤 열린 채 열려 있었다. 외출 채비를 하는 쥐피앙의 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는데, 그는 덧문 뒤의 나를 알아채지 못했다. 나는 그곳에 꼼짝 않고 서 있다가, 빌파리지 부인을 찾아가려고 안뜰을 천천히 가로지르던 샤를뤼스 씨의 눈에 띄지 않으려 재빨리 몸을 비켰다. 강한 햇빛에 나이 들어 보이는, 살집 오른 그의 모습에 머리칼은 눈에 띄게 세어 있었다. 빌파리지 부인이 몸져눕지 않았더라면(그것은 샤를뤼스 씨가 개인적으로 앙숙이던 피에르부아 후작의 병환에 뒤이은 것이었다) 그가 하루 중 그런 시각에, 아마도 평생 처음으로 방문에 나서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게르망트가 특유의 그 기벽 때문이었으니, 그들은 사교계의 관례에 스스로를 맞추기는커녕 오히려 관례를 자기네 개인적 습관에 맞도록 뜯어고치곤 했다(그 습관은 그들 생각에 사교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아무 가치도 없는 물건인 사교계가 그 앞에 굽실거려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마르상트 부인은 정해진 “접견일”이 없었고, 대신 매일 아침 열 시에서 정오 사이에 벗들을 맞았다). 그런 까닭에 남작은 그 시간을 독서와 골동품 사냥 따위에 남겨 두고, 오후 네 시에서 여섯 시 사이에만 방문을 다녔다. 여섯 시가 되면 조키 클럽에 가거나 불로뉴 숲을 거닐었다. 잠시 뒤 나는 쥐피앙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다시 몸을 움츠렸다. 그가 가게로 나설 시간이 거의 다 되어 있었다. 그는 저녁 식사 때에야 돌아오곤 했는데, 지난 한 주 동안은 그마저도 늘 그렇지는 않았으니, 조카딸과 그 견습공들이 어느 손님의 드레스를 마무리하러 시골로 내려가 있던 터였다. 그러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음을 깨닫고, 나는 다시는 방해받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혹여 기적이 일어날 운명이라면, 거의 바랄 수조차 없는 그 도래를(거리와 온갖 불리한 위험과 위태로움이라는 숱한 장애를 넘어), 곧 저 멀리서 사절로 보내진 곤충이, 그가 나타나기를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처녀에게 당도하는 순간을 놓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이 기다림이 수꽃의 그것보다 조금도 더 수동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수꽃의 수술은 곤충이 그 바침을 한결 쉽게 받도록 절로 굽어 있었으니,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 서 있는 암꽃도, 곤충이 온다면 요염하게 암술대를 휘어 보일 것이며, 그에게 더 효과적으로 파고들리려고, 위선적이면서도 열렬한 처녀처럼 어느새 슬며시 나아가 그를 도중에 맞이할 터였다. 식물계의 법칙들 또한 그 자체로 더욱더 드높은 다른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다. 곤충의 방문, 곧 어느 꽃의 씨앗을 다른 꽃으로 옮기는 일이 대개 뒤엣것의 수정에 필요한 까닭은, 자가수정, 즉 꽃이 제 힘으로 스스로를 수정하는 일이란, 한 집안 안에서 근친혼이 거듭될 때처럼 퇴화와 불임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곤충이 이루어 내는 교배는 같은 종의 뒷세대에게 그 조상들이 알지 못한 활력을 준다. 그러나 이 활력이 지나칠 수도 있어, 종이 도를 넘어 발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항독소가 우리를 병으로부터 지켜 주듯, 갑상선이 우리의 비만을 조절하듯, 패배가 오만을 벌하고 피로가 방종을 벌하며 잠이 다시 피로에 매이듯, 예외적인 자가수정 행위가 어느 지점에 이르러 제 나사를 조이고 재갈을 당겨, 도를 지나치게 넘어선 그 꽃을 정상의 한계 안으로 되돌려 놓는다. 나의 사색은 훗날 이야기할 어떤 흐름을 따라가고 있었고, 나는 이미 꽃들의 눈에 보이는 술책으로부터 문학 작품의 온갖 무의식적 요소에 관한 결론 하나를 이끌어 낸 참이었는데, 그때 샤를뤼스 씨가 후작부인에게서 물러나오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그는 나이 든 친척 여인에게서 직접, 혹은 그저 하인에게서, 그 크나큰 차도를, 아니 실은 대단찮은 미열에 지나지 않던 것에서 그녀가 온전히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리라. 아무도 자기를 지켜보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이 순간, 눈꺼풀을 햇빛 가리개처럼 내리깐 채, 샤를뤼스 씨는 얼굴의 그 긴장을 풀고, 여느 때라면 활기찬 말과 굳센 의지가 거기 뚜렷이 붙들어 두던 그 인위적인 생기를 죽여 놓았다. 대리석처럼 창백하게, 그의 코는 굳세게 도드라졌고, 그 고운 이목구비는 이제 일부러 지어낸 표정으로부터, 그 조형의 아름다움을 뒤바꾸어 놓던 다른 의미를 더는 얻지 않았다. 이제는 한낱 게르망트가 사람일 뿐인 그는 벌써 돌에 새겨진 듯 보였으니, 콩브레의 예배당에 있는 팔라메드 15세 바로 그였다. 그러나 한 가문 전체의 이 공통된 이목구비는 샤를뤼스 씨의 얼굴에서 한결 정신화된, 무엇보다도 한결 부드러운 섬세함을 띠었다. 나는 그를 위해 안타까웠다. 그가 그토록 많은 난폭한 짓과 남을 불쾌하게 하는 별스러운 행동과 고자질로, 그토록 모진 성마름과 오만으로 늘 그것을 더럽히고 마는 것이, 빌파리지 부인의 집에서 나오던 그 순간 그의 얼굴에 그토록 순진하게 드러나던 그 상냥함과 다정함을 거짓된 잔인함 아래 감추어 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햇빛에 눈을 깜박이며 그는 거의 미소 짓는 듯했고, 그렇게 쉬고 있는, 말하자면 본래의 상태 그대로인 그 얼굴에서 나는 그토록 다정하고 그토록 무장 해제된 무언가를 보았기에, 남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알았더라면 샤를뤼스 씨가 얼마나 노여워했을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집요하고, 제 사내다움을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며, 다른 모든 사내가 역겹도록 계집애 같아 보이던 이 사람을 보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그가 잠시 그 이목구비와 표정과 미소를 하도 여인의 것으로 지어 보였던 나머지, 다름 아닌 한 여인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다시 자리를 옮기려던 참이었으나, 그럴 겨를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내가 무엇을 보았던가? 두 사람이 여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었음이 분명한 그 안뜰에서(샤를뤼스 씨는 쥐피앙이 가게에 나가 있는 오후에만 게르망트 저택에 들렀으니) 얼굴을 마주한 채, 남작은 반쯤 감았던 눈을 별안간 크게 뜨고서 제 가게 문턱에 서 있는 옛 재봉사를 유난한 주의로 뜯어보고 있었고, 한편 그 재봉사는 샤를뤼스 씨 앞에서 문득 땅에 붙박인 듯, 풀처럼 거기 뿌리를 내린 채, 중년에 접어든 남작의 살진 몸매를 놀란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더욱 놀랍게도, 샤를뤼스 씨의 태도가 바뀌자 쥐피앙의 태도 또한, 마치 어떤 은밀한 술법의 법칙을 따르기라도 하듯, 이내 그와 조화를 이루었다. 이제 자기가 받은 인상을 감추려 애쓰면서도, 무관심한 척하는 것과는 달리 아쉬움 없이는 자리를 뜨지 못하는 듯 보이던 남작은, 갔다가 다시 오고, 제 눈의 아름다움을 가장 돋보이게 한다고 여기는 그 투로 먼 곳을 멍하니 바라보며, 흡족하고 심드렁하고 얼빠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는 사이 쥐피앙은 내가 늘 그에게서 떠올리던 겸손하고 정직한 표정을 단번에 벗어던지고, 남작과 완벽한 대칭을 이루며 고개를 치켜들고, 몸을 맵시 있게 기울이고, 괴상하리만치 뻔뻔스럽게 한 손을 허리에 얹고, 엉덩이를 쑥 내밀고서, 벌이 하늘의 뜻처럼 당도했을 때 난초가 취했음 직한 그 요염함으로 제 자세를 잡았다. 그가 그토록 역겨워 보일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이런 무언극에서 제 배역을 즉흥으로 해낼 수 있으리라는 것 또한 나는 알지 못했으니, 그 무언극은(비록 그가 샤를뤼스 씨 앞에 선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건만) 오래도록 공들여 연습해 둔 것만 같았다. 낯선 나라에서 같은 말을 쓰는 동포를 만나, 전에 서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건만 그 자리에서 절로 마음이 통할 때가 아니고서야, 그런 완벽의 경지에 저절로 이르는 법은 없다.
그러나 이 장면은 딱히 우스꽝스럽지 않았고, 어떤 기묘함이, 원한다면 어떤 자연스러움이라 해도 좋을 그 무엇이 배어 있었으며, 그 아름다움은 꾸준히 짙어져 갔다. 샤를뤼스 씨는 짐짓 초연한 기색을 짓고 무심히 눈꺼풀을 늘어뜨렸지만, 이따금 그것을 치켜들었고, 그럴 때면 쥐피앙에게 주의 깊은 눈길을 보냈다. 그러나(필경 그는 이런 장면이 이 자리에서 하염없이 이어질 수는 없음을 느꼈던 까닭인데, 뒤에 알게 될 어떤 이유에서였든, 아니면 온갖 것이 덧없다는 그 느낌, 곧 우리로 하여금 한 번의 몸짓도 반드시 과녁에 꽂혀야 한다고 다짐하게 하고 온갖 사랑의 광경을 그토록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그 느낌에서였든) 샤를뤼스 씨는 쥐피앙을 바라볼 때마다, 그 눈길에 반드시 어떤 말을 곁들이도록 마음을 썼는데, 그 때문에 그의 눈길은 우리가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에게 흔히 보내는 눈길과는 한없이 달라졌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려는 사람 특유의 그 묘하게 붙박인 시선으로 쥐피앙을 응시했다.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립니다만, 등에 하얀 실이 길게 늘어져 있군요.” 아니면 이렇게. “틀림없어요, 당신도 취리히에서 오셨지요. 거기 골동품 가게에서 자주 뵌 게 분명합니다.” 그리하여 한 순간 걸러 한 순간마다, 샤를뤼스 씨의 응시 속에서 같은 물음이 쥐피앙에게 골똘히 던져지는 듯했으니, 마치 베토벤의 그 물음 짓는 악구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하염없이 되풀이되며, 지나치리만치 푸짐한 준비를 거쳐 새로운 주제와 가락의 전환, 곧 “재현부”를 이끌어 내려는 것과도 같았다. 한편 샤를뤼스 씨와 쥐피앙이 주고받는 눈길의 아름다움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 눈길들이 무언가 더 나아간 것으로 이어질 뜻이 없어 보인다는 바로 그 사실에서 나왔다. 이 아름다움을, 남작과 쥐피앙이 내보이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두 사람의 눈 속에서 내가 비쳐 보인 것은 취리히의 하늘이 아니라, 아직 그 이름을 알아맞히지 못한 어느 동방 도시의 하늘이었다. 샤를뤼스 씨와 옛 재봉사를 그렇게 붙들어 놓은 것이 무엇이었든, 그들의 약조는 이미 맺어진 듯했고, 이 군더더기 같은 눈길들은 그저 의례적인 서두에 지나지 않는 듯했으니, 마치 확실히 “정해진” 혼사를 앞두고 사람들이 여는 잔치와도 같았다. 자연에 한결 더 가까이 다가가(이런 비유가 여럿 겹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더욱 자연스러운데, 같은 사람도 몇 분만 눈여겨보면 차례로 한 사내로, 남자-새로, 남자-곤충 따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들을 한 쌍의 새, 곧 수컷과 암컷이라 불렀음 직도 하니, 수컷은 수작을 걸려 애쓰고, 암컷인 쥐피앙은 이 접근에 더는 아무 응답의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놀라는 기색 없이, 무심하게 붙박인 눈길로 새 벗을 바라보았는데, 수컷이 먼저 발을 떼고 다시 제 깃털을 다듬는 데로 물러난 마당에는, 필경 그 눈길이야말로 더 애타게 하는, 그리고 유일하게 먹히는 수단이라고 암컷은 느꼈을 것이다. 마침내 쥐피앙의 무심함만으로는 그에게 더는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이미 정복했다는 이 확신에서, 스스로를 쫓기고 탐나는 존재로 만드는 데까지는 그저 다음 한 걸음에 지나지 않았기에, 쥐피앙은 일하러 나서기로 하고 대문을 지나갔다. 그렇지만 그가 거리로 빠져나간 것은 두어 번 고개를 돌린 뒤였으며, 남작은 그 자취를 놓칠세라 애를 태우며(대담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문지기에게 “안녕하시오” 한마디 던지는 것도 잊지 않았으나, 그 문지기는 스스로도 얼근히 취해 뒷부엌에서 벗 몇을 대접하느라 그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그를 따라잡으려 부리나케 그 거리로 서둘러 갔다. 바로 그 순간, 샤를뤼스 씨가 커다란 뒝벌처럼 콧노래를 부르며 대문 밖으로 사라지자마자, 또 다른 것이, 이번에는 진짜 벌이 안뜰로 날아들었다. 내가 아는 한 이것은 난초가 그토록 오래 기다려 온 바로 그 벌일 수도 있었으니, 그 벌이 없이는 난초가 처녀인 채로 죽을 수밖에 없는 그 귀한 꽃가루를 날라다 주러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곤충의 선회를 좇는 데서 마음이 흐트러졌으니, 몇 분 뒤 다시 내 주의를 끌며 쥐피앙이(어쩌면 결국 지니고 나간 꾸러미 하나를 가지러, 곧 샤를뤼스 씨의 출현이 불러일으킨 격정에 그것을 두고 갔던 듯싶은데, 어쩌면 그저 더 자연스러운 까닭에서였는지도 모른다) 남작을 뒤에 거느리고 돌아왔던 것이다. 남작은 서두를 짧게 끊기로 하고 재봉사에게 불을 청했으나, 이내 한마디 덧붙였다. “불을 청하긴 했습니다만, 담배를 집에 두고 왔군요.” 접대의 법도가 요염의 법도를 눌렀다. “안으로 드시지요, 필요하신 건 뭐든 드리겠습니다.” 재봉사가 말했고, 그의 얼굴에서는 이제 경멸이 기쁨에 자리를 내주었다. 가게 문이 두 사람 뒤로 닫혔고, 나는 더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나는 그 벌을 시야에서 놓쳤다. 그가 난초에게 필요한 그 곤충인지 나는 알지 못했으나, 극히 드문 곤충과 갇힌 꽃의 경우에 그 둘이 맺어질 기적 같은 가능성만큼은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샤를뤼스 씨는(이것은 그저 하늘이 내린 우연들을, 그것이 무엇이든, 견주어 보는 것일 뿐이며, 어떤 법칙들과 이따금 몹시도 서투르게 동성애라 일컫는 것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내세우려는 조금의 과학적 주장도 없다) 여러 해 동안 쥐피앙이 없는 시각이 아니고서는 이 집에 온 적이 없었건만, 오로지 빌파리지 부인이 앓았다는 그 우연 하나로 재봉사와 마주쳤으며, 그와 더불어 남작 같은 부류의 사내들에게 마련된 그 행운과도 마주쳤으니, 그 행운을 베푸는 이는 저와 같은 무리 가운데 하나로, 뒤에 보게 되듯 쥐피앙보다 한없이 젊고 잘생겼을 수도 있는, 그들이 이 땅에서 제 몫의 관능적 쾌락을 누리도록 하려고 존재하게끔 예정된 사내, 곧 나이 지긋한 신사들에게만 마음을 두는 사내였다.
그러나 방금 내가 말한 이 모든 것을 나는 몇 분이 지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될 터였으니, 현실이란 어떤 우연한 사건이 그 보이지 않는 성질들을 벗겨 낼 때까지 그토록이나 그것들에 겹겹이 싸여 있는 법이다. 아무튼 그 순간 나는 옛 재봉사와 남작 사이의 대화를 더는 들을 수 없어 몹시 속이 상했다. 그때 나는 쥐피앙의 가게와 지극히 얇은 칸막이 하나로만 갈린, 비어 있는 가게가 떠올랐다. 거기 이르자면 그저 우리 집으로 올라가 부엌을 지나고, 하인용 계단으로 지하 곳간까지 내려가, 위쪽 안뜰의 너비를 가로질러 그 지하를 헤쳐 나간 다음, 몇 달 전만 해도 소목장이가 목재를 쟁여 두었고 이제는 쥐피앙이 석탄을 두려던 그 지하의 알맞은 자리에 이르러, 가게 안으로 통하는 층계를 오르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하면 내 여정은 온통 은폐된 채로 이루어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신중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내가 택한 것은 그 방법이 아니었으니, 나는 벽에 바싹 붙어, 눈에 띄지 않으려 애쓰며 훤히 트인 안뜰을 빙 돌아갔다. 들키지 않은 것은, 분명 내 슬기보다는 우연 덕이 더 컸을 것이다. 그리고 지하로 가는 길이 그토록 안전했음에도 내가 그렇게 무모한 길을 택한 데에는, 애초에 무슨 이유라는 게 있었다고 친다면, 세 가지 있을 법한 까닭이 짚인다. 우선은 나의 조급함이었다. 둘째로는, 어쩌면 몽주뱅의 그 장면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곧 내가 뱅퇴유 양의 창밖에 몸을 숨기고 서 있던 그 기억이었을 것이다. 실로 내가 구경꾼이 되었던 이런 부류의 일들은 언제나 더없이 무모하고 더없이 있음 직하지 않은 배경 속에서 펼쳐졌으니, 마치 그런 폭로가 위험천만한, 그러면서도 얼마쯤 은밀한 행동의 보상이라도 되는 듯했다. 끝으로, 하도 어린애 같아 보여 좀처럼 털어놓기 망설여지는 세 번째 까닭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무의식중에 결정적이었으리라 꽤 확신한다. 생루가 내세운 군사 원칙을 좇으며 그것이 반박되는 것도 지켜보려고, 나는 보어 전쟁의 경과를 소상히 뒤따라갔었고, 거기서 이끌리듯 이어져 옛 탐험기와 여행 서사를 다시 읽게 되었다. 이 이야기들은 나를 들뜨게 했고, 나는 그것을 내 일상의 일들에 갖다 대며 용기를 북돋우곤 했다. 병이 도져 며칠 밤낮을 내리, 잠은커녕 눕지도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견뎌야 했을 때, 그 아픔과 기진이 하도 극심해 결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리라 여겨지던 순간이면, 나는 어느 여행자를 떠올리곤 했다. 해변에 내던져져, 독한 풀에 중독되고, 소금물에 흠뻑 젖은 옷을 걸친 채 열에 떨면서도, 하루 이틀 지나면 기운을 차려 일어나, 다다르고 보면 식인종일지도 모를 주민이 혹 있을까 하여 무작정 제 길을 나서는 그 여행자를. 그의 본보기는 내게 강장제처럼 작용해 희망을 되살렸고, 나는 잠깐의 낙담이 부끄러워졌다. 영국군을 앞에 두고도, 몸을 숨길 자리에 이르려 탁 트인 벌판을 건너야 하는 순간에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던 보어인들을 떠올리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작전 무대라는 게 고작 사람의 마음일 뿐이고, 드레퓌스 사건 때 겁 없이 한두 번 넘게 결투에 나섰던 내가 두려워할 강철이라고는 안뜰이나 들여다보는 것 말고도 할 일이 있는 이웃들의 눈초리뿐일진대, 여기서 내가 용기를 덜 낸다면 참 꼴이 좋겠구나.”
그러나 막상 가게 안에 들어서서, 쥐피앙의 가게에서 나는 아주 작은 소리도 이쪽에서 들린다는 것을 알아챈 터라 바닥의 널빤지 하나라도 삐걱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는 쥐피앙과 샤를뤼스 씨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리고 행운이 얼마나 놀랍도록 그들 편이었는지를 속으로 헤아렸다.
나는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게르망트가의 마부가, 필경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마침 여태 마차 창고에 두었던 사다리 하나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가게로 옮겨다 놓았던 터라, 그것을 타고 올랐더라면 위쪽 환기창을 열고, 마치 쥐피앙의 가게 안에 있기라도 한 듯 또렷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소리를 낼까 두려웠다. 게다가 그럴 필요도 없었다. 몇 분이 지나서야 가게에 다다랐다는 것조차 아쉬워할 까닭이 없었다. 쥐피앙의 가게에서 처음 들려온 것이라고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의 연속뿐이었으니, 오간 말이 거의 없었으리라 짐작된다. 하기야 그 소리들은 어찌나 격렬했던지, 한쪽 소리가 늘 그와 나란한 신음에 한 옥타브 높이 받아넘겨지지만 않았던들, 나는 몇 발짝 앞에서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목을 조르고 있고, 뒤이어 그 살인자와 되살아난 희생자가 범행의 자취를 씻으려 목욕을 하고 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로부터 훗날 이런 결론을 얻었다. 고통만큼이나 요란한 것이 또 하나 있으니 곧 쾌락이며, 더욱이 거기에, 언젠가 아이를 낳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없을 때(이 경우에는 그런 두려움이 있을 리 없었으니, 황금 전설 속의 도무지 미덥지 않은 예가 있기는 하나) 곧바로 뒤따르는 청결에 대한 뒷생각까지 더해질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마침내 반 시간쯤 지나(그동안 나는 열지 않은 환기창으로 들여다보려고 발끝으로 사다리를 기어올라 있었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쥐피앙은 샤를뤼스 씨가 억지로 쥐여 주려는 돈을 한사코 마다했다.
“턱을 어쩌자고 그렇게 밀고 다니세요.” 그가 남작에게 어르는 투로 물었다. “수염을 멋지게 기르면 참 잘 어울리실 텐데.” “윽! 그건 질색이야.” 남작이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문턱에서 서성이며 쥐피앙에게 동네에 관해 이것저것 캐물었다. “모퉁이에서 밤 파는 사내는 아무것도 모르나, 왼쪽 말고, 그자는 흉물이야, 반대쪽에 있는 덩치 크고 거무스름한 녀석 말이야? 그리고 맞은편 약방에는 물건을 배달하는 어여쁜 자전거꾼이 있던데.” 이런 물음들이 쥐피앙의 비위를 거슬렀던 모양인지, 그는 버림받은 고급 화류계 여인의 경멸을 담아 몸을 곧추세우며 대꾸했다. “보아하니 인정머리라고는 도무지 없으시군요.” 아프고 쌀쌀맞고 짐짓 꾸민 어조로 내뱉어진 이 나무람은 샤를뤼스 씨에게 따끔하게 와닿았던 게 분명하니, 그는 제 호기심이 남긴 나쁜 인상을 지우려고, 내가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쥐피앙에게 어떤 청을 건넸는데, 그 청을 들어주자면 필경 두 사람이 가게에 더 오래 머물러야 할 참이었고, 그것은 재봉사가 언짢음을 잊기에 충분할 만큼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제 자존심이 방금 깊이 추어올려진 사람 특유의 더없이 흐뭇한 기색으로, 희끗한 머리 밑에 살지고 불그레한 남작의 얼굴을 뜯어보더니, 방금 청받은 호의를 샤를뤼스 씨에게 베풀기로 하고, “어머, 짓궂으시긴!” 같은 점잖지 못한 말을 몇 마디 늘어놓은 끝에, 웃음 띤, 감격에 겨운, 우쭐하면서도 고마워하는 기색으로 남작에게 말했다. “좋아요, 이 커다란 아기 양반, 자 가시지요!”
“내가 그 전차 차장 이야기로 되돌아가는 건,” 샤를뤼스 씨가 태연히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자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게 얼마간 소일거리가 되어 줄지 모르기 때문이지. 나로 말하자면 이따금, 예전에 여느 장사치 차림으로 바그다드 거리를 배회하던 칼리프처럼, 옆얼굴이 문득 내 마음에 든 어떤 야릇한 조무래기 하나를 굽어살펴 뒤따르는 일이 팔자에 있단 말이야.” 이 대목에서 나는 예전에 베르고트를 두고 했던 것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만약 그가 법정에서 변론을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는 재판관을 설득하도록 계산된 문장이 아니라, 제 유별난 문학적 기질이 일러 주어 즐겨 쓰게 만드는 그런 베르고트풍의 문장을 구사할 터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샤를뤼스 씨는 재봉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무리의 세련된 사람들에게 썼음 직한 바로 그 말투를, 그 별스러움을 오히려 더 부풀리기까지 하며 구사했다. 극복하려 애쓰던 수줍음이 그를 지나친 오만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든, 아니면 그 수줍음이 스스로를 다잡지 못하게 하여(우리는 제 신분이 아닌 사람 곁에서는 언제나 마음이 덜 편한 법이니) 그의 참된 본성, 곧 게르망트 부인이 짚었던 대로 실은 오만하고 조금은 실성한 그 본성을 드러내고 발가벗기게 만들었기 때문이든 말이다. “자취를 놓치지 않으려고,”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조무래기 정리(廷吏)처럼, 젊고 잘생긴 의사처럼, 그 조무래기 본인과 같은 전차에 뛰어오르지. 우리가 그자를 여성으로 일컫는 건 오로지 문법의 규칙에 맞추기 위해서일 뿐이야(왕족을 두고 이를 때 ‘전하께서는 그녀의 평소 강녕을 누리고 계신가’라고 하듯이 말이지). 그자가 전차를 갈아타면, 나도 어쩌면 페스트 균까지 묻은 그 ‘환승표’라는 놀라운 물건을, 번호 하나를 받아 드는데, 그게 비록 나에게 건네지는 것이건만 늘 1번인 건 아니란 말이야! 이런 식으로 나는 ‘차량’을 서너 번씩이나 갈아타고, 어떤 때는 밤 열한 시에 오를레앙 역에 이르러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신세가 되지. 그래도 오를레앙 역까지만이면 다행이지! 한번은, 말해 두네만, 좀처럼 말문을 트지 못한 탓에 나는 오를레앙 그 도시까지 내처 가고 말았는데, 이른바 ‘끈세공’이라 부르는 것의 삼각형들 사이로, 눈길을 둘 데라고는 그 노선의 주요 건축물 사진밖에 없는 그 끔찍한 객실 칸 가운데 하나에서였지. 빈자리라고는 하나뿐이었는데, 내 앞에는 역사적 건축물이랍시고 오를레앙 대성당의 ‘전경(全景)’ 하나가 걸려 있었으니, 프랑스에서 가장 못생긴 그것을, 마치 눈병을 일으키는 그 요지경 달린 펜대 렌즈에 대고 그 종탑들의 초점을 맞추라고 누가 강요라도 한 듯, 내키지도 않는데 그런 식으로 마냥 노려보아야 한다는 게 어찌나 진력나던지. 나는 레조브레에서 내 젊은 조무래기와 함께 기차에서 내렸는데, 아뿔싸, 그자에게는(가족이 있다는 결함만 빼면 온갖 결함을 다 갖추었으려니 여겼건만) 식구들이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지 뭔가! 나를 파리로 되돌려 줄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유일한 위안이라고는 디안 드 푸아티에의 저택뿐이었지. 그 여인이 실로 내 왕가 조상 가운데 하나를 홀렸을지는 몰라도, 나로서는 좀 더 살아 있는 미인이 나았을 텐데 말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혼자 집에 돌아가는 따분함을 달랠 해독제로, 나는 침대차 급사나 합승마차 차장하고나 친해지고 싶단 말이야. 자, 놀라지 말게,” 남작이 말을 맺었다, “이건 다 부류의 문제야. 이를테면 자네가 ‘젊은 신사분들’이라 부르는 자들이라면, 나는 실제로 그들을 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그들을 건드려 보기 전에는 결코 흡족하지가 않아. 몸을 건드린다는 게 아니라, 마음의 울림을 건드린다는 말일세. 어떤 젊은이가 내 편지를 답장 없이 내버려 두는 대신 쉴 새 없이 답장을 써 보내기 시작하여, 마음으로나마 내 뜻대로 움직여 줄 지경이 되면, 나는 다시 평온해지지. 적어도, 곧바로 또 다른 이의 매력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평온해질 텐데 말이야. 꽤 야릇하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젊은 신사분들’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집에 드나드는 그 젊은이들 가운데 자네가 아는 자가 있나?” “모릅니다, 아기 양반. 아, 아니지, 압니다. 거무스름하고, 키가 아주 크고, 외알 안경을 낀, 자꾸만 웃으며 뒤돌아보는 자 말입니다.” “누구를 말하는지 모르겠군.” 쥐피앙이 그 인물의 생김새를 채워 넣었으나, 샤를뤼스 씨는 그게 누구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으니, 옛 재봉사가 흔히들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흔한 부류, 곧 잘 모르는 사람의 머리 빛깔은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는 부류 가운데 하나임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쥐피앙의 이런 흠을 알고 있어 ‘거무스름한’을 ‘금발의’로 바꾸어 들은 내게는, 그 묘사가 샤텔로 공작을 그대로 그려 낸 것으로 여겨졌다. “하층민이 아닌 젊은이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남작이 말을 이었다, “요즘 나는 어떤 야릇한 조무래기 하나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데, 나를 대하는 데에 엄청난 무례를 부리는 영리한 소시민 애송이지. 내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며 그에 견주어 저는 얼마나 미세한 미물인지, 그자는 도무지 알지를 못해. 하기야 무슨 상관이겠나, 그 조무래기 당나귀야 내 근엄한 주교의 망토 앞에서 목이 터져라 울어 젖히든 말든.” “주교라니요!” 쥐피앙이 소리쳤다. 그는 샤를뤼스 씨의 끝맺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으면서도, 주교라는 낱말에 완전히 어리둥절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종교하고야 어디 어울립니까.” 그가 말했다. “내 집안에는 교황이 셋이나 있어,” 샤를뤼스 씨가 대답했다, “게다가 추기경 작위에 따라 붉은 망토를 두를 권리도 누리는데, 내 종조부인 추기경의 조카딸이 그 작위 대신 들어선 공작 작위를 내 조부에게 전해 주었기 때문이지. 그렇지만 보아하니 자네는 비유에는 귀가 먹었고 프랑스 역사에는 데면데면하군. 게다가,” 그가 덧붙였는데, 이는 어쩌면 결론이라기보다 경고에 가까웠다, “나를 피하는 젊은이들에게 내가 느끼는 이 끌림은, 물론 그들은 두려움에서 나를 피하는 것이고, 오로지 타고난 공경심만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려는 그들의 입을 막고 있을 뿐이지만, 아무튼 그 끌림은 그들에게 남다른 사회적 지위를 요구한단 말이야. 그런데 또, 그들이 짐짓 꾸미는 무관심은 그런데도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 얼빠지게 오래 끌면 나는 신물이 나지. 자네에게 더 익숙한 부류에서 예를 들자면, 내 저택을 손보던 무렵, 나를 재워 주었노라 떠벌릴 영광을 두고 서로 다투던 공작부인들 사이에 시샘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나는 며칠간 요즘 사람들이 여관을 부르는 말대로 하자면 ‘호텔’이라는 데로 갔지. 거기 내가 아는 객실 하인이 하나 있어, 나는 그에게 현관문을 여닫곤 하던 흥미로운 조무래기 사환 하나를 가리켜 보였는데, 그 녀석은 내 제안에 도무지 넘어오지 않았어. 끝내 성이 나서, 내 뜻이 순수함을 그에게 증명하려고, 나는 그저 위층으로 올라와 내 방에서 오 분만 이야기를 나누어 달라며 터무니없이 큰 액수를 제시했지. 나는 헛되이 그를 기다렸어. 그러고는 그가 어찌나 싫어졌던지, 나는 반대편에서 그 고약한 낯짝을 보지 않으려고 하인용 문으로 드나들곤 했다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는 내 쪽지를 한 장도 받지 못했고, 그것들은 죄다 가로채였는데, 첫 번째는 샘이 난 객실 하인이, 다음은 고결한 낮 문지기가, 세 번째는 그 조무래기 사환에게 반해 디아나가 떠오르는 시각이면 그와 잠자리를 같이하던 밤 문지기가 가로챈 것이었어. 그래도 내 역겨움은 조금도 가시지 않아서, 설령 그 사환을 은쟁반에 담은 사슴 고기 요리처럼 내게 갖다 바친다 한들, 나는 속이 뒤집혀 그를 밀쳐 낼 걸세. 그런데 딱한 노릇이 바로 그거야, 우리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말았으니, 이제 우리 사이는 다 끝난 것이고, 내가 손에 넣고자 했던 것은 더는 입에 올릴 수조차 없게 되었지. 하지만 자네라면 내게 큰 도움을 주어, 내 심부름꾼 노릇을 해 줄 수 있을 게야. 아니, 그런 생각만으로도 벌써 기운이 되살아나는걸, 다 끝난 게 결코 아니라는 걸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