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따금 신문에 관심을 가져보려 했다. 그러나 신문을 읽는 행위 자체가 역겨웠고, 더욱이 그것은 나 자신에게 위험이 없지도 않았다. 실은 우리의 관념 하나하나에서, 마치 숲속의 빈터에서처럼 그토록 많은 길이 갈래갈래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어서, 내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나는 새로운 기억과 맞닥뜨리곤 했다. 포레의 가곡 “르 스크레”라는 제목은 나를 브로이 공작의 왕의 비밀로 이끌었고, 브로이라는 이름은 쇼몽이라는 이름으로 이끌었으며, 그렇지 않으면 “성금요일”이라는 말은 나를 골고다로, 골고다는 그 낱말의 어원으로 데려갔으니, 그 어원은 Calvus Mons, 곧 쇼몽에 해당하는 듯했다. 그러나 어떤 길을 거쳐 쇼몽에 이르렀든, 그 순간 나는 너무나 격렬한 충격을 받아 오직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나를 지킬까만을 생각할 수 있었다. 충격이 있고 얼마 뒤, 천둥소리처럼 더디게 전해지는 내 지성이 그 이유를 내게 일러주었다. 쇼몽은 나로 하여금 뷔트쇼몽을 떠올리게 했으니, 봉탕 부인은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함께 그곳에 자주 가곤 했다고 내게 말했으나, 알베르틴은 뷔트쇼몽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내게 말했던 것이다. 어느 나이가 지나면 우리의 기억들은 서로 너무나 얽혀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이나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은 거의 아무 중요성도 없어진다. 우리는 어디에나 자기 자신의 무언가를 심어두었으니, 모든 것이 풍요롭고 모든 것이 위험하며, 우리는 파스칼의 팡세에서만큼이나 값진 발견을 비누 광고에서도 해낼 수 있다.
물론 당시에는 하찮게 여겨졌던 이 뷔트쇼몽 같은 삽화는, 그 자체로 보면 목욕탕 여자나 세탁부의 이야기보다 알베르틴에게 불리한 훨씬 덜 심각하고 훨씬 덜 결정적인 증거였다. 그러나 우선, 우연히 우리에게 찾아오는 기억은 우리 안에서 온전한 상상의 능력, 곧 이 경우에는 괴로워하는 능력을 발견하는데, 반대로 우리 자신이 어떤 기억을 되살리려 일부러 마음을 쏟을 때에는 그 능력을 얼마간 소진해버린 터이다. 그리고 이 뒤엣것의 기억들(목욕탕 여자와 세탁부에 관한 기억들), 내 의식 속에 흐릿해진 채로나마 늘 자리하고 있던 그 기억들, 마치 어스름한 화랑에 놓여 있어 보이지는 않아도 지나가며 부딪히지 않으려 피하게 되는 가구 같은 그 기억들에는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반대로 나는 오래도록 뷔트쇼몽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고, 또 다른 예를 들자면 발베크 카지노의 거울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알베르틴의 모습이나, 게르망트가의 야회 뒤 내가 그토록 오래 그녀를 기다리던 저녁 그녀의 까닭 모를 지체를, 내 마음 밖에 남아 있던 그녀 삶의 그 어떤 부분들도 떠올려본 적이 없었으니, 나는 그것들을 알고 싶었고, 그리하여 그것들이 내 마음에 동화되고 병합되어, 내 마음속에 내면적이고 참으로 소유된 알베르틴을 이루던 더 즐거운 기억들과 하나로 이어지기를 바랐던 것이다. 내가 습관이라는 무거운 장막의 한 귀퉁이를 들어 올릴 때면(그 얼빠지게 하는 습관은 우리 삶이 흘러가는 내내 우리에게서 거의 온 우주를 감추고, 한밤중에는 딱지를 바꾸지도 않은 채 삶의 가장 위험하거나 도취시키는 독약 대신 아무런 기쁨도 주지 않는 어떤 진정제를 슬쩍 갈아 끼워놓는다), 그러한 기억은 마치 그 삽화가 일어났던 그날처럼, 되돌아오는 계절의, 우리 일상 시간의 어떤 변화의, 그 싱그럽고 찌르는 듯한 새로움을 띠고 내게 되돌아왔으니, 쾌락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봄날 첫 화창한 날에 마차에 오르거나 해 뜰 무렵 집을 나설 때면, 그 새로움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하찮은 행동들을 맑은 고양감으로 바라보게 하여 그 강렬한 한순간을 앞선 여러 날의 총합보다 더 값지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다시금 게르망트 대공비의 야회에서 나와 알베르틴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지나간 나날들은 그에 앞선 나날들을 조금씩 뒤덮고, 자신들 또한 뒤이어 오는 나날들 아래 묻힌다. 그러나 지나간 하루하루는 우리 안에 쌓여 남아 있으니, 마치 더 오래된 책들이 꽂힌 거대한 도서관에서 필경 아무도 다시는 찾지 않을 한 권의 책처럼. 그렇지만 지나간 이 하루가 뒤이은 시대들의 맑음을 뚫고 표면으로 떠올라 우리를 온통 뒤덮으며 그 위에 스스로를 펼친다면, 그때 한순간 이름들은 예전의 뜻을 되찾고, 사람들은 예전의 모습을, 우리 자신은 그 무렵의 심경을 되찾으며, 우리는 견딜 만하고 오래가지도 않을 어렴풋한 괴로움과 더불어, 오래전에 풀 수 없게 되었으나 그 무렵 우리에게 그토록 큰 고뇌를 안기던 문제들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는 잇따르는 상태들의 겹쳐 쌓임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겹쳐 쌓임은 산의 지층처럼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융기가 오래된 퇴적물을 표면으로 밀어 올린다. 나는 게르망트 대공비의 야회 뒤와 똑같은 모습으로, 알베르틴이 오기를 기다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날 저녁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녀는 내게 부정을 저질렀을까? 누구와? 에메의 폭로는, 설령 내가 그것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 뜻밖의 물음이 지닌 불안하고 절망적인 관심을 조금도 덜어주지 못했으니, 마치 저마다 다른 알베르틴이, 저마다 새로운 기억이 질투의 특별한 문제 하나씩을 던지고, 거기에는 다른 문제들의 해답이 적용될 수 없기라도 한 듯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그날 저녁을 어떤 여자와 보냈는지뿐 아니라, 그 행위가 그녀에게 어떤 특별한 쾌락을 뜻했는지, 그 순간 그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를 알고 싶었다. 이따금 발베크에서 프랑수아즈가 그녀를 데리러 갔다가, 그녀가 창밖으로 몸을 내민 채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기라도 하듯 불안하게 무언가를 찾는 기색으로 있더라고 내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기다리던 처녀가 앙드레였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다고 치면, 알베르틴이 그녀를 기다리던 그 심경, 불안하게 무언가를 찾는 그 시선 뒤에 감춰진 그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 성향은 알베르틴에게 어떤 중요성을 지녔을까? 그것은 그녀의 생각 속에서 얼마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까? 아, 나를 끌어당기는 처녀를 언뜻 볼 때마다, 때로는 보지도 못한 채 그저 그런 처녀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때에도 느끼던 내 자신의 동요, 최대한 멋있게 보이려, 온갖 유리함을 누리려 애쓰던 그 조바심, 식은땀을 떠올릴 때면, 나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나는 그저 알베르틴 안에도 똑같은 관능적 감정이 있었으리라 상상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리고 이 다른 것에 견주면 스탕달과 빅토르 위고에 관해 그녀가 나와 나누던 진지한 대화 따위는 그녀에게 거의 무게가 없었으리라고 되뇌기만 해도, 그녀의 마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 내 마음에서 떨어져 나가 다른 곳에 몸을 이루는 것을 느끼기만 해도, 나를 괴롭히기에 이미 충분했다. 그러나 이 욕망이 그녀에게 지녔을 중요성도, 그녀가 그것을 에워싼 신중함도, 그것이 질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하물며 그녀가 혼잣말로 그것을 이야기할 때 어떻게 규정했는지를 내게 밝혀주지는 못했다. 육체의 고통에서는 적어도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아픔을 고르지는 않는다. 병이 그것을 정해 우리에게 부과한다. 그러나 질투에서는 우리가 어느 정도 온갖 종류와 정도의 고통을 시험 삼아 겪어보고 나서야 걸맞아 보이는 하나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던 여인이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 우리는 그녀에게 줄 수 없는 감각을 주는 사람들, 혹은 적어도 그 생김새와 모습과 몸짓으로 그녀에게 우리 아닌 그 무엇을 나타내는 사람들과 더불어 쾌락을 찾고 있다고 느끼는 그런 고통이 문제일 때, 무엇이 이보다 더 어려울 수 있겠는가. 아! 알베르틴이 생루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했더라면! 내 생각에 나는 얼마나 덜 괴로웠을 것인가! 우리가 이웃 하나하나의 독특한 감수성을 알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나, 대개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니, 남들의 이 감수성은 우리를 무덤덤하게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에 관한 한 내 비참이나 행복은 이 감수성의 본질에 달려 있었을 터인데, 나는 그것이 내게 알려지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이 내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슬픔이었다. 알베르틴이 느끼던 그 알 수 없는 욕망과 쾌락, 알베르틴이 죽고 얼마 뒤 앙드레가 나를 찾아왔을 때 내가 그것들을 목도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졌던 그 욕망과 쾌락이 말이다.
처음으로 그녀가 내게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그녀의 거의 양털 같은 머리카락, 그늘진 검은 눈이 필경 알베르틴이 그토록 애틋이 사랑하던 것이며, 알베르틴이 사랑의 꿈속에 데리고 다니던 것, 그토록 돌연 발베크를 떠나기로 마음먹던 날 욕망의 예언자 같은 눈으로 바라보던 것이 내 눈앞에 물질로 나타난 것이라고 혼잣말했다.
무덤 너머로부터, 내가 그것을 발견해내지 못했던 한 사람의 가장 깊은 존재로부터 내게 건네진 낯설고 어두운 꽃처럼, 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유물의 뜻밖의 발굴을, 앙드레가 내게 그러했던 알베르틴의 육화된 욕망을 눈앞에 보는 듯했으니, 마치 베누스가 유피테르의 욕망이었던 것과도 같았다. 앙드레는 알베르틴을 애석해했으나, 나는 그녀가 알베르틴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내 느꼈다. 죽음에 의해 벗에게서 강제로 떼어내진 그녀는, 알베르틴이 살아 있는 동안이라면 내가 감히 그녀에게 청하지 못했을 최후의 이별을 쉽사리 받아들인 듯했으니, 앙드레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할까 봐 그토록 두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히려 이 단념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듯했으나, 하필 그것이 내게 더는 아무런 이득도 될 수 없는 순간에 그러했다. 앙드레는 알베르틴을 내게 넘겨주었으나, 이미 죽은 알베르틴을, 게다가 그녀가 내게 목숨뿐 아니라 소급하여 얼마간의 현실성마저 잃어버렸을 때 그리했으니, 다른 처녀들로 알베르틴을 대신할 수 있었던 앙드레에게 알베르틴이 없어서는 안 될, 둘도 없는 존재가 아니었음을 내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이 살아 있는 동안이라면, 나는 감히 앙드레에게 그들 서로 간의, 또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와의 우정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속내를 털어놓아달라고 청하지 못했을 터인데, 앙드레가 내 말을 죄다 알베르틴에게 되옮기지 않는다고 결코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물음은, 설령 헛일로 끝날지언정 적어도 위험을 동반하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앙드레에게 묻는 투가 아니라, 앙드레 자신이 여자들에게 품은 애호와 뱅퇴유 양의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아마도 알베르틴에게서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는 조금도 꺼리는 기색 없이, 말하면서 미소까지 지으며 모든 것을 인정했다. 이 고백에서 나는 가장 고통스러운 결론을 끌어낼 수도 있었으니, 우선 발베크에서 여러 젊은 남자에게 그토록 다정하고 교태를 부리던 앙드레가, 이제 스스로 부인하려조차 하지 않는 그 행실로 누구에게도 의심받은 적이 없었기에, 유추하자면 이 뜻밖의 앙드레를 발견한 나로서는, 알베르틴 역시 자기를 질투한다고 느낀 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라면 똑같이 쉽사리 그것을 고백했으리라 여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앙드레가 알베르틴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고, 아마도 알베르틴이 그 벗을 위해 서둘러 발베크에서 돌아온 그 벗이었던 만큼, 이제 앙드레에게 이런 취향이 있음이 드러난 이상, 내 마음에 억지로 밀려든 결론은 알베르틴과 앙드레가 언제나 함께 그 취향을 탐닉해왔다는 것이었다. 분명, 낯선 사람 앞에서 우리가 그가 가져온 선물을 언제나 감히 살펴보지는 못하고 준 이가 떠날 때까지 그 포장을 풀지 않듯이, 앙드레가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그녀가 내게 안긴 슬픔을 살펴보려 내 안으로 물러나지 않았으니, 그 슬픔이 이미 내 육체의 하인들, 곧 내 신경과 심장에 날카로운 동요를 일으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나, 교양 탓에 나는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오히려 손님으로 온 그 처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게 이야기하면서 이 내면의 사건들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앙드레가 알베르틴에 관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는 일이 내게는 특히 괴로웠다. “아 그럼요, 그 애는 늘 슈브뢰즈 골짜기에 가는 걸 좋아했어요.” 알베르틴이 앙드레와 함께 나들이하던 그 어렴풋하고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앙드레가 뒤늦은 악마적 창조로써 저주받은 골짜기 하나를 덧붙인 듯이 내게는 여겨졌다. 나는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곧잘 하던 일을 죄다 내게 이야기하려 한다고 느꼈고, 예의에서, 습관의 힘에서, 자존심에서, 어쩌면 고마움에서 점점 더 다정해 보이려 애쓰는 동안, 내가 알베르틴의 결백에 아직 내어줄 수 있던 여지가 점점 더 좁아지는 동안,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최면을 거는 맹금 앞에 마비된 짐승의 모습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듯했으니, 그 맹금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좁혀오는 원을 그 짐승 둘레에 그리는데, 더는 달아날 수 없는 제물을 골라 원할 때에 덮치리라 확신하기에 서두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고, 상대의 응시에 최면 걸릴까 두려워하지 않는 척하려는 사람이 짜낼 수 있는 만큼의 생기와 자연스러움과 자신감을 담아, 앙드레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당신이 언짢아할까 봐 이 얘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지만, 이제 우리 둘 다 그 애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니 말해도 되겠지요. 당신이 알베르틴과 하곤 하던 그런 부류의 일을 나는 오래전에 죄다 알아냈어요. 그리고 이미 알고 있겠지만 들으면 기뻐할 이야기 하나를 해줄 수 있어요. 알베르틴은 당신을 몹시 사랑했어요.” 나는 앙드레에게, 그녀가 내 앞에서 그리 거북하지 않을 애무 정도에 그친다 해도 알베르틴의 취향을 함께 나누던 벗들과 그런 행위를 하는 모습을 내게 보여준다면 내게 큰 관심거리가 되겠다고 말했고, 무언가를 알아낼까 하여 로즈몽드니 베르트니 알베르틴의 벗들을 하나하나 들먹였다. “세상 그 무엇을 준다 해도 당신 앞에서 말씀하신 그런 짓은 하지 않겠거니와,” 앙드레가 대답했다, “당신이 든 처녀들 중 누구에게도 그런 취향이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아요.” 나를 끌어당기는 괴물에게 나도 모르게 다가서며 나는 대답했다. “뭐라고요! 설마 당신 무리 가운데 당신이 그런 짓을 한 상대가 알베르틴뿐이었다고 나더러 믿으라는 건 아니겠지요!” “하지만 나는 알베르틴과 그런 짓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자, 앙드레, 내가 적어도 삼 년 전부터 알고 있는 일을 왜 부인해요, 나는 거기서 아무 잘못도 보지 않아요, 조금도요. 그런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말인데, 그 애가 이튿날 당신과 함께 베르뒤랭 부인 댁에 가고 싶어 그토록 안달하던 그날 저녁, 어쩌면 당신도 기억할지 모르지만…” 내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나는 앙드레의 눈에서, 그 말이 마치 그런 까닭에 세공사들이 다루기 어려워하는 보석들처럼 바늘 끝만큼 날카롭게 만든 그 눈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근심 어린 응시를 보았으니, 그것은 무대 뒤로 들어갈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극이 시작되기 전 막의 가장자리를 걷어보고는 들키지 않으려 이내 물러나는 그 얼굴들 같았다. 이 불안한 응시는 사라졌고, 모든 것이 아주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나는 이후에 내가 보게 될 것은 무엇이든 오로지 나를 위해 특별히 꾸며진 것이리라 느꼈다. 그 순간 나는 거울에 비친 나를 언뜻 보았고, 나와 앙드레 사이의 어떤 닮음에 놀랐다. 내가 오래전에 윗입술 면도를 그만두지 않아 콧수염의 아주 희미한 그림자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이 닮음은 거의 완전했을 것이다. 알베르틴이 파리로 돌아가고 싶은 그 조급하고 격렬한 욕망을 돌연 느낀 것은, 어쩌면 발베크에서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내 콧수염을 보았을 때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신이 거기서 아무 잘못도 보지 않는다는 그 이유 하나로 내가 사실이 아닌 말을 할 수는 없어요. 맹세컨대 나는 알베르틴과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그 애는 그런 부류의 일을 몹시 싫어했다고 확신해요. 당신에게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 거예요, 아마 무슨 속셈이 있어서겠지요.” 그녀는 따지듯 도전적인 기색으로 말했다. “아, 그럼 좋아요, 말하지 않겠다니.” 나는 대답했다. 나는 가지고 있지도 않은 증거를 내놓기 싫어하는 척하는 편을 택했다. 그런데도 나는 어렴풋이 되는대로 뷔트쇼몽이라는 이름을 내뱉었다. “내가 알베르틴과 뷔트쇼몽에 갔을 수는 있지만, 그곳이 유난히 나쁜 평판이 도는 곳인가요?” 나는 그녀에게, 한때 알베르틴과 친밀하게 지내던 지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볼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앙드레는, 최근 지젤이 자기에게 너무나 무례하게 굴었던 터라 그녀에게 부탁을 청하는 일만은 나를 위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 애를 만나거든,” 그녀가 말을 이었다, “내가 그 애에 대해 당신에게 한 말은 하지 마세요, 그 애를 적으로 돌려봐야 소용없으니까요. 그 애도 내가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만, 나는 늘 그 애와 격한 다툼을, 나중에 도로 봉합해야 할 뿐인 그런 다툼을 피하는 편을 택해왔어요. 게다가 그 애는 위험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일주일 전에 내 손에 들어온 편지, 그 애가 그토록 완전한 배신으로 거짓말을 늘어놓은 그 편지를 읽어봤다면, 세상의 그 어떤 고귀한 행동으로도 그런 일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는 걸 당신도 이해할 거예요.” 요컨대, 앙드레가 그 취향을 숨기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을 만큼 그것을 지녔고 알베르틴이 그녀에게 틀림없이 품었을 그 강한 애정을 품었음에도, 그럼에도 앙드레가 알베르틴과 한 번도 육체의 관계를 맺은 적이 없고 알베르틴에게 그런 취향이 있음을 한 번도 알지 못했다면, 이는 알베르틴에게 그런 취향이 없었으며, 다른 누구보다도 앙드레와라면 나누었을 그 관계를 그 누구와도 나눈 적이 없었음을 뜻했다. 그리하여 앙드레가 나를 떠났을 때, 나는 그토록 단정적인 말이 내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쩌면 그 말은, 자기 안에 아직 기억이 살아 있는 죽은 처녀에게 앙드레가 마땅히 진 빚이라 여긴 어떤 의무감에서, 곧 알베르틴이 필경 살아 있는 동안 부인해달라고 그녀에게 간청했을 것을 내가 믿게 두지 않으려는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가들은 이따금 서문에서, 외국을 여행하다가 어떤 사람의 일생 이야기를 들려준 누군가를 만났노라 꾸며댄다. 그러고는 이 우연한 지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름 아닌 자기네 소설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파브리스 델 동고의 일생은 파도바의 어느 참사원이 스탕달에게 들려준 것으로 되어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졌을 때, 곧 다른 사람의 존재가 우리에게 신비롭게 여겨질 때, 우리는 그런 소상히 아는 이야기꾼을 얼마나 기꺼이 찾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그런 이야기꾼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우리 자신도 아무런 열정의 자취 없이, 이런저런 여자의 이야기를, 그녀의 연애를 전혀 모른 채 우리 이야기에 열띤 관심으로 귀 기울이는 벗이나 낯선 이에게 곧잘 들려주지 않는가? 내가 블로크에게 게르망트 공작부인 이야기를, 스완 부인 이야기를 하던 그때의 나, 그 사람은 여전히 존재했으니, 내게 알베르틴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었을 그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그를 마주치지 못한다. 내게는, 그녀를 알던 여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더라면 내가 모르던 모든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여겨졌다. 그렇지만 남들에게는 나만큼 그녀의 삶을 많이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녀의 가장 가까운 벗 앙드레조차 알고 있었던가? 우리가 어느 장관의 벗이라면 어떤 정치적 사건의 진상을 알고 있으리라거나 어떤 추문에 연루되었을 리 없으리라 넘겨짚는 것도 이와 같다. 시도했다가 실패한 그 벗은, 장관과 정치를 논할 때마다 장관이 일반론에 그치며 이미 신문에 난 것 이상은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았다는 것을, 혹은 자기가 어떤 곤경에 처했을 때 장관의 도움을 얻으려 거듭 애써봐도 늘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오”라는 말로 끝나버려 그 벗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 터이다. 나는 혼잣말했다. “이러이러한 증인들을 알 수 있었더라면!” 그러나 그들을 알았던들, 나는 필경 앙드레에게서보다 더 많은 것을 캐내지 못했을 터이니, 앙드레 자신이 내주기를 거부하는 비밀의 파수꾼이었던 것이다. 더는 질투하지 않게 되자 오데트가 포르슈빌과 무슨 짓을 했을지에 아무런 호기심도 느끼지 않게 된 스완과는 이 점에서도 달리, 내 질투가 가라앉은 뒤에도, 알베르틴의 세탁부와, 그녀의 이웃 사람들과 사귀어 그 속에서 그녀의 삶과 그녀의 밀회를 재구성해보겠다는 생각, 오직 그것만이 내게 매력을 지녔다. 그리고 욕망이란 언제나 어떤 가치의 예감에서 솟아나는 법이라, 예전에 질베르트와,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더불어 내게 일어났던 것처럼, 알베르틴이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 내가 알고 싶어 한, 그리고 오직 그들의 곁만을 바랄 수 있었던 것은 그녀와 같은 계급의 여자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다 해도, 그들은 내가 끌림을 느끼는 유일한 여자들이었으니, 알베르틴이 알던, 혹은 알았을 법한 여자들, 그녀와 같은 계급이거나 그녀가 어울리기 좋아하던 계급의 여자들, 한마디로 내 눈에 그녀를 닮았거나 그녀의 마음에 들던 유형이라는 남다름을 지닌 여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알베르틴 자신을, 혹은 그녀가 필경 편애했을 그 유형을 떠올릴 때면, 이 여자들은 내 안에 애가 타는 질투나 회한의 감정을 불러일으켰고, 그것은 훗날 내 슬픔이 무뎌졌을 때 매력이 없지 않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서도 특히 노동계급의 여자들이 그러했으니, 내가 알던 삶과는 그토록 다른, 그들의 삶 때문이었다. 물론 우리가 사물을 소유하는 것은 오직 우리 마음속에서일 뿐이니, 우리가 그림을 이해할 줄 모른다면 그것이 우리 식당에 걸려 있다 해서 그 그림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어떤 풍경 앞에 살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면 그 풍경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예전에, 파리에서 알베르틴이 나를 찾아와 그녀를 품에 안았을 때 발베크를 되찾는다는 착각을 품곤 했다. 마찬가지로 나는 한 재봉사에게 입 맞출 때, 아무리 한정되고 은밀한 것일지언정 알베르틴의 삶과, 작업장의 공기와, 판매대 너머로 오가는 대화와, 빈민가의 정취와 맞닿는 접촉을 얻었다. 앙드레와 이 다른 여자들은, 모두 알베르틴과 관련하여, 마치 알베르틴 자신이 발베크와 관련하여 그러했듯이, 서로가 서로를 대신하며 차츰 격이 낮아지는 그 쾌락의 대용물들 축에 들었으니, 그것들은 우리가 더는 다다를 수 없는 쾌락, 곧 발베크에서의 휴가나 알베르틴의 사랑을 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고(마치 본래 베네치아에 있던 티치아노를 보러 루브르에 가는 행위가 그곳에 갈 수 없는 우리를 위로해주듯이), 서로가 분간할 수 없는 층차로 갈라진 그 쾌락들은 우리 삶을, 처음의 어떤 욕망을 에워싸는 동심원의, 서로 맞닿고 조화롭게 층을 이루는 일련의 지대로 바꾸어놓는데, 그 처음의 욕망이 기조를 정하고 거기에 어우러지지 않는 모든 것을 걸러내며 지배적인 색조를 펼쳐놓았던 것이다(이를테면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질베르트의 경우에도 내게 일어났듯이). 앙드레와 이 여자들은, 이제 알베르틴을 내 곁에 두기를 비는 것이 부질없음을 내가 아는 그 욕망을 채우는 데 있어, 알베르틴을 그저 얼굴로만 알던 시절 어느 저녁 한 송이 포도의 여러 빛깔로 반짝이는 싱그러운 광택이 그러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 내 사랑의 기억과 결부되어, 그런데도 내가 사랑했던 알베르틴의 육체적, 사회적 속성들은 오히려 한때라면 내 욕망이 가장 꺼려 골랐을 것, 곧 하층 중산계급의 가무잡잡한 처녀들 쪽으로 내 욕망을 끌어당겼다. 실은 내 안에서 어느 정도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은,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으로도 달랠 수 없었던 그 거대한 욕망, 발베크 근방의 길에서, 파리의 거리에서 내가 느끼곤 하던 삶을 알고 싶다는 그 거대한 욕망이었으니, 그 욕망이 알베르틴의 마음에도 있으리라 넘겨짚고 그녀가 나 아닌 그 누구와도 그것을 채울 방도를 빼앗으려 했을 때 내게 그토록 큰 고통을 안겼던 바로 그 욕망이었다. 이제 나는 그녀의 욕망을 떠올리는 일을 견딜 수 있게 되었고, 그 생각이 내 자신의 욕망으로 곧바로 일깨워졌던 만큼, 이 두 거대한 욕구가 맞아떨어져 나는 우리 둘이 함께 그것을 탐닉할 수 있기를 바랐으며, 혼잣말했다. “저 처녀는 그 애의 마음에 들었을 텐데.” 그러다 이 돌연한 여담에 이끌려 그녀와 그녀의 죽음을 떠올리고는, 나는 너무나 불행하여 내 욕망을 더 좇을 수가 없었다. 오래전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이 내가 시골을 좋아하는 조건을 세워, 오래된 교회도 수레국화도 미나리아재비도 없는 마을에서는 내가 아무런 참된 매력도 찾지 못하게 만들었듯이,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도 그 여자들을 내 안에서 매력 가득한 과거에 붙들어 맴으로써 나로 하여금 오로지 어떤 유형의 여자만을 찾게 만들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기 전처럼, 그녀와 어우러지는, 차츰 덜 배타적이 된 기억과 맞바꿀 수 있는 것들을 향한 갈망을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금발의 오만한 공작부인 곁에서는 아무런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을 터인데, 그녀는 내 안에 알베르틴에게서, 그녀를 향한 내 욕망에서, 그녀의 연애에 내가 느낀 질투에서, 내 고통에서, 그녀의 죽음에서 솟아나던 감정을 조금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감각은 강해지려면, 자기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를, 곧 쾌락에서는 아무런 만족도 찾지 못하되 욕망에 더해져 그것을 키우고 쾌락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게 하는 어떤 정감을 우리 안에서 풀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알베르틴이 어떤 여자들에게 품었던 사랑이 내게 고통을 주기를 그치는 만큼, 그것은 그 여자들을 내 과거에 붙들어 매고 그들에게 더 현실적인 무언가를 주었으니, 마치 콩브레의 기억이 미나리아재비에, 산사나무꽃에, 낯선 꽃들보다 더 큰 현실성을 주었던 것과 같았다. 앙드레에 대해서조차, 나는 더는 분노에 차 “알베르틴이 저 여자를 사랑했다”고 되뇌지 않고, 오히려 내 욕망을 나 자신에게 설명하려는 듯 다정한 어조로 “알베르틴이 저 여자를 애틋이 사랑했지”라고 되뇌었다. 이제 나는, 위안을 얻은 줄로만 여겨지지만 실은 죽은 아내의 누이와 결혼함으로써 오히려 위로받을 길 없음을 드러내는 홀아비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내 사랑의 쇠락은 내게 새로운 사랑을 가능케 하는 듯했고, 오랫동안 그 자체로 사랑받다가 훗날 연인의 욕망이 시들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뚜쟁이 노릇에 스스로를 국한함으로써 자신의 권세를 지켜나가는 그런 여자들처럼, 알베르틴은 마치 퐁파두르가 루이 15세에게 그리하였듯이 내게 새로운 처녀들을 대주었다. 예전에도 내 시간은 이 여자 저 여자를 욕망하던 시기들로 나뉘어 있었다. 한 여자가 안겨주던 격렬한 쾌락이 무뎌지면 나는 거의 순수한 애정을 주는 다른 여자를 갈망했고, 그러다 더 세련된 애무에의 갈망이 첫 번째 여자를 향한 욕망을 되돌려놓곤 했다. 이제 이런 번갈아 듦은 끝나버렸거나, 적어도 그 시기들 가운데 하나가 한없이 늘어지고 있었다. 내가 바랐던 것은, 새로 오는 여자가 내 집에 거처를 정하고, 밤이면 나를 떠나기 전에 다정한, 누이 같은 입맞춤을 내게 해주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한 쌍의 입술보다 입맞춤을, 사랑보다 쾌락을, 사람보다 습관을 아쉬워한다고 믿을 수 있으려면(다른 사람의 견딜 수 없는 곁에 대한 경험이 내게 없었더라면 말이지만), 나는 또한 새로 오는 여자들이 알베르틴처럼 내게 뱅퇴유의 음악을 들려주고, 그녀가 엘스티르에 관해 이야기하던 것처럼 내게 이야기해줄 수 있기를 바랐다. 이 모든 것은 불가능했다. 그들의 사랑은 그녀의 사랑에 견줄 수 없으리라고 나는 생각했으니, 그 까닭인즉, 온갖 삽화가, 곧 화랑 나들이와 음악회에서 보낸 저녁들이, 편지와 대화와 더 은밀한 관계에 앞선 연애의 밀고 당김과 그 뒤의 진지한 우정을 허락하는 복잡한 삶 전체가 곁들여진 사랑은, 오직 제 몸밖에 내줄 것이 없는 여자를 향한 사랑보다 더 많은 자원을 지니는 것이 마치 오케스트라가 피아노보다 더 많은 자원을 지니는 것과 같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더 깊이 들어가, 알베르틴이 내게 주던 것과 같은 부류의 애정, 곧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추고 동시에 내게 누이가 되어줄 처녀의 애정을 향한 내 갈망이, 알베르틴과 같은 계급의 여자들을 향한 내 갈망과 마찬가지로, 그저 알베르틴에 대한 내 기억, 그녀를 향한 내 사랑의 기억이 도진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깨달았으니, 우선 기억에는 발명의 힘이 없다는 것, 우리가 이미 소유했던 것과 다른 무언가를, 심지어 그보다 나은 무언가를 욕망할 힘조차 없다는 것을, 다음으로 기억은 현실이 그것이 찾는 상태를 마련해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정신적이라는 것을, 끝으로 죽은 사람에게 적용될 때 기억이 육화하는 부활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사랑하려는 욕구의 부활이라기보다는 부재한 사람을 향한 욕구의 부활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내가 골랐던 여자가 알베르틴을 닮았다는 것, 심지어 내가 그녀의 애정을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면 그 애정마저 알베르틴의 애정을 닮았다는 것은, 내가 나도 모르게 찾고 있던 것, 곧 내 행복의 되살아남에 없어서는 안 될 것, 다시 말해 알베르틴 자신과, 우리가 함께 살았던 시간과, 내가 나도 모르게 찾아 나섰던 그 과거의 부재를 더욱더 또렷이 깨닫게 했을 뿐이다. 분명, 화창한 날이면 파리는 내게 이 모든 처녀들로 헤아릴 수 없이 꽃핀 듯 보였으니, 나는 그들을 욕망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은 알베르틴의 욕망의 어둠과 신비로운 밤의 삶 속으로 제 뿌리를 내리뻗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가 아직 나를 경계하기 시작하기 전, 맨 처음에 내게 이렇게 말하던 처녀들 같았다. “저 애 참 매력적이네, 머릿결이 어쩜 저리 곱담.” 그녀를 그저 얼굴로만 알던 예전에 그녀의 삶에 대해 느꼈던 온갖 호기심과, 다른 한편 삶을 향한 내 온갖 욕망이 이 단 하나의 호기심, 곧 알베르틴을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 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뒤섞였으니, 어쩌면 그렇게 하면 그 여자들이 그녀를 떠났을 때 내가 그녀와 단둘이, 마지막 사람이자 주인으로 남아 있게 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그녀의 망설임을, 이 처녀 저 처녀와 저녁을 보낼 만한 가치가 있을지 스스로 물을 때의 주저를, 상대가 떠났을 때의 물림을, 어쩌면 그녀의 실망을 내가 지켜보았더라면, 나는 알베르틴이 내 안에 불러일으킨 질투를 밝은 대낮으로 끌어내어 그 참된 크기로 되돌려놓았을 터인데, 그녀가 그렇게 그것들을 겪는 것을 봄으로써 나는 그녀의 쾌락을 가늠하고 그 한계를 알아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쾌락을, 얼마나 편안한 삶을 그녀는 우리에게서 앗아갔던가, 하고 나는 혼잣말했으니, 제 본능을 부인하던 그 완고한 고집으로 말미암아! 그리고 다시 한번 그녀의 고집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를 알아내려 애쓰던 차에, 문득 그녀가 내게 연필을 주던 날 발베크에서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의 기억이 떠올랐다. 내게 입 맞추게 해주지 않은 것을 나무라며, 나는 그녀에게, 입맞춤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 여기지만 여자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는 것은 그만큼 천한 일이라 여긴다고 말했던 것이다. 아, 어쩌면 알베르틴은 그 경솔한 말을 결코 잊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