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줄곧 알베르틴을 생각했고, 프랑수아즈가 내 방에 들어올 때 “편지는 없어요”라고 말해 내 고뇌를 줄여 주는 일이란 아무리 빨라도 결코 충분히 빠르지 않았다. 이따금 나는, 이런저런 생각의 흐름을 내 슬픔 사이로 흘려보냄으로써, 내 마음의 탁해진 대기를 조금이나마 되살리고 바람을 통하게 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으나, 밤이 되어 어렵사리 잠이 들면, 그때는 마치 알베르틴의 기억이 내 잠을 가져다준 약이었던 듯, 그 약효가 그치면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잠자는 동안에도 줄곧 알베르틴을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준 것은 그녀만의 특별한 잠이었고, 게다가 그 잠 속에서 나는 깨어 있을 때처럼 다른 것들을 생각할 자유마저 더는 없었다. 잠과 그녀의 기억, 이것이 내가 잠들기 위해 함께 뒤섞어 단숨에 들이켜야 하는 두 가지 물질이었다. 게다가 깨어 있을 때 내 고통은 줄어들기는커녕 날로 더해 갔는데, 이는 망각이 제 할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바로 그 일을 함으로써 망각이 그리운 영상의 이상화를 부추기고, 그럼으로써 처음의 내 고통을 그것을 강화하는 다른 유사한 고통들에 동화시켰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 영상은 견딜 만했다. 그러나 별안간 그녀의 방을, 침대가 텅 빈 채 놓인 그녀의 방을, 그녀의 피아노를, 그녀의 자동차를 떠올리면, 나는 온 기운을 잃고 눈을 감으며, 곧 기절하려는 사람처럼 머리를 어깨 위로 떨구었다. 문 열리는 소리도 나를 거의 그만큼 아프게 했으니, 문을 여는 것이 그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생루에게서 전보가 왔을 법한 때가 되자, 나는 감히 “전보 왔나요?”라고 묻지 못했다. 마침내 하나가 오기는 했으나,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전언과 더불어 어떤 결과의 연기(延期)만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부인들은 사흘간 떠나 있습니다.
아마도 그녀가 떠난 뒤로 이미 흘러간 나흘을 내가 견뎌낸 것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리라. “시간문제일 뿐이야, 주말이면 그녀는 여기 와 있을 거야.” 그러나 이런 논리로도, 내 마음에게, 내 몸에게 수행해야 할 행위가 똑같다는 사실만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 없이 살아가기, 집에 돌아와 집 안에서 그녀를 찾지 못하기, 그녀 방의 문 앞을 지나가기(문을 열어보는 일로 말하자면, 나는 아직 그럴 용기가 없었다), 그 안에 그녀가 없음을 알기, 그녀에게 잘 자라는 인사도 건네지 못한 채 잠자리에 들기, 이런 것들이 내 마음이 그 끔찍한 전모 그대로 완수해야만 했던 과업이었으니, 마치 내가 앞으로 영영 알베르틴을 다시 보지 못할 것처럼. 그러나 내 마음이 이 하루하루의 과업을 이미 네 번이나 치러냈다는 사실은, 이제 그것을 계속 치러낼 수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어쩌면, 내가 이런 식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던 그 위안, 곧 알베르틴이 돌아오리라는 전망을, 나는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리라(스스로에게 “그녀는 결코 돌아오지 않아”라고 말하면서도, 지난 나흘을 이미 살아냈듯 여전히 살아 있을 수 있으리라). 마치 두 발을 다시 쓰게 되어 목발을 치워도 되는 앉은뱅이처럼. 물론 밤에 집에 돌아오면, 고독의 진공 속에서 내 숨을 앗아가고 나를 질식시키며, 알베르틴이 나를 기다리던 그 모든 저녁의 기억이 끝없는 연쇄를 이루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놓여 있는 것을 여전히 마주쳤다. 그러나 이 연쇄 속에는 어느새 어젯밤의 기억, 그저께 밤의 기억, 그 앞의 이틀 밤의 기억, 다시 말해 알베르틴이 떠난 뒤로 흘러간 네 밤의 기억이 자리 잡고 있었으니, 그동안 나는 그녀 없이 홀로 남겨져 있었으되 어쨌든 살아냈던 것이고, 벌써 네 밤이 하나의 기억의 실타래를 이루었으니, 다른 쪽에 견주면 아주 가느다란 것이었으나 날이 갈수록 어쩌면 살이 붙어갈 실타래였다. 이 무렵 파리에서 가장 예쁜 아가씨로 꼽히던 게르망트 부인의 조카가 내게 보낸, 애정의 고백을 담은 편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련다. 또 딸의 행복을 지키려는 조바심에서 신분의 불균형을, 겉보기의 격에 맞지 않는 혼사를 감수하기로 한 그 부모를 대신하여 게르망트 공작이 내게 건넨 제안에 대해서도. 우리 자존심을 흡족하게 해줄 법한 이런 일들도, 사랑에 빠져 있을 때에는 너무나 괴롭다. 우리는 어떤 욕망을 느끼지만, 우리를 그만큼 좋게 보지 않는 그녀에게 그런 일을 알린다는 무례함 앞에서 움츠러들고, 게다가 우리가 전혀 다른 평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해서 그녀의 평가가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공작의 조카가 내게 써 보낸 편지는 알베르틴을 화나게 할 뿐이었으리라.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부터, 잠들 때 이르렀던 대목에서 다시 슬픔을 집어 드는 그 순간부터, 잠시 덮어두었으나 밤이 될 때까지 눈앞에 펼쳐 두게 될 한 권의 책처럼, 밖에서 오든 안에서 솟든 나의 모든 감각은 오직 알베르틴과 관련된 어떤 생각과 더불어서만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초인종이 울린다. 그녀에게서 온 편지다, 어쩌면 그녀 자신일지도 모른다! 몸 상태가 나아진 듯 느껴지고 그다지 비참하지 않을 때면, 나는 더 이상 질투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아무 원망도 품지 않았으며, 당장 그녀를 보고 싶었고, 입 맞추고 싶었고, 그녀와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녀에게 “당장 오라”고 전보를 치는 일이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간단한 일처럼 여겨졌으니, 마치 새로 밝아진 기분이 내 마음의 기울기뿐 아니라 나 바깥의 사물들까지 바꾸어, 그것들을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 놓기라도 한 듯했다. 침울한 기분에 잠겨 있을 때면, 그녀를 향한 온갖 분노가 되살아났고, 더는 그녀에게 입 맞추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으며, 그녀가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절감했고, 오직 그녀를 해치고 그녀가 다른 사람들의 것이 되지 못하게 막으려고만 들었다. 그러나 이 상반된 두 기분은 똑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그녀가 되도록 빨리 돌아와야 한다는 것. 그렇지만 그녀가 돌아오는 순간의 기쁨이 아무리 날카로운들, 나는 머지않아 똑같은 곤경이 다시 고개를 들리라는 것을, 그리고 어떤 정신적 욕망을 채움으로써 행복을 구하는 일이 곧장 앞으로 걸어가 지평선에 닿으려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임을 느꼈다. 욕망이 앞으로 나아갈수록, 참된 소유는 그만큼 더 멀리 물러난다. 그러니 행복이, 적어도 고통에서 벗어남이 찾아질 수 있다면,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욕망의 점진적 감소, 종내는 그 소멸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려고 애쓰지만, 도리어 보지 않으려 애써야 하니, 오직 망각만이 욕망의 궁극적 소멸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내가 상상하기로, 어느 작가가 이런 종류의 진실을 세상에 내놓는다면, 그는 그 진실을 담은 책을 한 여인에게 헌정하고 그렇게 그녀에게로 되돌아가는 즐거움을 누리며 이렇게 말하리라. “이 책은 당신의 것이오.” 그리하여 그는 책 속에서는 진실을 말하면서도 헌사에서는 거짓을 말하는 셈이니, 책이 그녀의 것이라는 데 그가 부여하는 중요성이란, 그녀에게서 받은 보석에 부여하는 중요성만큼밖에 되지 않을 것이요, 그 보석은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동안만 그에게 소중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우리 자신과 이어주는 끈은 오직 우리 정신 속에만 존재한다. 기억은 희미해지면서 그 끈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우리가 기꺼이 속아 넘어가고 싶어 하는 환상에도, 또 사랑에서, 우정에서, 예의에서, 존경에서, 의무에서 남들을 속이는 그 환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홀로 존재한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는 존재, 오직 자기 안에서만 이웃을 아는 존재이니, 그 반대를 주장할 때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앗아갈 수 있는 자가 있었다면, 나는 그녀를 향한 이 갈망, 이 사랑을 누가 빼앗아 갈까 봐 어찌나 두려웠던지, 그것이 내 삶에서 하나의 가치를 지닌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투렌으로 가는 기차가 지나는 역들의 이름을, 그 이름에 홀리지도 아파하지도 않고 들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내게는 나 자신이 줄어드는 일처럼 여겨졌으리라(사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알베르틴이 내게 더는 관심을 끌지 못하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있을지, 매 순간, 그녀가 돌아올 뜻이 있는지, 돌아오려 하는지를 끊임없이 자문함으로써, 사랑이 내 안에 달아 놓은 그 통하는 문을 열어둔 채로, 다시는 고여서는 안 될 저수지 속으로 열린 수문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이 흘러드는 것을 느끼게 될 테니. 이윽고, 생루가 침묵을 지키자, 하나의 부차적인 불안, 곧 그가 보낼 또 다른 전보나 전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결과가 어찌 될지, 알베르틴이 돌아올지 어떨지 알 수 없다는 저 본래의 불안을 가려주었다. 전보를 기다리며 온갖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 어찌나 견딜 수 없던지,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지금 이 순간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인 그 전보의 도착이 내 고통을 끝내주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마침내 로베르에게서 전보를 받았을 때, 봉탕 부인은 만났으나 온갖 조심에도 불구하고 알베르틴이 그를 보고 말았고 그 바람에 모든 일이 어그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왔을 때, 나는 분노와 절망의 격류를 쏟아냈으니, 세상 무엇을 치르고서라도 막고 싶었던 바로 그 일이었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이 알아차린 이상, 생루의 밀행은 내가 그녀에게 매달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이는 그녀로 하여금 돌아올 마음을 접게 할 뿐이었으니, 그 인상에 대한 나의 공포야말로 마침, 질베르트 시절 내 사랑이 뽐내다가 그 뒤로 잃어버린 자존심 가운데 내게 남아 있던 전부였다. 나는 로베르를 저주했다. 그러고는, 이 시도가 실패했다면 다른 시도를 해보리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인간이 바깥세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상, 내가 꾀와 지혜와 금전의 힘과 애정을 두루 동원한다면, 어찌 이 소름 끼치는 사실, 곧 알베르틴의 부재를 없애는 데 실패하겠는가. 우리는 우리 욕망에 따라 주위의 사물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데, 그렇게 믿는 것은 달리 어떤 유리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실제로 일어나며 그것대로 유리한 또 하나의 해결책을 잊고 있다. 우리는 욕망에 따라 사물을 바꾸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지만, 우리 욕망이 차츰 바뀌어 간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바꾸고자 했던 상황이 대수롭지 않게 되어버린다. 우리는 기어이 넘어서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던 그 장애물을 넘지는 못했으나, 삶이 우리를 그 둘레로 돌아가게 하고, 그것을 지나쳐 가게 이끌었으니, 그런 뒤에 아득한 과거를 돌아보면 그것이 어찌나 희미해졌던지 우리는 그것을 겨우 알아볼 뿐이다. 우리 집 위층에서, 이웃 가운데 누군가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주하고 있었다. 나는 그 노랫말을, 이미 알고 있던 그 가사를 알베르틴과 나에게 갖다 붙였고, 어찌나 깊은 감정에 사무쳤던지 울기 시작했다. 노랫말은 이러했다.
“Hélas, l’oiseau qui fuit ce qu’il croit l’esclavage,
d’un vol désespéré revient battre au vitrage”
그리고 마농의 죽음.
“Manon, réponds-moi donc,
Seul amour de mon âme, je n’ai su qu’aujourd’hui
la bonté de ton coeur.”
마농이 데 그리외에게로 돌아왔으니, 내가 알베르틴에게는 그녀 생애의 유일무이한 사랑인 것만 같았다. 아, 십중팔구 그녀가 그 순간 같은 곡을 듣고 있었더라면, 데 그리외라는 이름 아래 그녀가 애틋이 떠올렸을 이는 내가 아니었으리라, 설령 그런 생각이 그녀에게 스쳤다 한들, 나에 대한 기억은 이 음악을 들으며 솟는 그녀의 감정을 억눌러 버렸으리라, 비록 그 음악이, 한결 낫고 품격 있기는 해도, 바로 그녀가 좋아하던 부류의 음악이었음에도. 나로 말하자면, 그토록 달콤한 상념에 나를 내맡길 용기가, 알베르틴이 나를 “내 영혼의 유일한 사랑”이라 부르며 자기가 “속박이라 여겼던 것”을 두고 잘못 생각했음을 깨닫는 광경을 그려볼 용기가 없었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면 언제나 그 여주인공에게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의 모습과 이목구비를 입히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말이 아무리 행복한들, 우리 사랑은 한 치도 나아가지 못했으며, 책을 덮고 나면, 우리가 사랑하고 마침내 책장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온 그녀는, 현실에서 우리를 조금도 더 사랑해 주지 않는다. 분김에, 나는 생루에게 되도록 빨리 파리로 돌아오라고 전보를 쳤으니, 그토록 비밀에 부치고 싶었던 그 밀행에 짐짓 매달리는 듯한, 사태를 악화시킬 인상만이라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가 내 지시에 따라 돌아오기도 전에, 나는 알베르틴 바로 그녀에게서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그리운 당신, 당신은 친구 생루를 내 이모에게 보냈더군요, 어리석은 짓이었어요. 이봐요, 내가 필요했다면 어째서 내게 직접 편지하지 않았나요, 나야말로 기꺼이 돌아갔을 텐데요, 우리 이제 이런 터무니없는 소동은 그만두기로 해요.”
“나야말로 기꺼이 돌아갔을 텐데요!”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면, 그것은 그녀가 자기 떠남을 후회하고 있으며 돌아올 구실을 찾고 있을 뿐이라는 뜻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니 나는 그저 그녀가 말한 대로, 그녀가 필요하다고 써 보내기만 하면 되었고, 그러면 그녀는 돌아올 터였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를, 발베크의 알베르틴을 다시 보게 될 참이었다(그녀가 떠난 뒤로 그녀는 내게 또다시 그런 존재가 되어 있었으니, 방 서랍장 위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아무 주의도 기울이지 않다가, 남에게 주거나 잃어버려 일단 손에서 떠나보내고 나면, 그동안 그만두었던 그 일, 곧 그것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하게 되는 조가비처럼, 그녀는 내게 바다의 푸른 산들이 지닌 그 모든 기쁨에 찬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상상의 산물, 다시 말해 욕망의 대상이 된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그녀와의 삶 또한 상상의 삶이, 곧 온갖 곤경에서 풀려난 삶이 되어 있었으니, 그리하여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이제 그녀의 귀환이 확실해진 마당에, 나는 그것을 서두르려는 듯 보여서는 안 되었고, 도리어 생루의 개입이 남긴 나쁜 인상을 지워야 했으니, 그 개입에 대해서는 나중에 언제든, 그가 늘 우리 결혼에 찬성해 온 터라 제 나름의 판단으로 나선 것이라고 둘러대며 발뺌할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그녀의 편지를 다시 읽었고, 그럼에도 한 통의 편지 안에 한 사람이 이토록 조금밖에 담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실망했다. 물론 종이 위에 그려진 글자는 우리 이목구비가 그러하듯 우리 생각을 드러낸다. 우리가 눈앞에 마주하는 것은 어쨌든 어떤 종류의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 안에서 그 생각은, 그녀 얼굴이라는 활짝 펼쳐진 수련을 통해 번져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것이 그 생각을 상당히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사랑에서 우리가 끝없이 실망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이니, 곧 우리가 사랑하는 그 이상적인 사람을 기대하는 데 대하여, 만남마다 우리에게 살과 피를 지닌 사람을 안겨주되 그 안에는 이미 우리 꿈의 자취가 너무도 희미하게밖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드는, 이 끝없는 어긋남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람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 우리는 그녀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데, 그 안에는 그 사람의 흔적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 마치 대수식의 문자 속에는 산술 숫자의 정확한 값이 더는 남아 있지 않고, 또 그 숫자들 자체도 그것이 헤아리는 과일이나 꽃의 성질을 담고 있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럼에도 사랑도, 사랑하는 대상도, 그녀의 편지도, 어쩌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옮겨 가는 일이 아무리 미흡하게 느껴질지언정) 같은 실재의 번역일 것이니, 편지가 우리에게 미흡해 보이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것을 읽고 있는 동안뿐이요, 그것이 오기까지 우리는 피땀을 흘려 왔던 터라, 그 편지는 우리 고뇌를 가라앉히기에 충분하며, 비록 그 자잘한 검은 기호들로써, 결국 그것이 한 마디 말, 한 번의 미소, 한 번의 입맞춤에 값하는 것만을 담을 뿐 그것들 자체를 담고 있지는 않음을 아는 우리 욕망을 달래 주지는 못할지라도 그렇다.
나는 알베르틴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운 당신, 나도 막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던 참이었소, 그리고 내가 당신을 필요로 했다면 당장 달려왔으리라 말해 주니 고맙소. 오랜 벗에게 그토록 드높은 헌신의 마음을 품는 것은 과연 당신다운 일이고, 그것은 당신에 대한 내 존경을 더할 뿐이오. 그러나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돌아오라 청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청하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이, 앞으로 오랫동안, 어쩌면 당신에게는, 매정한 아가씨인 당신에게는 괴롭지 않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당신이 이따금 그토록 냉정하다 여겨온 나에게는, 그것이 더없이 괴로운 일일 것이오. 삶이 우리를 갈라놓았소. 당신은 내가 보기에 아주 현명한 결정을, 그것도 알맞은 때에, 놀라운 예감으로 내린 것이오. 당신이 나를 떠난 바로 그날, 나는 마침 당신에게 청혼해도 좋다는 어머니의 승낙을 받아 든 참이었으니 말이오. 나는 잠에서 깨어나, 어머니의 편지를 받았을 때(당신 편지와 같은 순간에)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하려 했었소. 어쩌면 당신은 그 소식을 듣고 곧바로 떠나는 것이 나를 괴롭힐까 두려워했을지도 모르오. 그리하여 우리는 어쩌면, 우리에게 (누가 알겠소?) 불행이 되었을 삶으로 서로를 맺어 놓았을지도 모르오.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 예정된 바였다면, 나는 당신의 지혜에 축복을 보내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그 열매를 죄다 잃고 말 것이오. 그렇다고 그것이 내게 유혹이 아니리라는 말은 아니오. 그러나 그 유혹을 물리친다 해서 대단한 공로를 내세울 생각은 없소. 당신은 내가 얼마나 변덕스러운 사람인지, 얼마나 빨리 잊어버리는지 잘 알고 있소. 당신이 곧잘 말했듯이, 나는 무엇보다도 습관의 사람이오. 당신이 없는 동안 내가 들이기 시작한 습관들은 아직 그리 강하지 않소. 물론 지금 이 순간에는, 당신이 곁에 있을 때 지녔던 습관, 당신의 떠남이 뒤흔들어 놓은 그 습관이 여전히 더 강하오. 그것들도 오래 그렇게 남아 있지는 않을 것이오. 실은 바로 그 때문에, 나는 이 마지막 며칠을 이용해 볼까 생각했소.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이 내게 아직은, 보름 뒤에, 어쩌면 그보다 더 이르게(내 솔직함을 용서하시오) 그렇게 될 것, 곧 하나의 소란이 되어 있지는 않은 이 며칠 말이오. 나는 그날들을, 완전한 망각이 찾아오기 전에, 당신과 함께 몇 가지 자잘한 실무적 문제를 매듭짓는 데 써 볼까 생각했으니, 그 일에서 당신은, 착하고 사랑스러운 벗으로서, 오 분 동안 자신을 당신의 미래 남편이라 상상했던 이 사람에게 도움을 베풀어 줄 수도 있었을 것이오. 어머니가 승낙하리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던 데다가, 다른 한편으로 나는 우리가 저마다 그 온전한 자유를 누리기를 바랐으니, 그 자유란 당신이 너무도 너그럽고 아낌없이 희생해 온 것으로, 우리가 몇 주 함께 사는 정도라면 받아들일 만했겠으나 이제 남은 평생을 함께 보내야 하는 마당에는 당신에게나 나에게나 똑같이 끔찍한 것이 되었을 터인데(당신에게 이 글을 쓰면서, 그 일이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다는 것, 그 소식이 그저 한순간 너무 늦게 왔을 뿐이라는 것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아리기까지 하오), 나는 우리 삶을 되도록 서로 독립적인 방식으로 꾸릴 생각이었소. 우선 나는 당신이 요트 한 척을 가지기를 바랐으니, 그것으로 당신은 뱃놀이를 떠날 수 있고, 나는 함께 갈 만큼 건강하지 못한 터라 항구에서 당신을 기다렸을 것이오(당신이 그 안목을 흠모하는 터라, 나는 엘스티르에게 조언을 청하는 편지를 써 두었소). 그리고 뭍에서는 당신이 당신만의 자동차 한 대를, 온전히 당신의 것인 차를 가지기를 바랐으니, 그것으로 당신은 나들이도 하고 마음 내키는 어디로든 다닐 수 있었을 것이오. 요트는 거의 준비가 다 되어 있었소. 당신이 발베크에서 밝힌 바람을 좇아, 그 이름은 le Cygne라 지었소. 그리고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차가 롤스임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는 한 대를 주문해 두었소. 그러나 이제 우리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바에야, 그 배도 그 차도 당신에게 받아 달라고 설득할 가망이 없으니(내게는 아무 쓸모도 없을 것이오), 나는 이렇게 생각했소. 그것들을 대리인을 통해, 그러나 당신 이름으로 주문해 둔 터이니, 어쩌면 당신이 몸소 주문을 취소함으로써, 이제는 필요 없어진 요트와 차의 비용을 내게서 덜어줄 수 있으리라고 말이오. 그러나 이 일도, 그 밖의 여러 일도 의논이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동안은, 물론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한낱 돛단배와 롤스로이스 때문에 다시 만나 당신 삶의 행복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드오. 당신은 그 행복이 나와 떨어져 사는 데 있다고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말이오. 아니오, 나는 차라리 롤스도, 요트마저도 내가 간직하는 편이 낫겠소.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쓰지 않을 것이고 아마도 영영, 하나는 선착장에 해체된 채로, 다른 하나는 차고에 남아 있을 터이니, 나는 요트 위에(맙소사, 제목을 잘못 인용해 당신을 질겁하게 할 불경을 저지를까 두렵소만) 당신이 즐겨 읽던 말라르메의 저 시구를 새겨 넣게 하겠소.
Un cygne d’autrefois se souvient que c’est lui
Magnifique mais qui sans espoir se délivre
Pour n’avoir pas chanté la région où vivre
Quand du stérile hiver a resplendi l’ennui당신도 기억하겠지요, 이렇게 시작하는 그 시 말이오.
Le vierge, le vivace et le bel aujourd’hui …
아, 오늘은 이제 순결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소. 그러나 나처럼, 머지않아 그것을 견딜 만한 “내일”로 만들어 내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정작 그들 자신이 견딜 만한 경우가 드물다오. 롤스로 말하자면, 당신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던 같은 시인의 저 다른 시구가 차라리 어울릴 것이오.
Dis si je ne suis pas joyeux
Tonnerre et rubis aux moyeux
De voir en l’air que ce feu troueAvec des royaumes épars
Comme mourir pourpre la roué
Du seul vespéral de mes chars.“영원히 안녕히, 나의 어린 알베르틴, 그리고 우리가 헤어지기 전날 함께한 그 즐거운 드라이브에 대해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오. 나는 그것을 아주 흐뭇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소.
“P.S. 생루가(그가 투렌에 있다고는 나는 한순간도 믿지 않소) 당신 이모에게 했다는, 당신이 내게 전한 그 이른바 제안들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겠소. 꼭 셜록 홈스 이야기 같구려. 당신은 나를 대체 뭐로 보는 거요?”
아마도, 지난날 내가 알베르틴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소”라고 말한 것이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였고, “나는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잊어버리오”라고 말한 것이 그녀가 자주 나를 보러 오게 하기 위해서였으며, “나는 당신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소”라고 말한 것이 어떤 이별의 생각도 미리 막기 위해서였듯이, 이제 내가 그녀에게 “영원히 안녕히”라고 말한 것은, 그녀가 일주일 안에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내가 굳게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당신을 다시 보는 것은 위험할 것 같소”라고 말한 것은 그녀를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내가 그녀에게 “당신 말이 옳았소, 우리는 함께라면 비참했을 거요”라고 써 보낸 것은 그녀와 떨어져 사는 것이 죽음보다 못하게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아, 이 거짓 편지를, 내가 그녀에게 매달리지 않는 듯 보이려고, 또 그녀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에게만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몇 마디를 하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썼을 때, 나는 처음부터 그것이 부정적인 답장을, 다시 말해 내가 한 말을 그대로 확인해 주는 답장을 불러올 수도 있음을 내다봤어야 했다. 아니, 그것은 십중팔구 그러할 일이었으니, 알베르틴이 실제보다 덜 영리했다 한들,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편지에서 내가 드러낸 속셈을 굳이 따져 보지 않더라도, 설령 생루의 개입이 그에 앞서지 않았다 한들, 내가 그 편지를 썼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내가 그녀의 귀환을 바라고 있음을 그녀에게 증명하고, 나를 점점 더 헤어날 수 없이 옭아매도록 그녀를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그런 다음, 부정적인 답장의 가능성을 내다봤다면, 나는 그 답장이 당장에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을 더없이 강렬하게 되살려 놓으리라는 것 또한 내다봤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편지를 부치기 전에 아직, 만일 알베르틴이 같은 어조로 답하며 돌아오기를 거절할 경우, 내가 내 슬픔을 넉넉히 다스려 억지로라도 잠자코 있을 수 있을지,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전보를 치지 않고, 다른 심부름꾼을 보내지 않을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물었어야 했다. 우리가 다시 만나지 않으리라고 그녀에게 써 보낸 뒤에 그런 짓을 한다면, 내가 그녀 없이는 지낼 수 없음이 훤히 드러나고 말 것이요,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단호하게 거절하기에 이를 것이며, 그러면 나는 단 한순간도 고뇌를 견디지 못하고 그녀를 찾아 내려갈 것이요, 어쩌면 문전박대를 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세 번의 엄청난 실책에 뒤이은, 그 가운데 가장 지독한 실책이 되었을 것이요, 그다음에는 그녀의 집 앞에서 내 목숨을 끊는 것밖에 남는 것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병적인 마음의 세계가 짜여 있는 그 재앙 같은 방식은, 서투른 행동, 우리가 무엇보다 조심스럽게 피했어야 할 그 행동이야말로 바로 우리를 진정시켜 주는 행동이 되도록, 그 결과를 알게 되기 전까지 우리 앞에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 주며 거절이 우리 안에 불러일으킨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잠시나마 덜어 주는 행동이 되도록 정해 놓았다. 그리하여 고통이 너무 날카로울 때면, 우리는 곤두박질치듯 그 실책 속으로 뛰어드니, 곧 편지를 쓰고, 중재할 사람을 보내고, 몸소 찾아가, 우리가 사랑하는 여인 없이는 지낼 수 없음을 증명하는 짓이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을 조금도 내다보지 못했다. 도리어 내 편지의 있음직한 결과란, 알베르틴을 당장 내게로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래서 그 결과를 떠올리며, 나는 그 편지를 쓰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편지를 쓰는 내내 나는 눈물을 흘리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처음에는 얼마간, 내가 이별을 꾸며 연기하던 그날과 마찬가지 까닭에서였다. 그 말들이 내게는 그것들이 표현하는 생각 그대로였던지라, 비록 정반대 방향을 겨냥한 것이었을망정(내 자존심이 내가 사랑에 빠졌음을 인정하기를 허락하지 않아 거짓으로 내뱉은 것이었을망정), 그 말들은 저마다의 슬픔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 생각 속에 한 톨의 진실이 담겨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