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침마다 나는, 그녀가 나타날 시각보다 한참 전에, 에두른 길로 가서 그녀가 으레 지나오는 거리 모퉁이에 자리를 잡았고, 그녀가 다다를 순간이 임박한 듯하면, 딴 데 정신이 팔린 척 집 쪽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다른 데를 보다가 그녀와 나란히 되는 순간 그 얼굴로 눈을 들어 올렸으니, 마치 그녀를 보리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굴었다. 사실 처음 며칠 아침은,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집 맞은편에서 기다렸다. 그리고 마차 대문이 열릴 때마다(내가 기다리던 그녀는 아무도 아닌 숱한 사람들을 하나둘 내보내면서), 그 삐걱대는 소리가 내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가라앉히지 못한 일련의 진동으로 이어졌다. 알지도 못하는 이름난 여배우에게 홀려, 무대 뒷문 밖 보도에 자리 잡고 서성이던 숭배자도, 감옥이나 궁전 안에서 무슨 소리라도 들리면 이제 막 나오려나 보다 여기며 사형수나 국민적 영웅을 모욕하거나 거리에서 떠받들고 개선하듯 나르려고 모여든 성난, 혹은 우상 숭배하는 군중도, 그때의 나만큼 감정에 들뜬 적은 없었다. 나는 이 대귀부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녀는 소박한 차림새로도 그 몸짓의 우아함으로(응접실이나 특별석에 들어설 때 짐짓 꾸미던 걸음걸이와는 사뭇 다른 우아함으로), 자신의 아침 산책을, 그리고 내게는 세상에서 오직 그녀만이 산책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산책을 우아한 세련미의 한 편 시로, 그 계절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이자 가장 진기한 꽃으로 만들 줄 알았다. 그러나 사흘째 뒤로는, 문지기가 내 술책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훨씬 더 멀리, 공작부인이 늘 다니는 경로의 어느 지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극장에서의 그 저녁 이전에도 나는 날씨가 좋으면 점심 전에 비슷한 자잘한 나들이를 하곤 했다. 비가 오다가도 햇살이 처음 비치기만 하면 나는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가 한 바퀴 돌았고, 그러다 문득, 해가 황금빛 옻칠로 바꿔 놓은 아직 젖은 보도 위로, 해가 그을리고 금빛으로 물들인 잿빛 안개로 자욱한 네거리의 무대 전환 같은 풍경 속에서, 가정교사를 뒤에 거느린 여학생이나 흰 소매의 우유 짜는 처녀가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언뜻 보면, 나는 꼼짝 않고 서서, 이미 미지의 삶의 형태를 향해 뛰노는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는 그 처녀가(때로 나는 그 뒤를 밟기도 했다)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은 그 거리와 시각과 문 번지를 마음에 새겨 두려 애썼다. 다행히도 다시 보려고 애써 보리라 스스로 다짐하던 이 소중한 영상들은 그 덧없는 성질 탓에 내 기억 속에 또렷이 새겨지지 못했다. 아무렴 어떠랴, 이제 나는 내 병약함을 생각해도, 일에 착수해 책을 시작할 용기를 끝내 내지 못한 것을 생각해도 전보다 덜 서글펐다. 파리의 거리들도 발베크 근방의 길들처럼, 내가 그토록 자주 메제글리즈의 숲에서 불러내려 애쓰던 저 낯선 미인들로 만발해 있음을, 그리고 그들 하나하나가 오직 그녀만이 달래 줄 수 있을 듯한 관능적 갈망을 불러일으킴을 알게 된 지금, 세상은 살기에 한결 유쾌한 곳으로, 삶은 한결 흥미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오페라 코미크에서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며칠 전부터 다시 만나기를 바라 오던 이들의 목록에, 이튿날 아침을 위해 게르망트 부인의 모습을 보태 넣었다. 그 큰 키, 비단결 같은 금발을 높이 틀어 올린 관, 그리고 사촌의 특별석에서 내게 보낸 미소로 약속된 그 친절함까지. 나는 프랑수아즈가 일러 준, 공작부인이 으레 다니는 경로를 따라갈 참이었고, 동시에 며칠 전 본 두 처녀를 만날까 하여, 그들이 각각 다니는 학교 수업과 교리 문답 반이 파하는 때를 놓치지 않으려 애쓸 참이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도 게르망트 부인의 반짝이는 미소와 그것이 내게 준 유쾌한 느낌이 자꾸만 되살아났다. 그리고 내가 무얼 하는지도 정확히 모른 채, 나는 (막 선물 받은 보석 단추 한 벌이 자기 옷에 어떤 효과를 낼지 가늠해 보는 여인처럼) 그 미소를, 내가 오래 품어 온 낭만적 관념들 곁에 놓을 자리를 찾으려 했다. 그 관념들은 알베르틴의 냉담함과 지젤의 이른 떠남, 그리고 그에 앞서 내가 일부러 너무 오래 끌어 온 질베르트와의 이별이 풀어 놓은 것이었다(이를테면 어떤 여인에게 사랑받는다는 관념, 그녀와 삶을 함께한다는 관념 말이다). 다음으로 나는 거리에서 본 두 처녀 가운데 이런저런 하나의 영상을 그 관념들과 이어 놓았고, 그런 뒤에는 곧바로 거기에 공작부인에 대한 기억을 맞추려 애쓰던 참이었다. 그 관념들에 비하면 오페라 코미크에서의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내 기억은 아주 작은 것, 이글거리는 혜성의 긴 꼬리 곁에서 반짝이는 자그마한 별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게르망트 부인을 알기 훨씬 전부터 그 관념들에 아주 익숙해 있었으나, 반대로 그녀에 대한 기억은 불완전하게밖에 지니지 못해서 이따금 그것이 내게서 달아나곤 했다. 다른 여러 어여쁜 여인들의 영상처럼 내 마음속에 어렴풋이 떠다니다가, 자기보다 훨씬 오래된 저 낭만적 관념들과 서서히, 다른 모든 여성의 모습을 물리치고서, 유일하고 뚜렷한 결합으로 옮겨 가던 그 시간, 바로 그 기억이 가장 또렷하던 그 몇 시간 동안에야말로 나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려 손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것이 내게 지니게 될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그저 내 안에서 게르망트 부인과 처음으로 은밀히 만나는 일로서 유쾌했을 뿐이니, 그것은 첫 번째이자 유일하게 정확한 스케치, 유일하게 실물을 보고 그린 것, 유일하게 참으로 게르망트 부인다운 것이었다. 그것에 아무 주의도 기울일 분별이 없이 다행히 붙들고 있던 그 몇 시간 동안, 그 기억은 어쨌든 매력적이었음이 틀림없다. 내 사랑의 관념들이 늘, 게다가 아주 거리낌 없이, 서두름도 없고 긴장도 없이, 조금의 강요나 불안도 없이 돌아가 닿던 것이 바로 그 기억이요 그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다 그 관념들이 그것을 차츰 더 뚜렷이 고착시키면서, 기억은 그만큼 더 큰 힘을 얻었으나 그 자체는 도리어 더 흐릿해졌다. 이윽고 나는 더는 그것을 되붙잡을 수 없었고, 꿈속에서 아마 그것을 완전히 바꿔 놓았을 것이다. 게르망트 부인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 눈으로 본 것 사이의 차이를, 그것도 어쩌다 보니 두 번 다시 같은 적 없는 그 차이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아침마다, 게르망트 부인이 거리 위쪽 자기 집 대문에서 나서는 순간이면 나는 어김없이 그 큰 키와, 빛나는 눈과 비단결 머리의 관을 얹은 얼굴을, 곧 내가 거기서 기다리던 그 모든 것을 다시 보았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일이 분 뒤, 내가 찾아 나선 이 마주침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먼저 눈을 돌렸다가, 우리 둘이 가까워지는 순간 공작부인을 보려고 눈을 들면, 그때 내가 본 것은 뾰로통한 얼굴 위의 붉은 반점들이었으니(그것이 찬 공기 탓인지 나쁜 혈색 탓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 얼굴은 더없이 무뚝뚝하게 까딱하는 목례로, 페드르의 저녁의 상냥함과는 한참 동떨어진 그 목례로, 내가 날마다 짐짓 놀란 척하며 건네던, 그리고 그녀에게는 도무지 달갑지 않은 듯한 나의 인사에 응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며칠이 지나는 동안, 두 처녀에 대한 기억이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기억에 맞서 내 연정의 주도권을 놓고 불리한 싸움을 벌인 끝에, 결국 절로 그러하듯 대개 이기는 쪽은 후자였고 그 경쟁자들은 물러났다. 마침내 나는, 게다가 짐짓 의도해서, 마치 선택하듯 또 나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듯, 내 모든 사랑의 상념을 그 기억으로 옮겨 놓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교리 문답 반에서 나오는 어린 소녀들이나 어떤 우유 짜는 처녀를 더는 꿈꾸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거리에서 내가 찾아 나선 것, 곧 극장에서 미소로 내게 약속된 그 애정이나, 오직 멀리서 볼 때에만 그러했던 옆얼굴과 금발 더미 아래 빛나는 얼굴을 마주치리라는 희망도 모조리 잃어버렸다. 이제 나는 게르망트 부인이 어떤 모습인지, 무엇으로 그녀를 알아보는지조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전체로 내보이는 그림 속에서 날마다 얼굴이 달랐고, 옷과 모자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왜 어느 날 아침, 보랏빛 두건 아래로 내 쪽으로 다가오는, 한 쌍의 푸른 눈을 중심으로 매력이 좌우 대칭으로 배치된, 코의 곡선은 그 속에 녹아든 듯한 부드럽고 매끄러운 얼굴을 보았을 때, 나는 가슴속의 즐거운 소동으로부터 게르망트 부인을 언뜻 보지 않고서는 집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짐작했으면서, 그다음 날에는, 옆길에서 건너오며 옆얼굴로 보인, 짙은 남색 토크를 얹고, 부리 같은 코가 상기된 뺨을 가르며 그 뺨을 꿰뚫는 듯한 눈으로 얼룩진, 마치 어떤 이집트 신 같은 그 환영에 대해서는, 똑같은 동요를 느끼면서도 전날과 똑같이 무관심을 가장하고 똑같이 무심한 태도로 눈을 돌렸던가? 한번은 새 부리를 지닌 여인이 아니라 거의 새 그 자체를 본 적도 있다. 게르망트 부인의 겉옷은, 심지어 토크까지도 모피였고, 그리하여 천이라고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마치 두껍고 매끄럽고 거무스름한 솜털 깃이 도리어 들짐승의 가죽을 떠올리게 하는 어떤 독수리들처럼 자연스레 털가죽을 두른 것처럼 보였다. 이 자연스러운 깃털 한가운데서 작은 머리가 부리를 활처럼 내밀었고, 그 표면의 두 눈은 꿰뚫을 듯 날카롭고 푸르렀다.
어느 날 나는 게르망트 부인의 흔적이라고는 없이 몇 시간이고 거리를 오르내리며 서성이던 참이었는데, 문득 이 귀족적이면서도 서민적인 동네의 저택 두 채 사이에 끼어 있는 어느 과자점 안에, 자그마한 케이크들을 좀 보여 달라고 청하는 멋쟁이 차림 여인의 어렴풋하고 낯선 얼굴이 나타나 윤곽을 갖추더니, 내가 미처 그녀를 알아볼 겨를도 없이, 천둥 소리보다 먼저 나에게 닿는 번갯불처럼, 공작부인의 눈길이 내게 번쩍 쏘아졌다. 또 한번은, 그녀를 만나지 못한 채 열두 시 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 더 기다려 봐야 헛일임을 깨닫고 서글피 집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내 실망에 잠겨, 나를 앞질러 간 마차를 멍하니 뒤쫓아 보되 눈에 담지도 않은 채 있다가, 나는 문득, 마차 창 너머로 어떤 부인이 짓는 것을 본 그 고갯짓이 나를 향한 것임을, 그리고 우뚝 솟은 깃 장식 발치에 얌전히 놓인 둥근 모자 아래로, 느슨하고 창백한, 혹은 팽팽하고 생기 넘친다 해도 그만인 이목구비를 갖춘, 내가 모르는 사람이려니 여겼던 그 낯선 얼굴의 부인이 바로 게르망트 부인임을, 그리고 내가 그녀의 목례에 답례조차 하지 않은 채 인사를 받고 말았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때로는 대문을 들어서다가 그녀와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녀는 문지기 방 밖에 서 있었고, 내가 그 살피는 눈초리를 몹시 싫어하고 두려워하던 그 얄미운 문지기는 그녀에게 깊숙이 절을 올리며, 필시 날마다 하던 보고까지 올리고 있었다. 게르망트가의 하인들 전부가 창 커튼 뒤에 숨어, 엿들을 수는 없으나 저희 가운데 누군가 하나는 이 케르베로스 같은 문지기가 공작부인에게 일러바치는 통에 틀림없이 '외출 나가는 날'을 빼앗기리라는 뜻임을 잘 알아, 그 대화를 지켜보며 벌벌 떨었다. 게르망트 부인이 이렇게 하나씩 차례로 내보이던 그 온갖 다른 얼굴들, 그녀의 온몸과 차림새 전체에서 어느 날은 오그라들고 이튿날은 광대하게,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넓이를 차지하던 그 얼굴들을 두고 볼 때, 내 사랑은 하루가 지나면 하루씩 서로 자리를 바꾸던, 그리고 그녀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고 거의 통째로 다시 지어낼 수도 있던 그 변덕스럽고 끊임없이 변하는 살과 천의 요소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도 매여 있지 않았다. 그래도 내 동요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그 아래에서, 새 옷깃과 낯선 뺨 아래에서, 나는 여전히 그것이 게르망트 부인임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한 것은 이 모든 겉치레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사람, 그 적의가 나를 그토록 괴롭히고, 그 다가옴이 나를 떨게 하며, 그 삶을 내 것으로 삼고 거기서 그녀의 친구들을 몰아내고 싶던 그 사람이었다. 그녀가 푸른 깃털을 뽐내든 이글거리는 뺨을 드러내든, 그 행동들이 내게 지니는 중요성은 잃지 않았다.
게르망트 부인이 날마다 나와 마주치는 데 진력이 났다는 것을, 나 스스로는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프랑수아즈가 이 아침 산책을 채비하도록 나를 거들 때 짓던, 냉담과 못마땅함과 연민으로 굳은 그 얼굴에서 그것을 읽어 넌지시 알아채지 못했다면 말이다. 그녀에게 외출복을 청하는 순간, 나는 그 닳고 지친 얼굴에 거스르는 바람이 이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속내를 알아내려 애쓰지 않았으니, 그래 봐야 안 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내 부모나 나에게 일어났을 법한 언짢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대번에 알아내는, 그 정체를 나로서는 끝내 헤아릴 수 없던 힘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그녀에게만 열린 정보원으로 설명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어떤 소식이 우편으로 유럽인 거류지에 닿기 며칠 전에 미개 부족에게 먼저 이르곤 하는 것이, 실은 텔레파시가 아니라 봉화의 사슬을 따라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전해진 것이듯 말이다. 그러니 내 아침 산책이라는 이 특정한 경우에도, 아마 게르망트 부인의 하인들이, 가는 곳마다 날마다 어김없이 나와 마주치는 데 진저리가 난다고 안주인이 하는 말을 듣고서 그 말을 프랑수아즈에게 옮겼을 것이다. 하기야 내 부모가 프랑수아즈 말고 다른 하인을 내게 붙여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 본들 사정이 나아질 것은 없었을 터이다. 프랑수아즈는 어떤 의미에서 다른 이들보다 덜 하인다운 하인이었다. 무엇을 느끼는 방식에서, 다정하고 가엾이 여기다가도 모질고 쌀쌀맞으며, 우월하면서도 옹졸한 태도에서, 흰 살결에 붉은 손을 겸한 모습에서, 그녀는 여전히, 부모가 '제 땅뙈기'를 지녔으나 살림이 기울어 하는 수 없이 딸을 남의집살이로 내보낸, 그런 시골 처녀였다. 우리 집에서 그녀의 존재는 시골 공기였고, 오십 년 전 농가의 사회생활이, 여느 여행의 순서가 뒤집혀 장소가 사람을 찾아오는 셈이 되어 우리에게 실려 온 것이었다. 지방 박물관의 유리 진열장이, 시골 어느 고장에서 농부들이 아직도 깎거나 수놓거나 하는 진기한 손공예 표본들로 채워지듯, 파리의 우리 집도 프랑수아즈의 말로 꾸며져 있었으니, 그 말은 전통적인 고장의 정서에서 우러나 몹시 오래된 법도의 지배를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파리에서도, 색실의 실마리를 좇듯이, 어린 시절의 노래하는 새들과 벚나무로, 아직도 생생히 보이던 어머니의 임종 자리로 되짚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풍부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파리에 와 우리 집에 들어와 일하게 된 뒤로 그녀는, 물론 그녀 자리에 온 다른 누구라도 그랬을 테지만, 다른 층 하인들이 쓰는 관념과 해석의 체계를 익혔다. 곧 우리에게 마지못해 보여야 하는 존경을 벌충하려고, 사층 요리사가 제 안주인에게 퍼부었다는 상스러운 말들을 옮겨 왔는데, 그 종놈다운 만족이 어찌나 강렬한지, 태어나 처음으로 우리는 사층 집의 그 얄미운 거주자와 우리 사이에 일종의 연대감을 느끼며, 어쩌면 우리도 결국 '고용주'인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프랑수아즈의 성격에 일어난 이런 변화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존재의 형태는 하도 비정상적이어서 반드시 어떤 특유의 결함을 낳게 마련이다. 베르사유에서 신하들에 둘러싸여 지낸 왕의 삶이 그러했으니, 그것은 파라오나 도제의 삶만큼이나 기이한 것이었고, 왕의 삶보다도 그 신하들의 삶이 훨씬 더 그러했다. 우리 하인들이 사는 삶은 아마 한층 더 괴물스럽게 비정상적일 터인데, 다만 그것이 낯익다는 사실만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못 보게 막아 줄 뿐이다. 그러나 내가 설령 프랑수아즈를 내보냈더라도 결국 똑같은 하인을 두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실은 한층 더 은밀한 세부에서 그러했다. 앞으로 몇 해 사이에 여러 다른 이들이 내게 와 일하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미 모든 하인에게 공통된 결함을 갖춘 채였지만, 그래도 그들은 내 밑에서 빠르게 변모해 갔다. 전술의 법칙에서 한 구역의 공격이 다른 구역의 반격을 부르듯이, 내 성격의 모난 데에 다치지 않으려고 그들은 저마다 제 성격 안에 똑같은 탄력을, 늘 똑같은 지점에 만들어 냈고, 그 대신 내 전선의 빈틈을 노려 전진 초소를 밀어 냈다. 이 빈틈들에 대해 나는, 그것들이 낳은 돌출부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몰랐으니, 바로 그것들이 빈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하인들은 차츰 버릇이 나빠져 가며 그 빈틈들이 있음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들이 예외 없이 얻어 가는 결함들에서 나는 내 타고난, 변함없는 단점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들의 성격은 내 성격의 일종의 음화(陰畵)를 내게 내밀어 준 셈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늘 사즈라 부인을 두고 웃곤 했는데, 그녀는 자기 하인들을 두고 '아랫것들'이니 '하인 계급'이니 하는 말을 쓰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프랑수아즈를 다른 누구로 바꿀 생각이 부질없었던 까닭은, 그 후임자 역시 일반적인 하인이라는 종족에도, 그리고 특히 나의 하인이라는 계급에도 꼭 그만큼 속했으리라는 데 있었음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수아즈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는 평생 어떤 굴욕을 겪을 때마다 그에 앞서 그녀의 얼굴에서 미리 마련되어 대기 중인 위로의 비축을 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럴 때 그녀에게 동정받는다는 생각에 화가 나 도리어 뚜렷한 성공을 거둔 척하려 들면, 내 거짓말은 그녀의 공손하되 뻔히 드러나는 불신의 벽에, 또 자기가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그녀의 흐뭇한 자각의 벽에 힘없이 부딪혀 깨졌다. 그녀는 진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녀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다만 아직 입안에 무엇이 가득해 맛있는 한 입을 마저 삼키기라도 하는 듯 입술을 조금 움직일 뿐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다. 그 무렵 나는 남에게 진실을 전하는 것이 말을 통해서라고 여전히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내게 하는 말은 그 뜻을 내 마음의 감광판 위에 하도 지울 수 없게 새겨 놓아서, 나를 사랑한다고 공언한 누군가가 실은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프랑수아즈 자신이, 어떤 성직자나 신사가 우표 붙인 봉투만 받으면 알려진 온갖 병에 듣는 틀림없는 약이나 수입을 백 배로 불리는 방도를 공짜로 마련해 주겠다고 신문에서 읽고는 그 말을 의심할 수 없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이다. (반면에 우리 의사가 그녀에게 코감기를 낫게 할 더없이 단순한 연고를 처방하기라도 하면, 그토록 모진 고통도 악착같이 견디던 그녀가, 코를 간질인다느니 이러고는 살 맛이 안 난다느니 우기며, 억지로 들이마셔야 했던 그것을 두고 쓰라리게 불평하곤 했다.) 그러나 그녀야말로, 진실이란 겉으로 드러나기 위해 굳이 발설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말을 기다리지 않고도, 심지어 말에는 골머리를 앓지도 않고서, 수천 가지 겉으로 드러나는 표징에서, 나아가 인간 성격의 영역에서 자연의 대기 변화에 견줄 만한 어떤 보이지 않는 현상들에서, 그것을 한결 확실히 알아챌 수 있다는 것을 제 본보기로 내게 처음 증명해 준 사람이었다(그 본보기를 나는, 이 작품의 뒤 권들에서 보게 되겠지만, 프랑수아즈보다 내게 더 소중한 사람이 훗날 그것을 다시, 그것도 나를 한층 더 괴롭히며 안겨 주고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나도 어쩌면 이를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 자신부터가, 진실이라고는 한 톨도 없는 말을 하면서, 정작 참된 진실은 내 몸과 행동으로 새어 나오는 온갖 무의식적 실토를 통해(그리고 그것을 프랑수아즈는 즉각 알아챘다) 드러내는 일이 잦았으니 말이다. 나는 어쩌면 이를 눈치챘어야 했으나, 그러려면 먼저 나 자신이 이따금 거짓되고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의식했어야 했다. 그런데 나에게 거짓과 부정직함은, 대다수 사람이 그러하듯, 어떤 특정한 이해관계에 따라 자기 방어로, 하도 즉각적이고 하도 우발적으로 생겨나는 것이어서, 어떤 드높은 이상에 못 박힌 내 정신은 아래쪽 어둠 속에서 내 성격이 그 급하고 지저분한 일들에 착수하도록 내버려 둔 채, 굽어보아 그것을 살피지 않았다. 저녁에 프랑수아즈가 내게 공손히 굴며 내 방에 앉기 전에 허락을 청할 때면, 마치 그 얼굴이 투명해져 그 아래 깔린 선량함과 정직함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나중에야 알게 된, 이따금 입이 가벼워지곤 하던 쥐피앙이 뒤에 털어놓기를, 그녀가 자기에게, 나는 목매달 밧줄 값어치도 못 되는 인간이며 온갖 방법으로 자기를 모욕하려 들었다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쥐피앙의 이 말은, 내가 즐겨 눈길을 쉬게 하곤 하던, 그리고 그 속에서는 조금의 의심의 여지도 없이 프랑수아즈가 나를 흠모하며 나를 칭송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던 그 그림과는 너무나도 다른, 프랑수아즈와 나의 관계를 담은 그림 한 폭을 새롭고 낯선 빛깔로 대번에 내 눈앞에 세워 놓았다. 그리하여 나는 깨달았다. 우리가 보는 모습과 다른 것이 비단 물질세계만은 아니라는 것, 어쩌면 모든 실재가 우리가 직접 지각한다고 여기는 바와 꼭 그만큼 다르리라는 것, 나무와 해와 하늘이, 우리와 다르게 구성된 눈을 지닌 생물이, 아니 차라리 그 목적에 맞게 눈 아닌 다른 기관을, 나무와 하늘과 해에 대해 시각적이지는 않으나 그에 상응하는 것을 마련해 줄 기관을 지닌 생물이 그것들을 지각한다면, 우리가 보는 것과 같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쥐피앙이 실재 세계를 향해 내게 불쑥 열어젖힌 이 통로는 나를 아연하게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프랑수아즈뿐이었고, 그녀에 대해서는 나도 거의 마음을 두지 않았다. 사람의 모든 사회적 관계가 다 이러할까? 그리고 만일 사랑에서도 마찬가지라면, 이것은 언젠가 나를 얼마나 깊은 절망의 나락에 빠뜨릴 것인가? 그것은 미래의 비밀이었다. 당장은 프랑수아즈만이 문제였다. 그녀는 쥐피앙에게 한 말을 진심으로 믿었을까? 쥐피앙을 나와 틀어지게 하려고, 어쩌면 우리가 쥐피앙의 조카딸을 자기 후임으로 앉히지 못하게 하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일까? 어쨌든 나는 프랑수아즈가 나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직접적이고 확실하게 알기란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어떤 사람이란, 내가 상상하던 것처럼, 그 장점과 결점과 계획과 우리에 대한 속셈을 표면에 드러낸 채, 마치 온갖 화단을 우리 앞에 펼쳐 놓고 우리가 울타리 너머로 바라보는 정원처럼 우리 눈앞에 꼼짝 않고 또렷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코 꿰뚫어 볼 수 없는 그림자, 직접적인 앎이라고는 있을 수 없는 그림자, 그의 말과 때로는 그의 행동에 기대어 우리가 무수한 믿음을 지어내되 말도 행동도 불충분한, 게다가 알고 보면 모순된 정보밖에 주지 못하는 그런 그림자, 그 뒤에서 증오의 불꽃이 타는지 사랑의 불꽃이 타는지를 우리가 똑같은 근거로 번갈아 상상할 수 있는 그림자라는 생각을, 내게 처음 심어 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
나는 진심으로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하고 있었다. 내가 신께 빌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신이 그녀에게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재앙을 퍼부어, 그녀가 몰락하고 멸시받고 그녀를 나와 갈라놓던 온갖 특권을 죄다 빼앗긴 채, 제 집도, 그녀에게 말이라도 붙여 줄 사람도 더는 없어져, 나에게 피난처를 구하러 오는 것이었으리라. 나는 그녀가 그러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실제로, 대기의 어떤 변화나 내 컨디션의 어떤 변화가 지난날의 인상들이 적힌 잊힌 두루마리 하나를 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올리던 그런 저녁이면, 나는 내 안에 생겨난 그 상쾌한 기운을 활용하기는커녕, 그것을 써서 여느 때 내게서 달아나던 생각들을 마음속에 풀어 읽기는커녕, 마침내 일에 착수하기는커녕, 차라리 소리 내어 이야기하고 삼인칭으로 줄거리를 짜기를 즐겼으니, 그 지어냄의 흐름은 그것을 낭독하는 일만큼이나 부질없었다. 모험으로 가득 찬 소설 한 편을 통째로 지어내는 것이었는데, 그 속에서는 불운에 빠진 공작부인이, 사정이 거꾸로 뒤바뀌어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이 된 나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시간이고 그 상황을 상상하고, 내 지붕 아래로 공작부인을 맞아들일 때 할 말들을 되뇌어 본 뒤에도, 현실의 처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슬프게도 나는 실상, 아마 제 한 몸에 서로 다른 온갖 이점을 최대한 많이 겸비했을 바로 그런 여인을 사랑하기로 골랐던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눈에 나 자신이 어떤 존재로든 비칠 가망은 없었다. 그녀는 가장 부유한 평민만큼 부유했고, 게다가 귀족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녀를 유행의 정점에 올려놓아 뭇사람 가운데서 일종의 여왕으로 만든 그 개인적 매력은 헤아리지 않더라도 그러했다.
나는 이렇게 아침마다 그녀의 길을 가로막아 그녀를 성가시게 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설령 내가 이삼 일 연달아 그러기를 그만둘 용기를 냈다 한들, 내게는 그토록 큰 희생이었을 그 자제를 게르망트 부인은 알아채지 못했거나,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무슨 장애 탓으로 돌렸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그녀를 뒤쫓는 짓을 스스로 그만두려 해도, 아예 그럴 수 없게끔 상황을 만들어 놓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를 만나, 한순간 그녀 관심의 대상이, 그녀의 목례가 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 안에서 쉼 없이 되살아나는 그 욕구가, 그녀의 언짢음을 살까 하는 두려움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얼마간 멀리 떠나 있었어야 했으나, 그럴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한 번 이상 하기는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프랑수아즈에게 짐 가방을 꾸리라 일렀다가, 곧바로 다시 풀라고 하곤 했다. 그리고 남을 흉내 내려는 기질,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지 않으려는 욕구가 사람의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확고한 본모습마저 바꾸어 놓는 법이라, 프랑수아즈는 제 딸의 말투에서 표현을 빌려 와, 내가 '돌았다'고 이르곤 했다. 그녀는 이를 못마땅해했다. 나더러 늘 '망설이기만 한다'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과 겨루려 들지 않을 때면 그녀는 생시몽의 말투를 썼기 때문이다. 하기야 내가 주인이 하인에게 하듯 그녀에게 말할 때는 그것을 더욱 싫어하기는 했다. 그녀는 그것이 내게 자연스럽지도, 어울리지도 않음을 알았고, 그런 처지를 '억지로는 안 되는 법'이라는 말로 옮겼다. 게르망트 부인에게 더 가까이 데려다줄 방향이 아니고서는, 나는 파리를 떠날 엄두를 결코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게르망트 부인에게서 몇 마일이나 멀어지더라도, 그 대신 그녀와 아는 어떤 사람, 그녀가 친구를 까다롭게 고르는 줄로 아는 사람이자 내 좋은 자질을 알아보고 그녀에게 나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설령 그녀에게서 무엇을 얻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그녀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사람, 아무튼 그에게 이런저런 전갈을 그녀에게 전해 줄 수 있을지 없을지를 내가 의논한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나의 외롭고 말 없는 사색에 말로 된, 능동적인, 진전처럼, 거의 실현처럼 보이는 새로운 형태를 안겨 줄 그런 사람을 찾아간다면, 나는 도리어, 아침에 거리에서 외롭고 겸연쩍게, 그녀에게 전하고 싶던 생각이라고는 단 하나도 그녀에게 가닿지 못함을 느끼며, 나 자신에게는 조금의 득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끝없이 이어질 수 있을 그 지친 산책의 오르내림 속에 있을 때보다, 그녀에게 더 가까이 있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그녀인 저 '게르망트'라는 존재의 신비로운 일상 속에서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이것이 내 생각의 변함없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 신비를, 비록 간접적인 수단으로나마, 지렛대를 쓰듯, 공작부인의 저택과 그 연회와 그녀와의 거리낌 없는 대화가 금지되지 않은 어떤 사람의 도움을 빌려 뚫고 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침마다 거리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멀되 동시에 더 효과적인 접촉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