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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③

4권 제2부 · 제4장

두세 번, 잠깐씩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방과 이 책장이 놓인, 그리고 알베르틴이 그토록 하찮은 자리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그 세계야말로 어쩌면 유일한 실재인 지적 세계이며, 내 슬픔이란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과 비슷한 무엇, 오직 미친 사람만이 제 삶 내내 이어지는 지속적이고 항구한 슬픔으로 삼을 그런 무엇이 아닐까 하는. 어쩌면 내 의지의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충분히, 종이 고리를 뚫고 나가듯 내 슬픔을 지나 그 실재 세계에 다다르고, 그 안에 다시 들어서서, 소설을 다 읽은 뒤 그 상상 속 여주인공의 행적을 두고 생각하는 정도로밖에 알베르틴이 한 일을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되리라는 생각이. 하기야, 내가 가장 정열적으로 사랑한 연인들은 그들에 대한 내 사랑과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었다. 그 사랑은 진짜였으니, 나는 그들을 보고 싶은, 그들을 내 곁에 붙들어 두고 싶은 욕구에 다른 모든 것을 종속시켰고, 어느 저녁 헛되이 그들을 기다린 날이면 소리 내어 울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그 사랑의 형상이어서라기보다는, 그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그것을 극도로 치닫게 하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보아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도, 나는 내 사랑을 닮은, 그 사랑을 설명해 줄 만한 무엇도 그들에게서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내 유일한 기쁨은 그들을 보는 데 있었고, 내 유일한 불안은 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데 있었다. 마치 그들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어떤 힘이 자연에 의해 그들에게 인위적으로 붙여졌고, 이 힘, 이 거의 전기와도 같은 힘이 내 사랑을 부추기는, 다시 말해 내 모든 행동을 지배하고 내 모든 고통을 자아내는 작용을 나에게 미쳤다고 할 만했다. 그러나 이 힘과, 이 여자들의 아름다움이나 지성이나 상냥함은 전혀 별개였다.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전류에 흔들리듯, 나는 내 사랑에 뒤흔들렸고, 그것을 살았으며, 그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을 보거나 생각하는 단계에는 결코 이르지 못했다. 실로 나는 이렇게 믿는 쪽이다. 이런 사랑에서(그 사랑에 으레 따르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사랑을 이루기에 모자란 육체의 쾌락은 셈에 넣지 않겠다) 우리가, 여자의 형상 아래에서, 그녀에게 붙어 있는 그 보이지 않는 힘들에게, 마치 알 수 없는 신들에게 하듯 말을 건네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그 호의가 필요한 것은 바로 그 힘들이며, 우리가 거기서 이렇다 할 즐거움도 얻지 못한 채 그것들과 닿으려 애쓰는 것도 바로 그 힘들이다. 여자는, 우리와 밀회하는 동안, 이 여신들과 우리를 이어 줄 뿐 그 이상은 거의 하지 않는다. 우리는 제물로 보석을, 여행을 약속했고, 우리가 흠모한다는 뜻의 상투어를, 동시에 우리가 무심하다는 뜻의 상투어를 내뱉었다. 우리는 새로운 밀회를 얻어 내려 온 힘을 다했으되, 다만 아무런 성가심도 따르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였다. 그런데 여자 자신이, 이 은밀한 힘들로 채워지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그토록 애를 쓰게 만들 수 있었을까, 정작 그녀가 우리를 떠나고 나면 우리는 그녀가 어떤 옷을 입었는지조차 말하지 못하고 우리가 그녀를 쳐다본 적조차 없음을 깨닫는데도?

우리의 시각은 우리를 속이는 감각이므로, 사람의 몸은, 그것이 알베르틴의 몸처럼 사랑받는 것일 때조차, 우리에게서 몇 걸음, 몇 치 떨어진 곳에 있는 듯 보인다. 그 몸에 깃든 영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무언가가 그 영혼과 우리 자신의 상대적 위치에 격렬한 변화를 일으켜, 그녀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을 사랑함을 우리에게 드러내기만 하면, 그 순간 제자리를 잃고 뛰는 우리 심장의 박동으로 우리는 느낀다, 그 사랑하는 존재가 있던 곳은 우리에게서 한 걸음 떨어진 데가 아니라 우리 안이었음을. 우리 안, 얼마쯤 표층에 가까운 영역에. 그러나 “그 친구가 바로 뱅퇴유 이에요”라는 그 말은, 나 혼자서는 결코 찾아내지 못했을 열려라 참깨였으니, 그 말이 알베르틴을 산산이 부서진 내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등 뒤로 닫혀 버린 그 문을, 나는 백 년을 찾아 헤맨들 어떻게 열 수 있는지 알아내지 못할 것이었다.

알베르틴이 방금 나와 함께 있던 동안, 나는 잠시 이 말들이 귓속에서 울리는 것을 듣기를 멈추었다. 콩브레에서 내 불안을 달래려고 어머니에게 입 맞추던 것처럼 그녀에게 입 맞추는 동안, 나는 알베르틴의 결백을 거의 믿었고, 적어도 내가 알아챈 그녀의 악덕을 끊임없이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제 홀로 남게 되자, 그 말들은 상대가 말을 멈추자마자 들려오는 저 귓속의 소리처럼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의 악덕은 조금의 의심도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다가오는 일출의 빛은 내 주위 사물의 모습을 바꾸어 놓으면서, 마치 한순간 내 자리를 옮겨 놓기라도 하듯, 나로 하여금 다시 한번, 그러나 더욱 고통스럽게 내 괴로움을 의식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토록 아름답고 그토록 괴로운 아침의 여명을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막 밝아 오려는 온갖 평범한 풍경들, 바로 어제였다면 그저 그곳을 찾아가 보고 싶은 마음만을 나에게 불러일으켰을 그 풍경들을 생각하며, 나는 흐느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기계적으로 행해진 봉헌의 몸짓,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아침마다 온갖 기쁨을 바쳐야 하는 피의 제사를, 날이 밝을 때마다 거행되는 나의 나날의 슬픔과 내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의 엄숙한 갱신을 상징하는 듯 여겨진 그 몸짓과 더불어, 태양의 황금빛 알이, 응결의 순간에 밀도의 변화로 야기된 평형의 파열에 떠밀리기라도 하듯, 한 폭의 그림에서처럼 불꽃의 혀를 가시처럼 두른 채, 초조하게 떨며 무대에 나타나 솟구쳐 오르려는 것이 느껴지던 그 장막을 뚫고 뛰쳐나왔고, 그 신비롭고 뿌리 깊은 자줏빛을 빛의 물결로 흠뻑 적셨다. 나는 내 흐느낌의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놀랍게도 문이 열렸고,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이미 나를 찾아왔으나 오직 잠 속에서만 찾아오던 그런 환영들 가운데 하나처럼, 할머니가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한낱 꿈이었단 말인가? 아, 나는 완전히 깨어 있었다. “가엾은 할머니와 닮았다고 여기는구나.” 어머니가 말했다. 바로 그녀였던 것이다. 내 두려움을 달래려 부드럽게 말하면서, 더구나 그 닮음을 인정하며, 한 번도 교태를 부린 적이 없던 그 겸손한 자부심의 고운 미소를 지었다. 헝클어진 머리칼, 그 안에 감추어지지 않은 채 어수선한 눈가로 흩어진 흰 머리카락, 늙어 가는 뺨, 그녀가 걸치고 있던 할머니의 실내복, 이 모든 것이 한순간 나로 하여금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고, 내가 여전히 잠들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할머니가 되살아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내 어머니는, 내 어린 시절이 알던 젊고 미소 짓는 어머니보다 훨씬 더, 할머니를 닮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닮음을 더는 생각하지 않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오래도록 앉아 책을 읽으며 마음을 온통 빼앗긴 나머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다가, 문득 우리 주위에서 어제 같은 시각에 비치던 태양이 같은 조화, 해가 지기 전의 그 같은 색채의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보게 되듯이. 어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내 착각을 깨우쳐 준 것은, 그녀가 자기 어머니를 그토록 닮았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기쁜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온 건,” 어머니가 말했다, “자다가 누군가 우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란다. 그 소리에 잠이 깼어. 그런데 너는 어째서 잠자리에 있지 않은 거니? 게다가 눈에 눈물이 가득하구나. 무슨 일이니?” 나는 두 팔로 어머니의 머리를 감쌌다. “엄마, 들어 봐요, 나를 무척 변덕스럽다고 여기실까 봐 두려워요. 하지만 무엇보다, 어제 나는 알베르틴에 대해 엄마에게 조금도 곱게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한 말은 부당했어요.” “그게 무슨 상관이겠니?”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떠오르는 태양을 언뜻 보고는, 자기 어머니를 떠올리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내가 한 번도 지켜보지 않는다고 할머니가 늘 안타까워하던 그 광경의 혜택을 내가 놓치지 않도록, 창문을 가리켰다. 그러나 엄마가 나에게 가리켜 보이던 발베크의 해변 너머, 바다 너머, 일출 너머로, 나는, 어머니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 절망의 몸짓과 더불어, 몽주뱅의 그 방을 보았다. 그 방에서는 반항적인 코를 한, 커다란 고양이처럼 발그레하고 통통한 알베르틴이 뱅퇴유 의 여자친구의 자리를 차지한 채, 관능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니! 저들이 우리를 본다면, 그거야말로 더 잘된 일이지. 내가? 저 늙은 원숭이한테 침을 못 뱉을 것 같아?” 내가 본 것은 바로 이 장면이었으니, 열린 창문에 담긴, 다른 장면 위에 드리운 어렴풋한 베일에 지나지 않는 그 장면 너머로, 마치 반영처럼 그 위에 겹쳐진 이 장면이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그려 놓은 풍경처럼 거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우리 맞은편, 파르빌의 절벽이 툭 튀어나온 곳에서는, 우리가 “족제비” 놀이를 하던 작은 숲이, 아직도 온통 금빛인 물의 유약 아래 그 잎사귀의 그림을 바다 가장자리까지 드리우고 있었으니, 흔히 하루가 저물 무렵 내가 알베르틴과 함께 그늘에서 쉬려고 그곳에 갔다가 하늘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고 일어서던 그 시각처럼. 아직도 진줏빛 여명의 조각들이 흩어진 물 위로 분홍빛과 푸른빛 누더기가 되어 걸려 있던 밤안개의 어수선함 속에서, 배들이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처럼 돛과 이물의 끝을 금빛으로 물들이는 비스듬한 빛을 향해 미소 지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상상 속의, 서늘하고 인적 없는 풍경, 저녁이면 그것에 앞서던 그 하루의 시간들의 연속에 기대지 않는, 내가 늘 보아 오던 그 순서에 기대지 않은 채, 떼어져, 끼워 넣어진, 그것이 지워 내지도 덮어 버리지도 감추어 버리지도 못한 저 몽주뱅의 끔찍한 이미지보다 더욱 실체 없는, 순수한 일몰의 환기, 기억과 꿈이 빚어낸 시적이고 헛된 이미지였다. “하지만 얘야,” 어머니가 말하고 있었다, “너는 그 애에 대해 나쁜 말은 하지 않았어. 그 애가 너를 조금 지루하게 한다고, 그 애와 결혼할 생각을 접어서 다행이라고 말했을 뿐이야. 네가 그렇게 울 이유는 없단다. 생각해 보렴, 네 엄마는 오늘 떠나야 하는데, 이 덩치 큰 아기를 이런 꼴로 두고 가는 걸 견딜 수가 없구나. 더구나, 가엾은 내 아들아, 너를 위로해 줄 시간조차 없으니. 짐을 다 꾸려 두었다 해도, 떠나는 날 아침에는 도무지 시간이 나지 않는 법이란다.”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러고 나서, 앞날을 헤아리고, 내 욕망을 잘 저울질하며, 뱅퇴유 의 여자친구를 향한 알베르틴의 그런 애정이, 그것도 그토록 오래된 애정이 결백했을 리 없다는 것, 알베르틴이 그 길에 입문했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온갖 본능적인 행동이 나에게 분명히 드러내 보였듯이, 게다가 그녀가 그 악덕에 대한 소질을 타고났다는 것, 불안에 잠긴 내가 너무도 자주 두려워하던, 그리고 그녀가 결코 탐닉하기를 멈출 수 없었을(어쩌면 바로 그 순간, 내가 곁에 없는 틈을 타 탐닉하고 있었을) 그 악덕의 소질을 타고났다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내가 그녀에게 안기고 있는 고통을, 그녀는 내색하지 않았고, 오직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일과 나를 병들게 만드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무거운지를 저울질할 때 짓던 저 진지하게 몰두한 표정으로만 그 고통이 드러났으니, 콩브레에서 처음으로 내 방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마음먹었을 때 짓던 그 표정, 이 순간에는 나에게 브랜디를 마시게 해 주던 할머니의 표정과 놀랍도록 닮은 그 표정으로만 드러나던 그 고통을 잘 알면서도, 나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내가 하려는 말이 엄마를 얼마나 괴롭힐지 알아요. 우선, 엄마가 바라던 대로 여기 남는 대신, 나는 엄마와 같은 기차로 떠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는 여기가 편치 않아요,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그래도 내 말을 들어 봐요, 너무 마음 상해하진 마세요. 내가 하려는 말은 이거예요. 나는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어요, 어제 나는 선의로 엄마를 속인 거예요, 밤새도록 그것을 곰곰이 생각했어요. 반드시 그래야 해요, 이제 당장 이 일을 정합시다, 왜냐하면 이제 내 마음속에서는 그것이 아주 분명하니까요, 왜냐하면 나는 다시는 마음을 바꾸지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을 테니까요. 나는 반드시 알베르틴과 결혼해야 해요.”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