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댁도 마음만 있으면 하나 두실 수 있잖아요. 저들 것 못지않게, 아니 더 좋은 걸로요. 다만 댁이 그런 걸 좋아하지 않으실 뿐이지요."
그러면 프랑수아즈는, 그 뜻이 얼추 "취향이란 저마다 다른 법이지요, 아시다시피. 이 댁에선 검소함이 법도랍니다"쯤 되는, 겸손하고 얼버무리는 기쁨의 몸짓을 보인 뒤, 엄마가 들어올까 봐 다시 창을 닫았다. 게르망트가보다 더 많은 말을 둘 수도 있었을 이 "댁"이란 바로 우리였지만, 쥐피앙이 "댁"이라 한 것은 옳았다. 순전히 개인적인 몇 가지 낙, 이를테면 온종일 쉴 새 없이 기침을 해 대며 온 집안이 그 감기가 옮을까 겁내는데도, 얄미운 잔웃음을 흘리며 자기는 감기 따위 걸리지 않았다고 우기는 낙 따위를 빼면, 다시 말해 마치 어떤 짐승에게 온전히 붙어사는 식물들처럼, 그 짐승이 대신 잡아먹고 소화해 준 먹이의 마지막 남은, 손쉽게 흡수되는 찌꺼기를 받아먹으며 살아가는 그런 낙을 빼면, 프랑수아즈는 우리와 온전히 한 살림을 이루며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덕과 재산과 살림살이로써, 그녀의 허영에 바칠 그 자잘한 위안거리를 지어내는 수고를 떠맡아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였으니, 거기에 더해, 전통의 관례에 따라 정오의 만찬 예배를 마음껏 올릴 인정받은 권리, 곧 식사를 마친 뒤 창가에서 바깥공기를 한 모금 쐬는 일과, 장 보러 나갈 때 거리에서 얼마쯤 어정거리는 일과, 일요일에 조카딸을 찾아가는 휴일이 어우러져, 그녀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행복의 몫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지닌 격조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 집에서, 이주 첫날들에 프랑수아즈가 그녀 자신이 "시름앓이"라 부르던 병에 그만 무너져 내렸을 법도 하다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그 "시름앓이"란 코르네유가 쓴 ennui라는 말의 능동적 의미에서의, 혹은 애인이나 고향 마을이 그리워 앓다가 끝내 제 목숨을 끊는 병사들의 마지막 편지에 담긴 그 능동적 의미에서의 시름이었다. 프랑수아즈의 시름앓이는 다름 아닌 쥐피앙에 의해 이내 나았으니, 우리가 마차를 두기로 했더라도 그녀가 느꼈을 것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세련된 기쁨을 그가 당장 마련해 준 덕분이었다. "저 쥘리앵 씨네, 아주 훌륭한 분들이에요(프랑수아즈는 새 이름을 이미 익숙한 이름에 곧잘 갖다 맞추곤 했다). 아주 반듯한 사람들이지요. 얼굴에 다 써 있는걸요." 쥐피앙은 실로, 우리가 마차를 두지 않는 것은 그럴 마음이 없어서라는 것을 헤아리고 또 세상에 알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프랑수아즈의 이 새 친구는 관공서 한 곳에 자리를 얻은 터라 집에 붙어 있는 때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조끼 재봉사였고, 할머니가 그의 딸인 줄 알았던 "계집아이" 하나를 데리고 있었으나, 그 조수가(아직 어린애나 다름없던 시절에, 할머니가 빌파리지 부인을 뵈러 갔던 그날, 찢어진 치마를 감쪽같이 꿰매는 솜씨를 보였던 그 아이가) 부인복 쪽으로 방향을 틀어 재봉사가 되자, 그는 그 생업에 대한 흥미를 죄다 잃고 말았다. 처음에는 양재점 작업방의 견습공으로 시작해, 솔기를 박고, 주름 장식을 달고, 단추를 꿰매거나 주름을 다리고, 갈고리와 고리로 허릿단을 여미는 일을 하다가, 이내 둘째 조수로, 다시 수석 조수로 올라섰고, 상류층 부인들 사이에 제 나름의 거래처를 트고 나서는 이제 집에서, 다시 말해 우리 안뜰에서 일했으니, 대개는 작업방에서 데려와 견습으로 삼은 젊은 벗 한둘과 함께였다. 그 뒤로 그곳에 쥐피앙이 있고 없고는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계집아이는(이제는 다 큰 처녀였지만) 여전히 조끼를 마름질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벗들이 거들어 주니 그 밖에 다른 사람은 필요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삼촌 쥐피앙은 바깥에서 일자리를 구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정오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고, 그다음, 처음엔 그저 대리 노릇만 하던 사람의 자리를 완전히 이어받은 뒤로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다행히 그가 "정식 직원"으로 임명된 것은 우리가 이사 온 지 몇 주가 지나서였기에, 프랑수아즈가 가장 힘겨운 첫 고비를 지나친 고생 없이 넘기도록 그의 친절이 그녀에게 넉넉히 베풀어질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이 과도기 동안 이를테면 진정제로서 그가 프랑수아즈에게 지녔던 값어치를 낮잡아 보려는 것은 아니나, 쥐피앙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음은 말해 두어야겠다. 조금 떨어져서 보면,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통통한 볼과 생기 넘치는 혈색이 자아냈을 인상을 온통 망쳐 놓으며, 연민에 젖은, 애처롭고 몽롱한 눈길로 가득한 그의 눈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가 중병을 앓고 있거나 방금 큰 상을 당한 것이 아닌가 짐작하게 했다. 그런데 그는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을뿐더러, 입을 열기가 무섭게(그런데 그의 말솜씨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자못 냉소적이고 쌀쌀맞은 사람이었다. 이 눈과 입술의 어긋남에서 어딘가 매력 없는 거짓됨이 빚어졌고, 그 때문에 그는 스스로도, 모두가 야회복 차림인 잔치에 아침 예복을 입고 나타난 손님처럼, 혹은 왕족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데 정확히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제 말수를 거의 없다시피 줄여 그 곤경을 벗어나는 평민처럼 불편해 보였다. 쥐피앙의 말은(여기서 비유는 끝난다) 반대로 매력적이었다. 실은 눈이 이렇게 얼굴 위로 넘쳐 나는 것에 상응하는 것이었으련만(그를 알고 나면 더는 그 눈이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내 그에게서 보기 드문 지성을, 그것도 내가 여태 접해 본 가운데 가장 자연스레 문학적인 지성의 하나를 알아보았다. 아마 정규 교육이라곤 받지 못했을 그가, 젊은 시절 대충 훑어본 몇 권의 책의 도움만으로, 가장 재치 있는 말솜씨를 지녔거나 제 것으로 만들어 두었다는 뜻에서다. 내가 알던 가장 재능 있는 사람들은 젊어서 죽었다. 그래서 나는 쥐피앙의 목숨도 머잖아 끝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친절함이 그의 여러 미덕 가운데 하나였고, 연민이, 남을 향한 가장 섬세하고 가장 너그러운 감정이 그러했다. 그러나 프랑수아즈의 삶에서 그가 차지하던 몫은 이내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를 그쳤다. 그녀는 대역들로 견디는 법을 익혔던 것이다.
실로, 어떤 장사꾼이나 하인이 꾸러미나 전갈을 들고 우리 집 문을 찾아오면, 프랑수아즈는 짐짓 아무 관심 없는 척, 그저 빈 의자를 어렴풋이 가리키기만 하면서도, 그가 엄마의 답을 기다리며 부엌에서 보내는 그 몇 초를 어찌나 솜씨 좋게 십분 활용하는지, 그 낯선 이가 우리에게 어떤 물건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원치 않아서"라는 확신을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게 새기지 않고 떠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녀가 남들에게 우리에게 "돈이 있다"는 것을(그녀는 생루가 부분관사라 부르던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라, 그저 "돈이 있다", "물을 뜬다"라고만 했다) 우리가 부유하다는 것을 알리려 그토록 애쓴 것은, 미덕이라곤 없는 재산, 아무런 미덕도 곁들이지 않은 재산 그 자체가 그녀 눈에 삶의 지고한 선이어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산 없는 미덕이 그녀의 이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녀에게 재산이란 말하자면 미덕의 필요조건이어서, 그것이 없으면 미덕 자체도 값어치도 매력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둘을 하도 조금밖에 구별하지 않아, 마침내는 저마다에 다른 쪽의 속성을 입히기에 이르러, 미덕에서 어떤 물질적 안락을 기대하고, 재산에서 어떤 교화적인 것을 발견하곤 했다.
창을 다시 닫자마자, 그것도 얼른 닫았으니, 그러지 않았다간 엄마가 그녀에게 "온갖 생각할 수 있는 모욕"을 퍼부었을 것이라 했다, 프랑수아즈는 끙끙 앓는 소리와 한숨을 연신 내뱉으며 부엌 식탁을 치우기 시작했다.
"셰즈 거리에 사는 게르망트가 사람들도 있어요." 아버지의 하인이 입을 열었다. "그 댁에 있던 친구가 하나 있었지요. 그 댁 둘째 마부였답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녀석이 하나 있는데, 그 옛 친구 말고 그 매부 되는 사람이, 게르망트 남작 댁 마구간지기 하나랑 군대 시절을 같이 보냈다지 뭡니까. 그나저나 아주머니 어머니는 아주머니가 나와 있는 거 아신답니까?" 하고 하인은 덧붙였는데, 그는 철마다 유행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던 것과 똑같이, 제 이야기에 최신 재담을 죄다 뿌려 대는 버릇이 있었다.
프랑수아즈는, 게다가 모든 것을 콩브레의 눈으로, 아득한 안개 저편에서 바라보던 늙어 가는 여인의 지친 눈으로, 그 말 밑에 깔린 재담을 알아보지는 못했으나, 그 말이 그의 나머지 이야기와 아무 상관이 없고 익살꾼으로 소문난 이가 자못 힘주어 내뱉은 것인 만큼 그 안에 뭔가 재치 있는 것이 들어 있으리라는 것만은 알아챘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에게, 마치 "여전하다니까, 저 빅토르는!" 하고 말하는 듯, 인자하게 어리둥절해하는 낯빛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으니, 이런 재치 있는 말을 듣는 것이, 비록 멀리서나마, 사회의 온갖 계층에서 사람들이 부랴부랴 제일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감기 걸릴 위험까지 무릅쓰는 저 점잖은 사교적 즐거움과 한 갈래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이 하인을 제 마음에 꼭 맞는 벗으로 여겼으니, 그가 공화국이 성직자들을 상대로 곧 시행하려 든다는 저 끔찍한 조치들을 사나운 분노로 끊임없이 규탄해 마지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장 잔인한 적은, 우리와 맞서고 우리를 설득하려 드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 소문을 부풀리거나 지어내는 자들이며, 그것도 우리의 불편을 덜어 줄 만한, 그리하여 그들이 우리 고통을 온전케 하려 굳이 끔찍하고도 의기양양한 것으로 내보이려 드는 저 무리에게 우리가 조금이나마 좋은 감정을 품게 할 만한 어떤 정당함의 기미도 결코 끼워 넣지 않도록 조심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프랑수아즈는 아직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공작부인도 그 일가붙이들과 다 얽혀 있는 게 틀림없어." 프랑수아즈는 마치 안단테에서 한 대목을 다시 연주하듯 이야기를 셰즈 거리의 게르망트가로 되돌리며 말했다. "누가 그러던지 생각은 안 나지만, 그 집안 사람 하나가 공작의 사촌하고 혼인을 했다지 뭐야. 아무튼 같은 핏줄인 거지. 아, 대단한 집안이야, 그 게르망트가는!" 하고 그녀는 존경 어린 어조로 덧붙이며, 파스칼이 종교의 진리를 이성과 성경의 권위 위에 세우듯, 그 집안의 위대함을 그 가지의 수효와 그 인연의 눈부심 위에 동시에 세웠다. 두 가지 뜻을 다 나타낼 말이라곤 "위대한"이라는 낱말 하나뿐이었기에, 그녀에게는 그 두 뜻이 하나의 관념을 이루는 듯 보였으니, 그녀의 어휘는, 이따금 깎은 보석이 그러하듯, 그 어떤 면들에서 마음속 깊은 곳으로 한 줄기 어둠의 빛살을 던져 보내는 흠 하나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콩브레에서 이십 마일도 안 되는 데 있는 게르망트에 성을 둔 게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알제에 사는 그 집 사촌하고도 친척임에 틀림없지." 어머니와 나는 이 알제의 사촌이 대체 누구일까 오래도록 궁금해하다가, 마침내 프랑수아즈가 "알제"라는 이름으로 앙제라는 도시를 뜻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멀리 있는 것이 아주 가까이 있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낯익을 수도 있다. 새해마다 우리에게 나오던 유난히 고약한 대추야자 몇 알로 "알제"라는 이름을 알던 프랑수아즈는 앙제라는 곳은 들어 본 적도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말은, 프랑스어 자체가 그러하듯, 특히 지명에 관해서는 오류가 빽빽이 널려 있었다. "그 댁 집사한테 그 얘길 물어볼 참이었지. 그이를 뭐라고 부른다더라?" 그녀는 마치 올바른 절차를 두고 격식 차린 질문이라도 던지듯 스스로 말을 끊었다가, 이내 스스로 대답했다. "아, 그렇지, 앙투안이라고 부르지!" 마치 앙투안이 무슨 작위라도 되는 것처럼. "그 사람이 나한테 말해 줄 수 있을 텐데, 어찌나 점잔을 빼는지, 대단한 학자님이시라, 혀를 잘라 냈나, 아니면 말하는 법을 배우는 걸 깜빡했나 싶다니까. 말을 걸어도 대꾸를 하는 법이 없어." 프랑수아즈는 계속했는데, 그녀는 "대꾸를 한다(make response)"는 말을 세비녜 부인과 똑같은 뜻으로 썼다. "하지만," 하고 그녀는 아주 거짓되게 덧붙였다. "내 냄비에 뭐가 끓는지만 알면, 남의 냄비에 뭐가 든지는 골머리 앓지 않아. 그 사람이 뭐가 됐든, 가톨릭 신자는 아니야. 게다가 배짱 있는 사람도 못 되고." (이 평을 듣고는 프랑수아즈가 육체적 용맹에 대한 생각을 바꿨나 여길 법도 하다. 그녀에 따르면 콩브레 시절에 육체적 용맹이란 사람을 들짐승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배짱 있다"는 것은 그저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그 사람이 까치처럼 손버릇이 나쁘다고들 하지만, 들리는 말을 다 믿을 건 못 되지. 그 댁 하인들은 오래 붙어 있질 못해, 그 문지기 오두막 때문에 말이야. 문지기들이 샘을 내서 공작부인이 하인들한테 등을 돌리게 만들거든. 하지만 그 앙투안이 진짜 능구렁이라는 건 틀림없어. 그 여편네도 나을 게 없고." 프랑수아즈는 이렇게 매듭지었는데, 집사의 아내를 가리킬 여성형 어미를 "앙투안"이라는 이름에 붙이면서, 그녀는 필시 chanoine와 chanoinesse라는 낱말에 대한 무의식적 기억에서 이 낱말 지어내기의 영감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크게 틀린 것은 아니었다. 노트르담 근처에는 지금도 샤누아네스 거리라 불리는 거리가 있는데, 그 이름은(그곳에 산 이라곤 오로지 남자 참사원들뿐이었으니) 프랑수아즈가 말하자면 바로 그 동시대인이었던 저 옛날의 프랑스인들이 붙인 것이 틀림없다. 게다가 그녀는 곧바로 이런 식으로 여성형 어미를 짓는 또 하나의 예를 들어 보였으니, 이렇게 말을 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게르망트 성을 가진 게 바로 그 공작부인이라는 거야. 그리고 그 고장에서 여자 읍장 노릇을 하는 것도 바로 그이고. 그것만 해도 어디야."
"그거야 대단한 일이고말고요." 하인이 확신에 차서 대꾸했으나, 그는 그 빈정거림을 알아채지 못했다.
"자네 그리 생각하나, 젊은이, 그게 대단한 일이라고? 아니, 그런 양반들이 읍장이니 읍장 부인이니 하는 게 무슨 대수라고. 아무것도 아니지. 아, 그 게르망트 성이 내 거라면, 자네 나를 파리에 발도 못 붙이게 볼 걸세, 정말이지. 우리 나리 마님처럼 밑천 될 만한 게 있는 집안이, 자유로이 떠날 수 있고 아무도 붙잡지 않는데도, 이 형편없는 도시에 눌러앉아 마음만 먹으면 당장 콩브레로 내려갈 수 있는 걸 마다하다니, 참 별난 생각을 다 하시는 게 틀림없어. 왜 은퇴를 미루시는 걸까? 원하는 건 다 가지셨는데. 왜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리시는 거야? 아, 나 같으면 마른 빵 한 조각에 겨울에 몸 녹일 장작 한 단만 있어도, 콩브레 우리 오라비의 그 낡고 초라한 집에서 얼마나 잘 지낼까. 거기선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니까. 눈앞에 이렇게 집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지도 않고, 밤이면 어찌나 조용한지, 오 마일 넘게 떨어진 데서 우는 개구리 소리까지 다 들린다니까."
“정말 근사하겠는데요!” 젊은 하인이 감탄하며 외쳤다. 마치 이 마지막 매력이 베네치아의 곤돌라만큼이나 콩브레에만 있는 것이기라도 한 듯이. 아버지의 시종보다 나중에 이 집에 들어온 그는, 자기보다는 오히려 프랑수아즈가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를 그녀에게 곧잘 늘어놓곤 했다. 그리고 프랑수아즈는, 한낱 요리사 취급을 받으면 얼굴이 혐오로 잔뜩 일그러지는 사람이었는데, 자신을 늘 “가정부”라고 불러 주는 이 젊은 하인에게는, 왕족의 피를 이어받지 못한 대공들이 자신에게 “전하”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선량한 젊은이들에게 느끼는 그런 각별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아무렴, 거기선 사람이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지금이 일 년 중 어느 철인지 훤히 알지요. 여기하곤 다르다니까요. 여기선 성스러운 부활절이 와도 크리스마스나 매한가지로 미나리아재비 한 송이 피어 있는 걸 못 보고, 아침에 이 늙은 뼈다귀를 침대에서 일으킬 때 종소리 하나 안 들려요, 아무리 조그만 삼종 기도 종소리라도 말예요. 거긴 시각마다 종이 울리지요. 가엾은 종이 하나뿐이라도, 그래도 이렇게 혼잣말을 하게 돼요. ‘이제 우리 오라비가 밭에서 돌아오겠구나.’ 그러고는 해가 저무는 걸 지켜보노라면, 땅의 결실을 축복하는 종이 울리고, 등불을 켜기 전에 한 바퀴 돌 짬도 나지요. 한데 여기선 낮이면 낮이고 밤이면 밤일 뿐이라, 잠자리에 들어도 말 못 하는 짐승이나 매한가지로 온종일 무얼 했는지 뭐라 할 말이 없다니까요.”
“제가 듣기론 메제글리즈도 좋은 데라던데요, 부인.” 대화가 자기 취향엔 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흘러간다 싶던 젊은 하인이 끼어들었다. 그는 우리가 식탁에서 메제글리즈 이야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는 게 마침 떠올랐던 것이다.
“어머! 메제글리즈요?” 프랑수아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 이름들, 곧 메제글리즈, 콩브레, 탕송빌 가운데 어느 하나만 입에 올려도 그녀의 입가엔 언제나 그런 웃음이 피어오르곤 했다. 그것들은 그녀의 삶에 너무나 친밀하게 배어 있어서, 삶 바깥에서 마주치거나 남들의 대화 속에서 쓰이는 걸 들으면 어떤 유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교수가 강의 중에 어느 당대 인물을 넌지시 언급하여, 그 이름이 설마 저 높은 강단에서 자기네 귀에 들려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던 학생들에게 자아내는 그런 유쾌함과 어느 정도 비슷했다. 그녀의 즐거움은 또한 이런 느낌에서 우러났다. 곧 이곳들이 그녀에게는 세상 다른 이들에게와는 다른 무엇, 함께 숱한 기쁨을 나눈 오랜 벗과도 같은 무엇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그 이름들에서 재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그것들을 향해 미소 지었다. 실제로 그녀는 거기서 자기 자신의 큰 부분을 발견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요, 그리 말씀하셔도 좋고말고요, 젊은이, 메제글리즈는 제법 예쁜 곳이지요.” 그녀는 낭랑한 웃음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 메제글리즈 이야기를 들으셨대요?”
“메제글리즈를 어떻게 들었느냐고요? 아니, 워낙 이름난 곳인걸요. 사람들이 얘기해 주더라고요, 그럼요, 여러 번씩이나요.” 그는 밀고자 특유의 그 죄스러운 부정확함으로 그녀를 안심시켰다. 우리에게 중요한 어떤 것이 남들에게는 얼마만 한 무게를 지니는지 공평하게 가늠해 보려 할 때면, 바로 그런 부정확함이 우리의 시도를 번번이 좌절시키고 마는 것이다.
“장담하는데요, 온종일 불 앞에 서 있느니 저 아래 버찌나무 밑에 있는 편이 낫지요.”
그녀는 그들에게 욀라리 이야기까지 마치 좋은 사람이었다는 듯이 했다. 욀라리가 죽은 뒤로 프랑수아즈는, 생전엔 그녀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다. 실은 찬장이 텅 비어 굶어 죽어 가다가, 부자들의 적선 덕에 겨우 연명하게 되자 건달처럼 “거드름을 피우는” 온갖 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욀라리도 그만큼밖에 사랑하지 않았으면서 말이다. 욀라리가 일요일마다 어찌나 솜씨 좋게 고모에게서 “푼돈”을 타냈던지, 이제 그 일도 더는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모로 말하면, 프랑수아즈는 그녀를 칭송하기를 결코 그치지 않았다.
“하지만 부인의 사촌뻘 되는 분과 함께 계셨던 건 분명 콩브레였지요?” 젊은 하인이 물었다.
“그럼요, 옥타브 부인 댁이었지요. 아, 정말이지 다정하고 착하고 거룩한 분이셨어요, 가엾은 여러분, 그 댁은 언제나 넉넉하다 못해 남아돌았고, 죄다 최상품이었지요. 착한 분이셨어요, 참말이지, 자고새건 꿩이건 뭐건 아끼는 법이 없으셨다니까요. 저녁에 손님이 다섯이 오든 여섯이 오든, 고기가 모자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그것도 일등품으로다가, 백포도주에 적포도주에, 바라는 건 뭐든 다 있었지요.” (프랑수아즈는 “아끼다”라는 말을 라 브뤼예르가 쓴 뜻으로 썼다.) “언제나 손해는 그분이 물어 주셨어요, 식구들이 몇 달이고 몇 해고 눌러앉아 있어도요.” (이 말은 사실 우리를 헐뜯는 게 아니었다. 프랑수아즈는 “손해”라는 말이 법률 용어에만 한정되지 않고 그저 비용을 뜻하던 시절 사람이었으니까.) “아이고, 참말이지, 그 댁에서 빈손으로 나가는 사람은 없었어요. 본당 신부님도 여러 번 말씀하셨듯이, 곧장 하느님의 옥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인이 세상에 있다면 바로 그분이셨지요. 가엾은 부인, 그 가느다란 목소리로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선해요. ‘있잖니, 프랑수아즈, 나는 아무것도 못 먹지만, 그래도 남들한테는 내가 먹을 수 있을 때처럼 죄다 맛나게 차려 주고 싶구나.’ 그 음식이 당신 자신을 위한 게 아니었던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요. 그분을 한번 보셨더라면, 버찌 한 자루보다도 가벼우셨어요. 그렇게나 야위셨다니까요. 제 말은 한마디도 안 들으셨어요, 의사도 절대 안 부르셨고요. 아이고, 그 댁에선 저녁을 허겁지겁 삼킬 일이 없었지요. 하인들도 제대로 먹이길 좋아하셨거든요. 여긴 오늘도 또 매한가지예요. 빵 한 조각 뜯을 짬도 없었다니까요. 만사가 죄다 엉망진창으로 굴러가요.”
그녀를 무엇보다 짜증나게 한 것은 아버지가 먹곤 하던 말린 흰 빵 러스크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순전히 거드름을 피우려고, 또 자기를 “동동거리게” 하려고 그 빵을 먹는다고 굳게 믿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는데요,” 젊은 하인이 그녀에게 장담했다. “저는 그런 건 난생처음 봐요.” 그는 마치 세상 모든 걸 다 본 사람처럼, 자기 안에 온갖 나라와 그 풍습을 아우르는 천년의 경륜이 깃들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그 어느 나라에서도 말린 빵을 먹는 풍습 따위는 찾아볼 수 없더라는 투였다. “그래요, 그래.” 집사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것도 죄다 바뀔 거요. 캐나다에서 인부들이 파업을 한다는데, 요전 저녁에 장관이 나리께 그걸로 이십만 프랑을 챙긴다고 하십디다.” 그 말투에는 나무라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집사 자신이 정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정치가란 죄다 미덥지 못하다고 여긴 터라 공금 횡령의 죄가 그에게는 좀도둑질보다도 대수롭잖게 보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가 그 역사적인 발언을 제대로 들었는지 따져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죄를 지은 당사자가 그런 일을 아버지에게 순순히 털어놓았다면 아버지가 그 자리에서 그를 집에서 내쫓지 않았을 리 없다는, 그 이야기의 터무니없음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콩브레의 철학에 젖은 프랑수아즈로서는 캐나다의 파업이 말린 빵을 먹는 일에 무슨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었다. “이봐요, 세상이 돌아가는 한, 우리를 동동거리게 부리는 주인들도 있고, 그 분부를 받드는 하인들도 있는 법이지요.” 이 영구 운동의 이론을 반증이라도 하듯, 지난 십오 분 동안 어머니는 (아마 프랑수아즈의 저녁 식사가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헤아리는 데 프랑수아즈와 같은 시간 단위를 쓰지는 않았을 텐데)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대체 뭘들 하고 있는 걸까? 저녁을 먹은 지 벌써 두 시간은 됐는데.”
그러고는 겁먹은 듯 서너 번 종을 울렸다. 프랑수아즈도, “그녀의” 하인도, 집사도 종소리를 들었지만, 그것을 자신들을 부르는 신호로 여기지도, 응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회의 다음 순서가 막 시작되려 할 때 악기들을 조율하는 첫 소리처럼, 이제 막간이 몇 분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리는 소리쯤으로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종소리가 되풀이되며 점점 더 다급해지자, 하인들은 비로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곧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판단하여, 유난히 크게 울린 종소리에 다 함께 한숨을 내쉬고는 저마다 제 갈 길로 흩어졌다. 하인은 슬그머니 아래층으로 내려가 문밖에서 담배를 피웠고, 프랑수아즈는 우리를 두고 “오늘은 다들 안달이 났나 보네” 따위로 한바탕 이러쿵저러쿵한 뒤 다락방으로 올라가 제 물건을 정돈했으며, 집사는 먼저 내 침실에서 편지지를 챙겨다가 밀린 사사로운 편지를 마저 써 치웠다.
집사의 겉으로 드러난 뻣뻣함에도 불구하고, 프랑수아즈는 처음부터 내게 이런 사실을 일러 줄 수 있는 처지였다. 곧 게르망트가가 그 저택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진 권리 때문이 아니라 지극히 최근에 맺은 임차 계약 덕분이며, 내가 보지 못한 쪽에서 저택이 내려다보는 정원은 아주 작고 거리를 따라 늘어선 다른 정원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거기엔 함정도 교수대도, 요새화한 방앗간도, 밀실도, 기둥 세운 비둘기장도, 영주의 빵 굽는 가마도 십일조 곳간도, 지하 감옥도 도개교도, 아니 그냥 붙박이 다리조차도 볼 수 없으며, 통행세 징수소도 첨탑도, 특허장도 증서도, 성벽도 기념 봉분도 없다는 것을. 하지만 엘스티르가, 발베크 만이 그 신비를 잃고 내게는 그저 지표면에 퍼져 있는 소금물 전체 중 다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있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게 되었을 때, 그것이 휘슬러가 파랑과 은빛의 하모니에서 그린 오팔빛 만이라고 일러 줌으로써 문득 그 만에 고유한 개성을 되돌려 주었듯이, 게르망트라는 이름도 프랑수아즈의 망치질 아래, 그 음절들에서 솟아났던 마지막 거처가 스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느 날 아버지의 오랜 벗이 공작부인을 두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을 때였다. “그분은 포부르 생제르맹 제일가는 귀부인이시지요. 그 댁이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으뜸가는 가문이고요.” 하기야 가장 배타적인 그 응접실, 포부르 생제르맹 으뜸가는 그 가문도, 내가 차례로 꿈꾸어 온 다른 온갖 저택에 견주면 결국 별것 아니거나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저택에도 (그리고 이것이 그 연속의 마지막이 될 터였는데) 아무리 하찮을망정 그 물질적 구성 요소와는 사뭇 동떨어진 무언가, 은밀한 차별성이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