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녘 새들의 지저귐이 프랑수아즈에게는 밍밍하게만 들렸다. 위층 하녀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그녀는 흠칫 놀랐고, 그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통에 심란해져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것일까 계속 자문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사를 했던 것이다. 물론 옛집의 다락방에서도 하인들이 그에 못지않게 소란을 피웠지만, 그때는 그들을 잘 알았기에 그들이 오가는 소리를 익숙한 사건으로 만들어 두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침묵마저도 팽팽한 긴장 속에서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여태 내다보던 큰길이 요란했던 것과 달리 새 동네는 조용해 보였기에, 지나가는 사람의 노랫소리가(멀리서 아직 아주 희미하게 들려올 때는 관현악의 한 동기처럼 또렷했다) 유배지에 놓인 프랑수아즈의 눈에 눈물을 고이게 했다. 그러니, "사방에서 그토록 존중받던" 집을 떠나야 하는 처지를 애석해하며 콩브레의 관습에 따라 눈물을 흘리면서 짐을 꾸리고, 있을 수 있는 어떤 집보다도 우리의 옛집이 낫다고 단언하던 그녀를 보며 내가 비웃고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나는, 옛 조건을 버리기는 쉬워도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기는 그만큼 어려운 사람이었기에, 아직 우리를 알지 못하는 문지기에게서 자신의 정신적 안녕에 꼭 필요한 존경의 표시를 받지 못한 이 건물에 몸을 들인 일이 그녀를 그야말로 무너지기 직전까지 몰아넣은 것을 보고는, 우리의 늙은 하녀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다. 내 심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었다. 그녀의 젊은 하인은 결코 그럴 위인이 못 되었으니, 상상할 수 있는 한 콩브레형과는 가장 동떨어진 그에게는 짐을 싸고, 이사하고, 다른 동네에서 사는 일이 모두 마치 휴가 같은 것이어서, 낯선 환경의 새로움이 마치 실제로 여행이라도 한 듯한 상쾌함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그는 자기가 시골에 온 줄로 여겼고, 코감기 하나에도 마치 외풍 드는 기차 칸에 앉아 있었던 것처럼 세상을 두루 본 듯한 감미로운 감각을 맛보았다. 재채기를 새로 할 때마다 그는 이렇게 좋은 자리를 구한 것을 기뻐했으니, 늘 여행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 곁에 있기를 갈망해 왔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프랑수아즈에게로 갔는데, 그녀는 내가 무덤덤하게 넘긴 이사에 대해 흘린 자기 눈물을 내가 비웃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이라도 하듯, 이제 내 슬픔에 얼음장 같은 무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내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내세우는 "예민함"은 그들의 이기심과 짝을 이룬다. 그들은 자기 안에서 점점 더 큰 주의를 기울이는 그 고통을 남들이 드러내 보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자기 몸의 사소한 병 하나도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가는 법이 없게 하던 프랑수아즈였지만, 내가 아플 때면 나로 하여금 내 고통이 동정받거나 하다못해 주목받는 것을 보는 만족조차 누리지 못하게 하려고 고개를 돌려 버리곤 했다. 새집 이야기를 그녀에게 꺼내려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하루 이틀 뒤, 이사할 때 빠뜨린 옷가지 몇을 찾으러 우리가 막 떠나온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을 때, 나는 그 여파로 아직 "미열"이 있었고, 방금 소 한 마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눈이 아직 소화해야 할 긴 궤짝의 광경에 괴롭게 부풀어 있었건만, 프랑수아즈는 여자 특유의 변덕스러움으로 돌아와서는, 옛집 큰길에서는 정말이지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고, 어찌나 답답했던지, 거기까지 가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리는 여정 같았다고, 그런 계단은 본 적도 없다고, 임금님의 몸값을 준다 해도, 수백만금을 준다 해도(순전히 가정이지만) 다시는 거기 살러 가지 않겠다고, 그리고 모든 것이(다시 말해 부엌과 "살림에 딸린 곳들"에 관한 모든 것이) 새집에 훨씬 잘 갖추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제야말로 독자에게 밝혀 두어야 할 텐데, 그 새집은 게르망트 저택의 일부를 이루는 아파트였고, 우리가 그리로 이사한 것은 할머니의 건강이 영 좋지 않아(그 이유는 할머니에게 알리지 않으려 조심했지만) 더 나은 공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함께 밝혀 두어야겠다.
하나의 이름이, 우리가 그 틀 속에 부어 넣은 알 수 없는 것의 이미지를 우리에게 내밀면서도 동시에 실재하는 어떤 장소를 뜻하기에,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그 둘을 하나로 여기게 만들어, 마침내 어느 도시로 나가 그 도시가 담아낼 수 없는 하나의 영혼을, 그러나 우리가 더는 그 이름의 소리에서 몰아낼 힘이 없는 그 영혼을 찾아 나서게 하는 나이가 되면, 우의화가 그러하듯 이름이 개별성을 부여하는 것은 도시와 강에만 그치지 않으며, 이름이 갖가지 차이로 무늬 짓고 온갖 경이로 채우는 것은 물리적 우주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우주 또한 그러하다. 그리하여 도시에 있든 시골에 있든 역사 깊은 저택마다 그 부인 혹은 그 요정이 깃들어 있으니, 마치 숲마다 그 정령이 있고 시내마다 그 님프가 있는 것과 같다. 때로는 이름의 한복판에 숨어, 요정은 자기가 깃들어 사는 우리 상상의 삶에 맞추어 변모한다. 게르망트 부인이 내 안에 존재하던 그 분위기가 그러했으니, 여러 해 동안 환등기 슬라이드가 드리운 그림자나 색유리창으로 스며드는 빛에 지나지 않던 그 분위기는, 전혀 다른 꿈들이 그녀의 흐르는 시냇물의 보글거리는 서늘함으로 그것을 적셔 놓자 비로소 제 색을 바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이름에 상응하는 실재의 인물과 접촉하게 되면 요정은 스러질 수밖에 없다. 그때부터 그 인물을 이름이 비추기 시작하고, 그 인물 안에는 요정다운 데라곤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인물에게서 멀어지면 요정은 되살아날 수 있으나, 그 인물 곁에 머무르면 요정은 결정적으로 죽고 그와 더불어 이름도 죽으니, 요정 멜뤼진이 사라지는 날 대가 끊길 운명이었던 뤼지냥 가문에게 일어난 일과 같다. 그렇게 되면 그 이름은, 우리가 잇달아 행한 "복원" 아래로 마침내 그 원형으로서 우리가 결코 만나지 못할 어느 낯선 부인의 아름다운 초상을 찾아내게 될지도 모르는 그 이름은, 거리에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사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가리기 위해 참조하는, 신원 확인용 사진 한 장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지난 어느 해로부터 온 감각 하나가, 그 속에 노래하거나 연주해 넣은 여러 예술가의 소리와 태를 간직해 두는 저 녹음 장치들처럼, 우리 기억으로 하여금 그 이름이 그때 우리 귓가에 울리던 특유의 음색으로 다시 들리게 해 준다면, 그때 이름 자체는 겉보기에 달라지지 않았어도, 우리는 같은 음절들이 시기마다 우리에게 뜻하던 꿈들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된다. 한순간, 아득한 어느 봄의 맑은 메아리 속에서 지저귀던 그 이름으로부터, 우리는 그림 그릴 때 쓰는 작은 물감 튜브에서 짜내듯, 우리가 떠올리고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의, 정확하고 잊혔으며 신비롭고 싱그러운 빛깔을 짜낼 수 있다. 서투른 화가처럼, 우리의 온 과거를 같은 화폭 위에 펼쳐 놓고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이 지닌 판에 박힌 한결같은 색조로 칠하려 할 때에 말이다. 그와는 반대로, 과거를 이루던 매 순간은 저마다 하나의 독창적 창조를 위해, 견줄 데 없는 조화 속에서, 우리가 더는 알지 못하는 그 시절의 빛깔을 썼으니, 그 빛깔은 지금도 이따금 나를 홀연 황홀케 한다. 이를테면 "게르망트"라는 이름이 이 오랜 세월이 지난 뒤 한순간, 오늘의 그 소리와는 사뭇 다른, 페르스피에 양의 결혼식 날 내게 들려주던 그 소리를 되찾아, 젊은 공작부인의 물결치던 스카프가 빛나던 그 연보라를, 너무 밝고 너무 새것이라 할 만큼 그토록 여린 그 연보라를, 그리고 두 송이 빙카꽃처럼 손 닿지 않는 곳에서 지금 다시 피어난 그녀의 두 눈을, 하늘빛 미소로 햇살을 머금은 그 두 눈을 내게 되살려 줄 때가 그러하다. 그리고 그 시절의 게르망트라는 이름은 또한 산소나 그 비슷한 기체를 채워 넣은 작은 풍선 가운데 하나 같아서, 내가 그것을 터뜨려 안에 든 것을 내뿜게 하면, 나는 그해 그날 콩브레의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 공기에는 비를 알리며 광장 모퉁이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산사나무 꽃 향기가 뒤섞여 있고, 그 바람은 이제 해를 쫓아 버렸다가, 이제 다시 성구실로 이어지는 붉은 모직 양탄자 위로 해가 제 몸을 펼치게 하여 그 양탄자를 환한 제라늄빛 진홍으로 물들였으니, 결혼 예식을 언제나 감동적으로 만드는 그 흥겨움 속에는 말하자면 바그너풍의 화음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문득 우리가 그 본래의 실체가 떨리며 형태를 되찾아, 이제는 소리 없이 죽어 버린 음절들에서 제 모습을 새겨 내는 것을 느끼는 그 드문 순간들을 제쳐 두더라도, 순전히 실용적인 용도로만 쓰이는 일상의 어지러운 소용돌이 속에서 이름들이, 너무 빨리 돌아 회색으로만 보이는 프리즘 팽이처럼 제 빛깔을 온통 잃어버렸다가도, 반대로 우리가 사색에 잠겨 과거로 돌아가고자, 우리를 실어 나르는 저 끝없는 움직임을 늦추고 멈추려 곰곰이 되짚고 찾을 때면, 하나의 이름이 우리 삶의 여정에서 잇달아 우리에게 내보였던 빛깔들이 서로 나란히, 그러나 저마다 뚜렷이 구별되어 다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차츰 보게 된다.
내 첫 유모가, 그 노래가 누구를 기리려 지어진 것인지 아마 오늘의 나만큼도 알지 못했을 그 유모가, "Gloire à la Marquise de Guermantes"라는 그 옛 가락으로 나를 재우던 때, 혹은 몇 해 뒤, 노병 게르망트 원수가 내 보모의 가슴을 자랑으로 부풀게 하며 샹젤리제에서 걸음을 멈추고 "참 잘생긴 아이로군!" 하고는 사탕 상자에서 초콜릿 한 알을 내게 주던 때, 이 게르망트라는 이름이 내 마음속에서 어떤 형태를 띠었는지, 물론 나는 이제 말할 수 없다. 내 가장 이른 유년의 그 시절은 이제 나 자신의 일부가 아니다. 그것은 내게 바깥의 것이어서, 나는 그에 대해,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을 배우듯, 남들이 들려준 이야기로밖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좀 더 근래에 이르러, 그 이름이 나를 사로잡던 시기 속에서 나는 그것이 잇달아 띠었던 예닐곱 가지 서로 다른 형태를 발견한다. 가장 이른 것들이 가장 아름다웠다. 차츰 나의 몽상은 현실에 떠밀려 더는 지킬 수 없게 된 자리를 버리고, 조금 덜 나아간 자리에 새로 터를 잡았다가, 다시 더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게르망트 부인과 더불어, 그 이름의 소생인 그녀의 거처 또한 함께 변모했으니, 그 거처는 해마다 내 귀에 와닿는 이런저런 말에 힘입어 비옥해지며 내 몽상의 가락을 조율해 갔다. 그녀의 그 거처는 거울로 변한 제 돌들 속에, 마치 구름이나 호수의 표면처럼, 내 몽상을 비추었다. 부피랄 것도 없는, 실은 그 꼭대기에서 영주와 그 부인이 봉신들에게 생사여탈을 행하던 한 줄기 주황빛 빛띠에 지나지 않던 아성이, 어느덧, 여러 여름날 오후 내가 부모님과 함께 비본의 물길을 되짚어 걷던 저 "게르망트 쪽" 산책로의 바로 끝에서, 공작부인이 내게 송어 낚는 법을 가르쳐 주고 이웃 정원의 담을 붉고 자줏빛 송이로 수놓던 꽃들의 이름을 알려 주던, 그 보글거리는 시냇물의 땅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다음에는, 노래와 이야기로 이름 높은 저 유서 깊은 세습 영지가 되었으니, 그곳에서 저 오만한 게르망트 가문은, 세월을 가로지르는, 조각으로 다듬어진 유서 깊은 탑처럼, 훗날 파리의 노트르담과 샤르트르의 노트르담이 솟아오를 그 자리들에 아직 하늘이 텅 비어 있던 무렵, 랑의 언덕 꼭대기에 그 대성당의 본당이 아직 얹히지 않았을 무렵, 마치 아라라트 산 꼭대기에 놓인 대홍수의 방주처럼, 창마다 족장들과 판관들이 하느님의 진노가 이제 가라앉았는지 살피려 근심스레 몸을 내밀고, 땅 위에 번성할 초목의 씨앗을 싣고, 탑들로까지 넘쳐 나온 짐승들로 가득한 채, 지붕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이 샹파뉴 평원을 굽어보던 무렵, 날 저물 녘 보베를 떠난 나그네가 아직, 자기를 뒤따르며 길을 따라 돌아, 서녘 하늘의 금빛 병풍을 배경으로 펼쳐진 대성당의 검고 골진 날개를 미처 보지 못하던 그 무렵에, 이미 프랑스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이 "게르망트"는 소설의 무대처럼, 내가 좀처럼 마음속에 그려 볼 수 없어 그만큼 더 발견하기를 갈망하던 상상의 풍경이었으니, 어느 기찻길 정거장에서 몇 마일 안쪽에 있는 실재의 땅과 길들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가 별안간 문장(紋章)의 세목들로 살아 움직이는 풍경이었다. 나는 그 주위의 지명들을, 마치 그것들이 파르나소스나 헬리콘 산기슭에 자리 잡기라도 한 것처럼 떠올렸고, 그것들은 마치 지형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에서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낳는 데 요구되는 물리적 조건들이기라도 한 듯 내게는 소중해 보였다. 나는 콩브레 성당의 창들 아래 새겨진 문장들을 다시 보았다. 그 문장의 사분면들은 세기에 세기를 거듭하며, 이 저명한 가문이 혼인이나 정복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의 방방곡곡에서 날아들게 한 온갖 영지들로 채워져 있었으니, 북방의 광대한 영토와 남방의 견고한 도시들이 게르망트에 한데 모여 무리를 이루고, 제 물질적 실체를 잃은 채, 하늘빛 바탕 위에 초록빛 아성이나 세 탑이 선 은빛 성채를 우의적으로 새겨 넣고 있었다. 나는 그 유명한 게르망트의 태피스트리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중세풍의 푸른, 조금은 거친 그것들이, 실데베르가 그토록 자주 사냥하러 가던 저 태곳적 숲기슭에서, 전설적이고 시들지 않는 그 이름으로부터 떠도는 구름처럼 떨어져 나오는 것을 눈앞에 그려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영지의 이 섬세하고 신비로운 배경을, 이 세월의 조망을, 나는 그것들을 보러 여행을 떠나는 것 못지않게 효과적으로, 그저 파리에서 그곳의 지고한 여주인이자 호수의 부인인 게르망트 부인과 한순간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그 모든 비밀을 꿰뚫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마치 그녀의 얼굴, 그녀의 말투가 숲과 시내의 그 고장다운 매혹을, 그리고 그녀의 문서고에 적힌 옛 관습들과 똑같은 유서 깊은 특색을 지니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러나 그 뒤 나는 생루를 만났다. 그는 내게 그 성이 게르망트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그 가문이 성을 손에 넣은 17세기부터일 뿐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때까지 그들은 그 인근에 살고 있었으나 작위는 그 지방에서 딴 것이 아니었다. 게르망트 마을은 그 둘레에 세워진 성에서 이름을 받았고, 성의 조망을 해치지 않도록 지금도 유효한 지역권(地役權)이 그 거리의 선을 긋고 집들의 높이를 제한하고 있었다. 태피스트리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부셰의 작품으로 19세기에 예술에 취미가 있던 어느 게르망트가 사들인 것이었고, 그 자신이 그린 하잘것없는 수렵화 여러 점과 뒤섞여, "아드리아노플"산 천과 플러시로 꾸민 흉물스러운 응접실에 걸려 있었다. 이런 폭로로 생루는 게르망트라는 이름과는 이질적인 요소들을 성 안에 들여놓았고, 그리하여 나는 더는 그 음절들의 울림에서만 성벽의 돌과 회반죽을 뽑아낼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하여, 그 이름의 한복판에서, 제 호수에 비친 성은 지워지고, 이제 게르망트 부인의 거처로서 그녀를 에워싸며 내게 또렷이 나타나게 된 것은 파리에 있는 그녀의 저택, 곧 게르망트 저택이었으니, 그 이름처럼 맑아서, 그 투명함을 가로막고 흐리게 할 어떤 물질적이고 불투명한 요소도 끼어들지 않았다. 교회라는 말이 성전만이 아니라 신도들의 모임까지 뜻하듯이, 이 게르망트 저택은 공작부인의 삶을 함께 나누는 모든 이를 아울렀으나,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친밀한 이들은 내게는 그저 유명하고 시적인 이름들일 뿐이었고, 저희 또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만을 오로지 알고 지냄으로써, 다만 공작부인 둘레에 광대한 후광을 둘러 그 신비를 한층 돋우고 지켜 줄 따름이었으니, 그 후광은 둘레가 넓어질수록 기껏해야 그 광채가 옅어질 뿐이었다.
그녀가 여는 연회에서, 나는 손님들이 어떤 몸뚱이를, 어떤 콧수염을, 어떤 구두를 지녔으리라고는, 인간답고 이성적인 방식으로 상투적인, 아니 독창적인 말이라도 한마디 내뱉으리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기에, 드레스덴 도자기 소상(小像) 같던 게르망트 부인을 둘러싼 이 이름들의 소용돌이는 유령의 향연이나 망령들의 무도회보다도 더 적은 물질적 실체를 들여오면서, 그녀의 유리 궁전을 위해 진열장의 투명함을 지켜 주었다. 그 뒤 생루가 자기 사촌의 사제며 정원사며 그 밖의 사람들에 관한 갖가지 일화를 들려주자, 게르망트 저택은, 옛날의 루브르가 그러했을 법하듯, 파리의 바로 한복판에서 제 영지에 둘러싸인 일종의 성이 되었으니, 그 영지는 상속으로, 기묘하게도 아직 남아 있던 옛 권리에 힘입어 얻은 것이었고, 그녀는 그 위에서 여전히 봉건적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마지막 거처마저도 우리가 게르망트 부인이 저택의 한 별채에 든 집에 잇닿은 한 아파트에서 빌파리지 부인 곁에 살게 되었을 때 사라져 버렸다. 그것은, 아마 지금도 몇몇은 남아 있을, 저 오래된 도시 저택 가운데 하나였으니, 그 정문 안뜰은, 그것이 민주주의의 밀물이 밀어 올린 충적토였든, 아니면 갖가지 생업이 영주를 둘러싸고 모여 있던 더 원시적인 시대의 유산이었든 간에, 작은 가게며 작업장으로, 이를테면 구둣방이나 재봉방 따위로 에워싸여 있었으니, 복원가의 심미적 열정이 아직 그런 덧붙은 것들을 말끔히 쓸어내지 않은 저 대성당들의 부벽 사이에 둥지를 튼 그런 가게들과 다르지 않았다. 구두 수선도 하고 닭도 치고 꽃도 기르는 문지기 하나, 그리고 저 안쪽 본채에는 한 "백작부인"이 있어, 낡은 쌍두마차를 몰고 나설 때면 문지기 오두막 옆 화단에서 빠져나온 듯한 한련 몇 송이를 모자에 자랑스레 꽂고서(마부석 옆에는 하인 하나가 앉아 있다가, 근방의 귀족 저택마다 내려가 명함을 두고 왔다), 문지기의 아이들이며 마침 지나가는 점잖은 세입자들에게 어렴풋한 미소를 흩뿌리고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네니, 그녀의 그 오만한 상냥함과 만인을 한데 낮추는 자부심에는 그들이 다 매한가지로 보였던 것이다.
이제 우리가 살게 된 집에서, 안뜰 저 끝의 귀부인은 세련되고 아직 아주 젊은 공작부인이었다. 그녀는 다름 아닌 게르망트 부인이었고, 프랑수아즈 덕분에 나는 이내 그녀의 살림살이에 관해 죄다 알게 되었다. 게르망트가는(프랑수아즈는 늘 그들을 "아래층" 사람들, 혹은 "아랫집" 사람들이라 일컬었다) 아침 첫 순간부터 그녀의 한결같은 관심거리였으니, 엄마의 머리를 매만지면서 안뜰 아래로 금지된, 거부할 수 없는, 은밀한 눈길을 던지고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것 좀 보세요, 수녀님 두 분이네. 저건 필시 아랫집에 온 거예요." 아니면 "어머! 부엌 창에 걸린 저 근사한 꿩들 좀 보세요. 어디서 온 건지 물어볼 것도 없지요. 공작 나리께서 총을 들고 나가셨을 거예요!" 그렇게 시작해서, 밤이 이슥할 무렵, 내 잠옷을 챙겨 놓다가 노랫가락 몇 소절이 그녀의 귀에 잡히면 이렇게 결론짓곤 했다. "아랫집에 손님이 드셨네. 흥청망청 즐기시나 봐, 틀림없어." 그러면 그녀의 반듯한 얼굴에, 이제는 눈처럼 하얗게 센 머리의 아치 아래로, 젊은 시절의 미소가, 발랄하되 얌전한 그 미소가 한순간 그녀의 이목구비를 저마다 제자리에 놓으며, 마치 시골 춤이라도 추듯 오묘하고 특별한 순서로 그것들을 가지런히 배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게르망트가의 삶 가운데 프랑수아즈의 흥미를 가장 예민하게 돋우고, 가장 흡족한 만족을 주면서 동시에 가장 날카로운 성가심을 안기던 순간은, 커다란 대문의 두 짝이 활짝 젖혀지고 공작부인이 마차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대개 우리 하인들이 정오의 만찬이라 불리던, 그 누구도 방해해서는 안 될 일종의 엄숙한 유월절 예식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은 어찌나 신성불가침이었던지 아버지조차 그들을 부르는 종을 울릴 수 없었으니, 게다가 아버지도 알고 있었던 바, 그들 중 누구도 다섯 번째 종소리에 첫 번째 종소리 이상으로 귀 기울일 리 없었고, 따라서 그런 무례를 범해 봐야 한낱 시간과 수고의 헛됨일 뿐이며, 그러면서도 정작 아버지 자신에게는 두고두고 성가신 일이 뒤따를 것이었다. 프랑수아즈로 말하자면(그녀는 늘그막에 이르러 자기 위신을 세울 기회라면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어김없이 그날 남은 시간 내내, 자신의 오랜 슬픔의 사연과 불만의 깊은 연유를 바깥세상에 드러내 보이되(결코 읽어 낼 수는 없게) 하는 저 자잘한 붉은 쐐기 모양 상형문자로 뒤덮인 얼굴을 아버지 앞에 들이밀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 사연들을, 우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게, 나직이 중얼거리는 "혼잣말"로 늘어놓기도 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화가 치밀게 하고, 자기 표현대로 "속을 뒤집고", "부아를 돋우리라" 여기던 이 버릇을 두고 "하루 온종일 낮은 미사를 올린다"고 했다.
마지막 의식까지 마치고 나면, 원시 교회에서처럼 집전자이자 동시에 신도의 한 사람이기도 하던 프랑수아즈는 마지막 잔을 제 손으로 채워 들고, 목에 둘렀던 냅킨을 풀어, 물 탄 포도주와 커피 얼룩을 입가에서 닦아 낸 뒤 접어서 고리에 끼우고는, 제 젊은 하인을 향해 서글픈 눈길을 돌려 고마움을 표했다. 그 하인은 그녀를 섬기는 열의를 보이려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 아주머니, 포도주 한 방울만 더 드세요. 오늘은 맛이 그만이에요." 그러고 나서 그녀는 곧장 창가로 가 창을 활짝 열어젖히며, 이 "형편없는 부엌"에서는 숨쉬기가 너무 덥다고 투덜거렸다. 걸쇠를 돌려 맑은 공기를 들이면서, 짐짓 무심한 척 꾸민 눈길을 능숙하게 아래 안뜰로 던져, 그녀는 공작부인이 아직 나설 채비가 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몰래 끌어내고는, 경멸에 찬 열띤 눈으로 한동안 기다리는 마차를 노려보다가, 지상의 것들에 이만한 주의를 다 바치고 나서는, 눈길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 하늘의 맑음을 그녀는 이미 공기의 부드러움과 햇살의 따스함에서 헤아려 두었던 터였다. 그리고 그 눈길을 지붕 한 모퉁이에, 해마다 봄이면 내 침실 굴뚝 바로 위로 비둘기 한 쌍이 날아와 둥지를 트는 그 자리에 머무르게 했으니, 그 비둘기들은 그녀가 콩브레의 제 부엌에서 구구 우는 소리를 듣곤 하던 그 비둘기들과 같은 것이었다.
"아! 콩브레, 콩브레!" 그녀는 외쳤다. 그리고 그녀가 이 부름을 읊조리던 거의 노래하는 듯한 어조는, 그녀 이목구비의 아를풍 순수함과 어우러져, 지켜보는 이로 하여금 그녀가 남녘 태생이며 그녀가 애도하는 잃어버린 고향이 실은 정착해 살던 땅에 지나지 않으리라 넘겨짚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틀렸을 것이니, 제 나름의 남녘을 지니지 않은 고장은 없는 듯싶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제로, 남녘 사람 특유의 저 장단음의 정겨운 뒤바뀜을 말씨에 담은 사부아 사람이며 브르타뉴 사람을 끊임없이 만나지 않던가? "아, 콩브레, 언제나 너를 다시 보려나, 가엾은 땅아! 언제나 네 산사나무 사이에서, 우리네 가엾은 백합참나무 아래에서 축복받은 하루를 보내며, 여치가 노래하는 소리와, 누가 소곤거리기라도 하듯 비본이 자잘한 물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려나. 반 시간도 가만있질 못하고, 저 고약한 복도 끝까지 나를 내달리게 하는 우리 도련님의 그 지긋지긋한 종소리 대신에 말이야. 게다가 그러고도 내가 빨리 안 온다고 우기신다니까. 종을 당기기도 전에 벌써 울리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조금이라도 늦었다간 불같이 노발대발하시지. 아아, 가엾은 콩브레. 어쩌면 나는 죽어서야, 사람들이 나를 돌멩이처럼 무덤 구덩이에 떨구는 그때에야 너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면 다시는 네 그 사랑스러운 산사나무 향내를, 그토록 희고 고운 그 꽃 향내를 맡지 못하겠지. 하지만 죽음의 잠 속에서도 나는 이 세상에서 나를 지옥으로 몰아넣던 그 세 번의 종소리만은 여전히 듣게 될 성싶구나."
그녀의 넋두리는 아래층 조끼 재봉사의 목소리에 끊겼다. 그는 오래전 언젠가 할머니가 빌파리지 부인을 뵈러 갔을 때 할머니를 그토록 즐겁게 해 드렸던 바로 그 사람이었고, 이제는 프랑수아즈의 애정 속에서도 그에 못지않게 드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 창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든 그는, 이웃에게 안부를 건네려 벌써 얼마 전부터 그 관심을 끌어 보려 애쓰고 있었다. 한때 프랑수아즈였던 그 처녀의 요염함이, 세월과 심술과 부엌 아궁이의 열기로 무뎌진 우리 늙은 식모의 뾰로통한 얼굴을 쥐피앙 씨 앞에서 부드럽고 곱게 다듬어 주었고, 그리하여 그녀는 삼감과 스스럼과 수줍음이 어우러진 매력적인 태도로 조끼 재봉사에게 우아한 인사를 보냈으나, 소리 내어 대꾸하지는 않았다. 엄마의 분부를 어기고 안뜰을 내려다보는 정도는 했을망정, 창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까지 나아갈 엄두는 결코 내지 못했으니, 그녀 생각으로는 그것만으로도 마님으로부터 "한바탕 설교"를 뒤집어쓰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녀는 기다리는 마차를 가리키며, 마치 "근사한 한 쌍이지요, 안 그래요!" 하고 말하는 듯했지만, 실제로 중얼거린 말은 "저 낡아빠진 고물덩이 좀 봐!"였다. 그러나 그렇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반드시 대꾸하리라는 것을, 소리 지르지 않고도 들리도록 손을 입가에 대고 이렇게 대꾸하리라는 것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