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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④

1권 · 서곡

부모님이 스완을 배웅하며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대문이 덜컹거리는 소리로 그가 정말 가버린 것을 확인하자, 나는 살금살금 창가로 다가갔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바닷가재가 맛있었는지, 그리고 스완 가 커피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좀 드셨는지 묻고 있었다. “제 입에는 그저 그랬어요.” 엄마가 말하고 있었다. “다음번에는 다른 맛으로 해봐야겠어요.”

“스완이 어쩌면 저렇게 변했는지 몰라.” 대고모가 말했다. “아주 늙다리가 다 됐어!” 대고모는 스완을 늘 똑같은 청년기의 모습으로만 보아온 터라, 그가 문득 자기가 여전히 그에게 부여하고 있던 나이보다 덜 젊어 보이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스완에게서 그 비정상적이고 지나치며 망측한 노화를 알아차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은 오직 독신자에게서만, 곧 내일이 없는 그 위대한 하루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길 수밖에 없는 부류의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노화였다. 그런 이에게 그 하루는 아무런 약속도 품고 있지 않아, 그 새벽부터 순간들이 자손에게 나뉘어 물려지는 일 없이 그저 꾸준히 쌓여만 가기 때문이었다.

“내 생각엔 그 몹쓸 아내 때문에 속깨나 썩고 있을 게야. 콩브레 사람이라면 다 알듯이, 그 여자는 어떤 샤를뤼스 씨라는 사람과 ‘함께 산다’지 않니. 온 동네가 다 아는 이야기야.”

어머니는 그럼에도 그가 요즈음 훨씬 덜 불행해 보이더라고 말했다. “게다가 눈을 훔치고 이마에 손을 쓸어 넘기는, 제 아버지를 꼭 빼닮은 그 버릇도 예전만큼 자주 하지 않아요. 제가 보기엔 마음속 깊은 데서는 그이가 이제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무렴, 사랑하지 않고말고.” 할아버지가 대답했다. “오래전에 그 일로 내게 편지를 한 통 보냈는데, 나는 짐짓 못 본 척했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은커녕 그의 심정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 아 참! 자네들 둘, 아스티 술은 고맙다는 인사도 안 했지!” 할아버지는 처제들 쪽으로 돌아앉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우리가 인사를 안 했다고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저는 꽤 그럴듯하게 말을 건넸다고 생각하는데요.” 플로라 이모가 대답했다.

“그래, 언니가 참 잘 처리했어. 나는 그게 감탄스럽더라.” 셀린 이모가 말했다.

“하지만 너도 아주 예쁘게 잘했잖니.”

“응. 나는 ‘고마운 이웃’이라던 내 표현이 마음에 들었어.”

“뭐! 그걸 인사라고 하는 거야?”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나도 분명 듣기는 들었네만, 그게 스완더러 하는 말인 줄은 도무지 짐작도 못 했네. 그 사람도 그걸 알아차렸을 리 없을 거라고 장담하지.”

“원, 별말씀을. 스완이 바보도 아니고. 그이가 그 인사말을 알아들었을 거라고 나는 확신해요. 설마 내가 그이한테 병이 몇 개였는지 일러바치거나, 값이 얼마였는지 알아맞히기라도 하길 바라셨던 건 아니겠죠.”

아버지와 어머니만 남아 잠시 앉아 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말했다. “자, 이제 그만 올라가 잘까?”

“당신 좋으실 대로 해요, 여보. 하지만 저는 조금도 졸리지가 않네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커피 아이스크림 때문일 리는 없고요, 그게 이렇게 잠을 깨워둘 만큼 진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하인방에 불이 켜져 있네요. 가엾은 프랑수아즈가 저를 기다리느라 자지 않고 있나 봐요. 그러니 당신이 가서 옷을 벗는 동안 저는 그 애더러 제 옷의 뒷단추를 풀어달라고 해야겠어요.”

어머니는 현관에서 계단으로 통하는 격자문을 열었다. 이내 나는 어머니가 창문을 닫으러 이층으로 올라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가만히 복도로 나갔다. 심장이 어찌나 세게 뛰던지 몸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으나, 적어도 그것은 이제 불안이 아니라 두려움과 기쁨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나는 계단의 깊숙한 통로로 위를 향해 올라오는 불빛을, 엄마의 촛불에서 나오는 그 빛을 보았다. 이윽고 엄마 자신이 보였다. 나는 엄마에게 와락 몸을 던졌다. 한순간 엄마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깨닫지 못한 채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그 얼굴에 노여움의 빛이 어렸다. 엄마는 내게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나는 이보다 훨씬 가벼운 잘못으로도 여러 날씩 말 한마디 건네받지 못하고 지내곤 했다. 엄마가 한마디라도 건넨다는 것은 나와의 더 이상의 대화가 가능성의 범위 안에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 될 터였고, 그것은 어쩌면 내게 더욱 무섭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나를 기다리는 그런 벌에 비하면, 한낱 침묵이나 심지어 노여움조차 상대적으로 유치한 것임을 드러내는 셈이었으니까.

그때 엄마가 건네는 한마디는, 방금 해고를 통고하기로 마음먹은 하인과 이야기를 나눌 때의 그 거짓된 평온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리라. 또는 입대하러 떠나보내는 아들에게 건네는 입맞춤, 며칠 동안 화가 나 있을 뿐인 문제였다면 오히려 주어지지 않았을 그런 입맞춤을 암시하는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엄마는 아버지가 옷을 벗으러 갔던 화장실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었고, 나를 보면 아버지가 벌일 ‘한바탕 소동’을 피하려고, 노여움에 반쯤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저리 가거라. 아버지 눈에 얼빠진 애처럼 거기 서 있는 꼴을 보이지 말고!”

그러나 나는 다시 엄마에게 “와서 안녕히 주무시라 인사하게 해줘요!” 하고 애원했다. 아버지의 촛불에서 나온 불빛이 벌써 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서였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접근을 협박의 수단으로 삼기도 한 것이었다. 엄마가 끝내 버티다가는 아버지가 결국 나를 발견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아버지에게 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은 엄마가 내게 져주며 이렇게 말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네 방으로 돌아가 있어라. 내가 갈 테니.”

너무 늦었다. 아버지가 우리 앞에 들이닥쳤다. 나는 아무도 듣지 못했지만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난 이제 끝장이야!”

그렇지만 나는 끝장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내게 베푼 더 너그러운 헌장이 분명히 허락한 일들조차 늘 못 하게 막곤 했는데, 그것은 아버지가 ‘원칙’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의 눈에는 ‘인간의 권리’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상관없는 이유로,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내가 늘 다니던, 어찌나 규칙적이고 나를 위해 마련된 것이던지 그것을 빼앗는 일이 명백한 신의 위반이던 어떤 산책을 못 하게 막곤 했다. 또는 오늘 저녁에 그랬듯이, 정해진 시각보다 한참 전에 “이제 그만 올라가 자거라. 군말은 필요 없다!” 하고 딱 잘라 내뱉곤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그가 (할머니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원칙이 없었기에, 엄밀히 말해 그를 냉혹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잠깐 짜증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이윽고 엄마가 다소 난처해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자, 엄마에게 말했다. “그럼 애랑 같이 가구려. 방금 당신도 졸리지 않다고 했으니, 잠깐 애 방에 있어 주오. 나는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하지만 여보,” 어머니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제가 졸린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에요. 이 애를 이런 데 버릇 들이면 안 돼요…”

“버릇을 들이고 말고 할 것도 없소.” 아버지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 애가 괴로워하는 게 뻔히 보이잖소. 우리가 무슨 간수도 아니고. 그러다간 애를 병나게 만들 텐데, 그게 무슨 소용이겠소. 애 방에 침대가 둘 있으니, 프랑수아즈더러 당신이 쓸 큰 침대를 준비하라 이르고, 밤새 애 곁에 있어 주오. 나는 어쨌든 자러 가겠소. 나는 당신처럼 예민하지 않으니까. 잘 자오.”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란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나의 감상벽이라고 부르던 것이 그를 언짢게 만들었을 테니까. 나는 감히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우리 앞에 마주 선 채, 흰 잠옷 차림에 우람한 모습으로, 신경통을 앓기 시작한 뒤로 머리를 싸매곤 하던 분홍빛과 보랏빛의 인도산 캐시미어 목도리를 두르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스완 가 내게 준, 베노초 고촐리의 그림을 본떠 새긴 판화 속에서 사라에게 이삭에게서 떨어져 나오라 이르는 아브라함 같았다. 그날 밤 이후로 여러 해가 지났다. 내가 아버지의 촛불이 조금씩 기어오르는 것을 지켜보던 그 계단의 벽은 오래전에 헐렸다. 그리고 내 안에서도, 영원히 지속되리라 여겼던 많은 것들이 스러졌고, 새로운 구조물들이 일어서서, 그 시절의 나로서는 미처 내다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슬픔과 새로운 기쁨을 낳았으니, 이제는 지난날의 것들이 이해하기 어려워진 것과 꼭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애랑 같이 가구려” 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미 오래전 일이다. 내게 그런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그러나 요즈음 나는, 귀를 기울이면, 아버지 앞에서는 억누를 힘이 있었으나 엄마와 단둘이 남고서야 비로소 터져 나오던 그 흐느낌 소리를 점점 더 잘 붙잡을 수 있게 되었다. 실은 그 메아리는 한 번도 그친 적이 없었다. 다만 이제 내 둘레의 삶이 점점 더 고요해져가기에 그 소리가 새삼 들려오는 것일 뿐이니, 마치 낮 동안에는 거리의 소음에 너무나 효과적으로 잠겨 영영 멎어버린 줄로만 여겨지다가, 고요한 저녁 공기를 뚫고 다시 울려 퍼지는 저 수도원의 종소리처럼.

엄마는 그날 밤을 내 방에서 보냈다. 집에서 쫓겨나기를 각오하고 있을 만큼 무거운 죄를 방금 저지른 참인데, 부모님은 착한 행동의 보상으로도 결코 얻지 못했을 훨씬 큰 은혜를 내게 베풀어준 것이다. 이렇듯 더할 나위 없는 자비로 드러난 그 순간에조차, 나를 향한 아버지의 처사에는 여전히 어딘가 자의적이고 나의 자격 여부와는 무관한 데가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특성이었고 또한 그의 행동이 대체로 어떤 정연한 계획에 근거하기보다 그때그때의 편의에 좌우되곤 하던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나를 자러 보낼 때 보인 그 엄격함이라고 내가 부르던 것조차, 실은 어머니나 할머니의 태도보다 그런 이름에 덜 어울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점에서는 두 분보다 나와 더 다르던 아버지의 천성이, 그때까지 내가 저녁마다 얼마나 비참한지를, 어머니와 할머니는 잘 알고 있던 그 사실을, 아버지로 하여금 짐작하지 못하게 막아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분은 나를 충분히 사랑했기에, 내 신경의 예민함을 누그러뜨리고 내 의지를 굳세게 하도록 이겨내는 법을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그 괴로움을 차마 덜어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로 말하자면, 나를 향한 그의 애정은 또 다른 종류의 것이어서, 그가 그만한 용기를 보였을지 나는 의심스럽다. 내가 불행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가서 애를 달래주오” 하고 말했으니 말이다. 엄마는 밤새 내 방에 머물렀고, 내가 당연히 기대할 권리가 있던 그 어떤 것과도 그토록 다른 그 시간을, 나무람으로 망치고 싶지 않은 듯했다. 프랑수아즈가 (엄마가 내 곁에 앉아 내 손을 잡고 마음껏 울도록 내버려 두는 것을 보고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짐작하고서) 엄마에게 “그런데 마님, 어린 도련님이 무엇 때문에 우시는 건가요?” 하고 묻자,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프랑수아즈, 저도 제가 왜 우는지 모른단다. 신경 탓이지. 어서 내가 쓸 큰 침대를 준비하고 너는 가서 자거라.” 이리하여 처음으로 나의 불행은 더 이상 벌 받아야 할 잘못이 아니라, 내게는 아무 책임도 없는, 신경의 상태라는 이름으로 공인된 어쩔 수 없는 병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나는 이제 눈물의 쓰라림에 근심 어린 가책을 섞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얻었고, 앞으로는 죄 없이 울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한 프랑수아즈가 보는 앞에서, 인간다운 처우로 돌아간 이 순간이 적잖은 자랑스러움을 안겨주는 것을 느꼈다. 엄마가 내 방으로 올라오기를 마다하며 어서 자라고 쏘아붙이는 전갈을 보낸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처우가 나를 어른의 품위로 끌어올리고, 문득 일종의 슬픔의 사춘기로, 눈물로부터의 해방으로 데려다준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마땅히 행복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방금 자신에게는 분명 괴로웠을 첫 양보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 나를 위해 세워둔 이상에서 한 걸음 내려선 것이라는 생각이, 그리고 그 모든 용기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어머니가 스스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방금 내가 승리를 거두었다면 그것은 어머니를 상대로 거둔 것이며, 병이나 슬픔이나 노령이 그러할 수 있듯 나 역시 어머니의 의지를 느슨하게 하고 그 판단을 바꾸어놓는 데 성공한 것이라는 생각, 이 저녁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며 달력에 검은 날로 남으리라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지금 내게 그럴 용기가 있었다면,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니에요, 나는 엄마를 원하지 않아요.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그러나 나는, 할머니 천성의 뜨거운 이상주의를 어머니가 누그러뜨릴 때 쓰던 그 실천적 지혜를, 오늘날이라면 현실감각이라 부를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제 이미 일이 벌어진 이상 어머니는 아버지를 다시 성가시게 하기보다 내가 그 곁의 위로가 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놔두는 편을 택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확실히 그날 저녁 어머니의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나를 다정히 붙잡고 눈물을 그치게 하려 애쓰며 앉아 있던 그때, 다시금 젊음으로 빛나는 듯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내게는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었던 것처럼 여겨졌다. 어머니의 노여움이라면 내 어린 시절이 알지 못했던 이 새로운 다정함보다 견디기가 덜 힘들었을 터였다. 나는 불경하고 은밀한 손가락으로 어머니의 영혼에 첫 주름을 긋고, 그 머리에 첫 흰머리가 돋게 한 것만 같았다. 이 생각에 나의 흐느낌은 더욱 거세어졌고, 그때 나는 나에게 결코 지나친 애정을 내보인 적이 없던 엄마가, 문득 내 눈물에 무너져 자신의 눈물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내가 그것을 알아차린 것을 보고, 엄마는 미소 지으며 내게 말했다. “아이고, 우리 미나리아재비, 우리 카나리아 새끼, 이러다간 엄마까지 저처럼 바보로 만들겠구나. 자, 너도 잠이 안 오고 엄마도 잠이 안 오니, 이렇게 어리석게 계속 있을 게 아니라 무어라도 해야지. 네 책을 한 권 가져오마.” 그러나 내게는 거기 책이 한 권도 없었다. “할머니가 네 생일에 주시려는 책들을 지금 꺼내다 줄까? 다만 먼저 잘 생각해보렴. 그러면 그때 가서 새 책이 없어도 실망하면 안 된다.”

나는 더없이 기뻤고, 엄마는 책 꾸러미를 가지러 갔다. 그것을 싼 종이 너머로 나는 네모난 모양과 크기밖에는 분간할 수 없었지만, 이 짧고 어렴풋한 첫 눈길만으로도 그 꾸러미는 벌써 지난 설날의 그림물감 상자와 그 전해의 누에를 무색하게 만들 만했다. 그 안에는 La Mare au Diable, François le Champi, La Petite Fadette, 그리고 Les Maîtres Sonneurs가 들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할머니는 처음에 뮈세의 시집과 루소의 책 한 권, 그리고 Indiana를 골랐었다. 할머니는 가벼운 읽을거리를 사탕이나 과자만큼이나 몸에 해롭다고 여기면서도, 천재의 강한 숨결이 아이의 영혼 자체에 미치는 영향이, 신선한 공기와 시골 바람이 아이의 몸에 미치는 것보다 한결 더 위험하면서도 덜 생기를 북돋는 것임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게 주려던 책들의 이름을 들은 아버지가 할머니를 거의 실성한 사람 보듯 하자, 할머니는 내 선물이 제때 도착하지 못할 염려가 없도록 홀로 주이르비콩트의 서점까지 다시 다녀왔고 (몹시 무더운 날이어서, 할머니는 몸이 어찌나 상해 돌아왔던지 의사가 어머니에게 다시는 그런 식으로 할머니를 지치게 하지 말라고 당부할 정도였다), 거기서 조르주 상드의 전원소설 네 권으로 낙착을 보았던 것이다.

“얘야,” 할머니는 엄마에게 말했었다. “나는 잘 쓰이지 않은 것을 저 애에게 주는 일만은 스스로 용납할 수가 없었단다.”

실은 할머니는 지적인 유익이 조금도 없는 것을, 그중에서도 좋은 것들이 우리에게 세속적 재물의 메마른 만족이 아닌 다른 데서 즐거움을 찾도록 가르쳐줌으로써 베푸는 그 유익이 없는 것을, 무엇이든 사기로 좀처럼 마음먹지 못했다. 심지어 이른바 ‘실용적’이라는 종류의 선물을 누군가에게 해야 할 때, 안락의자나 식탁용 은기나 지팡이를 주어야 할 때에도, 할머니는 ‘골동품’을 골랐다. 오랜 세월 쓰이지 않은 탓에 실용의 자취가 그것들에서 지워져, 우리 자신의 일상적 필요에 쓰이기보다 오히려 옛사람들의 삶을 우리에게 일러주기에 알맞아졌다는 듯이. 할머니는 내 방에 옛 건축물이나 아름다운 고장의 사진이 걸리기를 바랐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사려는 순간이면, 그림의 소재가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지녔음에도, 사진이라는 기계적인 복제의 성질 탓에 그 안에 저속함과 실용성이 너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곤 했다. 할머니는 하나의 꾀를 부려, 그 상업적 진부함을 아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최소한으로 줄이려, 그 대부분을 여전히 예술인 무언가로 갈음하려, 말하자면 예술의 ‘두께’를 몇 겹 더 끼워 넣으려 했다. 이를테면 샤르트르 대성당이나 생클루의 분수나 베수비오 화산의 사진 대신, 할머니는 스완에게 어떤 대가가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적은 없는지 물어보고서, 코로가 그린 ‘샤르트르 대성당’의 사진, 위베르 로베르가 그린 ‘생클루의 분수’의 사진, 터너가 그린 ‘베수비오’의 사진을 내게 주기를 더 좋아했으니, 그것들이 예술의 저울에서 한 단계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가가 걸작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직접 복제하지 못하도록 막고 그 자리에 위대한 예술가를 대신 앉혔다 해도, 이제 그 예술가의 해석을 복제하는 대목에 이르면 사진가는 그 가증스러운 자리를 도로 차지했다. 그리하여 저속함과 또 한 번 셈을 치러야 했기에, 할머니는 그 접촉의 순간을 한층 더 미루려 애썼다. 할머니는 스완에게 그 그림이 판화로 새겨진 적은 없는지 물었고, 가능하다면 그 자체와는 별개로 어떤 유래의 흥취를 지닌 옛 판화를, 이를테면 복원으로 망가지기 전 레오나르도의 Cenacolo를 담은 모르겐의 판화처럼, 우리가 오늘날 더는 볼 수 없는 상태의 걸작을 보여주는 것을 더 좋아했다. 선물하는 기술을 이렇게 해석하는 이 방식의 결과가 언제나 흡족했던 것은 아님을 인정해야겠다. 석호를 배경에 두고 있다고 하는 티치아노의 소묘 한 점에서 내가 베네치아에 대해 그려본 관념은, 그 뒤 평범한 사진들에서 얻은 것보다 분명히 훨씬 부정확했다. 집안에서는 (대고모가 할머니를 향한 고발장을 꾸며보려 할 때면) 할머니가 젊은 부부든 나이 든 부부든 가리지 않고 선물한 안락의자들, 앉으려고 처음 몸을 대는 순간 받는 이의 무게에 곧장 무너져 내리던 그 의자들의 수를 이제 다 헤아릴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지난날의 어떤 멋들어진 장식이나 미소나 당당한 재기가 아직 어려 있는 가구라면, 그 튼튼함 따위에 너무 세세히 마음 쓰는 것을 천박한 일로 여겼으리라. 그리고 그런 가구에서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는 부분조차, 이제 우리에게 낯설어진 방식으로 그렇게 하는 까닭에, 할머니에게는, 우리 현대어의 거친 씀씀이에 그 날카로운 끝이 닳아버린 어떤 은유의 자취를 아직도 엿볼 수 있는 저 옛 말투들 가운데 하나처럼 매력적이었다. 바로 그와 똑같이, 할머니가 내 생일에 주려던 조르주 상드의 전원소설들은 골동 가구가 가득 들어찬 헛간과도 같아서, 쓰임에서 밀려났다가 이미지가 되어 되돌아온 표현들로, 이제는 시골 사투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그런 표현들로 그득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다른 책들보다 그 책들을 골라 산 것은, 마치 고딕식 비둘기장이나, 그 밖에 마음에 흐뭇한 정취를 자아내며 시간의 나라를 가로지르는 불가능한 여행을 향한 향수 어린 그리움으로 마음을 채워줄 어떤 골동을 갖춘 집을 얻는 편을 더 좋아했을 것과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내 침대 곁에 앉았다. 엄마가 고른 것은 François le Champi였는데, 그 불그스름한 표지와 알 수 없는 제목이 내 눈에는 그 책에 뚜렷한 개성과 신비로운 이끌림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진짜 소설이라고는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었다. 조르주 상드가 전형적인 소설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말은 François le Champi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미로운 무언가를 담고 있으리라 미리 상상하도록 나를 채비시켰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거나 연민에 젖게 하려는 대목에서의 이야기의 흐름,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거나 서글프게 하는, 그리고 조금만 경험이 쌓이면 소설의 ‘상투적 수법’으로 알아차릴 법한 어떤 표현 방식들이, 그때의 내게는 남달라 보였다. 내게 새 책이란 서로 비슷한 여러 물건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짝을 이룰 데 없고 저 자신 말고는 존재의 이유를 지니지 않은 하나의 개별적인 사람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François le Champi의 그 독특한 본질에서 피어오르는, 사람을 취하게 하는 한 줄기 향기였다. 나날의 흔한 사건들, 진부한 생각들, 케케묵은 말들 아래에서, 나는 어떤 억양을, 곱고 낯선 어떤 율동적인 목소리를 듣거나 엿들을 수 있었다. ‘사건’이 시작되었다. 내게는 그것이 한층 더 아리송하게 여겨졌으니, 그 시절 나는 혼자 책을 읽을 때면 책장을 넘기면서 곧잘 전혀 다른 무언가를 꿈꾸곤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버릇이 이야기에 대한 내 앎에 뚫어놓은 구멍에 더해, 엄마가 소리 내어 읽어줄 때면 사랑 장면을 죄다 빼놓곤 했던 탓에 또 다른 구멍들이 보태졌다. 그리하여 물방앗간 여인과 소년 사이의 관계에 일어나는 그 모든 야릇한 변화들, 오직 사랑의 싹틈과 자람으로만 설명될 그 변화들이, 내게는 어떤 신비 속에 잠기고 배어든 것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그 신비를 푸는 열쇠는 (나는 곧잘 그렇게 믿을 수 있었다) 바로 Champi라는 그 야릇하고 듣기 좋은 이름 속에 있었으니, 그 이름은 그것을 지닌 소년을, 왜인지는 몰라도, 제 고유의 밝은 빛깔로, 진홍빛으로 매혹적으로 물들여놓았다. 내 어머니가 충실한 낭독자는 아니었을지언정, 그럼에도 참된 정감의 가락이 담긴 작품을 읽을 때면, 그 해석의 정중한 소박함으로, 또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의 울림으로 감탄스러운 낭독자였다. 이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사람들을, 연민하거나 감탄하지 않고는 못 배기던 그 사람들을 대할 때의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전에 자식을 잃은 어느 어머니를 아프게 할지도 모를 기쁨의 가락을, 어느 노신사에게 제 나이의 무게를 떠올리게 할지도 모를 어떤 사건이나 기일의 기억을, 어느 젊은 문학청년을 따분하게 할지도 모를 살림살이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에서, 몸짓에서, 대화 전체에서 얼마나 조심스레 물리치던지, 그 세심함을 지켜보는 일은 가슴 뭉클했다. 그리하여 엄마가 조르주 상드의 산문을, 곳곳에 그 너그러움과 도덕적 기품이 배어 있는 그 산문을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너그러움과 기품을 엄마는 할머니에게서 배워 삶의 다른 모든 자질보다 위에 두었고, 내가 문학에서만큼은 그것을 다른 모든 자질 위에 두지 말라고 엄마를 가르치게 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엄마는 그 언어의 힘찬 물줄기가 흐르는 길을 막을지 모를 온갖 나약함이나 꾸밈을 목소리에서 물리치려 애쓰며, 마치 자신의 목소리를 위해 지어진 듯한, 말하자면 온전히 자기 음역 안에 든 그 문장들이 요구하는 온갖 타고난 다정함과 아낌없는 감미로움을 그 문장들에 불어넣었다. 엄마는 그 문장들이 요구하는 그 어조로, 그것들이 있기 전부터 존재하여 그것들을 낳았으나 정작 낱말들 자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다정한 억양으로 그 문장들에 다가갔고, 이런 방편으로, 읽어나가면서, 동사의 시제들 사이에 있을 법한 온갖 거칠음이나 어긋남을 매끈하게 다듬어, 미완료과거와 단순과거에 너그러움 속에 깃든 온갖 감미로움을, 사랑 속에 깃든 온갖 우수를 부여했으며, 끝나가는 문장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문장 쪽으로 이끌면서, 음절들이 저마다 길이가 다름에도 한결같은 율동을 이루도록 때로는 걸음을 재촉하고 때로는 늦추어, 이 지극히 평범한 산문에 끊임없고 정감으로 가득 찬 일종의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의 괴로움은 가라앉았다. 나는 어머니를 곁에 둔 이 부드러운 밤의 물살에 나를 실려 보냈다. 나는 이런 밤이 되풀이될 수 없음을, 이 세상에서 내가 품은 가장 강렬한 소망, 곧 어둠의 슬픈 시간 내내 어머니를 내 방에 붙들어두려는 그 소망이 세상의 일반적인 요구와 다른 이들의 바람에 너무나 어긋나므로, 오늘 저녁 내게 베풀어진 것과 같은 양보란 드물고 우연한 예외일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내일 밤이면 나는 다시 번민의 제물이 될 터이고 엄마는 내 곁에 머물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 번민의 폭풍이 잦아들면 나는 그것의 존재를 더는 실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내일 저녁은 아직 멀찍이 있었다. 나는 아직 이런저런 일을 생각할 겨를이 남아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비록 그렇게 유예된 시간이 내게 아무런 힘도 보태주지 못하고, 다가오는 일이 내 의지의 행사에 조금도 달려 있지 않으며, 다만 아직 이 짧은 사이만큼 나와 떨어져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리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닌 듯 여겨질 뿐이었지만.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