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틴이 얻은 이런 종류의 각별한 인기가 어떤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앙드레의 친구인 그녀에게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뚜렷한 표징을 새겨 놓았다. 늘 남들이 찾는 까닭에 굳이 자신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 곧 자기가 거둔 성공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속에 감추어 두는 사람들의 표징을(이런 표징은 비슷한 이유로 사회의 정반대 끝, 유행을 이끄는 이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아무개가 나를 몹시 만나고 싶어 해."라고 말하는 법이 없었고, 누구에 대해서든 더없이 너그럽게, 마치 남들이 아니라 자기가 남들의 꽁무니를 좇고 알고 지내려 애쓰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했다. 몇 분 전만 해도 그녀와 단둘이 이야기하며, 밀회를 거절당했다는 이유로 더없이 쓰라린 원망을 퍼붓던 어떤 청년에 관해 누가 말을 꺼내도, 그녀는 그 일을 남들 앞에 떠벌리거나 앙심을 내비치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두둔했다.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실은 남의 마음을 끄는 것이 그녀에게는 꽤나 성가신 일이었다. 그러면 그들을 실망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녀의 천성은 언제나 남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을 어찌나 즐겼던지, 그녀는 공리주의자들과 "출세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유의 거짓말을 쓰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 속에 맹아 상태로 깃들어 있는 이 불성실은, 단 한 번의 예의에서 비롯되는 기쁨을 한 사람에게만 국한하지 못하는 데 있다. 이를테면 알베르틴의 이모가 그다지 흥겹지 않은 모임에 조카딸을 데려가고 싶어 할 때, 알베르틴으로서는 이모를 기쁘게 해 드렸다는 도덕적 이득을 그 일에서 얻는 것으로 충분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인 내외에게 정중한 환대를 받자, 그녀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다고 여겼다. 오래전부터 두 분을 뵙고 싶었던 터라 마침내 이 기회를 붙잡아 이모에게 이 모임에 데려가 달라고 졸랐노라고. 이것으로도 모자랐다. 같은 모임에 마침 큰 시름에 잠긴 알베르틴의 친구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네가 여기 혼자 있는 게 마음에 걸렸어. 내가 곁에 있으면 네게 위로가 될까 싶었지. 여기서 나가서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나는 네가 하자는 대로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나는 그저 네가 그렇게 슬퍼 보이지 않았으면 할 뿐이야." 그런데 마침 이 말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꾸며 낸 목적이 진짜 목적을 무너뜨리는 일도 있었다. 그리하여 알베르틴은 친구 하나를 위해 부탁할 일이 있어, 도움을 줄 만한 어떤 부인을 일부러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부인의 집에 이르자, 다정하고 인정 많은 그 부인 앞에서, 이 처녀는 하나의 행동을 여러모로 써먹는다는 원칙을 무심결에 좇아, 오직 그 부인을 다시 만나 얻을 기쁨 때문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는 편이 더 환심을 살 만하다고 느꼈다. 부인은 알베르틴이 오로지 자신에 대한 우정에서 먼 길을 왔다는 데에 깊이 감동했다. 부인이 감격에 겨워하는 것을 보고, 알베르틴은 그 부인이 한층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다만 여기에는 난처한 결과가 뒤따랐다. 찾아온 동기인 척했던 그 우정의 기쁨을 이제 그녀가 어찌나 절실히 느끼던지, 만약 지금 친구를 위해 그 부탁을, 그것이 무엇이었든, 꺼낸다면 실은 아주 진실한 그 감정의 진정성을 부인이 의심하게 될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부인은 알베르틴이 그 부탁 때문에 왔다고 생각할 텐데,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동시에 알베르틴이 자기를 만나는 데에 사심 없는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고 단정할 텐데,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부탁을 꺼내지도 못한 채 돌아왔다. 마치 어떤 남자가 한 여자의 마음을 얻고 싶어 그녀에게 어찌나 잘해 주었던지, 제 호의에 고결한 기품을 지키려고 정작 열정을 고백하지 못하고 마는 것처럼. 또 다른 경우에는, 진짜 목적이 부차적이고 나중에 떠오른 생각의 제물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일 테지만, 그럼에도 그 둘은 어찌나 양립할 수 없던지, 만약 알베르틴이 두 번째 것을 내세워 환심을 산 상대가 첫 번째 것의 존재를 알았더라면, 그의 기쁨은 이내 더없이 깊은 언짢음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훨씬 뒤에 가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양립 불가능이 한결 뚜렷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을 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예를 하나 빌려, 그런 일이 삶이 내놓는 갖가지 상반된 상황 속에서 아주 흔히 일어난다고만 말해 두자. 어떤 남편이 자기 연대가 주둔한 고장에 정부를 들여앉혔다. 파리에 홀로 남겨진 그의 아내는 진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점점 더 비참해져, 질투로 독이 오른 편지를 남편에게 써 보낸다. 그런데 마침 정부가 하루 볼일로 파리에 올라가야 하게 되었다. 남편은 함께 가 달라는 그녀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짧은 휴가를 신청해 허락을 받는다. 그런데 그는 천성이 착해 아내를 불행하게 만들기를 싫어하는지라, 아내를 찾아가 제법 진심 어린 눈물 몇 방울을 흘리며 이렇게 말한다. 당신 편지에 못 견디게 애가 타서, 겨우 근무에서 빠져나올 방도를 찾아 당신을 품에 안고 위로해 주려고 왔노라고. 이렇게 그는 단 한 번의 여행으로 아내와 정부 양쪽 모두에게 자기 애정의 증거를 마련해 준 셈이다. 그러나 만약 아내가 그가 파리에 온 진짜 까닭을 알게 된다면, 그 부정한 인간을 만나는 기쁨이 그럼에도 그의 외도가 안긴 고통을 웃돌지 않는 한, 그녀의 기쁨은 틀림없이 슬픔으로 바뀔 것이다. 이른바 돌 하나로 새 여러 마리를 잡는다고 할 만한 이 방식을 누구보다 끈질기게 부려 온 사람으로 내가 꼽는 이들 가운데에는 드 노르푸아 씨도 넣어야 한다. 그는 이따금 다투던 두 친구 사이의 중재자 노릇을 맡곤 했는데, 그 덕에 더없이 친절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자기를 찾아와 그 일을 청한 친구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처럼 보이는 것만으로는 그에게 부족했다. 그는 다른 쪽 친구에게, 자신이 화해를 이루려고 밟는 절차가 첫 번째 친구의 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친구를 위한 것이라고 내세웠다. 그리고 눈앞에 "더없이 쓸모 있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이미 마음이 기운 상대에게 그런 태도의 진정성을 납득시키는 데에는 조금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두 무대에서 번갈아 연기하며, 연극 용어로 두 배역을 "겸하는" 이른바 겸역을 하면서, 그는 제 영향력이 조금도 위태로워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가 베푸는 호의는 자본의 지출이 아니라 제 신용의 일부에서 나오는 배당이었다. 동시에 겉보기에 두 번씩 베풀어진 모든 호의는 그만큼 친절한 벗이라는 그의 평판을, 나아가 그 개입이 효험 있는 벗, 함부로 활을 쏘지 않고 그 수고가 늘 성공으로 정당화되는 벗이라는 평판을 한층 드높였는데, 이는 양쪽 모두가 보이는 고마움으로 드러났다. 호의를 베푸는 데에서의 이 이중성은, 모든 인간이 겪기 마련인 실망들을 감안하더라도, 드 노르푸아 씨 성격의 중요한 한 요소였다. 그리고 그는 부처에서 곧잘 내 아버지를 이용하곤 했는데, 순박한 사람이던 아버지에게는 오히려 자기가, 곧 드 노르푸아 씨 자신이 아버지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라 믿게 만들었다.
바라는 것보다 더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고 제 정복을 세상에 떠벌릴 필요도 없던 알베르틴은, 못생긴 처녀라면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을 그 침대맡의 소동에 대해서도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그 소동 동안 그녀가 보인 태도에 대해 나는 어떤 흡족한 설명에도 이를 수 없었다. 우선 그녀가 더없이 정숙하다는 가정을 들어 보면(알베르틴이 내 품에 안겨 입 맞추는 것을 그토록 격렬히 거부한 까닭을 나는 애초에 이 가정으로 설명했었다. 비록 그것이 내 친구의 선함, 근본적으로 올곧은 성품에 대한 내 생각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나는 그 가정을 그 조건들을 잔뜩 뜯어고치지 않고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은 알베르틴을 처음 본 그날 내가 세워 둔 가설과 온통 어긋났다. 게다가 나를 향한 온갖 다른 행동들, 하나같이 친절한 행동들(어루만지듯 다정하다가도 이따금 불안해하고, 겁먹고, 내가 앙드레를 더 좋아하는 것을 질투하던 그런 친절)이 사방에서 떠올라, 나에게서 벗어나려고 그녀가 벨을 잡아당긴 그 우악스러운 몸짓에 맞섰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침대맡에서 저녁을 함께 보내자고 나를 불렀단 말인가? 왜 그녀는 내내 애정 어린 말투로 이야기했단 말인가?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고, 그가 너보다 다른 친구를 더 좋아할까 봐 두려워하는 데에 무슨 목적이 있단 말인가. 그토록 단순한 기쁨을 그에게 거절하고 또 네게는 그것이 아무 기쁨도 아니라면, 어째서 그를 기쁘게 하려 애쓰고, 어째서 그가 네 방에서 저녁을 보낸 것을 다른 이들은 결코 모를 거라고 그토록 낭만적으로 말한단 말인가. 그래도 나는 알베르틴의 정숙함이 그 정도에까지 이르렀다고는 믿을 수 없어서, 그녀의 격렬함이 어떤 교태 때문은 아니었을까 자문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제 몸에 배어 있을까 걱정되는 어떤 언짢은 냄새 때문에, 그것 때문에 내가 역겨워할까 봐 두려웠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어떤 겁 때문에, 이를테면 사랑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내 신경 쇠약이 무언가 전염되는 것에서 비롯되어 입맞춤으로 제게 옮을 수도 있다고 여겼던 것은 아닐까 하고.
그녀는 나를 기쁘게 해 주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며, 내게 작은 금빛 연필집을 하나 주었다. 마치 당신의 간청에 마음이 움직이면서도 그 간청이 요구하는 것은 들어주지 않으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애정의 표시 하나쯤은 안겨 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그 갸륵한 심술로. 논문 한 편이면 소설가를 그토록 흡족하게 해 줄 평론가가 그 대신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는 식이요, 공작부인이 속물을 극장에 데려가지는 않으면서 자기가 쓰지 않을 저녁에 제 특별석을 빌려주는 식이다. 이렇듯 우리를 위해 가장 적게 해 주는 이들, 아무것도 안 해도 그만인 이들조차 양심에 떠밀려 무언가를 하기 마련이다. 나는 알베르틴에게, 이 연필집을 준 것이 내게 큰 기쁨을 주기는 하지만, 그녀가 호텔에서 묵던 그날 밤 나를 안게 해 주었더라면 느꼈을 기쁨만큼 크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랬다면 나는 참 행복했을 거예요. 그게 대체 당신한테 무슨 해가 됐겠어요? 당신이 못 하게 막았을 때 나는 그저 어리둥절했다니까요." "내가 어리둥절한 건," 그녀가 되받았다, "당신이 그걸 어리둥절해했다는 거예요. 내 행동에 놀란다니, 당신이 알고 지내는 여자애들이 어지간히 이상한가 보네요." "당신을 언짢게 했다면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도 내가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내 느낌으로는 그런 건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그토록 쉽게 남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여자가 그러려 하지 않는 걸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이 점은 분명히 해 둡시다." 나는 이렇게 이어 가며,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여배우 레아와 어울려 다니던 처녀를 어떻게 헐뜯었는지 떠올리고는 그녀의 도덕적 거리낌에 얼마간 발라 주는 말을 던졌다. "여자가 제멋대로 굴어도 된다거나, 부도덕 같은 건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에요. 이를테면, 가만있자, 그래요, 요전 날 당신이 발베크에 묵고 있는 어떤 처녀와 어느 여배우의 관계에 대해 말했던 거 말이에요. 나는 그런 걸 타락이라고 봐요. 어찌나 타락한 일인지, 그건 죄다 그 처녀의 적들이 지어낸 것이 틀림없고 그 이야기에는 조금의 진실도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내게는 그게 있을 법하지 않은,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져요. 하지만 친구에게 입맞춤을 허락하는 것, 아니 그보다 더 나아가는 것쯤이야, 당신이 나를 친구라고 하니 말인데……" "친구 맞아요, 하지만 나도 예전에 친구들이 있었고, 그 못지않게 다정한 청년들도 숱하게 알고 지냈다니까요. 정말이에요. 그중 누구도 그런 짓을 감히 하려 든 사람은 없었어요. 그랬다간 따귀를 맞을 줄 뻔히 알았으니까요. 게다가 그들은 그럴 엄두조차 내지 않았어요. 우리는 좋은 친구답게 스스럼없이 다정하게 악수를 나눴지, 입맞춤 얘기 같은 건 한마디도 없었어요. 그래도 우리 우정이 그만 못하지도 않았고요. 아니, 당신이 바라는 게 내 우정이라면 불평할 게 하나도 없잖아요. 당신을 용서할 정도면 내가 당신을 어지간히 좋아하는 게 틀림없으니까요. 하지만 실은 당신이 나 따위엔 눈곱만큼도 마음 안 두는 거, 나 다 알아요. 솔직히 털어놔 봐요, 당신이 사랑하는 건 앙드레잖아요. 하긴 당신 말이 맞아요. 그 애는 나보다 훨씬 예쁘고, 더없이 매력적이니까요! 어휴! 남자들이란!" 방금 겪은 실망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솔직하게 내뱉어진 이 말은 내게 알베르틴에 대한 큰 존경심을 안기며 무척 유쾌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어쩌면 이 인상은 훗날 내게 심각하고 성가신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알베르틴을 향한 내 사랑의 한복판에 늘 남아 있게 될 그 도덕적 핵심, 거의 남매의 정에 가까운 그 감정이 바로 이 인상을 중심으로 빚어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더없이 날카로운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한 여자의 손에 정말로 괴로워하려면, 그 여자를 온전히 믿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도덕적 존중과 우정의 그 싹이 시냇물 속 징검돌처럼 내 안에 박힌 채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그대로 자라지 않고, 이듬해에도, 더구나 발베크로의 이 첫 방문의 마지막 몇 주 동안에도 내내 지키게 될 그 무기력 속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그 싹만으로는 내 행복을 거스르는 데에 아무 힘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내 안에 이물질 같은 것으로 깃들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몸 밖으로 빼내는 편이 현명할 그런 이물질이건만, 우리는 그것을 건드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냥 놓아둔다. 그 허약함과, 낯선 환경 한가운데의 그 고립 탓에 당장은 무해해 보이기 때문이다.
내 몽상은 이제 다시 알베르틴의 이런저런 친구에게로 자유로이 쏠릴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먼저 앙드레에게로 돌아갔다. 그녀의 친절이 알베르틴의 귀에 들어가리라는 확신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그 친절이 내게 그토록 강하게 와닿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의심할 여지 없이, 내가 오래도록 앙드레에게 느끼는 척해 온 그 편애는, 그녀와 대화하고 애정을 고백하는 습관 속에서, 말하자면 그녀를 향한 사랑의 재료를, 이미 마련되어 손질까지 끝난 재료를 내게 마련해 준 셈이었다. 그 사랑에 그때껏 모자랐던 것은 오직 진실한 감정이라는 보완물뿐이었는데, 이제 다시 자유로워진 내 마음이 그것을 채워 줄 처지에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앙드레를 정말로 사랑하기에는, 그녀는 너무 지적이고, 너무 신경질적이며, 너무 병약하고, 너무 나를 닮아 있었다. 알베르틴이 이제 내게 알맹이 없이 텅 빈 존재로 보였다면, 앙드레는 내가 너무나 잘 아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었다. 첫날 나는, 그 해변에서 내가 본 것이 열렬히 운동에 빠진 어느 경륜 선수의 정부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이제 앙드레는 내게, 자기가 운동을 시작한 것은 신경 쇠약과 소화 장애를 고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으며, 가장 행복한 시간은 조지 엘리엇의 소설 한 편을 번역하며 보내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앙드레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처음의 착오에서 비롯된 이 오해는, 사실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 착오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것을 허락해 놓고는, 그 사랑이 더는 걷잡을 수 없게 된 뒤에야 비로소 착오임이 드러나 마침내 고통의 원인이 되는 그런 종류 말이다. 이런 착오는, 앙드레에 대한 내 착오와는 사뭇 다를 수도, 심지어 정반대일 수도 있는데, 흔히 이런 데에서 비롯된다. 한 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이룰 때, 우리는 그 사람이 실제로 그러한 모습이 아니라 그렇게 되고 싶어 하는 모습, 그 겉모습과 몸가짐에 지나치게 주의를 쏟는다는 것이다(그리고 여기서가 특히 그런 경우였다). 겉모습에는 꾸밈과 흉내, 그리고 선한 이들에게든 악한 이들에게든 칭송받고 싶어 하는 갈망이 말과 몸짓의 오도하는 닮은꼴을 덧입힌다. 시험해 보면, 겉으로 드러난 어떤 덕이나 너그러움 못지않게 참되지 못한 냉소와 잔혹함도 있는 법이다. 후한 자선으로 이름난 사람의 겉옷 아래에서 우리가 곧잘 허영에 찬 구두쇠를 발견하듯, 악덕을 요란히 내보이는 탓에 우리는 실은 중산층의 편견을 지닌 얌전한 처녀를 메살리나로 넘겨짚기도 한다. 나는 앙드레에게서 건강하고 원시적인 존재를 발견하리라 여겼지만, 그녀는 그저 건강을 찾아 헤매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 자신이 건강을 발견하리라 여겼던 많은 이들 또한 틀림없이 그러했을 텐데, 그들 역시 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흰 플란넬을 걸친 억센 관절염 환자가 그렇다고 반드시 헤라클레스는 아니듯, 조금도 더 건강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그토록 건강해 보였기에 사랑하게 된 사람이 실은, 마치 행성이 제 빛을 빌려 오듯, 어떤 물체가 한낱 전기의 도체에 지나지 않듯, 제가 지닌 건강마저 남에게서 받아 오는 병자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이 우리 행복에 아무래도 상관없지만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앙드레는, 로즈몽드나 지젤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들보다도 더, 따지고 보면 알베르틴의 친구였다. 그녀의 삶을 함께 나누고 그 몸가짐을 흉내 내는 것이 어찌나 닮았던지, 첫날 나는 그들을 대번에 서로 구별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바다를 배경으로 제 윤곽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던 이 처녀들, 활짝 핀 장미 가지 같은 이들 위에는, 내가 그들을 알지 못하던 시절, 곧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가 나타나기만 해도 작은 무리가 멀지 않다는 신호로 내게 그토록 격렬한 감동을 안기던 그 시절과 똑같은, 나뉘지 않은 일체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 가운데 하나를 보는 것만으로 나는 기쁨에 젖었는데, 그 기쁨 속에는, 얼마만큼인지 나로서도 쉽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이윽고 나머지 처녀들이 그녀를 뒤따라 나타나는 것을 보리라는 생각과, 설령 그날 그들이 오지 않더라도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내가 해변에 나와 있었다는 말이 그들에게 전해지리라는 생각이 섞여 들어 있었다.
그것은 이제 단순히 첫날들의 그 이끌림이 아니라, 그들 모두 사이에서 망설이는 어엿한 사랑의 갈망이었다. 그만큼 저마다가 다른 이들의 자연스러운 대체물이었던 것이다. 내게 가장 쓰라린 슬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처녀에게 버림받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버린 처녀야말로 대번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들 모두 사이에 어렴풋이 떠돌던 그 우수 어린 몽상 전부를 내가 바로 그녀에게 옭아매었을 테니까. 게다가 그런 경우, 그녀를 잃으면서 내가 무심결에 아쉬워했을 것은 그녀의 친구들 모두를 잃는 것이었으리라. 그들의 눈에 나는 내가 지녔을지 모를 온갖 이점을 이내 잃어버렸을 테니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그런 종류의 집단적 사랑을, 정치가와 배우가 대중에게 품는 그런 사랑을 맹세했던 것인데, 대중의 온갖 총애를 다 누린 뒤 그 대중에게 버림받고 나면 그들은 결코 위로받지 못하는 법이다. 알베르틴에게서 얻어 내지 못한 그 총애마저도, 나는 저녁에 알쏭달쏭한 말이나 눈길을 남기고 헤어진 이런저런 처녀에게서 문득 받게 되리라 기대하곤 했다. 그 말이나 눈길 덕에, 이튿날 남짓 내 욕망은 바로 그녀에게로 향하는 것이었다.
내 욕망은 그들 모두 사이를 한층 더 관능적으로 헤매고 다녔는데, 그 변덕스러운 얼굴들 위에 이제 이목구비의 상대적인 고정이 시작되어, 설령 앞으로 더 변한다 하더라도, 눈이 그 유연하고 떠도는 저마다의 형상을 구별할 수 있을 만큼 진척되었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 있던 차이에 상응하는 것은, 그 이목구비의 길이와 너비에서 나타나는 못지않게 뚜렷한 차이 속에는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 이목구비 가운데 어느 것이든, 처녀들이 서로 달라 보이기는 해도, 어쩌면 한 얼굴에서 통째로 떼어다가 아무 다른 얼굴에나 되는대로 갖다 붙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에 대한 우리의 앎은 수학적인 것이 아니다. 우선 그것은 부분들을 재는 데에서 시작되지 않고, 하나의 표정, 전체의 어우러짐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를테면 앙드레의 경우, 그 부드러운 눈매의 섬세함은 코의 가느다람과 어우러지는 듯했다. 그 코는 한낱 곡선처럼 가늘어서, 마치 하나의 선을 따라 섬세함이라는 관념을 빚어내려고 그어진 듯했고, 그 섬세함은 위쪽에서 그녀의 쌍둥이 눈길이 짓는 두 겹 미소로 나뉘어 있었다. 그 못지않게 가느다란 선 하나가 그녀의 머리칼에도 새겨져 있었는데, 바람이 모래에 고랑을 파는 그 선처럼 유연하고 깊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것은 틀림없이 유전이었을 것이다. 앙드레 어머니의 새하얀 머리칼도 똑같이 그렇게 쏠려서, 여기서는 봉긋이 부풀고 저기서는 옴폭 꺼지며, 땅의 굴곡을 따라 솟았다 내려앉는 눈더미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앙드레의 가느다란 윤곽에 견주면, 로즈몽드의 코는 마치 육중한 주춧돌 위에 세워진 높다란 탑처럼 널따란 면을 드러내는 듯했다. 표정이란 것은, 무한히 사소한 것으로 갈라져 있을 뿐인 것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기에 넉넉하고, 그 무한히 사소한 것이 그것만으로 더없이 고유한 표정, 하나의 개성을 빚어내기도 하지만, 이 얼굴들 하나하나를 다른 어떤 얼굴로도 환원할 수 없어 보이게 만든 것은 그 선들의 무한히 사소한 차이와 표정의 독창성만이 아니었다. 내 친구들의 얼굴 사이에서 그 빛깔은 한층 더 넓은 간격을 만들어 놓았다. 빛깔이 그들에게 입혀 준 갖가지 아름다운 색조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색조들이 어찌나 대조를 이루던지, 로즈몽드를, 곧 유황빛 장밋빛으로 물들고 게다가 두 눈의 푸르스름한 빛이 한층 더 대비를 이루던 그녀를 바라볼 때와, 그다음 앙드레를, 곧 검은 머리칼 덕에 흰 뺨이 그토록 준엄한 기품을 얻던 그녀를 바라볼 때, 나는 마치 볕이 든 바닷가에 피어난 제라늄과 밤 속의 동백을 번갈아 바라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똑같은 종류의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 선의 무한히 사소한 차이가 터무니없이 부풀려지고, 한 면과 다른 면 사이의 관계가 이 새로운 빛깔이라는 요소로 온통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빛깔은 색조를 나누어 줄 뿐 아니라 차원을 되살리는, 아니 차라리 뒤바꾸는 데에도 뛰어나다. 그리하여 어쩌면 서로 다르지 않은 선으로 지어졌을 얼굴들이, 적갈색 머리채나 붉은 혈색의 타오르는 횃불로 밝혀지느냐, 아니면 칙칙한 창백함의 흰 어스름으로 밝혀지느냐에 따라, 더 날카로워지거나 더 넓어지고, 아예 다른 무엇이 되곤 했다. 마치 러시아 발레에서 쓰이는 무대 장치처럼 말이다. 그런 장치는 대낮의 빛 속에서 보면 이따금 한낱 종이 원반에 지나지 않지만, 박스트의 천재는 제 무대를 담그는 핏빛 효과냐 달빛 효과냐에 따라, 그것을 궁전 벽에 박힌 터키석 같은 단단한 상감으로 만들기도 하고, 동방의 정원에 핀 벵골장미처럼 아스라이 부드러운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얼굴을 알아 갈 때 우리는 세심하게 치수를 재지만, 측량사로서가 아니라 화가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알베르틴도 그녀의 친구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날에는 여윈 몸에 잿빛 뺨을 하고, 뾰로통한 기색으로, 이따금 바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보랏빛 투명함이 비스듬히 그녀에게서 내려앉아, 유배의 슬픔을 느끼는 듯 보였다. 또 어떤 날에는 그녀의 얼굴이 한결 매끈해져서, 니스칠한 그 표면에 나의 욕망을 붙들어 매고는 더 멀리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다만 내가 문득 옆에서 그녀를 언뜻 볼 때는 예외였으니, 표면에는 흰 밀랍 같던 그 무딘 뺨이 그 아래로는 눈에 띄게 발그레해서, 나는 그 뺨에 입 맞추고 싶어졌고, 그렇게 내 손길을 비껴가는 그 다른 빛깔에 가닿고 싶어졌다. 또 어떤 때에는 행복이 어찌나 유동하는 맑음으로 그녀의 뺨을 적셨던지, 피부가 액체처럼 흐릿하게 풀어져, 은밀한 피부밑 시선 같은 것이 지나가도록 길을 내어주었고, 그리하여 그 뺨은 그녀의 눈과 다른 빛깔이되 다른 재질은 아닌 듯 보였다. 어떤 때에는 무심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면, 자잘한 갈색 반점이 총총 박힌 가운데 그저 더 크고 더 푸른 두 얼룩이 떠 있어서, 마치 방울새의 알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혹은 두 군데만 잘라 갈아 놓은 유백색 마노를 보는 것 같았으니, 그 갈색 돌의 한복판에서, 하늘빛 나비의 투명한 날개처럼 그녀의 눈이 빛났고, 그 눈이라는 부위에서는 살이 거울이 되어, 몸의 다른 어느 부분보다도 우리를 영혼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주, 그녀는 더 짙은 혈색을 띠었고 그럴 때면 한결 생기가 돌았다. 어떤 때는 그녀의 흰 얼굴에서 유일하게 발그레한 것이 코끝뿐이었으니, 짓궂은 새끼 고양이의 그것처럼 가늘게 뾰족해서, 하던 일을 멈추고 함께 장난치고 싶어지는 코끝이었다. 어떤 때는 뺨이 어찌나 반들거리던지, 세밀화의 표면 위를 미끄러지듯 시선이 그 발그레한 에나멜 위로 미끄러졌고, 반쯤 열린 채 감싸는 검은 머리칼의 함이 그 빛깔을 한층 더 섬세하고 은밀하게 보이게 했다. 혹은 뺨의 빛깔이 붉은 시클라멘의 보랏빛으로 깊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상기되거나 열이 오를 때면 어딘가 병약한 기색을 띠어, 그것이 내 욕망을 한결 관능적인 쪽으로 끌어내리고 그녀의 눈빛을 한결 뒤틀리고 온전치 못한 무언가로 물들이면서, 어떤 장미의 짙은 자줏빛, 거의 검은 붉음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이 알베르틴들은 저마다 달라서, 마치 무희가 새롭게 나타날 때마다 그 빛깔과 형태와 성격이 투사된 각광의 헤아릴 수 없이 변화무쌍한 놀림에 따라 바뀌는 것과 같았다. 아마도 그 무렵 내가 그녀에게서 바라보던 사람들이 그토록 서로 달랐기 때문에, 훗날 나 자신 또한 내 생각이 향한 그 특정한 알베르틴에 대응하는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질투하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 관능적인 사람, 우울한 사람, 광란하는 사람, 그렇게 새로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은 단지 어떤 기억이 우연히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기억을 뒷받침하며 그것에 실리는 믿음의 세기, 곧 내가 그 기억을 음미하는 방식이 달라짐에 따라 그 믿음이 지녔던 세기에 비례해서였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이 지점으로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곧 대개는 우리 자신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믿음들로. 그럼에도 이 믿음들은 우리가 마주 보는 보통 사람보다도 우리의 행복에 더 큰 무게를 지니니, 우리가 그 사람을 보는 것은 바로 그 믿음들을 통해서이며, 눈앞의 사람에게 그 순간의 위대함을 실어주는 것 또한 그 믿음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앞으로 알베르틴을 두고 생각하게 될 저 여러 ‘나’ 하나하나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 더 나아가 내 앞에 나타났던, 한 번도 같은 적 없던 저 여러 알베르틴 하나하나에도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그저 편의를 위해 ‘바다’라고만 불렀던, 그 해변에서 잇달아 밀려오던 여러 바다와도 같았고, 그 바다 앞에서 그녀 또한 하나의 님프처럼 홀로 떨어져 서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야기를 들려줄 때(여기서는 훨씬 더 절실한 이유로) 어느 날의 날씨가 어떠했는지 언급하듯이, 나는 알베르틴을 본 어느 날이든 그날 내 영혼을 다스리며 그 대기를 빚어내던 믿음에 늘 그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 사람들의 모습이란 바다의 모습이 그러하듯 저 구름에 달려 있으니, 그 구름은 스스로는 거의 보이지도 않으면서 그 응집과 이동, 흩어짐과 달아남으로 모든 것의 빛깔을 바꾸어 놓는다. 어느 저녁 엘스티르가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던 그 처녀들에게 나를 소개하지 않음으로써 찢어 놓았던 바로 그 구름처럼, 그리하여 그녀들이 멀어져 가는 동안 그 모습이 문득 더 아름다워졌었고, 며칠 뒤 내가 정말로 그녀들을 알게 되었을 때 다시 뭉쳐, 그 밝음을 가리며, 자주 내 눈과 그녀들 사이에 끼어들던, 베르길리우스의 레우코테아처럼 짙고도 부드러운 구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