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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18)

3권 제1부 · 제1장

빌파리지 부인이 주로 떠받들던 균형이나 절제 같은 자질들이 딱히 고상한 것은 아니었음이 사실이다. 그러나 절제를 온전히 알맞게 이야기하려면 ‘절제’라는 말만으로는 모자라고, 도리어 전혀 절제되지 않은 고양(高揚)을 전제하는 문필가의 자질을 얼마간 갖추어야 한다. 나는 발베크에서, 어떤 위대한 예술가들의 천재성이 빌파리지 부인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들을 은근히 놀리고 자신의 몰이해를 우아하고 재치 있는 형태로 드러내는 것뿐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 재치와 우아함은, 그녀가 그것들을 밀고 나간 그 지점에 이르러서는, 다른 차원에서, 설령 그것들이 가장 고귀한 걸작을 깎아내리는 데 쓰였다 해도, 그 자체로 진정한 예술적 자질이 되었다. 그런데 그러한 자질이 사교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은 의사들이 선택적이라 부르는 종류의 병적인 작용이어서, 어찌나 허물어뜨리는 힘이 센지 가장 굳건히 자리 잡은 사교계의 기둥들조차 어지간한 동안 버텨 내기가 힘들 정도다. 예술가들이 지성이라 부르는 것이 사교계에는 순전한 오만으로 비치는데, 사교계는 예술가들이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유일한 시점에 스스로를 놓지 못하고, 그들이 어떤 표현을 고르거나 어떤 우정을 맺을 때 굴복하는 그 독특한 매력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들과 함께 있으면 어떤 피로와 짜증을 느끼며, 거기서 이내 반감이 솟아난다. 그렇지만 그녀의 대화에서, 그리고 그녀가 훗날 펴낸 회고록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거니와, 빌파리지 부인은 지극히 사교적인 일종의 우아함밖에는 보여 주지 않았다. 위대한 작품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채, 때로는 알아보지도 못한 채 지나쳐 버린 그녀는, 자기가 살아온, 게다가 그녀가 아주 적절하고 매력적으로 묘사한 그 시대로부터, 그 시대가 그녀에게 베풀 수 있었던 선물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들밖에는 거의 간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서술은, 설령 지적이지 않은 소재만을 다룬다 해도 여전히 지성의 산물이며, 책에서든 그와 거의 다를 바 없는 대화에서든 의도적으로 경박한 인상을 주려면, 순전히 경박하기만 한 사람은 갖출 수 없는 진지한 손길이 요구된다. 어떤 여인이 쓴, 걸작으로 꼽히는 어느 회상록에서, 사람들이 경쾌한 우아함의 본보기로 인용하는 그 구절은, 늘 나로 하여금 이렇게 의심하게 만들었으니, 그런 경지의 가벼움에 이르려면 그 저자는 애초에 꽤나 딱딱한 교육과 지루한 교양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고, 처녀 시절에는 아마 친구들에게 못 견디게 잘난 척하는 사람으로 비쳤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문학적 자질과 사교적 실패 사이의 연관은 어찌나 필연적인지, 오늘날 우리가 빌파리지 부인회고록을 펼쳐 보면, 어느 페이지에서든 알맞은 형용어 하나, 이어지는 은유 몇 마디만으로도 독자는, 르루아 부인 같은 속물이 대사관 계단에서 늙은 후작부인에게 보냈을 그 깊숙하되 얼음장 같은 인사를 능히 그려 낼 수 있을 것이니, 그 르루아 부인은 게르망트가를 찾아갈 때는 어쩌면 이 부인에게 명함이나 두고 갔을지언정, 거기서 마주칠 온갖 의사나 변호사의 아내들 틈에서 체면을 잃을까 봐 결코 그 집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빌파리지 부인은 어쩌면 아주 젊은 시절에 여류 문학가였고, 자기 지식의 들끓음에 도취되어, 자기보다 덜 총명하고 덜 배운 사교계 사람들에게, 상처 입은 쪽은 결코 잊지 못하는 그 신랄한 일격을 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재능이란, 사교계 사람들이 ‘완전한 여인’이라 부르는 것을 그 전체로부터 빚어내기 위해, 사교적 성공에 이바지하는 자질들에 인위적으로 갖다 붙이는 별개의 부속물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정신적 기질의 살아 있는 산물이니, 그 기질에는 대개 많은 도덕적 자질이 결여되어 있고 그 안에서는 하나의 감수성이 우세하며, 책에서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그 감수성의 다른 발현들이 삶의 과정에서는 아주 또렷이 느껴질 수 있으니, 이를테면 어떤 호기심들, 어떤 변덕들, 사교 관계를 넓히거나 유지하거나 그저 행사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제 즐거움을 위해 이곳저곳에 가고 싶어 하는 욕망 같은 것이 그러하다. 나는 발베크에서, 빌파리지 부인이 자기 하인들의 호위에 둘러싸인 채, 지나가면서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삼감이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고, 그녀가 늘 그런 태도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 듯싶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보고 잘생겼다고 여겨서, 또는 그저 그가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서, 또는 그가 자기가 아는 사람들과는 달라 보여서, 별안간 그 사람을 알고 싶어 안달하곤 했으니, 이 무렵 그녀가 아는 사람들이란, 그들이 결코 자기를 저버리지 않으리라 여겨 아직 그들의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하지 않았던 그때에는, 하나같이 포부르 생제르맹의 더없이 순수한 정수(精髓)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그녀가 총애로 점찍은 보헤미안이나 보잘것없는 중산층 신사에게, 그녀는 그 상대가 그 값어치를 헤아릴 줄도 모르는 초대를, 어떤 집의 세련됨을 그 안주인이 맞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물리치는 사람들로 가늠하는 버릇이 든 속물들의 눈에 그녀를 차츰 값어치 없게 만들기 시작한 그런 끈질김으로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젊은 시절 어느 한때 빌파리지 부인이 귀족 사회의 고운 꽃에 속한다는 만족에 물릴 대로 물려, 자기가 어울려 사는 사람들을 놀래고 사교계에서 제 지위를 일부러 깎아내리는 데서 일종의 재미를 느꼈다면, 그녀는 그 지위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거기에 온전한 중요성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녀는 공작부인들이 감히 말하거나 하지 못하는 온갖 것을 말하고 행함으로써, 자기가 그들보다 낫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이고 싶어 했었다. 그러나 이제 가까운 친척을 제외한 그들 모두가 발길을 끊자, 그녀는 자기가 초라해졌다고 느꼈고, 다시 한번 군림하려 했으되, 이번에는 재치와는 다른 왕홀(王笏)로써 그리하려 했다. 그녀는 그토록 애써 쫓아냈던 그 모든 여인을 이제는 제 집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했다. 얼마나 많은 여인의 삶이, 우리는 저마다 나이에 따라 다른 세계에서 살고, 손윗사람들의 신중함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과거에 대해 뚜렷한 그림을 그려 그 순환을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 까닭에 좀처럼 알려지지 않는 그런 삶이, 이런 식으로 대조적인 시기들로 갈라졌던가, 그 마지막 시기는 온전히, 두 번째 시기에 그토록 가벼이 바람에 날려 버린 것을 되찾는 데 바쳐지고서. 어떤 식으로 바람에 날려 버렸느냐고? 젊은이들은 그것을 상상하기가 더더욱 어려우니, 그들은 눈앞에 나이 지긋하고 점잖은 빌파리지 후작부인을 보면서, 새하얀 머리채 아래 그토록 위엄 있는 오늘날의 근엄한 일기 작가가, 한때는 그 시절의 낙(樂)이었을지 모를, 어쩌면 지금은 무덤에 잠든 남자들의 재산을 삼켜 버린 명랑한 심야의 난봉꾼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또한 끈덕지고 타고난 근면으로, 높은 태생 덕에 얻은 지위를 허무는 일에 몰두했다고 해서, 그 먼 시절에조차 빌파리지 부인이 제 지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뜻은 조금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신경쇠약자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고립과 무위(無爲)의 거미줄은, 그가 아침부터 밤까지 손수 짜 나갈 수 있으되 그렇다고 그것이 견딜 만해 보이는 것은 아니며, 그가 자기를 사로잡고 있는 그물에 또 한 코를 서둘러 더하는 동안에도, 어쩌면 그는 오로지 춤과 운동과 여행만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 삶에 그 형태를 부여하는 일에 매달려 있지만,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책 속의 본보기를 베끼듯이, 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그러한 사람의 모습을 베끼는 것이다. 르루아 부인의 경멸 어린 인사는 어느 정도까지는 빌파리지 부인의 참된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었을지 모르나, 그녀의 야망에는 조금도 부합하지 않았다.

아마도 르루아 부인이, 스완 부인이 즐겨 쓰던 표현을 빌리자면, 후작부인을 ‘싹둑 잘라 내던’ 바로 그 순간에, 후작부인은 마리아멜리 왕비가 언젠가 자기에게 “그대는 꼭 내 딸 같소” 하고 말했던 일을 떠올리며 위안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왕실 우정의 표지는, 은밀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오직 후작부인 한 사람에게만 존재했으니, 옛 음악원 수상자의 상장처럼 먼지가 앉아 있었다. 진정한 사교적 이점이란, 삶을 만들어 내는 것들, 그 덕을 본 사람이 굳이 그것을 붙들거나 세상에 알리려 애쓸 필요 없이 사라져도 되는 것들뿐이니, 같은 날 다른 백 가지가 그 자리를 대신할 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비가 자기에게 그 말을 했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한들, 그녀는 그럼에도 그것을 르루아 부인이 지닌, 어디서나 초대받는 그 영구적인 능력과 기꺼이 맞바꾸었을 것이니, 마치 어느 식당에서, 그 천재성이 수줍은 얼굴의 주름에도 낡아 해진 외투의 케케묵은 재단에도 적혀 있지 않은, 위대하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가, 사교계의 가장 낮은 축에 드는 젊은 주식 중개인, 곧 옆 탁자에서 여배우 두엇과 함께 앉아 있는 그 중개인이라도 기꺼이 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았으니, 그 탁자로는 비굴하고 끊임없는 행렬을 이루어 지배인, 수석 급사장, 사환들이 부랴부랴 달려오고, 심지어 부엌에서 줄지어 나온 접시닦이들까지 옛날이야기 속에서처럼 그에게 인사를 올리며, 그동안 술 담당 급사는 제 병들처럼 먼지를 뒤집어쓴 채, 절뚝거리고 얼떨떨한 모습으로, 마치 지하 저장고에서 올라오다가 대낮의 빛 속으로 나서기 전에 발을 삔 것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그러나 빌파리지 부인의 응접실에서 르루아 부인의 부재는, 설령 그것이 이 집 안주인을 괴롭혔다 해도, 손님들 대다수에게는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갔다는 점을 짚어 두어야겠다. 그들은 르루아 부인이 차지한 그 독특한 지위, 오직 사교계에만 알려진 그 지위를 전혀 몰랐고, 오늘날 그녀의 회고록 독자들이 그러했으리라 확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빌파리지 부인의 접대가 파리에서 가장 화려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생루와 헤어진 뒤, 노르푸아 가 아버지에게 준 조언을 좇아 처음으로 빌파리지 부인을 찾아뵈러 갔을 때, 나는 노란 비단으로 벽을 두른 그녀의 응접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그 노란 벽을 배경으로, 보베 태피스트리를 씌운 소파와 감탄스러운 안락의자들이 잘 익은 산딸기처럼 거의 자줏빛에 가까운 붉은빛으로 도드라져 있었다. 게르망트가와 빌파리지가의 초상들과 나란히, 모델들이 몸소 선사한 마리아멜리 왕비, 벨기에 왕비, 주앵빌 대공, 오스트리아 황후의 초상도 걸려 있었다. 빌파리지 부인 자신은 구식 검정 레이스 보닛을 쓰고 있었는데(브르타뉴의 어느 여관 주인이, 손님이 아무리 파리 사람다워졌어도 하녀들에게 코이프와 넓은 소매 차림을 시키는 편이 더 격에 맞다고 느끼듯, 그녀 역시 지방색 혹은 시대색에 대한 그 본능적 감각으로 이 보닛을 간직하고 있었다),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 책상 위 그녀 앞쪽에는 붓과 팔레트, 아직 덜 그린 수채 꽃그림 말고도, 유리잔이며 받침접시며 찻잔에 이끼장미, 백일홍, 공작고사리가 꽂혀 있었는데, 갑작스레 손님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녀가 방금 그리다 만 것으로, 마치 18세기 메조틴트 판화 속 꽃집 진열대에 수북이 쌓인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후작부인이 시골 저택에서 오는 길에 감기가 든 탓에 일부러 살짝 데워 둔 이 응접실에는,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한 사서가 와 있었다. 빌파리지 부인은 그와 함께 오전 내내, 곧 인쇄에 넘길 자기 회고록에 문서 증거로서 복제해 실을, 여러 역사적 인물들이 그녀 앞으로 보낸 친필 편지를 골라내던 참이었다. 또 근엄하고 말주변 없는 한 역사가도 있었는데, 그녀가 몽모랑시 공작부인의 초상을 물려받아 아직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듣고, 프롱드의 난에 관한 자기 저작에 도판으로 실을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러 온 것이었다. 곧이어 이 모임에는 내 오랜 친구 블로크가 가세해 힘을 보탰다. 이제 촉망받는 극작가가 된 그에게, 그녀는 다음번 오후 연회 때 배우들의 무료 출연을 얻어 내는 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과연 사교계라는 만화경은 막 돌아가는 중이었고, 머잖아 드레퓌스 사건이 유대인들을 사회의 사다리 맨 아래 칸으로 내동댕이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 반드레퓌스의 회오리가 아무리 사납게 몰아친다 한들, 폭풍이 몰아치는 첫 시각에 파도가 가장 높은 법은 아니다. 둘째로, 빌파리지 부인은 집안의 한 무리 전체가 유대인을 성토하도록 내버려 둔 채, 여태껏 그 사건과는 완전히 거리를 두었고 그것을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끝으로, 블로크처럼 아무도 모르는 젊은이는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지나갈 수 있었으나, 자기 진영을 대표하는 저명한 유대인들은 이미 위협받고 있었다. 이제 그의 턱은 염소수염으로 뾰족해졌고, 그는 겹안경을 끼고 긴 프록코트를 입었으며, 손에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처럼 장갑을 말아 쥐고 있었다. 루마니아인, 이집트인, 튀르크인은 유대인을 미워할지 모른다. 그러나 프랑스의 응접실에서는 그 민족들 사이의 차이가 그리 뚜렷이 드러나지 않으며, 마치 사막 한복판에서 걸어 나오기라도 하듯 몸을 하이에나처럼 웅크리고 목을 비스듬히 앞으로 내밀며 깊숙한 “살람” 인사로 넙죽 조아리는 이스라엘 사람은, 동방적인 것에 대한 어떤 취향을 온전히 채워 준다. 다만 그 유대인이 실제로 사교계 “안”에 들어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쉽사리 귀족 티를 내게 되고, 그 몸가짐이 어찌나 프랑스풍으로 물드는지, 얼굴 위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한련화처럼 제멋대로 뻗은 반항적인 코가, 솔로몬의 코라기보다 차라리 마스카리유의 코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블로크는 포부르의 체조로 유연해지지도, 영국이나 스페인과의 혼혈로 고귀해지지도 않았기에, 유럽식 복장을 걸쳤음에도 이국적인 것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여전히 드캉이 그린 유대인들 못지않게 기이하고 감칠맛 나는 볼거리로 남아 있었다. 태초부터, 현대의 파리에서조차, 우리 극장의 무대 위에서, 관공서 문서함 뒤에서, 장례식장에서, 거리에서 한 덩어리의 밀집 방진을 표면 위로 밀어 올리는 놀라운 종족의 힘이여. 그것은 우리 현대식 머리 손질법에 제 표를 새기고, 프록코트를 빨아들이고 잊게 하며 길들이거니와, 그들이 입은 그 프록코트는 다리우스 궁전 문 앞 수사의 어느 기념비 프리즈에 예복 차림으로 새겨진 아시리아 서기들의 옷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날 오후 늦게 블로크는, 샤를뤼스 가 그의 이름이 유대식이냐고 물은 것이 반유대적 악의에서 나온 줄로 짐작했을지 모르나, 실은 그저 미적 관심과 지방색에 대한 애호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되돌아가 보면, 종족의 끈질긴 지속을 말할 때 우리는 유대인, 그리스인, 페르시아인, 곧 저마다의 차이를 그대로 두는 편이 나은 그 모든 민족에게서 받는 인상을 정확히 옮기지 못한다. 우리는 고전 회화를 통해 옛 그리스인의 얼굴을 알며, 수사의 어느 궁전 벽에서 아시리아인을 본 적이 있다. 그리하여 파리의 응접실에서 이런저런 집단에 속한 동방인들과 마주칠 때, 우리는 강령술의 힘이 불러내 생명을 준 존재들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태껏 우리가 안 것은 피상적인 이미지뿐이었건만, 보라, 그것이 깊이를 얻어 삼차원으로 뻗어 나가고, 움직이는 것이다.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자 사교계의 최신 총아인 그 젊은 그리스 여인은, 역사적이면서 동시에 미학적인 발레의 군무에서 헬라스의 예술을 살과 피로 상징하는 무희들과 똑 닮아 보인다. 그러나 극장에서는 무대 장치 탓에 이런 이미지가 어쩐지 진부해지고 만다. 반면 튀르크 여인이나 유대 신사가 응접실에 들어섬으로써 우리에게 열리는 광경은, 그들의 이목구비를 생동케 함으로써 그들을 한층 더 낯설게 보이게 하는데, 마치 그들이 정말로 영매의 안간힘으로 불러낸 존재이기라도 한 듯하다. 그것은 영혼이다(아니, 적어도 지금까지는 이런 종류의 물질화 속에서 영혼이 오그라들어 남은 그 왜소한 무엇이라고 해야겠지만). 여태껏 오직 박물관에서만 언뜻 엿보던 그 영혼, 하찮으면서도 초월적인 삶에서 뜯겨 나온 옛 그리스인과 옛 히브리인의 영혼이, 우리 눈앞에서 이 당혹스러운 무언극을 펼쳐 보이는 듯한 것이다. 방을 나서는 그 젊은 그리스 여인에게서 우리가 부질없이 껴안으려 하는 것은, 오래전 어느 항아리 옆면에서 감탄하며 바라보던 그 형상이다.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빌파리지 부인의 응접실 불빛 아래에서 블로크의 사진을 찍었더라면, 그 사진은 이스라엘에 관해, 우리가 심령 사진에서 보게 되는 것과 똑같은 이미지를 내놓았으리라. 인간에게서 나온 것 같지 않아 그토록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이상하리만치 인간을 닮아 그토록 사람을 속이는 바로 그 이미지 말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내뱉는 말의 하찮음마저도,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의 이 일상 세계에서는, 마치 회전 탁자를 둘러싸고 모여 앉아 무한의 비밀을 배우기를 기대하는 천재조차, 방금 블로크의 입에서 나온 바로 그 말, “내 실크해트 좀 잘 챙겨 두게” 하는 말밖에는 내뱉지 않으니 말이다.

“아, 장관이라니요, 이보세요.” 빌파리지 부인이, 특별히 내 친구를 향해 말을 건네며, 내가 도착하는 바람에 끊겼던 이야기의 실마리를 다시 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답니다. 그때 나는 어린애에 지나지 않았지만, 국왕께서 우리 할아버지께 드카즈 를 야회에 초대해 달라고 청하시던 일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요. 그 야회에서 우리 아버지는 베리 공작부인과 춤을 추기로 되어 있었죠. ‘그리해 주면 내가 기쁘겠네, 플로리몽.’ 국왕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귀가 좀 어두우셨던 할아버지는 국왕께서 카스트리 라고 하신 줄 아셨는데, 그거야 청하기에 지극히 당연한 일로 보였죠. 드카즈 라는 걸 아시고는 처음엔 노발대발하셨지만, 결국 뜻을 굽히시고 그날 저녁으로 드카즈 에게 편지를 써서, 이튿주에 여는 무도회에 왕림하는 영광을 베풀어 할아버지의 체면을 세워 달라고 청하셨답니다. 그 시절 우리는 예의가 발랐거든요, 이보세요. 그 어떤 안주인도 그저 명함을 보내고 거기에 ‘다과’니 ‘무도’니 ‘음악회’니 적어 넣을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죠. 하지만 예의를 알았다고 해서 무례를 부릴 줄 몰랐던 건 아니에요. 드카즈 는 초대를 수락했지만, 무도회 전날 할아버지가 몸이 편찮으셔서 초대를 모두 취소했다는 소문이 퍼졌죠. 할아버지는 국왕께 복종은 하셨으나, 드카즈 를 당신의 무도회에 들이지는 않으신 거예요. … 그래요, 이보세요, 나는 몰레 를 아주 잘 기억해요. 재치 있는 사람이었죠. 아카데미에서 드 비니 를 맞아들일 때 그걸 잘 보여 주었어요. 다만 어찌나 젠체하던지, 제집에서 만찬을 들러 실크해트를 손에 든 채 계단을 내려오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답니다.”

“아! 그것이야말로 자못 고약하게 속물적이었을 어느 시대를 여실히 암시하는군요. 제집에서까지 모자를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 필경 누구에게나 몸에 밴 습관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블로크가 이렇게 논평했다. 지난날 귀족 생활의 세세한 대목을 목격자에게서 직접 배우는 이 드문 기회를 한껏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 후작부인의 이를테면 임시 비서 노릇을 하던 사서는, 마치 나머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기라도 하듯 다정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 보세요, 저분이 어떤 분인지. 무엇이든 다 아시고, 누구든 다 만나 보셨죠. 무엇을 여쭤도 좋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분이에요.”

“아유, 천만에요.” 빌파리지 부인이, 이윽고 다시 그리기 시작할 공작고사리가 담긴 유리잔을 말하면서 제 쪽으로 끌어당기며 대꾸했다. “그건 몰레 의 버릇이었을 뿐, 그게 다예요. 나는 아버지가 집 안에서 모자를 들고 다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물론 국왕께서 오셨을 때는 예외였지만요. 국왕께서는 어디에 계시든 그곳이 곧 당신의 집이니, 그럴 때면 집주인은 제 응접실에서도 한낱 방문객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의 제2장에서 우리에게 이르기를,” 프롱드의 난을 다루는 역사가 피에르 가 이렇게 운을 떼었으나, 어찌나 머뭇거리던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몇 주째 온갖 치료에도 낫지 않는 신경성 불면에 시달리던 그는, 아예 잠자리에 드는 것을 포기하고, 기진맥진해 반쯤 죽은 몸으로, 오직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을 때만 바깥출입을 했다. 남들에게는 지극히 간단한 이 나들이가, 그에게는 마치 달에서 내려오기라도 해야 하는 양 큰 힘이 드는 일이어서 자주 되풀이할 수 없었던 그는, 남들의 삶이 자기 자신의 돌발적인 활동에 최대한 쓸모가 되도록 늘 한결같이 짜여 있지는 않다는 사실에 이토록 번번이 부딪히는 데에 놀라곤 했다. 그는 이따금, 웰스 의 소설에 나오는 어떤 자동인형처럼 억지로 몸을 일으켜 프록코트를 걸치고서야 겨우 다다른 도서관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보곤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빌파리지 부인이 집에 있었고, 그는 곧 그 초상을 구경하게 될 참이었다.

그러는 사이 그의 말은 블로크에게 가로막혔다. “정말이지,” 블로크가, 왕족의 방문 예법에 관해 빌파리지 부인이 한 말을 두고 한마디 했다. “글쎄, 저는 그런 걸 통 몰랐지 뭡니까.” 마치 자기가 그걸 진작부터 몰랐다는 것이 되레 이상하다는 투였다.

“그런 방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제 아침 우리 조카 바쟁이 내게 부린 어처구니없는 장난 들으셨어요?” 빌파리지 부인이 사서에게 물었다. “글쎄 그 애가 우리 집 사람들더러, 자기가 왔다고 아뢰는 대신에 스웨덴 왕비께서 나를 만나러 오셨다고 전하라고 시켰지 뭐예요.”

“저런! 그렇게 곧이곧대로 전하게 하다니요! 이거 참, 어지간히 뻔뻔한 양반이네요.” 블로크가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외쳤고, 역사가는 위엄 어린 수줍음을 띠고 빙그레 웃었다.

“나는 꽤나 놀랐어요. 시골에서 돌아온 지 겨우 며칠밖에 안 됐거든요. 잠시만이라도 조용히 지내려고 내가 파리에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일부러 일러두었던 터라, 스웨덴 왕비께서 어떻게 그새 소식을 들으셨나 하고 혼자 의아해했죠.” 빌파리지 부인이 이렇게 말을 이었고, 손님들은 스웨덴 왕비의 방문이 안주인에게는 그 자체로 조금도 별날 것이 없는 일이라는 데에 놀라 마지않았다.

그날 이른 시각에 빌파리지 부인은 사서와 더불어 자기 회고록에 실을 삽화를 배치하고 있었을 터인데, 이제는 자기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언젠가 자기 독자를 끌어모아야 할 바로 그런 층을 대표하는 평범한 대중을 상대로 그 효과를 시험해 보고 있는 셈이었다. 그녀의 응접실은 정말로 세련된 응접실과는 여러모로 달랐을지 모른다. 그런 세련된 응접실에서라면 빌파리지 부인이 접견하던 여러 중산층 부인이 보이지 않는 데에 놀라고, 그 대신 르루아 부인이 세월을 두고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 것과 같은 눈부신 유행의 선도자들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그녀의 회고록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 책에서는 지은이의 대수롭지 않은 몇몇 교분이, 굳이 언급할 계기가 없는 탓에 사라져 버렸다. 한편 그녀를 찾아오지 않은 이들의 부재는 아무런 빈자리도 남기지 않는데, 지은이에게 주어진 지면이 어쩔 수 없이 한정된 까닭에 극히 몇 사람만 등장할 수 있고, 게다가 그 몇 사람이 왕족이거나 역사적 인물이라면, 어떤 회고록이든 대중에게 전할 수 있는 최고도의 고귀한 인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르루아 부인이 보기에 빌파리지 부인의 연회는 삼류였고, 빌파리지 부인은 르루아 부인의 그런 평가에 찔리는 아픔을 느꼈다. 그러나 오늘날 르루아 부인이 누구였는지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그녀의 평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스웨덴 왕비가 드나들고 일찍이 오말 공작, 브로글리 공작, 티에르, 몽탈랑베르, 뒤팡루 주교가 드나들던 빌파리지 부인의 응접실이야말로, 호메로스와 핀다로스의 시절 이래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그래서 높은 가문, 왕족이거나 왕족에 준하는 태생, 그리고 국왕과 백성의 지도자와 그 밖의 저명한 이들과의 우정을 부러워하는 후세에 의해, 19세기의 가장 눈부신 응접실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 가운데, 빌파리지 부인은 여전히 제 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에서, 그리고 이따금 살짝 “손질을 가한” 기억들, 곧 그것을 빌려 자기 사교 활동을 과거로까지 넓혀 나가던 그 기억들에서 제 몫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노르푸아 가 있었으니, 그는 옛 벗을 사교계의 이렇다 할 지위로 되돌려 놓지는 못했으되, 자기 도움이 필요할 법한 외국이나 프랑스의 정치가들, 곧 그들을 확실히 붙들어 두는 유일하게 실효 있는 방도가 빌파리지 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임을 아는 이들을 그녀의 집으로 데려오기는 했다. 어쩌면 르루아 부인도 이 유럽의 명사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원(才媛) 티가 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피하는, 몸가짐 바른 여인이었던 그녀는, 자기 소설가나 철학자들과 사랑의 본질을 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자기가 아는 총리들에게 동방 문제를 꺼낼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이요?” 언젠가 그녀는,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하고 캐묻던 한 나서기 좋아하는 부인에게 이렇게 대꾸한 적이 있다. “사랑이요? 나는 그걸 늘 하죠. 다만 그것에 대해 말하는 법은 없답니다.” 이런 문단이나 정계의 명사들을 집에 들일 때면, 그녀는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그러듯 그들을 포커판에 앉히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들은 흔히, 빌파리지 부인이 억지로 끌어들이던 일반적 관념에 관한 진지한 대화보다 이편을 더 좋아했다. 그러나 사교적인 뜻에서는 우스꽝스러웠을지 몰라도, 이런 대화들은 빌파리지 부인회고록에 저 감탄스러운 대목들, 곧 코르네유의 비극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서전이라는 책에서 그토록 근사하게 읽히는 그 정치론을 채워 주었다. 더욱이 이 세상의 빌파리지들이 여는 연회만이 후세에 전해질 운명인데, 이 세상의 르루아들은 글을 쓸 줄 모르고, 설령 쓸 줄 안다 한들 그럴 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빌파리지들의 문학적 성향이 르루아들의 멸시를 사는 원인이라면, 르루아들의 그 멸시는 이번에는, 문필의 길이 요구하는 그 여가를 재원들에게 마련해 줌으로써, 빌파리지들의 문학적 성향에 남다른 이바지를 하는 셈이다. 세상에 잘 쓰인 책이 몇 권쯤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으로 삼으신 하느님은, 바로 그 목적으로 르루아들의 마음속에 그런 멸시를 불어넣으신다. 만일 르루아들이 빌파리지들을 만찬에 초대한다면, 빌파리지들은 당장 글 쓰던 책상에서 일어나 여덟 시까지 마차를 대령하라 이를 것임을 하느님은 아시기 때문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