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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브레 ③

1권 · 콩브레

「아, 인정합니다.」 그는 특유의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는데, 그 미소는 부드럽게 빈정대는 듯하면서도 환멸에 젖어 아득했다. 「제 그곳 집에는 세상의 온갖 쓸모없는 것이 다 있지요. 오직 없는 것이라곤 정작 꼭 필요한 것, 이곳 같은 드넓게 트인 하늘 한 자락뿐입니다. 얘야, 너는 언제나 네 삶 위에 하늘 한 자락을 남겨 두려무나.」 그는 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네 안에는 보기 드문 자질의 영혼이, 예술가의 천성이 깃들어 있단다. 그것이 필요로 하는 것이 없어 굶주리게 두어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가 집에 다다르면 고모는 사람을 보내 구필 부인이 정말로 미사에 늦게 왔는지 우리에게 묻곤 했으나, 우리 중 누구도 그것을 알려 줄 수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어느 화가가 성당에서 '악인 질베르'의 창을 모사하고 있더라는 말을 전해 고모의 조바심을 키웠다. 프랑수아즈가 곧장 식료품 가게로 보내졌으나 테오도르가 없는 탓에 빈손으로 돌아왔는데, 성가대원 겸 성당 건물 관리의 한몫을 맡은 데다 식료품점 점원이기도 한 그의 두 겹 직업은 그에게 사회 온갖 계층과의 교류뿐 아니라 그들 일에 대한 백과사전적 지식까지 안겨 주었던 것이다.

「아!」 고모는 한숨을 쉬곤 했다. 「욀라리가 올 때가 됐으면 좋으련만. 정말이지 나한테 그걸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그 애뿐이야.」

욀라리는 다리를 절뚝이는, 억척스럽고 귀먹은 노처녀로, 어릴 적부터 시중들어 온 드 라 브르토느리 부인이 세상을 떠난 뒤 '은퇴'하고서 성당 곁에 방 한 칸을 얻어 지냈는데, 그 방에서 끊임없이 나와 무슨 예배에 참석하거나, 예배가 없을 때면 홀로 기도를 올리거나 테오도르를 거들거나 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우리 레오니 고모 같은 병자들을 찾아다니며 미사나 저녁 기도에서 있었던 일을 죄다 들려주었다. 옛 주인집 식구들이 마련해 준 얼마 안 되는 수입에, 이따금 본당 신부나 콩브레 성직 사회의 다른 명사(名士)의 성직복을 손봐 주러 다니며 푼돈을 보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검은 나사 망토 위에는 거의 어느 수도회에 속하기라도 한 듯한 작고 흰 두건을 썼고, 피부병이 두 뺨 일부와 굽은 코를 봉선화처럼 새빨간 빛으로 물들여 놓았다. 그녀의 방문은 이제 존경하는 본당 신부 말고는 거의 아무도 만나지 않던 우리 레오니 고모의 삶에서 하나뿐인 큰 낙이었다. 고모는 다른 방문객의 이름을 하나하나 명단에서 지워 갔는데, 그들이 하나같이, 고모가 보기에, 가장 질색하는 두 부류 가운데 이쪽이든 저쪽이든 빠지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둘 중 더 나쁜 쪽, 그래서 고모가 가장 먼저 떨쳐낸 무리는, 고모에게 몸을 그리 애지중지하지 말라 이르며, (설령 드러내 놓고가 아니라 그저 이따금 못마땅한 침묵이나 미심쩍은 미소로 그친다 해도) 볕에서 힘차게 한 바퀴 걷고 잘 구운 붉은 비프스테이크를 먹는 편이 온갖 약병과 자리보전보다 고모에게 (열네 시간 동안 위에 비시 광천수를 끔찍하게도 두 모금이나 얹고 있던 고모에게!) 더 이로우리라는 불온한 교설을 설파하는 자들이었다. 다른 부류는 고모가 스스로 여기는 것보다 더 위중하다고, 사실은 고모가 말하는 그대로 위중하다고 믿는 듯한 자들이었다. 그리하여 프랑수아즈의 간곡한 청에 못 이겨 한참을 망설인 끝에 이층 방으로 올려보낸 이들 가운데, 방문 중에 「정말 좋은 날에는 잠깐 바깥바람이라도 쐬시는 게 어떨까요…?」 하고 겁먹은 듯 내비쳐 자기가 받은 영광에 얼마나 걸맞지 않은지 드러낸 자든, 반대로 고모가 「난 아주 기운이 없어, 아주 없어. 끝이 다가와, 여보게들!」 하고 말할 때 「아, 그래요, 기운이 다 빠지면 그렇지요! 그래도 얼마간 더 버티실 겁니다.」 하고 대꾸한 자든, 어느 쪽이나 다시는 고모의 문이 자기에게 열리지 않으리라 여겨도 좋았다. 그리고 프랑수아즈는 고모가 침대에서 생테스프리 거리에 있는 이런 사람들 가운데 누군가가 자기를 보러 오는 듯한 모습을 보거나 제 집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짓는 낭패한 표정을 재미있어했지만, 그들을 돌려보내려는 (한 번도 실패한 적 없는) 고모의 술책과, 고모를 못 본 채 되돌아가야 할 때 그들이 짓는 당황한 낯빛을 보고는, 마치 멋진 속임수라도 본 듯 훨씬 더 신나게 웃어댔다. 그러면서 이 모든 사람보다 윗길이라고 느끼던 제 마님을, 그들을 안 볼 수 있고 또 실제로 안 보고야 마는 그 능란함 때문에, 남몰래 우러러보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요컨대 고모는, 자기를 보러 오는 이라면 누구나, 자기 삶의 방식을 옳다 해 주고, 자기 고통을 함께 딱해해 주며, 끝내는 낫게 되리라 장담해 주기를, 그 모두를 한꺼번에 요구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에 욀라리는 뛰어났다. 고모가 1분에도 스무 번씩 「이제 정말 끝이 왔나 봐, 가엾은 욀라리!」 하고 말하면, 스무 번 다 욀라리는 이렇게 되받았다. 「옥타브 부인, 마님이 마님 병을 그리 잘 아시니 백 살까지 사실 거예요, 바로 어제 사즈랭 부인이 저더러 그러셨듯이요.」 욀라리의 가장 뿌리 깊은 믿음 하나는, 그 숱한 경험이 쌓아 올렸을 만한 무시무시한 정정(訂正) 목록으로도 뽑아낼 수 없던 것으로, 사즈라 부인의 이름이 실은 사즈랭 부인이라는 것이었다.

「난 백 살까지 살자고 청하는 게 아니야.」 고모는 말하곤 했으니, 제 남은 날의 수에 딱 정해진 한계가 매겨지지 않는 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밖에도 욀라리는 고모를 지치게 하지 않으면서 기분을 풀어 줄 줄을 누구보다 잘 알았으므로, 뜻밖의 일이 생겨 막지 않는 한 일요일마다 어김없이 이루어지던 그 방문은 고모에게 하나의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에 대한 기대는 일요일이면 고모를 처음에는 제법 입맛 도는 설렘 속에 붙들어 두었으나, 욀라리가 오는 것이 1분이라도 늦어지면 그 설렘은 이내 너무 오래 채워지지 못한 허기의 고통으로 바뀌었다. 지나치게 길어지면 욀라리를 기다리는 황홀은 하나의 고문이 되어, 고모는 쉴 새 없이 시계를 들여다보고, 하품을 하고, 온갖 증세를 하나씩 번갈아 하소연했다. 욀라리의 초인종 소리가, 이미 기다림을 접은 하루의 맨 끝머리에 앞문에서 울리면, 고모는 거의 앓아누울 지경이 되었다. 실은 일요일이면 고모는 이 방문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점심이 끝나기가 무섭게 프랑수아즈는 우리가 어서 식당에서 물러나 자기가 이층으로 올라가 고모를 '차지'할 수 있기를 안달했다. 그러나, 콩브레에 좋은 날씨가 완연히 자리 잡은 날부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생틸레르 종탑에서 내려오는 저 자랑스러운 정오의 시각은, 잠시 그 종탑을 낭랑한 왕관의 열두 갈래 뾰족한 끝으로 장식하고서, 이미 우리 식탁 둘레에 오래도록 울려 퍼진 뒤였고, 그 곁에는 성당을 다녀와 여느 때처럼 늘 그 자리에 놓인 '성체빵'도 함께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아라비안나이트 그림이 그려진 접시들을 앞에 두고 앉아, 한낮의 열기에, 그리고 그보다 더 든든한 식사에 짓눌린 채였다. 달걀, 커틀릿, 감자, 잼, 비스킷이라는 붙박이 바탕 위에, 이제는 상에 올리며 우리에게 알리지도 않던 그 위에, 프랑수아즈는, 밭과 과수원의 노동이, 조수(潮水)의 수확이, 장터의 운수가, 이웃의 인심이, 그리고 그녀 자신의 재능이 마련해 주는 대로 한 가지씩 보태었으니, 어찌나 그럴싸했던지 우리 식단은, 13세기 대성당 정문에 새겨진 네잎무늬 장식이 그러하듯, 사계절의 걸음과 인간사의 갖가지 사연을 얼마간 비추었다. 생선 장수가 신선하다고 장담했으므로 가자미 요리, 루생빌르팽 장터에서 썩 좋은 놈을 보았으므로 칠면조, 여태 그런 식으로 해 준 적이 없었으므로 골수를 곁들인 근대꽃, 바깥바람에 배가 고파지고 또 저녁까지 일곱 시간이면 '삭힐' 짬이 넉넉하므로 양 넓적다리 구이, 색다르게 시금치, 아직 구하기 어려우므로 살구, 보름만 지나면 더는 없을 터이므로 구스베리, 스완 가 일부러 가져다준 산딸기, 지난 두 해 동안 한 알도 열리지 않던 벚나무에서 처음으로 딴 버찌, 그 시절 내가 무척 좋아하던 크림치즈, 전날 저녁에 주문해 두었으므로 아몬드 케이크, 이번에 성체빵을 '내놓을' 차례였으므로 고급 빵. 그리고 이 모두를 먹어 치우고 나면, 우리를 위해 특별히 지은, 그러나 특히 그런 것을 즐기던 아버지께 바쳐진 한 편의 작품, 곧 프랑수아즈의 머릿속에서 영감을 얻어 그 손끝에서 빚어진 초콜릿 크림이, 마치 그녀가 온 재주를 쏟아부은 음악의 '소품'처럼 가볍고 덧없이 우리 앞에 놓였다. 「고맙지만 됐어요, 다 먹었어요, 배가 안 고파요.」 하며 그것을 들기를 마다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곧장, 예술가가 제 작품 하나를 선물했을 때 그 무게와 재료나 따지는 속물들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니, 정작 값진 것은 창작자의 뜻과 그 서명인데 말이다. 접시에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하나라도 남기는 것은, '소품'이 아직 연주되고 있는데, 그것도 작곡가가 바로 눈앞에서 지켜보는데 자리를 박차고 연주회장을 나가는 것만큼이나 큰 무례를 드러내는 짓이었을 터이다.

마침내 어머니는 내게 말하곤 했다. 「자, 온종일 여기 있지는 마라. 바깥이 너무 더우면 네 방으로 올라가도 좋지만, 우선 바람을 좀 쐬렴. 밥 먹고 곧바로 책부터 읽지 말고.」

그러면 나는 펌프와 그 물통 곁에 가 앉곤 했다. 물통은 고딕식 세례반처럼 여기저기 도롱뇽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그 도롱뇽은 허물어져 가는 돌을 바탕 삼아 가늘고 우의적인 제 몸을 날렵하게 도드라지게 빚어 놓았다. 나는 라일락 나무 그늘 아래, 등받이 없는 걸상에 앉았으니, 그곳은 생테스프리 거리와 옆문으로 통하는 정원의 그 작은 구석이었고, 그 손질 안 된 흙에서는 집 자체에서 뻗어 나온, 겉보기엔 딴 건물 같은 고모네 뒤채 부엌이 두 층으로 솟아 있었다. 붉은 타일을 깐 그 바닥이 반암(斑巖)처럼 반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프랑수아즈의 동굴이라기보다 비너스의 작은 신전 같았다. 그곳은 우유 장수, 과일 장수, 채소 장수가, 더러는 먼 마을에서까지 찾아와 제 밭의 맏물을 바치는 봉헌물로 넘쳐났다. 그리고 그 지붕 위에는 언제나 비둘기의 구구거림이 얹혀 있었다.

예전 같으면 나는 이 신전을 둘러싼 성스러운 숲에 이렇게 머물러 있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읽으러 이층으로 올라가기 전에, 할아버지의 형제이자 소령으로 예편한 노병이던 아돌프 삼촌이 아래층에서 쓰던 작은 응접실로 슬며시 들어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 방은, 열린 창으로 열기가, 좀처럼 거기까지 들지 않던 햇살까지는 아니어도, 밀려들 때조차, 야외의 삶이자 옛스러운 삶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이제는 쓰지 않는 총기실에 들어설 때 콧구멍을 꿈꾸게 하고 또 그 꿈을 붙들어 두는 그 어렴풋하면서도 신선한 냄새를 어김없이 풍겼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 나는 아돌프 삼촌의 방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는데, 나 때문에 삼촌과 우리 식구 사이에 다툼이 생겨 삼촌이 더는 콩브레에 오지 않게 된 까닭이며, 그 사정은 이러했다. 파리에서 한 달에 한두 번 나는 삼촌을 찾아뵈러 보내지곤 했는데, 그때 삼촌은 점심을 마무리하는 참이었고, 수수한 알파카 웃옷을 걸치고서, 자주와 흰 줄무늬 아마포 작업복을 입은 하인의 시중을 받았다. 삼촌은 내가 오랫동안 뵈러 오지 않았다고, 자기가 홀대받고 있다고 투덜대고는, 마르치판이나 귤을 내주었고, 그러고 나면 우리는 아무도 앉는 일 없고 불도 지핀 적 없으며 벽은 금박 몰딩으로 도드라지고 천장은 하늘을 흉내 내 파랗게 칠했으며 가구는 조부모 댁에서처럼 새틴을 씌웠으되 다만 노란빛인 그런 방을 가로질렀다. 그런 다음 우리는 삼촌이 '서재'라 부르던 방으로 들어섰는데, 그 벽에는 판화들이 걸려 있어, 어두운 바탕을 배경으로, 통통하고 발그레한 여신이 마차를 몰거나, 지구의 위에 서 있거나, 이마에 별을 단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런 그림들은 폼페이를 떠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여겨져 제2제정기에 인기를 끌었다가 이후로는 대체로 멸시받았고, 이제는 사람들이 (달리 어떤 이유를 대든) 오직 하나의 한결같은 이유, 곧 그것들이 제2제정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다시 모으기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마부의 전갈을 들고 삼촌의 하인이 와서 몇 시에 마차를 대령할지 여쭐 때까지 삼촌과 함께 그곳에 머물렀다. 그러면 삼촌은 명상에 잠겨 버렸고, 놀란 하인은 그 자리에 서서, 아주 작은 몸짓으로도 감히 삼촌을 방해하지 못한 채, 한 번도 달라진 적 없는 그 대답을 궁금해하며 기다렸다. 결국, 극도로 망설이는 위기를 넘긴 끝에, 삼촌은 어김없이 「두 시 십오 분」이라는 말을 내놓았고, 하인은 놀라워하면서도 토를 달지 않고 그 말을 되뇌었다. 「두 시 십오 분이요! 알겠습니다, 나리… 가서 그리 이르지요….」

이 무렵 나는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어쩔 수 없이 플라토닉한 사랑이었으니, 부모님이 아직 내가 극장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터라, 그곳에서 누릴 즐거움을 내가 스스로 그려 본 그림이 어찌나 엉터리였던지, 나는 관객 하나하나가, 마치 입체경을 들여다보듯, 오직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무대와 무대장치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비록 그것이 나머지 관객들에게 저마다 따로 펼쳐지는 수천 가지 다른 구경거리와 꼭 닮았다 할지라도 그러하다고 거의 믿을 지경이었다.

아침마다 나는 모리스 광고탑으로 달려가 새로 어떤 연극이 걸렸는지 살폈다. 이 광고들이 내 마음을 채워 준 몽상보다 더 사심 없고 더 행복한 것은 없었으니, 그 몽상은 연극 제목을 이루는 낱말들이 자아내는 어쩔 수 없는 연상에서, 또한 그 낱말들이 도드라져 보이던, 아직 풀기에 젖어 쭈글쭈글한 벽보의 빛깔에서 그 꼴을 얻었다. 오페라코미크의 초록 벽보가 아니라 코메디프랑세즈의 포도줏빛 벽보에 새겨진 Testament de César GirodotOedipe-Roi 같은 기묘한 제목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Diamants de la Couronne의 반짝이는 흰 깃털만큼 Domino Noir의 매끄럽고 신비로운 새틴과 그토록 깊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부모님이 내게, 첫 극장 나들이에는 이 두 작품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한다고 일러 두었던 터라, 나는 한쪽 제목과 다른 쪽 제목을 (내가 두 작품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 제목이 전부였으므로) 번갈아 낱낱이 뜯어보며, 저마다에서 그것이 안겨 줄 즐거움을 미리 한 조각 낚아채려, 또 그 즐거움을 다른 제목에 숨은 즐거움과 견주어 보려 애썼고, 끝내는 한편으로는 눈부시게 오만한 연극을, 다른 한편으로는 부드럽고 벨벳 같은 연극을 어찌나 생생하고 어찌나 거역할 수 없이 그려 보였던지, 나는 어느 연극을 더 보고 싶은지 도무지 정하지 못했으니, 그것은 마치 저녁 식탁에서 rice à l’Impératrice와 그 유명한 초콜릿 크림 사이에서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놀이 동무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죄다 배우들에 관한 것이었으니, 그 예술은, 아직 내가 겪어 본 적은 없었으되, 예술 자체가 내게 그 즐거움을 미리 맛보게 허락한 수많은 형태 가운데 첫째가는 것이었다. 한 배우의 어조와 억양의 재간과 다른 배우의 그것 사이에서, 아무리 하찮은 차이라도 내게는 헤아릴 수 없이 중대해 보였다. 그리고 그들에 관해 들은 바에 따라 나는 그들을 재능의 순서로 목록에 늘어놓고는 온종일 그것을 혼자 되뇌었는데, 그 목록은 끝내 내 머릿속에서 굳어 버려, 지워지지 않는 탓에 골칫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학창 시절, 선생이 고개를 돌린 틈을 타 새 친구와 수업 중에 몰래 말을 트려 할 때면, 나는 늘 먼저 그가 벌써 극장에 다니기 시작했는지, 그리고 우리 시대 으뜸가는 배우가 단연 고인 것을, 두 번째가 들로네인 것을, 하는 식으로 그가 수긍하는지부터 물었다. 그리고 그의 판단으로 페브르가 티롱보다 아래이거나 들로네가 코클랭보다 아래라면, 코클랭이라는 이름이 그 돌 같은 뻣뻣함을 벗어던지고 내 머릿속에서 두 번째 자리로 옮겨 오르며 자아내는 그 돌연한 휘발성이, 들로네라는 이름이 네 번째로 미끄러져 내려갈 수 있도록 문득 갖추게 되는 그 풍성한 생기가, 내 머리를 움트고 꽃피는 생명의 감각으로 자극하고 기름지게 했다.

그러나 배우들에 대한 생각이 그토록 나를 짓눌렀다면, 어느 오후 테아트르프랑세에서 나오는 모방을 본 것이 나를 가망 없는 사랑의 진통과 고통 속에 빠뜨렸다면, 극장 문 밖에서 불타오르는 어느 '스타'의 이름은, 길에서 나를 스쳐 간 사륜마차의 창 너머로 보이는, 이마 위 머리칼이 장미로 활짝 피어난, 어쩌면 여배우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생각한 어느 여인의 얼굴은, 얼마나 더, 오래도록 가시지 않는 동요를, 그녀의 사생활을 그려 보려는 부질없고 괴로운 안간힘을 내게 남겨 놓았던가.

나는 가장 이름난 여배우들을 재능의 순서로 갈래지었다. 사라 베르나르, 라 베르마, 바르테, 마들렌 브로앙, 잔 사마리. 그러나 나는 그들 모두에게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삼촌은 그들 가운데 여럿을 몸소 알았고, 또 내 마음속에서는 여배우와 뚜렷이 구별되지 않던 또 다른 부류의 여인들도 알고 지냈다. 삼촌은 그들을 제 집에서 대접하곤 했다. 그리고 우리가 정해진 날에만 삼촌을 뵈러 간 것은, 다른 날에는 우리 식구가 좀처럼 마주치기 곤란한 부인들이 올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여겼다. 삼촌으로 말하자면, 예쁜 과부들(어쩌면 한 번도 결혼한 적 없었을)이나 백작부인들(그 거창한 칭호란 아마도 가명에 지나지 않았을)에게 우리 할머니를 소개하거나 심지어 우리 집안의 패물 몇 점을 내보이는 예까지 서슴없이 갖추는 그 치명적인 헤픔 탓에, 이미 여러 차례 할아버지와 얼굴을 붉힌 터였다. 대화 중에 어느 여배우의 이름이 나오면, 나는 곧잘 아버지가 미소를 띠며 어머니에게 「당신 삼촌 친구 중 하나로군」 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그러면 나는 어른이 된 남자가, 참으로 대단한 지위의 남자조차, 어쩌면 몇 해가 다 가도록, 그런 부인의 문간에서 시중들며 겪어야 했을 그 고단한 수련을 떠올렸다. 그동안 부인은 그의 편지에 답하기를 마다하고 문지기를 시켜 그를 내쫓게 했으리라. 그리고 나는, 삼촌이 이 세상 누구도 다가갈 수 없되 삼촌에게만은 가까운 벗인 그 여배우에게 제 집에서 나를 소개함으로써, 나 같은 어린 애송이 하나쯤은 이 모든 고초에서 면제해 줄 수 있으리라 상상했다.

그리하여, 시간이 바뀐 어느 수업이 이제 공교로운 시각에 걸려 이미 여러 차례 삼촌을 뵙는 것을 막았고 앞으로도 계속 막으리라는 핑계로, 삼촌이 우리 방문을 위해 따로 정해 둔 날도 아닌 어느 날, 나는 부모님이 여느 때보다 일찍 점심을 든 틈을 탔다. 나는 슬며시 빠져나와, 벽보를 읽으러 광고탑으로 (그러라고는 혼자 나가는 것이 허락되어 있었다) 가는 대신, 삼촌 집까지 내내 달려갔다. 삼촌 집 문 앞에서 나는 쌍두마차 한 대를 보았는데, 말의 눈가리개와 마부의 단춧구멍에 붉은 카네이션이 꽂혀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웃음소리와 어느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고, 내가 초인종을 누르기가 무섭게 정적이 흐르며 문 닫는 소리가 났다. 나를 들여보낸 하인은 당황한 기색으로, 삼촌이 몹시 바빠 아마 나를 보지 못할 거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는 내가 왔음을 알리러 안으로 들어갔고, 아까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가 말했다. 「아, 그래요! 들여보내세요, 잠깐만요. 참 재미있겠어요. 저기 책상 위에 있는 게 저 애 사진인가요? 그 옆에 있는 게 저 애 어머니고요(당신 조카분 맞지요?)? 어쩌면 저리 빼닮았을까요? 저 꼬마를 정말 보고 싶어요, 딱 일 초만요.」

삼촌이 투덜대며 점점 언짢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하인이 내게 들어오라고 일렀다.

식탁 위에는 늘 놓여 있던 그 마르치판 접시가 그대로 있었고, 삼촌은 여느 날과 같은 알파카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맞은편에는, 분홍 비단 드레스 차림에 목에 진주 목걸이를 큼직하게 두른 젊은 여인이 앉아 막 귤 하나를 다 먹어 가는 참이었다. 그녀를 마담이라 불러야 할지 마드무아젤이라 불러야 할지 몰라 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그녀에게 말을 걸어야 할 처지가 될까 봐 그쪽으로 감히 눈을 오래 두지 못한 채, 삼촌에게 입 맞추려 서둘러 다가갔다.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삼촌은 「내 조카요!」 하고 말했을 뿐, 그녀에게 내 이름을 일러 주지도, 내게 그녀의 이름을 일러 주지도 않았으니, 필경 할아버지와의 갈등이 있은 뒤로 자기 집안을 이 다른 부류의 지인과 조금이라도 엮는 일을 되도록 피하려 애써 온 까닭이었다.

「어쩜 저리 제 어머니를 닮았을까요.」 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사진 말고는 내 조카를 본 적이 없잖소.」 삼촌이 노기를 띤 채 재빨리 말을 잘랐다.

「미안하지만요, 이보세요, 작년에 당신이 그리 편찮으셨을 때 제가 계단에서 그분을 스쳐 지났답니다. 하기야 잠깐 봤을 뿐이고, 당신네 계단이 좀 어둡긴 하지요. 그래도 그분이 얼마나 어여쁜지는 넉넉히 알아볼 만큼 봤어요. 이 도련님은 그분의 그 고운 눈을, 그리고 이것도 그대로 물려받았네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한 손가락으로 제 이마 아래쪽을 가로질러 선을 그어 보였다. 「그런데요.」 그녀가 삼촌에게 물었다, 「당신 조카분이 ⸻ 부인인가요, 성이 당신과 같은가요?」

「이 앤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았소.」 삼촌이 웅얼거렸는데, 엄마의 이름을 소리 내어 되풀이함으로써 대리로 소개를 시키는 것도, 두 사람을 실제로 맞대는 것만큼이나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아버지를 쏙 뺐고, 또 가엾은 내 어머니도 닮았지.」

「저는 이 애 아버지를 뵌 적이 없어요, 이보세요.」 분홍 옷의 부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당신의 가엾은 어머니도 뵌 적이 없고요.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게 바로 당신이 그 큰 슬픔을 겪은 직후였다는 걸 기억하시잖아요.」

나는 얼마쯤 환멸을 느꼈으니, 이 젊은 부인이 이따금 집에서 보아 온 다른 예쁜 여인들, 특히 해마다 설날이면 찾아가던 우리 사촌네 딸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옷차림이 더 나을 뿐, 그 밖에는 삼촌의 친구도 똑같이 재빠르고 상냥한 눈길에, 똑같이 꾸밈없고 다정한 몸가짐이었다. 나는 그녀에게서, 여배우들의 사진에서 내가 흠모하던 그 무대 위의 자태도, 그녀가 살아갈 삶에 어울렸을 그 악마 같은 표정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이 사람이 '그런 여자들' 가운데 하나라고는 좀처럼 믿기 어려웠고, 저 쌍두마차와 분홍 드레스와 진주 목걸이를 보지 않았더라면, 또 삼촌이 그런 여자들 가운데서도 오직 가장 잘나가는 이들만 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더라면, 그녀가 '한다 하는' 축에 든다고는 정녕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마차와 아파트와 패물을 안겨 준 그 백만장자가, 이토록 수수하고 점잖아 보이는 여인에게 돈을 뿌리는 데서 무슨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 자문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이 어떠할지 떠올려 보면, 그 부도덕함은, 어쩌면 그것이 어떤 구체적이고 알아볼 만한 꼴로 내 앞에 서 있을 때보다도 더, 그 은밀함과 보이지 않음으로 인해 나를 어지럽혔으니, 마치 소설의 줄거리처럼, 어느 추문의 감춰진 진실처럼 나를 흔들었던 것이다. 그 진실이란, 이 여인을 중산층 부모의 집에서 몰아내어 온 인류를 위한 봉사에 바치고, 그 아름다움이 활짝 피어나는 지점까지 데려가, 명성으로든 악명으로든 끌어올린 것인데, 그 이목구비의 움직임과 목소리의 억양은, 내가 이미 알던 숱한 다른 여인들의 그것처럼, 나로 하여금, 나도 모르게, 이제는 도무지 어느 집안 사람도 아닌 이 여인을 좋은 집안의 아가씨로 여기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느새 '서재'로 자리를 옮겼고, 내가 있는 것이 조금 겸연쩍은 듯한 삼촌은 그녀에게 담배를 권했다.

「고맙지만 됐어요, 이보세요.」 그녀가 말했다. 「제가 대공께서 보내 주시는 것만 피우는 거 아시잖아요. 그것 때문에 당신이 질투한다고 제가 그분께 말씀드린답니다.」 그러고서 그녀는 담뱃갑에서, 외국어로 금박 글씨가 새겨진 담배를 꺼냈다. 「아, 그렇지.」 그녀가 문득 다시 입을 뗐다. 「그러고 보니 저는 당신과 함께 있는 이 젊은이의 아버지를 뵌 적이 있어요. 당신 조카분 아니에요? 어쩌자고 그걸 잊고 있었을까? 그분은 저한테 어찌나 다정하고 어찌나 상냥하셨는지 몰라요.」 그녀는 얌전하게, 그리고 감격에 겨워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녀 말로는 그토록 상냥했다는) 그 인사가 실제로는 얼마나 무뚝뚝했을지 속으로 헤아려 보았을 때, 아버지의 냉담함과 삼감을 아는 나는, 그 인사에 쏟아진 지나친 치하와 결코 그만큼에는 미치지 못했을 아버지의 살가움 사이의 괴리에, 마치 아버지 쪽의 무슨 결례라도 되는 양 충격을 받았다. 그 뒤로 나는, 이런 한가롭고도 애면글면하는 여인들이 삶에서 맡은 몫 가운데 가장 가슴 뭉클한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여기게 되었으니, 그들은 자기의 온 너그러움과 온 재능을, 정감 어린 아름다움에 대한 넘겨줄 수 있는 그 꿈을 (그들은, 여느 예술가가 다 그렇듯, 그 꿈의 값어치를 실현하려 들거나 그것을 일상의 네모반듯한 틀 안에 가두려 하지 않으므로), 그리고 대수롭지 않은 그들의 황금을, 남자들의 닳고 긁히고 서투르게 다듬어진 삶을 위해 곱고 진귀한 받침을 빚어내는 데 다 바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여인이 그 매력적인 자태로, 분홍 비단 드레스로, 진주로, 대공과의 친분이 자아내는 세련됨으로, 삼촌이 알파카 웃옷 차림으로 그녀를 대접하던 그 흡연실을 가득 채웠듯이, 꼭 그처럼, 그녀는 아버지의 무심한 한마디를 집어 들어, 그것을 곱게 매만지고, 거기에 '멋'을 내고 진귀한 표제를 달며, 제 눈길이라는 보석을, 겸손과 고마움이 어우러진 더할 나위 없이 맑은 보석을 그 안에 박아 넣고는, 그리하여 그것을 하나의 패물로, 하나의 예술품으로, 무언가 온통 매력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켜 되돌려 주었던 것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