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틴을 이제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마지막 시기와 같은 방식으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가장 이른 시절의 방식이었으니, 그 무렵에는 그녀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모든 것, 곧 장소든 사람이든이 내게 고통보다 매혹이 더 큰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사실 나는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아주 잊어버리기 전에, 무관심의 첫 단계에 이르기 전에, 마치 같은 길을 되짚어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여행자처럼, 내가 그 크나큰 사랑에 이르기까지 거쳐 온 모든 감정들을 역방향으로 다시 지나가야 하리라는 것을. 그러나 이 조각들, 이 과거의 순간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그 무서운 힘을, 그때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된, 그러나 환각이 우리로 하여금 한순간 그것을 거꾸로 미래로 착각하게 만드는 어떤 시간을 향해 그때 애타게 나아가던 희망의 행복한 무지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나는 알베르틴의 편지를, 그날 저녁 나를 보러 오겠다고 적혀 있던 편지를 읽었고, 한순간 기다림의 기쁨을 느꼈다.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어떤 곳으로부터 같은 노선을 따라 되돌아오는 이런 여정에서, 우리가 갈 때 지나쳤던 모든 곳의 이름과 모습을 떠올릴 때면, 열차가 어느 역에 멈춰 서는 동안 한순간 우리가 다시 출발하는 듯한 착각을, 그러나 지난번 여정처럼 우리가 떠나온 그곳을 향해 가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된다. 이내 착각은 사라지지만, 한순간 우리는 다시 한번 실려 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기억의 잔혹함이란 그런 것이다.
이따금 조금이라도 슬픈 소설을 읽으면 나는 문득 과거로 홱 끌려갔다. 어떤 소설들은 크지만 일시적인 사별과도 같아서, 우리의 습관을 폐기하고 우리를 다시 한번 삶의 현실과 맞닿게 하지만, 그것도 겨우 몇 시간 동안, 악몽처럼 그럴 뿐이다. 습관의 힘, 그 습관이 빚어내는 망각, 우리 뇌가 그에 맞서 싸워 진실을 재창조할 힘이 없기에 습관이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명랑함이, 모든 암시가 그렇듯 덧없는 효력밖에 없는 좋은 책의 거의 최면과도 같은 암시를 한없이 압도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출발했던 무관심의 상태로 되돌아가기에 앞서, 사랑에 이르기 위해 지나온 거리를 역방향으로 다시 밟는 일을 면제받을 수 없다 하더라도, 우리가 따라가는 궤적, 그 노선이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곧지 않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는데, 망각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직선을 따라 나아갈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드시 같은 길을 지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여정에서 내가 밟던 길 위에는, 어수선한 한 대목을 지나는 동안 세 군데의 멈춤 지점이 있었고, 나는 그것들을 기억한다. 이미 목적지에 가까워졌을 무렵 내 둘레를 감싸던 빛 때문이다. 그 단계들을 내가 유독 떠올리는 것은, 아마도 그 안에서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에는 자리가 없던 것들, 혹은 기껏해야, 큰 열정에 앞서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던 것이 그 열정과 결부되는 그만큼만, 곧 그것을 키우거나 그것과 다투거나 우리의 분석하는 정신에 그것과의 대비를 제공함으로써만 그 사랑에 이어져 있던 것들을 그 안에서 알아차렸기 때문이리라.
이 멈춤 지점들 가운데 첫 번째는 겨울이 찾아들 무렵, 만성절이기도 했던 어느 맑은 일요일, 내가 바깥나들이를 감행했을 때 시작되었다. 불로뉴 숲 쪽으로 다가가면서 나는 알베르틴이 트로카데로에서 나를 다시 만나러 돌아왔던 일을 서글프게 떠올렸다. 바로 그날과 같은 날이었으되, 다만 알베르틴이 없었을 뿐이다. 서글펐지만 그래도 기쁨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니, 지난날 내 하루를 채웠던 바로 그 모티프가 단조로, 절망적인 어조로 되풀이되는 것, 프랑수아즈의 전화 전언마저, 알베르틴의 그 도착마저 없다는 사실은 무언가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떠올린 것, 그날에 서글픈 빛을 드리웠던 것을 현실에서 지워 버린 것이었기에, 그날을 단순하고 끊김 없는 하루보다 더 아름다운 무언가로 만들어 주었다. 이제 거기 없는 것, 그날에서 뜯겨 나간 것이, 마치 거푸집에 찍힌 자국처럼 그 위에 새겨진 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숲에서 나는 뱅퇴유 소나타의 악구들을 흥얼거렸다. 알베르틴이 나를 속였다는 생각도 이제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으니, 그녀에 대한 내 기억은 거의 다 저 이차적인 화학적 상태로 접어들어, 더는 마음을 불안하게 짓누르지 않고 오히려 위안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따금, 그녀가 가장 자주 연주하곤 하던 대목에서, 그 무렵 내가 매력적이라 여겼던 어떤 소감을 그녀가 곧잘 입에 올리거나 어떤 추억을 넌지시 떠올리게 하던 그 대목에서, 나는 “가엾은 어린 것”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나 우수 없이, 그저 그 악구에 하나의 값을, 이를테면 역사적이고 진기한 값을 덧붙였을 뿐이었으니, 그것은 이미 그 자체로 그토록 아름다운 반다이크의 샤를 1세 초상이, 뒤바리 부인이 왕에게 잘 보이려 한 욕심 덕에 국립 소장품에 들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얻는 값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작은 악절이, 아주 사라지기 전에, 흩어진 조각들로 아직 한순간 떠도는 갖가지 요소들로 녹아들 때, 그것은 내게 스완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사라져 가는 알베르틴에게서 온 전령은 아니었다. 그 작은 악절이 내 안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스완의 안에서와 똑같은 관념의 연상은 아니었다. 나를 무엇보다 사로잡았던 것은, 그 사랑이 내 삶 전체에 걸쳐 지속되었듯 소나타 전체에 걸쳐 지속되던 한 악구의 다듬어짐, 그 시도들, 그 되풀이들, 그 “귀결”이었다. 그리고 이제, 날마다 내 사랑의 요소가 하나씩, 질투의 측면이, 이어 또 다른 측면이, 어렴풋한 추억 속에서 첫 시작의 미약한 미끼로 서서히 흘러 되돌아가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그 작은 악절의 흩어지는 음표들 속에서 내 사랑이 눈앞에서 녹아 사라지는 것을 보는 듯했다.
날마다 성글어지는 풀로 뒤덮이고 덤불로 갈린 오솔길들을 따라가노라니, 알베르틴이 마차 안에서 내 곁에 앉아 있었고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동안 그녀가 내 삶을 감싸는 것을 느꼈던 어느 마차 나들이의 기억이, 저무는 햇살이 마치 텅 빈 허공에 매달린 듯 황금빛 잎으로 수놓인 수평의 그물을 반짝이게 하던 어스름한 가지들의 아련한 안개 속에서, 이제 내 둘레에 떠돌았다. 게다가 내 심장은 시시각각 두근거렸으니, 마음속에 뿌리내린 어떤 생각 때문에 오솔길 끝에 멈춰 선 모든 여인이 자기가 생각하는 그 여인의 모습을, 그 여인일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띠게 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다. “어쩌면 저 여자일지도!” 우리는 돌아보지만, 마차는 가던 길을 계속 가고, 우리는 그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이 잎들을 나는 기억의 눈으로만 바라본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한 예술가가 순전히 묘사에 그칠 페이지들을 더 온전하게 만들려고 하나의 허구를,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를 끼워 넣는 그런 페이지들처럼, 나의 흥미를 끌고 나를 뭉클하게 했다. 그리하여 이 자연의 작품은 내 마음에 가닿을 수 있는 유일한 매력, 곧 우수의 매력을 띠었다. 이 매력의 까닭은, 내가 아직도 여전히 알베르틴을 그토록 사랑하고 있기 때문인 듯 여겨졌으나, 참된 까닭은 오히려 그 반대로, 망각이 내 안에서 그토록 진척되고 있어 알베르틴의 기억이 더는 내게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그 기억이 달라졌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또렷하게 우리의 인상을 식별한다 해도, 그때 내가 내 우수의 까닭을 식별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처럼, 우리는 그것들을 더 먼 의미까지 거슬러 올라가 짚어 낼 수는 없다. 의사가 환자에게서 그 내력을 듣고 그것을 실마리 삼아, 환자 자신은 모르는 더 깊은 원인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그런 병들처럼, 우리의 인상도, 우리의 관념도 오직 증상으로서의 값밖에 지니지 못한다. 내가 느끼던 매혹과 감미로운 슬픔의 인상에 질투가 저만치 밀려나 있는 사이, 나의 감각이 다시 깨어났다. 질베르트를 더는 만나지 않게 되었을 때처럼, 다시 한번 여인에 대한 사랑이 내 안에서 솟아올랐으니, 이미 사랑했던 어떤 특정한 여인과의 배타적 결부에서 벗어나, 앞선 파괴들로 해방되어 봄 공기 속에 매달린 채 떠도는 저 정령들처럼, 오직 새로운 존재에 깃들기만을 바라며 떠돌았다. 물망초라 불리기는 하여도, 묘지에서만큼 그토록 많은 꽃이 피어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이 맑은 날이 그토록 수없이 꽃피워 낸 처녀들을, 지난날 빌파리지 부인의 마차에서, 혹은 비슷한 어느 일요일에 알베르틴과 함께 그곳에 왔던 그 마차에서 바라보았을 법하게 바라보았다. 내가 그중 이 여자 저 여자에게 막 던진 눈길에는, 알베르틴이 남몰래 그녀들에게 던지곤 하던, 상상할 수 없는 생각을 비추는 그 야릇하고 은밀하고 대담한 눈길이 곧바로 겹쳐졌으니, 그 눈길은 신비롭고 재빠른 강철빛 날개로 내 눈길을 이중으로 포개며, 여태 그토록 자연스럽기만 하던 이 오솔길들을 따라, 내 욕망만으로는, 홀로 남았더라면 도저히 불어넣지 못했을 어떤 미지의 요소의 떨림을 실어 날랐다. 나에게 그 오솔길들은 미지의 것이라곤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발베크에서 내가 처음 알베르틴을 알고 싶어 애태웠던 것도, 거리에서, 시골길에서 그토록 자주 나를 멈춰 세우던 그런 처녀들의 전형으로 그녀가 내게 보였기 때문이며, 그녀가 내게 그런 처녀들의 삶의 한 표본을 건네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제, 그런 처녀들이 응축되어 있던 내 사랑의 식어 가는 별이 이 흩어진 성운의 티끌 속에서 다시금 폭발한다 한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던가? 그녀들은 모두가 내게 알베르틴처럼 여겨졌으니, 내가 속에 품고 다니던 그 이미지가 어디서나 그녀의 복제를 찾아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느 가로수길 모퉁이에서 자동차에 올라타던 처녀는 그녀를 어찌나 강렬하게 떠올리게 하는지, 어찌나 똑같은 몸매였는지, 나는 한순간 방금 본 것이 그녀가 아닌지, 사람들이 그녀의 죽음을 알려 왔을 때 나를 속인 것은 아닌지 자문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렇게, 어느 가로수길 모퉁이에서 그녀를 다시 보았다. 삶에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시절 발베크에서 그녀가 그러했을 법한 모습으로, 똑같이 차에 올라타는 그녀를. 그리고 이 다른 처녀가 차에 오르는 그 동작을, 나는 산책하는 길에 그토록 자주 마주치는 저 겉핥기식 형상들 가운데 하나로 그저 눈에 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영속적인 동작이 되어, 그 위에 겹쳐진, 그토록 감미롭게 또 그토록 서글프게 내 마음을 짓누르던 기억의 방향으로 과거에까지 뻗어 가는 듯했다. 그러나 그때쯤 그 처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조금 더 가서 나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어쩌면 젊은 여인일지도 모를 세 처녀의 무리를 보았는데, 그 세련되고 활기찬 자태가 내가 처음 알베르틴과 그녀의 벗들을 보았던 날 나를 사로잡았던 것과 어찌나 꼭 들어맞던지, 나는 이 새로운 세 처녀를 뒤쫓아 서둘렀고, 그녀들이 마차를 세우자 다른 마차를 찾아 사방을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다. 한 대를 찾아냈으나 이미 늦어 그녀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나 며칠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우리 집 현관 주랑에서 나오는, 불로뉴 숲에서 뒤쫓았던 그 세 처녀를 보았다. 그녀들은, 특히 검은 머리의 두 처녀는, 조금 더 나이가 들었다는 점만 빼면, 창문에서 바라보거나 거리에서 마주쳐 나로 하여금 숱한 계획을 세우게 하고 삶에 반하게 하였으되 끝내 사귀어 볼 수 없었던 그런 젊은 아가씨들의 전형 바로 그것이었다. 금발 처녀는 조금 더 섬세한, 거의 병약한 분위기를 띠어 내 마음을 덜 끌었다. 그런데도 내가 잠깐 눈길을 주는 데 그치지 못하고 땅에 뿌리박힌 듯 멈춰 서서, 무엇으로도 흐트러뜨릴 수 없는 그 고정됨으로, 마치 어떤 문제에 매달리듯 하는 그 몰두로, 참된 대상이 눈에 보이는 것 너머 멀리 숨어 있음을 의식하는 듯한 그런 눈길로 그녀들을 뜯어보게 만든 것은 바로 그 금발 처녀였다. 나는 그토록 많은 다른 이들을 그냥 지나쳐 보냈듯 그녀들도 사라지게 내버려 두었을 것이다. 만일 (그녀들이 내 곁을 지나칠 때) 그 금발 처녀가, 내가 하도 유심히 뜯어보아서였을까, 나를 향해 은밀한 눈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나를 지나쳐 고개를 돌려 내 피를 끓게 한 두 번째 눈길을 던지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더는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벗들과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자, 내 열기도 아마 가라앉았으련만, 뒤이은 사건으로 그것이 백배로 부풀어 올랐다. 문지기에게 그녀들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가 알려 주었다. “공작 부인을 찾아왔습니다. 그중 한 분만 부인을 아는 것 같고 나머지는 그저 문간까지 바래다준 모양입니다. 여기 이름이 있는데, 제대로 받아 적었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나는 “데포르슈빌 양”이라 읽었는데, 이는 데포르슈빌이라는 이름으로, 곧 내가 기억하는 한 대체로, 게르망트가와 어렴풋이 이어져 있고 로베르가 어느 난잡한 집에서 만나 관계를 맺었다고 내게 말해 준 그 훌륭한 가문 처녀의 이름으로 바로잡기 쉬웠다. 이제 나는 그녀의 눈길이 무슨 뜻이었는지, 왜 그녀가 벗들 몰래 고개를 돌렸는지 알았다. 얼마나 자주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로베르가 일러 준 그 이름에 비추어 그녀를 그려 보았던가. 그런데 이렇게, 나는 그녀를 보았다. 벗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되, 다만 그 은밀한 눈길 하나만은 예외였으니, 그 눈길은 나와 그녀 사이에, 그녀의 벗들에게는 뻔히 감춰져 있던 그녀 삶의 부분들로 통하는 은밀한 입구를 열어 놓았고, 그리하여 그녀를 더 다가가기 쉬운 존재로, 거의 반쯤은 내 것인 존재로, 귀족 태생의 처녀들이 흔히 그런 것보다 더 상냥한 존재로 보이게 했다. 이 처녀의 마음속에는, 나와 그녀 사이에는, 만일 그녀가 나와 약속을 잡을 만큼 자유로웠다면 우리가 함께 보냈을 그 시간들이라는 공통의 바탕이 미리부터 놓여 있었다. 그녀의 눈길이 나에게, 오직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웅변으로 표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이 아니었던가?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두방망이질했고, 나는 데포르슈빌 양의 모습을 정확히 그려 낼 수도 없었으니, 옆에서 본 흰 살결만을 어렴풋이 떠올릴 뿐이었으나, 그런데도 나는 그녀에게 미친 듯이 반해 있었다. 문득 나는, 세 처녀 가운데 데포르슈빌 양이 고개를 돌려 나를 두 번 바라본 그 금발 처녀일 수밖에 없다는 듯이 내가 따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문지기는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방으로 되돌아가 다시 물었고, 그는 자기로서는 알려 줄 수 없으나 전에 한 번 그녀들을 본 적 있는 아내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아내는 그때 마침 부엌 계단을 문질러 닦느라 바빴다. 우리 가운데 누가 살아가면서 나와 얼마쯤 비슷한, 그러면서도 하나같이 감미로운 이런 불확실함을 겪어 보지 않았겠는가? 우리가 무도회에서 본 어느 처녀를 자상한 벗에게 이야기하면, 그는 우리 묘사를 듣고 그녀가 자기 친구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고 단정하며 우리를 그녀와 만나게 해 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토록 많은 처녀들 가운데, 한낱 말로 그린 초상 말고는 아무 실마리도 없이, 무슨 착오가 없으란 법이 있겠는가? 우리가 곧 만나게 될 처녀가, 우리가 바라는 그 처녀와는 다른 처녀는 아닐까? 아니면 반대로, 우리가 바로 그 처녀이기를 바랐던 바로 그 처녀가 미소 지으며 우리에게 손을 내미는 것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이 후자의 경우는 꽤 흔한 일로, 데포르슈빌 양에 관한 이번만큼 결정적인 논거로 늘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직관에서, 또 이따금 우리를 편들어 주는 저 행운의 바람에서 비롯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녀를 언뜻 보고 속으로 말한다. “바로 저 처녀로군.” 나는 해변을 거닐곤 하던 그 작은 무리의 처녀들 가운데, 어느 쪽이 알베르틴 시모네라는 이름인지 내가 옳게 알아맞혔던 일을 떠올린다. 이 기억은 내게 날카롭지만 덧없는 아픔을 안겼다. 그리고 문지기가 아내를 찾으러 간 사이, 나의 가장 큰 걱정은, 데포르슈빌 양을 생각하면서, 또 무슨 까닭인지 알 수 없이 어떤 얼굴에 들러붙어 있던 이름이며 우리가 지닌 어떤 정보의 한 조각이 이런 기다림의 몇 분 동안 한순간 풀려나, 새 얼굴에 들러붙게 되면 그것이 우리에게 일러 주었던 본래의 얼굴을 되돌아보아 낯설고 순진하고 어렴풋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까닭에, 문지기의 아내가 어쩌면 데포르슈빌 양이 오히려 검은 머리의 두 처녀 가운데 하나라고 일러 주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그 존재를 믿었고 이미 사랑했으며 이제 오로지 차지할 생각만 하던 그 존재, 저 금발의 앙큼한 데포르슈빌 양은 사라져 버릴 터였다. 그 숙명적인 대답은 그녀를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두 요소로 갈라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두 요소를 나는, 상상 속 인물을 지어내려고 현실에서 빌려 온 갖가지 요소를 뒤섞는 소설가처럼, 제멋대로 하나로 합쳐 놓았던 것이며, 그 요소들은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이름이 눈길에 담겼으리라 짐작한 의도를 뒷받침해 주지 못하는 까닭에, 온갖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렇게 되면 내 추론은 무색해지고 말 터였다. 그러나 문지기가 돌아와, 데포르슈빌 양이 과연 그 금발 처녀라고 일러 주었을 때, 그와 반대로 내 추론은 얼마나 크게 힘을 얻었던가!
그 순간부터 나는 이름이 비슷할 뿐이라는 생각을 더는 믿을 수 없었다. 이 세 처녀 가운데 하나가 데포르슈빌 양이라는 이름을 지녔다는 것, 게다가 그녀가 바로 (그리고 이것이 내 짐작을 뒷받침하는 첫 번째 확실한 증거였다) 그런 눈길로 나를 바라보며 거의 미소까지 지어 보인 바로 그 처녀라는 것, 그러면서도 난잡한 집을 드나든 것은 그녀가 아니라는 것, 이 모든 우연의 일치가 너무나 놀라웠다.
그리하여 미친 듯이 들뜬 하루가 시작되었다. 이틀 뒤 게르망트 부인을 찾아뵈러 갈 때, 문지기 말로는 그 아가씨가 다시 공작부인을 뵈러 온다는 바로 그날, 좋은 인상을 주려면 갖춰야 하리라 여긴 온갖 치장거리를 사러 나서기도 전에, 나는 공작부인 댁에서 순순한 처녀를 만나 약속을 잡거나 (아니면 잠깐이라도 손쉽게 구석으로 데려갈 수 있으리라) 하겠다는 생각에, 만사에 대비하고자 먼저 로베르에게 전보를 쳐서 그 처녀의 정확한 이름과 생김새를 알려 달라고 청했다. 마흔여덟 시간 안에 답을 받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나는 다른 무엇도, 심지어 알베르틴조차 한순간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사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몸져누워 걷지 못해 의자에 실려 내려가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공작부인을 오래도록 찾아뵈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생루에게 전보를 친 것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무슨 미련이 남은 의심이 있어서도, 내가 본 처녀와 그가 이야기한 처녀가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별개의 인물이어서도 아니었다. 나는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마흔여덟 시간이라는 강요된 간격에 애가 타던 터라, 그녀에 관한, 자세한 정보로 가득한 전보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의 기쁨이었고, 이미 그녀에 대한 일종의 은밀한 권력을 내게 안겨 주었다. 전신국에서, 희망에 불타는 사람의 활기로 전문을 초안하면서, 나는 이제 데포르슈빌 양을 앞에 두고, 소년 시절 질베르트를 앞에 두었을 때보다 얼마나 덜 당황하고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내가 그저 전보를 써 내려가는 수고만 하고 나면, 전신 직원은 그것을 받아 가기만 하면 되고, 가장 빠른 전기 통신망이 그것을 프랑스와 지중해 저편까지 실어 보내면, 로베르의 그 육욕적인 과거 전부가, 내가 거리에서 본 사람의 정체를 밝혀내는 일에 동원되어, 내가 밑그림만 그려 둔 그 소설, 이제 더는 마음 쓸 필요조차 없는 그 소설에 이바지하게 될 터였으니, 그의 답장이 스물네 시간이 지나기 전에 행복한 결말을 가져다주기로 떠맡은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지난날에는, 프랑수아즈에게 이끌려 샹젤리제에서 집으로 돌아와, 이룰 길 없는 욕망을 품고 홀로 집 안에서 골똘히 잠겨, 문명의 실질적인 방편들을 부릴 줄도 모른 채, 나는 야만인처럼, 아니 몸을 움직일 자유조차 없었으니 차라리 한 송이 꽃처럼 사랑했다. 이 순간부터 나는 끊임없는 열병에 사로잡혔다. 아버지가 이틀쯤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청하는 바람에 공작부인 방문을 단념해야 할 판이 되자, 나는 격노와 절망에 사로잡혔고, 어머니가 끼어들어 아버지를 설득한 끝에 내가 파리에 남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여러 시간이 지나도록 내 분노는 가라앉을 줄 몰랐으며, 그러는 사이 데포르슈빌 양을 향한 내 욕망은, 우리 사이에 놓인 그 장애물로 인해, 또 그 무엇으로도 앗아 갈 수 없는 확실한 축복인 양 내가 늘 미리 그려 보며 미소 짓던 그 시간들, 곧 게르망트 부인을 찾아뵐 그 시간들이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한순간 느꼈던 그 두려움으로 인해, 백배로 커졌다. 어떤 철학자들은 바깥 세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가 우리 삶을 펼쳐 가는 것은 우리 자신 안에서라고 단언한다. 그야 어떻든, 사랑은 그 가장 보잘것없는 시작에서조차, 현실이 우리에게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를 보여 주는 두드러진 본보기다. 만일 내가 데포르슈빌 양의 초상을 기억으로 그려 내야 했다면, 그녀에 대한 묘사나 특징 하나를 대야 했다면, 아니 거리에서 그녀를 알아봐야 했다 하더라도, 나는 도저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를 옆모습으로, 걷는 중에 보았고, 그녀는 내게 소박하고 예쁘고 키가 크고 금발인 사람으로 다가왔으나, 그 이상은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욕망의, 불안의 온갖 반응, 아버지가 나를 데려가면 그녀를 보지 못하리라는 두려움이 안긴 치명적인 일격, 이 모든 것이, 결국 기억나지도 않고 그저 유쾌한 것임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어떤 이미지와 결부되어, 이미 하나의 사랑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마침내 이튿날 아침, 행복한 불면의 밤을 지새운 뒤 나는 생루의 전보를 받았다.
드 로르주빌, de는 전치사, orge는 곡물 곧 보리, ville는 마을, 키 작고 머리 검고 통통함, 현재 스위스에 있음.
그녀가 아니었다!
프랑수아즈가 전보를 가져오기 조금 전에, 어머니가 내 편지들을 들고 방에 들어와, 무슨 딴생각을 하는 양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침대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나를 혼자 있게 하려고 곧 물러가면서, 방을 나서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어머니의 자잘한 술책에 익숙하고, 남을 기쁘게 해 주려는 그 마음을 암호의 열쇠로 삼기만 하면 잘못 짚을 걱정 없이 언제나 그 얼굴에서 진실을 읽어 낼 수 있음을 알던 나는,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우편물에 나를 위한 뭔가 흥미로운 것이 있는 게 틀림없어. 엄마는 내 놀라움이 완전하도록, 또 미리 알려 주어 남의 기쁨을 반으로 줄여 놓는 사람들처럼 되지 않으려고, 저렇게 무심한 척하시는 거야. 그리고 곁에 머무르지 않으신 건, 내가 자존심 때문에 느낄 기쁨을 감추어 그만큼 덜 실컷 느끼게 될까 봐 걱정하시는 거고.” 그러는 사이 어머니는 문께에 이르러, 전보를 손에 든 채 방으로 들어오던 프랑수아즈와 마주쳤다. 프랑수아즈가 전보를 내게 건네자마자, 어머니는 놀라고 마음이 상하고 어리둥절해하는 그녀를 억지로 돌려세워 방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프랑수아즈는 자기 직분이 낮이든 밤이든 아무 때나 내 방에 들어와 마음 내키면 눌러앉을 특권을 준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그녀의 얼굴에서는, 놀라움과 노여움이 초월적인 연민과 철학적인 조소가 어린 어둡고 끈적한 미소 아래로, 상처 입은 자존심이 제 상처를 아물리려 분비해 낸 그 끈끈한 진액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스스로 멸시당한다고 느끼지 않으려고, 그녀는 우리를 멸시했다. 또한 그녀는 우리를 주인, 곧 변덕스러운 족속이라 여겼으니, 지혜로 빛나기는커녕 영리한 사람들이며 하인들에게 두려움을 안겨 군림하기를 즐기며, 제가 주인임을 내보이려 터무니없는 일거리를, 이를테면 집안에 병자가 있을 때 물을 끓이라느니, 젖은 걸레로 내 방바닥을 닦으라느니, 그러고는 정작 그들이 눌러앉으려던 바로 그 순간에 방을 나가라느니 하는 일을 시키는 족속이라 여겼다. 엄마는 내가 놓치지 않도록 우편물을 내 곁에 두고 갔다. 그러나 보아하니 신문뿐이었다. 아마 내가 흠모하는 어느 작가의 글이 실렸을 테고, 그는 좀처럼 글을 쓰지 않으니 내게 뜻밖의 기쁨이 되리라. 나는 창가로 가서 커튼을 걷었다. 파리하고 안개 낀 햇빛 위로 하늘이 온통 붉었으니, 같은 시각 부엌에서 갓 지핀 불이 그러하듯 붉었고, 그 광경은 나를 희망으로, 그리고 기차에서 밤을 지새우고 볼이 발그레한 우유 배달 소녀를 보았던 그 시골의 작은 역에서 깨어나고 싶은 그리움으로 가득 채웠다.
그러는 사이, 들어갈 권리가 있다고 여기던 내 방에서 쫓겨난 데 분이 난 프랑수아즈가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기막힐 노릇이 있나, 세상에 나는 걸 두 눈으로 본 아이를. 하기야 그 어머니가 낳을 적에야 내가 못 봤지. 그래도 내가 이 도련님을 처음 알았을 땐, 아무리 많이 잡아도 태어난 지 다섯 해도 안 됐더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