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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③

3권 제1부 · 제1장

그리하여 그 이름의 신비를 게르망트 부인의 응접실에서, 그녀의 벗들 사이에서 파헤쳐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더욱더 절실해졌다. 아침에 걸어서, 혹은 오후에 마차를 타고 집을 나서는 그녀를 보았을 때, 나는 그 신비를 그녀 자신에게서는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예전에 콩브레 성당에서 그녀는 눈부신 변용의 섬광 속에서 내게 나타난 적이 있었다. 게르망트라는 이름의 빛깔, 비본 강가에서 보낸 오후들의 빛깔로는 도무지 환원되지도 스며들지도 않는 두 뺨을 하고서, 산산이 부서진 내 꿈을 대신하며, 마치 신이나 님프가 변신한 백조나 버들처럼, 이제부터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물 위를 미끄러지거나 바람에 흔들릴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 광채가 사라지고 나서, 그 모습을 놓치기가 무섭게 그것은 다시 이루어졌다. 마치 노가 저어 깨뜨린 뒤에도 다시 어리는 저녁놀의 초록빛 장밋빛 잔광처럼. 그리고 내 사념의 고독 속에서 그 이름은 재빨리 그 얼굴에 대한 내 인상을 제 것으로 삼아 버렸다. 하지만 이제 나는 자주 그녀를 창가에서, 안뜰에서, 거리에서 보았다. 그리고 나로서는, 적어도 그녀에게 게르망트라는 이름을 하나로 합쳐 넣지 못할 때면, 그 온전한 작업을 해내지 못하는 내 정신의 무능을 탓하곤 했다. 그런데 이웃인 그녀 역시 똑같은 착오를 저지르는 듯했다. 아니, 그뿐 아니라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내가 지녔던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것이 착오라는 것조차 의심하지 못한 채 그러는 듯했다. 그리하여 게르망트 부인은 옷차림에서, 마치 자신이 그저 다른 모든 여자와 다를 바 없는 여자가 되었다고 믿고서, 여느 평범한 여자들이 자기와 대등하거나 어쩌면 앞지를 수도 있는 그런 맵시를 갈망하기라도 하듯, 유행을 좇는 데 남다른 조바심을 드러냈다. 나는 거리에서 그녀가 옷 잘 입은 어느 여배우를 감탄스레 바라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아침에, 걸어서 집을 나서기 전이면, 마치 행인들의 의견이, 곧 그녀가 자신의 범접할 수 없는 삶을 그들 한복판에 스스럼없이 내보이며 도리어 그 천박함을 도드라지게 만드는 그 행인들의 의견이, 자기를 심판할 자격을 갖춘 법정이기라도 하듯, 거울 앞에서 이런저런 몸짓을 하는 것을 나는 보곤 했다. 조금의 가식도 반어도 없는 확신을 담아, 열정을 담아, 언짢은 기색을 담아, 우쭐함을 담아, 마치 궁정의 연극에서 하녀 역을 맡기로 승낙한 여왕처럼, 자신에게는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이 역할, 곧 멋쟁이 여자라는 역할을 연기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제 타고난 위엄을 잊은 이 신화적 망각 속에서, 그녀는 너울이 제대로 드리워졌는지 살피고, 소맷부리를 매만지고, 망토를 바로 했다. 천상의 백조가 제 종족에게 자연스러운 온갖 몸짓을 하면서도, 부리 양옆에 그려진 눈에 생기의 반짝임이라곤 담지 않은 채, 자신이 신이라는 것도 잊고서 여느 백조가 그러하듯 문득 꽃봉오리나 우산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하지만 낯선 도시의 첫인상에 실망한 나그네가, 박물관과 미술관을 둘러보면 필시 그 도시의 매력에 스며들 수 있으리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듯, 나 역시 이렇게 다짐했다. 게르망트 부인의 집에 드나들 권리가 내게 주어진다면, 내가 그녀의 벗 가운데 하나라면, 내가 그녀의 삶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면, 그때는 그 타오르는 듯한 오렌지빛 감도는 껍질 안에 그녀의 이름이 남들에게는 정말로, 객관적으로 무엇을 담고 있는지 알게 되리라고. 어쨌거나 아버지의 벗이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아주 특별한 부류라고 말했으니 말이다.

내가 그들이 거기서 살아가리라 짐작한 그 삶은, 내 경험 속 그 무엇과도 너무나 다른 원천에서 흘러나왔고, 저 특정한 저택과 너무나 풀 수 없이 얽혀 있으리라 느껴진 나머지, 나는 공작부인의 연회 자리에 이미 내가 함께한 적 있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이 별안간 제 본성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라, 거기서도 내가 아는 그런 종류의 대화를 나눌 테고, 그 상대들도 어쩌면 똑같은 인간의 말로 그들에게 응대해 주기까지 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포부르 생제르맹 으뜸가는 가문에서 보낸 어느 저녁 동안, 내가 이미 겪어 본 순간들과 똑같은 순간들이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내 정신은 어떤 난제들에 부딪혀 곤혹스러워했고, 성체 속에 우리 주님의 몸이 임재하신다는 것도 내게는 이 으뜸가는 포부르의 가문보다 조금도 더 모호한 신비로 여겨지지 않았다. 강의 오른쪽 기슭 바로 여기에 자리해서, 아침이면 내 침대에서도 그 집 양탄자 터는 소리가 들려올 만큼 가까운 그 가문 말이다. 하지만 나를 포부르 생제르맹으로부터 갈라놓는 그 경계선은, 순전히 관념적인 것이었기에 도리어 내게는 더욱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손댈 수 없는 적도 너머로 펼쳐진 게르망트가의 현관 매트를 보았을 때, 나는 그것이 이미 포부르의 일부임을 분명히 느꼈다. 어느 날 그 집 문이 열려 있을 때 나처럼 그것을 언뜻 본 어머니가, 그 매트 꼴이 말이 아니라고 감히 평했던 바로 그 매트를 말이다. 게다가 그들의 식당, 우리 부엌 창으로 이따금 들여다보이던, 붉은 플러시 천을 씌운 그 침침한 회랑이 어찌 내 눈에 포부르 생제르맹의 신비로운 매력을 지니지 않을 수 있었으랴, 어찌 그것의 본질적인 일부를 이루지 않을 수 있었으랴, 어찌 그 안에 지리적으로 자리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저 방에서 저녁 식사에 초대받는다는 것은 곧 포부르 생제르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그곳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이었으며, 식탁에 앉기 전에 그 회랑의 가죽 씌운 소파에 게르망트 부인 곁에 앉는 사람들은 죄다 포부르 생제르맹 사람들이었으니 말이다. 하기야 포부르 아닌 다른 데서도, 어떤 연회에서는, 유행을 좇는 속된 무리 한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좌정한, 한낱 이름에 지나지 않던, 그래서 막상 그려 보려 하면 마상 창시합이나 왕실 사냥터의 형상을 이랬다저랬다 띠던 그런 사내들 가운데 하나를 이따금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기, 포부르 생제르맹 으뜸가는 가문에서는, 응접실에서는, 그 침침한 회랑에서는, 오직 그들만이 있었다. 그들은 값진 재료로 빚어진, 신전을 떠받치는 기둥들이었다. 실로 조촐한 가족 모임을 위해서라도 게르망트 부인이 손님을 고를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들 가운데서였고, 눈부신 식탁보와 은식기 둘레에 모인 열두 명의 만찬에서 그들은 생트샤펠의 사도들 황금상처럼, 성탁 앞에 선 상징적이고 신성한 기둥들 같았다. 저택 뒤편 높은 담장 사이에 뻗은 그 자그마한 정원으로 말하면, 여름 저녁이면 게르망트 부인이 저녁 식사 뒤에 리큐어와 오렌지에이드를 내오게 하던 그곳으로 말하면, 저녁 아홉 시와 열한 시 사이에 거기 쇠의자에, 곧 가죽 소파 못지않게 강력한 마력을 지닌 그 쇠의자에 앉는 것이, 포부르 생제르맹 특유의 산들바람을 들이마시지 않고서야, 마치 피기그의 오아시스에서 낮잠을 자면서 그로써 반드시 아프리카에 있는 셈이 되지 않을 수 없듯이, 어찌 불가능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었으랴. 오직 상상과 믿음만이 어떤 사물들, 어떤 사람들을 나머지와 구별해 내고, 하나의 분위기를 빚어낼 수 있다. 아, 포부르 생제르맹의 그 그림 같은 명소들, 그 자연의 우연들, 그 고장의 진기한 것들, 그 예술품들 사이에 내 발을 들여놓는 일은 필경 영영 허락되지 않으리라. 그리하여 나는, 깊은 바다에서 (거기 상륙하리라는 희망은 눈곱만큼도 없이) 우뚝 솟은 첨탑처럼, 첫 종려나무처럼, 어떤 이국적 산업이나 초목의 첫 징후처럼, 그 기슭의 발길에 다져진 현관 매트를 바라보며 흥분의 전율을 느끼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게르망트 저택이 내게는 그 현관문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그 딸린 영역은 훨씬 더 멀리까지 뻗어 있다고 여겨야 마땅했다. 적어도 공작의 생각으로는 그러했으니, 그는 다른 세입자들을 죄다 소작인이나 농사꾼, 몰수된 영지를 사들인 자쯤으로, 그 의견 따위는 아무 가치도 없는 자들로 여겼다. 그는 아침마다 잠옷 바람으로 창가에서 면도를 하고는, 날이 따뜻한지 추운지에 따라 셔츠 바람으로, 혹은 파자마 차림으로, 혹은 털이 부숭부숭한 요란한 빛깔의 격자무늬 외투를 걸치고, 혹은 안에 받쳐 입은 웃옷보다 짧은 연한 빛깔의 자그마한 사냥용 코트 차림으로 안뜰에 내려와, 마부더러 방금 사들인 말을 자기 앞으로 총총걸음으로 끌고 지나가게 했다. 실제로 한 번 이상, 그 말이 쥐피앙 가게의 유리창을 깨뜨렸고, 그럴 때면 쥐피앙이 공작의 분통을 사면서까지 배상을 요구했다. “여기 이 집이며 교구를 위해 공작부인께서 베푸신 온갖 선행을 봐서라도,” 게르망트 가 말했다. “저 작자가 우리한테 한 푼이라도 물어내라는 건 괘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야.” 하지만 쥐피앙은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공작부인이 대체 무슨 “선행”을 베풀었다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도 못 하는 눈치였다. 하기야 그녀는 정말로 선행을 베풀기는 했다. 하지만 모든 이에게 한꺼번에 선을 베풀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느 한 사람에게 잔뜩 은혜를 쏟았다는 기억은 다른 사람을 돕지 않을 그럴듯한 구실이 되고, 그로써 그 다른 사람의 불만은 한층 더 커지는 법이다. 자선이라는 관점을 떠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공작에게 이 구역은, 그것도 상당히 넓은 범위에 걸쳐, 제 안뜰의 연장이자 제 말들이 달릴 좀 더 긴 코스로만 보였다. 새로 사들인 말이 혼자서 어떻게 달리는지 지켜본 뒤면, 그는 그 말에 마구를 채워 이웃한 온갖 거리로 끌고 나가게 했다. 마부가 고삐를 쥐고 마차 옆을 달리며, 인도에 우뚝 서 있는 공작 앞을 이리저리 오가게 만들었다. 그 화려한 옷차림의 공작은 꼿꼿하고 거대하고 엄청난 몸집으로, 이 사이에 시가를 물고, 고개를 쳐들고, 외알 안경으로 유심히 살피다가, 마침내 마부석에 훌쩍 뛰어올라 말을 위아래로 조금 몰아 시험해 본 뒤, 새 마차를 몰고 샹젤리제로 정부를 태우러 떠났다. 게르망트 는 안뜰을 나서기 전에, 얼마간 제 세계에 속하는 두 쌍의 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첫째는 그의 사촌들로, 노동자 계급 부모처럼 제 아이들을 돌보러 집에 붙어 있는 법이 없었다. 아내는 아침마다 대위법과 푸가를 공부하러 스콜라로 갔고, 남편은 나무를 깎고 가죽을 두드리러 제 작업실로 갔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노르푸아 남작 부부로,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서, 부인은 성당 좌석 안내인 같고 남작은 장례식의 곡꾼 같은 차림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성당으로 향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우리의 벗인 늙은 대사의 조카 부부였는데, 아버지는 실은 계단 아래서 그 대사와 마주치고도 그가 어디서 오는 길인지 알아채지 못했다. 그토록 중요한 인물, 유럽의 가장 저명한 인사들과 교류했고 필시 하찮은 신분의 구별 따위에는 아주 무심할 그런 인물이, 이런 무명의, 신앙에 치우친, 옹졸한 귀족들과 어울릴 리는 만무하다고 아버지는 여겼던 것이다. 그들이 이곳에 온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쥐피앙은 남편이 마침 게르망트 에게 인사를 건네는 참에 그에게 한마디 하려고 안뜰로 나와 있다가, 그의 이름을 확실히 몰라 그를 “노르푸아 ”라고 불렀다.

“‘노르푸아 씨’라니, 원! 아, 그것참 걸작이군! 두고 보게나! 저 작자가 이번엔 자넬 ‘노르푸아 동무’라고 부를 걸세!” 게르망트 가 남작을 돌아보며 외쳤다. 그는 자신을 “공작님”이라 하지 않고 그저 “나리”라고만 불러 대는 쥐피앙에게 마침내 울분을 터뜨릴 수 있었다.

어느 날 게르망트 는 아버지가 직업상 잘 아는 어떤 사안에 대해 정보가 필요해지자, 무척 정중하게 아버지에게 자기소개를 했다. 그 뒤로 그는 곧잘 아버지에게 이웃 간의 부탁을 청하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일에 정신이 팔린 채 방해받지 않으려 애쓰며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기가 무섭게, 공작은 마부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안뜰에서 아버지에게 다가와, 지난날 왕실 시종의 대를 이어 물려받은 능란한 솜씨로 아버지의 외투 깃을 바로 세우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제 손안에 그 손을 쥔 채 토닥이기까지 하면서, 화류계 여자나 아첨꾼 같은 뻔뻔함으로, 자기 곧 게르망트 공작이 아버지에게 공작의 살결에 닿는 특권을 누릴 권리를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려는 듯, 말하자면 아버지를 목줄에 매어 끌 듯이, 마차가 드나드는 문을 지나 거리로 데리고 나갔다. 그럴 때 아버지는 몹시 짜증이 나서 오로지 어떻게 빠져나갈까만 궁리했다. 언젠가 우리가 막 안으로 들어오는 참에 그가 마침 아내와 함께 마차를 타고 나가던 날, 그는 우리에게 넓은 각도로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그는 틀림없이 아내에게 내 이름을 일러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걸 기억할 가망이, 아니 내 얼굴인들 기억할 가망이 얼마나 있었으랴? 게다가 한낱 그녀의 세입자 가운데 하나로 지목되는 것이 얼마나 시원찮은 소개인가! 그보다 더 값진 소개라면, 빌파리지 부인의 응접실에서 공작부인을 만나는 것이었으리라. 마침 빌파리지 부인은 할머니를 통해 나더러 자기를 찾아오라는 전갈을 보내온 참이었고, 내가 문학에 뜻을 두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거기서 여러 작가를 만나게 될 거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사교계에 나가기엔 아직 좀 어리다고 여겼고, 내 건강 상태가 여전히 그를 불안하게 하던 터라, 내게 아무 득도 안 될 전례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게르망트 부인의 하인 가운데 하나가 프랑수아즈와 곧잘 이야기를 나누던 터라, 나는 그녀가 드나드는 여러 집의 이름을 주워들었다. 하지만 그중 어느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인상을 그려 내지 못했다. 그것들이 그녀 삶의, 곧 내가 오직 그녀 이름의 너울을 통해서만 바라보던 그 삶의 일부가 된 순간부터, 그것들은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되지 않았던가?

“오늘 밤엔 파름 대공비 댁에서 중국 그림자극을 곁들인 큰 연회가 열려요.” 하인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 갈 거예요. 다섯 시에 마님께서 기차로 샹티이에 가셔서 도말 공작님과 며칠 지내실 거거든요. 하지만 마님을 모시고 가는 건 몸종하고 시종이지요. 저는 여기 남고요. 파름 대공비께선 영 언짢아하실 거예요, 벌써 마님께 네 번이나 편지를 쓰셨거든요.”

“그럼 올해는 게르망트 성에 안 내려가시나요?”

“거기 안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공작님 류머티즘 때문이지요. 의사가 온수 배관이 다 들어오기 전엔 거기 가시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그래도 지금껏 해마다, 정월까지 죽 거기서 지냈답니다. 온수 배관이 제때 안 되면, 마님께선 며칠쯤 칸에 있는 기즈 공작부인 댁으로 가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극장에는, 이따금 가시나요?”

“이따금 오페라 극장에 가요. 대개는 파름 대공비께서 특별석을 쓰시는 저녁이지요, 일주일에 한 번씩요. 거기선 근사한 걸 보여 준다더군요, 연극이며 오페라며 뭐든지요. 마님께선 손수 예약하시는 건 마다하셨지만, 그래도 우리는 마님의 벗들이 잡아 두는 특별석에 가지요, 이 저녁엔 이 댁, 저 저녁엔 저 댁, 이렇게요. 곧잘 게르망트 대공비, 곧 공작님 사촌의 부인과 함께 가고요. 그분은 바이에른 공작의 누이시지요. 그래, 그럼 이제 다시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셔야겠네요?” 하인이 말을 이었다. 그는 게르망트가 사람이 다 되었으면서도, 주인이란 대체로 하나의 정치적 신분쯤으로 여겼고, 그런 견지 덕분에 프랑수아즈 역시 공작부인을 모시는 몸이기라도 한 양 깍듯이 대할 수 있었다. “부디 건강하세요, 아주머니.”

“아이고, 이 웬수 같은 다리만 아니면! 평지에선 그래도 그럭저럭 다닐 만해요” (“평지”란 안뜰이나 거리를 뜻했는데, 프랑수아즈는 거기서 걷는 건 마다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평평한 바닥에서”라면 말이다) “하지만 이 계단이 아주 날 잡는다니까요, 빌어먹을 놈의 계단. 안녕히 가세요, 젊은이, 어쩌면 오늘 저녁에 또 뵙겠네요.”

하인이, 공작의 아들들은 흔히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지니는 대공 칭호를 달고 다닌다고 일러 준 뒤로, 그녀는 그와 이야기를 이어 가고 싶어 더욱 안달이었다. 귀족 숭배가, 그에 맞선 어떤 반항심과 뒤섞이고 또 그것과 타협해 가며, 프랑스 땅에서 대대로 솟아나 그녀네 사람들 속에 아직도 아주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폴레옹의 천재성이니 무선 전신이니 하는 이야기를 아무리 들려주어도 도무지 관심을 끌지 못하고, 아궁이의 재를 긁어내거나 상을 차리는 손놀림을 잠시도 늦추지 않던 프랑수아즈였지만, 그저 이런 이름의 별난 규칙을 일러 주기만 하면, 곧 게르망트 공작의 막내아들은 대개 올레롱 대공이라 불린다고 말해 주기만 하면, 그녀는 대뜸 “그것참 근사하네요!” 하고 외치고는, 마치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우러르기라도 하듯 넋을 잃고 서 있곤 했다.

프랑수아즈는 또 아그리장트 대공의 시종에게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공작부인에게 전할 쪽지를 들고 이 집에 자주 오다가 그녀와 벗이 된 그 시종은, 생루 후작과 앙브르사크 의 혼담이 사교계에서 자자하게 오르내리고 있으며 사실상 다 정해진 일이라는 이야기를 자기가 숱하게 들었다고 했다.

게르망트 부인이 제 삶의 물결을 흘려보내던 그 별장, 그 오페라 특별석은, 내가 보기에 그녀의 집 못지않게 요정의 나라 같은 곳임에 틀림없었다. 기즈라는 이름, 파름이라는 이름, 게르망트바비에르라는 이름은, 공작부인이 즐겨 찾는 휴양지들, 그리고 그녀의 굴러가는 마차 바퀴 자국이 리본으로 묶듯 그녀의 저택에 이어 매어 두는 나날의 연회들을, 있을 수 있는 다른 모든 것과 구별해 주었다. 그 휴양과 그 연회 속에 게르망트 부인의 삶이 차례로 이어져 있다고 그것들이 내게 일러 준다 한들, 그 삶에 대해 더 이상의 빛을 비춰 주지는 못했다. 그 이름들은 저마다 공작부인의 삶에 서로 다른 규정을 부여했지만, 결국 그 삶의 신비를 이리저리 바꿔 놓았을 뿐, 정작 그 자신의 신비는 조금도 새어 나가게 하지 않았다. 그 신비는 그저 덮개에 싸이고 종 안에 갇힌 채, 온 세상 사람들의 삶의 물결을 헤치며 떠다닐 따름이었다. 공작부인은 사육제 무렵이면 지중해 기슭에서 점심을 들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즈 부인의 별장에서였다. 거기서는 파리 사교계의 여왕도 흰 리넨 드레스 차림으로, 수많은 대공비들 틈에서 여느 손님이나 다름없는 한낱 손님에 지나지 않았고, 바로 그런 까닭에 내게는 더욱 가슴을 울렸으며, 그렇게 새로워짐으로써 더욱 그녀다웠다. 마치 발레의 스타가 어떤 군무의 환상적인 흐름 속에서 자기보다 낮은 자매들 하나하나의 자리를 차례로 대신하듯이. 그녀는 중국 그림자극을 구경할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파름 대공비가 여는 연회에서였고, 비극이나 오페라에 귀 기울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게르망트 대공비의 특별석에서였다.

우리가 어떤 사람의 몸에 그 사람 삶의 온갖 가능성을, 그가 알고 지내며 방금 헤어졌거나 이제 만나러 가는 이들에 대한 우리의 기억을 자리매김하듯이, 프랑수아즈에게서 게르망트 부인이 걸어서 파름 대공비와 점심을 들러 간다는 말을 들은 터라, 정오 무렵 살빛 새틴 드레스 차림으로, 그 위로 얼굴마저 같은 빛깔을 띤 채, 마치 지는 해 위로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집을 나서는 그녀를 보았을 때, 내 눈앞에 있는 것은 포부르 생제르맹의 온갖 즐거움이었다. 그 자그마한 테두리 안에, 장밋빛 진주층으로 은은히 빛나는 한 쌍의 조가비 껍데기 사이에 담긴 채로 말이다.

아버지에게는 부처에 벗이 하나 있었는데, A. J. 모로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모로들과 구별되려고 늘 이름 앞에 두 이니셜을 함께 붙이도록 신경 썼고, 그 바람에 사람들은 그를 줄여서 “A. J.”라고 불렀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 A. J.가 어느 특별 공연 날 밤 오페라코미크 극장의 일등석 한 자리를 얻을 자격이 생겼다. 그는 그 표를 아버지에게 보냈고, 마침 그때 라 베르마가 페드르 한 막을 공연하기로 되어 있던 터라, 나는 처음의 실망 이후로 다시는 보러 가지 않았던 그 라 베르마를, 할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해 그 표를 내게 넘겨주게 했다.

사실을 말하면, 나는 몇 해 전만 해도 그토록 나를 들뜨게 했던 이 라 베르마를 볼 기회에 아무런 중요성도 두지 않았다. 그리고 한때 건강이며 안락이며 그 무엇보다 앞세웠던 것에 이제 내가 무심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어떤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상상이 어렴풋이 부서진 채로 언뜻 엿보던 그 진귀한 현실의 알갱이들을 가까이서 응시할 기회를 향한 내 욕망이 시들해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 상상은 이제 그것들을 어느 위대한 여배우의 대사 낭송 속에 두지 않았다. 엘스티르를 찾아간 뒤로, 한때 이 연기, 라 베르마의 이 비극 예술에 바쳤던 내 안의 믿음을, 나는 이제 어떤 태피스트리들, 어떤 현대 회화들에 쏟고 있었다. 내 믿음과 내 욕망이 더는 라 베르마의 대사 낭송과 몸짓에 끊임없는 경배를 바치러 나아가지 않게 되자, 내 마음속에 지녔던 그것들의 짝은, 마치 고대 이집트에서 죽은 이의 원본을 영생 속에 붙들어 두려면 끊임없이 먹을 것을 바쳐야 했던 그 죽은 이의 분신들처럼, 서서히 스러져 갔다. 이 예술은 힘없고 초라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 안에는 더 이상 깊이 깃든 영혼이 살고 있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벗에게서 받은 표를 손에 쥐고 오페라 극장의 웅장한 계단을 오르는데, 내 앞에 한 사내가 보였다. 나는 처음에 그를 샤를뤼스 로 착각했는데, 몸가짐이 그를 빼닮았기 때문이다. 그가 고개를 돌려 직원에게 뭔가 묻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내가 잘못 봤음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낯선 이를 같은 계층의 사교계 사람으로 못 박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차려입은 옷차림뿐 아니라, 표를 받는 사람과 그를 기다리게 하던 특별석 안내인들에게 말을 건네는 태도로 보아서도 그러했다. 이 무렵만 해도, 저 귀족층에 속한 멋지고 부유한 사내와, 금융계나 “큰 사업”의 세계에 속한 멋지고 부유한 사내 사이에는, 인물마다의 사소한 닮은 점을 떠나서, 여전히 뚜렷이 두드러지는 차이가 있었다. 후자의 부류라면 아랫사람에게 말할 때 날카롭고 오만한 어조를 취함으로써 제 배타성을 증명한다고 여겼을 그런 자리에서, 이 대귀족은 상냥하고 유쾌하고 미소 띤 얼굴로, 겸손과 인내를 짐짓 꾸며 내며, 자기도 그저 관객 가운데 하나인 척하는 것을, 마치 제 훌륭한 가문의 특권인 양 여기는 태도를 보였다. 그가 이렇게 선의 넘치는 미소 뒤에, 제 몸에 지니고 다니는 그 동떨어진 작은 세계의 빗장 걸린 문턱을 감추는 것을 보고, 마침 그 순간 극장에 들어서던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 이상이, 오스트리아 황제의 조카이자 마침 그때 파리에 와 있던 작센 대공의 초상, 얼마 전 화보 신문에 실린 그 초상과 놀랍도록 닮았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더라면, 이 대귀족을 하찮은 인물로 여겼으리라는 것도 능히 있을 법한 일이었다. 나는 그가 게르망트가의 절친한 벗임을 알고 있었다. 안내인에게 다가서는데, 작센 대공(혹은 그의 판박이)이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번호는 모르겠소. 사촌 누이가 그저 자기 특별석을 찾으면 된다고 일러 주었거든요.”

그는 정말로 작센 대공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그저 자기 특별석을 찾으면 된다고 일러 준 사촌 누이” 운운했을 때, 그의 눈이 마음속에 그리던 것은 어쩌면 게르망트 공작부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그녀가 사촌의 특별석에서 그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의 한순간을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을 터였다.) 그 정도로, 그만의 그 미소 띤 눈길이며 그토록 단순한 그 말들이, (그 어떤 추상적 사색보다도 훨씬 부드럽게) 있을 법한 행복과 어렴풋한 영예라는 서로 엇갈리는 더듬이로 내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가 누구였든 간에, 안내인에게 이 문장을 내뱉음으로써 그는 내 일상의 평범한 저녁에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하나의 가능한 출구를 접붙여 놓았다. “특별석”이라는 말을 꺼낸 뒤 그가 안내받아 이제 걸어가는 그 통로는, 축축하고 곰팡내가 났으며, 물속 동굴로, 물의 님프들이 사는 신화 속 왕국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내 앞에는 야회복 차림의 한 신사가 내게서 멀어져 가고 있을 뿐이었지만, 나는 그를 향해, 그 주위로, 마치 등잔에 잘 맞지 않는 반사판을 이리저리 놀리듯, 그것을 결코 그와 정확히 포개지는 못한 채, 그가 작센 대공이며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자꾸만 굴려 보았다. 그리고 그가 혼자였는데도, 그 생각은, 그 자신의 바깥에 있는, 손에 잡히지 않는, 거대하고, 환등기가 던지는 그림자처럼 불안정한 그 생각은, 마치 전투의 순간 그리스 전사 곁에 서 있으나 나머지 인간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저 신처럼, 그를 앞서 이끄는 듯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도무지 온전히 떠오르지 않는 페드르의 한 구절을 되찾으려 줄곧 애썼다. 내가 스스로 되뇌던 형태로는 그 구절이 운각의 수가 맞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헤아려 볼 엄두를 내지 않았기에, 그 볼품없는 구절과 고전 시의 한 행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의 척도도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어마어마한 구절을 알렉상드랭의 규격으로 줄이려면 적어도 예닐곱 음절은 덜어 내야 한다고 한들 나는 놀라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문득 그 구절이 떠올랐고, 비인간적인 세계의 돌이킬 수 없던 껄끄러움이 마법처럼 사라졌다. 그 행의 음절들은 대번에 요구되는 척도를 채웠고, 남아돌던 것은 물가에서 터지려 떠오르는 물방울의 그 수월함과 날렵함으로 두둥실 떠나가 버렸다. 그러고 보니, 내가 씨름하던 그 군더더기는 고작 운각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