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제2장: 포르슈빌 양 ②

6권 · 제2장: 포르슈빌 양

나는 피가로를 펼쳤다. 이런 짜증스러운 일이! 맨 첫머리 기사가, 내가 신문사에 보냈으나 실리지 않았던 그 기사와 똑같은 제목을 달고 있었다. 게다가 제목만 같은 게 아니라… 어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낱말들이 여럿 있었다. 이건 정말 너무했다. 편지를 써서 항의해야겠다. 그런데 그저 몇 낱말만이 아니라, 통째로 다 그대로였고, 발밑에는 내 서명이 있었다. 마침내 내 기사가 실린 것이었다! 그러나 이 무렵 벌써 노쇠의 기미를 보이며 쉬 지치던 내 머리는, 이것이 내 기사임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듯, 한동안 더 그렇게 따져 나갔으니, 마치 노인이 한번 시작한 동작을, 설령 더는 필요치 않더라도, 설령 당장 물러서야 마땅할 뜻밖의 장애물이 앞을 막아 위험해지더라도, 끝까지 마무리 짓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 나는, 신문이란 삶의 영적인 양식임을, 새벽녘 어스레한 아침 공기 속에서 인쇄기에서 갓 나와 아직 따뜻하고 축축한 채로, 주인에게 아침 커피와 함께 가져다주는 하녀들에게 배달되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만 개이고, 저마다에게는 한결같으면서도 헤아릴 수 없이 온 집집마다 한꺼번에 스며드는, 그 기적 같은, 스스로 불어나는 양식임을 곰곰이 헤아려 보았다.

내가 손에 쥔 것은 그 신문의 어느 한 부가 아니라, 만 부 가운데 아무 것이나 하나이며, 그저 나를 위해 쓰인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쓰인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다른 집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정확히 헤아리려면, 나는 이 기사를 그 지은이로서가 아니라 신문의 여느 독자 가운데 하나로서 읽어야만 한다. 내가 손에 쥔 것은 그저 내가 쓴 것이 아니라, 그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마음속에 육화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읽으려면, 나는 한순간 그 지은이이기를 그치고, 그저 피가로의 독자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첫 번째 불안이 밀려왔다. 미리 귀띔받지 못한 독자가 이 기사를 알아볼까? 나는 그 귀띔받지 못한 독자가 그러하듯 무심히 신문을 펼치며, 오늘 아침 내 신문에 무엇이 실렸는지 모르는 척, 사교란과 정치 소식부터 서둘러 들여다보려는 척까지 한다. 그러나 내 기사가 하도 길어서, 그것을 피해 가려는 내 눈이 (진실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또 요행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려,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일부러 아주 천천히 수를 세듯) 훑어보는 사이에 그 한 조각을 붙들고 만다. 하지만 첫 기사를 눈여겨보고 심지어 읽기까지 하는 독자들 가운데 많은 이는 서명을 눈여겨보지 않는다. 나 자신도 어제 첫 기사를 누가 썼는지 도무지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이제 나는 앞으로는 언제나 지은이의 이름까지 챙겨 읽으리라 다짐한다. 그러나 정부를 배신하지 않음으로써 애인의 정절을 믿으려는 질투 어린 연인처럼, 나는 서글프게 헤아린다. 앞으로 내가 기울일 관심이 남들의 맞갚는 관심을 강요하지는 못하리라고. 게다가 사냥을 나가는 이들도 있고, 서둘러 집을 나선 이들도 있다. 그래도 결국 그들 가운데 몇몇은 읽을 것이다. 나도 그들이 하는 대로, 읽기 시작한다. 이 기사를 읽는 많은 이들이 그것을 형편없다 여기리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막상 읽어 나가노라면 낱말 하나하나가 내게 전하는 뜻이 종이 위에 그대로 찍혀 있는 것만 같아, 다른 독자들이 저마다 눈을 뜨는 순간 내가 보는 이미지를 곧바로 보지 않으리라고는 믿을 수가 없으니, 지은이의 생각이 독자에게 곧이곧대로 전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실은 독자의 마음속에 다른 생각이 빚어지는데도, 마치 제가 내뱉은 바로 그 낱말이 전화선을 타고 나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순진하게 말이다. 여느 독자이고자 하는 바로 그 순간, 내 마음은 그 지은이로서, 내 기사를 읽을 이들의 태도를 취한다. 게르망트 가 블로크의 마음에 들 만한 몇몇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대신 블로크라면 코웃음 쳤을 어떤 소감에는 재미있어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앞선 독자가 그냥 지나친 듯한 대목마다 새로운 예찬자가 나타나면서, 기사 전체는 독자들의 무리에 의해 구름 위로 떠받들어졌고, 그리하여 더는 그것을 파헤칠 필요조차 없던 내 자신에 대한 불신을 이겨 냈다. 사실인즉, 한 편의 기사가 지니는 값은, 아무리 뛰어난 것이라 해도, 의회 속기록의 저 대목들이 지니는 값과 같다. 거기서 장관이 내뱉은 “두고 봅시다!”라는 말은, 오직 이런 판에 박힌 틀 속에 실림으로써만 그 온갖 무게를 얻는다. 각료회의 의장 겸 내무·종교부 장관: “두고 봅시다!” (극좌파에서 아우성. 좌파와 중도파에서 “옳소, 옳소!”) 그 아름다움의 태반은 독자들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 유명한 「월요한담」조차 벗어나지 못한, 이런 부류의 글이 지닌 원죄가 바로 이것이니, 그 값어치가 독자에게 남기는 인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합성된 비너스라, 지은이의 생각에만 머문다면 우리는 그 잘려 나간 팔 하나밖에 갖지 못하니, 그것은 오직 독자들의 마음속에서만 온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들 속에서 그것은 완성을 얻는다. 그리고 군중이란, 아무리 가려 뽑힌 군중이라도 예술가는 아니어서, 그것이 기사에 찍는 이 마지막 인준의 도장에는 언제나 얼마간 속된 요소가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생트뵈브는 어느 월요일, 여덟 기둥 달린 침대에 누운 수아뉴 부인콩스티튀시오넬에 실린 자기 글을 읽으며, 그가 오래도록 흐뭇해하던, 그러나 글의 파급력을 넓히려 굳이 끼워 넣는 것이 상책이라 여기지 않았던들 어쩌면 그의 붓끝에서 결코 흘러나오지 않았을 어느 멋들어진 구절에 감탄하는 모습을 그려 볼 수 있었으리라. 필경 재상은 그것을 손수 읽고서, 우리가 조금 뒤 그의 오랜 벗을 찾아뵐 때 그 이야기를 꺼낼 것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마차로 그녀를 데리고 나서면서, 회색 판탈롱 차림의 노아유 공작은 사교계에서 그 글을 어떻게들 여겼는지 그녀에게 일러 줄 터였다. 데르부빌 부인이 흘린 한마디가 이미 그녀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그렇게, 같은 시각, 그 많은 사람들에게, 내 생각이, 혹은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내 생각을 대신하여 내 이름의 되풀이가, 이를테면 내 인격을 드높인 암시가, 그들에게 밝아 오는 것을 보았으니, 그 새벽은, 바로 그 순간 창마다 붉게 물들던 그 헤아릴 수 없는 새벽보다 더 큰 힘과 벅찬 기쁨으로 나를 가득 채웠다.

나는 블로크가, 게르망트 가, 르그랑댕이 저마다 차례로 문장마다 거기 담긴 이미지를 끄집어내는 모습을 보았다. 여느 독자이고자 애쓰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지은이로서 읽되, 지은이로서만 읽는 것은 아니다. 내가 되고자 하는 그 불가능한 존재가 내게 가장 유리할 만한 온갖 상반된 요소를 두루 아우르도록, 만일 내가 지은이로서 읽는다면, 나는 독자로서 나 자신을 판단하되, 글 속에 담아내려 애쓴 이상과 그 글에서 맞닥뜨리는 사람이 느낄 법한 어떤 거리낌도 없이 그리한다. 내 기사의 저 문장들은, 써 내려갈 적에는 내 생각에 견주어 그토록 빛바래고, 조화롭고 투명한 내 심상에 견주어 그토록 뒤엉키고 흐리며, 내가 미처 메우지 못한 빈틈으로 그토록 가득해서, 그것을 읽는 일이 내게는 고문과도 같았고, 오직 내 무능과 고칠 길 없는 재능의 결핍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억지로 독자가 되어, 나를 비평하는 그 괴로운 소임을 남들에게 떠넘기고 나니, 적어도 내가 쓴 것을 처음 읽으며 애써 이루려던 것을 말끔히 쓸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 나는 그 기사를, 다른 누군가가 쓴 것이라 애써 상상하며 읽었다. 그러자 내 모든 심상이, 모든 소감이, 모든 형용이, 그 자체로, 내 의도에 제동을 걸었던 기억일랑 떨쳐 낸 채, 그 광채와 폭과 깊이로 나를 매혹했다. 그리고 너무 두드러진 어떤 허점이 여느 놀란 독자의 마음속에 숨어드는 것을 느낄 때면, 나는 속으로 말했다. “흥! 독자가 그런 걸 어찌 알아채겠나, 저기 뭔가 빠졌군,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젠장, 성에 안 차면 어쩌라고! 그들이 여느 때 보던 것보다 근사한 대목이 얼마든지 있는걸.” 그리하여 나를 떠받쳐 주는 이 만 겹의 인준에 기대어, 나는 그 순간 읽고 있던 기사에서, 내가 쓴 글이 나 자신에게만 말을 건넬 적에 품었던 불신만큼이나 큰, 내 힘에 대한 확신과 내 재능에 대한 희망을 길어 올렸다.

이 위안이 되는 읽기를 마치기가 무섭게, 내 원고를 차마 다시 읽을 엄두조차 못 냈던 나는 당장 그것을 다시 읽고 싶어졌으니, 제 손으로 쓴 묵은 기사만큼 “한 번 읽고 나면 또 읽을 수 있다”는 말이 꼭 들어맞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는 프랑수아즈를 내보내 새 신문을 몇 부 더 사 오게 해서, 벗들에게 주려는 것이라고 그녀에게는 말하되, 실은 내 생각이 불어나는 그 기적을 손끝으로 만져 보고, 또 마치 방금 피가로를 펼친 다른 사람이라도 된 양 다른 한 부에서 똑같은 문장들을 읽어 보려는 것이라 마음먹었다. 마침 게르망트가 사람들을 못 본 지도 어지간히 오래되었으니, 이튿날 그들을 찾아뵈어야 했다. 생루에게 전보를 쳤을 때 데포르슈빌 을 만나리라는 기대에 그토록 마음 졸이며 벼르던 그 방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사람들이 내 기사를 어떻게 여기는지 알아내리라. 나는, 내가 그토록 기꺼이 파고들고 싶었던 어느 방의 여자 독자를 하나 그려 보았으니, 신문은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내 생각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내 이름만은, 나에게 바치는 헌사인 양 그녀에게 실어다 줄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이가 우리에게 바치는 이런 헌사가 우리 마음을 홀리지 못함은, 우리가 파고들 수 없는 어떤 정신의 생각이 우리 정신에 가닿지 못함과 같다. 다른 벗들에 관해서는, 만일 내 건강이 계속 나빠져 그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된다면, 그들에게 계속 편지를 써서 그런 식으로나마 그들에게 닿고, 행간으로 그들에게 말을 건네고, 내 생각을 나누고, 그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마음속에 받아들여지는 것도 즐거운 일이리라 스스로 타일렀다. 이렇게 스스로를 타이른 것은, 예전에는 사교 관계가 내 일상 속에 자리 잡고 있던 터라, 그것이 더는 끼어들지 않을 미래가 나를 불안하게 했기 때문이며, 또 내 벗들의 관심을 나에게 붙들어 매고 어쩌면 그들의 감탄까지 자아내게 해 줄 이 방편이, 내가 다시 그들을 만나러 다닐 만큼 건강해질 그날까지 나를 달래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타일렀으나,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관심을 내 기쁨의 대상으로 그려 보기를 택한다 한들, 그 기쁨은 그들 자신은 내게 줄 수 없는, 내면의, 정신적인, 궁극의 기쁨이며, 내가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서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글을 쓰는 데서라는 것을. 또 만일 내가 그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보려는 희망에서, 그들이 나를 더 잘 알아주도록, 사교계에서 더 나은 자리를 마련하려는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한다면, 어쩌면 글쓰기라는 그 행위가 내 안에서 그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죄다 없애 버리리라는 것을, 그리고 문학이 어쩌면 사교계에서 내게 마련해 줄 그 자리를 나는 더는 누리고 싶어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내 기쁨은 더는 사교계에 있지 않고 문학에 있을 터이기에.

점심을 든 뒤 내가 게르망트 부인 댁으로 내려간 것은, 생루의 전보로 그 인격의 태반을 벗겨 내린 데포르슈빌 을 위해서라기보다, 공작부인 그 자신에게서, 내 기사가 피가로의 대중, 곧 구독자와 구매자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는지 가늠하게 해 줄 그 독자들 가운데 하나를 찾아내려는 바람에서였다. 그렇다고 게르망트 부인을 만나러 가는 일이 기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녀의 집이 내게 다른 모든 집과 다르게 여겨지는 까닭은 그토록 오래 내 상상 속을 떠돌았기 때문이라고 아무리 스스로 타일러 본들, 그 다름의 까닭을 안다고 해서 그 다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게르망트라는 이름은 내게 여러 모습으로 존재했다. 내 기억이 마치 주소록에 적어 두듯 그저 적바림해 둔 그 모습에는 아무런 시정도 서려 있지 않았으나, 더 오래된 모습들, 내가 아직 게르망트 부인을 알지 못하던 시절로 거슬러 오르는 그 모습들은, 특히 한동안 그녀를 보지 못하여, 사람의 낯을 한 이의 눈부신 빛이 그 이름의 신비로운 광채를 꺼뜨리지 않을 때면, 내 안에서 다시 되살아나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금 게르망트 부인의 집을 현실의 테두리 너머에 있는 무언가로 떠올리기 시작했으니, 마치 내 어린 날 꿈속의 안개 낀 발베크를 다시 떠올리듯, 그 뒤로 그 여행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양, 또 한 번도 타 본 적 없다는 양 1시 22분 기차를 다시 떠올리듯 했다. 나는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 앎을 한순간 잊었으니, 우리가 이따금 사랑하는 벗을 떠올리며 한순간 그가 죽었음을 잊는 것과 같았다. 그러다 공작부인 댁 현관에 발을 들여놓자 현실의 관념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그 집이 내게는 현실과 꿈이 맞닿는 실제의 접점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스물네 시간 동안 생루가 내게 이야기한 그 처녀라고 여겨 온 금발의 처녀를 보았다. 나를 자기에게 “다시 소개해” 달라고 공작부인에게 청한 이가 바로 그녀였다. 그리고 정말로, 내가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녀를 퍽 잘 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공작부인은 “어머! 당신은 전에 포르슈빌 을 만난 적이 있잖아요” 하고 말하며 그 느낌을 흩어 놓았다. 나로 말하자면 오히려 그런 이름의 처녀에게 소개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 만약 그랬다면 분명 강한 인상이 남았을 터였다. 오데트의 연애와 스완의 질투에 관한 지난 이야기를 전해 들은 뒤로 그 이름은 내 기억에 그토록 친숙했기 때문이다. 이름을 두고 내가 저지른 이중의 착각, 곧 “드 로르주빌”을 “데포르슈빌”로 기억한 것과, 실제로는 “포르슈빌”이던 것을 “데포르슈빌”로 재구성한 것 자체는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잘못은 사물이 대개 실제 그대로 나타나고, 이름은 쓰인 그대로, 사람은 사진과 심리가 우리에게 불변의 관념으로 주는 그대로 나타나리라고 여기는 데 있다. 사실 우리가 평소에 지각하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계를 온통 뒤죽박죽으로 보고, 듣고, 떠올린다. 우리는 어떤 이름을 들은 대로 되풀이하다가, 경험이 그 잘못을 바로잡아 주고 나서야 고치는데, 그런 일이 늘 일어나지도 않는다. 콩브레에서는 모두가 스물다섯 해 동안 프랑수아즈에게 사즈라 부인 이야기를 했건만 프랑수아즈는 여전히 “사즈랭 부인”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렇게 한 것은, 그녀에게 몸에 배어 있고 우리가 반박하면 오히려 더 굳어지곤 하던, 자기 오류에 대한 저 의도적이고 자랑스러운 고집 때문이 아니었다. 그 고집이야말로 그녀가 생탕드레데샹의 프랑스에 스스로 덧붙인 전부였다(1789년의 평등 원칙 가운데 그녀가 요구한 시민권은 오직 하나, 우리처럼 낱말을 발음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hôtel”, “été”, “air”가 여성형이라고 우기는 권리였다). 그저 그녀에게는 정말로 여전히 “사즈랭”이라고 들렸기 때문이다.2

바로 “삶”이라 할 이 끝없는 오류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우주뿐 아니라 사회적 우주, 감정의 우주, 역사의 우주 따위에도 그 천 가지 형상을 부여한다. 뤽상부르 대공비는 수석 판사의 아내 눈에는 창녀나 다를 바 없는데, 사실 그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조금 더 중요한 것은, 오데트가 스완에게는 까다로운 여자여서, 그가 그 위에 온갖 소설을 지어 올렸다가 제 착각을 깨달을 때 한층 고통스러워지는 일이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독일인의 눈에는 프랑스인이 오로지 복수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에 대해 형체 없고 조각난 환영만을 지니며, 그것을 제멋대로의 관념을 이어 붙여 채워 넣고, 그런 관념은 위험한 암시를 낳는다. 그러므로 내가 포르슈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나는 벌써 그녀가 그토록 자주 들어 온 그 포르슈빌과 친척인지 자문하고 있었다) 놀랄 이유가 조금도 없었을 텐데, 그 금발의 처녀가 대뜸, 아마도 제게 거북했을 질문들을 눈치껏 앞질러 막으려는 마음에서, 내게 이렇게 말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러했으리라. “오래전에 저를 아주 잘 아셨던 걸 기억 못 하시는군요… 저희 집에 오시곤 했잖아요… 당신 친구 질베르트 말이에요. 저를 못 알아보시는 게 보였어요. 저는 당신을 금방 알아봤는데.” (그녀는 마치 응접실에서 나를 금방 알아본 것처럼 이렇게 말했지만, 실은 거리에서 나를 알아보고 인사한 것이었고, 나중에 게르망트 부인이 내게 일러 주기를, 그녀가 아주 이상하고 별난 일이라며, 내가 그녀를 창녀로 잘못 알고 뒤따라가 스치듯 지나쳤다고 이야기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왜 포르슈빌 이라 불리는지 나는 그녀가 방을 나간 뒤에야 알게 되었다. 스완이 죽은 뒤, 그 깊고 오래고 진심 어린 슬픔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오데트는 대단히 부유한 과부가 되어 있었다. 포르슈빌은 여러 시골 저택을 오래 돌며 제 집안이 그 아내를 인정하리라는 것을 확인한 끝에 그녀와 결혼했다. (집안은 얼마간 이의를 제기했으나, 곤궁하던 친척이 비교적 궁핍한 처지에서 부유함으로 옮겨 가려는 마당에 그 부양비를 대지 않아도 된다는 실질적 이득에 굴복했다.) 그 얼마 뒤, 여러 친척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며 막대한 재산이 그 머리 위에 쌓인 스완의 어느 삼촌이 죽으면서 전 재산을 질베르트에게 남겼고, 그리하여 그녀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상속녀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이 무렵은 드레퓌스 사건의 여파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교계에 더 왕성히 침투하는 흐름과 나란히 반유대주의 운동이 일어나던 때였다. 정치가들이 그 오심(誤審)의 밝혀짐이 반유대주의에 치명타를 가하리라 생각한 것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당분간은 오히려 사회적 반유대주의가 그로 인해 더 고조되고 격화되었다. 여느 보잘것없는 귀족이 다 그렇듯 집안끼리 나눈 대화에서 제 이름이 라로슈푸코 가문보다 더 유서 깊다는 확신을 얻은 포르슈빌은, 유대인의 과부와 결혼함으로써 거리에서 창녀를 주워 가난과 진창에서 건져 내는 백만장자와 똑같은 자선을 베푼 셈이라 여겼다. 그는 그 은혜를 질베르트에게까지 넓힐 참이었으니, 그녀의 혼삿길은 그 수백만 재산 덕에 순조로우면서도 “스완”이라는 그 우스꽝스러운 이름 탓에 가로막혀 있었다. 그는 그녀를 입양하겠노라 선언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게르망트 부인은, 스완이 결혼한 뒤 그 딸도 아내도 만나기를 거절해 벗들을 놀라게 했으니, 하기야 그녀는 그런 놀라움을 즐기고 또 곧잘 자아내곤 했다. 이 거절은 한층 더 잔인해 보였는데, 스완에게 오랫동안 오데트와의 결혼을 가능해 보이게 한 것이 바로 제 딸을 게르망트 부인에게 소개하리라는 전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그토록 오랜 인생 경험을 쌓은 그로서는,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이런 그림들이 갖가지 이유로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땅히 알았어야 했다. 그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그가 그 소개를 이루지 못한 것을 좀처럼 아쉬워하지 않게 만든 것이었다. 그 이유란 이러하다. 그 심상이 무엇이든, 이를테면 해 질 녘에 먹을 송어 한 마리가 붙박이로 지내던 사람에게 기차를 타기로 결심하게 하는 것에서부터, 어느 저녁 눈부신 마차를 그녀의 문 앞에 세워 계산대의 도도한 여인을 놀라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파렴치한 자에게 살인을 저지르거나 부유한 친척의 죽음을 바라기로 결심하게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가 대담하냐 게으르냐에 따라, 관념의 사슬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느냐 첫 고리만 어루만지며 머무느냐에 따라, 우리가 그 심상에 이르도록 해 줄 행위, 그 행위가 여행이든 결혼이든 범죄든… 그 행위는 우리를 너무도 깊이 바꿔 놓아, 우리는 애초에 그 행위를 하게 만든 이유에 더는 아무런 중요성도 두지 않게 된다. 심지어 그 사람이, 당시에는 아직 여행자도 남편도 범죄자도 은둔자도 아니던 그 사람이 그렸던 심상이 그의 마음에 두 번 다시 떠오르지 않는 일마저 있다(명성을 꿈꾸며 일에 자신을 붙들어 매고서는 바로 그 순간 명성에 대한 온갖 욕망을 떨쳐 버린 은둔자처럼). 게다가 헛되이 행동하고 싶어 한 것처럼 보이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고집까지 셈에 넣더라도, 햇빛의 효과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는 것, 추위를 느끼는 순간 우리가 바깥의 송어가 아니라 난롯가의 수프 한 그릇을 바라리라는 것, 우리 마차가, 어쩌면 전혀 다른 이유로 우리를 매우 아끼던 그 계산대 여인의 마음을 움직이기는커녕 오히려 그 갑작스러운 부유함이 그녀에게 의심을 불러일으키리라는 것은 능히 있음 직한 일이다. 요컨대 우리는 스완이 결혼한 뒤 제 아내와 딸이 봉탕 부인과 맺는 교제를 무엇보다 중히 여기는 것을 보았다.

공작부인이 스완 부인과 스완 을 결코 자기에게 소개하지 못하게 결심하도록 만든, 사교 생활을 바라보는 게르망트가 특유의 방식에서 나온 온갖 이유에, 우리는 사랑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연인들에게서 비난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사랑으로 설명되는 것으로부터 초연히 물러서는 저 흐뭇한 자신감을 덧붙일 수 있다. “어머! 나는 그런 일에 끼어들지 않아요, 가엾은 스완이 어리석은 짓을 하고 제 인생을 망치는 게 재미있다면 그건 그이 사정이죠. 하지만 그런 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법이라, 큰 화로 끝날 수도 있어요. 저들 일은 저들이 알아서 풀게 두겠어요.” 이것이 바로, 스완 자신이 오래전 오데트에 대한 사랑이 식고 더는 작은 패거리의 일원이 아니게 되었을 때, 베르뒤랭 사람들에 관해 내게 권하던 저 Suave mari magno이다. 그것은, 자기가 느끼지 못하는 정념들, 그리고 그 정념들이 얽어내는 복잡한 처신에 대한 제삼자의 판단을 그토록 현명하게 만들어 주는 모든 것이다.

게르망트 부인은 과연 스완 부인과 스완 을 배척하는 데 모두를 놀라게 할 만한 끈기를 쏟았다. 몰레 부인과 마르상트 부인이 스완 부인과 가까이 지내며 숱한 사교계 부인들을 그녀에게 데려오기 시작했을 때에도, 게르망트 부인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을 뿐 아니라, 다리를 끊어 버리고 사촌인 게르망트 대공비도 자기를 본받게 하려고 손을 써 두었다. 루비에 내각 시절 독일과 전쟁이 나리라 여겨지던, 그 위기의 가장 엄중한 나날 가운데 하루, 나는 게르망트 부인의 댁에서 브레오테 와 저녁을 들러 갔다가 공작부인이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녀가 늘 정치에 손을 대고 있으니 전쟁을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려는 것이려니 짐작했다. 언젠가 그녀가 식탁에서 그토록 수심에 잠겨 단음절로만 겨우 대답하기에 누군가 조심스레 그 근심의 까닭을 묻자, 그녀가 자못 엄숙한 낯빛으로 “중국이 걱정이에요” 하고 답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잠시 뒤 게르망트 부인은, 내가 선전포고에 대한 두려움 탓으로 여겼던 그 근심스러운 기색을 스스로 나서서 설명하며 브레오테 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리에나르가 스완네를 사교계에 앉히려 든다지 뭐예요. 내일 당장 마리질베르를 찾아가 그걸 막게 도와달라고 해야겠어요. 안 그러면 사교계라는 게 남아나질 않을 테니까요. 드레퓌스 사건이야 좋다 이거예요. 하지만 그러다간 길모퉁이 식료품집 여편네가 제 입으로 국민주의자라 하고서는 그 값으로 자기를 우리 집에 초대해 달라고 할 판이라니까요.” 그리고 나는, 내가 들으리라 기대한 말에 견주어 그토록 가벼운 이 말에, 마치 러일전쟁의 최신 소식을 얻으려 피가로의 늘 보던 난을 펼쳤다가 그 대신 모르트마르 에게 결혼 선물을 보낸 사람들의 명단을 발견하는 독자와 같은 놀라움을 느꼈다. 귀족의 결혼이 지닌 중대성이 육지와 바다의 전투를 신문 맨 끝으로 밀어낸 셈이었다. 게다가 공작부인은, 온갖 정상적 한도를 넘어 밀어붙인 이 끈기에서 자기 자존심을 채울 만족까지 얻어 낼 참이었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드러냈다. “바발 말로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우리 둘이 파리에서 가장 멋쟁이래요. 스완 부인과 스완 이 우리에게 인사하도록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그이와 나, 딱 둘뿐이라서요. 멋이란 스완 부인을 모르는 데 있다고 그이가 장담하거든요.” 그러고서 공작부인은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맺었다.

그러나 스완이 죽자, 그의 딸을 모른 체하겠다는 그녀의 결심은 게르망트 부인에게 그것이 안겨 주던 온갖 자존심의, 독립의, 자율의, 박해의 만족을 더는 채워 주지 못하게 되었으니, 그 만족은 자기가 그에게 맞서고 있다는, 그가 자기 결정을 철회하게 만들지 못한다는 절묘한 감각을 그녀에게 안겨 주던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남과 함께 끝나 버린 것이다.

그리하여 공작부인은,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적용되기에 자기가 마음대로 처신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다른 포고들을 내리는 일로 옮겨 갔다. 그녀는 스완의 딸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누군가 그 처녀 이야기를 꺼내면 공작부인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어느 고장에 대해서처럼 호기심을 느꼈고, 그 호기심은 스완의 주제넘음에 맞서 버티고 싶다는 욕구로도 더는 억눌리지 않았다. 게다가 하나의 감정이 이루어지는 데에는 그토록 여러 다른 감정이 이바지할 수 있는 법이라, 이 관심 속에 스완에 대한 애정의 여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하기야, 어느 사회 계층에서나 세속적이고 경박한 삶은 우리의 감수성을 마비시키고 죽은 이를 되살릴 힘을 앗아 가는 법인데, 공작부인은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또한 이 편이 더 드문 일이지만 조금이나마 미워하려면, 상대가 몸소 곁에 있어야 하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진짜 게르망트답게 그녀는 그런 임재를 오래 끄는 데 능했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이들에게 품은 다정한 마음은, 그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의 이런저런 행동이 불러일으킨 짜증으로 미뤄져 있다가 그들이 죽은 뒤에 되살아나곤 했다. 그러면 그녀는 거의 속죄하고 싶은 마음마저 느꼈으니, 이제는 그들을, 비록 아주 어렴풋하게나마, 오직 그들의 좋은 점만 지닌 모습으로, 살아 있을 때 그녀를 짜증 나게 하던 자잘한 만족과 자잘한 허영을 벗겨 낸 모습으로 그려 보았기 때문이다. 이는 게르망트 부인의 경박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처신에 이따금, 비천함이 많이 섞이기는 해도, 뚜렷이 고귀한 무언가를 부여했다. 인류의 사분의 삼이 산 자에게 아첨하고 죽은 자에게는 아랑곳하지 않는 반면, 그녀는 살아 있을 때 모질게 굴었던 사람들이 자기가 해 주기를 그토록 바랐을 일을 그들이 죽은 뒤에 곧잘 해 주곤 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