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녀가 ‘문학을 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실이었다. 그녀는 생루가 술을 너무 마신다고 나무랄 때 말고는, 책이며 새로운 예술이며 톨스토이주의에 대해 나에게 쉴 새 없이 이야기했다.
“아! 당신이 나하고 일 년만 같이 살면 아주 좋게 달라질 텐데. 물만 마시게 할 테니 훨씬 나아질 거야.”
“그래, 맞아. 지금부터 시작하지.”
“하지만 내가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거 잘 알잖아!” 그녀는 제 예술을 아주 진지하게 여겼으니까. “게다가 당신 식구들은 뭐라고 하겠어?”
그러고서 그녀는 그의 가족을 나에게 헐뜯기 시작했는데, 어쨌든 나에게는 그 말이 무척 지당해 보였고, 생루도, 샴페인 문제에서는 그녀의 명령을 어기면서도, 그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술이 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그 정부의 좋은 감화를 느끼던 나는, 가족 따위 내버려 두라고 그에게 권할 마음이 얼마든지 있었다. 젊은 여자의 눈에 눈물이 솟았다. 내가 경솔하게도 드레퓌스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가엾은 순교자!” 그녀는 거의 흐느끼다시피 했다. “그 끔찍한 곳에서 죽고 말 거예요.”
“너무 상심 말게, 제제트, 그이는 돌아올 거야, 무사히 무죄가 될 거야,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인정할 거라니까.”
“하지만 그러기 한참 전에 죽고 말 거예요! 아, 그래도 어쨌든 그 아이들만은 티 없는 이름을 물려받겠지요. 하지만 그이가 겪고 있을 고통을 좀 생각해 봐요, 그게 내 가슴을 미어지게 한다니까요. 그런데 로베르의 어머니는, 그 신앙심 깊은 부인은, 그이가 설령 무죄라 해도 악마의 섬에 그냥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지 뭐예요, 소름 끼치지 않아요?”
“응, 정말 사실이야,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셔.” 로베르가 내게 확인해 주었다. “내 어머니시니 흠잡을 데야 없지만, 제제트처럼 섬세한 천성은 못 타고나신 게 분명해.”
사실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라던 이 점심들은 늘 소동으로 끝나곤 했다. 생루는 제 정부와 함께 사람 많은 곳에 있게 되면, 그녀가 방 안의 다른 남자마다 쳐다본다고 상상하여 낯빛이 어두워지곤 했다. 그녀는 그의 언짢은 기색을 알아채고는, 어쩌면 그것을 부추기는 게 재미있다고 여겼거나, 아니면 더 그럴 법하게는, 그의 말투에 상처받아 어리석은 오기로 화해를 구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 했던 것이어서, 어느 남자에게서고 눈을 떼지 못하는 시늉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늘 한낱 시늉만은 아니었다. 실제로 극장에서든 카페에서든 그들 곁에 앉게 된 신사가,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그들이 부른 삯마차의 마부가, 무엇이 되었든 어딘가 끌리는 데만 있으면, 질투로 감각이 예리해진 로베르가 제 정부보다 먼저 그것을 알아채곤 했다. 그는 대뜸 그 남자에게서, 발베크에서 나에게 성토했던 그 추악한 족속, 제 재미로 여자들을 타락시키고 욕보이는 자들 가운데 하나를 보고서, 정부에게 그 남자에게서 눈을 떼라고 사정하다가, 도리어 그녀의 눈길을 그 남자에게로 끌어다 놓곤 했다. 그리고 때로는 로베르가 의심을 어찌나 정확히 짚었던지, 그녀가 잠시 뒤에는 그를 놀려 대는 것마저 그만두어, 그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무슨 심부름에 혼자 나서 주도록 함으로써, 그 틈에 낯선 남자와 이야기를 트고, 흔히는 밀회를 약속하고, 때로는 단숨에 일을 매듭짓기까지 할 여유를 얻곤 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로베르가 심란해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실은 그가 대뜸, 발베크에서는 우리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을 알아본 까닭이었으니, 곧 에메가 제 투박한 동료들 틈에 서서, 물론 저로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인생의 어느 한때까지 고운 머리칼과 그리스풍의 코에서 배어 나오는 그 낭만의 기운을 은은한 광채로 뿜어내고 있어, 그 이목구비 덕에 그가 급사들의 무리 가운데서 두드러진다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거의 다 나이가 지긋한 이들로, 하나같이 유난히 추하고 험상궂은 여러 유형을 이루고 있었으니, 위선적인 사제, 독실한 체하는 고해신부, 그리고 더 많게는 옛 유파의 희극 배우들이었는데, 그런 뾰족한 원뿔 모양 이마는 오늘날에는 낡고 조그만 극장들의 초라하게 유서 깊은 분장실에 걸린 초상화 모음에서나 겨우 볼 수 있을 뿐, 거기서 그들은 하인이나 대사제 배역으로 그려져 있거니와, 그럼에도 이 식당은, 가려 뽑는 채용 방식과 어쩌면 세습으로 자리를 물려주는 어떤 제도 덕분에, 일종의 복점관 단체 안에 그 근엄한 유형을 고스란히 간직해 온 듯했다. 공교롭게도 에메가 우리를 알아보아, 우리 주문을 받으러 온 것이 바로 그였고, 그동안 오페라 대사제들의 행렬은 우리 곁을 스쳐 다른 식탁들로 흘러갔다. 에메는 내 할머니의 안부를 물었고, 나는 그의 아내와 아이들의 소식을 물었다. 그는 한 집안의 가장답게 감회에 젖어 대답해 주었다. 그에게는 총명하고 다부지면서도 공손한 태도가 있었다. 로베르의 정부는 야릇하게 골똘한 눈길로 그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간의 근시가 마치 가려진 심연 같은 인상을 주던 에메의 움푹한 눈은, 여전히 미동 없는 얼굴에서 아무런 알아챔의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다. 발베크로 오기 전 여러 해 일했던 지방의 호텔에서, 이제는 얼마쯤 빛바래고 흐려진 한 폭의 매력적인 소묘 같은 그의 얼굴은, 그 오랜 세월 내내, 마치 외젠 공의 판화 초상처럼 늘 같은 자리, 거의 언제나 텅 빈 식당의 저 끝에 보이고 있었으되, 어떤 호기심 어린 시선도 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오래도록, 아마도 공감해 주는 찬미자가 없던 탓에, 제 얼굴의 예술적 가치를 모른 채로 있었고, 게다가 그것에 눈길을 끄는 데도 그다지 마음이 없었으니, 천성이 냉담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무슨 일로 그 고을에 들른 어느 파리 여자가 그의 눈으로 제 눈을 들어 올려, 어쩌면 역으로 떠나기 전에 무언가를 제 방으로 가져다 달라 청한 정도였고, 시골 고을에서 충실한 남편이자 하인으로 사는 이 삶의 맑고 단조로우며 깊은 공허 속에, 아무도 결코 밝혀내지 못할, 뒤끝 없는 변덕의 비밀을 감춰 두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에메는 지금 젊은 여배우의 눈길이 제게 집요하게 못 박히고 있음을 의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어쨌든 그것은 로베르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나는 그의 살갗 밑으로 홍조가 번지는 것을 보았는데, 무슨 갑작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 그의 두 뺨을 태우던 그 선연한 홍조가 아니라, 희미하게 퍼지는 홍조였다.
“저 급사한테 뭐 특별히 재미있는 거라도 있나, 제제트?” 그는 에메를 쌀쌀맞게 물린 뒤 물었다. “무슨 배역이라도 연구하는 사람 같군.”
“거봐, 또 시작이네, 이럴 줄 알았어.”
“뭘 또 시작해, 이 사람아? 내가 잘못 봤을 수도 있지, 아무 말도 안 했잖아, 정말이야. 하지만 적어도 저 작자를 조심하라고 경고할 권리는 나한테 있어, 발베크에서 저자를 알았으니까 (아니라면 알 게 뭐야), 저보다 더한 악당은 이 땅 위를 걸어 다니지 않는다니까.”
그녀는 로베르를 달래고 싶어 하는 듯, 나와 문학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도 거기 끼어들었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는 지루하지 않았으니, 그녀가 내가 가장 흠모하는 책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고, 그 책들에 대한 견해도 대체로 내 것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빌파리지 부인이 그녀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서, 이 교양의 증거에 그리 큰 무게를 두지는 않았다. 그녀는 온갖 화제를 두고 재치 있게 이야기했고, 사교계와 화실의 은어를 짜증스러울 만큼 흉내 내지만 않았더라면 정말로 재미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는 그 은어를 세상 만사에 갖다 붙였으니, 이를테면 그림이면 인상파일 때, 오페라면 바그너풍일 때 “아! 저건 좋아!” 하고 말하는 버릇이 든 터라, 어느 날 한 젊은 남자가 그녀의 귀에 입 맞추고는, 그녀가 짜릿한 척하는 데 감동한 나머지 겸손한 체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응, 감각으로 치면 확실히 좋아.” 그러나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로베르 특유의 표현들이 (하기야 그것도 어쩌면 그녀가 아는 문인들에게서 그에게 옮아 온 것이겠지만) 그녀에게서 그에게로, 또 그에게서 그녀에게로, 마치 없어서는 안 될 말투이기라도 한 듯, 누구나 쓰는 독창성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는 조금도 생각지 못한 채 오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음식을 먹을 때 그녀는 손놀림이 어찌나 서투른지, 무대 위에서도 무척 어색해 보이리라 짐작될 정도였다. 그녀가 손재간을 되찾는 것은 오직 사랑을 나눌 때뿐이었으니, 남자의 몸을 어찌나 애틋하게 사랑하는지 제 것과는 그토록 다른 그 몸에 무엇이 가장 큰 쾌감을 줄지 대번에 알아채는, 사랑하는 여자들에게 깃든 저 뭉클한 예지로써였다.
이야기가 연극으로 돌아서면 나는 대화에 끼기를 그만두었으니, 그 화제에서는 라셸이 내 취향에는 너무 짓궂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녀는 라 베르마를, 딱하다는 투로, 생루에 맞서 두둔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가 라셸이 라 베르마를 헐뜯는 것을 늘 들어 왔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 아니야, 그분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지. 물론 그분이 하는 것들이 이제는 우리 마음에 와닿지 않고, 우리가 찾는 것과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지만, 그분이 속한 시대를 놓고 생각해야 해. 우리는 그분한테 크게 빚졌어. 그분은 좋은 일을 해냈다니까. 게다가 어찌나 훌륭한 여자인지, 마음씨도 참 곱고. 물론 그분은 우리 관심을 끄는 것들에는 마음을 안 쓰지만, 한창때에는 자못 인상적인 얼굴과 매력적인 정신의 자질을 지녔었어.” (그런데 우리의 손가락이 우리의 온갖 미학적 판단에 똑같은 반주를 넣는 것은 아니다. 논하는 것이 그림이라면, 물감이 그득한 훌륭한 작품임을 나타내려면 엄지손가락 하나를 쑥 내밀면 그만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정신의 자질’은 더 까다롭다. 그것은 손가락 둘, 아니 차라리 손톱 둘을 요하니, 마치 먼지 한 톨을 튕겨 내려는 것처럼.) 그러나 이 하나만 빼면, 생루의 정부는 가장 이름난 여배우들을 비꼬는 우월감의 어조로 들먹였는데, 그것이 나를 언짢게 한 것은,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건만, 그들보다 못한 쪽이 바로 그녀라고 내가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내가 자기를 그저 그런 여배우로 여기고, 반대로 자기가 업신여기는 이들은 크게 높이 사고 있으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았으니, 그때의 그녀처럼 아직 인정받지 못한 온갖 큰 재능에는, 그것이 제아무리 스스로를 확신한다 해도, 한 가닥 겸허함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며, 또 우리가 남들에게 기대하는 대접을 우리의 잠재된 역량이 아니라 우리가 다다른 지위에 견주어 가늠하기 때문이다. (한두 시간쯤 뒤 극장에서, 나는 생루의 정부가 바로 지금 그토록 가혹한 평을 내리던 그 예술가들에게 깍듯이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게 될 참이었다.) 그리하여 나의 침묵이 그녀에게 아무리 미심쩍음을 남겼다 한들, 그녀는 그날 저녁 함께 저녁을 들자고 굳이 우겼으니, 여태 누구의 이야기도 내 것만큼 자기를 즐겁게 한 적이 없다고 다짐하면서였다. 우리는 점심 뒤에 갈 극장에 아직 이르지는 않았어도, 극단의 옛 단원들의 초상이 걸린 분장실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으니, 급사들의 얼굴이 팔레루아얄의 이름 없는 배우들 한 세대와 함께 스러졌으리라 여겨지는 그런 얼굴들과 어찌나 똑 닮았던지. 그들에게는 또한 아카데미 회원 같은 데도 있어서, 그들 가운데 하나는 곁상 앞에 멈춰 서서, 한 접시의 배를, 쥐시외 씨가 지었음 직한 초연한 호기심의 표정으로 살펴보고 있었다. 그의 양옆에서 다른 이들은, 일찍 도착한 학사원 회원들이 청중에게 던지는, 호기심과 냉담함이 배어든 그 눈길을 방 안 여기저기에 던지며,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를 나직이 주고받고 있었다. 그들은 단골손님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얼굴들이었다. 그런데 그중 하나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으니, 콧구멍이 벌름하고 윗입술이 얄미울 만큼 매끈한, 성직자 같아 보이는 새내기로, 그날 처음으로 거기서 근무를 시작하는 참이라, 모두가 이 새로 뽑힌 후보를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내, 어쩌면 로베르를 쫓아 버려 에메와 단둘이 있으려는 속셈으로, 라셸은 이웃 식탁에서 다른 남자와 함께 밥을 먹던 젊은 학생에게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제제트, 제발 저 젊은 남자를 그런 식으로 보지 말아 줘.” 생루가 말했다, 조금 전의 머뭇거리던 홍조가 이제는 진홍빛 물결로 모여들어 그의 부어오른 얼굴을 부풀리고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다. “여기서 꼭 소란을 피워야겠다면, 나는 그냥 혼자 밥을 마저 먹고 이따 극장에서 자네와 합칠 테니까.”
바로 그때 한 심부름꾼이 다가와 에메에게, 밖에 마차에 탄 어느 신사가 그와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늘 불안해하던 생루는, 이번에도 제 정부에게 전해질 무슨 연애 편지 같은 것일까 두려워하며 창밖을 내다보았고, 거기 제 사륜마차에 꼿꼿이 앉아, 검은 솔기가 있는 흰 장갑에 두 손을 꼭 끼우고, 단춧구멍에 꽃 한 송이를 꽂은 샤를뤼스 씨를 보았다.
“저것 봐, 저것 좀 봐!”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우리 집안은 여기까지 나를 쫓아다닌다니까. 부탁인데, 나야 아무래도 직접 나서기가 뭣하지만 자네는 할 수 있잖아, 자네가 저 수석 급사와 워낙 잘 아는 사이고 저 사람은 우리를 틀림없이 일러바칠 테니, 저 사람더러 마차로 가지 말라고 좀 일러 주게. 나를 모르는 다른 급사를 대신 보내면 될 거 아닌가. 나는 우리 삼촌을 알아. 여기서 내가 안 알려져 있다고 하면 나를 찾으러 안으로는 절대 안 들어올 거야, 이런 데를 질색하시니까. 정말이지, 저렇게 늙어서까지, 아직도 그 짓을 못 놓은 늙은 오입쟁이 주제에, 노상 나한테 설교를 늘어놓고 나를 염탐하러 오다니 어지간히 역겨운 노릇이지!”
에메는 내 지시를 받고 부하 하나를 보내, 자기가 바빠서 지금은 나갈 수 없다고, 그리고 (혹 그 신사가 생루 후작을 찾거든) 그런 사람은 알지 못한다고 전하게 했다. 그러나 생루의 정부는 우리가 소곤거린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로베르가 자기더러 추파를 던진다고 나무라던 그 젊은 남자 이야기가 아직도 계속되는 줄 알고, 노발대발 성을 터뜨렸다.
“오, 그러셔! 그래, 이제는 저기 저 젊은 남자란 말이지? 알려 줘서 고맙기도 하지, 밥 먹으면서 이런 일까지 겪다니 참 즐겁기도 해라! 부탁이니 저이 말은 듣지 마세요.” 그녀는 나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좀 심통이 나서 그래요, 그리고 알잖아요, 저이는 그냥 멋으로 그러는 거예요, 늘 질투하는 척하는 게 신사다운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러고서 그녀는 발과 손가락으로 신경질적인 짜증의 기색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제트, 언짢은 건 나야. 자넨 지금 저 신사 앞에서 우리 모두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있어, 저 사람은 자네가 자기한테 수작 건다고 여기기 시작할 텐데, 게다가 꼴을 보아하니 어처구니없는 상놈이라고.”
“어머, 아니야, 난 저이가 매력적인걸. 우선 눈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고, 여자를 바라보는 품이, 여자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진다니까.”
“정신이 나갔거든 적어도 내가 이 방을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좀 잠자코 있어.” 로베르가 소리쳤다. “급사, 내 물건 가져와.”
나는 그를 따라가야 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나 혼자 있고 싶어.” 그는 방금 제 정부에게 하던 것과 똑같은 어조로, 마치 나에게도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말했다. 그의 노여움은 오페라에서 한 악구에 여러 대사가 얹혀 불리는 것과 같았으니, 그 대사들은 가사를 뜯어보면 뜻으로나 성격으로나 서로 완전히 다르건만 음악이 하나의 공통된 정감으로 그것들을 하나로 녹여 내는 것이다. 로베르가 가 버리자 그의 정부는 에메를 불러 이것저것 물었다. 그러고는 내가 그를 어떻게 보는지 알고 싶어 했다.
“재미있는 표정이지 않아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아요? 저 사람이 이런저런 것들을 정말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고, 자주 내 시중을 들게 하고, 데리고 여행을 다니는 거예요. 하지만 딱 거기까지지요. 우리를 끌어당기는 사람을 죄다 사랑해야 한다면 인생이 어지간히 끔찍하지 않겠어요? 로베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에요. 그런 건 죄다 그냥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일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로베르는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그녀는 여전히 에메를 뜯어보고 있었다. “저것 좀 봐요, 어쩌면 저리 눈이 검을까. 저 뒤에 뭐가 있는지 알면 참 좋겠어요.”
이윽고 로베르가 별실에서 그녀를 기다린다는 전갈이 왔으니, 그는 식당을 다시 지나지 않아도 되도록 다른 문으로 그리로 가서 점심을 마저 들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 역시 로베르에게 불려 갈 때까지 혼자 남게 되었다. 가 보니 그의 정부는 소파에 길게 누워, 그가 퍼붓는 입맞춤과 애무에 까르르 웃고 있었다. 둘은 샴페인을 마시고 있었다. “어이, 자기!” 그녀가 그에게 외쳤는데, 그녀는 최근에 이 말투를 주워듣고는 익살과 재치의 극치라고 여기던 참이었다. 나는 밥을 부실하게 먹은 데다 몹시 거북했고, 르그랑댕의 말이 나에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지만, 이 봄의 첫 오후를 식당 뒷방에서 시작해 극장 무대 뒤에서 끝맺게 되었다는 것이 서글펐다. 먼저 시계를 보아 늦지 않았는지 확인한 그녀는, 나에게 샴페인 한 잔을 권하고, 제 터키 담배 하나를 건네고, 제 옷섶에서 장미 한 송이를 떼어 주었다. 그러자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따지고 보면 아쉬워할 것도 별로 없지. 이 젊은 여자와 함께 보낸 이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으니, 그녀에게서 아무리 값을 치러도 아깝지 않을 매력적인 선물들, 곧 장미 한 송이와 향기로운 담배 한 개비와 샴페인 한 잔을 받았으니까.” 내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한 것은, 그것이 이 지루한 시간에 미학적 성격을 부여하여, 그럼으로써 그 시간을 정당화하고 구제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나의 지루함을 위로해 줄 이유를 찾고 싶어 하는 바로 그 욕구야말로 내가 아무런 미학적 감흥도 겪고 있지 못함을 넉넉히 증명한다는 것을 헤아렸어야 했으리라. 로베르와 그의 정부로 말하면, 그들은 몇 분 전만 해도 둘 사이에 몰아치던 그 다툼도, 내가 그 자리의 목격자였다는 것도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은 그 일을 입에 올리지도, 그에 대한 변명을 구하지도 않았으니, 지금의 행동이 그 다툼과 이루는 대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과 어울려 샴페인을 마시노라니, 나에게도 리브벨에서 나를 사로잡곤 하던 그 취기가, 아마도 똑같지는 않았겠지만, 얼마쯤 느껴지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취기는, 해나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것에서 탈진이나 술에서 얻는 것에 이르기까지, 아니 취기의 온갖 단계는,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해도의 수심을 나타내는 숫자들처럼 저마다 다른 수치를 지녔음이 분명한데, 그것이 다다르는 바로 그 깊이에서 우리 안의 저마다 다른 인간을 드러내 놓는다. 생루가 잡은 방은 조그마했으나, 그 유일한 장식인 거울이 어찌나 별난 것인지 다른 거울 서른 개를 끝없는 원경으로 비추는 듯했고, 액자 꼭대기에 달린 전구는 밤에 불이 켜지면 제 것과 똑같은 서른 번의 섬광이 잇따라, 혼자 있는 술꾼에게마저, 취기로 한껏 고조된 제 감각과 더불어 둘레의 공간이 동시에 곱절로 불어난다는, 그리고 이 작은 방에 홀로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가 자르댕 드 파리의 어느 통로보다도 그 아득한 빛의 곡선에서 훨씬 광대한 무언가를 다스리고 있다는 착각을 안겨 줄 것이 분명했다. 그리하여 이 순간 나 자신이 바로 그 술꾼이 되어, 문득 거울 속에서 그를 찾다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그를, 흉측하고 낯선 그를 언뜻 보았다. 취기의 기쁨이 나의 역겨움보다 더 셌기에, 나는 흥이 나서인지 객기로인지 그에게 미소 지었고, 동시에 그도 나에게 마주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의 감각이 그토록 강렬해지는 그 찰나의 덧없고도 세찬 지배 아래 어찌나 깊이 놓였던지, 방금 거울 속에서 언뜻 본 이 흉측한 나 자신이 어쩌면 이 땅 위에 마지막으로 있는 것일지도, 그래서 내가 평생토록 다시는 이 낯선 이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유일하게 아쉬움을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다.
로베르가 언짢아한 것은 오직 내가 제 정부 앞에서 더 재기를 뽐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오늘 아침에 만났다는 그 작자 얘기 말이야, 속물근성에 천문학을 겸했다는 그 사람, 저 애한테 좀 얘기해 줘, 나는 그 얘기를 잊어버렸어.” 그러면서 그는 곁눈질로 그녀를 살폈다.
“하지만 이 사람아, 자네가 방금 말한 것 말고는 더 있을 게 없어.”
“자네 참 따분한 사람이군. 그럼 샹젤리제에서 있었던 프랑수아즈 얘기를 저 애한테 해 줘. 재미있어할 거야.”
“아, 그래요! 보비는 늘 프랑수아즈 얘기를 한다니까요.” 그러고서 그녀는 생루의 턱을 잡고, 달리 더 독창적인 말이 없어, 그 턱을 불빛에 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되풀이했다. “어이, 자기!”
배우들이 나에게 더는 오직 그 대사와 연기로 예술적 진실을 담아내는 그릇이기를 그친 뒤로, 그들은 그들 자체로 나의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나는 내 눈앞에 있는 것이 무슨 옛 익살 소설 속 인물들이기라도 한 양 여기며 재미를 붙였으니, 방금 일층 관람석에 들어선 젊은 남자의 싱그러운 얼굴에 마음을 빼앗겨, 극 속의 주연 젊은이가 여주인공에게 건네는 사랑 고백을 그녀가 건성으로 듣고 있는 것을, 한편 그는 제 격정에 찬 대사의 뜨거운 격류를 쏟아 내면서도 무대 위 특별석에 앉은, 그 눈부신 진주가 그의 눈을 사로잡은 어느 노부인에게서 여전히 불타는 눈길을 떼지 못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하여 특히 생루가 배우들의 사생활에 관해 일러 준 정보 덕분에, 나는 소리로 오가는 연극의 대사 밑에서 또 하나의, 소리 없으나 뜻이 풍부한 극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으니, 소리로 오가는 그 연극은 그 자체로는 별 가치가 없었어도 나의 흥미를 끌기는 했다. 그 속에서 나는, 각광의 눈부신 빛 아래, 한 배우의 얼굴에 기름 분장과 마분지로 된 또 하나의 얼굴이 엉겨 붙어 빚어진, 그 자신의 인간적 영혼 위에서 배역의 대사가 한 시간 동안 움트고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극 속의 인물들이 이루는, 그 극이 재미있기도 한 이 덧없고도 생생한 인격들은, 우리가 사랑하고 찬탄하고 가엾어하며 극장을 나선 뒤에도 다시 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건만, 그때쯤이면 벌써 극 속에서 차지하던 자리에 더는 있지 않은 한 광대로, 그 광대의 얼굴을 더는 보여 주지 못하는 대본으로, 손수건 한 장이면 닦여 나가는 색분으로 흩어져 버려, 요컨대 저희와는 아무 상관없는 요소들로 되돌아가 버리는 것이니, 공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루어지는 그 해체는, 마치 정든 벗의 해체처럼,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아의 실재를 의심케 하고 죽음의 신비를 곱씹게 한다.
프로그램의 한 순서가 나에게는 몹시 견디기 힘들었다. 라셸과 그 친구 몇몇이 싫어하던 한 젊은 여자가, 옛 노래 몇 곡으로, 제 앞날과 제 가족의 앞날에 대한 온갖 희망을 걸고 첫 무대에 서기로 되어 있었다. 이 젊은 여자는 지나칠 만큼, 거의 우스꽝스러울 만큼 불룩 튀어나온 엉덩이와, 예쁘장하나 너무 여린 목소리를 지녔는데, 그 목소리는 긴장으로 한층 더 약해져 그녀의 우람한 몸집과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었다. 라셸은 관객 사이에 남녀 친구 여럿을 심어 두었으니, 그들의 소임은 비아냥거리는 말로, 겁이 많기로 소문난 이 풋내기의 기를 죽이고 정신을 흩뜨려, 그녀의 순서가 완전한 실패로 끝나게 하고, 그러면 지배인이 그녀에게 계약을 주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가엾은 여자가 첫 소절을 내뱉자마자, 그 목적으로 뽑혀 온 남자 관객 몇이 그녀의 뒷모습 윤곽을 익살스러운 말과 함께 손가락질하기 시작했고, 역시 짜고 온 여자 몇이 큰 소리로 웃어 젖혔으며,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피리 같은 음 하나하나가 그 짐짓 꾸민 폭소를 부추겨, 마침내 그것은 공공연한 추태로 번졌다. 불행한 여자는 분장 밑으로 고뇌의 땀을 흘리며 조금 더 버텨 보려 하다가, 이내 멈추고는, 애원하는 비참과 분노의 눈길로 관객을 둘러보았으나, 그것은 소란을 더 키우는 데나 성공했을 뿐이다. 남을 흉내 내려는 본능, 제 재치와 담대함을 뽐내려는 욕심이, 미리 귀띔받지 못했던 예쁜 여배우 몇을 무리에 더 끌어들여, 그들은 이제 다른 이들에게 짓궂은 공모의 눈짓을 던지며, 어찌나 격렬한 폭소를 터뜨렸던지, 아직 프로그램에 다섯 곡이 더 남아 있었건만 둘째 곡이 끝날 무렵 무대감독이 막을 내려 버렸다. 나는 이 사건에, 종조모가 할머니를 놀리려고 할아버지에게 브랜디를 권하곤 할 때 겪던 할머니의 고통에 마음 두지 않으려 애쓰던 만큼밖에는 마음 두지 않으려 애썼으니, 고의적인 악의라는 관념이 나로서는 견디기에 너무나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을 향한 우리의 연민이 어쩌면 그리 정확하지는 않은 것이, 우리는 상상 속에서 온갖 슬픔의 세계를 지어내지만, 정작 그것과 싸워야 하는 불운한 이는 제 처지를 딱히 여기며 뭉클해할 겨를조차 없는 법이듯이, 악의 또한 아마도 악한 자의 마음속에서는, 우리가 상상하기에 그토록 괴로운 그 순수하고도 관능적인 잔혹함을 띠고 있지 않으리라. 미움이 그를 부추기고, 노여움이 그에게 열의와 활기를 주지만, 거기에 큰 기쁨은 없다. 거기서 어떤 쾌락을 짜내려면 사디스트라야 한다. 여느 때 악한 자는 제가 제 희생자의 못됨을 벌하고 있다고 여긴다. 라셸도, 자기가 괴롭히던 그 여배우가 누구의 관심을 끌 만한 인물이 결코 못 되며, 어차피 그녀를 야유로 무대에서 몰아냄으로써 자기는 좋은 취향에 대한 모욕을 응징하고 하찮은 동료 하나에게 본때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필시 상상했으리라. 그렇더라도 나는 이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는 편을 택했으니, 나에게는 그것을 막을 용기도 힘도 없었던 데다, 그 희생자를 좋게 말함으로써, 이 갓 피어난 앞길을 목 졸라 버린 가해자들을 움직이던 그 심정을 잔혹의 욕망에 대한 만족에 다가가게 하는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 괴로운 노릇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