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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⑧

3권 제1부 · 제1장

로베르는, 그 까닭은 모른 채, 내 뚜렷한 애정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리고 그 애정은, 불의 열기와, 내 이마에는 땀방울을 내 뺨에는 눈물을 동시에 맺히게 한 샴페인이 자아낸 아늑한 느낌으로 한층 더해졌다. 샴페인은 자고새 고기를 넘겨 주었고, 나는 내 몫을 먹으며, 익숙지 않은 어떤 삶의 방식 속에서 마땅히 그 삶이 배제하리라 여겼던 것을 발견할 때 어떤 속된 인간이든 느끼는 그런 멍한 경탄으로, 이를테면 사제관에서 더없이 정갈하게 차린 저녁상에 앉게 된 무신론자의 경탄으로 그것을 먹었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자, 나는 일어나 생루의 창가로 갔으니, 그 창은 아주 높은 데 있어 온 들판을 굽어보았는데, 나는 거기서 내 새 이웃을, 곧 전날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미 펼쳐진 밤의 외투 아래 잠들어 있던 시각이라 분간할 수 없었던 그 풍경을 알아보려는 야릇한 눈길을 던졌다. 그런데 그 풍경이 아무리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한들, 창을 열고 내다보았을 때 나는 그 땅을, 호수를 굽어보는 어느 시골집 창에서 내다보듯이, 아직 부드러운 흰 아침 안개의 잠옷에 감싸여 아무것도 거의 분간할 수 없는 모습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으니, 광장에서 말을 돌보느라 바쁜 기병들이 손질을 마치기도 전에 그 풍경은 잠옷을 벗어 던지리라는 것을. 그동안 나는 그저 초라한 언덕 하나만을 볼 수 있었을 뿐인데, 그것은 이미 어둠이 걷혀 거칠고 주름진 등을 병영 곁에 바짝 세우고 있었다. 서리의 투명한 장막 너머로 나는 이 낯선 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으니, 그 또한 나를 처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병영에 드나드는 버릇이 들고 나서는, 그 언덕이 거기 있다는 의식이,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을 때조차, 내가 마치 부재중인, 아니 죽은 벗을 생각하듯, 다시 말해 그 존재를 그다지 굳게 믿지 않은 채 생각하던 발베크의 호텔이나 파리의 우리 집보다도 더 실재적이던 그 의식이, 마침내 내가 스스로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동시에르에서 얻은 아주 사소한 인상에까지 그 언덕의 그림자를 어리게 했으니, 그 인상들 가운데서도, 이 첫 아침부터 시작하여, 생루의 당번병이 이 아늑한 방에서 타 준 초콜릿 잔이 내게 준 그 흐뭇한 온기의 인상에 그러했는데, 그 방은 언덕을 내다보는 시각(視覺)의 중심점 노릇을 하는 셈이었다. 언덕을 그저 바라보는 것 말고 달리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실제로 그것을 기어오른다는 생각은 바로 그 안개 때문에 불가능해졌으므로. 언덕의 형상을, 뜨거운 초콜릿 맛과, 그 무렵 내 온갖 공상의 그물과 함께 빨아들이면서, 이 안개는, 내가 그것에 대해 조금도 생각해 본 적 없건만, 그 시절에 관한 내 후일의 온갖 상념을 적셔 놓는 데 성공했으니, 마치 녹지 않는 묵직한 금덩이 하나가 발베크에 관한 내 인상에 여전히 붙어 있듯, 혹은 거무스름한 사암으로 된 바깥 층계가 가까이 있음이 콩브레에 관한 내 인상에 잿빛 배경을 드리워 주듯 그러했다. 하지만 그 안개는 낮 늦도록 이어지지는 않았다. 해가 먼저 그것을 향해 몇 가닥 화살을 헛되이 쏘아, 마침내 안개를 이겨 내기 전에 그것을 보석으로 흩뿌려 놓았다. 언덕은 제 희끗희끗한 궁둥이를 햇살에 드러낼 수 있었고, 그 햇살은 한 시간 뒤 내가 시내로 내려갔을 때, 가을 낙엽의 적갈색과 담벼락에 나붙은 선거 벽보의 빨강과 파랑에 어떤 고양감을 주어, 내 마음까지 들뜨게 하고, 노래를 부르며 걷는 나로 하여금 기쁨에 겨워 하마터면 공중으로 뛰어오를 뻔한 포석 위를 쿵쿵 구르게 했다.

그러나 그 첫날 밤을 지낸 뒤로는 호텔에서 잘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거기서 슬픔을 만나도록 정해져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숨쉴 수 없는 어떤 냄새 같아서, 내 온 생애 동안 새로운 침실마다, 다시 말해 모든 침실이 내게 풍겨 온 냄새였다. 내가 늘 쓰던 방에서는 내가 거기 있지 않았고, 내 마음은 딴 데 가 있었으며, 그 자리에는 그저 익숙함의 느낌만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나 나보다 덜 예민한 이 하인을, 내가 그보다 앞서 다다르는 곳, 나 홀로 도착하는 곳, 일 년에 한 번꼴로만 되찾되 언제나 똑같은 그 ‘자아’, 곧 콩브레 이래로, 발베크에 처음 도착하던 때 이래로, 풀지 않은 트렁크 가장자리에서 달랠 길 없이 울던 때 이래로 조금도 자라지 않은 그 ‘자아’를 그 환경과 맞닥뜨리게 해야 하는 새로운 곳에서, 내 대신 이것저것 챙기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이다. 나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으니, 한순간도 홀로 남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은 그 옛 궁전에서 남은 것이 있었으니, 곧 현대식 호텔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조와 장식의 남아도는 정교함이었는데, 그것은 어떤 실용적 목적에 봉사할 의무에서 풀려난 채 오랜 한가로움 속에서 일종의 생명을 얻고 있었다. 사방으로 굽이도는 복도들은 그 정처 없는 배회 속에 끊임없이 가로질러야 했고, 복도만큼이나 길고 응접실만큼이나 화려한 현관홀들은, 어느 집의 일부를 이룬다기보다 차라리 그 자체가 그곳에 사는 주민 같은 꼴이어서, 도무지 어느 방으로도 들어가 자리 잡히려 하지 않고 내 방 밖을 서성이다가 대뜸 다가와 제 벗을 자청했다. 그것들은 일종의 이웃, 한가롭되 결코 시끄럽지는 않은, 조용히만 지낸다면 손님에게 세놓은 방문 곁에 머물러도 좋다는 특권을 얻은 과거의 하인 유령들로서, 내가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말없는 정중함으로 나를 맞이했다. 요컨대 거처라는 관념, 그저 추위와 남의 시선으로부터만 우리를 가려 주는, 하루하루 우리 존재를 담는 상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념은 이 집에는 도무지 들어맞지 않았으니, 그것은 한 무리 사람들 못지않게 실재하는 방들의 모임으로서, 과연 소리 없이 살아가되, 우리가 들어설 때 만나야 하고 피해야 하고 알아주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어지럽히지 않으려 애썼고, 저 큰 응접실을, 아득한 18세기부터 낡은 금빛 벽걸이 사이에서 채색된 천장의 구름 아래 느긋이 몸을 뻗는 버릇이 든 그 응접실을, 경의 없이는 바라볼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칭이라곤 아랑곳없이 그 응접실을 빙 둘러싸고서 수없이 많고 놀란 듯하며 정원까지 어수선하게 달아나던 그 작은 방들, 부서진 세 계단만 내려가면 정원에 그토록 쉽게 이를 수 있던 그 방들에 대해 한층 더 개인적인 호기심에 사로잡혔다.

승강기를 타지 않고 나가거나 들어오고 싶을 때, 혹은 큰 계단에서 남의 눈에 띄고 싶지 않을 때면, 이제는 더 쓰이지 않는 더 작은 전용 계단이 그 층계를 내게 내밀었는데, 그 층계들이 어찌나 솜씨 있게, 하나가 다른 하나 바로 위에 놓여 배치되었는지, 그 층층의 단계에는, 빛깔과 향기와 맛에서 흔히 우리 안에 어떤 유별나고 감각적인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같은 종류의 완벽한 비례가 깃들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서 얻는 즐거움은, 예전에 알프스의 어느 요양지에 가서야 여느 때는 눈여겨보지 않던 그 행위, 곧 숨을 들이쉬는 행위가 끊임없는 기쁨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듯이, 여기 와서야 비로소 배워야 했던 것이다. 오랜 습관에 길들여진 것들만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는 그 수고의 면제를, 나는 그 층계에 처음으로 발을 디디는 순간 받았으니, 알기도 전에 이미 낯익은 그 층계들은, 마치 지난날 그것들이 날마다 맞이하던 옛 주인들이 거기 얹어 놓았거나 어쩌면 그 안에 깃들여 놓기라도 한 듯, 내가 아직 들이지 않은, 정작 내 것이 되고 나면 도리어 약해지기만 할 그런 습관들의 앞당겨진 매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어느 방을 들여다보았다. 이중의 문이 내 뒤에서 저절로 닫혔고, 벽걸이가 어떤 정적을 들여보내니, 나는 그 속에서 일종의 신명 나는 왕권을 두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대리석 벽난로 선반은 두들겨 만든 놋쇠 장식을 두르고 있었는데(그 유일한 착상이 총재정부 양식을 나타내는 데 있었다고 여긴다면 잘못이리라), 그것은 내게 불을 내주었고, 다리 짧은 자그마한 안락의자 하나가 마치 난롯가 깔개에 앉기라도 한 듯 편안히 몸을 덥히도록 나를 도와주었다. 벽들은 이 방을 세상 나머지로부터 갈라놓으며 꼭 끌어안고 있다가, 이 방을 온전하게 채우는 것을 들이고 감싸기 위해 좌우로 갈라져 책장에 자리를 내주고 침대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니, 침대 양옆에서는 기둥 하나씩이 벽감(壁龕)의 돋운 천장을 사뿐히 떠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방은 저만큼이나 큰 두 벽장으로 안쪽 깊이 이어졌는데, 그중 뒤엣것은 벽에 붓꽃 뿌리로 엮은 관능적인 향낭(香囊) 꾸러미를 걸어 두어, 거기에 볼일을 볼 때면 그 순간에 향기를 더해 주었다. 내가 이 가장 깊숙한 은신처로 물러날 때 문들을 열어 두면, 그 문들은 방의 균형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그 넓이를 세 곱절로 늘려 줄 뿐 아니라, 내 눈으로 하여금 응축된 뒤에 오는 확장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었고, 게다가 여전히 침범할 수 없으면서도 이제는 갇혀 있지 않은 내 고독의 즐거움에 자유의 느낌마저 보태 주었다. 이 벽장은 어느 안뜰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리따운 외톨이 낯선 이여서, 이튿날 아침 내 눈길이 그녀에게 닿았을 때 나는 그녀를 이웃으로 두게 되어 기뻤으니, 그녀는 다른 창이라곤 하나도 열려 있지 않은 높은 벽들 사이에 갇힌 채, 위쪽 맑은 하늘에 발그레한 부드러움을 주기에 넉넉한 누렇게 물든 나무 두 그루만을 지니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는 방을 나서서 나의 요정 왕국 전체를 탐험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긴 회랑을 걸어 내려갔는데, 그 회랑은 잠이 오지 않을 때 내게 내어 줄 수 있는 온갖 것으로 차례차례 나를 대접했다. 구석에 놓여 기다리는 안락의자, 벽에 붙인 탁자 위의 스피넷, 시네라리아를 가득 담은 푸른 도자기 사발, 그리고 낡은 액자 속에서 분을 바른 머리에 푸른 꽃을 별처럼 뿌리고 손에 카네이션 한 다발을 쥔 채 서 있는, 아득한 옛날 어느 부인의 환영. 끝에 이르렀을 때, 문 하나 나 있지 않은 맨 벽은 내게 그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돌아서서 되돌아가야 해요. 하지만 보다시피 여기가 당신 집이랍니다. 이 집은 당신 것이에요.” 한편 부드러운 양탄자는 자기도 빠질세라, 그날 밤 내가 잠들지 못하면 얼마든지 맨발로 들어와도 좋다고 덧붙였고, 덧문 없는 창들은 탁 트인 들판을 내다보며, 자기들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터이니 내가 몇 시에 들어오기로 하든 누구를 깨울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장담했다. 그리고 드리운 커튼 뒤에서 나는 겨우 작은 벽장 하나를 놀라게 했을 뿐인데, 그 벽장은 벽에 가로막혀 더는 달아나지 못한 채 죄지은 사람처럼 거기 숨어서, 달빛에 푸르게 빛나는 작고 둥근 창으로 나를 겁먹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오리털 이불과 기둥들과 말끔한 벽난로의 존재가 파리에서보다 한층 팽팽하게 내 주의를 곤두세워, 늘 하던 공상의 흐름에 나를 내맡기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우리의 잠을 감싸고 그것에 작용하며 그것을 변형시켜 이러저러한 지난 인상들의 계열에 맞추어 정렬시키는 것이 바로 이 팽팽한 주의의 특수한 상태이므로, 그 첫날 밤 내 꿈을 채운 이미지들은 내가 늘 길어 올리던 기억과는 전혀 다른 기억에서 빌려 온 것이었다. 만약 잠든 사이 내가 여느 때의 회상의 물결에 도로 실려 가고 싶은 유혹에 빠졌더라도, 익숙지 않은 침대와, 몸을 뒤척일 때 내 여러 팔다리의 위치에 기울여야 했던 그 성가신 주의만으로도 내 착오를 바로잡고, 새로운 꿈의 실타래를 풀어 계속 이어 가게 하기에 충분했다. 잠도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과 마찬가지다. 그것을 시적으로 만드는 데는 우리 습관의 변화 하나면 족하니, 옷을 벗다가 무심코 침대 위에서 깜빡 졸기만 해도 우리 꿈나라의 크기가 달라지고 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다. 우리는 깨어나 시계를 보고 “네 시”임을 확인한다. 겨우 새벽 네 시일 뿐이지만, 우리는 하루가 통째로 지나갔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구하지도 않은 이 몇 분간의 선잠이, 무슨 신성한 권리라도 지닌 듯, 황제의 황금 보주처럼 그토록 풍만하고 광대하게, 하늘에서 우리에게 내려온 것만 같기 때문이다. 아침이면, 할아버지가 채비를 마치고 메제글리즈 쪽으로 산책을 나서려고 나를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애를 태우다가, 나는 날마다 내 창 밑을 지나가는 연대 군악대의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깨곤 했다. 그러나 몇 번은, 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밤마다 인간의 삶을 에워싸는 잠, 곶이 바다에 둘려 있듯 그것을 감싸고도는 그 잠에 흠뻑 잠긴 모습을 보여 주지 않고서는 인간의 삶을 온전히 그려 낼 수 없기 때문인데, 그 사이에 낀 잠의 층이 음악의 충격을 견뎌 낼 만큼 두꺼워서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다른 아침이면 그 층이 잠시 허물어졌다. 그러나 잘 잔 뒤의 상쾌함으로 아직 보드라운 내 의식은, (국소 마취 후, 처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맨 마지막에야 희미하게 화끈거리는 통증으로 소작(燒灼)을 감지하는 그런 기관들처럼) 피리의 날카로운 끝이 어렴풋하고 서늘한 아침의 지저귐으로 어루만지듯 스칠 때에만 가만히 건드려졌을 뿐이다. 그리고 침묵이 음악으로 바뀐 이 짧은 중단이 지나면, 용기병들이 채 다 지나가기도 전에 내 의식은 다시 잠 속으로 빠져들어, 반짝이며 요란하게 울리는 그 꽃다발에서 갓 벌어지는 마지막 꽃봉오리들을 내게서 앗아 갔다. 그리고 그 돋아나는 줄기들이 스치고 간 내 의식의 지대는 어찌나 좁고 잠으로 어찌나 둘러싸여 있었던지, 훗날 생루가 내게 군악대 소리를 들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 금관악기 소리가, 낮에 아주 작은 소음 뒤에 마을의 포석 깔린 거리에서 메아리쳐 들려오던 그 소리만큼이나 환청이 아니었다고 더는 장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는 그 소리를 꿈속에서만 들었는지도 모른다. 잠에서 깰까 봐, 아니면 깨지 못해 연대가 행진해 지나가는 것을 보지 못할까 봐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꿈속에서. 이따금, 오히려 그 소음이 나를 깨우리라 여기던 바로 그 순간에 아직 잠들어 있을 때면, 나는 그 뒤 한 시간 동안 여전히 선잠에 든 채 깨어 있다고 상상하며, 잠이 내게서 앗아 간 여러 장면을, 나 자신은 그것을 지켜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채, 잠의 스크린 위에 희미한 그림자 형상으로 스스로에게 상연해 보이곤 했다.

낮 동안 하려고 마음먹었던 일을, 결국 잠이 끼어드는 바람에, 우리는 꿈속에서야 이룬다. 다시 말해, 깨어 있을 때라면 택했을 것과는 다른 노선을 따르도록 잠이 그 일을 뒤틀어 놓은 뒤에야 말이다. 같은 이야기가 곁가지로 갈라져 다른 결말에 이른다. 요컨대 우리가 잠들어 있을 때 사는 세계는 너무나 달라서,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깨어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몇 시간이고 눈을 감은 채 필사적으로, 눈을 뜨고 있을 때 했을 법한 것과 비슷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또 굴리다가, 문득 방금 지나간 순간이 사고의 법칙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논변의 무게에 눌려 느릿느릿 기어가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고서 다시 기운을 낸다. 그리고 이를 깨닫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리키는 그 짧은 ‘부재’는, 이제 문이 열렸다는 표시다. 그 문을 지나 그들은 아마 곧 현실의 지각에서 빠져나와, 저편의 다소 멀리 떨어진 안식처로 나아갈 수 있을 터이고, 그것은 그들이 다소 ‘좋은’ 밤을 보내게 되리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 등을 돌릴 때, 마녀들이 그러하듯 ‘자기암시’가 상상의 병이나 신경 질환의 재발이라는 지옥의 탕약을 고아 대는 그 동굴에 다다라, 우리가 의식 없이 잠든 사이 쌓여 온 폭풍우가 잠을 그치게 할 만큼 거센 힘으로 터질 시각을 기다릴 때, 우리는 이미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비밀의 정원이 있어, 서로 그토록 다른 갖가지 잠이 기이한 꽃처럼 자라난다. 다투라가 부르는 잠, 여러 에테르 추출물이 부르는 잠, 벨라도나와 아편과 쥐오줌풀의 잠, 그 꽃들은 예정된 방문객이 찾아와 손을 대며 열리라 명하는 날까지 꽃잎을 다물고 있다가, 그러면 오랜 시간 동안 제 특유의 꿈의 향기를, 경탄하며 어리둥절해하는 한 존재 속으로 들이마신다. 정원 끝에는 창을 활짝 열어젖힌 수도원이 서 있고, 그 창을 통해 우리는 잠들기 전에 외운 과업을 되뇌는 목소리들을 듣는데, 그것은 우리가 깨어나는 순간에야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한편 그 순간을 예고하듯, 우리의 근심이 어찌나 정확히 맞추어 놓았던지 가정부가 들어와 “일곱 시예요” 하고 알릴 때 우리가 이미 깨어 채비를 마치고 있게 하는 그 내면의 자명종이 낭랑하게 째깍인다. 우리의 꿈으로 열리는 그 방의 어스레한 벽에는, 그 안에서 사랑의 슬픔에 대한 저 망각이 쉼 없이 애쓰고 있으니, 회상으로 가득 부푼 악몽에 때때로 중단되고 허사가 되면서도 그 일은 언제나 어느새 다시 시작되는데, 그 벽에는 우리가 깨어난 뒤에도 꿈의 기억들이 걸려 있으나, 어찌나 짙게 그늘져 있는지, 흔히 우리는 오후의 환한 빛 속에서, 비슷한 어떤 생각의 광선이 우연히 그것들을 비출 때에야 비로소 처음으로 그것들을 언뜻 보게 된다. 그중 어떤 것은 우리가 자는 동안에는 찬란하고 조화로웠으나 이미 너무 일그러져 있어서, 그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우리는 서둘러, 너무 빨리 썩어 버린 시신처럼, 또는 너무 심하게 상해 거의 먼지로 부스러지려 하는 유물처럼, 그것을 땅에 묻어 버릴 수밖에 없으니, 제아무리 솜씨 좋은 복원가라도 그것들을 본래 형태로 되돌리거나 거기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지 못하리라. 문 가까이에는 채석장이 있어, 우리의 더 무거운 잠이 그리로 가서, 뇌를 어찌나 깨뜨릴 수 없는 유약으로 덮어 버리는지 잠든 이를 깨우려면 그 자신의 의지가, 황금빛 아침에조차, 젊은 지크프리트처럼 그를 힘껏 내리쳐야만 하는 그런 물질들을 캐낸다. 다시 그 너머에는 악몽들이 있으니, 의사들은 어리석게도 그것이 불면보다 우리를 더 지치게 한다고 단언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악몽은 사색하는 이가 사고의 긴장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그 악몽들은 환상적인 그림책을 지녀, 그 안에서는 이미 죽은 우리 친척들이 큰 사고를 당하면서도 동시에 곧 회복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때까지 우리는 그들을 작은 쥐 우리에 가두어 두는데, 거기서 그들은 흰 생쥐보다도 작고, 커다란 붉은 반점으로 뒤덮여 그 하나하나에서 깃털이 돋아난 채, 우리와 키케로식 대화를 나눈다. 이 그림책 옆에는 각성의 회전판이 있어, 그 덕분에 우리는 한순간, 오십 년 전에 헐린 집으로 당장 되돌아가야 하는 지루함을 감수하는데, 그 집의 기억은 잠이 멀어질수록 다른 여러 기억에 밀려 차츰 지워지다가, 마침내 그 회전판이 돌기를 멈췄을 때에만 내놓는, 눈을 뜨고 보게 될 것과 일치하는 그 기억에 이르게 된다.

때로는 나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으니, 우리가 구덩이에 빠지듯 빠져들었다가 조금 뒤에 무겁고 배부르게, (어린 헤라클레스를 먹여 기른 님프들이 그러했듯) 잠자는 동안 활동이 갑절로 왕성해지는 그 날쌘 식물성 힘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모든 것을 소화하며, 진심으로 기꺼이 끌려 올라오게 되는 그런 잠 가운데 하나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잠은 ‘납처럼 잔다’고 일컬어지며, 그런 잠이 끝난 뒤 몇 순간 동안은 자기 자신이 그저 한 덩어리 납의 형상이 되어 버려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이제 더는 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제 정신을, 제 인격을 더듬어 찾을 때, 우리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제 자신을 되찾는 것일까? 어째서 다시 생각하기 시작할 때, 어제의 인격이 아닌 다른 인격이 우리 안에 육화되지 않는 것일까? 무엇이 그 선택을 좌우하는지, 어째서 우리가 될 수도 있었을 수백만 인간 가운데, 하필이면 간밤에 우리였던 바로 그 사람에게 어김없이 손을 얹게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실제로 단절이 있었을 때, 우리의 무의식이 완전했든 우리의 꿈이 우리 자신과 전혀 달랐든 간에, 무엇이 우리를 인도하는 것일까? 심장이 멈췄다가 혀의 규칙적인 마찰이 우리를 되살릴 때처럼, 그야말로 죽음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방은, 설령 우리가 그 전에 단 한 번밖에 본 적이 없더라도, 더 오래된 다른 기억들이 매달려 있는 기억들을 일깨운다. 아니면 우리 안에 잠들어 있던 어떤 기억들이 있어, 이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것일까? 잠이라는 그 치유의 정신착란 발작이 지난 뒤 우리가 깨어날 때의 부활은, 결국 우리가 잊었던 이름 하나, 시구 하나, 후렴 하나를 되찾을 때 일어나는 것과 비슷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어쩌면 죽음 뒤 영혼의 부활도 기억의 한 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할는지 모른다.

잠을 다 자고 나면, 그토록 환하고 그토록 차가운, 겨울이 시작되는 그 늦가을 아침의, 잎이 이제 금빛이나 장밋빛 몇 가닥 붓질로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 위 허공에 남겨진 듯한 나무들을 일어나 바라보고 싶은, 햇살 가득한 하늘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그 냉기에 주춤한 채, 나는 베개에서 머리를 들고 목을 늘였으나 몸은 여전히 이불 속에 감춘 채였다. 변태 중인 번데기처럼 나는 이중의 존재여서, 그 서로 다른 부분들에 하나의 환경이 똑같이 들어맞지는 않았다. 내 눈에는 온기 없이 색만으로 충분했으나, 반대로 내 가슴은 색이 아니라 온기를 갈망했다. 나는 불이 지펴진 뒤에야 일어나, 이제 인공적인 방편으로 부족한 온기의 요소를 더해 넣은, 그토록 섬세하고 투명한 분홍빛 금빛 아침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좋은 파이프처럼 타오르며 연기를 내는 불을 쑤셔 댔으니, 그 불은 파이프가 그러하듯 내게, 물질적 안락에 바탕을 둔 까닭에 조야하면서도 그 너머에 순수한 환영이 찍혀 있는 까닭에 섬세한, 그런 즐거움을 주었다. 내 화장실 벽은 격렬한 붉은 바탕에 검고 흰 꽃무늬가 놓인 벽지로 덮여 있었는데, 나로서는 그것에 익숙해지기가 자못 어려울 성싶었다. 그러나 그 무늬는 다만 내게 새롭게 다가와, 나를 그것과 다툼이 아니라 접촉으로 이끌고, 내 아침 몸단장의 흥겨움과 노래에 가락을 입힐 뿐이었으며, 결국 나를 일종의 양귀비꽃 한복판에 가두었을 뿐이니, 나는 그 속에서, 파리에서와는 사뭇 다르게 보이는 세상을, 이 새 거처인 그 명랑한 병풍을, 부모님 집과는 다른 모습이며 한결 맑은 공기가 흘러드는 그 세상을 내다보았다. 어떤 날에는 할머니를 다시 뵙고 싶은 마음에, 또는 할머니가 편찮으실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마음이 어지러웠고, 또 어떤 때는 파리에 반쯤 하다 만 채 남겨 두고 온, 도무지 진척이 없는 듯한 어떤 일의 기억이, 때로는 여기서마저 나도 모르게 얽혀들고 만 어떤 곤경이 나를 뒤흔들었다. 이런저런 이 근심들 가운데 하나가 나를 잠 못 이루게 했고, 나는 한순간에 내 존재 전체를 가득 채우도록 커져 버린 슬픔을 마주할 기력이 없었다. 그러면 나는 호텔에서 병영으로 심부름꾼을 보내 생루에게 몇 자 적어 부쳤다. 물리적으로 가능하다면, 나는 그것이 그에게 몹시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잠깐만이라도 들러 준다면 더없이 고맙겠다고 적었다. 한 시간 뒤 그가 왔다. 그리고 문에서 그가 초인종 누르는 소리를 듣자 나는 내 강박에서 풀려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것들이 나보다 강하더라도 그는 그것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알았고, 내 주의는 그것들에서 벗어나 그것들을 해결해 줄 그에게로 쏠렸다. 그가 방에 들어섰을 때, 그는 이미, 동트기 전부터 그토록 활발히 움직이며 뿜어내던 그 신선한 바람의 물결로 나를 감쌌으니, 내 방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그 생기 넘치는 공기에 나는 알맞은 반응으로 이내 적응했다.

“귀찮게 해서 화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자네도 짐작했겠지만, 나를 괴롭히는 일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전혀. 그냥 나를 보고 싶어 하는 줄 알았고, 아주 반가웠어. 자네가 사람을 보내 줘서 기뻤다니까. 그런데 무슨 일이야? 일이 잘 안 풀려?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

그는 내 설명을 듣고 신중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나 한마디 꺼내기도 전에 그는 이미 나를 제 모습으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그를 그토록 바쁘고 그토록 생기 있고 그토록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일들에 견주니, 조금 전만 해도 한순간도 더 견딜 수 없던 그 근심들이, 그에게 그러하듯 내게도 하찮게 여겨졌다. 나는 며칠째 눈을 뜨지 못하다가 의사를 부른 사람 같았다. 의사가 능란하고 부드럽게 눈꺼풀을 들어 올려 그 밑에서 모래 한 알을 끄집어내 보여 주니, 환자는 낫고 마음이 놓인다. 내 온갖 걱정거리는 생루가 부쳐 주기로 한 전보 한 통으로 다 풀렸다. 삶이 내게 그토록 다르게, 그토록 흐뭇하게 여겨졌다. 나는 넘치도록 밀려드는 힘에 잠겨, 무언가 하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자넨 이제 뭘 하나?” 내가 그에게 물었다.

“미안하지만 이만 가 봐야겠어. 사십오 분 뒤에 행군 훈련이 있어서, 나도 사열에 나가야 하거든.”

“그럼 여기 오느라 자네한테 큰 폐가 됐겠군?”

“아니, 조금도 폐될 것 없어. 대위가 아주 너그럽게 봐줬거든. 자네 일이라면 당장 가 보라고 했다니까.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특혜를 남용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싫어서 말이야.”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