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내가 얼른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자네가 훈련하는 데로 혼자 찾아간다면, 나로선 무척 흥미로울 테고, 쉬는 틈틈이 자네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건 권하고 싶지 않은데. 자넨 밤새 잠 못 이루며,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중요하지 않은 일로 골머리를 앓았잖아. 그런데 이제 그 걱정이 가셨으니, 베개에 머리를 뉘고 한잠 자라고. 그게 자네 신경세포의 탈무기질에 더없이 좋은 해독제가 될 테니까. 다만 너무 일찍 잠들면 안 돼. 우리 군악대 애들이 자네 창 밑을 지날 테니 말이야. 하지만 그 애들이 지나가고 나면 편히 있게 될 거야. 그리고 오늘 저녁 만찬에서 다시 보세.”
그러나 이내 나는, 생루의 벗들이 만찬 자리에서 늘어놓던 군사 이론에 흥미를 붙이기 시작하고, 또 그들의 여러 지휘관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이 내 삶의 으뜸가는 바람이 되면서, 야전 훈련을 받는 연대를 보러 줄곧 다니게 되었다. 마치 음악을 주업으로 삼아 평생을 연주회장에서 보내는 사람이, 관현악단원들의 삶과 어우러지는 카페에 드나드는 데서 즐거움을 찾듯이. 훈련장에 이르려면 나는 엄청나게 먼 길을 걸어야 했다. 저녁 만찬 뒤에는 졸음이 밀려와 이따금 기절하듯 고개가 뚝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나는, 발베크에서 생루가 나를 리브벨로 데려가 만찬을 든 저녁 다음 날 해변의 연주회를 듣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군악대 소리를 더는 듣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어나려던 순간 나는 일어설 수 없는 감미로운 느낌에 젖었다. 나는 (피로가 그 존재를 일깨워 준) 근육과 자양의 뿌리들의 이음매로써, 깊고 보이지 않는 땅에 붙들려 있음을 느꼈다. 나는 온몸에 힘이 가득함을 느꼈고, 삶이 내 앞에 한결 넉넉하게 펼쳐지는 듯했다. 이는 내가 콩브레에서 어린 시절, 게르망트 쪽으로 산책을 다녀온 다음 날 아침의 그 흐뭇한 피로로 되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시인들은 우리가 젊은 시절 살던 어느 집이나 정원에 들어설 때 오래전의 자아를 한순간 되찾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더없이 위태로운 순례여서, 성공만큼이나 자주 실망으로 끝난다. 서로 다른 시절과 함께한 그 고정된 장소들은, 오히려 우리 자신 안에서 찾아야 마땅하다. 어느 정도까지는 여기에, 큰 탈진에 뒤이은 하룻밤의 푹 잔 휴식이 주는 이점이 있다. 우리를 잠의 가장 깊은 지하 회랑으로 내려가게 하는 푹 잔 밤은, 간밤의 어떤 상념도, 어떤 기억의 미광도 내면의 독백을 (그것 또한 그치지 않는 한) 밝히러 오지 않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 우리 몸의 흙을 어찌나 효과적으로 갈아엎고 표면의 돌을 뚫어 놓는지,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의 근육이 잠겨 들어 뒤틀린 뿌리를 뻗고 새 삶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그곳에서, 어릴 적 우리가 뛰놀던 정원을 발견한다. 그것을 다시 보려고 여행할 필요는 없다. 그것을 찾아내려면 우리 안으로 깊이 파 내려가야 한다. 한때 땅을 덮고 있던 것은 이제 그 위가 아니라 그 아래에 있으니, 그저 한 번 나들이한다고 해서 죽은 도시를 찾아보기에 넉넉하지 않고, 발굴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보게 되리라, 어떤 인상들이, 덧없고 우연한 인상들이, 이런 유기체의 어긋남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더 섬세한 정밀함으로, 더 가볍게 날아, 더 비물질적으로, 더 곤두박질치듯, 더 어김없이, 더 불멸하게 우리를 과거로 데려가는지를.
때로는 내 탈진이 한층 더 심했다. 잠자리에 들 겨를도 없이 나는 며칠씩 내리 훈련을 뒤따라다녔던 것이다. 그러니 호텔로 돌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지! 침대에 기어들 때면 나는 마침내 마법사들의, 우리 조상들이 17세기에 즐겨 읽던 ‘기사담’ 속에 사는 그런 요술쟁이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것만 같았다. 그날 밤의 내 잠과 뒤이은 나른한 아침은 한낱 매혹적인 동화에 지나지 않았다. 매혹적이며, 어쩌면 이롭기도 한. 나는 가장 모진 고통에도 그 피난처가 있으며, 다른 모든 것이 틀어졌을 때에도 우리는 언제나 안식을 찾을 수 있음을 스스로에게 되새겼다. 이런 생각들이 나를 멀리까지 데려갔다.
사열이 없더라도 생루가 병영에 남아 있어야 하는 날이면, 나는 자주 그를 찾아가곤 했다. 먼 길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고가교를 건너야 했는데, 그 양편으로 광대한 경치가 펼쳐졌다. 이 높은 지대에는 거의 언제나 거센 바람이 불어, 병영 연병장의 세 면에 세워진 온 건물을 채우며 바람의 동굴처럼 쉼 없이 울부짖었다. 로베르가 이런저런 임무에 매여 있는 동안, 나는 그의 방문 밖이나 식당에서, 그가 내게 소개해 준 (그리고 훗날 그가 자리에 없을 때에도 이따금 찾아보게 된) 몇몇 벗과 이야기하며 그를 기다렸다. 창에서 삼백 척 아래 시골을 굽어보면, 이제 헐벗은 그 들판은 최근에 씨를 뿌린 밭, 흔히 아직 비에 젖어 햇빛에 반짝이는 밭에서만 에나멜처럼 찬란하고 투명하게 맑은 초록빛 몇 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다른 이들이 그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고, 이내 그가 얼마나 인기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다른 기병 중대에 속한 여러 지원병, 부유한 사업가나 전문직의 아들들로서 상류 귀족 사회를 그 울타리 안으로 파고들지 못한 채 바깥에서만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생루의 성품에 대해 그들이 아는 바에 자연히 끌리는 마음이, 토요일 저녁 파리로 외출 나갔을 때 카페 드 라 페에서 위제스 공작과 오를레앙 대공과 어울려 밤참을 드는 것을 본 그 젊은이에게 그들의 눈에 붙는 격조로 한층 더 짙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의 잘생긴 얼굴, 무심한 걸음걸이와 장교들에게 경례하는 태도, 끊임없이 흔들리는 외알 안경, 군복 재단에 드러난 멋 부림, 늘 지나치게 높은 군모, 지나치게 고운 천에 지나치게 분홍빛이 도는 승마바지에, 연대에서 가장 잘 차려입은 장교들에게조차, 심지어 내가 병영에서 잘 특혜를 신세 진 그 위풍당당한 대위, 그에 견주면 지나치게 거만하고 거의 촌스러워 보이던 그 대위에게조차 없다고 그들이 굳게 믿는 어떤 ‘품격’의 관념을 불어넣었다.
그중 하나가 대위가 새 말을 한 마리 샀다고 했다. “말이야 사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사겠지. 나는 일요일 아침에 아카시아 가로수길에서 생루를 지나쳤는데, 그 친구야말로 말 위에서 폼이 나던걸!” 하고 동료가 대꾸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으니, 이 젊은이들은, 비록 같은 집에 드나들거나 같은 사람들을 알지는 못해도, 돈과 여가 덕분에, 돈으로 살 수 있는 온갖 세련된 생활을 누리는 경험에서는 귀족과 다를 바 없는 계급에 속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의 세련됨은, 이를테면 옷차림에서, 할머니가 생루에게서 그토록 마음에 들어 하던 그 자유롭고 무심한 무던함보다 무언가 더 공들이고 더 흠잡을 데 없는 구석이 있었다. 이 큰 증권 중개인이나 은행가의 아들들은 연극이 끝난 뒤 굴을 까먹고 앉아 옆 탁자에서 생루 하사를 보는 것만으로도 자못 짜릿함을 느꼈다. 그리고 월요일 밤 병영에서는, 주말 휴가를 다녀온 뒤, 로베르의 기병 중대에 있던 한 친구가 로베르가 자기에게 “아주 정중히” 안부를 건넸다는 이야기를 얼마나 늘어놓았던지! 한편 같은 중대가 아닌 다른 친구는, 그런데도 생루가 자기를 알아보았다고 자신만만해했으니, 두세 번이나 그가 외알 안경을 치켜올리고 말하는 이 쪽을 빤히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 우리 형이 라 페에서 그를 봤다는데,” 하고 그날 하루를 정부와 보낸 또 다른 친구가 말했다. “우리 형 말로는 그 친구 예복 상의가 너무 헐렁하게 재단돼서 몸에 안 맞더라는 거야.”
“조끼는 어땠는데?”
“흰 조끼가 아니었어. 자줏빛에 야자수 무늬 같은 게 들어간 거였는데, 죽여주더라니까!”
‘고참병들’(자키 클럽이라고는 들어 본 적도 없이, 생루를 그저 초부유층 부사관 부류에 넣어 버리는 흙의 아들들, 그 부류에는 파산했든 안 했든 일정한 격식을 갖추어 살며 수입이나 빚이 몇 자릿수에 이르고 부하들에게 후한 이들이 죄다 들어갔다)에게는, 생루의 걸음걸이며 외알 안경이며 승마바지며 군모가, 설령 거기서 딱히 귀족적인 무엇을 보지는 못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흥미와 의미를 안겨 주었다. 그들은 그런 별난 점들에서, 연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이 ‘계급장’에게 진작에 영영 부여해 둔 성격을, 그 풍모를 알아보았으니, 누구와도 다른 몸가짐, 상관들이 어찌 여기든 아랑곳하지 않는 오만한 무관심, 그것을 그들은 그가 부하들에게 베푸는 다정함의 자연스러운 귀결로 여겼다. 매점에서 마시는 아침 커피 한 잔, 오후에 내무반에서 취하는 ‘휴식’이, 어쩐지 더 즐겁게 느껴졌으니, 어느 고참병이 생루가 사열에 쓰고 나온 어떤 군모에 관해, 배고프고 나른한 분대에 구수한 이야깃거리 한 토막을 먹여 줄 때가 그러했다.
“그게 내 배낭 높이만 했다니까.”
“에이, 이 친구야, 그걸 믿으라는 거야. 자네 배낭 높이만 했을 리가 없잖아.” 하고 한 젊은 대학 졸업자가 끼어들었는데, 그는 이런 은어를 써서 ‘유식한 거지’로 보이지 않으려 했고, 또 이렇게 딴지를 걸어,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그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아, 그래, 내 배낭 높이가 아니었단 말이지? 자네가 재 봤다 이거야! 내 이것만은 말해 두지, 부대장이 그걸 노려보는데 마치 영창에 처넣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니까. 그래도 위대하신 생루가 주눅 들었으리라고는 생각도 마. 천만에, 갔다가 왔다가,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그 반짝이는 안경알을 눈에 딱 박은 채로 말이야. 그 ‘대위 나으리’가 이 얘길 들으면 뭐라고 할지 두고 보자고. 아, 아마 아무 말도 안 하겠지, 하지만 심기가 편치 않으리라는 건 장담해도 좋아. 그래도 그깟 군모가 뭐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 듣자 하니 집에, 그 양반 시내 저택에 그런 게 서른 개도 넘게 있다더군.”
“그건 어디서 들었나, 이 친구야? 우리 그 빌어먹을 개 같은 상병한테서?” 하고 그 젊은 졸업자가 물었는데, 그는 최근에야 익힌 새로운 말투를 현학적으로 뽐내며 그것으로 제 이야기를 장식하는 것을 자랑거리로 삼았다.
“내가 그걸 어디서 들었냐고? 그 양반 당번병한테서지, 뭐긴 뭐야?”
“아!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그 친구야말로 제 팔자 좋은 줄 아는 놈이지!”
“그렇고말고! 그 친구는 나보다 주머니 사정이 나은 게 틀림없어! 게다가 그 양반이 자기 물건이며 뭐며 죄다 그 친구한테 준다잖아. 밥을 제대로 못 얻어먹더라나. 그러니까 드 생루가 나서서 취사병한테 불호령을 내렸다는 거야. ‘이 사람 잘 먹여, 알겠나,’ 그러면서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어’ 하고 말이야.”
그 고참병은 인용한 말이 시시한 것을 어조의 힘으로 벌충했으니, 화자를 어설프게 흉내 낸 그 시늉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병영을 나서면 나는 한 바퀴 거닐다가, 날마다 그러하듯 생루와 그의 벗들이 식당을 차린 호텔로 저녁을 들러 가기 전까지 시간을 메우려고, 해가 지자마자 두어 시간 쉬며 책을 읽으려고 내 호텔로 향했다. 광장에서는 저녁 빛이 성의 후추통 모양 작은 탑들을 벽돌 빛깔과 어우러지는 작은 분홍 구름으로 단장하고는, 벽돌이 잠긴 자리에서 그 색조를 부드럽게 누그러뜨려 조화를 완성했다. 어찌나 강한 생기의 물결이 내 신경을 타고 흘렀던지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그것을 다 소진할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포석을 딛고 나면 거기서 튕겨 올랐다. 나는 두 발꿈치에 메르쿠리우스의 날개가 돋은 듯했다. 분수 하나는 붉은 노을빛으로 가득 찼고, 다른 하나에서는 달빛이 벌써 물을 유백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아이들이 뛰놀며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고, 칼새나 박쥐처럼 시각의 어떤 필연에 따르듯 원을 그리며 맴돌았다. 호텔 옆, 옛 국립 법원과 루이 16세 양식의 오렌지 온실은, 이제 그 안에 저축은행과 군단 사령부가 들어서 있었는데, 안쪽에서 가스등의 희미하게 도금된 등불로 밝혀져 있어, 아직 환한 바깥 대낮 속에서 보니, 지는 해의 마지막 빛살이 아직 떠나지 않은 그 드높고 널따란 18세기의 창들에, 마치 연지로 도드라진 얼굴빛에 노란 대모갑 머리 장식이 어울리듯 잘 어울렸고, 나로 하여금 내 난롯가와 등불을 찾아 나서게 했으니, 그 등불은 내 호텔의 그늘진 정면에서 홀로, 짙어 가는 어둠에 맞서려 애쓰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위해,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입맛 돋우는 식사를 마주하듯 즐거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었을 때 나는 밖에서 느꼈던 것과 똑같은 충만한 감각을 간직했다. 그것은 여느 때라면 밋밋하고 텅 비어 보이는 것들에, 불의 노란 불꽃에, 지는 해가 마치 붉은 분필을 쥔 학생처럼 나선과 소용돌이를 갈겨 놓은 천장의 거친 파란 종이에, 나를 위해 한 연의 글쓰기 종이와 잉크병이, 베르고트의 소설 한 권과 함께 놓여 있던 둥근 탁자의 기묘한 무늬 천에, 그토록 도드라진 볼록함을 안겨 주어, 그 뒤로 줄곧 이것들은 내게, 만약 다시 그것들에 눈길을 둘 수만 있다면 능히 거기서 뽑아낼 수 있으리라 느껴지는 어떤 온전한 존재의 형식으로 풍요로워진 듯 보였다. 나는 방금 떠나온 병영과, 바람이 불 때마다 도는 그 풍향계를 기쁘게 떠올렸다. 물 위로 솟은 관으로 숨 쉬는 잠수부처럼, 나는 저 병영을, 초록 에나멜의 운하들로 고랑진 시골을 굽어보는 저 우뚝한 관측대를 미끼 삼아 두는 동안, 어떤 의미에서 건강하고 탁 트인 야외의 삶과 접촉을 이어 가고 있다고 느꼈으니, 그 여러 건물로 내가 원할 때면 언제든 드나들 자유를, 언제나 반겨 주리라 믿으며, 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특권으로 여겼고 그것이 오래가기를 바랐다.
일곱 시에 나는 옷을 차려입고 다시 나가 생루가 끼니를 드는 호텔로 저녁을 들러 갔다. 나는 거기까지 걸어가는 것이 좋았다. 이제 칠흑같이 어두웠고, 내가 머문 지 사흘째 되던 날부터는 밤이 내리자마자 눈을 예고하는 듯한 차디찬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나는, 엄밀히 말하면 한순간도 게르망트 부인을 생각하기를 그쳐서는 안 되었으니, 오직 그녀에게 좀 더 다가가려고 로베르의 주둔지를 찾아온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추억도, 슬픔도 덧없는 것이다. 그것들이 어찌나 멀리 물러나는지 우리가 그것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그것들이 영영 가 버렸다고 여기는 날들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다른 것들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이 마을의 거리들은 아직 내게, 사람이 익숙하게 사는 곳의 거리, 곧 한 구역과 다른 구역을 잇는 단순한 통행 수단이 되어 있지 않았다. 이 낯선 세계 주민들의 삶은, 내가 보기에, 놀라운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흔히 어느 살림집의 불 밝힌 창은, 내가 발 들일 수 없는 어떤 삶의 실제이면서도 신비로운 장면을 내 눈앞에 펼쳐 보이며, 나를 어둠 속에 오래도록 꼼짝없이 세워 두었다. 여기서는 불의 정령이 내게 자줏빛으로, 밤톨 장수의 좌판을 펼쳐 보였으니, 그 안에서 하사 둘이 허리띠를 의자 등받이에 걸쳐 놓은 채 카드놀이를 하며, 마법사의 지팡이가 자기들을 밤에서 끌어내어, 무대 위 투명화(透明畵)처럼, 바로 그 순간 자기들 참모습 그대로, 자기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느 발길 멈춘 행인의 눈앞에 내보이고 있음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작은 골동품 가게에서는, 초 하나가 거의 다 타 내려 그 따스한 빛을 판화 위로 던지며 그것을 붉은 크레용화로 다시 찍어 내고 있었고, 한편 어둠에 맞서며 큰 등불의 빛은 가죽 한 조각을 무두질하듯 그을리고, 단검 하나에 불꽃 같은 반짝이를 아로새기고, 한낱 조악한 모사에 지나지 않는 그림들 위에는 세월의 고색이나 거장이 쓰는 니스처럼 값을 매길 수 없는 금빛 막을 입혀, 실은 싸구려 잡동사니밖에 없는 그 오두막 전체를, 렘브란트의 놀라운 작품 한 폭으로 빚어냈다. 이따금 나는 덧문을 닫지 않은 어느 거대한 옛 살림집으로 눈길을 들어 올렸으니, 그 안에서는 양서류 같은 남녀가, 밤이 내린 뒤 등불의 샘에서 쉼 없이 솟아올라 돌과 유리로 된 바깥벽 언저리까지 방을 가득 채운 그 풍요로운 액체 속을, 몸을 놀려 길고 미끈한 황금빛 물결을 그것에 퍼뜨리며 느릿느릿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가던 길을 갔고, 흔히, 오래전 메제글리즈로 가는 길에서 그러했듯, 대성당 곁을 지나는 어두운 골목에서 내 욕망의 힘이 나를 붙들어 세웠다. 그것을 채워 주려는 듯 여인 하나가 막 나타날 것만 같았다. 어둠 속에서 문득 치맛자락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면, 그때 내가 느낀 쾌감의 격렬함에, 나는 그 스침이 우연이었다고 도무지 믿을 수 없어, 겁에 질린 낯선 여인을 두 팔로 끌어안으려 했다. 이 고딕풍 골목은 내게 너무나 실재하는 무언가를 뜻해서, 만약 내가 거기서 어느 여인을 안아 올려 품는 데 성공했더라면, 우리를 맺어 주는 것이 바로 그 자리의 오랜 마력임을 믿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고, 설령 그녀가 저녁마다 거기 서 있는 한낱 거리의 여자에 지나지 않았더라도, 여전히 겨울밤과 낯선 자리와 어둠과 중세풍 정취가 그녀에게 그 신비로운 매혹을 빌려주었으리라. 나는 내게 무엇이 마련되어 있을지 생각했다. 게르망트 부인을 잊으려 애쓰는 일이 내게는 끔찍하게 여겨졌으나, 사리에 맞고, 처음으로 가능하며, 어쩌면 쉽기까지 한 일로 느껴졌다. 이 동네의 완전한 정적 속에서 나는 앞쪽에서 고함과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얼큰히 취한 술꾼들에게서 나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그들을 보려고 기다렸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러나 나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으니, 사방의 침묵이 어찌나 짙었던지 아직 멀리 있는 소리들이 더없이 또렷하고 힘차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술꾼들이 나타났다. 내 짐작과 달리 내 앞이 아니라, 아득히 뒤쪽에서였다. 옆길들의 교차와 건물들의 가로놓임이 반향을 일으켜 이 음향의 착오를 빚어냈든, 아니면 소리가 나오는 자리를 알지 못할 때는 그것을 짚어 내기가 몹시 어려운 탓이든, 나는 거리에 대해서만큼이나 방향에 대해서도 그토록 크게 틀렸던 것이다.
바람이 더 거세졌다. 다가오는 눈을 머금어 텁텁하고 까슬까슬했다. 나는 큰길로 되돌아와 작은 전차에 올라탔다. 그 승강대에서는 한 장교가, 보는 것 같지도 않은 채, 인도를 따라 터벅터벅 지나가는 촌스러운 병사들의 경례를 받고 있었는데, 추위에 진홍빛으로 물든 그들의 얼굴은, 가을에서 초겨울로의 느닷없는 도약이 한결 북쪽으로 옮겨다 놓은 듯한 이 작은 마을에서, 브뤼헐이 제 흥겹고 잔치 벌이는 서리 맞은 농부들에게 부여한 그 불그레한 얼굴을 내게 떠올려 주었다.
과연 생루와 그의 벗들을 만나기로 한 호텔, 마침 열리기 시작한 장이 원근 각지의 사람들을 끌어모은 그 호텔에서, 나는 안뜰을 가로질러 서둘러 가며 이글거리는 주방들을 언뜻언뜻 들여다보았는데, 그 안에서는 닭들이 꼬치에 꿰여 돌아가고, 돼지들이 구워지고, 산 채로 랍스터들이 주인이 “꺼지지 않는 불”이라 부르던 것 속으로 던져지고 있었다. 그 뜰에서 나는 새로 도착한 손님들이 몰려드는 광경(옛 플랑드르 거장들이 즐겨 그리던 베들레헴 앞 백성의 호구조사 같은 그림에나 어울릴 법한)을 보았으니, 그들은 무리를 지어 모여, 저녁 식사와 잠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주인이나 그 종업원 중 하나에게(그는 손님의 행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을의 다른 숙소를 권하곤 했다) 물었고, 그러는 동안 부엌 심부름꾼 하나가 버둥거리는 새의 목을 붙잡은 채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마찬가지로, 벗이 나를 기다리는 작은 방으로 가기 전에 첫날 가로질러 간 그 큰 식당에서도, 숨을 헐떡이는 급사들이 속도를 내려고 반들반들한 바닥 위를 미끄러지며 손질하고 고명을 얹어 김이 펄펄 나는 채로 날라 와 커다란 고기 써는 탁자 위에 내려놓은 생선과 영계와 뇌조와 멧도요와 비둘기의 양은, 중세풍의 소박함과 전형적인 플랑드르식 과장으로 그려진 복음서의 어느 잔치를 떠올리게 했다. 그 탁자에서 고기들은 곧바로 잘렸으나, 내가 도착했을 때 손님들 대부분은 저녁을 거의 다 든 뒤였으므로, 손도 대지 않은 채 쌓여만 갔으니, 그 넘치는 양과 그것을 날라 오는 이들의 부산함은 식사하는 이들의 필요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 꼼꼼히 지키면서도 고장의 관습에서 빌려 온 실제 세부로 예스럽게 채색된 성스러운 경전에 대한 경의에서, 그리고 음식의 풍성함과 시중드는 이들의 정성으로 잔치의 장엄함을 눈에 뚜렷이 보이려는 미학적·종교적 세심함에서 비롯된 듯싶었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방 저 끝 찬장 곁에서 생각에 잠긴 채 서 있었다. 나는 우리 자리가 어느 방에 차려졌는지 알아내려고, 홀로 내게 대답해 줄 만큼 침착해 보이는 그에게 다가가려고, 늦게 온 이들의 접시가 식지 않도록 여기저기 불을 붙여 둔 보온 그릇들 사이로 앞으로 나아갔다(그렇다고 방 한복판에서 후식이, 겉보기엔 수정이지만 실은 얼음으로 된, 조각가를 겸한 요리사가 날마다 뜨거운 인두로 새로 깎아 낸, 이따금 오리 날개에 받쳐진 거대한 인형의 뻗은 두 손 위에 플랑드르식 그대로 수북이 쌓이는 것을 막지는 못했지만). 나는 동료들에게 부딪혀 나동그라질 위험을 무릅쓰고 곧장 이 하인에게로 갔으니, 나는 그에게서 이 모든 성스러운 주제에 으레 등장하는 어떤 인물을 알아본 듯했다. 그는 무디고 얼빠진, 서투르게 그려진 이목구비와, 다른 이들은 아직 짐작조차 못 한 신의 임재라는 기적을 벌써 어렴풋이 알아차린 듯 생각에 잠긴 표정을, 한 치 어김없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아마도 다가오는 장을 앞두었기 때문인지, 이 광경은 무더기로 소집된 케루빔과 세라핌의 천상 부대로 한층 보강되어 있었다. 금발이 열네 살 앳된 얼굴을 감싼 어린 천사 악사는, 사실 아무 악기도 켜지 않은 채, 징이나 접시 더미 앞에서 생각에 잠겨 있었고, 그보다 덜 앳된 다른 천사들은 방의 가없는 공간을 재빨리 가로질러 날며, “원시” 회화 속 뾰족한 끝을 지닌 날개처럼 제 몸의 윤곽을 따라 늘어진 냅킨을 쉼 없이 펄럭여 공기를 갈랐다. 야자수 울타리에 가려진 그 모호한 영역, 멀리서 보면 그 천사 같은 하인들이 마치 지고천에서 둥실 내려온 듯 보이던 그곳에서 빠져나와, 나는 생루의 자리가 차려진 작은 방으로 길을 더듬어 갔다. 그곳에서 나는 그와 늘 함께 식사하는 벗 여럿을 만났는데, 한둘의 평민을 빼면 모두 귀족이었다. 그 평민들은 젊은 귀족들이 학창 시절에 좋은 벗이 되리라 알아본 이들로,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으니, 이는 손이 깨끗하고 미사에 다니기만 한다면 설령 공화파라 할지라도 중산층을 원칙적으로 적대하지는 않음을 보여 주는 셈이었다. 그 첫날 저녁, 우리가 저녁 식탁에 앉기 전에, 나는 생루를 한쪽 구석으로 끌고 가, 다른 이들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러나 그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그에게 말했다.
“로베르,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때도 자리도 마땅치 않지만, 잠깐이면 돼. 막사에 있을 땐 자꾸 잊어버려서 못 물어보는데, 자네 탁자에 놓인 게 게르망트 부인 사진 아닌가?”
“왜 아니겠나, 우리 좋으신 이모님이시지.”
“그렇고말고, 내가 참 바보지. 전에 자네가 말해 줬는데, 이모님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어. 그건 그렇고, 자네 벗들이 답답해하겠어, 서둘러야겠네, 다들 우리를 보고 있잖아. 다음에 해도 돼.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괜찮아, 얼마든지 얘기해. 저들은 기다려도 돼.”
“아니, 아니야. 나도 저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어, 다들 참 좋은 사람들이잖아. 게다가 정말이지 조금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야, 장담해.”
“그럼 자네, 그 좋으신 오리안을 아나?”
이 “그 좋으신 오리안”은, 그가 “그 착한 오리안”이라 말할 수도 있었듯이, 생루가 게르망트 부인을 특별히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 경우 “좋은”, “훌륭한”, “좋으신” 같은 말들은 지시사 “그”를 강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아, 양쪽 모두가 아는 사람이면서도 말하는 이가 그 친밀한 무리 바깥의 누군가에게 무어라 해야 할지 딱히 모르는 그런 사람을 가리킬 뿐이다. “좋은”이라는 말은 임시방편 노릇을 하며, 말하는 이가 “요즘 그이를 자주 보나?”라든가 “몇 달째 얼굴을 못 봤어”라든가 “화요일에 만나기로 했지”라든가 “그이도 이제 나이가 들었지, 그렇잖나” 같은 말을 떠올릴 때까지 잠깐 대화를 이어 준다.
“그게 하필 그분 사진이라니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 우리가 지금 파리에서 그분 댁에 살고 있거든, 그리고 나는 그분에 대해 놀라운 이야기들을 잔뜩 듣고 있어”(무슨 이야기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 몹시 난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에게 무척 관심이 생겼는데, 어디까지나 문학적인 관점에서, 알겠나, 뭐랄까, 발자크적인 관점에서 말이야. 하지만 자네는 워낙 영리하니 내 말뜻을 알 거야, 자네한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그나저나 서둘러야겠네, 자네 벗들이 대체 내 예의범절을 어떻게 보겠어?”
“전혀 아무렇게도 생각 안 해. 자네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가 저들한테 일러 뒀거든, 그래서 저들이 자네보다 훨씬 더 긴장하고 있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