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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⑫

3권 제1부 · 제1장

그는 결별이 안겨 줄 온갖 슬픔과 아픔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미리 앞당겨 겪었으니, 다른 순간에는 어떻게든 피할 수 있으리라 여기던 그 결별이었다. 마치 끝내 떠나지도 않을 외국 이주를 앞두고 제 모든 일을 정리해 두는 사람들, 이튿날 어디서 살고 있을지조차 이제는 알 수 없어, 그동안만은 저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온 마음이 어쩔 줄 몰라 파닥이는 그런 사람들과도 같았으니, 그 마음이란 죽어 가는 이에게서 꺼내어져 몸의 나머지에서 떨어져 나왔는데도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과도 같았다. 아무튼 그의 정부가 돌아오리라는 이 희망은, 마치 전투에서 살아 돌아오리라는 믿음이 죽음을 마주하도록 돕듯이, 그가 결별을 끝까지 버텨 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습관이란, 인간에게서 자라나는 온갖 초목 가운데 살아가는 데 기름진 흙이 가장 덜 필요한 것이요, 보기에 가장 메마른 바위 위에도 맨 먼저 돋아나는 것인 만큼, 어쩌면 그가 처음에 그 결별을 하나의 양동처럼 벌였더라면 끝내는 정말로 거기에 길들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그의 불확실함은, 그 여인 자신에 대한 기억과 얽혀 사랑과도 닮은 어떤 격정의 상태에 그를 붙들어 두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이에게 편지 쓰기를 억지로 참았으니, 어쩌면 어떤 조건에서 정부와 함께 사느니 정부 없이 사는 편이 덜 잔인한 고통이라 여겼거나, 아니면 그런 식으로 헤어진 마당에,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존경과 배려의 마음으로 그이가 자기에게 품고 있다고 그가 믿는 그 감정을 그이가 간직하게 하려면, 그이 쪽에서 사과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얼마 전 동시에르에 놓인 전화기로 가서, 자기가 구해 그이 곁에 들여앉힌 시녀에게 소식을 묻거나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이 연락은 알고 보니 번거로웠고 그의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는데, 그이가 수도의 추함에 대해 문학하는 벗들이 늘어놓는 설교에 물든 데다, 무엇보다 제 짐승들, 곧 개들과 원숭이와 카나리아들과 앵무새 때문이었으니, 그 쉼 없는 소란을 파리의 집주인이 더는 단 한 순간도 견디지 못하겠다며 물러선 터라, 로베르의 정부는 이제 베르사유 근처에 작은 집을 얻어 든 참이었다. 그러는 사이 동시에르에 있는 그는 밤새 눈 한 번 붙이지 못했다. 한번은 내 방에서 지친 나머지 잠깐 꾸벅 졸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무슨 말을 하기 시작하더니, 일어나 달려가 무언가가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이 소리가 들려, 안 돼… 안 돼…” 그는 잠에서 깼다. 꿈을 꾸었다고, 그가 내게 설명했는데, 시골에서 상사와 함께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를 재워 준 그 상사는 집 안 어느 한 부분에 그가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하려 했다. 생루는 그 상사가 몹시 부유하고 몹시 방탕한 하급 장교 하나를 재워 두고 있음을 알아챘는데, 그 하급 장교가 자기 정부에게 격렬한 욕정을 품고 있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문득 꿈속에서 그는, 정부가 쾌락의 절정에서 내지르곤 하던 그 경련하듯 규칙적인 외침을 또렷이 들었다. 그는 그이가 있는 방으로 자기를 데려가라고 상사에게 억지로 요구하려 했다. 그러자 상대는 거기 가지 못하도록 그를 붙들었는데, 손님으로서 그토록 분별없이 구는 데 대한 짜증스러운 기색을 띠고 있었으니, 로베르의 말로는 그 기색을 자기는 결코 잊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얼빠진 꿈이었어.” 그가 아직도 꽤 숨을 헐떡이며 말을 맺었다.

그래도 나는, 그 뒤로 한 시간 남짓 그가 정부에게 전화를 걸어 화해를 애걸하려는 참에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이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우리 집에도 전화를 놓은 지 얼마쯤 되었지만, 그게 생루에게 그리 쓸모가 있었을지는 의심스럽다. 게다가 아무리 그이가 기품 있고 고결한 여인이라 한들, 내 부모님을, 아니 그 댁에 놓인 기계 장치까지도 생루와 그의 정부 사이의 뚜쟁이 노릇에 끌어들인다는 것은 내게 그리 온당해 보이지 않았다. 그의 사나운 꿈은 차츰 기억에서 흐려져 갔다. 붙박인 듯 넋 나간 눈길로, 그는 그 모진 나날마다 나를 보러 왔으니, 잇따라 흘러가는 그 나날들은 내 마음속에, 단단한 쇠붙이로 벼려 낸 계단의 그 장엄한 곡선을 그려 놓았고, 로베르는 그 계단 위에 서서 그이가 어떤 결심을 내릴까 자문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이가 편지를 보내, 그가 자기를 용서해 줄 뜻이 있는지 물어 왔다. 확실한 결별을 피했음을 깨닫자마자 그는 화해가 안겨 줄 온갖 불리함을 한눈에 보았다. 게다가 그는 이미 예전만큼 사무치게 괴로워하지는 않게 되었고, 어쩌면 몇 달 뒤에 두 사람의 친밀함이 되살아난다면 다시금 그 날카로운 이빨을 느껴야 할 그 슬픔을 거의 받아들인 참이었다. 그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망설인 것은, 이제 정부를 되찾을 수 있음을, 되찾을 수 있으니 되찾으리란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다만 그이는, 마음의 평정을 되찾을 겨를을 갖고 싶다며, 신년에는 파리로 오지 말아 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그런데 그는 그이를 보지 못한 채 파리에 갈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한편 그이는 그와 함께 외국에 갈 뜻이 있다고 밝혔으나, 그러자면 그는 정식으로 휴가를 신청해야 했는데, 보로디노 대위가 그것을 좀처럼 허락하려 들지 않았다.

“미안하게 됐어, 자네가 숙모를 만나는 일도 미뤄야 하게 됐으니. 아마 부활절엔 내가 파리에 가 있을 것 같아.”

“그때면 우린 게르망트 부인을 찾아뵐 수 없겠군, 나는 발베크에 가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이지 그건 조금도 상관없어, 장담하네.”

“발베크에? 하지만 자넨 8월이나 돼야 거기 가지 않았나.”

“알아. 하지만 내년엔 몸 때문에 나를 더 일찍 그리로 보내려 하셔서 말이야.”

그가 두려워한 것은 오로지, 그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 탓에 내가 그의 정부에게 나쁜 인상을 품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이가 격한 건 그저 너무 솔직하고, 감정에 너무 철저해서일 뿐이야. 하지만 그이는 숭고한 사람이야. 그이 안에 얼마나 그윽한 시정이 깃들어 있는지 자넨 상상도 못 할 걸세. 그이는 해마다 위령의 날을 브뤼주에서 보낸다네. ‘근사’하지 않은가? 언젠가 자네가 그이를 만나면 내 말뜻을 알게 될 거야, 그이에겐 어떤 위대함이 있어…” 그리고, 그 여인이 드나드는 문학계에서 쓰는 몇몇 말버릇에 물든 터라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이에겐 별처럼 아득한 무언가가, 실은 음유시인 같은 무언가가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시인이 사제로 녹아드는 그런 것 말이야.”

나는 저녁 내내, 그가 파리에 갈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생루가 숙모에게 나를 만나 달라고 청할 수 있게 해 줄 구실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그런 구실 하나를, 발베크에서 생루와 내가 만났던 그 이름난 화가 엘스티르의 그림을 몇 점 더 보고 싶다는 내 바람이 마련해 주었다. 더구나 그 뒤에는 얼마간의 진실도 깃들어 있는 구실이었다. 엘스티르를 찾아갔을 때 내가 그의 그림에 바랐던 것은, 그것이 나를 저 자신보다 더 나은 것들에 대한 이해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는 것, 곧 진짜 해빙, 시골 마을의 진짜 광장, 바닷가의 살아 있는 여인들이었다면(더더욱 나는 그에게, 내가 미처 그 속을 헤아리지 못한 실재들의 초상을, 이를테면 산사나무 꽃이 늘어선 오솔길 같은 것을, 그 아름다움을 내게 길이 간직해 주라기보다 그 아름다움을 내게 열어 보여 주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이제는 도리어 그 그림들의 독창성, 그 매혹하는 이끌림이야말로 내 욕망을 불러일으켰으니, 무엇보다 내가 바란 것은 엘스티르의 다른 그림들을 보는 일이었다.

또한 내게는, 그의 그림들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조차 그보다 더 위대한 화가들의 걸작과도 사뭇 다른 무언가로 여겨졌다. 그의 작품은 그 국경을 넘어설 수 없는, 그 바탕에서 견줄 데 없는 하나의 딴 세계 같았다. 그와 그의 작품에 관한 글이 실린, 좀처럼 나오지 않는 잡지들을 열심히 그러모으면서 나는, 그가 풍경과 정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겨우 최근의 일이며, 그가 신화적인 소재로 출발했다가(나는 그중 두 점의 사진을 그의 화실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뒤 오랫동안 일본 미술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여러 화풍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 몇 점은 지방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레장들리의 어느 집에는 그의 가장 빼어난 풍경화 하나가 있었는데, 그 집이 내게는 어찌나 값지게 여겨지던지, 샤르트르 지방의 어느 마을, 그 맷돌 벽 안에 눈부신 스테인드글라스 창 하나가 모셔져 있던 그 마을 못지않게 그리로 가서 그것을 보고 싶은 간절한 바람을 자아냈다. 그리고 이 보물을 지닌 사람, 큰길가에 선 제 볼품없는 집 안에서, 점성술사처럼 틀어박혀, 엘스티르의 그림이 곧 그런 것이었던 세계의 거울 하나에 물음을 던지며 앉아 있는, 어쩌면 그것을 수천 프랑이나 주고 샀을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절실한 문제를 두고 같은 생각을 품은 이들의 바로 그 가슴, 그 가장 깊은 본성을 이어 주는 저 본능적인 공감에 이끌려 마음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화가의 중요한 작품 세 점이, 이 글들 가운데 하나에서 게르망트 부인의 소유로 적혀 있었다. 그러니 생루가 자기 연인이 브뤼주에 다녀올 작정이라고 내게 이야기한 그 저녁에, 내가 저녁 식사 자리에서 그의 벗들 앞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인 양 이런 말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은, 따지고 보면 아주 진심에서 나온 일이었다.

“이봐, 괜찮다면 말이야. 우리가 이야기하던 그 부인에 관해 딱 한마디만 더 하지. 내가 발베크에서 만난 화가 엘스티르 기억하나?”

“그럼, 물론 기억하지.”

“내가 그의 작품을 얼마나 흠모했는지도 기억하나?”

“잘 기억하지. 우리가 그에게 보낸 편지도.”

“그럼 됐어. 내가 그 부인을 만나고 싶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말이야, 주된 이유는 아니고 곁다리 이유인데, 내가 누구 말하는지 알지, 안 그런가?”

“알다마다. 자네 이야기가 어째 점점 얽히는군.”

“그건, 그 부인 댁에 적어도 아주 훌륭한 엘스티르 그림이 한 점 있다는 거야.”

“이런, 난 전혀 몰랐는걸.”

“엘스티르는 아마 부활절엔 발베크에 있을 거야. 알다시피 그는 요즘 거의 일 년 내내 거기 내려가 지내니까. 나는 파리를 떠나기 전에 이 그림을 꼭 한번 보고 싶어. 자네가 숙모와 얼마나 허물없는 사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손을 써서, 숙모께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심어 드려 숙모가 마다하지 않으시게 하고, 그런 다음, 자네는 거기 없을 테니 자네 없이도 내가 그 그림을 보러 가도 좋을지 여쭤봐 줄 수 없겠나?”

“그야 문제없지. 내가 숙모는 책임지겠네, 특별히 신경 써서 챙기지.”

“오, 로베르, 자넨 천사야, 정말 자네가 좋네.”

“나를 좋아해 준다니 참 고마운 일이지, 하지만 자네가 약속한 대로, 또 부르기 시작한 대로 나를 tu라고 불러 준다면 그 못지않게 고마울 텐데.”

“설마 두 사람이 함께 꾸미는 게 자네 떠나는 일은 아니겠지.” 로베르의 벗 하나가 내게 말했다. “알다시피, 생루가 정말 휴가를 떠난다 해도 달라질 건 없어, 우리가 여전히 여기 있을 테니. 자네한테야 아마 덜 즐겁겠지만, 그가 없는 걸 잊게 해 주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네.” 실은, 로베르의 정부가 혼자서 브뤼주에 가야겠다고 우리가 막 결론을 내린 참에, 여태 완강히 거절해 오던 보로디노 대위가 생루 하사에게 브뤼주로 장기 휴가를 떠나도 좋다는 허가를 내렸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사연은 이러했다. 제 숱 많은 머리카락을 몹시 자랑스러워하던 이 대공은, 시내 으뜸가는 이발사의 부지런한 단골이었는데, 그 이발사는 나폴레옹 3세의 이발사 밑에서 소년 시절 일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보로디노 대위는 그 이발사와 더없이 좋은 사이였으니, 위엄 있는 겉모습과는 달리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꽤나 소탈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발사로 말하면, 대공의 외상값이 그의 장부에 적어도 오 년째 갚이지 않은 채 쌓여 가고 있었으니, 머리 감기고 자르는 따위의 여느 삯 못지않게 ‘포르투갈’과 ‘오드수베랭’ 화장수 병들이며 인두며 면도날이며 가죽띠 값으로 불어난 터라, 언제나 그 자리에서 셈을 치르고 마차와 승용마를 여러 필 거느린 생루를 더 우러러보았다. 생루가 정부와 함께 가지 못해 속상해한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대공이 흰 이발보에 목까지 싸여 머리를 의자 등받이에 단단히 젖힌 채 면도날에 목을 내맡기고 있던 참에, 그 일을 두고 힘주어 이야기했다. 한 젊은이의 사랑의 모험담은 이 대공 대위에게서 보나파르트풍의 너그러운 미소를 자아냈다. 그가 갚지 않은 제 외상값을 떠올렸을 성싶지는 않으나, 이 이발사의 청탁은 그를, 공작의 청탁이라면 언짢게 만들었을 만큼이나 흐뭇한 기분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직 턱이 비누 거품에 파묻혀 있는 동안 휴가가 약속되었고, 허가증은 그날 저녁으로 서명되었다. 그런데 온종일 제 무용담을 떠벌리는 버릇이 있고, 그러느라 놀라운 거짓말 재간을 부려 순전히 꾸며 낸 영예들을 제 것인 양 내세우던 이 이발사는, 정작 이번만은 생루에게 이 뚜렷한 공을 세우고도, 그것을 온 사방에 퍼뜨리기는커녕, 마치 허영은 으레 거짓말을 해야 하는 법이어서 거짓말할 여지가 없으면 겸손에게 자리를 내주기라도 하는 듯, 로베르에게 그 일을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의 벗들은 모두 내게, 내가 동시에르에 머무는 동안이라면, 또 훗날 로베르가 없을 때라도 내가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면, 자기들의 말이며 숙소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라고 장담했고, 나는 이 젊은이들이 제 안락과 젊음과 힘을 나의 병약함을 위해 내어 주는 그 더없는 정겨움을 느꼈다.

“대체 왜,” 그들은 내게 더 있으라고 조르고 나서 말을 이었다, “해마다 이리로 내려오지 않는 건가. 우리 조용한 생활이 자네 마음에 이렇게 드는데 말이야! 게다가 자넨 연대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에 어찌나 관심이 많은지, 영락없는 고참병일세.”

실로 나는, 학창 시절에 다른 아이들에게 테아트르프랑세의 배우들을 등급 매기게 하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내가 이름을 알고 있던 여러 장교를 저마다 받아 마땅해 보이는 흠모의 정도에 따라 분류해 달라고 계속 열심히 졸랐다. 갈리페나 네그리에처럼 늘 명단 맨 앞에 오르는 것을 들어 온 장군들 가운데 하나 대신에, 생루의 벗 하나가 “하지만 네그리에는 우리 장군들 중에서도 가장 무른 축이야.” 하고 깔보듯 내뱉으며, 포나 게슬랭 드 부르고뉴라는 새롭고 흠 없고 군침 도는 이름을 그 자리에 앉히면, 나는 오래전 티롱이나 페브르라는 낡은 이름이 아모리라는 낯선 이름의 느닷없는 폭발에 나가떨어지던 때와 똑같은 기쁜 놀라움을 느꼈다. “네그리에보다도 낫다고? 하지만 어떤 점에서 그런가, 예를 하나 들어 주게.” 나는 연대의 하급 장교들 사이에서조차 깊은 차이가 있기를 바랐고, 그 차이의 까닭 속에서 군사적 우월함을 이루는 본질을 붙잡기를 바랐다. 내가 그 이야기를 가장 듣고 싶었던 사람은, 내가 가장 자주 보아 온 사람이라는 이유에서, 바로 보로디노 대공이었다. 하지만 생루도 그의 벗들도, 제 기병 중대를 더할 나위 없는 효율의 극치로 이끄는 훌륭한 장교로서 그를 마땅히 인정하기는 했으나,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를, 나머지 사람들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고 그에 견주어 거칠고 병영 티가 나는 태도를 지닌, 사병 출신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어떤 다른 장교들과 같은 투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보로디노 를 귀족 태생의 장교들 축에는 끼우지 않는 듯했으니, 인정하건대 그는 생루를 대하는 태도에서조차 그 귀족 장교들과는 사뭇 달랐다. 다른 장교들은 로베르가 한낱 하사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그러니 그를, 평소라면 그의 세도 있는 친척들이 깔보았을 상급 장교들의 집에 초대해 준다면 그 친척들이 고마워할 법하다는 사실을 이용해, 젊은 기병 하사에게 쓸모가 있을 만한 거물이 온다 싶으면 그를 저녁 자리에 부를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오직 보로디노 대위만은 로베르와 공적인 관계, 하기야 그 관계는 늘 더할 나위 없었지만, 그 관계에만 머물렀다. 사실인즉, 이 대공은 제 할아버지가 황제에게서 원수이자 공작 대공의 작위를 받았고 그 뒤 혼인으로 황제 가문과 인척을 맺었으며, 제 아버지는 나폴레옹 3세의 사촌누이와 결혼하고 쿠데타 뒤 두 차례나 대신을 지냈는데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생루와 게르망트 일가붙이 앞에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고 느꼈고, 그 또한 그들과 같은 관점으로 사물을 보지 않는 터라 그들이 그에게는 하찮게 여겨졌다. 그는 생루가 보기에 자기가, 호엔촐레른가의 피붙이인 자기가 진짜 귀족이 아니라 농부의 손자쯤으로 여겨지리라 짐작했으나, 동시에 그 자신은 생루를, 그 백작 지위가 황제에게서 추인된 사람, 곧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이른바 ‘손본’ 백작이라 불리던 이들 가운데 하나이며, 국무대신 보로디노 대공 전하 밑으로 한참 처지는 부하 명단에서 처음에는 도지사 자리를, 다음에는 또 어떤 다른 자리를 애걸했던 사람의 아들로 여겼으니, 그 대공 전하로 말하면 편지에는 「각하」라 적혔고 군주의 조카였다.

어쩌면 조카 이상의 무엇이었는지도 모른다. 초대 보로디노 대공비는 나폴레옹 I세에게 총애를 베풀었다고 소문났으며 그를 따라 엘바 섬까지 갔다고 하고, 2대 대공비는 나폴레옹 III세에게 그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위의 평온한 얼굴에서 나폴레옹 I세의 자취가 엿보였다면, 타고난 이목구비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공들여 꾸민 위엄의 가면에서 그러했거니와, 이 장교에게는 특히 그 우수 어리고 다정한 눈빛과 늘어진 콧수염에서 나폴레옹 III세를 떠올리게 하는 무엇이 또한 있었다. 게다가 그 닮음이 어찌나 뚜렷했던지, 스당 이후 포로가 된 황제 곁으로 가게 해달라 청했다가 자기 앞에 끌려나온 비스마르크에게 쫓겨나던 차에, 마침 방을 나서려 채비하던 그 젊은이를 올려다본 비스마르크가 대번에 그 닮음에 강한 인상을 받아 결정을 번복하고 그를 도로 불러, 방금 다른 모든 이와 마찬가지로 거부당했던 허가를 내주었을 정도였다.

보로디노 대공이 생루에게도, 연대에 있던 다른 포부르 생제르맹 사교계 인사들에게도 먼저 다가설 뜻이 없었다면(그러면서도 평민 출신이지만 유쾌한 말벗이 되는 두 하급 장교는 자주 초대하면서도), 그것은 그가 제국의 위세라는 높이에서 그들 모두를 내려다보며 이 두 부류의 아랫사람 사이에 이런 구별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 부류는 자신이 아랫사람임을 아는 자들로, 겉으로 두른 위엄 아래 소박하고 쾌활한 기질을 지닌 그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좋아하는 이들이었고, 다른 한 부류는 스스로 그의 윗사람이라 여기는 자들로, 그로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이었다. 그리하여 연대의 다른 장교들은 모두 생루를 떠받들었으나, X⸺ 원수의 부탁으로 이 젊은이를 맡게 된 보로디노 대공은, 생루가 늘 더없이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군무에 관해서만 호의를 베풀 뿐, 어쩔 수 없이 그를 초대하다시피 하게 된 어느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한 번도 자기 집에 부르지 않았는데, 그 일이 내가 동시에르에 머무는 동안 있었던 터라 그는 생루에게 나도 함께 저녁에 데려오라 청했다. 그날 저녁, 나는 생루가 대위의 식탁에 앉은 모습을 지켜보며 두 귀족 사회, 곧 옛 귀족과 제국의 귀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그들 각자의 몸가짐과 세련됨에서 어렵지 않게 가려낼 수 있었다. 생루는 어떤 계급의 후예였으니, 그가 온 지력을 다해 배척했다 한들 그 계급의 결함은 이미 그의 피에 배어 있었고, 그 계급은 적어도 한 세기 동안 실질적 권위를 행사하지 못한 채, 정규 교육 과정의 일부이던 저 감싸주는 듯한 붙임성에서도 이제는 진지한 목적 없이 승마나 검술처럼 한낱 운동 삼아 갈고닦는 놀이 이상의 것을 보지 못했다. 옛 귀족이 어찌나 얕보았던지 그들과의 친분에 우쭐해하고 그 격의 없는 말투를 영광으로 여기리라 믿었던 저 중간 계급의 사람들을 만나면, 생루는 자기에게 소개된 이가 누구든, 어쩌면 그 낯선 이의 이름조차 알아듣지 못했으면서도, 다정하게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며(내내 다리를 꼬았다 풀었다 하고, 더없이 거리낌 없는 자세로 의자에 몸을 젖힌 채 한쪽 발을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그를 “이보게 친구”라 불렀다. 반면 보로디노 대공은 그 칭호가 아직 본래의 의미를 간직한 귀족에 속했으니, 그 칭호를 지닌 자들이 여전히 빛나는 공훈의 보상으로 주어진 화려한 봉록을 누리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지휘하며 사람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고관의 이력을 떠올리게 하는 한에서 그러했다. 대공은, 아마도 아주 또렷하게도, 뚜렷한 개인적 우월감으로도 아니었으나, 적어도 그 몸으로, 몸가짐과 처신 전반으로 그것을 드러내며, 자신의 지위를 여전히 유효한 특권으로 여겼다. 생루라면 어깨를 툭 치고 팔짱을 끼었을 바로 그 평민들을, 대공은 위엄 있는 붙임성으로 대했으니, 거기에는 위엄이 밴 본능적 절제가 그에게 자연스레 우러나는 미소 띤 스스럼없음을 눅였고, 진정한 다정함과 일부러 지어낸 뻣뻣함이 동시에 어린 어조가 서려 있었다. 이는 필시 그가, 아버지가 최고의 자리에 있었던 대사관과 궁정 자체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데서 비롯했을 텐데, 그곳에서라면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손에 발을 얹는 생루의 몸가짐은 결코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것은, 그가 중간 계급을 덜 얕본 데서 비롯했으니, 초대 황제가 원수들과 귀족들을 골라낸 마르지 않는 원천이 바로 그 계급이었고, 2대 황제가 루에르와 풀드 같은 이를 찾아낸 것도 그 안에서였기 때문이다.

어느 황제의 아들, 또는 필경 손자이면서도 기병 중대 하나를 지휘하는 것 말고는 더 중대한 할 일이 없었던 터라, 그의 명목상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집념은 매달릴 대상이 없어 보로디노 의 마음속에 실질적인 의미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술가의 정신이 그가 죽은 뒤로도 오랜 세월 그가 새긴 조각상을 계속 빚어내듯, 그 집념은 그의 안에서 형태를 갖추고 물질이 되어 그의 몸에 깃들었으니, 그의 얼굴에 비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가 하사에게 질책을 내뱉을 때 그 목소리에는 초대 황제의 생기가 담겼고,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는 2대 황제의 몽롱한 우수가 어렸다. 평복 차림으로 동시에르의 거리를 지날 때면, 중산모 챙 밑에서 새어 나오는 눈빛의 어떤 반짝임이 이 기병 대위의 둘레로 왕가의 은밀한 위엄을 발산했다. 그가 부관과 병참장교를 마치 베르티에와 마세나를 거느리듯 뒤세우고 상사 사무실로 성큼 들어서면 사람들은 떨었다. 자기 중대의 바지 천을 고를 때면, 그는 재단장에게 탈레랑도 쩔쩔매게 하고 알렉산드르도 속여넘길 만한 눈길을 쏘았다. 그리고 이따금 사열 도중에 멈춰 서서, 잘생긴 푸른 눈을 꿈으로 흐리게 하고 콧수염을 배배 꼬며, 새로운 프로이센과 새로운 이탈리아를 세우는 사람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잠시 뒤, 나폴레옹 III세에서 나폴레옹 I세로 되돌아와, 그는 장비가 제대로 닦이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병사들의 급식을 맛보아야겠다고 우겼다. 그리고 집에서, 사생활에서, 그가 대사에게나 어울릴 감청색 세브르 만찬 그릇 한 벌을(나폴레옹이 그의 아버지에게 준 것으로, 그가 사는 지방 거리의 평범한 집에서는 더욱 값을 매길 수 없어 보였으니, 마치 안락하고 넉넉한 농가로 개조된 어느 오래된 장원의 소박한 그릇장 안에서 관광객이 각별한 기쁨으로 감탄하는 진귀한 자기들 같았다) 꺼내 드는 것은, 나아가 황제가 준 다른 선물들까지 내놓는 것은, 남편이 프리메이슨만 아니라면 중간 계급 장교들의 아내를 위해서였다. 그 다른 선물이란, 해외 어느 외교 직책에서라면 역시 칭송을 받았을 저 고귀하고 매력 있는 몸가짐이었으니,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좋은 가문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가장 부당한 형태의 배척에 평생 처해지는 것을 뜻하지만 않았다면 그러했을 터였다. 그의 편안한 몸짓, 그의 친절, 그의 우아함, 그리고 감청색 법랑 아래 영광스러운 형상들까지 아로새긴, 신비롭고 빛으로 밝혀진, 살아 있는 성유물함 같은 그 눈빛이 그러했다. 그리고 대공이 동시에르에서 중간 계급과 맺은 사교 관계를 다루는 김에 이 몇 마디를 덧붙여도 좋겠다. 중령은 피아노를 아름답게 쳤고, 선임 군의관의 아내는 음악원 수석 수상자처럼 노래했다. 이 후자 부부도 중령 부부와 마찬가지로 매주 보로디노 와 저녁을 들곤 했다. 그들은 대공이 휴가로 파리에 가면 푸르탈레스 부인과 뮈라 가문 사람들, 그런 이들과 저녁을 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두말할 것 없이 우쭐했다. “하지만,” 하고 그들은 속으로 되뇌었다. “어차피 그는 대위일 뿐이잖아. 우리가 와주는 게 그로선 그저 반가운 거지. 그래도 참된 친구야, 알다시피.” 그러나 오래도록 파리에 더 가까운 보직을 얻으려 온갖 연줄을 다 대던 보로디노 가 보베로 전출되자, 그는 짐을 꾸려 떠났고, 동시에르의 극장과 점심을 자주 시켜 먹던 작은 식당을 잊듯이 그 두 음악 부부를 깨끗이 잊어버렸으며, 그들의 크나큰 분노에도 아랑곳없이, 그토록 자주 그의 식탁에 앉았던 중령도 선임 군의관도 남은 평생 그에게서 단 한마디 소식조차 받지 못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