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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슬픔과 망각 ③

6권 · 제1장: 슬픔과 망각

생루가 파리에 있음을 알았기에 나는 곧바로 그를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그는 예전 동시에르에서 그랬듯 날쌔고 유능하게 서둘러 나를 구하러 달려왔고, 곧장 투렌으로 떠나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방안을 일러 주었다. 그는 샤텔로행 기차를 타고 가서 봉탕 부인이 사는 곳을 알아낸 뒤, 알베르틴이 그를 알아볼 위험이 있으니 그녀가 집을 나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한데 자네가 말하는 그 처녀가 나를 알기라도 하나?” 하고 그가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이 계획은 나를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채웠다. 그렇지만 그것은 애초의 내 의도, 곧 내가 알베르틴의 귀환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일을 꾸미겠다는 의도와는 정반대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는 불가피하게 그것을 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으나, 이 계획에는 ‘올바른 처신’을 넘어서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이점이 있었다. 곧, 내가 보낸 누군가가 알베르틴을 만나러 가고 필시 그녀를 데리고 돌아오리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만약 처음부터 내 마음을 또렷이 읽을 수 있었더라면, 나는 어둠 속에 숨어 개탄스럽게 느껴지던 바로 이 해결책이, 의지가 모자라 내가 택하기로 한 인내라는 다른 길을 끝내 이기고 말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었으리라. 생루는 한 처녀가 겨우내 나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도 내가 그에게 그녀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이미 조금 놀란 눈치였고, 게다가 그는 발베크에 있던 그 처녀 이야기를 내게 자주 했건만 나는 한 번도 “그런데 그 애가 여기 살고 있다네”라고 답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내 신뢰가 모자란 데 언짢아할 수도 있었다. 봉탕 부인이 그에게 발베크 이야기를 꺼낼 위험은 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출발이, 그가 저편에 도착하는 것이 너무나 조급해서, 그 여행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바라거나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그가 알베르틴을 알아볼 위험으로 말하자면(동시에르에서 그녀와 마주쳤을 때 그는 한사코 그녀를 쳐다보지 않으려 했다), 모두가 인정하듯 그녀는 너무나 달라졌고 살도 많이 쪄서 그럴 성싶지 않았다. 그는 내게 알베르틴의 사진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처음엔 없다고 대답했는데, 발베크에 머물 무렵 찍은 그 사진을 보고, 기차간에서 얼핏 본 것에 지나지 않는 그가 알베르틴을 알아보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내 나는, 그 사진 속의 그녀가 이미, 지금의 살아 있는 알베르틴이 그러하듯 발베크 시절의 알베르틴과는 딴판이라, 그가 사진에서 그녀를 알아보기란 실물에서보다 나을 게 없으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내가 사진을 찾는 동안 그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내 이마에 가만히 손을 얹었다. 그가 내게서 느껴진다고 짐작한 슬픔이 그를 괴롭히고 있다는 데 나는 마음이 뭉클했다. 우선, 라셸과의 파국이 아무리 결정적이었다 해도, 그때 그가 느낀 것은 아직 그리 멀어지지 않은 터라, 그는 이런 종류의 고통에 각별한 공감과 각별한 연민을 지니고 있었으니, 우리는 우리와 같은 병을 앓는 사람에게 한결 가까운 동류 의식을 느끼는 법이다. 게다가 그는 나를 몹시 아꼈던 터라 내가 괴로워한다는 생각을 견디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내 고통의 원인인 그녀를 향해, 감탄이 뒤섞인 원한을 품었다. 그는 나를 대단히 뛰어난 존재로 여겼기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이토록 나를 내맡길 정도라면 그녀는 정말이지 예사롭지 않은 여자임에 틀림없다고 짐작했다. 나는 그가 사진 속 알베르틴을 예쁘다고 여기리라는 것쯤은 익히 예상했으나, 동시에 그것이 그에게 트로이의 원로들이 헬레네를 보고 받은 것 같은 인상을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으므로, 사진을 계속 찾으면서 겸손하게 말했다. “아! 저기, 너무 기대는 말게, 우선 사진이 잘 나오지 못했고, 게다가 놀랄 만한 구석이라곤 없다네. 미인은 아니고, 그저 아주 상냥한 아이일 뿐이야.” “오, 아니야, 분명 굉장한 여자일 거야.” 그는 나를 이토록 절망과 동요에 빠뜨릴 수 있는 사람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 보려 애쓰며, 꾸밈없고 진솔한 열의로 말했다. “자네를 아프게 했으니 그녀에게 화가 나지만, 동시에 자네처럼 손끝까지 예술가인 사람이,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그토록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한 여인에게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 보통 사람보다 더 괴로워하도록 정해져 있었다는 걸 모른 척할 수가 없군.” 마침내 나는 그녀의 사진을 찾아냈다. “분명 굉장한 여자일 거야.” 내가 사진을 내밀고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한 로베르에게서 여전히 그 말이 흘러나왔다. 문득 그가 그것을 발견하고는 잠시 두 손에 받쳐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어리석음에 가까운 아연함이 떠올랐다. “이게 자네가 사랑하는 그 처녀란 말인가?” 이윽고 그가, 나를 화나게 할까 두려워 놀라움을 지운 어조로 말했다. 그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리가 병자 앞에서 짓게 되는, 이치에 맞고 신중하며 어쩔 수 없이 다소 얕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령 그 병자가 지난날 빼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고 우리의 벗이었다 해도, 지금은 전혀 그렇지 못한 채, 광기에 사로잡혀 자기에게 나타났다는 천상의 존재를 우리에게 늘어놓으며, 제정신인 우리 눈에는 침대 위 이불밖에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그 존재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로베르의 아연함을 이내 이해했고, 그것이 그의 정부(情婦)를 보고 내가 빠졌던 바로 그 아연함과 같은 것임을 알았다. 다만 나는 그녀에게서 이미 알던 여자를 알아보았던 반면, 그는 알베르틴을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여긴다는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같은 사람에 대한 우리 각자의 인상 사이의 차이도 필시 그만큼 컸으리라. 발베크에서 내가 알베르틴을 바라보며 시각적 감각에 미각과 후각과 촉각의 감각을 머뭇머뭇 보태기 시작하던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 뒤로 더 깊고 더 감미로우며 더 형언하기 어려운 다른 감각들이 거기에 보태졌고, 그다음엔 고통스러운 감각들이 보태졌다. 요컨대 알베르틴은, 눈이 그 둘레에 쌓인 돌멩이처럼, 내 마음의 평면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구조물의 생성 중심에 지나지 않았다. 이 모든 감각의 지층이 보이지 않는 로베르는, 도리어 그것이 내게는 보이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던 그 잔여물만을 붙들었을 뿐이다. 로베르가 알베르틴의 사진에 눈길이 닿았을 때 그를 당혹게 한 것은, 헬레네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우리의 온갖 불행도 그녀 눈길 한 번만 못하구나”라고 말한 트로이 원로들의 경악이 아니라, “뭐야, 이런 여자 때문에 저토록 안절부절못하고, 저리도 괴로워하고, 그 숱한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정반대의 인상이었다. 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우리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고통을 낳고 삶을 뒤엎으며 때로는 죽음까지 불러온 그 사람을 마주했을 때 이런 종류의 반응은, 트로이 원로들이 느낀 것보다 한없이 더 흔하며, 요컨대 예사로운 일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지 사랑이 개별적이기 때문만도 아니고,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않을 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고 남들의 어리석음을 두고 사변을 늘어놓는 일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기 때문만도 아니다. 아니, 그것은, 사랑이 그런 비참을 낳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 여인의 얼굴과 그 연인의 눈 사이에 끼어든 감각들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눈의 외투가 샘을 감추듯 그것을 감싸 숨기는 그 거대한 고통의 알이, 이미 너무 높이 솟아올라 있어서, 연인의 시선이 가 닿는 지점, 그가 제 기쁨과 제 고통을 발견하는 그 지점이, 남들이 보는 지점으로부터, 마치 하늘에서 응축된 빛으로 우리가 보게 되는 그 자리로부터 진짜 태양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과 똑같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동안, 사랑받는 대상의 가장 고약한 변모를 연인에게 보이지 않게 하는 슬픔과 애정의 번데기 아래에서, 그녀의 얼굴은 늙어 가고 변해 갈 시간을 얻는다. 그리하여 연인이 처음에 본 얼굴이 그가 사랑에 빠져 괴로움을 겪은 뒤로 본 얼굴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반대 방향으로, 이제 무심한 구경꾼의 눈에 비칠 얼굴로부터도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만약 로베르가 아직 처녀이던 사람의 사진 대신 나이 든 정부의 사진을 보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그리고 실로 이런 놀라움을 느끼기 위해 그토록 큰 격변을 일으킨 여인을 처음 보아야 할 필요조차 없다. 흔히 우리는, 내 외종조부가 오데트를 알던 것처럼, 그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럴 때 그 광학적 차이는 육체의 겉모습에만이 아니라 성격에까지, 그 사람의 개별적 무게에까지 미친다. 자기에게 반한 남자를 괴롭히는 여자가, 정작 자기에게 관심 없던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미 나무랄 데 없이 처신했을 공산이 크다. 스완에게 그토록 잔인했던 오데트가 내 외종조부에게는 살뜰한 ‘분홍빛 옷을 입은 부인’이었듯이 말이다. 혹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가 마치 신의 결정을 대하듯 두려움에 차서 미리 그 하나하나를 헤아리는 그런 여자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의 눈에는 아무 대수롭지 않은, 그가 시키는 것이면 무엇이든 기꺼이 하려 드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생루의 정부가, 그토록 여러 번 내게 소개되던 그 ‘라셸, 주님 곁에서 오실 때’ 이상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게 내 눈에 비쳤던 것처럼. 생루와 함께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런 여자가 무엇을 했는지 몰라 애태우고, 그녀가 어떤 다른 남자에게 귀엣말로 무슨 말을 했을까, 어째서 그녀가 파국을 원했을까 알고 싶어 좀이 쑤신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가능하다는 생각에 내가 얼마나 아연했던지를 나는 떠올렸다. 그리고 이 모든 지난 삶이, 이 경우엔 알베르틴의 지난 삶이, 내 심장과 내 삶의 온 섬유가 두근거리는 서투른 고통으로 향해 있는 그 삶이, 생루에게는, 언젠가는 어쩌면 내게도 그러할 만큼이나, 하찮게 비치리라는 것을 나는 느꼈다. 알베르틴의 과거가 하찮으냐 중대하냐에 관한 한,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마음 상태에서 어쩌면 차츰 생루의 마음 상태로 옮겨 가리라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생루가 무엇을 생각할지에 대해, 연인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구라도 무엇을 생각할지에 대해 나는 아무런 환상도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지나치게 괴로워하지는 않았다. 예쁜 여자들은 상상력 없는 남자들에게 넘겨 주자. 나는 우리 가운데 그토록 많은 이들에 대한 저 비극적 해명, 영감은 넘치되 실물과는 닮지 않은 초상이 안겨 주는 그 해명을 떠올렸다. 엘스티르가 그린 오데트의 초상 같은 것, 정부(情婦)의 초상이라기보다 그녀를 향한 우리의 타락한 사랑의 초상 말이다. 다만 그토록 많은 초상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 곧 화가가 위대한 예술가인 동시에 연인이었어야 한다는 것만이 거기 빠져 있었다(하기야 엘스티르도 오데트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고들 했다). 이 어긋남은, 연인의 삶 전체가, 그 어리석은 짓거리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그 연인의 삶 전체가, 스완이라는 한 인간의 삶 전체가 입증해 준다. 그러나 연인이 엘스티르 같은 화가 안에 구현되게 하라, 그러면 우리는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얻고, 마침내 우리 눈앞에, 뭇사람은 한 번도 알아채지 못한 그 입술, 아무도 본 적 없는 그 코, 짐작조차 못 한 그 자태를 두게 된다. 그 초상은 말한다. “내가 사랑한 것, 나를 괴롭게 한 것, 내가 바라보기를 한시도 멈추지 않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거꾸로 된 체조로, 라셸에게 생루가 자기 자신에게서 덧붙인 모든 것을 마음속으로 애써 보태 보았던 나는, 이번엔 알베르틴의 구성에서 내 마음과 정신이 떠받쳐 준 것을 덜어 내고, 라셸이 내게 비쳤던 것처럼 그녀가 생루에게 비칠 그대로의 모습을 스스로에게 그려 보려 했다. 그런 차이들을, 설령 우리 스스로 알아챈다 한들, 우리가 거기에 무슨 중요성을 두겠는가? 발베크의 여름에 알베르틴이 앵카르빌의 아케이드 아래에서 나를 기다렸다가 내 마차로 뛰어들곤 하던 무렵, 그녀는 살이 붙기는커녕 지나친 운동 탓에 도리어 야위기 시작하고 있었다. 야위고, 못생긴 코의 끝만 겨우 드러내는 못생긴 모자 때문에 더 볼품없어진 데다, 옆에서 보면 흰 민달팽이 같은 창백한 뺨을 한 그녀를, 나는 거의 알아보지 못했으나, 그래도 그녀가 마차로 뛰어들 때 그것이 그녀임을, 그녀가 약속을 어기지 않고 제때 나와 다른 데로 새지 않았음을 알아볼 만큼은 되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과거에 있고,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 속에 너무나 깃들어 있어서, 우리는 여자의 전부를 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그것이 그녀임을, 그녀의 정체를 잘못 보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을 뿐인데, 이는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다. 그녀의 뺨이 홀쭉해지고 몸이 야위어도, 세상 앞에서 아름다움을 지배한다는 데 애초에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던 이들에게조차, 그 자그마한 코끝, 한 여자의 변함없는 인격이 응축된 그 표지, 그 대수(代數)의 공식, 그 상수(常數)만으로도, 최상류 사교계에서 떠받들리며 그녀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단 하루 저녁도 자유롭지 못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는 그 저녁마다, 잠자리에 들 시간이 될 때까지 사랑하는 여인의 머리칼을 빗기고 매만지거나, 그저 그녀 곁에 머무는 데, 그리하여 그가 그녀와, 혹은 그녀가 그와 함께 있도록, 아니 그저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도록 하는 데 그 저녁을 다 쓰기 때문이다.

“정말인가?” 로베르가 내게 물었다. “내가 대뜸 이 여자한테 남편 선거구를 위해 삼만 프랑을 내주겠다고 해도 되겠어? 그 여자가 그렇게까지 파렴치해? 자네 과장하는 거 아니고, 정말 삼천 프랑으론 어림없겠나?” “아니, 제발 부탁이니 내게 이토록 중요한 일을 두고 아끼려 들지 말게. 자네가 그 여자에게 할 말은 이거야(그리고 이건 어느 정도 사실이라네). ‘제 친구가 약혼하려던 처녀의 삼촌 선거 비용으로 친척에게서 이 삼만 프랑을 빌렸습니다. 이 약혼 때문에 그 돈이 주어진 거지요. 그리고 알베르틴이 그 일을 전혀 모르게끔 저더러 부인께 전해 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베르틴이 그를 떠나 버렸어요. 그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알베르틴과 결혼하지 않으면 삼만 프랑을 갚아야 하고요. 또 그녀와 결혼할 거라면, 체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녀가 곧바로 돌아와야 합니다. 오래 떠나 있으면 남 보기에 너무 안 좋을 테니까요.’ 자네, 내가 이걸 다 지어냈다고 생각하나?” “전혀 아니야.” 생루가 나를 생각해서, 조심스러워서, 또 진실이 흔히 허구보다 더 기이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확언해 주었다. 결국, 이 삼만 프랑 이야기 속에, 내가 그에게 말했듯 사실의 큰 몫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었으나 사실은 아니었고, 이 사실이라는 요소는 실은 거짓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로베르와 나는, 한 친구가 절망적인 사랑에 빠진 다른 친구를 진심으로 도우려 할 때의 온갖 대화가 그러하듯,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조언자요 버팀목이요 위로자가 되어 주는 친구는 상대의 괴로움을 딱히 여길 수는 있어도 그것을 나눌 수는 없으며, 그가 상대에게 다정할수록 그만큼 더 거짓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편은 도움을 얻어 내는 데 필요한 만큼만 그에게 털어놓되, 어쩌면 바로 그 도움을 얻어 내기 위해 많은 것을 그에게 숨긴다. 그리고 둘 중 행복한 쪽은, 뭐니 뭐니 해도, 수고를 맡고 여행을 떠나고 임무를 수행하되 마음속에 아무런 고뇌도 느끼지 않는 이다. 나는 이 순간, 라셸이 자기를 버렸다고 여기던 때의 동시에르에서의 로베르와 같은 처지였다. “좋아, 자네 좋을 대로 하지. 내가 면박을 당한다 해도, 자네를 위해서라면 그 무안쯤은 미리 받아들이겠네. 설령 이렇게 대놓고 흥정을 하는 게 좀 이상해 보인다 해도, 우리 축에는 아무리 고상한 척하는 공작부인이라도 삼만 프랑을 내밀면 조카딸더러 투렌에 눌러 있지 말라 이르는 것쯤보다 훨씬 어려운 일도 해치울 이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나는 알아. 아무튼 자네에게 도움이 된다니 두 배로 기쁘군, 그래야만 자네가 나를 만나 주기라도 할 테니 말이야. 내가 결혼하면,” 하고 그가 이었다, “우리 좀 더 자주 볼 수 있지 않겠나, 내 집을 자네 집처럼 여겨 주지 않겠나…” 그가 문득 말을 멈추었으니, (그때 내가 짐작하기로는) 만약 나 또한 결혼한다면 제 아내가 알베르틴과 친밀한 벗이 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캉브르메르 사람들이 그가 게르망트 대공의 조카딸과 결혼할 법하다고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시간표를 살펴보더니 저녁이 되어서야 파리를 떠날 수 있음을 알았다. 프랑수아즈가 물었다. “알베르틴 의 침대를 서재에서 빼낼까요?” “아니, 그냥 두게.” 하고 나는 말했다. “그녀를 위해 모든 걸 그대로 준비해 두어야 하네.” 나는 그녀가 아무 날에라도 돌아오기를 바랐고, 그녀의 귀환에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고 프랑수아즈가 여기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알베르틴의 떠남은 우리 둘 사이에 미리 정해진 일처럼 보여야 했고, 그녀가 예전보다 나를 덜 사랑한다는 뜻으로는 조금도 비쳐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프랑수아즈는, 못 믿겠다는 낯빛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미심쩍어하는 낯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 역시 나름의 다른 가설들을 품고 있었다. 콧구멍이 벌름거렸고, 그녀는 다툼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 오래전부터 그 낌새를 공기 중에서 느껴 왔음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것을 완전히 확신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어쩌면 나처럼, 자기에게 너무 큰 기쁨을 안겨 줄 일을 무조건 믿기를 주저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이 일의 짐은 더 이상 잔뜩 지친 내 마음이 아니라 생루에게 얹혀 있었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만으로, “나는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나는 행동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주 홀가분해졌다. 생루가 미처 기차에 오르기도 전이었을 무렵, 나는 현관에서 블로크와 마주쳤는데, 그가 초인종 누르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던 터라 하는 수 없이 그를 잠시 붙들어 두어야 했다. 그는 최근 알베르틴(발베크에서 알던 사이였다)이 언짢은 기분이던 어느 날 그녀와 함께 있는 나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봉탕 를 저녁 자리에서 만났는데,” 하고 그가 내게 말했다, “내가 그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으니, 조카딸이 자네에게 좀 더 상냥하게 굴지 않아 유감이라고, 그 점을 두고 그가 그녀에게 간곡히 당부해야 한다고 말해 두었네.” 나는 분노로 끓어올랐다. 이 간청, 이 동정이 생루가 개입한 효과 전부를 무너뜨리고, 이제 내가 돌아와 달라고 애원하는 꼴이 되어 버린 알베르틴 그녀와 나를 곧바로 맞닿게 했으니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현관에서 서성이던 프랑수아즈가 한마디도 빠짐없이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상상할 수 있는 온갖 비난을 블로크에게 퍼부으며, 나는 그에게 그런 짓을 할 권한을 준 적이 결코 없고, 게다가 그 모든 게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블로크는 그 순간부터, 내 짐작으로는 기쁨에서라기보다 나를 화나게 했다는 겸연쩍음에서, 줄곧 미소를 지었다. 그는 웃으며 자기가 이런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는 데 놀라움을 표했다. 어쩌면 그는 자기의 경솔한 개입이 지닌 중요성을 내 마음속에서 줄여 보려는 바람에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가 겁 많은 천성이라 바닷물 위에 해파리가 떠다니듯 거짓의 대기 속에서 즐겁고 게으르게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며, 어쩌면 그가 다른 인종에 속하지 않았더라도, 남들이란 결코 우리의 처지에 서 보지 못하는 법이라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이 우리에게 끼칠 수 있는 해악의 크기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가 저지른 해악을 어찌 바로잡을지 아무 방도도 떠올리지 못한 채 그를 겨우 배웅해 내보내자마자, 다시 초인종이 울리고 프랑수아즈가 치안국장의 출두 명령서를 내게 가져왔다. 내가 한 시간 동안 집에 데려왔던 어린 소녀의 부모가, 미성년자를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나를 고발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삶에는, 바그너의 라이트모티프처럼 서로 뒤엉킨 채 우리를 덮쳐 오는 갖가지 곤경의 다중성으로 인해 일종의 아름다움이 빚어지는 순간들이 있다. 또한 그때 떠오르는 생각, 곧 사건들이란 정신이 제 앞에 들고 있는, 미래라 불리는 저 초라하고 작은 거울에 비친 상념들의 내용 안에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바깥에 있으며, 우리를 어떤 죄로 고발하러 오는 사람처럼 느닷없이 솟아오른다는 생각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이 빚어진다. 제 홀로 내버려 두어도 사건은, 좌절이 그것을 우리에게 부풀리든 만족이 그것을 줄이든, 변형된다. 그러나 사건이 홀로 오는 일은 드물다. 저마다의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은 서로 모순되며, 어느 정도까지는, 치안국장에게로 가는 길에 내가 느꼈듯, 적어도 한순간의 뒤집힘이 찾아드는데, 그것은 두려움 못지않게 감상적 비참을 자아낸다. 치안국에서 나는 그 소녀의 부모를 보았고, 그들은 “우리는 이따위 빵은 먹지 않소”라고 말하며 나를 모욕하고는, 내가 받기를 마다한 오백 프랑을 도로 내밀었으며, 또 치안국장은, 재판정 특유의 재치 있는 응수라는 흉내 낼 수 없는 본보기를 스스로 세우며, 내가 내뱉는 문장마다 한 단어씩 붙들어 그것을 재치 있고 통렬한 반박거리로 삼았다. 내가 그 혐의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무죄는 결코 고려되지 않았으니, 그것이야말로 아무도 한순간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유일한 가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유죄 판결의 어려움 덕분에 나는, 부모가 방에 있는 동안 지극히 격렬한 훈계만 듣고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나가자마자, 어린 소녀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치안국장은 어조를 바꾸어 사내 대 사내로서 나를 타일렀다. “다음번엔 좀 더 조심해야 하네. 이런, 그렇게 쉽게 애들을 주워 오다간 큰코다쳐. 하여간, 저 애보다 나은 애들이야 얼마든지, 그것도 훨씬 싼값에 찾을 수 있어. 참으로 터무니없이 많이 치른 값이었네.” 내가 진실을 말하려 한들 그가 나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절감한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가 허락한 대로 물러났다. 무사히 집에 이를 때까지, 지나치는 사람마다 내 행실을 감시하라고 배치된 형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라이트모티프도, 블로크에 대한 내 분노의 그것처럼 잦아들며, 알베르틴의 떠남이라는 라이트모티프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그 자리를 차지했으되, 이제 생루가 출발했으니 거의 즐거운 가락으로였다. 그가 봉탕 부인을 만나러 가겠다고 나선 이상, 내 고통은 걷혔다. 나는 그것이 내가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으니, 우리는 우리가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하는 법이다. 정말로 나를 행복하게 한 것은, 내가 짐작하던 대로 우유부단의 짐을 생루에게 넘겼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전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었다. 불행한 사건(그리고 네 사건 중 셋은 불행한 사건이다)에 대한 특효약은 하나의 결정이니, 그 효과란, 우리 생각을 문득 뒤집어, 지난 사건에서 비롯되어 그 진동을 이어 가는 생각들의 흐름을 끊고, 바깥에서, 미래에서 온 상반된 생각들의 상반된 흐름으로 그 흐름을 깨뜨리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생각들이 우리에게 가장 이로운 것은, (지금 이 순간 나를 덮친 생각들이 바로 그러했듯) 그 미래의 한복판에서 그것들이 우리에게 하나의 희망을 가져다줄 때이다. 정말로 나를 그토록 행복하게 한 것은, 생루의 임무가 실패할 리 없고 알베르틴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은밀한 확신이었다. 나는 이것을 깨달았으니, 이튿날 생루에게서 아무런 답도 받지 못하자 나는 다시 괴로워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결정, 곧 그에게 행동의 전권을 넘긴 것이 내 기쁨의 원인이었다면 그 기쁨은 이어졌어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원인은, 내가 “어찌 되든”이라고 말할 때 내 마음속에 있던 “성공은 확실하다”였다. 그리고 그의 지체가 불러일으킨 생각, 곧 결국 그의 임무가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어찌나 밉살스러웠던지 나는 유쾌함을 잃고 말았다. 실은 우리를 기쁨으로 채우는 것은 행복한 사건에 대한 우리의 예상, 우리의 희망이며, 우리는 그 기쁨을 다른 원인들 탓으로 돌리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더는 확신하지 못하게 되면 그 기쁨은 그쳐 우리를 다시 비참 속으로 떨어뜨린다. 우리 감각 세계의 건물을 떠받치는 것은 언제나 이 보이지 않는 믿음이며, 그것을 빼앗기면 그 건물은 밑바탕부터 흔들린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의 값어치나 하찮음을, 그들을 보는 우리의 설렘이나 지루함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이미 보아 왔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어떤 슬픔을 그것이 이내 끝나리라 확신하는 까닭에 사소하게 여기며 견뎌 낼 가능성을, 아니면 그 슬픔이 별안간 부풀어 어떤 한 사람의 존재가 우리 삶 자체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해지는 사태를 똑같이 만들어 낸다. 그렇지만 한 가지가, 내 가슴앓이를 첫 순간만큼이나 예리하게 (그리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거니와,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던 것을) 되살려 놓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내가 알베르틴의 편지 한 대목을 다시 읽었을 때였다.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 그들을 잃는 아픔은, 우리가 홀로 고립되어 그것과 단둘이 맞설 때, 우리 정신이 어느 정도까지는 제 마음대로 형태를 부여하는 그 아픔은, 견딜 만하며, 저 다른 아픔과는 다르다. 덜 인간적이고 덜 우리 자신의 것인 그 다른 아픔은, 도덕 세계의, 우리 마음의 영역의 사고(事故)처럼 예기치 못하고 유별난 것으로, 사람들 자체보다는 우리가 그들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게 된 방식에서 비롯한다. 알베르틴을, 나는 어젯밤 그녀를 보았듯 오늘 저녁엔 다시 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부드러운 눈물과 더불어 떠올릴 수는 있었으나, 다시 “내 결심은 돌이킬 수 없다”라는 대목을 읽었을 때, 그것은 또 다른 문제였으니, 그것은 살아남지 못할 심장 발작을 일으킬 수도 있는 위험한 약을 삼키는 것과 같았다. 무생물 속에, 사건 속에, 작별 편지 속에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안겨 줄 수 있는 슬픔의 본성을 부풀리고 심지어 바꾸어 놓기까지 하는 특별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이 아픔은 오래가지 않았다. 뭐니 뭐니 해도 나는 생루의 수완을, 그의 종국적 성공을 어찌나 확신했던지, 알베르틴의 귀환이 하도 확실하게 여겨져, 내가 그것을 바랄 무슨 이유라도 있었던가 스스로 자문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생각에 기뻐했다. 불행히도, 치안국과의 일이 다 끝났다고 여기던 내게, 프랑수아즈가 들어와 이르기를, 한 형사가 찾아와 내가 집에 여자애들을 들이는 버릇이 있는지 캐물었고, 문지기는 그가 알베르틴을 두고 하는 말이려니 여겨 그렇다고 대답했으며, 그 순간부터 집이 감시받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나는 결코, 내 슬픔을 달래려 어린 소녀 하나를 집에 데려올 수 없게 되었으니, 형사가 느닷없이 들이닥쳐 그 애의 눈앞에서 내가 망신당하고, 그 애가 나를 범죄자로 여길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는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나는,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얼마나 더 우리가 어떤 관념들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깨달았다. 어린 소녀 하나를 다시는 무릎에 앉힐 수 없다는 이 불가능이 내 삶의 모든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인데, 게다가 나는 사람들이 어찌하여 선뜻 재물을 마다하고 제 목숨을 걸기까지 하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는 금전적 이해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상상하는데도 말이다. 왜냐하면 생판 낯선 어린 소녀 하나조차 경관이 들이닥침으로써 나에 대해 나쁜 인상을 품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더 선뜻 자살이라도 했을 것인가. 그러나 이 두 가지 고통의 정도 사이에는 견줄 만한 구석이라곤 없었다. 그런데 일상에서 우리는, 우리가 돈을 내미는, 죽이겠다고 위협하는 그 사람들에게도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정부나 그저 친구가, 아니 그들 자신의 자존심은 말할 것도 없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결코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문득, 나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혼동으로(실은 알베르틴이 성년이어서 내 지붕 아래 살고 나의 정부가 되기까지도 자유롭다는 것을 나는 떠올리지 못했다), 미성년자 타락이라는 죄목에 알베르틴까지 포함될 수 있을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자 내 삶이 사방에서 옥죄이는 듯했다. 그리고 내가 그녀와 순결하게 지내지 않았음을 떠올렸을 때, 낯선 어린 소녀에게 돈을 받게 강요한 죄로 내게 내려진 벌 속에서 나는, 인간의 처벌에 거의 언제나 존재하는 저 관계를 발견했다. 그 관계의 효과란, 공정한 판결도 오심(誤審)도 좀처럼 있을 수 없고, 다만 재판관이 무고한 행위에 대해 품는 그릇된 관념과 그가 알지 못하는 죄지은 행위들 사이의 일종의 타협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알베르틴의 귀환이 나를, 그녀의 눈에 나를 깎아내리고 어쩌면 그녀에게도, 그녀가 내게 용서치 못할 손해를 끼칠 판결의 추문에 휘말리게 할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이상 그녀의 귀환을 고대하지 않게 되었고, 그것이 나를 겁나게 했다. 나는 그녀에게 돌아오지 말라고 전보를 치고 싶었다. 그런데 곧바로, 다른 모든 것을 잠겨 버리게 하며, 그녀의 귀환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나를 압도했다. 실은, 그녀에게 돌아오지 말라 이르고 그녀 없이 살아갈 가능성을 한순간 헤아려 보았던 터라, 나는 문득 도리어, 알베르틴이 돌아오기만 한다면 온갖 여행도, 온갖 즐거움도, 온갖 일도 다 버릴 채비가 되어 있음을 느꼈다! 아, 내가 그 향방을 앞서 그려 볼 수 있으리라 여겼던, 질베르트를 향한 지난날의 사랑에 견주어 짐작했던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이, 어찌 이토록 정반대의 방향으로 뻗어 나갔던가! 그녀를 보지 못하고 산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불가능했던가! 그리고 내 모든 행동은, 아무리 하찮은 것일지라도, 예전엔 죄다 알베르틴의 현존이라는 더없이 행복한 대기 속에 잠겨 있던 것이라, 나는 다시 한 번, 새로운 기운을 쏟아, 똑같은 슬픔과 더불어, 이별의 수습(修習)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다 다른 삶의 형태들의 경쟁이 이 마지막 슬픔을 뒷전으로 밀어냈고, 봄의 첫 나날이던 그 며칠 동안 나는, 생루가 봉탕 부인을 만나기를 기다리는 사이, 베네치아를, 그리고 아름답고 낯선 여인들을 그려 보는 데서 잠깐의 흐뭇한 평온을 맛보기까지 했다. 이것을 의식하자마자, 나는 내 안에서 공황의 두려움을 느꼈다. 방금 내가 누린 이 평온은, 내 안에서 슬픔에 맞서, 사랑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끝내 승리하고야 말 저 거대한 이따금의 힘의 첫 출현이었다. 방금 내가 그 맛보기를 겪고 그 경고를 받은 이 상태는, 잠시뿐이었으나, 다가올 날에 나의 항구적 상태가 될 것이었으니, 그것은 내가 더 이상 알베르틴 때문에 괴로워할 수 없고,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될 삶이었다. 그리고 방금 자기를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적, 곧 망각을 보고 알아차린 내 사랑은, 갇혀 있던 우리 안에서 자기를 삼키려 다가오는 비단뱀을 문득 발견한 사자처럼 떨기 시작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