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등석 몇 자리가 매표소에서 판매되어, 속물근성이나 호기심에서, 달리 가까이서 볼 기회가 없을 사람들의 모습을 뜯어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사 두었다. 그리고 여기서 공공연히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그들의 참된 사교 생활의, 여느 때는 은밀히 감춰진 한 조각이었다. 파름 대공비가 손수 제 벗들에게 일등석과 이층석, 특별석 자리를 나누어 준 터라, 극장은 저마다 제자리를 바꿔 가며 아는 여자가 눈에 띄면 이리저리 옮겨 앉는 응접실 같았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에는 몇몇 서민이 있었는데, 그들은 정기 예약 회원들을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자기들이 그들을 알아볼 줄 안다는 것을 내보이고 싶어 큰 소리로 그 이름들을 대곤 했다. 이어서 그들은 그 회원들이 여기서 마치 제 응접실에라도 있는 양 군다고, 곧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에는 도통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그런데 실제로 벌어진 일은 그와 정반대였다. 라 베르마를 들으려고 일등석을 잡은 어느 갓 피어나는 천재는, 오직 제 장갑을 더럽히지 않을 궁리, 남을 방해하지 않을 궁리, 우연히 곁에 앉게 된 이웃과 사이좋게 지낼 궁리, 그리고 관객 속에서 발견한 아는 이의 마주친 눈길을, 무례해 보일 만큼 겉으로 피하면서도 그 종잡을 수 없는 시선을 이따금 미소로 좇을 궁리만 했다. 그러다 천 번을 망설인 끝에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로 마음먹는 바로 그 순간, 무대에서 울리는 세 번의 망치 소리가, 그가 미처 벗에게 이르기도 전에 울려 퍼지며, 홍해를 건너는 히브리인들처럼 그로 하여금 관객들, 남녀 관객들이 넘실대는 물결을 헤치고 달아나게 만들었다. 그는 그들을 일으켜 세워야 했고, 지나치며 그들의 드레스를 찢거나 그들의 구두를 짓밟았다. 반면에 사교계 사람들로 말하면, 그들이 자기네 특별석에 앉아 있었기에 (이층석의 전체 테라스 뒤편, 넷째 벽을 걷어 낸 조그마한 응접실들 안에서처럼, 혹은 나폴리풍의 도금한 액자 거울이며 붉은 플러시 좌석에 주눅 들지 않고서 목이라도 축이러 들를 수 있는 조그마한 카페들 안에서처럼 앉아 있었기에), 이 서정 예술의 신전을 떠받치는 도금한 기둥에 무심한 손을 얹고 있었기에, 한 쌍의 새긴 조각상이 특별석을 향해 종려나무와 월계수 가지를 내밀며 그들에게 바치는 듯한 그 지나친 경의에도 꿈쩍 않고 있었기에, 바로 그들만이 연극에 귀 기울일 자유로운 정신을 가졌을 터였다, 애초에 그들에게 정신이라는 게 있기만 했다면 말이다.
처음에는 어렴풋한 그림자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그 속에서 문득,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보석의 광채처럼 어느 유명한 두 눈의 인광이 반짝이거나, 어두운 바탕에 놓인 앙리 4세의 초상 메달처럼 도말 공작의 숙인 옆얼굴이 도드라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부인이 그를 향해 “각하, 외투를 제가 받아 들게 해 주셔요” 하고 외쳤고, 공작은 “아니, 원, 별말씀을! 정말이지, 당브르사크 부인”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이 어정쩡한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외투를 받아 들었고, 그렇게 영예를 누린다 하여 나머지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다른 칸막이 관람석에서는, 거의 어디에서나, 그 침침한 처소에 깃들어 사는 흰 여신들이 그늘진 벽 쪽으로 몸을 피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공연이 이어짐에 따라 차츰, 어렴풋이 사람의 모습을 한 그 형체들이 저마다 무늬처럼 수놓던 밤의 어둠으로부터 하나둘 떨어져 나와, 빛을 향해 몸을 일으키며 반쯤 드러난 육체를 내보이고, 솟아올랐다가, 제 행로의 끝에 이르러, 빛나면서도 그늘진 표면에서 멈추었으니, 그 표면 위로는, 그녀들이 펼쳐 가볍게 흔드는 깃털 부채가 흥겹게 부서뜨리는 물거품 너머로, 진주로 아로새겨진 히아신스빛 머리채 아래로, 그 눈부신 얼굴이 떠올랐고, 그 머리채는 밀물의 흐름이 붙잡아 함께 끌고 온 듯했다. 그녀들의 이편에서는 일층 관람석이 시작되었는데, 그곳은 투명하고 그늘진 세계로부터 영원히 갈라진 인간들의 처소였으며, 그 세계의 넘칠 듯한 수면 위 여기저기에서는 물의 요정들의 맑고 거울 같은 눈이 그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 물가의 접이식 좌석들, 곧 일층석에 앉은 괴물들의 형상이 그 눈의 표면에 비쳐 그려져 있었으니, 그것은 단지 광학의 법칙에 따라, 입사각에 맞추어 그리 된 것으로, 우리와 견줄 만한 영혼이라고는, 아무리 원초적인 것일지라도, 지니지 못했음을 알기에 우리가 미소나 알아보는 눈길을 보낸다면 스스로 미쳤다고 여길, 외부 현실의 두 부류에서 일어나는 일과 같았다. 곧 광물, 그리고 서로 소개받은 적 없는 사람들 말이다. 이 경계 너머, 제 영역의 가장자리에서 물러난 채, 바다의 빛나는 딸들은 시시각각 몸을 돌려, 절벽의 갈라진 틈에 매달린 수염 난 트리톤들을 향해, 혹은 어느 물의 반신(半神)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냈는데, 그 반신의 머리는 밀물이 매끄러운 해초 껍질을 덮어 놓은 반들반들한 돌이었고, 그 눈길은 수정 원반이었다. 그녀들은 이 피조물들을 향해 몸을 기울여 사탕과자를 건넸다. 때로는 물결이 갈라지며 새로운 네레이드 하나를 들여보냈는데, 뒤늦게 도착해 미소 지으며 미안해하는 그 요정은 방금 어둑한 심연에서 꽃처럼 피어올라 떠온 참이었다. 그러다 막이 내리면, 그녀들을 수면으로 끌어올렸던 지상의 감미로운 소리를 더는 들을 가망이 없어지자, 여러 자매는 순식간에 도로 잠겨 들어 밤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인간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온건한 욕망이 그 문턱까지 이 호기심 많은 여신들을 이끌어 왔으되 누구도 제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던 이 모든 은신처들 가운데, 가장 이름난 것은 세상에 게르망트 대공비의 무대 옆 관람석으로 알려진, 반쯤 어둠에 잠긴 정육면체였다.
저 높은 곳에서 하위 신들의 유희를 굽어보며 주관하는 위대한 여신처럼, 대공비는 일부러 조금 뒤로 물러나, 산호초처럼 붉은, 관람석에 비스듬히 놓인 소파에 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유리처럼 번들거리는 커다란 반사광의 얼룩이 있었는데, 아마도 거울이었을 그것은, 한 줄기 햇살이 바다의 반짝이는 수정을 수직으로, 맑게, 액체처럼 뚫고 지나가며 잘라낸 단면을 떠올리게 했다. 깃털이면서 동시에 꽃송이인, 어떤 수중 식물들처럼, 새의 날개처럼 보드라운 커다란 흰 꽃 한 송이가 대공비의 이마에서 한쪽 볼을 따라 흘러내렸고, 그 볼의 곡선을 따라 요염하고 애틋하며 살아 있는 듯 나긋이 굽이돌며, 마치 물총새 둥지의 부드러움 속 장밋빛 알을 감싸듯 볼을 거의 에워싸는 듯했다. 앞으로는 눈썹까지 닿고 아래로는 목께에서 뒤로 여며진 머리 위로, 그물 하나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 위에는 남태평양 어느 해변에서 주워 모은 작고 흰 조개껍데기들이 진주와 번갈아 박혀, 물결에서 겨우 솟아났다가 시시각각 다시 어둠 속으로 잠겨 드는 바다의 모자이크를 이루었으며, 그 어둠의 심연에서마저도 사방으로 번뜩이는 대공비의 눈이 사람의 존재를 드러내 보였다. 그녀를 어스름의 다른 모든 신화적 딸들보다 아득히 위에 올려놓은 그 아름다움은, 그녀의 목이며 어깨며 팔이며 자태에 온전히, 물질적으로 남김없이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자태의 절묘한, 미완의 선은 바로 정확한 출발점, 곧 눈이 어쩔 수 없이 연장해 보게 되는 보이지 않는 선들의 필연적 초점이었으니, 그 경이로운 선들은 어둠의 장막 위에 투사된 이상적 형상의 스펙트럼처럼 이 여인의 둘레에서 생겨나 살아났다.
“저 사람이 게르망트 대공비예요.” 내 이웃 여자가 곁에 앉은 신사에게 말하면서, ‘대공비(Princesse)’라는 말의 첫머리를 P 소리를 죽 늘여 시작해, 그런 칭호란 가당찮다는 것을 드러내 보였다. “진주를 아끼지도 않았네요. 나 같으면, 저만큼 많이 가졌대도 저렇게 내보이진 않겠어요. 도무지 보기 좋지가 않아요, 내 눈엔 말이죠.”
그럼에도, 대공비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객석에 누가 와 있는지 둘러보던 이들은 모두 마음속에서 그녀를 향해 아름다움의 정당한 옥좌가 솟아오름을 느꼈다. 실제로 뤽상부르 공작부인이나, 모리앙발 부인, 생퇴베르트 부인, 그 밖의 숱한 이들에게서 그 얼굴을 알아보게 해 주는 것은, 크고 붉은 코와 언청이가 나란히 붙어 있다든가, 주름진 두 볼에 희미한 콧수염이 곁들여진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특징들은 그 자체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으니, 그것들은 한낱 문서에 적힌 관례적 가치만을 지녀서 유명하고 위엄 있는 이름을 읽어 내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은, 차곡차곡 쌓여, 추함에는 어딘가 귀족적인 데가 있으며, 지체 높은 부인의 얼굴이란 기품만 있다면 굳이 아름답기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어떤 화가들이 제 이름의 글자 대신 화폭 아래에 그 자체로 아름다운 형상, 곧 나비나 도마뱀이나 꽃 한 송이를 그려 넣듯이, 대공비는 그 관람석 한 귀퉁이에 감미로운 얼굴과 자태의 형상을 놓아둠으로써, 아름다움이야말로 서명 가운데 가장 고귀한 것일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게르망트바비에르 부인이 극장에 데려온 이들은 평소 그녀의 가까운 무리를 이루던 사람들뿐이었으니, 그 자리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은 귀족 감식가들의 눈에는 그녀의 관람석이 내보이는 그림이 진품임을 증명하는 더할 나위 없는 증서였고, 뮌헨과 파리의 궁전에서 지내는 대공비의 평범한 사생활 한 장면을 불러내는 무언가였다.
우리의 상상력이란 고장 난 손풍금과도 같아서, 늘 제 악보표에 적힌 것과는 다른 가락을 울려 대는 법이라, 게르망트바비에르 대공비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어떤 16세기 걸작들의 기억이 노래하기 시작하곤 했다. 제비꼬리 연미복을 입은 뚱뚱한 신사에게 그녀가 설탕에 절인 과일을 권하는 모습을 이제 보고 있자니, 나는 이 연상을 얼른 떨쳐 버려야 했다. 물론 나는 그녀와 그녀의 손님들이 나머지 관객들과 다를 바 없는 한낱 사람일 뿐이라는 결론에서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이해했다, 그들이 거기서 하는 짓이 모두 한낱 유희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들의 진짜 삶의 여러 막(그 중요한 부분을 보내는 곳은 아마 여기가 아니었으리라)에 앞서는 서막으로서,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의례를 좇아 미리 마련해 둔 대로, 사탕과자를 권하고 사양하는 시늉을 하고 있음을. 그것은 본래의 의미를 빼앗긴 채, 발끝으로 몸을 세웠다가 치켜든 스카프 둘레를 도는 무희의 발놀림처럼 미리 짜인 몸짓이었다.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그에게 사탕과자를 권하는 순간 그 여신은, 목소리에 그 빈정거림의 기색을 담아(그녀가 미소 짓는 것을 나는 보았으니)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 드시겠어요?” 그것이 내게 무슨 상관이랴? 여신이 반신에게 건네는 그런 말의, 메리메나 메이야크의 문체를 닮은 그 짐짓 꾸민 무미건조함 속에서 나는 감미로운 세련됨을 발견했으리라. 반신 쪽은, 두 사람이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숭고한 상념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면서, 그 상념들은 필경 참된 삶을 다시 살기 시작할 순간까지 아껴 둔 채, 유희에 함께하기로 동의하여, 같은 알 수 없는 씁쓸함으로 이렇게 답하고 있었다. “고마워요. 버찌 하나 먹고 싶네요.” 그리고 나는 이 대화를 르 마리 드 라 데뷔탕트의 한 장면을 대하듯 똑같은 열망으로 귀 기울여 들었으리라. 그 작품에는 시정(詩情)도, 드높은 상념도 없었는데, 내게는 그토록 익숙한 그런 것들을 메이야크가 마음만 먹었다면 능히 수천 번이라도 집어넣을 수 있었으련만, 그런 것들의 부재 자체가 내게는 하나의 세련됨, 관례적인 세련됨으로, 그래서 더욱더 알 수 없고 가르침이 되는 것으로 보였다.
“저 뚱뚱한 사람이 가낭세 후작이오.” 내 옆 사람이 뭔가 안다는 투로 말했는데, 그는 뒷줄에서 소곤거린 이름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것이었다.
팔랑시 후작은, 긴 목 끝에서 얼굴을 아래로 숙인 채, 둥글게 툭 튀어나온 눈을 외알 안경 유리에 딱 붙이고서, 투명한 어둠 속을 느긋이 자리를 옮겨 가며 움직였는데, 일층석의 관객들을 알아보는 품이라고는, 수족관 유리벽 뒤에서 호기심 어린 구경꾼들이 몰려 있는 줄도 모른 채 미끄러져 지나가는 물고기만도 못해 보였다. 이따금 그는 걸음을 멈추었는데, 그럴 때면 위엄 있게 쌕쌕거리는 기념비 같아서, 그가 고통스러워하는지, 잠든 것인지, 헤엄치는 것인지, 곧 알을 낳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숨을 고르는 것인지 관객으로서는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이 관람석에 익숙해 보인다는 점과, 대공비가 그에게 사탕과자 상자를 내미는 것을 무심히 받아들이는 그 태연함 때문에, 그 누구도 그만큼 내 부러움을 자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는 동안 대공비는 한 쌍의 다이아몬드에 아로새겨진 아름다운 눈으로 그에게 눈길을 던졌는데, 그런 순간에는 재치와 다정함이 그 눈을 녹이는 듯했으나, 눈이 가만히 쉴 때면, 순전히 물질적인 아름다움으로, 광물의 광채만으로 되돌아가, 아주 미미하게 반사된 빛 하나만 스쳐도, 그 눈은 인간의 것 같지 않은 수평의 찬란한 불꽃으로 어둠을 활활 타오르게 했다. 그러나 이제, 라 베르마가 연기하는 페드르의 막이 곧 시작될 참이었으므로, 대공비는 관람석 앞쪽으로 나왔다. 그러자, 마치 그녀 자신이 하나의 무대 연출이기라도 한 듯, 그녀가 가로지르는 빛의 구역 속에서, 나는 그녀 장신구의 빛깔뿐 아니라 그 재질까지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제 물기가 걷혀 물의 세계에서 벗어나 더는 그 일부가 아닌 관람석 안에서, 대공비는 네레이드이기를 그치고, 흰빛과 푸른빛의 터번을 두른 채, 자이르 역, 혹은 어쩌면 오로스만 역을 위해 차려입은 어느 경이로운 비극 여배우처럼 나타났다. 마침내 그녀가 앞줄에 자리를 잡았을 때, 나는 그녀 볼의 장밋빛 진주광을 다정히 감싸 주던 그 부드러운 물총새 둥지가 실은 무엇이었는지 보았으니, 솜털처럼 보드랍고, 눈부시며, 벨벳 같은, 거대한 극락조였다.
그런데 이제 내 시선은 게르망트 대공비의 관람석에서 벗어나, 막 들어온 자그마한 여인 하나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차림이 초라하고 얼굴이 밋밋했으며 두 눈은 분노로 이글거렸고, 두 젊은이를 거느린 채 나에게서 몇 자리 떨어진 곳에 앉았다. 이윽고 막이 올랐다. 이제 내 옛 마음가짐의 자취가 조금도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에 나는 서글퍼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세상 끝까지라도 가서 보고 싶었을 그 비상한 현상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천문학자들이 혜성이나 일식을 정확히 관측하고 기록하려 아프리카로, 서인도 제도로 가지고 나가는 감광판처럼, 마음을 늘 준비된 상태로 두었었다. 그때 나는 어떤 구름 한 조각(배우의 기분이 언짢다든가 객석에서 무슨 소동이 인다든가 하는 것)이 그 광경이 최대한의 강렬함으로 펼쳐지는 것을 막지나 않을까 두려워 떨었다. 그때 나는, 그 광경에 제단처럼 봉헌된 바로 그 극장에 가지 않고서는 더없이 완벽한 조건에서 그것을 보고 있다고 믿지 못했으니, 그 극장 안에서 나는, 비록 부수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그 일부라고 느꼈던 것들, 곧 그녀가 임명한, 흰 카네이션을 단 안내원들, 허름하게 차려입은 군중이 들어찬 아래층을 덮은 둥근 천장의 발코니, 그녀의 사진이 실린 프로그램을 파는 여인들, 바깥 광장의 밤나무들, 그 시절 내 인상들의 그 모든 동무이자 심복이었던, 그 인상들과 떼어 놓을 수 없어 보이던 그것들을 느꼈다. 페드르, 그 ‘고백의 장면’, 라 베르마는 그때 내게 일종의 절대적 존재를 지니고 있었다. 당대의 경험 세계에서 멀찍이 떨어져 그것들은 저 홀로 존재했고, 나는 그것들을 만나러 가야 했으며, 그것들 가운데 내가 파고들 수 있는 만큼을 파고들어야 했고, 눈과 영혼을 한껏 활짝 연다 해도 나는 여전히 그것들 가운데 아주 조금밖에 빨아들이지 못하리라. 그러나 삶은 내게 얼마나 즐거워 보였던가. 내가 몸소 꾸려 가던 그 삶의 형식이 하찮다 한들, 그것은 옷을 차려입고 외출 채비를 하는 데 드는 시간만큼도 대수롭지 않았으니, 그 삶을 넘어선 곳에 절대적인 형태로, 훌륭하고 다가가기 어려우며 온전히 소유하기란 불가능한, 저 한결 견고한 실재들, 곧 페드르와 라 베르마가 제 대사를 읊는 방식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예술의 완벽함을 향한 이런 꿈들에 흠뻑 젖어(그 시절 낮의 어느 순간이든, 심지어 밤중에라도 내 정신을 분석에 부친 이라면 누구든 거기서 그 꿈을 진한 농도로 추출해 낼 수 있었으리라), 나는 전기를 모아 쌓아 두는 축전지 같았다. 그리고 한때는, 아무리 병들어 있어도, 설령 그 때문에 죽으리라 믿었을지언정, 나는 여전히 라 베르마를 들으러 가지 않고는 못 배겼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멀리서는 한 조각 쪽빛 하늘로 보이다가도 가까이 다가가면 우리의 평범한 시야 속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언덕처럼, 이 모든 것은 절대의 세계를 떠나, 다른 사물들과 다를 바 없는 하나의 사물에 지나지 않게 되었고, 나는 거기 있었기에 그것을 알아차렸을 뿐이었으며, 배우들은 내가 아는 사람들과 똑같은 재질로 된 사람들로서, 페드르의 이 대사들을 되도록 훌륭하게 읊으려 애쓰고 있었는데, 그 대사들 자체도 이제는 다른 모든 것과 구별되는 숭고하고 독자적인 본질을 이루지 못하고, 그저 다소 효과적인 대사들로서, 자신들이 한낱 일부에 불과한 저 방대한 프랑스 시(詩)의 몸통 속으로 도로 미끄러져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는 한층 더 깊은 낙담을 느꼈는데, 왜냐하면 나의 고집스럽고 능동적인 욕망의 대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건만, 다른 한편으로 끊임없는 꿈에 잠기려는 그 똑같은 성향, 해마다 그 대상은 달라져도 언제나 위험을 아랑곳 않는 돌연한 충동으로 나를 이끌던 그 성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병상에서 일어나 어느 시골 저택엔가 있는 엘스티르의 그림 한 점이나 중세의 태피스트리를 보러 나서던 날은, 내가 베네치아로 떠났어야 했던 날이나, 라 베르마를 들으러 실제로 갔던 날, 혹은 발베크로 떠나던 날과 어찌나 닮았던지, 나는 나서기도 전에 이미, 내 희생의 당장의 대상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시들하게 만들리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때 가서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그것을 위해 그토록 많은 불면의 밤과 그토록 긴 고통의 시간을 무릅쓰려 하는 그 그림, 그 태피스트리를 보려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대상의 불안정함 속에서 내 노력의 헛됨을, 그와 동시에 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그 노력의 광대함을 알아보았으니, 그것은 마치, 지쳐 있다고 일러 줌으로써 그 탈진을 곱절로 키워 놓는 신경쇠약 환자와도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내 몽상은 그것과 조금이라도 이어진 모든 것에 남다른 품격을 부여했다. 그리고 언제나 어떤 한 방향으로 자석처럼 이끌려, 단 하나의 꿈을 중심으로 응집된 내 가장 육욕적인 욕망들 속에서조차, 나는 그 일차적 동기로 하나의 관념을, 곧 내가 목숨이라도 바쳤을 하나의 관념을 알아볼 수 있었을 터인데, 그 관념의 가장 깊은 핵심에는, 콩브레의 정원에서 오후 내내 앉아 책을 읽던 시절의 몽상에서처럼, 완벽함에 대한 상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아리시, 이스멘, 이폴리트의 대사 낭독과 몸짓에서 눈여겨보았던, 짐짓 꾸민 애정이나 분노의 표현들에 대해 이제는 그때와 같은 너그러움을 더는 느끼지 않았다. 배우들이, 덧붙이자면 예전과 똑같은 배우들이었는데, 여전히 그 똑같은 영리한 정성을 기울여, 어느 때는 목소리에 어루만지는 듯한 억양이나 계산된 모호함을, 또 어느 때는 몸짓에 비극적인 웅장함이나 애원하는 듯한 유순함을 실으려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억양은 목소리에게 명령했다. “부드러워져라, 나이팅게일처럼 노래하라, 어루만지고 꾀어내라.” 아니면 “이제 분노로 타올라라.” 하고는 목소리를 덮쳐, 그 광란의 돌진 속으로 그것을 함께 휩쓸어 가려 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반항하며, 그들의 대사법과는 무관하게, 그 물질적인 결함이나 매력, 그 일상의 속됨이나 꾸밈을 지닌 그들 본연의 목소리로 변함없이 남아, 그들이 되뇌는 대사에 담긴 정서로서는 바꿀 힘이 없는 음향적·사회적 현상들의 총합을 드러내 보였다.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몸짓은 제 팔에게, 제 의상에게 말했다. “위엄 있어라.” 그러나 이 순종하지 않는 지체들은 저마다 어깨와 팔꿈치 사이로, 맡은 배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이두박근이 제멋대로 뽐내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것들은 여전히 일상의 하찮음을 드러내며, 라신적 의미의 섬세한 결 대신 한낱 근육의 이음매를 도드라지게 했다. 또한 그들이 치켜든 드레이프 천은 다시 수직의 선을 따라 흘러내렸는데, 그 선에서는 낙하하는 물체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에 맞서는 것이라고는 밋밋한 직물의 나긋함뿐이었다. 이때 내 곁에 앉아 있던 자그마한 여인이 외쳤다.
“손 하나 제대로 못 놀리네! 저런 차림새 본 적 있어요? 저 여잔 너무 늙었어요, 저 역을 소화 못 해요, 한참 전에 은퇴했어야 했어요.”
주위 사람들이 쉿쉿 항의하는 가운데 그녀와 함께 온 두 젊은이는 그녀를 겨우 잠잠하게 만들었고, 이제 그녀의 분노는 오직 눈 속에서만 이글거렸다. 게다가 이 분노는 오직 성공과 명성에 대한 생각에서만 촉발될 수 있는 것이었으니, 그토록 많은 돈을 벌어들인 라 베르마도 빚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지키지도 못할 업무상·사교상 약속을 잡곤 했던 터라, 파리의 온 거리로 사과의 전갈을 든 심부름꾼들을 날려 보냈고, 결코 묵지도 않을 호텔 방을 미리 잡아 두고, 제 개들을 목욕시킬 향수를 바다처럼 쓰고, 온갖 매니저들과의 계약 위반으로 무거운 위약금을 물어 가며, 달리 더 큰 씀씀이가 없을 때에도, 클레오파트라만큼 육감적이지는 않았을지언정, 전보와 삯마차 대여업자에게 여러 지방과 왕국이라도 탕진할 방도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그마한 여인은 성공이라고는 맛본 적 없는 여배우였고, 라 베르마에게 죽도록 미워하는 원한을 품고 있었다. 라 베르마는 방금 무대에 올랐다. 그러자, 오 기적이여, 마치 밤새 헛되이 애써 외우려던 학과가 이튿날 아침 눈을 뜨면 고스란히 통째로 외워져 있는 것처럼, 또한 우리 기억의 열정적인 노력이 되붙잡지 못한 채 좇기만 하던 죽은 벗들의 얼굴이, 더는 그들을 생각하지 않을 때 살아생전 그대로 우리 눈앞에 떠올라 있는 것처럼, 그 본질을 붙잡으려 내가 그토록 탐욕스럽게 애쓸 때는 나를 빠져나가던 라 베르마의 재능이, 이제, 이 여러 해의 망각을 거쳐, 이 무심함의 시간에, 직접 눈으로 본 것이 지니는 온갖 힘을 다해, 내 감탄 위로 밀려들었다. 예전에 그 재능을 따로 떼어 내려 애쓸 때, 나는 말하자면 내가 들은 것에서 배역 그 자체를, 곧 페드르로 분한 모든 여배우에게 공통된 부분을 빼냈는데, 그 부분은 내가 그것을 덜어 내고 걸러진 나머지에서 오직 베르마 부인의 재능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미리 스스로 공부해 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배역 자체의 바깥에서 찾아내려던 이 재능은 배역과 떼려야 뗄 수 없이 하나였다. 위대한 음악가의 경우도 그러하니(뱅퇴유가 피아노를 칠 때가 그랬던 모양이다), 그의 연주는 어찌나 뛰어난 피아니스트의 것인지 연주자가 과연 피아니스트이기나 한지조차 확신할 수 없을 정도인데, 왜냐하면(여기저기 눈부신 효과로 장식된 그 온갖 근육 노력의 기교며, 적어도 제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청자라면 재능을 그 물질적이고 만질 수 있는 객관성 속에서 알아본다고 여기게 되는, 사방으로 튀는 음표의 소나기 따위를 끼워 넣지 않아), 그의 연주는 어찌나 투명하고, 그가 해석하는 것으로 어찌나 가득한지, 이제 연주자 자신은 더는 보이지 않고, 그는 오직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을 향해 열린 창(窓)일 따름이 되기 때문이다. 아리시, 이스멘, 이폴리트의 목소리와 흉내 연기를 위엄 있거나 섬세한 가장자리 장식처럼 에워싸던 의도들을 나는 분간할 수 있었지만, 페드르는 제 의도들을 제 안으로 거두어들여 버렸으니, 내 정신은 그녀의 대사법과 자세에서 그것들을 끄집어내는 데도, 깨진 데 없이 이어진 그 인색할 만큼 단순한 표면 속에서, 아무런 낌새도 새어 나오지 않을 만큼 완전히 흡수되어 버린 그 보물들, 그 효과들을 붙잡아 내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다. 라 베르마의 목소리에는 정신에 저항하는 생명 없는 물질이 단 한 톨도 녹지 않은 채 남아 있지 않았기에, 그 목소리는 제 둘레에서 저 넘쳐흐르는 눈물의 낌새라고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그 눈물은, 아리시나 이스멘의 대리석 같은 목소리가 그것을 제 안에 빨아들이지 못했던 까닭에 그 위로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지던 것이건만, 라 베르마의 목소리에서는 명연주자의 바이올린처럼 그 가장 작은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절묘한 완벽함으로 다다라 있었으니, 명바이올리니스트를 두고 그의 음악이 고운 소리를 낸다고 말할 때 우리가 뜻하는 바는 어떤 물리적 특성이 아니라 영혼의 우월함을 기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라진 님프 자리에 생명 없는 샘물이 솟아 있는 고전적 풍경화에서처럼, 맑고 구체적인 하나의 의도가 어떤 음색의 특질로, 기이하게도, 걸맞게도, 차갑도록 투명하게 바뀌어 있었다. 라 베르마의 두 팔은, 대사 그 자체가, 말을 그녀 입술에서 흘러나오게 한 것과 똑같은 역동적인 힘으로, 마치 세차게 솟구친 물결에 흔들린 나뭇잎처럼 그녀 가슴께로 들어 올리는 듯했다. 무대 위에서의 그녀의 자세는, 그녀가 차츰 쌓아 올렸으며 앞으로 더 다듬어 갈 것이었고,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의 몸짓에서 그 자취를 엿볼 수 있는 것과는 다른 깊이의 사유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되, 애초의 의도적임을 잃어버린 사유, 일종의 광채 속으로 녹아든 사유였으니, 그 광채 속에서 그 사유들은 여주인공의 몸 둘레로 풍요롭고 복잡한 요소들을 고동치듯 내보냈지만, 넋을 빼앗긴 관객은 그것을 예술적 개가가 아니라 타고난 천품으로 받아들였다. 그 흰 베일들마저도, 얇고 몸에 달라붙어, 살아 있는 물질로 된 듯했고, 반쯤은 이교도적이고 반쯤은 얀센주의적인 그 고뇌가 짜낸 듯했으며, 그 고뇌 둘레로 베일들은 연약하게 오그라드는 번데기처럼 바싹 조여들었으니, 그것들 모두, 곧 목소리며 자세며 몸짓이며 베일은, 시 한 줄이란 곧 하나의 관념의 화신인바(그 화신은 우리 인간의 육체와는 달리, 영혼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불투명한 장막이 아니라, 영혼이 그 사이로 번져 나와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게 되는, 정화되고 생기를 얻은 옷으로 감싸는 것이다), 그 관념의 화신 둘레에서, 가리기는커녕 그것들을 제 것으로 동화시켜 그 사이로 스스로를 퍼뜨린 영혼을 한층 더 찬란하게 드러내 보이는 덧옷들에 지나지 않았고, 투명해진 서로 다른 물질의 여러 겹에 지나지 않았으니, 그 겹들이 사이사이 끼어듦으로써 생기는 효과라고는, 그 겹들을 꿰뚫고 지나가는, 갇힌 채 중심을 이루는 광선이 한층 풍부하게 굴절되게 하고, 그 광선이 모셔져 있는, 불로 정화된 물질을 더 넓고 더 귀하고 더 아름답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리하여 라 베르마의 해석은, 라신의 작품을 둘러싼 제2의 작품, 그 역시 천재의 숨결로 생기를 얻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