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루가 이런 이론들을 늘어놓는 것을 듣고 나는 행복했다. 그 이론들은, 어쩌면 내가 동시에르에서의 생활에서, 매력적인 황금빛으로 그들을 적셔 주던 소테른을 홀짝이며 사람들이 화제로 삼는 걸 듣곤 하던 그 장교들에 관해, 길을 잘못 든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다. 내가 발베크에 있을 때 남태평양 어느 섬의 왕과 왕비, 네 미식가의 작은 무리, 젊은 노름꾼, 르그랑댕의 처남을 내 눈에 그토록 엄청난 크기로 부풀려 놓았다가 이제는 내 눈에 하도 쪼그라들어 있으나 마나 한 것처럼 보이게 한 바로 그 확대의 힘 때문에 말이다. 오늘 내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여태까지 늘 그래 왔듯 내일이면 나를 심드렁하게 만들지는 않을지도 몰랐다. 이 순간 아직 나였던 그 존재가 어쩌면 당장 스러질 운명은 아닐지도 몰랐으니, 이 며칠 저녁 군대 생활에 관한 온갖 것에 대해 내가 느낀 그 뜨겁고도 덧없는 열정에, 생루가 방금 전쟁의 기술에 관해 내게 들려준 이야기로써 항구적인 성격의 지적 토대를, 나를 제 쪽으로 어찌나 단단히 붙들어 매는지 조금도 자신을 속이려 들 것 없이, 동시에르를 떠난 뒤에도 나는 그곳 벗들의 일에 계속 관심을 두게 되고 머지않아 그들을 다시 찾아가리라고 확신할 수 있을 만한 그런 토대를 더해 주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나는 이 전쟁의 기술이 정말로 낱말의 참뜻 그대로의 기술인지 확실히 해 두려고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나한테 흥미로워, 아니 실례, 자네(tu)는 나한테 대단히 흥미로워” 하고 나는 생루에게 말했다. “하지만 말해 봐, 나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점이 하나 있어. 나는 전략의 기술에 열렬히 마음이 끌릴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그러려면 먼저 그것이 다른 예술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 규칙을 아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부터 확실히 해 둬야겠어. 자네는 전투의 계획이 본떠진다고 했지. 자네가 말한 그대로, 현대의 어느 전투 밑에서 더 오래된 전투의 계획을 알아보는 데에는 나도 무언가 미학적인 것이 있다고 느껴, 얼마나 매혹적으로 들리는지 몰라. 하지만 그렇다면 지휘관의 천재성은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그는 정말로 규칙을 적용하는 것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학문의 견지에서, 위대한 외과의가 있듯 위대한 장군이 있어서, 두 병증이 겉보기엔 똑같은 증상을 보일 때에도, 어쩌면 제 경험에 바탕을 두되 새로이 해석된 어떤 미세한 이유에서, 한 경우엔 이것을, 다른 경우엔 저것을 해야 한다고, 한 경우엔 수술하는 편이 낫고 다른 경우엔 기다리는 편이 낫다고 느끼는 걸까?”
“당연하지! 나폴레옹을 보게. 모든 규칙이 공격하라고 명하는 순간에 공격하지 않고, 어떤 알 수 없는 예감이 그를 말리는 대로 따르는 걸 보게 될 걸세. 예컨대 아우스터리츠를 보게, 아니면 1806년에 란에게 내린 지시를 보게. 그런가 하면 어떤 장군들은 나폴레옹의 어떤 기동을 노예처럼 흉내 냈다가 정반대의 결과에 이르는 것도 볼 수 있지. 1870년만 해도 그런 예가 열 몇 가지는 되네. 하지만 적이 무엇을 할지도 모른다는 그 해석에서조차, 적이 실제로 하는 행동이란 여러 가지로 달리 해석될 수 있는 하나의 징후에 지나지 않아. 오로지 추론과 과학에만 기대면, 그 각각이 옳은 답일 가능성을 똑같이 나눠 갖고 있지. 마치 어떤 까다로운 병증에서는 세상의 모든 의학을 동원해도 보이지 않는 종양이 악성인지 아닌지,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가름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일세. 위대한 장군에게든 위대한 의사에게든,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의 본능, 그의 직관이야, 테브 부인처럼 말이지(내 말 알아듣겠나?).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한 예로, 전투 전야의 정찰이 무엇을 뜻할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던 걸세. 하지만 그건 다른 열 몇 가지를 뜻할 수도 있어. 이를테면 실제로는 다른 지점을 치려 하면서 적으로 하여금 어느 한 지점을 공격하리라 믿게 만드는 것, 진짜 작전의 준비를 보지 못하도록 장막을 치는 것, 적에게 새 병력을 끌어오게 강요하는 것, 그 병력을 붙들어 두는 것, 정작 필요한 곳이 아닌 엉뚱한 곳에 묶어 두는 것, 적이 가용한 병력을 가늠하는 것, 적을 떠보는 것, 적이 패를 드러내도록 몰아붙이는 것 같은 것들이지. 실제로 때로는, 어느 작전에 막대한 병력을 투입한다는 사실이 그것이 자네의 진짜 목표라는 증거가 결코 되지 못하네. 그것이 한낱 양동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 양동이 적을 더 잘 속이도록 하려면 그만한 병력을 쏟을 만도 하니까. 지금 내게 시간이 있어서 이런 관점으로 나폴레옹 전쟁을 훑어볼 수 있다면, 우리가 여기서 공부하는 이 단순한 고전적 기동들, 자네가 그저 산책 삼아 우리가 벌판에서 훈련하는 걸 보러 오게 될 그 기동들 말인데, 이 개구쟁이 같으니, 아니, 자네 몸이 안 좋은 줄 아네, 미안하네! 아무튼 전쟁에서, 상부 사령부의 경계와 판단과 깊은 궁리가 자네 등 뒤에 있음을 느낄 때, 자네는 등대의 그 소박한 불빛에 못지않게 그것들에 마음이 움직인다네. 등댓불이란 한낱 물질의 연소일 뿐이지만, 배들에게 위험을 알리려 허공을 가르며 뻗어 나가는 정신의 발산이지. 어쩌면 나는 자네에게 전쟁의 문헌만을 이야기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도 모르겠네. 실은, 흙의 생김새와 바람과 빛의 방향이 나무가 어느 쪽으로 자랄지 일러 주듯이, 한 원정이 치러지는 조건, 자네가 지나 행군하는 고장의 지형이 어느 정도까지 장군이 골라야 할 계획의 수를 규정하고 제한한다네. 그러니 어느 산줄기를 따라, 어느 골짜기의 얽힘을 지나, 어느 평원을 가로질러 행군하는 군대의 진로란, 눈사태의 그 불가피함과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에 가깝게 미리 내다볼 수 있다는 말일세.”
“이제 자네는, 조금 전만 해도 내게 인정해 주었던 것, 곧 지휘관에게 있는 그 선택의 자유와, 그의 계획을 알아내려는 적에게 있는 그 직관의 힘을 부인하는군.”
“천만에. 발베크에서 우리가 함께 읽은 그 철학책 기억하나, 실제 세계에 견준 가능 세계의 풍요로움 말일세. 좋아. 전략의 기술에서도 똑같다네.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 네 가지 계획이 저마다 떠오르고, 장군은 그중 하나를 골라야 하지, 마치 병이 여러 국면을 거치고 의사가 그 국면들을 지켜봐야 하듯이 말이야. 그리고 여기서도 다시, 인간적 요소의 나약함과 위대함이 새로운 불확실의 원인이 되지. 이 네 계획 가운데, 어떤 우발적인 이유들, 이를테면 사소한 목표의 달성이라든지, 촉박한 시간이라든지, 실제 병력의 부족과 식량난 같은 것 때문에 장군이 첫째 계획을 택한다고 치세. 그것은 덜 완벽하지만 그만큼 수행에 드는 비용도 적고, 더 신속하며, 병사들을 먹이기에 더 풍요로운 고장을 전장으로 삼는 계획이지. 처음엔 갈피를 못 잡던 적도 이내 알아채고 마는 이 계획을 시작한 뒤, 그는 어려움이 너무 커서 성공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음을 깨닫고, 이것이 바로 내가 인간적 나약함의 요소라 부르는 것일세, 그것을 버리고 둘째나 셋째, 넷째 계획을 시도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가 첫째 계획을 시도한 것이, 그리고 이것이 내가 인간적 위대함이라 부르는 것이지, 오로지 적을 붙들어 두려는 양동에 지나지 않아서, 나중에 적이 공격을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그를 기습하려는 것이었을 수도 마찬가지로 있지. 그리하여 울름에서, 적이 서쪽에서 진격해 오리라 여겼던 마크는, 스스로 완벽히 안전하다고 믿었던 북쪽에서 포위당하고 말았지. 사실 내 예가 그리 좋은 건 아니야. 그리고 울름은 포위전의 더 나은 전형이라, 앞으로도 되풀이되는 걸 보게 될 걸세. 그것은 장군들이 영감을 구할 고전적 본보기일 뿐 아니라, 어느 정도는 필연적인 형태이기 때문이지, 선택과 다양함의 여지를 남기는 여러 필연 가운데 하나로서, 마치 결정(結晶)의 한 유형처럼 말이야. 하지만 사실 그건 그리 중요치 않아, 이런 조건들이란 결국 인위적인 것이니까. 우리 철학책으로 되돌아가 보면, 이건 논리의 규칙이나 과학 법칙과 같아서 현실이 그것에 얼추 들어맞기는 하지, 하지만 저 위대한 수학자 푸앵카레조차 수학이 엄밀히 정확한지 결코 확신하지 못한다는 걸 잊지 말게. 내가 자네에게 말한 규칙들로 말하자면, 그것들은 사실 부차적인 것이고, 게다가 이따금 바뀌기도 하네. 예를 들어 우리 기병들은 1895년판 야전 교범을 따라야 하는데, 이건 이미 낡았다고 할 만하지. 기병전이란 돌격이 적에게 불러일으키는 공황, 그 정신적 효과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주장하는, 낡고 한물간 교리에 근거하고 있으니까. 반면에 우리 교관들 가운데 더 지혜로운 이들, 기병대의 가장 뛰어난 머리들, 특히 내가 자네에게 말했던 그 소령은, 도리어 결정적 승리란 사브르와 창을 무기로 삼는 진짜 백병전에서 얻어지리라고, 그리고 더 오래 버티는 쪽이, 단지 정신적으로 공황을 일으켜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기리라고 내다본다네.”
“생루 말이 옳습니다. 다음 야전 교범에는 아마 이런 변화의 조짐이 드러나겠지요.” 다른 쪽 옆자리 사람이 끼어들었다.
“자네 지지가 고맙지 않은 건 아니야. 내 의견보다 자네 의견이 내 벗에게 더 깊은 인상을 주는 것 같으니 말이지.” 생루가 미소 지으며 말했는데, 그의 동료와 나 사이에 점점 커 가는 호감이 그를 조금 언짢게 한 탓인지, 아니면 그것을 이런 공식적인 확인으로 엄숙히 못 박는 것이 멋스럽다고 여긴 탓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규칙의 중요성을 얕잡아 봤는지도 모르지, 나도 모르겠네. 규칙이 바뀌긴 하지, 그건 인정해야 해.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규칙은 군사적 상황을, 원정과 병력 집중의 계획을 좌우한다네. 만약 규칙이 전략에 대한 그릇된 관념을 반영하고 있다면, 그것이 패배의 주된 원인이 될 수도 있어. 이런 얘기는 자네한테 좀 지나치게 전문적이지.” 그가 내게 말했다. “따지고 보면, 전쟁 기술의 진화를 가장 빠르게 재촉하는 것은 전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 어느 원정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한 교전국이 상대의 성공과 실수가 안겨 준 교훈을 이용해 상대의 방법을 완성하고, 그러면 상대는 또 그것을 넘어서서 개선하는 걸 보게 되지. 하지만 그 모두가 이제는 지난 일이야. 포병의 무서운 발전으로, 앞으로 전쟁이 또 있다손 치더라도 미래의 전쟁은 어찌나 짧을지, 우리가 그 교훈을 실전에 옮길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이미 강화 조약이 맺어져 있을 거야.”
“그렇게 뾰로통해 하지 말게.” 나는 이 이야기의 첫머리로 되돌아가 생루에게 말했다. “나는 자네 말을 꽤나 열심히 듣고 있었어.”
“부디 발끈하지 말고 내가 말하도록 해 준다면,” 그의 벗이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가 방금 한 말에 이걸 덧붙이겠네. 전투들이 서로를 베끼고 서로 들어맞는다면, 그건 단지 지휘관의 머릿속에서 비롯된 일만은 아니라는 걸세. 지휘관 쪽의 실수, 이를테면 적의 힘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 때문에 그가 부하들에게 터무니없는 희생을 요구하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고, 어떤 부대들은 그 희생을 어찌나 숭고한 헌신으로 치러 내는지, 그 전투에서 그들이 맡은 몫이 다른 어느 전투에서 다른 어느 부대가 해낸 몫과 꼭 닮아, 역사에서 서로 맞바꿔 놓을 만한 본보기로 인용되곤 하지. 1870년만 놓고 보아도, 생프리바의 프로이센 근위대와 프뢰슈빌러와 비상부르의 튀르코 부대가 그렇다네.”
“아! 서로 맞바꿀 만하다, 참 깔끔한 표현이군! 훌륭해! 이 친구, 머리가 있어.” 생루의 촌평이었다.
나는 이 마지막 예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으니, 개개의 사례 밑에서 일반 법칙을 언뜻 엿볼 수 있을 때면 언제나 그러했다. 그래도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지휘관의 천재성이었고, 나는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 어떤 상황에서 천재성이 없는 지휘관이라면 적을 당해 내지 못할 그런 처지에, 영감을 받은 지도자라면 위태로워진 자기 형세를 다시 세우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 알고 싶어 안달이었다. 생루의 말로는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며 나폴레옹도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해낸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군사적 역량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려고, 나는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여러 장군을 서로 견주어 달라고 청했으니, 그들 가운데 누가 가장 뚜렷이 지도자의 기질과 전술가의 재능을 지녔는지 물었던 것이다. 새로 사귄 벗들을 지루하게 할 위험을 무릅쓴 것이었으나, 그들은 조금도 지루한 기색 없이 마르지 않는 너그러움으로 내게 계속 답해 주었다.
나는 스스로가 외따로 떨어져 있음을 느꼈다. 우리 둘레로 멀리까지 뻗어 있는, 얼어붙을 듯 광막한 밤으로부터만이 아니었다. 그 밤 속에서 이따금 들려오는 기차의 기적 소리는 우리가 있는 이곳에 있다는 즐거움을 한결 날카롭게 돋우었고, 이따금 울리는 시각을 알리는 종소리도 다행히 이 젊은이들이 사브르를 차고 떠나야 할 시각까지는 아직 한참 멀었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만이 아니라, 나를 사로잡던 온갖 바깥 근심으로부터도, 심지어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기억으로부터도 떨어져 있음을 느꼈으니, 이는 생루의 환대 덕분이었고, 거기에 그의 벗들의 환대가 보태져 이를테면 더욱 든든한 무게를 실어 준 덕분이었다. 또한 이 작은 식당의 따스함, 우리 앞에 차려진 잘 고른 요리들의 감칠맛 덕분이기도 했다. 그것들은 내 식욕에 못지않게 내 상상력에도 즐거움을 주었다. 때로는 그 요리들을 떼어 온, 아직 그대로인 작은 정물, 곧 굴을 담은 우툴두툴한 성수반 같은 껍데기 속에 짭짤한 물 몇 방울이 고여 있는 그것, 또는 마디진 줄기와 노란 잎사귀가 아직 한 송이 포도를 감싸고 있는 그것이, 먹을 수 없는 채로, 한 폭 풍경처럼 시적이고 아득하게 요리를 에워싸고 있어서, 식사가 이어지는 여러 대목마다 포도 넝쿨 그늘에서 쉬는 느낌과 바다로 나들이 나온 느낌을 자아내곤 했다. 또 다른 저녁에는 요리사 홀로 우리 음식이 지닌 이 본디의 성질을 도드라지게 하여, 마치 하나의 예술품처럼 그것을 제 본연의 자리에 담아 내놓았다. 포도주로 익힌 생선 한 마리가 길쭉한 오지그릇에 담겨 나왔는데, 푸르스름한 향초 자리 위에 도드라지게 놓인 그 생선은, 이제는 부서지지 않을 만큼 익었으되 산 채로 끓는 물에 던져진 탓에 여태 비틀린 몸을 하고서, 껍데기를 두른 게며 새우며 홍합 같은 위성 같은 무리에 둘러싸여, 마치 베르나르 팔리시의 도자기 문양의 한 부분처럼 보였다.
“나는 질투가 나, 화가 치밀어.” 생루가 반은 웃고 반은 진지하게, 내가 그의 벗과 나누던 그 끝없는 곁말들을 넌지시 가리키며 나를 몰아세웠다. “자네가 그를 나보다 더 똑똑하다고 여겨서인가, 그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건가? 아니, 이제 그가 전부이고, 다른 누구도 끼어들 자리가 없다는 게로군!” 어떤 여인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남자, 여인을 사랑하는 이들 틈에서 사는 남자는, 그런 데서 그만한 순진함을 보지 못하는 다른 이들이라면 감히 못 할 농지거리도 스스럼없이 하는 법이다.
이야기가 여럿이 나누는 자리로 번지면, 그들은 생루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드레퓌스에 관한 말은 일절 피했다. 그러나 그다음 주에, 그의 벗 둘이서 이렇게 군사적인 분위기 속에 살면서도 그가 그토록 열렬한 드레퓌스파이자 거의 반군국주의자라는 게 참 묘한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건 말이죠,” 나는 시시콜콜 들어가고 싶지 않아 이렇게 넌지시 말했다, “환경의 영향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물론 여기서 그치고, 며칠 전 생루에게 했던 소견을 되풀이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거의 그대로 옮겨 놓고 만 터라, 나는 “실은 요전 날에도 제가 그렇게 말씀드렸듯이…” 하고 덧붙이며 변명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과 몇몇 다른 이들에 대한 로베르의 정중한 흠모에 뒤따르는 이면을 미처 셈에 넣지 못하고 있었다. 그 흠모는 상대의 생각을 어찌나 온전히 제 것으로 삼아 버리는지, 하루 이틀만 지나면 그 생각이 본디 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내 소박한 지론에 관해서도, 생루는 마치 그것이 언제나 제 머릿속에 깃들어 있었고, 내가 도리어 제 영역을 넘본 것인 양, 내 발견을 뜨거운 찬동으로 맞이하는 것을 제 도리로 여겼다.
“그럼, 그렇지. 환경 따위는 중요치 않아.”
그러고는 내가 말을 가로막기라도 할까, 아니면 제 말을 못 알아듣기라도 할까 두려워하는 듯한 격한 어조로,
“진짜 영향이란 지적 환경의 영향이야! 사람은 제 관념의 사람이지!”
그는 저녁을 잘 삭인 사람의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잠시 멈추더니, 외알 안경을 떨어뜨리고는 송곳처럼 파고드는 눈길로 나를 쏘아보며,
“비슷한 관념을 지닌 사람들은 다 똑같아.” 그가 도전하는 듯한 기색으로 내게 일러 주었다. 아마도 그는, 정작 이 말을 그토록 잘 기억하면서도, 바로 며칠 전에 나 자신이 그에게 그 말을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저녁마다 늘 같은 마음가짐으로 생루의 식당에 이르렀던 것은 아니다. 우리를 짓누르는 어떤 기억, 어떤 슬픔이 우리에게서 어찌나 감쪽같이 떠나 버리는지 더는 그것을 느끼지 못하게 될 수 있듯이, 그것들은 되돌아와 때로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머물 수도 있다. 어떤 저녁에는, 식당으로 가느라 시가지를 지날 때면, 게르망트 부인이 어찌나 사무치게 그리운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솜씨 좋은 해부학자가 내 가슴 한 켠을 갈라 그 부분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형체 없는 괴로움의, 그리움과 사랑의 그만한 짐을 똑같은 부피로 채워 넣은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상처가 아무리 말끔히 꿰매어졌다 한들, 다른 이를 잃은 회한이 제 오장육부를 대신하고 들어앉으면 삶에 위안이랄 게 별로 없으니, 그것은 오장육부보다 더 넓은 자리를 차지하는 듯하고, 노상 그것이 느껴지며, 게다가 제 몸의 한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니 이 무슨 모순인가. 다만 그 덕에 우리가 어쩐지 더 값진 존재가 된 듯도 하다. 산들바람 한 자락 속삭임에도 우리는 한숨짓는데, 그것은 답답함에서이자 또한 나른한 지침에서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하늘이 맑으면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어쩌면 그이는 시골에 있겠지, 같은 별들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누가 알겠어, 내가 식당에 이르면 로베르가 이렇게 말해 줄지도 몰라. ‘좋은 소식이야! 방금 숙모한테서 기별이 왔는데, 자네를 만나고 싶으시대. 이리로 내려오신다는군.’” 게르망트 부인을 향한 생각을 내가 모셔 둔 곳은 창공만이 아니었다. 여느 것보다 향긋한 한 줄기 바람이 스쳐 지날 때면, 마치 오래전 메제글리즈의 밀밭에서 질베르트가 그러했듯, 그이가 보내는 소식을 내게 실어다 주는 듯했다.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 사람을 바라보는 그 감정 속에, 그 감정이 되살려 내되 실은 그 감정과는 무관한, 잠들어 있던 숱한 요소들을 끌어들인다. 게다가 특정한 사람들을 향한 이런 감정들에는, 그것들을 진실에 더 가까이 데려가려는, 다시 말해 그것들을 온 인류에 두루 통하는 더 일반된 감정 속으로 녹여 내려는 무언가가 우리 안에 늘 있으니, 그 더 일반된 감정 속에서 사람들과 그들이 우리에게 안기는 괴로움이란 그저 우리가 서로 통하게 해 주는 하나의 방편일 따름이다. 내 슬픔에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준 것은, 그것이 보편된 사랑의 아주 작은 한 조각임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오직, 질베르트 때문에 느꼈던 슬픔, 혹은 콩브레의 저녁이면 엄마가 어느 방에도 머물러 주지 않던 때 느꼈던 슬픔, 또 베르고트의 어떤 페이지들에 대한 기억을, 내가 지금 겪는 이 아픔 속에서 알아본다고 여겼다는 것만으로, 나는 게르망트 부인이, 그이의 차가움과 부재가, 철학자의 머릿속에서 원인이 결과에 이어지듯 그렇게 이 아픔에 또렷이 묶여 있지 않다고 해서, 게르망트 부인이 그 아픔의 원인이 아니라고 단정 짓지는 않았다. 몸에 두루 퍼져 다른 부위로 번지고 뻗어 나가는 통증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그러다가도 치료자가 통증이 솟아나는 바로 그 지점에 손가락을 대기만 하면 씻은 듯 사라져 버리는 그런 통증 말이다. 그런데도 그 순간까지는, 그 통증이 퍼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에겐 그것이 어찌나 어렴풋하고 어찌나 숙명처럼 보이는지, 그것을 설명하기는커녕 어디 있는지 짚어 내지도 못한 채, 우리는 그것이 나을 가망이 도무지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게르망트 부인을 마지막으로 본 지 벌써 보름이로군.” 보름이라는 게 이토록 엄청난 간격으로 보이는 것은 오직 나에게뿐이었으니, 게르망트 부인에 관한 일이라면 나는 시간을 분 단위로 헤아렸던 것이다. 나에게는 이제 별들과 산들바람만이 아니라 시간의 산술적 구획마저도 애처롭고 시적인 빛깔을 띠었다. 이제 하루하루는 무너져 내리는 산의 헐거운 마루 같아서, 한쪽 비탈로는 망각 속으로 내려갈 수 있을 듯싶었으나, 다른 쪽 비탈로는 공작부인을 다시 봐야 한다는 절박함에 떠밀렸다. 그리고 나는 안정된 균형을 잃은 채 끊임없이 이쪽으로 저쪽으로 기울었다. 어느 날 나는 속으로 말했다. “어쩌면 오늘 밤엔 편지가 와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식당에 들어서면서 나는 용기를 내어 생루에게 물었다.
“혹시 파리에서 무슨 기별이라도 받지 않았나?”
“받았어.” 그가 침울하게 대답했다. “나쁜 소식이야.”
나는 불행한 이가 그 사람 자신일 뿐이며, 그 소식이 그의 정부에게서 온 것임을 알아채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그 결과의 하나로, 로베르가 앞으로 오래도록 나를 숙모에게 데려가지 못하게 되리란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와 그의 정부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도 우편을 통해서였을 테고, 아니면 그이가 기차와 기차 사이 틈을 타 잠깐 그를 만나러 내려왔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전에도 있었던, 비교적 사소한 다툼들조차 늘 도무지 풀릴 수 없을 것처럼만 보이곤 했다. 왜냐하면 그이는 성미가 격한 처녀여서, 발을 구르며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 까닭이란 아이들이 캄캄한 벽장 속에 스스로 틀어박혀 저녁도 먹으러 나오지 않고 아무 설명도 하려 들지 않다가, 참다못한 우리가 매를 들면 울음소리만 곱절로 높이는 그 까닭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사이가 벌어진 일로 생루가 지독히 괴로워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을 덜 말하는 것이어서, 독자에게 그의 슬픔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심어 줄 것이다. 홀로 남았을 때, 그의 머릿속에 남은 유일한 그림이라고는 그의 결기를 보고 그이가 그에게 품었던 존경을 지닌 채 그와 헤어지는 정부의 모습뿐이어서, 처음에 그를 사로잡던 불안은 돌이킬 수 없는 것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불안이 그친다는 것은 어찌나 즐거운 일인지, 일단 결별이 확실해지자 그 결별은 그에게 화해와도 같은 어떤 매력마저 띠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괴로워하기 시작한 것은 이차적이고 우발적인 슬픔이었으니, 그 물결은 그 자신의 가슴에서 쉼 없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그이가 화해를 반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이가 그의 한마디를 기다리고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 그러는 사이에 그이가 그에게 앙갚음하려고 어느 저녁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저지를지도 모르며, 그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그가 가겠다고 전보 한 통만 치면 되는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 그가 흘려보내는 시간을 어쩌면 다른 이들이 틈타고 있으며, 며칠만 지나면 그이를 되찾기엔 이미 늦어, 그이는 벌써 딴 사람에게 채여 있으리라는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이 모든 가능성 가운데 그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정부는 침묵을 지켰고, 그 침묵은 그를 어찌나 미칠 듯한 슬픔으로 몰아넣었는지, 그는 그이가 동시에르 어딘가에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배를 타고 인도로 떠나 버린 건 아닐까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침묵이 하나의 힘이라는 말이 있다. 그와는 다른, 아주 딴판인 뜻에서, 침묵은 사랑받는 이들의 손에 들린 엄청난 힘이다. 그것은 기다려야 하는 연인의 불안을 키운다. 우리를 갈라놓는 것만큼 우리로 하여금 상대에게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것은 없으니, 침묵보다 더 넘기 어려운 장벽이 어디 있으랴? 또한 침묵이란 감옥의 독방에 갇혀 그것을 선고받은 이를 미치게 몰아갈 만한 고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침묵을 견뎌 내야 하는 것, 이 얼마나 지독한 고문인가, 스스로 침묵을 지켜야 하는 것보다 더 사무치는 고문이 아닌가! 로베르는 자문했다. “이렇게 한마디도 보내오지 않다니, 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이는 나를 미워하고, 앞으로도 늘 미워하겠지.” 그리고 그는 스스로를 나무랐다. 이렇듯 그이의 침묵은 참으로 그를 질투와 회한으로 미치게 만들었다. 게다가 감옥의 침묵보다 더 잔인한 그런 종류의 침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옥이다. 형체 없는 울타리라는 건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뚫고 들 수 없는 울타리, 이렇게 가로놓인 텅 빈 공기의 저 얇은 켜는, 그 텅 빔에도 불구하고 버림받은 연인의 시선의 빛줄기를 통과시키지 않는다. 자리에 없는 사랑을 하나가 아니라 천 개나 보여 주고, 게다가 그 하나하나가 저마다 새로운 배신을 저지르는 참을 보여 주는 그 침묵의 비춤보다 더 무서운 밝힘이 어디 있으랴? 때로 로베르는 팽팽하던 긴장이 문득 풀리면서, 이 침묵의 시기가 이제 막 끝나 가고 있다고,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편지가 오고 있는 중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그는 그것이 보였고, 그것이 도착했고, 그는 무슨 소리에나 흠칫 놀랐으며, 그의 갈증은 이미 가셨고, 그는 “편지다! 편지야!” 하고 중얼거렸다. 이렇게 애정의 헛것 같은 오아시스를 언뜻 본 뒤, 그는 다시금 끝없는 침묵의 진짜 사막을 힘겹게 건너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