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녀들의 얼굴은 모두 내게 아주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었으니, 그 얼굴을 읽어내는 방식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얼마간 내게 일러졌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 이야기에 그만큼 더 큰 값을 매길 수 있었다. 내가 물으면 언제든 그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었고, 마치 자기 이론의 진실을 확증하는 증거로써 세우려는 실험자처럼 그것을 이리저리 바꾸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멀리서 아름답고 신비롭게 보이던 것들에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 그것들에 신비도 아름다움도 없음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존재의 문제를 푸는 다른 어떤 방법 못지않게 훌륭한 방법이다. 그것은 우리가 저마다 자유로이 택할 수 있는 여러 위생법 가운데 하나이니, 어쩌면 그리 강하게 권할 만한 것은 아닐지 모르나, 남은 생을 보내는 데에 얼마간의 평온을 주며, 또한 우리로 하여금 아무것도 아쉬워하지 않게 하니, 우리가 이미 최선에 이르렀으며 그 최선이란 것도 별것 아니었음을 확인시켜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 처녀들의 머릿속에서, 정조를 업신여긴다던 그 짐작과 나날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대신하여, 반듯한 원칙들을 갈아 끼워 넣었다. 더러 느슨해질 수야 있겠으나, 저마다 번듯한 집안에서 그 원칙을 익힌 아이들을 여태 흠 없이 지켜온 원칙들이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사소한 세부에서조차 잘못 짚었을 때, 짐작이나 기억의 오류로 악의 어린 험담의 장본인을, 혹은 무언가를 잃어버린 장소를 엉뚱한 방향에서 찾게 될 때, 흔히 벌어지는 일은, 제 잘못을 깨닫고서도 그 자리에 진실이 아니라 새로운 잘못을 갈아 넣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녀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그 얼굴에서 읽어낸 ‘순결’이라는 낱말로부터, 그녀들의 생활 방식과 그녀들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에 관해 가능한 온갖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부주의하게, 너무 성급히 판독하는 데서 오는 부정확함으로 읽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라 베르마를 보았던 그 공연의 프로그램에 쥘 페리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들의 얼굴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 이름이 빠져 있었음에도 나는 노르푸아 씨에게 쥘 페리야말로 의심할 여지 없이 막간극을 쓴 사람이라고 우겼던 것이다.
작은 무리의 내 친구들 중 누구를 두고 보아도, 내가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야말로 필연적으로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얼굴이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에 관한 우리의 기억에서, 마음은 우리의 일상적 교류의 당면한 목적에 맞지 않는 것은 모조리 지워버리기 때문이다(더구나 그 교류가, 언제나 채워지지 않은 채 늘 막 다가올 순간 속에 사는 사랑의 요소로 생기를 얻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그 목적은 흘러간 나날의 사슬을 놓아 흘려보내되, 밤 속으로 사라진 고리들과는 흔히 전혀 다른 금속으로 된 그 사슬의 맨 끝만을 붙들 뿐이며, 우리가 인생을 헤쳐 나가는 그 여정에서는 우리가 어느 한순간 머물러 있는 자리만을 실재하는 것으로 친다. 그러나 이미 그토록 아득해진 저 맨 처음의 온갖 인상들은, 날마다 그것들을 무디게 하려 덤벼드는 그 마모의 과정에 맞설 어떠한 처방도 내 기억 속에서 찾아낼 수 없었다. 이 처녀들과 이야기하고 먹고 놀며 보낸 그 긴 시간 동안, 나는 그녀들이 프레스코 벽화 속에서처럼 나와 바다 사이로 줄지어 지나가던 것을 보았던 바로 그 무자비하고 관능적인 처녀들이라는 것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지리학자와 고고학자는 우리를 칼립소의 섬으로 데려갈 수 있고, 미노스의 궁전을 발굴해낼 수 있다. 다만 그리하면 칼립소는 한낱 여인에 지나지 않게 되고, 미노스는 신성의 자취라고는 없는 한 왕이 될 뿐이다. 역사가 그 지극히 실재했던 인물들의 속성이라 가르쳐주는 좋고 나쁜 자질조차, 같은 이름을 지녔던 저 전설 속 존재들에게 우리가 부여했던 것과는 흔히 크게 다르다. 그리하여 내가 그 첫날들에 지어냈던 대양의 그 아름다운 신화는 모두 빛바래어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가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 갖고 싶어 애태우던 것과 적어도 이따금씩은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데 성공한다는 것이 아주 하찮은 일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못마땅하게 여겼던 사람들과 훗날 관계를 맺을 때면, 우리가 마침내 그들과 어울리며 누리게 된 그 꾸며낸 즐거움 가운데에도, 그들이 용케 감추어온 결점들의 희미한 얼룩이 언제나 남아 있다. 그러나 내가 이제 알베르틴과 그 친구들과 맺고 있던 것과 같은 관계에서는, 처음부터 거기 있던 그 진정한 즐거움이, 어떤 솜씨로도 온실 과일이나 햇볕에 여물지 못한 포도에는 실어줄 수 없는 그 향기를 남긴다. 잠깐 동안 그녀들이 내게 초자연적인 존재였던 만큼, 그 기억은 내가 그녀들과 나누는 지극히 평범한 교류에조차,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여전히 기적 같은 요소를 들여놓았고, 아니 오히려 그런 교류가 결코 평범해지지 못하도록 막았다. 내 욕망은 이제 나를 알아보고 웃음 짓는 그 눈들, 그러나 첫날에는 다른 우주에서 온 광선처럼 내 눈과 교차하던 그 눈들의 의미를 그토록 뜨겁게 알고자 했다. 내 욕망은 그토록 아낌없이, 그토록 정성스레, 그토록 세밀하게 이 처녀들의 카네이션빛 살결 위에 빛깔과 향기를 나누어 뿌렸으니, 그리하여 오후에 내가 그녀들 사이에 누워 있노라면, 마치 옛 고대의 장엄함을 현대의 삶 속에서 되살리려는 화가들이 발톱을 깎는 여인에게 스피나리오의 고귀함을 부여하거나, 루벤스처럼 아는 여인들을 여신으로 빚어 어떤 신화의 장면을 채우듯이, 풀밭 위 내 둘레에 흩어져 있던, 유형이 그토록 다른, 검거나 밝은 저 어여쁜 형체들을, 나는 어쩌면 나날의 경험이 그 형체들에 채워 넣은 온갖 범속한 내용을 비워내지 않은 채로, 또한 그 천상의 기원을 굳이 떠올리지도 않은 채로, 마치 어린 헤라클레스나 어린 텔레마코스가 님프들의 무리 사이에서 뛰놀도록 놓인 것처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음악회가 끝나고, 궂은 날씨가 시작되었으며, 내 친구들은 발베크를 떠났다. 제비들처럼 한꺼번에는 아니었으나, 모두 같은 주에 떠났다. 알베르틴이 맨 먼저, 느닷없이 떠났으니, 그때에도 그 뒤로도 친구들 중 누구도, 그녀가 어째서 파리로, 일도 오락도 그녀를 부르지 않는 그 파리로 그리 홀연히 돌아갔는지 알지 못했다. “왜라고도 뭐라고도 없이, 그길로 떠나버렸다니까요!” 프랑수아즈가 중얼거렸는데, 그녀 자신도 우리가 마저 떠나기를 바랐던 참이었다. 우리가, 그녀 생각에는, 이제 수가 크게 줄었으나 아직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손님들 때문에 붙잡아 둔 종업원들에게도, 또 “돈을 물 쓰듯 축내고 있는” 지배인에게도 딱한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겨울이면 곧 문을 닫게 될 그 호텔이 손님 대부분을 진작 떠나보낸 것은 사실이었으나, 호텔이 그토록 매력적이었던 적은 없었다. 지배인은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가 오들오들 떨며 앉아 있는, 이제 그 문 앞에 서서 지키는 급사 하나 없는 여러 방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는 새 프록코트를 걸치고 복도를 오가고 있었다. 이발사가 어찌나 손질을 잘해 놓았던지, 그의 밋밋한 얼굴은 살 한 몫에 화장품 세 몫이 든 어떤 반죽으로 빚어진 듯 보였고, 그는 넥타이를 쉴 새 없이 갈아 매고 있었다. (이런 겉치레는 난방을 하고 종업원을 붙잡아 두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들었으니, 마치 이제는 자선 사업에 만 프랑을 낼 형편이 못 되는 사람이라도, 전보를 가져다준 사환에게 오 프랑을 쥐여주는 것으로 제 살림을 축내지 않고도 여전히 후한 티를 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그는 텅 빈 허공을 살피는 듯했고, 제 몸단장의 말끔함으로, 시즌이 신통치 못했던 이 호텔에서 이제 손에 잡힐 듯한 그 황량함에 한때뿐인 광채라도 입혀보려는 듯했으며, 한때 제 궁전이었던 것의 폐허를 되찾아와 떠도는 어느 군주의 유령처럼 거닐었다. 그는 작은 지방 열차 회사가 승객 공급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이듬해 봄까지 운행을 멈추었을 때 유독 언짢아했다. “여기 모자라는 건 말이죠,” 하고 지배인이 말했다, “교통의 격동이란 거예요.” 장부가 보여주는 적자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앞날을 두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쨌든, 호텔 경영업에 곧바로 들어맞고 그 중요성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라면, 고상한 표현을 정확히 기억해 둘 줄 아는 위인이었으므로 이렇게 늘어놓았다. “저로선 뒷받침이 넉넉지 못했지요, 식당에는 제법 유능한 부대가 있었습니다만, 급사들이 아쉬운 데가 있었어요. 내년에 보시면, 제가 얼마나 대단한 방진(方陣)을 갖추어 놓는지 아실 겁니다.” 그동안 B.C.B. 운행이 끊긴 탓에, 그는 편지를 가지러 사람을 보내고 이따금 손님을 짐마차에 태워 배웅해야 했다. 나는 마부 곁에 앉게 해달라고 곧잘 청했고, 그렇게 해서 콩브레에서 보낸 겨울에 그랬듯 어떤 날씨에도 밖에 나가 있곤 했다.
그러나 때로는 세차게 몰아치는 비가, 카지노도 닫힌 터라, 할머니와 나를 폭풍이 몰아칠 때 배의 가장 낮은 선창에 갇힌 것처럼 거의 텅 빈 방 안에 붙들어 두었다. 그리고 거기서, 날이 갈수록, 마치 항해 도중에 그러하듯, 우리가 석 달을 알지도 못한 채 함께 지내온 사람들 가운데 한 새로운 인물이, 곧 캉의 재판장, 셰르부르 변호사회의 회장, 어느 미국 부인과 그 딸들이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시간을 덜 더디게 보낼 방도를 찾아내고, 어떤 사교적 재주를 드러내고, 새로운 놀이를 가르쳐 주고, 우리를 차나 음악에 초대하고, 어느 시각에 만나자고 하고, 함께 저 소일거리들을 궁리하자고 했으니, 그런 소일거리들은 즐거움을 주는 참된 비결을 담고 있었다. 그 비결이란 즐거움을 주는 데 목적을 두지 않고 그저 우리가 지루함의 시간을 흘려보내도록 돕는 데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발베크 체류의 끝 무렵에, 우리와 우정의 인연을 맺었으나, 그 인연은 하루 이틀 사이 그들이 잇따라 이곳을 떠남으로써 끊어지게 될 것이었다. 나는 심지어 그 부유한 청년과, 그 귀족 친구 두 사람 중 하나와, 며칠 다시 나타났던 그 여배우와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은 사교 모임은 이제 세 사람뿐이었으니, 나머지 친구는 파리로 돌아간 뒤였다. 그들은 자기네 식당으로 나와 저녁을 함께하자고 청했다. 내가 응하지 않은 것을 그들도 내심 반겼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상상할 수 있는 한 더없이 다정한 방식으로 그 초대를 건넸고, 비록 그 초대가 실은 그 부유한 청년에게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는 그저 그의 손님일 뿐이었으나, 그와 함께 머물던 친구 모리스 드 보데몽 후작이 실로 대단히 훌륭한 집안 출신이었으므로, 그 여배우는 나더러 오지 않겠느냐고 물으며 내 허영심을 우쭐하게 하려는 듯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 “모리스가 무척 기뻐할 거예요.”
그리고 호텔 홀에서 내가 그들 셋을 한자리에서 마주쳤을 때, (부유한 청년은 뒤로 물러나고) 보데몽 씨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와 함께 저녁을 드는 기쁨을 주지 않으시겠소?”
대체로 나는 발베크에서 얻은 것이 거의 없었으나, 그럴수록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더 굳어졌다. 내가 거기에 충분히 오래 머물지 못한 것만 같았다. 집에 있는 내 친구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아서, 내가 남은 평생을 거기서 지낼 작정이냐고 편지로 물어왔다. 그리고 그들이 봉투에 적어야 하는 것이 바로 ‘발베크’라는 이름임을 볼 때, 마치 내 창이 풍경이나 거리가 아니라 바다의 벌판 위로 트여 있었던 것처럼, 밤새 그 웅얼거림을, 잠들기 전 내 꿈의 배를 맡겨두던 그 웅얼거림을 들으며, 나는 이 파도와의 스스럼없는 삶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어김없이 나에게 그 매혹의 관념을 스며들게 하리라는 착각에 잠겼으니, 마치 잠자는 동안 외워지는 그런 가르침들처럼.
지배인은 이듬해에는 내게 더 나은 방을 잡아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이제 내 방에 정이 들어버렸고, 꽃 핀 풀 냄새를 한 번도 알아채지 못한 채 그 방을 드나들었으며, 한때는 제 공간을 채우려 부풀어 오르는 데 그토록 애를 먹던 내 마음이 이제는 그 치수를 어찌나 정확히 재게 되었던지, 파리의 내 방, 천장이 낮은 그 방에서 자야 할 때면 나는 그 마음을 거꾸로 되돌리는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사실, 방마다 벽난로도 없고 중앙 화로도 없는 그 호텔에서 더는 머물 수 없을 만큼 추위와 습기가 너무 파고들었으니, 발베크를 떠날 때가 진작에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우리가 머문 그 마지막 몇 주를 거의 곧바로 잊어버렸다. 발베크를 떠올릴 때 내 마음의 눈에 거의 어김없이 비치는 것은, 날씨 좋던 시절 아침마다, 내가 오후에 알베르틴과 그 친구들과 함께 나가곤 하던 그 무렵, 할머니가 의사의 지시에 따라 방을 어둡게 하고 누워 지내라고 고집하던 그 시간들이었다. 지배인은 내 층계참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말라고 지시했고, 몸소 올라와 그것이 지켜지는지 살폈다. 바깥 빛이 어찌나 강했던지, 나는 첫날 저녁 내게 그토록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던 그 큼직한 보랏빛 커튼을 되도록 오래 쳐두었다. 그러나 빛이 새어 들지 못하도록 프랑수아즈가 밤마다 그것을, 저만이 풀 줄 아는 핀으로 여며 두었음에도, 또 여기저기서 모아온 깔개며 붉은 크레톤 탁자보며 온갖 천 조각을 제 방어 진지에 끼워 넣었음에도, 그녀는 커튼을 정확히 맞물리게 하는 데는 끝내 성공하지 못했으니, 어둠은 온전하지 못했고, 커튼은 마치 아네모네 꽃잎의 진홍빛 소나기 같은 것을 양탄자 위로 흘려보냈으며, 나는 그 속에 잠깐 맨발을 담그고픈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리고 창을 마주하여 부분적으로 빛을 받던 벽에는, 눈에 보이는 받침도 없는 황금빛 원기둥이 수직으로 세워져, 사막에서 히브리인들 앞을 인도하던 불기둥처럼 천천히 옮겨 갔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아침이 부추기던 놀이와 미역과 산책의 즐거움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오직 상상으로만, 그리고 한꺼번에 맛보아야 했으니, 기쁨이 내 심장을 우렁차게 뛰게 했다. 마치 온 힘을 다해 돌아가되 땅에 붙박여, 제자리에서 제 축을 돌리는 것으로만 그 힘을 쏟아낼 수 있는 기계처럼.
나는 내 친구들이 ‘해변 산책로’에 나와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녀들이 바다의 울퉁불퉁한 사슬의 고리들 앞을 지나가는 것은 보지 못했다. 그 고리들 저 깊은 안쪽으로, 이탈리아의 성채처럼 그 푸르스름한 봉우리들 사이에 깃들어, 이따금 맑게 갠 순간이면 리브벨이라는 작은 도시가, 햇빛에 지극히 세밀하게 그려진 채 언뜻 보이곤 했다. 나는 내 친구들을 보지 못했으나, (내 망루로 신문팔이 소년의 외침이, 프랑수아즈가 ‘저널리스트’라 부르던 그 소년의 외침이, 미역 감는 사람들과 뛰노는 아이들의 고함이, 잔잔히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바닷새의 울음처럼 구두점을 찍으며 올라오는 동안) 나는 그녀들이 거기 있음을 짐작했고, 네레이스들의 웃음처럼 내 귀로 밀려 올라오는 그 매끄러운 소리의 밀물에 감싸인 그녀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우리 올려다봤어요,” 저녁이면 알베르틴이 말했다, “당신이 내려오나 하고요. 그런데 음악회가 시작될 때까지도 덧문이 여태 닫혀 있더군요.” 열 시가 되자, 과연, 음악회가 내 창 아래에서 터져 나왔다. 악기들의 요란한 소리가 잦아드는 사이사이, 밀물이 높을 때면, 어렴풋하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의 미끄러지는 물결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으니, 그것은 마치 그 수정 같은 소용돌이 속에 바이올린 음을 감싸 안고, 어떤 해저 음악의 메아리 위로 제 물거품을 흩뿌리는 듯했다. 나는 아직 아무도 내 물건을 가져다주지 않아, 일어나 옷을 입을 수 없어서 애가 탔다. 열두 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서야 프랑수아즈가 마침내 왔다. 그리고 몇 달을 내리, 폭풍에 두들겨 맞고 안개에 파묻힌 곳으로만 상상했기에 그토록 손꼽아 기다렸던 이 발베크에서, 날씨가 어찌나 눈부시고 어찌나 한결같던지, 그녀가 창을 열러 올 때면 나는 언제나, 한 번도 어긋남 없이, 바깥벽 모퉁이에 접혀 든 그 똑같은 햇살 자락을 볼 것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 변함없는 빛깔은 여름의 표징으로서 마음을 흔든다기보다는, 생기 없고 차분히 굳은 에나멜의 빛깔로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프랑수아즈가 창틀의 쇠시리에서 핀을 뽑고, 여러 천 조각을 걷어내고, 커튼을 열어젖히고 나면, 그녀가 드러내 보인 여름날은, 우리의 늙은 하녀가 그저 아마천 감개를 조심스레 풀어 황금빛 옷에 방부 처리된 채 내 눈앞에 내보이기만 한, 호사스레 차려입은 어느 왕조의 미라만큼이나 죽어 있고, 태곳적처럼 아득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