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이제 블로크는, 내가 세련된 사람들과 한순간도 떨어져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자기에게 (가령 샤를뤼스 씨가) 베풀지도 모를 호의를 시샘한 나머지 그의 앞길에 훼방을 놓아 그가 그들과 벗이 되지 못하게 막으려 든다고까지 믿었다. 그러나 남작은 남작대로 내 친구를 더 자주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늘 그렇듯 그는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조심했다. 그는 우선 블로크에 관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으나, 어조가 어찌나 심상했고 그 관심이 어찌나 꾸며 낸 듯했던지, 대답 따위는 듣지도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초연한 기색으로, 그저 무관심이 아니라 완전한 딴청을 드러내는 억양으로, 그리고 오로지 내게 예의를 차리는 양 그가 말했다. “똑똑해 보이던데, 글을 쓴다더군. 재능은 좀 있소?” 나는 샤를뤼스 씨에게, 블로크를 다시 보고 싶다고 말씀해 주시니 참으로 친절하시다고 했다. 남작은 내 말을 들은 낌새를 티끌만큼도 내비치지 않았고, 내가 아무 대답도 얻지 못한 채 네 번이나 되풀이하고 나자, 나는 샤를뤼스 씨가 그런 말을 입에 담는 것을 들었다고 여긴 것이 혹 음향의 신기루에 속은 탓은 아니었을까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가 발베크에 사오?” 남작이 억양을 붙여 말했는데, 그 태도가 물음과는 어찌나 거리가 멀던지, 겉보기에 도무지 물음 같지 않은 이런 말들을 맺는 데에 물음표 말고 다른 부호가 없다는 것이 문어(文語)로서는 성가신 노릇이다. 하기야 그런 부호가 있다 한들 샤를뤼스 씨에게는 좀처럼 쓸모가 없었을 것이다. “아뇨, 이 근처에 집을 하나 얻었습니다. 라 코망드리라는 곳이지요.” 알고자 하던 것을 알아낸 샤를뤼스 씨는 블로크를 경멸하는 척했다. “끔찍하기도 하지.” 그가 소리쳤고, 그 목소리는 나팔 같은 힘을 온전히 되찾았다. “라 코망드리라 불리는 곳이나 영지는 죄다 몰타 기사단(나도 그 일원이오)이 세우거나 소유하던 것이오. 탕플이나 카발리에라 불리는 곳들이 탕플 기사단의 것이었듯 말이지. 내가 라 코망드리에 산다면야 세상에 그보다 자연스러운 일이 없겠소. 그런데 유대인이라니! 하기야 놀랄 것도 없지. 그건 저 종족 특유의, 신성모독을 향한 묘한 본능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유대인은 시골에 집 한 채 살 만한 돈이 생기기 무섭게 언제나 소수도원이니 대수도원이니 대성당이니 예배당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곳을 고른단 말이오. 언젠가 어느 유대인 관리와 볼일이 있었는데, 그가 어디 살았는지 아시오? 퐁레베크였소. 그러다 신세를 망치자 브르타뉴로, 퐁라베로 전근을 청했더군. 성주간에 이른바 ‘수난극’이라는 그 망측한 구경거리를 올릴 때면, 관객의 절반이 유대인이라, 적어도 형상으로나마 그리스도를 두 번째로 십자가에 매달게 되었다는 생각에 신이 나 있소. 라무뢰 연주회에 갔을 때는 부유한 유대인 은행가가 내 옆자리에 앉았지. 베를리오즈의 그리스도의 어린 시절을 연주하니 그자는 몹시 언짢아하더군. 그러나 성금요일 음악이 흐르자 이내 평소의 그 흐뭇한 낯빛을 되찾았소. 그러니 당신 친구가 코망드리에 산다 이거지, 고약한 자 같으니! 이 무슨 사디즘인가!” “거기 가는 길을 내게 일러 주시오.” 그는 다시 무심한 기색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언젠가 그리로 가서, 한때 우리 것이던 영지가 그런 모독을 어찌 견디는지 봐야겠으니. 안된 일이오. 그자는 몸가짐이 반듯하고 잘 자란 티가 나거든. 이러다 다음번엔 그자의 파리 주소가 탕플 거리라는 소리까지 듣겠구먼!” 이런 말로 샤를뤼스 씨는 그저 자기 지론을 뒷받침할 새 사례 하나를 찾을 뿐인 듯한 인상을 주었으나, 실은 일석이조를 노리고 있었으니, 그의 주된 목적은 블로크의 주소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브리쇼가 끼어들었다. “탕플 거리는 예전에 슈발리에뒤탕플 거리라 불렸지요. 그와 관련해 한 말씀 여쭈어도 될는지요, 남작님?” 교수가 말했다. “뭐요? 무슨 말이오?” 샤를뤼스 씨가 퉁명스레 되물었으니, 그 불쑥 내민 한마디가 그로 하여금 원하던 정보를 얻지 못하게 막은 탓이었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브리쇼가 흠칫하며 대답했다. “다들 제게 묻던 발베크의 어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탕플 거리는 옛날에 바르뒤바크 거리라 불렸는데, 노르망디의 바크 수도원이 파리의 그곳에 재판소를 두었던 까닭이지요.” 샤를뤼스 씨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못 들은 척했는데, 이는 그가 즐겨 부리는 무례의 한 방식이었다. “당신 친구는 파리 어디에 사오? 거리 넷 가운데 셋은 교회나 수도원에서 이름을 따 왔으니, 거기서도 또 한 번 신성모독이 벌어질 공산이 다분하겠지. 유대인이 마들렌 대로나 포부르 생토노레, 생토귀스탱 광장에 사는 것을 막을 수야 없소. 다만 그들이 배신을 한 걸음 더 밀어붙여 노트르담 광장이나 아르슈베셰 강변로, 샤누아네스 거리, 아베마리아 거리에 천막을 치지만 않는다면, 그 딱한 사정은 눈감아 주어야겠지.” 우리는 그때 블로크의 주소를 몰랐으므로 샤를뤼스 씨의 궁금증을 풀어 줄 수 없었다. 다만 나는 그의 아버지 사무실이 블랑망토 거리에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오! 그거야말로 타락의 극치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샤를뤼스 씨가 소리쳤는데, 그는 자기 입에서 나온 그 반어적 분개의 외침에서 깊은 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블랑망토 거리라니!”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에 힘주어 되뇌며 웃음 섞어 말했다. “이 무슨 신성모독인가! 블로크 씨가 더럽힌 그 ‘흰 망토’가, 성왕 루이가 그곳에 세운, ‘성모의 종’이라 불리던 탁발 수도사들의 것이었음을 생각해 보시오. 게다가 그 거리에는 늘 어떤 수도회가 자리 잡고 있었소. 그 모독이 한층 악마적인 것은, 블랑망토 거리에서 돌 던지면 닿을 거리에, 이름은 지금 떠오르지 않지만, 온통 유대인에게 내맡겨진 거리가 하나 있기 때문이오. 가게마다 히브리 문자가 걸려 있고, 무교병을 굽는 빵집이며 코셔 정육점이 늘어서 있으니, 그야말로 파리의 유덴가세라 할 만하지. 블로크 씨야말로 거기에 살아야 마땅한 자요. 하기야,” 그는 미학을 논하기에 어울리는 힘주고 오만한 어조로 말을 이었는데, 무의식중에 흐르는 혈통의 기운이 뒤로 젖힌 그의 얼굴에 루이 13세 시절 늙은 총사(銃士) 같은 풍모를 실어 주었다. “나야 그런 것에 오로지 예술의 관점에서만 관심을 둘 뿐이오. 정치는 내 소관이 아니오. 게다가 블로크가 거기 속한다 해서, 스피노자를 그 빛나는 아들 가운데 두고 있는 한 민족을 통째로 단죄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또 나는 렘브란트를 너무나 흠모하기에, 회당을 드나드는 데서 우러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모르지 않소. 하지만 어쨌든 게토란 균질하고 온전할수록 더 아름다운 법이오. 더구나 저 종족에게는 장사꾼의 본능과 인색함이 사디즘과 뒤섞여 있는 터라, 장담하건대, 앞서 말한 그 히브리 거리가 가까이 있다는 것, 이스라엘의 고기 가마솥을 지척에 둘 수 있다는 편리함이 당신 친구로 하여금 블랑망토 거리를 고르게 만들었을 것이오. 이 모든 게 어찌나 기묘한지! 그러고 보니 바로 그곳에, 성체를 삶던 어느 괴상한 유대인이 살았는데, 그다음엔 사람들이 그자를 삶았다고 하오. 그게 더 기묘한 일이지. 유대인의 몸이 우리 주님의 몸에 맞먹을 수 있다는 뜻으로 비치니 말이오. 어쩌면 당신 친구와 잘 이야기해서 우리를 블랑망토 성당 구경에 데려가게 할 수도 있겠지. 생각해 보시오, 바로 거기에 루이 도를레앙의 시신이 안치되었으니, 용맹공 장에게 암살당한 뒤였는데, 안타깝게도 그 일로 우리가 오를레앙가를 떨쳐 내지는 못했소. 나 개인으로 말하자면 사촌인 샤르트르 공작과는 늘 더없이 좋은 사이였소. 그렇더라도 결국 그들은 찬탈자의 혈통이라, 루이 16세를 죽음으로 몰고 샤를 10세와 앙리 5세를 폐위시킨 자들이오. 그 성정이 어디서 왔는지야 뻔하지. 그들의 조상 중에는 ‘무슈’도 있는데, 그렇게 불린 것은 필시 그가 더없이 놀라운 노파 같은 사내였던 까닭이고, 섭정이며 그 밖의 무리도 다 그 축이오. 참으로 대단한 집안이지!” 반유대적이라 할지 친히브리적이라 할지, 그 문구들의 겉뜻을 보느냐 아니면 그것들이 감춘 속내를 보느냐에 따라 갈릴 이 일장 연설은, 모렐이 내 귀에 속삭인 한마디 때문에 나로서는 우스꽝스럽게 끊기고 말았고, 그것이 샤를뤼스 씨를 노엽게 했다. 블로크가 남긴 인상을 놓치지 않고 알아챈 모렐은 ‘그를 쫓아 준’ 데 대해 내 귀에 대고 고맙다고 웅얼거리며, 냉소하듯 덧붙였다. “저 친구, 남고 싶어 했잖아요. 죄다 질투지요. 내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거예요. 영락없는 유대놈이라니까!” “아직 이어지고 있는 이 정차를 틈타 당신 친구에게 그 종교의식에 관해 몇 가지 설명을 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를 다시 데려올 수 없겠소?” 샤를뤼스 씨가 확신 없는 불안에 싸여 내게 물었다. “아뇨, 그건 안 됩니다. 마차를 타고 떠나 버렸고, 게다가 저한테 잔뜩 골이 나 있거든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모렐이 나직이 숨을 내쉬었다. “그 핑계는 터무니없소. 마차야 언제든 따라잡을 수 있고, 자동차를 타지 못할 까닭도 없지 않소.” 샤를뤼스 씨가, 누구나 제 앞에서 굽히는 것을 보는 데 익숙한 사람의 어조로 대꾸했다. 그러나 내가 잠자코 있자, “대체 그 있는 둥 마는 둥 한 마차라는 게 뭐요?” 그는 무례하게, 그러면서도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을 품고 내게 말했다. “지붕 없는 역마차인데, 지금쯤이면 라 코망드리에 닿았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일 앞에서 샤를뤼스 씨는 단념하고는 짐짓 익살을 부렸다. “새 브루엄 마차라면 그들이 질색할 만도 하지. 그걸로 그들을 말끔히 쓸어 냈을지도 모르니까.” 마침내 곧 기차가 떠난다는 기별이 왔고, 생루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우리 객차에 오름으로써 나도 모르게 내게 아픔을 준 것은 이날뿐이었으니, 블로크와 함께 가려고 그를 알베르틴 곁에 남겨 둘까 하는 생각이 한순간 스쳤던 탓이다. 다른 때에는 그의 존재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알베르틴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스스로, 이런저런 구실을 대며, 무심코라도 로베르를 스칠 수 없는 자리에, 그에게 손을 내밀어야 할 만큼도 가깝지 않은, 거의 지나치게 먼 자리에 몸을 두었고, 그가 나타나기 무섭게 그에게서 눈길을 돌린 채 다른 승객 아무하고나 요란하고 거의 꾸민 듯한 대화에 빠져들어, 생루가 떠날 때까지 그 시늉을 이어 갔다. 그리하여 그가 동시에르에서 우리를 찾아온 일은, 내게 아무 아픔도, 심지어 아무 불편도 주지 않아, 나머지 방문들과 조금도 어긋나지 않았으니, 그 방문들은 하나같이 이를테면 이 고장의 경의와 초대를 내게 실어다 주었기에 다 즐거웠다. 벌써 여름이 저물어 갈 무렵, 발베크에서 두빌로 가는 길에, 저 멀리 생피에르데지프의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는 저녁 한때 절벽 마루가, 해질 녘 산 위의 눈이 붉게 타오르듯 장밋빛으로 반짝이곤 했다. 이제 그 광경이 내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것은, 첫날 저녁 그 낯설고 불쑥 솟은 높이를 바라보며 내가 느꼈던, 발베크로 계속 가는 대신 파리행 기차를 도로 타고 싶은 열망으로 나를 가득 채웠던 그 우수가 아니라, 엘스티르가 들려준 아침의 광경, 곧 해 뜨기 전, 무지개의 온갖 빛깔이 바위에서 굴절되던 시각, 그가 어느 해 자기 모델 노릇을 하던 어린 소년을 그토록 자주 깨워 모래밭 위에 벌거벗긴 채 그리던 그 풍경이었다. 생피에르데지프라는 이름은 이제 내게, 곧 샤토브리앙과 발자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기이하고 총명하며 화장한 쉰 살의 사내가 나타나리라는 것만을 알려 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저녁 안개 속에서, 지난날 내 마음을 그토록 많은 꿈으로 채웠던 저 앵카르빌의 절벽 너머로, 그 오래된 사암 벽이 투명해지기라도 한 듯 내가 본 것은, 캉브르메르 씨의 어느 삼촌의 아늑한 집이었으니, 라 라스플리에르에서 저녁을 들고 싶지 않거나 발베크로 돌아가고 싶지 않을 때면 그곳에서 언제나 따뜻한 환대를 받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고장에서 처음의 신비를 잃은 것은 지명뿐이 아니라 장소 그 자체이기도 했다. 이미 어원이 이성으로 대신해 놓아 신비가 절반쯤 벗겨졌던 그 이름들은, 이제 한 단계 더 아래로 내려앉은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에르므농빌에서, 앵카르빌에서, 아랑부빌에서, 기차가 멈춰 설 때면, 우리는 처음엔 알아보지 못하는 어렴풋한 형체들을 분간해 냈는데, 앞이 도무지 보이지 않던 브리쇼라면 어둠 속에서 그것들을 헤리문트나 비스카르, 헤림발트의 유령쯤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 객차로 다가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캉브르메르 씨였으니, 이제는 베르뒤랭 부부와 완전히 왕래가 끊긴 그가 제 손님들을 배웅하러 나왔다가, 아내와 어머니의 사절 노릇으로, 나를 며칠 페테른에 붙들어 두게 “납치”해 가도 좋겠느냐고 물으러 온 것이었다. 그곳에 가면 나는 차례로, 글루크의 곡을 통째로 불러 줄 음악에 조예 깊은 부인과, 더불어 멋진 대국을 몇 판 둘 수 있는 이름난 체스 명인을 만나게 될 터인데, 그렇다고 만(灣)에서의 낚시 나들이며 요트 유람에도, 심지어 베르뒤랭가의 만찬에도 지장을 주지 않으리라 했으니, 그 만찬에 대해서는 후작이 나를 그리로 보냈다가 다시 데려오도록 나를 “빌려주겠노라”고 명예를 걸고 약속했으며, 이는 나의 한결 나은 편의를 위해서이자 나의 귀환을 확실히 해 두기 위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높은 데까지 올라가는 게 당신 몸에 좋을 리 없소. 내 누이는 도저히 견디지 못하지. 돌아오면 아주 볼 만한 꼴이 된다니까! 요즘 통 몸이 안 좋소. 아니, 당신도 그만큼이나 안 좋았단 말이지! 내일이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겠구먼!” 그러고서 그는 몸을 흔들며 웃었는데, 악의에서가 아니라, 절름발이가 길을 절뚝이며 가는 것을 볼 때나 귀먹은 사람과 이야기해야 할 때마다 그를 웃게 하던 것과 똑같은 까닭에서였다. “그전에는 어땠소? 아니, 보름이나 발작이 없었다고? 그거 참,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오. 정말이지 당신은 페테른에 와서 지내야 하오. 내 누이한테 발작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테니.” 앵카르빌에서는 몽페루 후작이었는데, 사냥을 나가 있느라 페테른에 가지 못한 그는, 긴 장화를 신고 모자에 꿩 깃털을 꽂은 채 “기차를 맞으러” 나와, 떠나는 손님들과, 겸하여 나와도 악수를 나누며, 내게 편한 요일에 자기 아들의 방문을 기다려 달라고 청했고, 아들을 초대해 준 데 고마움을 표하며 그 애에게 책을 좀 읽혀 준다면 무척 기쁘겠다고 덧붙였다. 아니면 크레시 씨였는데, 저녁을 소화시키러 나왔노라 밝히며 파이프를 물고, 시가를 한 대, 아니 그 이상을 받아 들고는 내게 말했다. “그래, 다음 우리 루쿨루스의 밤 날짜는 아직 못 정했소? 의논할 거리가 없다고요? 몽고메리 두 가문 문제를 우리가 매듭짓지 못한 채로 두었다는 걸 상기시켜 드리리다. 그건 꼭 결말을 봐야 하오. 당신만 믿고 있겠소.” 또 어떤 이들은 그저 신문을 사러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이들이 와서 우리와 담소를 나누었는데, 나는 이따금 이런 의심을 품었으니, 그들이 제 작은 저택에서 가장 가까운 역 승강장에 나와 있는 것은 단지 아는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어서였으리라는 것이다. 요컨대 이 작은 철도의 정차란, 다른 어떤 것과도 다름없는 사교 생활의 한 장면이었다. 기차 자체도 제게 맡겨진 역할을 의식하는 듯, 일종의 인간적인 다정함을 몸에 익혀서, 참을성 있고 온순한 성미로, 뒤처진 이들을 그들이 원하는 만큼 기다려 주었고, 이미 떠난 뒤에도 신호를 보내는 이들을 태우려 멈춰 서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헐떡이며 기차를 뒤쫓았으니, 그 점에서는 기차를 닮았으되, 그들은 온 힘을 다해 내달려 따라잡으려 한 반면 기차는 오직 지혜로운 느림만을 부린다는 점에서 달랐다. 그리하여 에르므농빌도, 아랑부빌도, 앵카르빌도, 이제는 내게 노르만 정복의 그 거친 장엄함조차 떠올려 주지 않았으니, 오래전 축축한 저녁 공기 속에서 그것들이 잠겨 있던 그 까닭 모를 우수를 온전히 떨쳐 낸 것으로도 모자란 셈이었다. 동시에르! 그곳을 알게 되고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그 이름 속에는 얼마나 오래도록, 기분 좋게 얼어붙은 거리며 불 밝힌 창들이며 새의 물오른 살점이 남아 있었던가. 동시에르! 이제 그곳은 모렐이 기차에 오르는 역에 지나지 않았고, 에글빌(Aquilae villa)은 대개 셰르바토프 대공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역이었으며, 멘빌은 날 좋은 저녁이면 알베르틴이 기차에서 내리던 역이었으니, 그녀는 너무 지치지만 않으면 나와 함께하는 시간을 잠시 더 누리고 싶어 했고, 오솔길로 접어들면 파르빌(Paterni villa)에서 내렸을 때보다 걸어야 할 거리가 있다 한들 거의 더 되지 않았다. 첫날 저녁 내 가슴을 옥죄던 고립의 불안한 두려움을 이제 더는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것이 되살아날까 걱정할 필요도, 이 고장에서 나 자신을 이방인이나 외톨이로 여길 필요도 없었으니, 이 땅은 밤나무와 위성류만이 아니라 우정도 길러 내는 곳이었다. 그 우정은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긴 사슬을 이루어, 푸른 언덕의 사슬이 그러하듯 군데군데 끊기고, 바위의 굴곡 속이나 가로수 보리수 뒤에 여기저기 숨어 있으면서도, 매 구간마다 상냥한 신사를 하나씩 보내어 다정한 악수로 내 노정을 가로막고, 내가 그것을 너무 길게 느끼지 않도록 하며, 필요하다면 나와 함께 여행을 이어 가겠노라 청하게 했다. 또 다른 이가 다음 역에 있곤 했으니, 작은 전차의 기적 소리가 우리를 한 벗에게서 떼어 놓는 것은 오직 우리로 하여금 다른 벗들을 만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가장 외따로 떨어진 영지들과, 빠르게 걷는 사람의 걸음쯤 되는 속도로 그 곁을 스쳐 가는 철도 사이의 거리가 어찌나 가까웠던지, 대합실 밖 승강장에서 그 주인들이 우리를 부를 때면, 우리는 그들이 제 집 문간에서, 제 침실 창에서 그러는 것이라고 여길 뻔했으니, 마치 그 작은 지방선이 시골 읍내의 한 거리에 지나지 않고 그 외딴 저택은 한 집안의 읍내 거처이기라도 한 듯했다. 그리고 “안녕하시오”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몇몇 역에서조차, 그 침묵은 자양분이 되고 마음을 달래 주는 충만함을 지녔으니, 그것이 이웃한 장원에서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벗들의 잠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나는 알았고, 만일 내가 어떤 후한 도움을 청하려 그들을 깨워야 했더라도 그곳에서 내 방문은 기쁨으로 맞아졌을 터였다. 게다가 친숙함이라는 감각이 우리의 시간을 어찌나 가득 채워 놓는지,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하루가 그 열두 시간을 통째로 마음대로 쓰라고 내주던 고장에서도, 몇 달이 지나고 나면 우리에게는 한가한 순간 하나 남지 않았고, 설령 그 시간 가운데 하나가 어쩌다 비었다 한들, 이제 나로서는 그것을 지난날 그것을 보러 발베크에 왔던 어느 성당을 찾는 데 바치겠다는 생각도, 엘스티르가 그린 풍경을 그의 화실에서 본 그 밑그림과 견주어 보겠다는 생각조차도 들지 않고, 그저 페레 씨 댁에 가서 체스를 한 판 더 두겠다는 생각만 들었을 것이다. 발베크 언저리의 이 고장이 지녔던 매력인 동시에 실로 그 타락시키는 힘이기도 했던 것은, 그곳이 내게 참된 의미에서 정다운 고장이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그 고장의 지리적 배치, 곧 해안 전역에 걸쳐 갖가지 경작의 형태로 흩뿌려진 그 씨앗이, 내가 이 여러 벗들을 찾아가는 방문에 어쩔 수 없이 여행의 형태를 입혀 주었다면, 바로 그것이 또한 그 여행을 잇달은 방문이라는 사교적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깎아내렸다. 지난날에는 나를 그토록 뒤흔들어, 시골 저택 연감에서 망슈 도(道)에 관한 장을 넘길 때면 철도 시간표만큼이나 절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던 바로 그 지명들이, 이제는 내게 어찌나 친숙해졌던지, 그 시간표 자체에서 “동시에르 경유 발베크발 두빌행”이라 적힌 면을, 나는 주소록을 뒤적일 때와 똑같은 흐뭇한 평온 속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치게 사교적인 이 골짜기, 그 비탈을 따라 보이든 안 보이든 수많은 벗들이 모여 있음을 내가 느끼던 그곳에서, 저녁의 시적인 외침은 이제 올빼미나 개구리의 그것이 아니라, 크리크토 씨의 “별고 없으시오?”이거나 브리쇼의 “Chaire!”였다. 그곳의 공기는 이제 내 번민을 자아내지 않았고, 순전히 인간적인 발산물로 가득 차, 숨쉬기에 수월했으며, 실은 지나치리만치 마음을 달래 주었다. 그로부터 내가 그나마 얻은 이로움이라면, 사물을 오로지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된 것이었다. 알베르틴과 결혼한다는 생각은 내게 미친 짓으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