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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⑭

3권 제1부 · 제1장

나는 발베크에 이르렀을 때 그 성당에서, 그곳을 알기 전에 내게 지녔던 매력을 찾지 못한 것이 발베크만의 무슨 특별한 까닭 때문은 아니었음을 익히 깨달았다. 피렌체에서도 파르마에서도 베네치아에서도, 그곳의 풍경을 바라볼 때 내 상상은 결코 내 눈을 대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을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어느 설날 오후, 밤이 내릴 무렵, 나는 벽보들이 늘어선 기둥 앞에 서서, 어떤 엄숙한 축일이 달력의 다른 날들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여기는 우리 생각 속에 자리한 착각을 알아차렸다. 그렇지만 나는 피렌체에서 부활절을 보내기를 고대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그 축일을, 말하자면 백합의 도시의 대기로 만들어, 부활절 당일에 단박에 피렌체다운 무언가를, 피렌체에 부활절다운 무언가를 부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부활절은 아직 멀었으나, 내 앞에 펼쳐진 날들의 폭 속에서 성주간의 날들은, 그저 그 사이에 끼어 있을 뿐인 날들 끝에 한층 또렷이 도드라졌다. 멀리서 뻗어온 한 줄기 빛에 닿아, 마치 나머지가 그늘에 잠겼을 때 멀리서 보이는 마을의 어떤 집들처럼, 그날들은 온 햇빛을 붙들어 간직하고 있었다.

날씨가 이제 한결 누그러졌다. 그리고 부모님마저 내게 운동을 좀 더 하라고 다그치심으로써, 아침 산책을 다시 시작할 구실을 내게 주셨다. 나는 그 산책을 그만두려 했었으니, 그것이 곧 게르망트 부인과 마주친다는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로 나는 그 산책을 내내 생각했고, 그리하여 시시각각, 산책을 나설 새로운 이유를, 게르망트 부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설령 그분이 존재하지 않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아침마다 그 시각에 어김없이 산책을 나섰으리라고 나를 어렵잖게 납득시키는 이유를 찾아내게 되었다.

아아, 나로서는 그녀 아닌 다른 누구와 마주치는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지만, 그녀로서는 나 아닌 세상 누구와 마주치든 견딜 만하리라는 것을 나는 느꼈다. 아침 산책길에 그녀는 자기가 바보로 여기는 숱한 이들의 인사를 받곤 했다. 그러나 그런 자들이 제 앞길에 나타나는 것은, 그녀에게 어떤 즐거움을 약속해 주지는 못할지언정, 적어도 한낱 우연의 결과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녀는 이따금 그들을 멈춰 세웠으니,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영혼이 베푸는 대접을 받아들이고 싶은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며, 다만 그 상대가 아무리 수수하고 볼품없더라도 다른 영혼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니, 반면 내 마음속에서는 그녀가 마주하게 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느끼고 짜증스러워했다. 그리하여, 내가 그녀와 같은 길을 가는 데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 때조차, 나는 그녀가 곁을 지날 때 죄지은 사람처럼 떨었다. 그리고 이따금, 내 접근에 지나쳐 보였을 무언가를 상쇄하려고, 나는 그녀의 인사에 겨우 답하는 둥 마는 둥 하거나, 모자를 벗지 않은 채 그녀의 얼굴에 눈을 박았고, 그리하여 그녀를 그 어느 때보다 화나게 만들어, 나를 무례하고 버릇없는 데다 건방지다고까지 여기게 만들 뿐이었다.

이제 그녀는 한결 가벼운, 아니 적어도 한결 밝은 옷차림을 하고 거리를 거닐어 내려오곤 했다. 그 거리에는 벌써, 마치 봄이라도 온 듯, 오래된 귀족 저택들의 거대한 정면 사이에 끼어 있는 좁은 상점들 앞에, 버터 파는 여자와 과일 파는 여자와 채소 파는 여자의 노점 위로, 햇빛을 가리는 차양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멀리 걸어가며 양산을 펴고 길을 건너는, 내가 바라보는 저 여인이야말로, 그것을 판단할 자격이 가장 높은 이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런 몸짓을 해 보이고 그 몸짓에서 더없이 사랑스러운 무언가를 빚어내는 기술에서 살아 있는 최고의 명수라고. 그러는 동안 그녀는 이 널리 퍼진 명성을 알지 못한 채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명성을 조금도 빨아들이지 않은 그녀의 가늘고 고집스러운 몸은 보랏빛 비단 스카프 아래 뻣뻣하게 앞으로 기울어 있었다. 맑고 뾰로통한 그녀의 두 눈은 앞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고, 어쩌면 나를 얼핏 알아보았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토시를 바로잡고, 거지에게 적선을 하고, 꽃 파는 여자에게서 제비꽃 한 다발을 사는 모습을, 위대한 화가의 붓놀림을 지켜볼 때 느꼈을 법한 바로 그 호기심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게 이르러, 이따금 희미한 미소를 곁들여 인사를 건넬 때면,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나를 위해 색채로 한 폭을 스케치하고, 나에게만의 헌사를 덧붙여, 예술의 걸작인 그림 한 점을 건네준 것만 같았다. 그녀의 드레스는 저마다 내게 그녀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주위 환경으로, 그녀 영혼의 어떤 한 단면을 그녀 둘레에 투영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사순절의 어느 아침, 그녀가 오찬에 나가는 길에, 나는 목 언저리가 살짝 파인 선홍빛 벨벳 드레스를 입은 그녀와 마주쳤다. 게르망트 부인의 얼굴은 풍성하게 쌓아 올린 금발 아래에서 꿈을 꾸는 듯 보였다. 나는 여느 때보다 덜 슬펐다. 그녀 표정의 우수와, 드레스의 강렬한 빛깔이 그녀와 나머지 세상 사이에 세워 놓은 일종의 유폐가, 그녀를 어쩐지 외롭고 불행해 보이게 했고, 그것이 나를 위로했기 때문이다. 그 드레스는 내가 그녀의 것인 줄은 알아보지 못한, 그러나 어쩌면 내가 위로해 줄 수도 있었을 어느 심장의 진홍빛 광선이 그녀 둘레에 물질로 맺힌 것처럼 여겨졌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주름을 지닌 그 옷의 신비로운 빛에 감싸여, 그녀는 내게 그리스도교 초기 시대의 어느 성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이 거룩한 순교자에게 내 모습을 보이며 괴로움을 끼친 것이 부끄러워졌다. ‘하지만 어쨌든,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 아닌가.’

거리는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다, 하고 나는 그 말에 다른 뜻을 담아 되뇌었다. 그리고 실제로, 비에 자주 젖어 이탈리아 옛 도시의 거리가 이따금 그러하듯 아름답고 값지게 빛나던 그 붐비는 대로에서,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세상의 공적인 삶 속에 자신의 은밀한 사생활의 순간들을 뒤섞어, 이렇듯 아무에게나 자신을 드러내고 지나는 행인마다에게 떠밀리면서도, 가장 위대한 예술작품이 지닌 그 눈부신 무상성(無償性)을 지녔다는 데 나는 경탄했다. 아침에, 밤새 깨어 있다가 밖에 나갔던 터라, 오후가 되면 부모님은 내게 잠시 누워 잠을 청해 보라고 이르곤 했다. 잠을 청할 때에는 그 추구에 대해 굳이 많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습관이 크게 도움이 되고,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조차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오후의 시간에는 그 둘이 다 없었다. 잠들기 전에 나는 잠들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너무 오래 매달린 나머지, 잠든 뒤에도 그 생각의 일부가 남아 있었다. 그것은 거의 완전한 어둠 속의 희미한 빛에 지나지 않았지만, 내 잠 속에 반영을 드리울 만큼은 밝았다. 먼저 내가 잠들 수 없다는 생각의 반영이, 그다음에는 그 반영의 반영으로서, 내가 잠들지 않았다는 생각을 품은 것이 실은 내 잠 속에서였다는 반영이, 그리고 한 번 더 굴절되어, 나의 깨어남이… 이어 다시 선잠으로 이어졌다. 그 선잠 속에서 나는 방으로 들어온 몇몇 벗에게, 조금 전 잠들어 있을 때 나는 내가 잠들지 않았다고 상상했노라고 이야기하려 애쓰고 있었다. 이 미묘한 층위들은 좀처럼 분간되지 않았다. 그것들을 남김없이 붙잡으려면 예리한, 그리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지각의 섬세함이 필요했으리라. 마찬가지로 훗날 베네치아에서, 해가 진 지 한참 지나 사방이 아주 캄캄해진 듯 보일 때, 나는 그 자체로는 감지되지 않는 마지막 빛 한 자락의 메아리 덕분에, 마치 어떤 광학적 페달을 밟기라도 한 듯 운하의 수면 위에 하염없이 붙들린 그 빛으로 하여, 궁전들의 그림자가 마치 영원토록 그러하리라는 듯, 물의 어스름한 잿빛 위에 한결 짙은 벨벳으로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 내 꿈들 가운데 하나는, 깨어 있는 동안 내 상상이 어느 바다에 둘러싸인 고장과 그 중세의 과거를 그려 보려 자주 애쓰던 것의 종합이었다. 잠 속에서 나는 색유리 창에 그려진 것처럼 물결이 잔잔해진 바다에서 솟아오른 고딕 요새를 보았다. 바다의 한 팔이 도시를 둘로 갈랐다. 초록빛 물이 내 발치까지 뻗어 왔고, 맞은편 기슭에서는 어느 동방식 교회의 주춧돌을, 그 너머로는 이미 14세기에 존재하던 집들을 적시고 있어서, 그리로 건너가는 일은 곧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오르는 일이었으리라. 자연이 예술에게서 배우고, 바다가 고딕이 된 이 꿈, 내가 도달하기를 갈망하고 도달하고 있다고 믿었던, 이 불가능에 이르는 꿈을, 나는 전에도 여러 번 꾼 것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잠 속에서 상상하는 것은 스스로를 과거 속에 증식시키고, 처음 겪는 것조차 낯익은 것으로 나타나게 하는 속성이 있는 법이라, 나는 내가 착각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나는 실제로 이 꿈을 자주 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모든 잠에 공통된 제약들 또한 상징적인 방식으로 내 잠에 비쳤다. 나는 어둠 속에서 방 안에 있던 벗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는데, 우리는 눈을 감고 자기 때문이다. 꿈꾸는 동안에는 나 자신과 끝없는 논쟁을 벌일 수 있었던 내가, 이 벗들에게 말을 건네려 하자마자 말이 목에 걸리는 것을 느꼈는데, 우리는 잠 속에서 또렷이 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었으나 팔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는데, 우리는 잠들어 있을 때 걷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득 나는 그들에게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졌는데, 우리는 옷을 걸치지 않고 자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눈이 멀고, 입술이 봉해지고, 팔다리가 묶이고, 몸이 벌거벗은 채로, 내 잠 스스로가 투영해 낸 잠의 형상은, 스완이 내게 사진으로 준 저 위대한 우의적(寓意的) 형상들, 그 가운데 하나에서 조토가 입에 뱀을 문 ‘질투’를 그려 놓은 그런 형상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생루는 파리에 몇 시간만 머물렀다. 그는 자기 사촌에게 내 이야기를 꺼낼 기회가 없었노라고 다짐하듯 말하며 왔다. “요즘 오리안은 도무지 상냥하질 않아.” 그는 순진하게 속내를 드러내며 설명했다. “이젠 예전의 내 오리안이 아니야. 사람들이 그 여자를 아주 바꿔 놨어. 정말이지, 그 여자 일로 골머리 썩일 것 없다니까. 넌 그 여자를 너무 과하게 추켜세우고 있어. 내 사촌 푸아티에는 만나 볼 생각 없어?” 그는 그것이 내게 조금도 기쁠 리 없다는 점은 미처 헤아리지도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아주 총명한 젊은 여자야. 넌 마음에 들 거야. 내 사촌인 푸아티에 공작과 결혼했는데, 공작은 좋은 사람이긴 해도 그 여자한테는 좀 굼떠. 내가 그 여자한테 네 얘기를 했어. 널 데려와 달라더군. 오리안보다 훨씬 더 예쁘고, 더 젊기도 해. 정말이지 좋은 사람이야, 알잖아, 정말 괜찮은 부류라니까.” 이런 표현들은 로베르가 요즘 들어, 그것도 더할 나위 없이 열띠게 받아들인 말투로, 문제의 인물이 섬세한 천성을 지녔다는 뜻이었다. “그 여자가 드레퓌스파라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어. 그 여자가 어떤 사람들 틈에 사는지 잊어선 안 되니까. 그래도 나한테 이렇게는 말하더라. ‘만약 그가 무죄라면, 악마의 섬에 갇혀 있다니 얼마나 끔찍한 일이에요.’ 무슨 뜻인지 알겠지? 게다가 그 여자는 늙은 가정교사들을 위해 엄청나게 애쓰는 그런 사람이야. 그 여자들이 집에 찾아오면 하인용 계단으로는 절대 들이지 말라고 일러 뒀다니까. 정말 좋은 사람이야, 정말이야. 오리안이 그 여자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둘 중에 그 여자가 더 똑똑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

프랑수아즈는 게르망트가의 어느 하인을 딱하게 여기는 마음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지만(그 하인은 공작부인이 외출한 때조차 애인을 만나러 갈 도리가 없었으니, 그랬다가는 곧장 수위실에서 부인에게 일러바쳐질 터였다), 정작 생루가 찾아온 순간에 집에 없었던 것을 몹시 애통해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프랑수아즈 자신도 방문을 다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가장 필요로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외출했다. 언제나 그녀의 오라비를, 조카딸을, 그리고 특히 얼마 전 파리에 와서 살게 된 자기 딸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이런 방문의 친밀한 성격이 오히려, 그녀의 시중을 받지 못하는 데 대해 내가 느끼는 짜증을 키웠다. 나는 그녀가 그 방문을, 생탕드레데샹에서 정해진 율법에 따라 면제받을 수 없는 의무 가운데 하나로 이야기하리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몹시 부당하게 언짢은 기분을 품지 않고서는 그녀의 변명을 결코 듣지 못했다. 게다가 그 언짢음은, 프랑수아즈가 ‘내 오라비를 보러 갔다 왔다’거나 ‘내 조카딸을 보러 갔다 왔다’고 하지 않고, ‘그 오라비를 보러 갔다 왔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러 그 조카딸에게 인사하고 왔다’(또는 ‘푸주한테 시집간 그 조카딸에게’)고 말하는 버릇 때문에 극에 달했다. 딸로 말하자면, 프랑수아즈는 딸이 콩브레로 돌아가 준다면 기뻤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갓 파리 사람이 된 딸은, 유행을 좇는 여자처럼 약어를 즐겨 쓰되 그 약어가 천박한 부류이긴 했지만, 조만간 콩브레에서 보낼 한 주가 앵트랑 한 부 구경도 못 하고 지내기엔 이미 충분히 길게 느껴질 거라고 투덜댔다. 딸은 프랑수아즈의 언니에게 가는 것은 더더욱 내켜 하지 않았다. 그 언니는 산골에 살았는데, ‘산이란 건,’ 하고 딸은 그 형용사에 새롭고도 끔찍한 뜻을 담아 말하기를, ‘사실 하나도 재미가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딸은 메제글리즈로 돌아갈 마음도 도무지 먹지 못했다. 그곳은 ‘사람들이 어찌나 멍청한지’, 장터에서는 좌판을 벌인 수다쟁이들이 자기를 사촌이라 부르며 ‘아니, 저거 가엾은 바지로네 딸 아냐?’ 하고 떠들어 대는 곳이었다. 이제 ‘파리 생활의 맛’을 본 마당에, 그 촌구석으로 돌아가 파묻혀 지내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전통을 고수하는 프랑수아즈는, 이 갓 파리 사람이 된 딸에게 깃든 혁신의 기운에 흐뭇한 웃음을 지었으니, 딸이 이렇게 말할 때였다. ‘좋아요, 엄마, 쉬는 날을 못 받으면 나한테 pneu 한 통만 보내요.’

날씨가 다시 쌀쌀해졌다. “나가시게요? 뭐 하러요? 얼어 죽으시려고요?” 하고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그녀는 딸과 오라비와 푸주한테 시집간 조카딸이 콩브레에서 보내러 간 그 한 주 동안 집 안에 머무는 편을 택했다. 게다가 레오니 고모, 그 타고난 자연철학자의 교리를 어렴풋이 이어받은 그 종파의 마지막 남은 신봉자였던 프랑수아즈는, 이 철 아닌 날씨를 두고 이렇게 덧붙이곤 했다. “이건 하느님 진노의 나머지랍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푸념에 그저 나른한 미소로만 답했다. 무슨 일이 닥치든 내게는 화창할 터였으니, 이런 예언에 더더욱 무심했다. 벌써 나는 피에솔레 비탈에 아침 해가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 햇살에 몸을 데웠다. 그 햇살이 어찌나 강한지 나는 미소 지은 채 눈꺼풀을 반쯤 뜨고 반쯤 감아야 했으며, 눈꺼풀은 설화석고 등잔처럼 장밋빛으로 가득 찼다. 이탈리아에서 온 것은 종소리만이 아니었으니, 이탈리아가 그 소리와 함께 온 것이었다. 나의 충실한 두 손은, 오래전에 마쳤어야 할 그 순례의 기념일을 기릴 꽃이 모자라지 않을 터였다. 왜냐하면 여기 파리에서 사순절 끝 무렵 떠날 채비를 하던 어느 해처럼 날씨가 다시 추워졌고, 큰길의 마로니에와 플라타너스를, 우리 집 안뜰의 나무를 적시던 그 축축하고 얼음장 같은 대기 속에서, 벌써 폰테베키오의 수선화와 노랑수선화와 아네모네가, 맑은 물이 담긴 대접에서처럼 그 꽃잎을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친구 A. J.에게서, 노르푸아 가 근방에서 마주칠 때마다 어디로 가는 길이었는지를 이제 알게 되었노라고 우리에게 알렸다.

“빌파리지 부인을 만나러 가는 거란다, 둘이 아주 절친한 사이라더군. 난 전혀 몰랐지 뭐냐. 아주 매력적인 분인 데다 더없이 훌륭한 여성이라는구나. 너도 가서 인사를 드려야 한다,” 하고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또 한 가지 아주 놀란 게 있다. 그이가 게르망트 를 아주 뛰어난 인물이라고 말하더구나. 난 늘 그 사람을 촌뜨기로만 여겼는데 말이다. 아는 것이 엄청나고 안목도 완벽하다는데, 다만 제 이름과 인맥을 몹시 자랑스러워한다는구나. 하지만 그 점을 제쳐 두면, 노르푸아 말로는 그 사람이 여기뿐 아니라 온 유럽에 걸쳐 어마어마한 지위를 지녔다더구나. 오스트리아 황제와 러시아 황제도 그를 제 식구처럼 대한다는 게야. 노르푸아 영감 말이, 빌파리지 부인이 너를 꽤 마음에 들어 하더라니, 그 댁에 가면 온갖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구나. 그이가 너를 크게 칭찬하더라. 네가 거기 가면 그이를 만날 텐데, 네가 설령 작가가 되려 한다 해도 그이가 네게 좋은 조언을 해 줄지 모른다. 넌 아무래도 그 밖의 다른 일은 하지 못할 성싶으니 말이다. 나도 그쯤은 알겠다. 어쩌면 꽤 괜찮은 앞길이 될지도 모르지. 내가 너를 위해 골랐을 길은 아니다만. 이제 넌 곧 어엿한 사내가 될 게고, 우리가 언제까지나 곁에서 널 돌봐 줄 수는 없으니, 네 천직을 좇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되겠지.”

글쓰기를 시작할 수만 있었더라면! 그러나 내가 어떤 조건에서 그 일에 다가서든(아, 술에 손대지 않겠다, 일찍 자겠다, 잠을 자겠다, 몸을 돌보겠다는 다짐들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열의를 품고서든, 방법을 세워서든, 즐거움을 느끼면서든, 산책을 스스로 끊고서든, 아니면 산책을 미뤄 근면의 보상으로 아껴 두고서든, 건강한 한때를 틈타서든, 병으로 몸져누운 날의 강제된 무위를 활용해서든, 내 온갖 노력 끝에 언제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어떤 글씨로도 더럽혀지지 않은 백지 한 장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정성껏 패를 뒤섞어도 어떤 속임수에서는 반드시 뽑게 마련인, 저 강요된 카드처럼 피할 길이 없었다. 나는 그저 일하지 않는 습관, 잠자리에 들지 않는 습관, 잠들지 않는 습관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고, 그 습관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떻게든 제 모습을 드러내야만 했다. 내가 그것들에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그것들이 그날 주어진 첫 기회를 붙들어 제멋대로 굴 구실로 삼는 데 만족한다면, 나는 큰 탈 없이 벗어났다. 어쨌든 아침녘에 몇 시간은 잤고, 책도 조금 읽었으며, 무리하게 몸을 혹사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것들을 거스르려 들면, 일찍 자는 척, 물만 마시는 척, 일하는 척하면, 그것들은 뻗대며 강경한 수단을 썼다. 나를 정말로 병들게 해서, 술의 양을 곱절로 늘려야 했고, 이틀 밤낮을 내리 잠자리에 눕지 못했으며, 책조차 읽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번에는 좀 더 분별 있게, 다시 말해 덜 현명하게 굴리라 다짐하는 것이었으니, 마치 저항했다가는 살해당할까 두려워 순순히 털리는 강도의 피해자와도 같았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는 게르망트 를 한두 번 만났는데, 이제 노르푸아 가 공작을 비범한 인물이라 일러 준 터라, 그가 하는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마침 두 사람은 안뜰에서 마주쳐 빌파리지 부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사람 말이, 부인이 제 고모라더구나. 그이는 ‘비파리지’라고 발음하더라. 또 그러기를, 부인이 유달리 재능 있는 여성이라는 게야. 실은 부인이 ‘재치의 학교’를 열고 있다고 하더구나,” 하고 아버지가 우리에게 알렸다. 아버지는 이 모호한 표현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실은 회고록 몇 권에서 이따금 마주친 말이긴 해도 거기에 뚜렷한 뜻을 붙여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어찌나 존경했던지, 빌파리지 부인이 ‘재치의 학교’를 연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는 것을 보고는, 이것이 필시 무슨 중대한 일이려니 여겼다. 어머니는 할머니에게서 이미 오래전부터 후작부인의 지적 가치가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었건만, 그 가치는 어머니의 눈에 대번에 드높아졌다. 마침 그즈음 몸이 그리 좋지 않던 할머니는, 처음에는 그 방문 제안을 탐탁잖아 했고, 나중에는 그 일에 흥미를 잃었다. 우리가 새 아파트로 옮겨 온 뒤로, 빌파리지 부인은 여러 차례 할머니에게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청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지금은 외출하지 않는다고 답장했는데, 그 편지들은, 우리로서는 영문 모를 새 버릇에 따라, 할머니가 손수 봉하지 않고 프랑수아즈를 시켜 봉투를 핥게 한 것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그 ‘재치의 학교’가 어떤 것인지 머릿속에 뚜렷한 그림도 없었으니, 발베크에서 만난 그 노부인이 책상 뒤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것을 본다 해도 그리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나중에 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와 더불어, 대사의 후원이 학사원에서 자기에게 표를 많이 얻어 줄지도 알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무소속 후보로 나설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버지는 노르푸아 의 후원을 감히 의심하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을 결코 확신하지도 못했다. 부처에서 사람들이, 노르푸아 는 그곳에서 학사원을 대표하는 유일한 인물이 되고 싶어 하기에 아버지의 입후보를 갖은 수로 방해하려 들 거라고 장담했을 때, 아버지는 그저 심술궂은 뒷공론이려니 여겼다. 더욱이 그 방해는 그 시점에 그로서는 특히 난처한 일일 터였으니, 그는 이미 다른 후보를 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르루아볼리외 가 처음 아버지에게 출마를 권하며 그 가능성을 셈해 보았을 때, 아버지는 자신이 후원을 기대할 만한 동료들 가운데 그 저명한 경제학자가 노르푸아 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걸렸다. 아버지는 감히 대사에게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으나, 내가 빌파리지 부인을 방문하고 돌아올 즈음이면 자신의 당선이 거의 확정되어 있기를 바랐다. 이 방문이 이제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노르푸아 가 아버지에게 아카데미 표의 적어도 3분의 2를 확보해 줄 만한 선전을 펼치리라는 것은, 아버지에게 더더욱 그럴 법해 보였다. 대사가 남의 청을 잘 들어준다는 것은 소문이 자자했고, 그를 가장 못마땅해하는 이들조차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그만큼 기꺼워하는 사람은 달리 없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처에서 그의 비호는 다른 어느 관리보다도 아버지에게 유독 두드러지게 미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 무렵 또 한 번의 마주침을 겪었는데, 이번에는 그 지극한 놀라움이 그에 맞먹는 분노로 끝났다. 어느 날 거리에서 아버지는 사즈라 부인과 딱 마주쳤다. 부인은 형편이 넉넉지 못한 탓에 파리 생활이 이따금 친구를 찾아가는 것으로 국한되어 있었다. 아버지를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지루하게 만드는 사람은 사즈라 부인 말고는 없었으니, 어찌나 그러했던지 엄마는 해마다 한 번씩 달콤하고 애원하는 말투로 아버지를 구슬려야 했다. “여보, 사즈라 부인을 딱 한 번만 집에 초대해야겠어요. 오래 머물지도 않을 거예요.” 심지어는 이렇게도 말했다. “여보, 큰 희생을 하나 부탁할게요. 제발 사즈라 부인을 찾아뵙고 와요. 당신 성가시게 하기 싫은 거 알잖아요, 그래도 그래 주면 참 고마울 텐데.” 그러면 아버지는 웃으며 이런저런 핑계를 대다가, 결국 인사를 하러 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사즈라 부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에도, 거리에서 그녀를 알아본 아버지는 모자를 벗어 들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버지가 몹시 놀랍게도, 사즈라 부인은 무슨 파렴치한 짓을 저질렀거나 앞으로 다른 반구(半球)에서 살라는 선고라도 받은 사람을 대하듯, 예의상 마지못해 하는 싸늘한 목례로 인사를 그쳤다. 아버지는 분노로 말문이 막힌 채 집에 돌아왔다. 이튿날 어머니는 어느 집에서 사즈라 부인과 마주쳤다. 부인은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그저 막연하고 우수 어린 낯빛으로 미소만 지었으니, 어릴 적 함께 놀던 사이지만 그 뒤로 상대가 방탕한 삶을 살거나 죄수와, 혹은 (더 나쁘게는) 간통 사건의 공동피고와 결혼한 탓에 모든 관계를 끊어 버린 사람에게 짓는 그런 미소였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예로부터 사즈라 부인에게 더없이 깊은 존경을 바쳤고, 또 그녀에게서도 그런 존경을 불러일으켜 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점을 어머니는 몰랐다) 사즈라 부인은 콩브레에서 그 부류로는 유일하게 드레퓌스파였다. 멜린 의 벗이었던 아버지는 드레퓌스가 유죄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재심을 요구하는 청원서에 서명해 달라고 청한 몇몇 동료의 말을 딱 잘라 물리쳤다. 내가 그와는 다른 편에 서기로 했다는 것을 알고는, 한 주 동안 내게 말도 걸지 않았다. 아버지의 견해는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는 하마터면 국수주의자로 여겨질 뻔했다. 온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너그러운 의심이 지펴질 만한 할머니로 말하자면, 누군가 그녀에게 드레퓌스가 무죄일 수도 있다고 말할 때마다, 할머니는 고개를 가로저었는데, 그 뜻을 우리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것은 더 진지한 것을 골똘히 생각하다가 방해받은 사람의 몸짓과도 같았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내가 머리 좋은 사람으로 판명되기를 바라는 마음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던 어머니는, 침묵으로써 드러내는 중립을 지켰다. 끝으로, 군대를 흠모하던 할아버지는(국민방위대 복무가 장년기의 골칫거리였음에도), 콩브레에서 정원 울타리 너머로 연대가 지나가는 것을 볼 때면, 대령과 군기가 지나가는 동안 모자를 벗지 않고는 결코 견디지 못했다. 이 모든 것만으로도,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사심 없고 명예로운 이력을 낱낱이 알고 있던 사즈라 부인이 그들을 부정(不正)의 기둥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우리는 개인의 죄는 용서하지만, 집단적 범죄에 가담한 것은 용서하지 않는다. 부인은 아버지가 반드레퓌스파임을 알게 되자마자 그와 자기 사이에 대륙과 세기를 갈라 놓았다. 이로써, 그토록 아득한 시간과 공간의 간극을 사이에 두고 있었기에 그녀의 목례가 아버지에게 감지되지 않았던 까닭이, 또 그녀가 손을 내밀거나, 그 사이에 가로놓인 세계들을 결코 건너지 못했을 몇 마디 말을 건넬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까닭이 설명된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