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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17)

3권 제1부 · 제1장

그러나 그날 오후 공연의 첫 장면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의 흥미를 끌었다. 그것은 생루가 라셸에 대해 빠져 있던 환상, 그리고 그날 아침 꽃핀 배나무 사이에서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 그와 내가 그의 정부에 대해 각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상(像) 사이에 깊은 골을 파놓았던 그 환상의 본질을, 어느 정도 깨닫게 해주었다. 라셸은 그 짧은 극에서 걸어 들어오는 것 이상은 거의 하지 않는 배역을 맡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보니 그녀는 딴 여자였다. 그녀의 얼굴은, 거리가, 반드시 일층 관람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만이 아니라, 이 점에서는 세상 자체가 더 큰 극장일 뿐이므로, 형태와 윤곽을 부여해 주지만 가까이서 보면 다시 티끌로 흩어져 버리는 그런 얼굴 가운데 하나였다. 그녀 곁에 서면 성운(星雲) 하나, 주근깨와 자잘한 반점이 이룬 은하수 하나가 보일 뿐, 그 이상은 없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면 이 모든 것이 더는 보이지 않았고, 뒤로 물러난 두 뺨에서, 얼굴 속으로 다시 흡수되며, 초승달처럼 떠오르는 코가 어찌나 섬세하고 어찌나 정결한지, 이미 그녀를 다르게, 가까이서 본 적만 없다면, 라셸의 눈길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고, 마음대로 몇 번이고 다시 그녀를 보고 싶고, 곁에 두고 싶어질 정도였다. 내 경우는 그렇지 않았으나, 생루가 무대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는 그러했다. 그때 그는 어떻게 그녀에게 다가갈까, 어떻게 그녀를 알게 될까 자문했고, 그의 안에는 그녀가 사는 요정의 나라가 통째로 열렸으니, 그곳에서는 더없이 고운 광채가 뿜어져 나왔지만 그는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는 극장을 나서며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미친 짓이고 그녀가 답장하지 않으리라 스스로 되뇌었으며, 너무나 낯익은 현실보다 한없이 우월한 세계, 욕망과 행복의 꿈으로 아름다워진 세계에서 그의 안에 살고 있던 그 여인을 위해서라면 재산도 이름도 기꺼이 내던질 각오였는데, 바로 그때 그 자체가 무대장치의 한 조각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작고 낡은 건물인 극장 뒤편에서, 무대 출입문으로 방금 연기를 마친, 앙증맞은 모자를 쓴 명랑한 여배우 무리가 몰려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녀들을 아는 젊은이들이 밖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간이라는 체스판 위의 말의 수가 그것들이 이룰 수 있는 조합의 수보다 적기에, 우리가 아는, 그리고 마주치리라 예상할 법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극장에서, 다시 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누군가가 나타나고, 게다가 어찌나 때맞춰 나타나는지 그 우연이 우리에게는 하늘의 뜻처럼 여겨지는데, 물론 우리가 그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었더라면 그 자리에 다른 우연이 일어나, 거기서는 다른 욕망이 일깨워지고 그것을 채우도록 도와줄 또 다른 옛 지인을 만났을 것이 틀림없다. 생루가 극장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기도 전에 꿈의 세계의 황금빛 문은 라셸 위로 다시 닫혀 버렸으므로, 주근깨와 반점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그를 언짢게 했으니, 특히 이제 혼자가 아니어서 극장에서처럼 꿈꿀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더는 그녀를 볼 수 없었음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인력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별들처럼, 계속해서 그의 행동을 좌우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로베르의 기억 속에도 자리 잡지 못한, 고운 이목구비를 지닌 그 여배우를 향한 욕망 때문에, 그는 우연히 그 자리에 나타난 옛 친구에게 달려가, 이목구비랄 것 없이 주근깨투성이인 그 여자, 어차피 같은 사람이니, 그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졸랐고, 나중에 이 같은 사람이 실은 둘 중 어느 쪽인지 알아보리라 스스로 다짐했다. 그녀는 바빴고, 그때는 생루에게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으며, 며칠이 지나서야 그는 마침내 그녀를 일행에서 떼어내어 집까지 바래다주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미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꿈에 대한 갈구, 꿈꾸던 그 여인에게서 행복을 얻고 싶은 욕망은, 며칠 전만 해도 극장 무대 위의, 낯설고 아무 의미 없는 우연한 환영에 지나지 않던 여인에게 자신의 온갖 행복의 가능성을 맡기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게 만든다.

막이 내리고 우리가 무대로 옮겨 갔을 때, 처음으로 그곳에 서게 된 나는 당황하여 생루와 활기찬 대화를 시작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렇게 하면, 낯선 자리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몰랐던 나의 태도는 온전히 우리의 이야기에 지배될 터이고, 사람들은 내가 대화에 너무 몰두해 주위를 살피지 못하는 나머지, 겉으로 하는 말로 미루어 그 자리에 서 있다는 것조차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장소에 어울리는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길 것이었다. 그래서 말문을 열기 위해 나는 맨 먼저 머리에 떠오른 화제를 붙들었다.

“있잖아,” 하고 나는 말했다, “동시에르를 떠나던 날 자네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갔었어. 여태 말할 기회가 없었네. 길에서 자네한테 손을 흔들었지.”

“그 얘긴 말게,” 하고 그가 대답했다, “정말 미안했어. 병영 바로 앞에서 자넬 지나쳤는데, 이미 늦어서 멈출 수가 없었네. 정말이지 그 일로 어찌나 마음이 언짢던지.”

그러니까 그는 나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나는 그가 내게 보낸, 조금도 사사로움이 없는 그 경례를 다시 마음속에 떠올렸다. 손을 군모로 올리면서도, 나를 안다는 기색의 눈길 한 번, 멈출 수 없어 미안하다는 몸짓 하나 없던 그 경례를. 그 순간 그가 취한, 나를 모른다는 이 허구는 분명 그에게 일을 크게 수월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그토록 재빨리, 그리고 처음의 인상을 드러내는 어떤 본능적인 움직임도 없이 그렇게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다. 나는 이미 발베크에서 눈여겨보았거니와, 살갗이 투명해 어떤 감정의 갑작스러운 밀물을 그대로 비쳐 보이던 그 어린애 같은 진솔한 얼굴과 나란히, 그의 몸은 상당수의 세련된 위장을 해내도록 훌륭히 단련되어 있어서, 노련한 배우처럼 그는 군대 생활에서도 사교 생활에서도 전혀 다른 배역들을 번갈아 연기할 수 있었다. 그 배역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는 나를 다정하게 사랑했고, 마치 내 형제라도 되는 양 나를 대했으니, 실제로 그는 나의 형제였고, 지금 다시 형제였으나, 그날 한순간만은 나를 모르는 딴사람이 되어, 고삐를 쥐고 외알 안경을 눈에 낀 채, 눈길도 미소도 없이 비어 있는 손을 군모 챙으로 들어 올려 내게 정확한 군대식 경례를 보냈던 것이다.

아직 제자리에 놓인 채 내가 그 사이를 지나던 무대장치는, 그것을 붓으로 그린 저명한 화가가 계산에 넣었던 조명과 거리의 효과라는 이점을 하나도 누리지 못한 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서글픈 광경이었고, 라셸도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에 못지않게 파괴적인 힘에 내맡겨졌다. 그 매력적인 코의 곡선은 일층 관람석과 무대 사이의 원근 속에서, 무대장치의 부조처럼 도드라져 보였던 것이다. 이제 그것은 그녀가 아니었고, 나는 오직 그녀의 눈 덕분에, 그녀의 정체성이 피신해 있는 그 눈 덕분에 그녀를 알아보았다. 조금 전만 해도 그토록 눈부시던 이 젊은 별의 형태와 광채는 사라져 버렸다. 반대로, 마치 우리가 달에 가까이 다가가 달이 장밋빛 금빛 원반의 모습을 더는 띠지 않게 되듯이, 지금까지 그토록 매끄러운 표면이던 이 얼굴에서 나는 오직 돌기와 얼룩과 움푹한 자국만을 분간할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여인의 이목구비뿐 아니라 그려진 화폭까지 흩어져 버린 그 무질서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곳에 있어 무대장치 사이를, 한때는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지루하고 인위적이라며 물리쳤다가 괴테가 빌헬름 마이스터에서 그것을 묘사한 대목에 이르러서야 내 눈에 일종의 아름다움을 띠게 된 그 모든 배경 사이를 거니는 것이 기뻤다. 그리고 나는 이미, 마치 공공 도로에서인 양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담배를 피우던 기자들이며 멋쟁이들, 여배우들의 친구들이 뒤엉킨 한복판에서, 검은 벨벳 모자를 쓰고 수국빛 치마를 두른, 두 뺨을 바토의 화첩 속 한 페이지처럼 붉게 분칠한 젊은이 하나를 기쁘게 바라보았으니, 미소 띤 입술에 눈을 천장으로 치켜뜬 채 가볍게 공중으로 솟구치는 그는, 일상복 차림의 이성적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종족처럼 보였고, 그 사람들 한가운데서 그는 미치광이처럼 자신의 황홀한 꿈의 여정을 좇았으며, 그들의 삶의 근심거리와는 그토록 무관하고, 그들 문명의 습속보다 그토록 앞서 있으며, 자연의 온갖 법칙에서 그토록 벗어나 있어서, 그가 그린 듯한 날개 달린 변덕스러운 흔들림이 화폭 조각들 사이에 그려 내는 자연스러운 아라베스크 무늬를 눈으로 좇는 일은, 붐비는 거리를 헤매는 나비 한 마리를 지켜보는 것만큼이나 편안하고 신선한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그 순간 생루는 자신의 정부가 이 무용수에게, 곧 무대에 올릴 익살스러운 몸짓을 마지막으로 연습하고 있던 그 무용수에게 지나친 관심을 쏟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딴 데를 보는 게 좋을 거야,” 하고 그가 침울하게 그녀에게 경고했다. “저런 무용수 나부랭이들은 어느 놈 하나 목매달 밧줄 값어치도 못 한다는 거 알잖아, 기껏해야 거기서 떨어져 목이나 부러뜨릴 위인들이고, 게다가 나중엔 자기가 네 눈길을 끌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그런 부류라고. 그리고 넌 분장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라는 말을 들었잖아, 잘 알면서. 또 출연 신호를 놓칠 거라고.”

한 무리의 남자들, 곧 기자들이 생루의 얼굴에 서린 노기를 알아채고, 재미있다는 듯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려고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무대 담당자들이 마침 우리 반대편에 무대장치를 세워 놓은 터라 우리는 그들과 바싹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 하지만 난 저 사람 알아, 내 친구인걸,” 하고 생루의 정부가 무용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외쳤다. “저이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좀 봐, 저 조그만 손이 온몸처럼 저 혼자 춤추는 것 좀 보라니까!”

무용수가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되고자 애쓰던 실피드 아래로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드러났고, 맑은 잿빛 젤리 같은 그의 두 눈이 분칠로 뻣뻣해진 눈꺼풀 사이에서 떨리며 반짝였으며, 미소가 그의 입가를 연지로 두껍게 바른 두 뺨 쪽으로 늘였다. 그러고는, 우리가 노래 솜씨에 감탄했다고 말한 그 곡조를 우리 청에 못 이겨 흥얼거려 주는 가수처럼, 그 처녀를 즐겁게 해주려고, 그는 패러디 작가의 정교함과 아이의 명랑함으로 스스로를 흉내 내며 손동작을 되풀이하기 시작했다.

“아, 저이가 자기 자신을 흉내 내는 게 너무 사랑스러워,” 하고 그녀가 손뼉을 치며 외쳤다.

“제발 부탁이야, 내 사랑,” 하고 생루가 더없이 비참한 어조로 끼어들었다, “여기서 소란 피우지 마, 난 참을 수가 없어. 맹세하는데, 한마디만 더 하면 방까지 같이 안 가고 그냥 나가 버릴 테야. 자, 그렇게 심술부리지 마…… 그렇게 담배 연기 속에 서 있으면 안 돼, 몸 상한다고,” 하고 그는 발베크 시절 내게 보이던 그 다정한 걱정으로 내게 말을 이었다.

“아! 정말 나가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경고하는데, 나가면 다시 안 돌아와.”

“그건 내가 감히 바라던 것보다 더한 일인걸.”

“들어 봐, 알잖아, 네가 나한테 잘하면 목걸이를 주겠다고 약속했지, 그런데 네가 이렇게 나오는 순간엔……”

“아! 흥, 그런 건 조금도 놀랍지 않아. 나한테 약속해 놓고, 네가 절대 안 지킬 줄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넌 온 세상이 네가 돈방석에 앉은 걸 알아주길 바라지, 하지만 난 너 같은 구두쇠가 아니야. 그놈의 목걸이는 네가 가지든가 해. 그거 줄 사람 딴 데 얼마든지 있으니까.”

“딴 사람은 절대 그걸 너한테 줄 수 없어. 부슈롱한테 나 대신 그걸 맡아 두라고 말해 뒀고, 다른 누구한테도 넘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뒀으니까.”

“거봐, 나를 협박하려는 거지, 죄다 미리 짜놨구먼. 마르상트라는 게, Mater Semita라는 게 바로 그런 뜻이지, 그 핏줄 냄새가 나거든,” 하고 라셸이 되받았는데, 이는 터무니없는 오해에 근거한 어원을 끌어댄 것이었으니, Semita는 ‘셈족’이 아니라 ‘길’을 뜻하지만, 국수주의자들은 생루가 지녔던 드레퓌스파적 견해를 빌미로 그에게 이 말을 갖다 붙였고, 정작 그 견해로 말하자면 그는 이 여배우에게 신세를 진 것이었다. 마르상트 부인에게 ‘유대인’이라는 말을 갖다 붙일 자격으로 치면 그녀만큼 없는 이도 없었으니, 사교계의 인종학자들이 아무리 뒤져 봐도 그 부인에게서 레비미르푸아 집안과의 인연 말고는 유대적 흔적이라곤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로 끝난 게 아니야, 내 말해 두는데. 그딴 약속은 효력 없어. 넌 나한테 배신을 했다고. 부슈롱한테 이 얘길 해줄 테고, 그럼 목걸이 값을 두 배로 치르게 될걸. 머잖아 내 소식을 듣게 될 거야, 걱정 말라고.”

로베르는 백번 옳았다. 그러나 정황이란 늘 뒤엉키게 마련이어서 백번 옳은 사람도 한 번은 그른 적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가 발베크에서 썼던, 불쾌하면서도 아주 악의는 없던 그 표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그녀를 붙잡아 두는 거야.”

“넌 목걸이에 대해 내가 하려는 말을 이해 못 하는군. 난 정식으로 약속한 적 없어. 네가 나를 떠나게 만들려고 할 수 있는 짓은 다 하기 시작하는 마당에, 내가 그걸 안 주는 건 지극히 당연하잖아. 거기에 무슨 배신이 있다는 건지, 내 속셈이라는 게 대체 뭐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내가 돈 자랑을 한다고 진심으로 우길 순 없을 텐데, 난 늘 너한테 내가 한 푼도 없는 가련한 신세라고 말하잖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어리석은 짓이야, 내 사랑. 내가 너를 아프게 해서 무슨 득을 보겠어? 내 인생의 유일한 관심사가 너라는 걸 넌 잘 알잖아.”

“아, 그래, 그래, 어디 계속해 봐,” 하고 그녀가 면도칼을 휘두르는 이발사의 큼직한 몸짓으로 빈정대며 되받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무용수를 바라보며,

“저이 손놀림이 너무 멋지지 않아. 나 같은 여자는 저이가 지금 하는 걸 못 해.” 그녀는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로베르의 성난 얼굴을 가리키며, “봐, 저이 상처받았어,” 하고 중얼거렸는데, 이는 생루를 향한 그녀의 진심 어린 애정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잔인함을 향한 가학적 충동의 순간적인 도취 속에서 나온 말이었다.

“들어 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인데, 맹세컨대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소용없어, 일주일만 지나면 넌 나를 되찾으려고 뭐든 다 내놓으려 할 거야, 하지만 난 안 돌아와. 이건 깨끗한 결별이야, 알아들어, 돌이킬 수 없어. 넌 언젠가 후회할 거야, 이미 늦었을 때.”

어쩌면 그는 이 말을 진심으로 했는지 모르고, 정부를 떠나는 고통이 어떤 상황에서는 그녀와 함께 남아 있는 고통보다 덜 잔인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봐, 자네,” 하고 그가 내게 말을 이었다, “여기 서 있으면 안 된다니까, 정말이지 기침이 날 걸세.”

나는 내 앞을 가로막은 무대장치를 가리켰다. 그는 모자에 손을 대고 기자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말했다.

“선생, 실례지만 시가를 좀 버려 주시겠습니까, 연기가 제 친구한테 안 좋아서요.”

그의 정부는 그가 함께 가주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분장실로 가던 길에 그녀는 돌아서서,

“저 예쁜 조그만 손으로, 여자들한테도 저런 재주를 부려 줘요?” 하고 그녀가 무대 안쪽에서 무용수에게, 처녀다운 순진함을 꾸며 낸 낭랑한 어조로 던졌다. “당신도 꼭 여자애 같은걸요, 당신하고 내가 아는 여자애하고 셋이면 정말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알기론 담배를 금하는 규칙 같은 건 없소, 몸이 안 좋은 사람은 집에나 있으면 될 것 아니오,” 하고 기자가 말했다.

무용수는 여배우에게 야릇한 미소로 답했다.

“아! 그만해요! 나 아주 미쳐 버리겠어요,” 하고 그녀가 그에게 외쳤다. “그러다간 큰일 나요.”

“아무튼 선생, 당신은 별로 예의가 없군요,” 하고 생루가 여전히 정중하고 부드럽게, 이미 끝난 사건의 옳고 그름을 뒤돌아보며 따지는 사람의 신중한 태도로 기자에게 말했다.

그 순간 나는 생루가 팔을 머리 위로 수직으로 치켜드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내가 볼 수 없는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기도 했으며, 실제로, 교향곡이나 발레에서 지휘봉을 한 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우아한 안단테에 이어 격렬한 리듬이 뒤따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전환으로, 방금 정중한 말을 내뱉은 직후에 그는 손을 내리쳐 기자의 뺨을 철썩 소리 나게 후려갈겼다.

이제 외교관들의 절도 있는 대화, 미소 짓는 평화의 기술에 이어 전쟁의 성난 돌격이 뒤따랐으니, 주먹은 주먹을 부르는 법이라, 나는 싸우는 두 사람이 서로의 피 속에서 허우적대는 것을 본다 해도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한낱 국경선 정정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 끝에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터지거나, 기껏해야 간이 부은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병 끝에 환자가 죽는 것을 보고 규칙에 어긋난다고 느끼는 사람들처럼, 어떻게 생루가 분명 우호적인 기색을 담은 그 말에 이어, 그 말에서 조금도 비롯되지 않은, 이를테면 그 말이 예고한 바 없는 행동을, 인간의 권리뿐 아니라 인과의 법칙까지 거스르며 팔을 치켜든 그 행동, 무(無)에서 생겨난 그 행동을 잇달아 해낼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다행히 그 기자는, 타격의 격렬함에 비틀거리며 물러나 얼굴이 창백해진 채 한순간 머뭇거렸으나, 되받아치지는 않았다. 그의 친구들로 말하자면, 하나는 냉큼 고개를 돌려 무대 옆 공간에서 분명 거기 없는 누군가를 뚫어져라 찾는 척했고, 둘째는 눈에 티끌이 들어간 척하며 아픈 기색을 온통 드러내며 눈꺼풀을 비비고 눌러 댔으며, 셋째는 “이런, 막이 오르는 모양이야, 자리에 못 들어가겠는걸” 하고 외치며 달아나 버렸다.

나는 생루에게 말을 걸고 싶었으나, 그는 무용수에 대한 분노로 어찌나 가득 차 있던지 그 분노가 눈알 표면에 그대로 달라붙어 있었다. 마치 피부 밑 조직처럼 그것은 그의 두 뺨을 부풀렸고, 그 결과 그의 내적 동요는 겉으로 완전한 부동(不動)으로 나타나, 그는 내 말 한마디를 받아들이고 답할 만한 이완의 힘, 그 ‘여유’조차 없었다. 기자의 친구들은 사건이 끝난 것을 보고, 여전히 떨면서 다시 그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그를 저버렸던 것이 부끄러워, 그들은 자기들이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그가 믿게 만들기로 단단히 작정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제 눈에 들어간 티끌 이야기를, 한 사람은 막이 오르는 줄 알고 놀랐던 이야기를, 셋째는 방금 지나간 남자와 자기 형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게다가 그들은 자기 친구가 저마다의 그 감정을 함께 나누지 않은 것을 자못 언짢아하는 듯했다.

“아니, 자넨 그게 눈에 안 띄었나? 눈이 멀어 가는 모양이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네들이 겁쟁이 개떼라는 거야,” 하고 생루에게 얻어맞은 기자가 으르렁거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취했던 자세를 잊고 있었으니, 그 자세에 맞추려면 그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못 알아들은 척했어야 했지만, 그들은 그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이런 경우에 으레 쓰는 상투적인 표현들에 기댔다. “뭘 그렇게 흥분하나? 진정하게, 이 사람아. 그렇게 성질부리지 말고.”

그날 아침 배꽃 아래에서 나는 로베르가 ‘라셸, 주님 곁에서 오실 때’에게 품은 사랑이 얼마나 헛된 근거 위에 서 있는지 깨달았다. 이제 나는 그 사랑이 낳은 고통이 얼마나 지극히 현실적인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한 시간 동안 끊임없이 그를 사로잡았던 감정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해 그의 안으로 물러났고, 그의 눈에 비어 있는 유연한 부분이 나타났다. 나는 지난날 질베르트가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보았던 가브리엘 대로의 한 모퉁이에 잠시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몇 초 동안 그 먼 옛날의 인상들을 되살려 보려 애쓰다가, 생루를 따라잡으려고 ‘체조하듯’ 빠른 걸음으로 서두르던 참에, 다소 초라한 차림의 한 신사가 그에게 은밀히 말을 거는 듯한 광경을 보았다. 나는 이 사람이 로베르의 개인적인 친구려니 여겼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서로 더욱 가까이 다가서는 듯했다. 그런데 별안간, 유성이 하늘을 가르듯, 나는 여러 개의 타원형 물체가 어지러운 속도로, 생루의 얼굴과 몸 앞에 명멸하는 별자리를 이루는 데 필요한 온갖 위치를 취하는 것을 보았다. 투석기에서 튀어나온 돌처럼 던져진 그것들은, 내게는 적어도 일곱 개는 되어 보였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름 아닌 생루의 두 주먹으로, 겉으로는 이상적이고 장식적인 이 배열 속에서 자리를 바꾸는 속도 탓에 여러 개로 불어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정교한 볼거리는 생루가 퍼붓고 있던 난타에 지나지 않았고, 미적이라기보다 공격적인 그 본색은, 침착함과 아래턱과 상당한 양의 피를 한꺼번에 잃어 가는 듯한 그 초라한 차림의 신사의 모습을 보고서야 비로소 내게 드러났다. 그는 다가와 캐묻는 사람들에게 지어낸 변명을 늘어놓고는, 고개를 돌려, 생루가 자리를 떠나 서둘러 내게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모욕당하고 짓밟혔으나 결코 성나지는 않은 표정으로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반대로 생루는, 자신은 한 대도 맞지 않았는데도 성이 나 있었고, 내게 이르렀을 때 그의 두 눈은 여전히 노기로 이글거렸다. 그 사건은, 내가 짐작했던 것과 달리, 극장에서의 폭행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다. 그것은 생루가 보여 주던 잘생긴 젊은 군인의 모습을 보고 그에게 수작을 건, 정욕에 달뜬 어떤 배회자였다. 내 친구는 이제는 밤의 어둠이 자기들 행동을 가려 주기를 기다리지도 않는 이 ‘패거리’의 뻔뻔함에 어이없어했고, 자신에게 건네진 그 제안을 두고, 신문들이 파리 한복판에서 백주 대낮에 벌어진 무장 강도 사건을 보도할 때 쓰는 것과 똑같은 분개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의 주먹을 받은 자에게도 한 가지 점에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으니, 내리막의 경향은 욕망을 어찌나 빠르게 향락의 지점까지 데려가는지 아름다움 그 자체가 곧 승낙을 뜻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루가 아름답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그가 방금 가한 것과 같은 징벌은, 그에게 수작을 건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런 값어치가 있으니,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기 행실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들지만, 그 반성이 결코 그들의 처신을 고쳐 법의 제재를 면할 만큼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생루의 팔은 아무런 사전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뻗어 나갔지만, 그러한 온갖 징벌은 설령 법을 뒷받침한다 해도 도덕에 어떤 획일성을 가져올 힘은 없다.

이 사건들, 특히 그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던 사건은 로베르에게 얼마간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잠시 침묵한 뒤 그는 내게 자기를 떠나 혼자 빌파리지 부인을 찾아가 달라고 청했다. 그도 그곳에서 나와 합류하겠지만, 이미 나와 하루의 절반을 보낸 것이 아니라 방금 파리에 도착한 것처럼 보이도록, 우리가 함께 방에 들어가지는 않는 편이 좋겠다고 했다.

발베크에서 빌파리지 부인과 알게 되기 전에 내가 짐작했던 대로, 그녀가 사는 세계와 게르망트 부인의 세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빌파리지 부인은 이런 부류의 여인들 가운데 하나였으니, 명문가에 태어나 그에 못지않은 또 하나의 명문가로 시집갔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사교계에서 대단한 지위를 누리지는 못하고, 조카나 시누이·올케뻘 되는 몇몇 공작부인, 어쩌면 왕관을 쓴 인물 한둘, 그리고 오래된 집안 친구들을 제외하면, 그 응접실이 오직 삼류 인사들, 곧 중산층 출신이거나 지방 귀족이거나 어딘가 흠 있는 귀족들로만 채워지고, 그런 이들이 드나든 지 오래인 탓에, 핏줄의 인연이나 모른 척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우정의 의리로 그 집에 와야 하는 처지가 아닌 세련되고 속물적인 사람들은 죄다 진작에 발길을 끊어 버린 그런 여인이었다. 물론 나는 처음 몇 분이 지나자, 발베크에서 빌파리지 부인이 어떻게 그토록, 우리보다도 더 잘, 그때 아버지가 노르푸아 와 함께 다니던 에스파냐 여행의 자잘한 세부까지 훤히 꿰고 있었는지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빌파리지 부인과 그 대사 사이의 이십 년도 더 된 친밀한 사이가 이 부인의 신분 추락의 원인이었으리라는 설명에 만족할 수는 없었으니, 가장 세련된 여인들조차 그보다 훨씬 덜 점잖은 정부(情夫)를 거느렸음을 뽐내는 세계였던 데다, 그가 이 후작부인에게 한낱 오랜 친구 이상의 무엇이었던 것도 아마 여러 해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빌파리지 부인은 지난날 다른 염문들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보다 더 정열적인 기질을 지녔던 그 시절에, 비록 그 원숙한 색조의 얼마간은 열정에 찼다가 사라진 그 세월에 빚지고 있는, 차분하고 신앙심 깊은 노년에 이른 지금, 그녀는 오래 살아온 그 시골 동네에서 어떤 추문들을, 젊은 세대는 알지 못한 채 다만 그 여파를, 그렇지 않았다면 어떤 범속함의 흔적도 없이 더없이 순수했을 방문객 명단이 고르지 못하고 흠 있게 짜인 데서 알아챌 뿐인 그런 추문들을, 끝내 피하지 못했던 것일까? 그녀의 조카가 그녀에게 돌리던 그 ‘독설’이, 그 먼 옛날에 그녀에게 적을 만들어 주었던 것일까?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남자들에게 거둔 어떤 성공을 이용해 여자들에게 앙갚음하도록 몰아갔던 것일까? 이 모든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또한 빌파리지 부인이 말뿐 아니라 억양에까지 그토록 섬세한 결을 입혀 가며 겸손이나 너그러움을 이야기하던 그 더없이 예민한 태도도 이 추측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으니, 어떤 미덕들을 두고 그저 찬동하며 말할 뿐 아니라 실제로 그 매력을 느끼고 그것들을 놀랍도록 깊이 이해해 보이는 사람들은, 사실 훗날 회고록을 쓸 때가 되면 그 미덕들을 훌륭하게 그려 낼 그런 사람들은, 흔히 그 미덕들을 몸소 실천하던, 말없고 소박하고 꾸밈없는 세대에서 나오되 정작 그 세대의 일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세대는 그들 안에 비칠 뿐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 세대가 지녔던 성품 대신, 우리는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감수성과 지성을 발견한다. 그리고 빌파리지 부인의 삶에 그런 추문들이, 설령 있었다 한들 그 이름의 광채가 지워 버렸을 그런 추문들이 있었든 없었든, 지체 높은 여인의 것이라기보다 차라리 이류 작가의 것에 가까운 이 지성이야말로 의심할 바 없이 그녀의 사교적 몰락의 원인이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