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생루는 내 소식을 전하려 할머니께 편지를 썼다고, 파리와 동시에르 사이에 전화가 통하니 그것을 이용해 내게 이야기하시면 어떻겠냐는 제안까지 곁들였다고 털어놓았다. 요컨대 바로 그날 할머니가 내게 전화를 걸기로 되어 있었고, 그는 내게 네 시 십오 분 전쯤 우체국에 가 있으라고 일러주었다. 그 무렵 전화는 아직 오늘날처럼 흔히 쓰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접하는 신성한 힘에서 그 신비를 벗겨내는 데 습관이 필요로 하는 시간은 어찌나 짧은지, 전화가 곧바로 연결되지 않자 내 머릿속에 든 유일한 생각은 이것이 몹시 굼뜨고 관리가 엉망이라는 것뿐이었고, 나는 하마터면 항의를 넣기로 마음먹을 뻔했다. 요즘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나 역시 그 급작스러운 변화가 내 취향에는 충분히 빠르지 않다고 여겼으니, 그것은 몇 순간이면 우리가 이야기 나누고 싶던 사람을, 보이지는 않으나 곁에 있게 데려다주는 감탄스러운 마법이었다. 그 사람은 여전히 자기 사는 고을의(할머니의 경우라면 파리의) 제 책상 앞에 앉은 채, 우리와는 다른 하늘 아래, 반드시 같지만은 않은 날씨 속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제 그가 알려줄 온갖 사정과 근심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우리 공상이 정한 바로 그 순간에, (그 자신과 그를 가둔 온갖 둘레까지 통째로) 수백 마일을 단숨에 옮겨져 우리 귀가 닿는 곳에 와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동화 속 인물 같으니, 마법사가 그의 소원 한마디에 초자연적인 또렷함으로 그의 할머니나 약혼자를, 책장을 넘기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꽃을 꺾는 바로 그 모습으로, 구경하는 이 아주 가까이에, 그러면서도 실제 그 사람이 있는 그곳처럼 한없이 멀리에 나타나게 해주는 것이다. 그 기적이 이루어지려면, 우리는 그저 마법의 주둥이에 입술을 대고, (때로는 솔직히 필요해 보이는 것보다 좀 더 오래) 저 파수하는 처녀들을 불러내기만 하면 되니, 우리는 날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건만 결코 그 얼굴은 알지 못하며, 그들은 그토록 시샘하듯 지키는 저 어질어질한 어둠의 나라 문턱에서 우리의 수호천사가 되어준다. 곧, 우리가 그들의 개입으로 곁에 부재하던 이를 일으켜 세우면서도 그들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못하게 하는 전능한 이들이요, 쉼 없이 소리의 항아리를 비우고 채우고 건네는 보이지 않는 것의 다나이스들이며, 우리가 아무도 듣지 않기를 바라며 벗에게 은밀한 말을 속삭이던 바로 그때 잔인하게 “다 들려요!” 하고 외치는 짓궂은 복수의 여신들이요, 늘 성이 난 신비의 시녀들, 보이지 않는 것의 성마른 여사제들, 곧 전화국의 아가씨들을 불러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부름이 울린 순간, 오직 우리 귀에만 봉인이 풀린, 환영으로 가득한 그 밤 속에서, 자그마한 소리, 추상적인 소리, 곧 극복된 거리의 소리가 들리고,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것은 그녀다, 말하고 있는 것은, 거기 있는 것은 그녀의 목소리다. 그러나 그것은 어찌나 아득한가! 얼마나 여러 번 나는 괴로움 없이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던가. 마치, 그토록 내 귀에 가까이 있던 목소리의 주인을 오랜 시간 길을 가야만 비로소 볼 수 있다는 그 불가능 앞에서, 더없이 즐거워 보이는 만남의 허울과 환상을, 그리고 손을 뻗어 붙잡아 지니기만 하면 될 듯싶은 바로 그 순간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는지를 더 또렷이 느끼기라도 하듯. 그토록 가까운 그 목소리는 참으로 실재하는 현존이었으나, 실은 갈라져 있는 현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영원한 이별의 예감이기도 했다! 이렇게 귀 기울일 때마다 거듭, 그토록 멀리서 내게 말하는 그녀를 보지 못한 채, 나는 그 목소리가 다시는 떠오를 수 없는 심연에서 내게 부르짖는 듯 느꼈고, 언젠가 이런 목소리가(홀로, 다시는 볼 수 없을 몸에서 이미 떨어져 나온 채) 이렇게 돌아와, 영영 티끌로 돌아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그 말들을, 나오는 대로 입 맞추고 싶었을 그 말들을 내 귀에 속삭일 그날 내 가슴을 옥죌 그 불안을 알게 되었다.
이 오후, 아아, 동시에르에서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우체국에 이르렀을 때 할머니의 전화는 이미 접수되어 있었다. 나는 통화실로 들어섰다. 회선은 통화 중이었다. 누군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아마 대답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수화기를 귀에 대자 그 생명 없는 덩어리가 풀치넬라처럼 꽥꽥거리기 시작했으니, 나는 인형을 다루듯 그것을 도로 걸이에 걸어 잠재웠으나, 풀치넬라처럼, 다시 손에 쥐자마자 그것은 또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가망 없다 여기고 수화기를 아주 걸어버려, 마지막 순간까지 수다를 멈추지 않던 이 시끄러운 그루터기의 경련을 잠재우고는, 교환원을 찾아 나섰더니 그가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이윽고 나는 말을 했고, 몇 초의 침묵 뒤에, 문득 나는 내가 그토록 잘 안다고 잘못 여기던 그 목소리를 들었다. 그때까지 늘, 할머니가 내게 말할 때마다 나는 눈이 그토록 큰 자리를 차지하는 그 얼굴이라는 펼쳐진 악보 위에서 하시는 말을 뒤따르는 데 익숙했지만, 그 목소리 자체는 이 오후에 처음으로 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하나의 전체가 된 그 순간부터, 얼굴과 이목구비의 반주 없이 이렇게 홀로 내게 이르렀기에 그 비례가 달라진 듯 느껴졌으므로, 나는 그 목소리가 얼마나 다정한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어쩌면 그 목소리가 그토록 다정했던 적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홀로 불행하다는 것을 아는 할머니가, 평소 당신의 교육 원칙에 따라 억누르고 감추던 애정을 마음껏 쏟아내도 되리라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정했으나, 또한 얼마나 슬펐던가. 무엇보다 그 다정함 자체 때문에 그러했으니, 그것은 몇 안 되는 사람의 목소리를 빼고는 결코 그러지 못했을 만큼, 남에 대한 저항의 요소라고는, 온갖 이기심이라고는 거의 다 걸러낸 다정함이었다. 그 여림 탓에 연약하여, 그것은 시시각각 부서질 듯, 맑은 눈물의 흐름으로 스러질 듯했다. 게다가 그 목소리를 얼굴의 가면 없이 홀로 내 곁에 두고 보니, 나는 한평생에 걸쳐 그 목소리에 새겨진 슬픔들을 처음으로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 새로운 인상을 주어 내 가슴을 찢어놓은 것이 오직 그 목소리, 그것이 홀로였기 때문이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목소리의 고립이 또 다른 고립의 상징이자 표상이며 직접적인 결과였기 때문이니, 곧 태어나 처음으로 나에게서 떨어져 있던 할머니의 고립이었다. 내 일상의 예사로운 흐름 속에서 시시각각 내게 내리시던 명령이나 금지, 내가 할머니께 품은 애정을 상쇄하던 복종의 지겨움이나 반항의 불길은 이 순간 사라졌고, 실은 영영 사라질 수도 있었다(할머니는 이제 나를 당신 곁에 두고 다스리기를 고집하지 않으시고, 내가 아예 동시에르에 눌러앉거나 적어도 되도록 오래 머물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던 참이었으니, 그 변화가 내 건강에도 공부에도 이로울 성싶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 귀에 울리는 이 작은 종 속에 눌러 담겨 있던 것은, 그때까지 날마다 균형추를 이루어주던 상반된 압력들에서 풀려나, 이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이 나를 통째로 앗아가는 우리 서로의 애정이었다. 할머니는 내게 머물라 말씀하심으로써, 돌아가고 싶은 초조하고 미칠 듯한 갈망으로 나를 가득 채우셨다. 이제부터 내게 허락하신, 결코 동의하시리라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이 행동의 자유는, 문득 내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의 내 행동의 자유만큼이나 슬프게 느껴졌다(그때에도 나는 여전히 할머니를 사랑할 텐데, 할머니는 영영 나를 버리고 떠나신 뒤일 테니). “할머니!” 하고 나는 그분을 향해 외쳤다. “할머니!” 그리고 입 맞추고 싶었으나, 내 곁에는 오직 그 목소리뿐,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어쩌면 나를 다시 찾아오려 올 그것처럼 만질 수 없는 환영뿐이었다.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러나 그때, 한층 더 외로이 남겨진 채, 나는 그 목소리를 더는 잡지 못하게 되었다. 할머니는 이제 내 소리를 들으실 수 없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어져 있지 않았고, 얼굴을 마주하지도, 서로에게 들리지도 않게 되었다. 나는 텅 빈 밤을 울리며 할머니를 계속 불렀고, 그 밤 속에서 할머니의 부름도 헤매고 있으리라 느꼈다. 나는 오래전 언젠가 한 번 느꼈던 바로 그 불안에 휩싸였으니, 어린아이였을 적 인파 속에서 할머니를 잃어버렸던 날, 그녀를 찾지 못한다는 것보다도 그녀가 나를 찾고 있을, 내가 자기를 찾고 있으리라 스스로 되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온 불안이었다. 그것은 더는 대답할 수 없는 이들에게, 우리가 미처 하지 못한 온갖 말과 우리가 불행하지 않다는 다짐을 그토록 들려드리고 싶은 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그날 내가 느끼게 될 불안에 견줄 만했다. 마치 내가 이미 사랑하는 유령 하나를 유령들의 세계로 잃어버리게 놓아둔 듯했고, 나는 홀로 그 기계 앞에 서서 부질없이 되풀이했다. “할머니! 할머니!” 홀로 남은 오르페우스가 죽은 아내의 이름을 되풀이하듯. 나는 우체국을 나와 로베르를 그의 식당으로 찾아가, 나를 파리로 돌아가게 할 전보가 올 것을 반쯤 예상하고 있으니 기차가 몇 시에 떠나는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알아내고 싶다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지만 이 결심에 이르기 전에, 나는 밤의 딸들을, 말의 전령들을, 형체도 이목구비도 없는 신들을 다시 한번 불러내 보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수호신들은 그 기적의 문을 다시 한번 열어주기를 마다했거나, 아마도 더 그럴듯하게는, 그럴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늘 하던 대로 지칠 줄 모르고 인쇄술을 발명한 저 존경스러운 이와, 인상파 그림을 수집하고 자동차를 모는 젊은 대공(보로디노 대위의 조카였다)에게 아무리 호소해도 부질없었다. 구텐베르크와 바그람은 그들의 간청에 응답하지 않았고,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 계속 못 들은 척하리라 느끼며 물러 나왔다.
내가 로베르와 그의 벗들 사이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제 그들과 함께 있지 않다는 것, 내 출발이 이제 돌이킬 수 없이 정해졌다는 고백을 삼갔다. 생루는 내 말을 믿는 듯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첫 순간부터 내 망설임이 꾸며낸 것이며 이튿날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챘었다. 그리고 그의 벗들이 접시가 식어가도록 내버려둔 채 그와 함께 나를 파리로 데려다줄 기차를 시간표에서 뒤지는 동안, 또 우리가 차갑고 별 총총한 밤 속에서 선로 위 기관차들의 기적 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지난 며칠 밤 내내 벗들의 우정과 저 멀리 지나는 기차에서 얻던 것과 같은 마음의 평화를 분명 더는 느끼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날 저녁 나를 저버리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같은 몫을 해주었다. 내 출발은, 그것을 나 혼자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되자, 곧 해야 할 일에 내 억센 벗들, 로베르의 전우들, 그리고 저 또 다른 굳센 존재들인 기차들의 더 정상적이고 더 건전한 활동이 집중되어 있음을 느끼자, 나를 덜 짓눌렀다. 그 기차들은 동시에르와 파리 사이를 밤이면 밤마다, 아침이면 아침마다 오가며, 할머니에게서 너무 오래 떨어져 있던 내 고립 속에서 너무 빽빽하고 견딜 수 없던 것을 돌이켜보면 날마다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들로 풀어헤쳐 주었다.
“네 말이 참말이 아니라거나, 네가 아직 우리를 떠날 생각이 아니라는 걸 의심하는 건 아니야.” 생루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떠나는 척하고, 내일 아침 일찍 나한테 작별 인사하러 와. 안 그러면 널 못 볼 위험이 있거든. 나는 점심 먹으러 나가는데, 대위한테 외출 허가를 받았어. 두 시까지는 병영에 돌아와야 해, 오후 내내 행군이 있으니까. 내가 찾아갈 사람 집이 여기서 삼사 킬로미터 밖이니, 그 사람이 어떻게든 나를 제때 돌려보내 주겠지.”
그가 이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호텔에서 심부름꾼이 나를 찾아왔다. 전화 교환원이 나를 찾으러 보낸 것이었다. 나는 우체국으로 달려갔으니,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기 때문이다. 관리들이 내게 하는 대답 속에서 “시외선”이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되풀이되었다. 나는 초조함에 애가 탔으니, 나를 찾은 것이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우체국은 밤을 앞두고 문을 닫는 중이었다. 마침내 나는 연결되었다. “할머니세요?” 강한 영국식 억양의 여자 목소리가 대답했다. “네, 그런데 당신 목소리를 모르겠는데요.” 나 역시 내게 말하는 그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게다가 할머니는 나를 tu라고 부르셨지 vous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그러자 모든 것이 밝혀졌다. 자기 할머니가 전화로 찾던 그 젊은이는 내 이름과 거의 똑같은 이름을 지녔고, 내가 묵는 호텔의 별관에 머물고 있었다. 바로 내가 할머니께 전화를 걸던 그날 이 전화가 걸려온 터라, 나는 나를 찾는 것이 할머니라고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체국과 호텔이 겹쳐 이중의 착오를 빚어낸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이튿날 아침 나는 늦게 일어나, 이미 점심 초대를 받은 시골 저택으로 떠나버린 생루를 붙잡지 못했다. 한 시 반쯤, 나는 어쨌든 병영으로 가서 그가 도착하기 전에 거기 있기로 마음먹었는데, 그리로 가는 길에 큰길 하나를 건너던 참에, 나와 같은 방향으로 내 뒤에서 오던 틸버리 한 대가 나를 앞지르며 옆으로 펄쩍 비켜서게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외알 안경을 낀 부사관 하나가 그것을 몰고 있었으니, 바로 생루였다. 그의 곁에는 그가 점심 대접을 받은 그 벗이 있었는데, 전에 우리가 저녁을 든 호텔에서 한 번 만난 적 있는 이였다. 로베르가 혼자가 아니었기에 나는 감히 소리쳐 부르지 못했으나, 그가 멈춰 나를 태워주기를 바라며, 낯선 이가 있는 탓으로 여겨질 만한 커다란 손짓으로 모자를 휘저어 그의 주의를 끌었다. 나는 로베르가 근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를 보기만 한다면 나를 못 알아볼 리 없으리라 여겼다. 과연 그는 내 인사를 보고 답례했으나, 멈추지는 않았다. 미소도 없이, 얼굴 근육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전속력으로 몰아가며, 그는 개인적으로는 알지 못하는 어느 기병의 경례를 받아주기라도 하듯, 잠시 손을 군모 챙에 올린 채로만 있었다. 나는 병영으로 달려갔으나 길이 멀었다. 내가 이르렀을 때 연대는 연병장에서 사열 중이었고, 나는 거기 서 있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생루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것에 가슴이 미어졌다. 나는 그의 방으로 올라갔으나 그는 가고 없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행군에서 열외된 환자들, 행군을 면제받은 신병들, 젊은 대학 출신 지원병, 그리고 ‘고참병’ 중 하나로 이루어진, 연대의 사열을 지켜보던 한 무리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혹시 생루 하사를 보지 못했나요?” 하고 나는 물었다.
“사열에 나갔습니다, 나리.” 고참병이 말했다.
“저는 못 봤는데요.” 지원병이 말했다.
“못 봤다고?” 고참병이 나한테는 관심을 뚝 끊고 외쳤다. “우리 그 유명한 생루를 못 봤다고, 새 바지 입고 뽐내는 그 꼴을! 대위 영감이 저걸 보면, 장교용 나사라니, 이거 참!”
“허, 대단하시네, 정말. 장교용 나사라.” 젊은 지원병이 대꾸했다. 그는 ‘내무반 병자’로 보고되어 행군을 면제받았고, 적잖은 불안을 품은 채 고참병들과 허물없이 지내보려 애쓰고 있었다. “당신이 말하는 그 장교용 나사가 이런 천이란 말이오?”
“예?” 고참병이 성이 나서 되물었다.
그는 젊은 지원병이 그 바지가 장교용 나사로 지어졌음을 의심하는 데 분개했으나, 그는 팡게른스테르덴이라는 이름의 마을 출신 브르타뉴 사람으로, 마치 영어나 독일어라도 되는 양 어렵사리 프랑스어를 익힌 터라, 감정에 북받칠 때면 말을 찾을 시간을 벌려고 자꾸 “예?” 하고 되뇌었고, 그렇게 채비를 갖춘 뒤에 웅변을 터뜨렸는데, 자기가 남들보다 더 잘 아는 몇몇 낱말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되, 서두르지 않고, 발음이 서투른 것을 얼버무리려 온갖 조심을 다했다.
“아! 이런 천이라니.” 그는 말하는 속도가 느려질수록 격렬함이 더해가는 분노로 터뜨렸다. “아! 이런 천이라니. 내가 그렇다고 하면, 장교용 나사라니까, 내-가-말-하-면, 내-가-말-을-했-으-면, 그건 내가 아니까 하는 소리지, 안 그런가.”
“알았소, 그럼.” 이 논변의 힘에 눌린 젊은 지원병이 대꾸했다. “흥분하지 마쇼, 영감님.”
“저기, 봐요, 대위 영감이 오네. 아니, 저 생루 좀 보라니까. 다리 뻗는 저 폼하며, 저 고갯짓하며. 저게 부사관으로 보이오? 게다가 저 외알 안경이라니. 야, 저 친구 정말 대단하다니까.”
나는 내가 있어도 조금도 거북해 보이지 않는 이 기병들에게, 나도 창밖을 내다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내가 그러는 것을 마다하지도, 자리를 비켜주려 움직이지도 않았다. 나는 보로디노 대위가 말을 속보로 몰며, 마치 자신이 아우스터리츠 전투에 참가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듯 위풍당당히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몇몇 구경꾼이 연대가 줄지어 나오는 것을 보려고 문 옆에 멈춰 서 있었다. 군마 위에 꼿꼿이 앉아, 통통해지려는 얼굴에, 뺨은 황제다운 풍만함을 띠고, 눈은 맑게 갠 대공은, 필시 어떤 환각에 사로잡힌 것이 틀림없었으니, 이는 전차가 지나간 뒤 그 우르릉거림에 뒤이은 정적이 내게는 어렴풋이 음악적인 고동으로 울려 메아리치는 듯 느껴질 때 나 자신이 늘 그러했던 것과 같았다. 나는 생루에게 작별 인사를 하지 못한 것이 비참했으나, 그래도 떠났으니, 나의 유일한 근심은 할머니께 돌아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늘, 이 작은 시골 고을에서, 할머니가 홀로 무엇을 하고 계실지 생각할 때면, 나는 그분을 나와 함께 계실 때의 모습으로 그리며 내 존재를 지워버렸으나 그런 지움이 낳는 효과는 헤아리지 않았다. 이제 나는 되도록 빨리, 그분의 품 안에서 나 자신을 저 환영으로부터 풀어내야만 했으니, 곧 그때껏 짐작조차 못 하다가 그분의 목소리에 문득 불려 나온, 나에게서 정말로 떨어져 나온, 체념한, 내가 여태 한 번도 그분에게 있다고 여기지 못한 분명한 나이를 지닌 할머니, 언젠가 내가 발베크로 떠나며 엄마를 홀로 남겨진 집에 있다고 상상했던 것처럼, 빈집에서 방금 나의 편지를 받으신 할머니라는 환영으로부터.
아아, 이 환영이야말로 내가 정말로 본 것이었으니, 할머니가 내 귀가를 미처 전해 듣기 전에 응접실로 들어섰을 때, 나는 그분이 책을 읽고 계신 것을 발견했다. 나는 방 안에 있었으나, 아니 아직 방 안에 있지 않았으니, 그분이 내가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누군가 들어오면 하던 일을 치워버릴 여인이 일감을 앞에 두고 있다 들킨 것처럼, 그분은 결코 내게 내보인 적 없는 상념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기고 계셨다. 나로 말하면, 돌아온 짧은 순간에만 누리는, 오래가지 않는 저 특권, 말하자면 자기 자신의 부재를 구경하는 관객이 되는 능력 덕분에, 거기 있는 것은 오직 증인, 관찰자, 모자를 쓰고 여행용 외투를 걸친 자, 그 집에 속하지 않은 낯선 이, 다시는 보지 못할 장소의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사뿐이었다. 할머니를 언뜻 보았을 때 내 눈에서 기계적으로 일어난 그 과정은 참으로 한 장의 사진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그들을 향한 우리의 그침 없는 사랑이 이루는 살아 움직이는 체계, 끝없는 운동 속에서가 아니고서는 결코 보지 못하니, 그 사랑은 그들의 얼굴이 내미는 상들이 우리에게 이르기 전에 그것들을 제 소용돌이 속에 붙잡아, 우리가 늘 그들에 대해 지녀온 관념 위로 되던지고, 그 관념에 들러붙어 그것과 겹쳐지게 만든다. 할머니의 이마와 뺨에서 나는 그분 정신의 가장 섬세하고 가장 변함없는 자질들을 읽는 데 익숙했으니, 또한 무심한 눈길 하나하나가 죽은 이를 불러내는 강신술이요, 우리가 사랑하는 얼굴 하나하나가 과거의 거울인 터라, 내가 어찌 그분에게서 흐려지고 달라진 것을 못 보고 지나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우리 일상의 가장 하찮은 광경 속에서도 사유를 실은 우리의 눈은, 고전 비극이 그러하듯, 극의 진행에 이바지하지 않는 상은 모조리 흘려버리고 그 뜻을 알아듣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상만 붙들어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의 눈 대신 순전히 물질적인 대상, 곧 사진 감광판이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면, 그때 우리가 보게 될 것은, 이를테면 학사원 안뜰에서, 마차를 부르러 나서는 어느 아카데미 회원의 위엄 있는 등장이 아니라, 그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뒤로 나자빠지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 술에 취했거나 땅이 얼어붙기라도 한 듯한 그의 넘어짐이 그리는 포물선일 것이다. 어쩌다 우연의 심술이, 우리의 총명하고 경건한 애정이 제때 나서서 눈이 결코 보아서는 안 될 것을 가려주지 못하게 막을 때, 애정이 눈에게 선수를 빼앗겨, 눈이 먼저 그 자리에 나서서 홀로 그것을 차지하고는, 필름처럼 기계적으로 작동하여, 오래전에 이미 존재하기를 그쳤으나 우리의 애정이 여태껏 그 죽음을 우리에게서 감추어온 사랑하는 벗 대신, 그 애정이 하루에도 백 번씩 정답고 속임수 어린 닮음으로 옷 입혀온 새로운 사람을 우리에게 보여줄 때가 바로 그러하다. 그리하여, 오래도록 제 얼굴을 비춰본 적 없어, 결코 보지 않는 그 얼굴에 대한 기억을 마음속에 지닌 자신의 이상적인 상으로 늘 새로이 해온 병자가, 거울 속에서, 메마른 황무지 같은 뺨 한가운데 이집트의 피라미드 하나만큼이나 커다란 코의 비스듬한 붉은 구조물을 언뜻 보고는 흠칫 물러서듯, 할머니가 여전히 나 자신이었던 나, 그분을 오직 내 영혼 속에서만, 늘 과거의 같은 자리에서, 잇닿아 겹쳐 쌓인 기억들의 투명한 겹장 너머로만 보아온 나는, 문득 새로운 세계, 곧 시간의 세계, ‘저이도 이제 부쩍 늙기 시작했군’ 하고 우리가 말하는 낯선 이들이 사는 그 세계의 일부를 이루는 우리 응접실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오직 한순간만, 그분이 곧 사라져버렸으므로, 소파에 앉아 램프 아래, 얼굴이 붉고, 둔중하고 흔해빠진, 병들고, 상념에 잠긴 채, 제정신이 아닌 듯한 눈으로 책의 행들을 좇는, 내가 알지 못하는 풀 죽은 늙은 여인을 보았다.
게르망트 부인의 소장품 가운데 엘스티르의 그림들을 보게 해달라는 나의 청에, 생루는 “내가 책임지고 되게 하지” 하고 응했었다. 그런데 과연, 공교롭게도, 응한 것은 그였고 오직 그뿐이었다. 우리는 남을 대신해 곧잘 장담하니, 우리의 마음 무대에 그들을 나타내는 작은 인형들을 세워놓고 뜻대로 놀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도 우리는 남의 본성이 우리와 다른 데서 오는 어려움을 헤아리며, 그 본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어떤 방책에, 곧 그의 물질적 이해에 대한 호소, 설득, 감정의 자극에 기대기를 마다하지 않으니, 그것이 그의 상반된 성향을 상쇄해 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본성과 다른 이 차이들도 그것을 상상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본성이요, 이 어려움들도 그것을 일으키는 것은 우리이며, 이 강권하는 동기들도 그것을 들이대는 것은 우리다. 우리의 마음속 눈앞에서 우리가 상대에게 되풀이해 연습시켜, 우리가 고른 대로 행하게 만든 그 행동들도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그것을 실제 삶에서 그가 해내는 것을 보고자 할 때면 사정이 달라져, 우리는 넘어서지 못할지도 모를 보이지 않는 저항에 부딪친다. 그중 가장 강한 것 하나는 필경, 어떤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여자의 마음속에서, 자기를 사랑하는 그 남자가 불러일으키는 역겨움, 곧 넘어설 수 없는 고약한 혐오가 키워내는 저항일 것이다. 생루가 여전히 파리에 오지 않던 그 긴 몇 주 동안, 그의 외숙모는, 그가 그리해 달라고 편지로 간청했으리라 내가 의심치 않았건만, 단 한 번도 엘스티르의 그림들을 보러 자기 집에 들르라고 나를 청하지 않았다.
나는 이 건물의 또 다른 세입자 쪽에서 냉랭한 기색을 알아챘다. 바로 쥐피앙이었다. 그는 내가 동시에르에서 돌아왔으면 우리 집으로 올라가기 전에 먼저 들러 인사부터 했어야 한다고 여긴 걸까? 어머니는 아니라고, 그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다고 하셨다. 프랑수아즈가 어머니께,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 까닭 없이 갑작스레 언짢아하는 발작을 일으키곤 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런 발작은 으레 얼마 지나면 가라앉았다.
그러는 사이 겨울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몇 주에 걸친 소나기와 폭풍 끝에, 나는 내 굴뚝에서, 나를 바다로 가고 싶은 갈망에 몸부림치게 하던 저 형체 없고 탄력 있고 음울한 바람 대신, 바깥 벽에 둥지 튼 비둘기들의 구구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어른어른 빛나며, 뜻밖에, 첫 히아신스처럼, 제 품은 심장을 살며시 찢어 열어 그 소리의 꽃이, 자줏빛에 공단처럼 보드라운 그 꽃이 돋아나게 하고, 아직 덧문이 닫혀 어두운 내 침실 안으로, 마치 열린 창처럼, 첫 화창한 날의 열기와 눈부신 밝음과 나른함을 들여보냈다. 그날 아침, 나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에 가곤 하던 그해 이래 한 번도 머릿속에 떠오른 적 없던 어느 통속 가요를 흥얼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좋은 날과 궂은 날이 되돌아올 때, 대기는 그토록 깊이 우리의 몸에 작용하여, 우리가 잊어버린 어둑한 선반에서, 우리 기억으로는 판독할 수 없던, 거기 적힌 선율들을 끄집어낸다. 이윽고 한층 또렷이 깨어 있는 몽상가 하나가, 내가 그 안에서 귀 기울이고 있으면서도 처음에는 무엇을 연주하는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이 악사를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