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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브레 ⑤

1권 · 콩브레

때로는 오후 한복판에서 정원사의 딸이 나를 책에서 떼어 놓곤 했는데, 그 애는 미친 아이처럼 뛰어와, 화분에 심은 오렌지나무를 넘어뜨리고, 손가락을 베고, 이를 부러뜨리면서 “온대요, 온대요!” 하고 외쳐 대는 바람에, 프랑수아즈와 나도 함께 달려가 그 구경거리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게 했다. 그것은 콩브레에 주둔한 기병대가 무슨 군사 훈련을 하러 나가는 날의 일로, 그들은 대개 생트일드가르드 거리로 지나갔다. 우리 집 하인들이 정원 울짱 밖 의자에 나란히 앉아, 일요일 산책을 나온 콩브레 사람들을 바라보고 또 그들에게 바라봄을 받고 있는 동안, 정원사의 딸은 저 멀리 역전 거리의 두 집 사이 틈새로 투구들이 번쩍이는 것을 벌써 알아채곤 했다. 그러면 하인들은 의자를 들고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으니, 기병들이 생트일드가르드 거리를 줄지어 지나갈 때면 거리를 가로세로 가득 메웠고, 서로 부대끼는 말들이 집집의 벽에 스쳐, 홍수 진 강물에 너무 좁은 물길을 내주는 둑처럼 보도를 뒤덮고 잠기게 했기 때문이다.

“가엾은 것들.” 프랑수아즈는 울짱에 채 이르기도 전에 벌써 눈물을 글썽이며 외치곤 했다. “가엾은 젊은이들, 풀밭의 풀처럼 베여 쓰러질 신세라니. 생각만 해도 참 끔찍하구먼.” 그녀는 손을 심장 위에 얹으며 말을 이었는데, 필시 거기서 그 충격을 느꼈던 모양이다.

“볼 만하지요, 안 그래요, 프랑수아즈 부인, 목숨 따위 지푸라기만큼도 아끼지 않는 저 젊은것들 말이오?” 정원사는 그저 그녀의 속을 “긁어” 보려고 이렇게 묻곤 했다. 그리고 그 말이 헛되지는 않았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고요? 아니, 세상에 우리가 아껴야 할 게 목숨 말고 또 뭐가 있단 말이오, 주님께서 두 번은 결코 내려 주시지 않는 유일한 선물인 목숨을? 아이고, 저런. 하기야 당신 말도 맞아요. 정말이지 저것들은 아끼지 않아요! 나는 저것들을 70년에도 봤다니까요. 그 참혹한 전쟁들에서 저것들은 죽음의 두려움이라곤 남아 있지 않아, 그야말로 미치광이나 다름없어요. 게다가 저것들은 목매달 밧줄 값어치도 못 되고요. 이제 사람이 아니라, 사자예요.” 그녀의 사고방식으로는, 사람을 “스아자”라 발음하던 사자에 견주는 것은 그 사람에게 조금도 칭찬이 아니었다.

생트일드가르드 거리는 너무 급하게 꺾여 있어 우리는 멀찍이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볼 수가 없었고, 오직 역전 거리의 그 두 집 사이 틈새로만, 새로 나타난 투구들이 우리 쪽으로 내달으며 햇빛에 번쩍이는 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정원사는 아직 올 사람이 많은지 알고 싶어 했고, 게다가 머리 위로 햇볕이 내리쬐어 목도 말랐다. 그래서 문득 그의 딸이, 마치 포위된 도시에서처럼 뛰쳐나가 돌격을 감행하고, 길모퉁이를 돌아, 목숨을 백 번은 무릅쓰고 나서, 다시 나타나 감초물 한 주전자와 함께 소식을 물어다 주었으니, 티베르지와 메제글리즈 쪽에서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이 아직도 적어도 천 명은 된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수아즈와 정원사는 “화해”를 하고 나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어떻게 처신할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러니까 말이오, 프랑수아즈,” 그가 말했다. “차라리 혁명이 나면 나을 거요. 그러면 아무도 좋아서 하지 않는 한 끼어들 필요가 없을 테니까.”

“아, 그래요, 나도 알겠어요, 정말이지. 그게 더 속 편하지요.”

정원사는 전쟁이 선포되는 즉시 그들이 모든 철도를 멈춰 버릴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럼요, 그렇고말고요. 우리를 못 빠져나가게 하려는 거죠.” 프랑수아즈가 말했다.

그러면 정원사는 “암, 그놈들은 교활한 놈들이지.” 하며 맞장구를 쳤으니, 그는 전쟁이란 나라가 백성에게 걸어 보려는 일종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으며, 달아날 기회만 있다면 거기서 도망치지 않을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으리라고밖에는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날이 아니고서는, 프랑수아즈는 부랴부랴 고모에게로 돌아가고, 나는 다시 책으로 돌아갔으며, 하인들은 다시 대문 밖 제자리에 앉아, 보도에 먼지가 가라앉고 병사들이 지나간 뒤 일었던 흥분이 잦아드는 것을 지켜보곤 했다. 질서가 되잡힌 뒤로도 한참을, 심상찮은 인파의 물결이 콩브레의 거리들을 계속 어둡게 뒤덮었다. 그리고 여느 때 같으면 그런 일이 “예사롭지” 않은 집들 앞에서도, 하인들이, 때로는 주인들마저 앉아서 멍하니 바라보며, 저희 집 문간을 짙고 들쭉날쭉한 술처럼 두르곤 했으니, 그것은 마치 여느 때보다 센 밀물이 바닷가에 남기고 간 조개껍데기와 해초의 띠가, 바다 자신은 물러난 뒤에도, 수놓은 상장(喪章)으로 그 물가를 꾸며 놓은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런 날들을 빼고는, 나는 대개 조용히 책을 읽도록 내버려졌다. 그런데 언젠가 스완이 찾아와 한 차례 훼방을 놓았고, 그때 그가 마침 나로 하여금 베르고트라는 전혀 새로운 작가의 작품에 이르게 한 그 독서에 대해 곁들여 준 이야기가 남긴 뚜렷한 결과는, 그 뒤로 오랫동안 내가 꿈속에 그리던 여인들 가운데 하나의 모습을, 보랏빛 꽃송이가 즐거이 돋아난 담벼락이 아니라 전혀 다른 배경, 곧 고딕 성당의 정면 현관 앞에 윤곽 지어 보곤 했다는 것이다.

내가 베르고트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나보다 나이 많고 내가 몹시 흠모하던 한 친구, 블로크라는 이름의 어느 조숙한 소년에게서였다. 내가 시월의 밤을 사랑한다고 털어놓는 것을 듣자, 그는 나팔 소리 같은 웃음을 크게 터뜨리더니, 이렇게 일러 경고했다. “너는 A. 드 뮈세 선생에 대한 그 천박한 취향을 극복해야 해. 그자는 못된 인간이야, 그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축에 드는, 꽤나 밉살스러운 표본이지. 다만 인정은 하마.” 그는 너그럽게 덧붙였다. “그자도, 심지어 저 라신이란 사람도, 저마다 한평생에 한 번은, 그저 제법 가락이 맞을 뿐 아니라, 내 눈에는 더없는 미덕인, 아무것도 도무지 뜻하지 않는다는 미덕까지 갖춘 시행 하나를 지어냈다는 것을. 하나는

La blanche Oloossone et la blanche Camire,

이고, 다른 하나는

La fille de Minos et de Pasiphaë.

이지. 이것들은, 저 두 도망자를 변호하는 증거로서, 불멸의 신들이 보시기에 흐뭇해하시는 내 지극히 소중한 스승 르콩트 신부님의 어느 논설에서 내 판단에 부쳐진 것이야. 그런 연유로, 여기 지금 당장은 읽을 겨를이 없는 책 한 권이 있는데, 그 어마어마한 사람이 추천했다더군. 사람들 말로는, 그분은 그 지은이인 어느 베르고트 선생을, 저 들판의 어떤 짐승보다도 더 교묘한, 참으로 교묘한 문사(文士)로 여긴다더라. 게다가 그자가 이따금 비평상의 화친주의를, 곧 아둔한 자들을 너그러이 견뎌 주는 다정함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도무지 헤아릴 수도 참작하기도 어려운 노릇이지만, 그래도 그분의 말씀은 내게 델포이의 신탁이나 다름없는 무게를 지녀. 그러니 너는 이 서정적인 산문을 읽어 보렴. 그리하여 바가바트와 ‘마그누스의 그레이하운드’를 지은 저 티탄 같은 가락의 대건축가가 헛말을 하지 않은 것이라면, 아폴론께 맹세코, 너 또한, 나의 스승이여, 올림포스의 그 신성한 기쁨을 맛볼 수 있으리라.” 그가 나더러 자기를 “나의 스승”이라 부르라 하고, 또 그 자신도 나를 그렇게 부른 것은 짐짓 비꼬는 투에서였다. 그러나 실은 우리 둘 다 그 말버릇에서 얼마간 흐뭇함을 얻고 있었으니, 무언가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것에 실제의 존재를 부여한다고 믿는 그런 나이에 아직 있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나는, 블로크와 더 이야기를 나누며 그에게 설명을 다그쳤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탓에, 아름다운 시구가(나로 말하자면 다름 아닌 진리 그 자체의 계시를 그것에서 기대하고 있던 터인데) 아무것도 도무지 뜻하지 않을수록 한결 더 아름답다고 그가 말했을 때 내 안에 심어 놓은 의혹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마침 블로크가 다시는 우리 집에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는 그 집에서 환대를 받았다. 하기야 할아버지는, 내가 어떤 친구에게 깊이 정을 붙여 집에 데려올 때마다 그 친구는 어김없이 유대인이더라고 주장하곤 했다. 원칙적으로야 할아버지도 그것을 마다할 리 없었고, 실은 그 자신의 벗 스완도 유대계 혈통이었지만, 다만 내가 벗으로 고른 유대인들이 대개 가장 나은 부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새 친구를 집에 데려올 때면 거의 늘, 할아버지가 라 쥐브의 “오, 우리 조상의 하느님”을 흥얼거리거나, 아니면 “이스라엘아, 네 사슬을 끊어라”를 부르는 것을 들어야 했다. 물론 가락만 홀로, “움티툼티툼, 트랄라”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친구가 그 소리를 알아듣고 그 가사를 되짚어 낼까 봐 늘 마음을 졸이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보기도 전에, 그저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흔히 그 이름에 딱히 히브리풍이랄 것이 없는데도, 내 친구들 가운데 정말로 선택받은 백성에 속할 만한 이들의 유대계 혈통을 알아맞힐 뿐 아니라, 그 집안에 감춰진 무슨 어두운 비밀까지도 짚어 내곤 했다.

“그래, 오늘 저녁에 온다는 네 친구는 이름이 뭐라던?”

“뒤몽이에요, 할아버지.”

“뒤몽! 아이고, 나는 뒤몽이 무섭구나.”

그러고는 이렇게 노래하곤 했다.

궁수들이여, 경계하라!
쉬지 말고, 소리 없이 지켜보라,

그러고 나서, 세세한 대목을 두고 몇 마디 능란한 물음을 던진 뒤, “경계하라! 경계하라.” 하고 외치곤 했다. 혹은, 만일 당사자인 그 희생양이 이미 도착해서, 자기도 모르게 할아버지의 교묘한 심문에 걸려 제 혈통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경우라면, 할아버지는 이제 더는 아무런 의심도 없음을 우리에게 알리려는 듯, 그저 우리를 쳐다보며 거의 들릴락 말락 하게 이런 가락을 흥얼거리곤 했다.

뭐라! 그대는 이리로 저 겁 많은
이스라엘 사람의 발을 인도하는가?

아니면

정다운 헤브론의 골짜기여, 그리운 아버지의 들녘이여,

아니면, 어쩌면

그렇소, 나는 선택받은 겨레의 사람이오.

할아버지의 이런 자잘한 별난 짓들에는 내 친구들에 대한 어떤 악의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블로크는 다른 이유들로 우리 집안의 눈 밖에 났다. 그는 우선 아버지를 성가시게 했으니, 아버지는 그가 옷이 젖은 채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못 관심을 보이며 물었던 것이다.

“이런, 블로크 군, 날씨가 바뀌었나? 비가 왔는가? 도무지 모를 노릇이군. 기압계는 ‘맑음’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에 블로크에게서 나온 것이라고는 “선생님, 저는 비가 왔는지 어떤지 도무지 말씀드릴 능력이 없습니다. 저는 육체의 우연사들과는 그토록 단호히 동떨어져 살고 있는지라, 제 감각들도 이제는 그것들을 저에게 알려 주는 수고 따위는 하지 않으니까요.” 하는, 별로 유익할 것 없는 대답뿐이었다.

“가엾은 녀석 같으니.” 블로크가 돌아간 뒤 아버지가 말했다. “네 친구는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아니, 날씨가 어떠냐는 것조차 내게 말하지 못하다니. 그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이냐! 그 애는 얼간이야.”

다음으로, 블로크는 할머니의 눈 밖에도 났으니, 점심 식사 뒤에 할머니가 몸이 그리 좋지 않다고 하소연하자, 그가 흐느낌을 삼키며 두 눈에서 눈물을 훔쳤기 때문이다.

“그 애가 진심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구나.”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아니, 그 애는 나를 알지도 못하는걸. 미친 게 아니고서야 말이지.”

그리고 끝내 그는, 점심 시간에 한 시간 반이나 늦게, 게다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흙을 뒤집어쓴 채 와서는, 사과 한마디 없이, 그저 이렇게 말하는 통에 온 집안을 뒤집어 놓고 말았다. “저는 대기의 교란에도, 이른바 ‘시간’이라는 것의 자의적인 구분에도, 조금도 좌우되기를 스스로에게 결코 허락하지 않습니다. 저는 중국의 아편 담뱃대나 말레이의 단검이라면 기꺼이 사교계에 다시 들여올 마음이 있으나, 그보다 무한히 더 해로운(게다가 아주 삭막하게 부르주아적이기까지 한) 저 도구들, 곧 우산이며 시계 따위에 대해서는 온전히 그리고 완전히 무지합니다.”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래도 콩브레에서 계속 맞아들여졌을 것이다. 물론 그는 부모님이 나를 위해 골랐을 법한 친구는 결코 아니었다. 부모님은 마침내, 그가 할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흘린 눈물만은 제법 진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본능적으로든 스스로의 경험에서든, 우리의 초년의 충동적인 감정이란 뒷날의 행동과 삶의 처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도덕적 의무를 지키고, 벗에게 의리를 다하고, 일을 끝까지 참고 마치고, 삶의 규율에 따르는 일은, 이런 한때의 격정, 뜨겁기는 하나 열매 없는 격정보다는, 단단히 몸에 밴 채 무심코 좇게 되는 습관에 더 확고한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모님은 나의 동무로, 블로크보다는, 중산층 도덕의 온갖 법도로 보아 소년들끼리 서로 주고받아야 마땅한 만큼만 내게 주는 소년들, 그날 아침 우연히 나를 다정하게 떠올렸다는 이유로 느닷없이 과일 바구니 따위를 보내오는 일은 없되, 상상과 감정의 단 한 번의 충동으로도 우정의 의무와 권리의 저 정확한 저울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일 줄 모르는 만큼, 그 저울에 나를 해치는 쪽으로 추를 얹을 줄도 모르는 그런 소년들을 더 좋아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아무리 해를 끼쳐도, 우리에 대한 그들의 의무의 길에서 그런 판에 박힌 천성들을 쉬 벗어나게 하지는 못한다. 나의 큰할머니가 바로 그런 부류의 본보기였으니, 그분은 한 조카딸과 여러 해를 다투어 다시는 말도 섞지 않으면서도, 그 조카딸에게 제 재산을 몽땅 물려주기로 한 유언만은 조금도 고치지 않았다. 그 애가 가장 가까운 혈육이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블로크가 좋았다. 부모님은 내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도무지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다는” “La fille de Minos et de Pasiphaë”의 아름다움 같은 화두를 두고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풀 길 없는 물음들은, 그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보다도 나를 더 지치게 하고 더 병들게 했으니, 비록 그런 이야기가 어머니 마음에는 해롭게 여겨졌을지언정 그러했다. 그리하여 그는 단 한 가지 일만 아니었더라면 콩브레에서 계속 맞아들여졌을 것이다. 바로 그날 밤, 저녁 식사 뒤에, 그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뒷날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쳐, 한때는 더 행복하게, 그다음에는 더 불행하게 만든 소식이었다), 곧 어떤 여자도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남자가 그 저항을 무너뜨리지 못할 여자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고는 더 나아가, 나의 큰할머니 자신도 젊었을 적에 “화려한” 삶을 살았고, 소문난 “첩살이”를 했다는 이야기를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서 들었노라고 장담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토록 중대한 소식을 부모님께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번에 블로크가 찾아왔을 때 그는 문 안에 들이지 못했고, 그 뒤로 내가 길에서 그와 마주치면 그는 나를 몹시 쌀쌀맞게 대했다.

그러나 베르고트에 관해서만은 그가 참말을 했던 것이다.

처음 며칠간은, 곧 머릿속을 맴돌며 이내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만 아직은 ‘붙잡지’ 못한 어떤 곡조처럼, 훗날 내가 그토록 열렬히 사랑하게 될 베르고트 문체의 그 요소들이 아직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실 나는 읽고 있던 그의 소설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지만, 내가 이끌리는 것은 오직 그 줄거리뿐이라고 여겼다. 사랑이 처음 동틀 무렵, 어느 모임이나 여흥 자리에서 날마다 한 여인을 만나러 가면서 우리를 끄는 것이 그 자리의 매력이라고 상상하는 것과 같았다. 이윽고 나는 그가 어떤 대목에서 즐겨 쓰던, 드물고 거의 예스러운 표현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런 대목에서는 숨은 화음의 흐름이, 작품 자체에 담기고 감추어진 어떤 전주가 그의 문체에 생기를 불어넣고 그것을 드높였다. 또한 바로 그런 대목에서 그는 ‘삶의 헛된 꿈’을, ‘아름다운 형상들의 마르지 않는 급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의 불모의 찬란한 고통’을, ‘우리 대성당들의 매혹적이고 유서 깊은 정면을 영원토록 고귀하게 하는, 마음을 움직이는 조각상들’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놀라운 심상을 빌려 내게는 새로운 하나의 철학 체계를 통째로 펼쳐 보였고, 그 심상의 영감에 나는 자연히, 내 귓가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 그 하프 소리를 돌리곤 했으니, 그 심상은 그 반주에 무언가 영묘하고 숭고한 것을 더해 주었다. 베르고트의 이런 대목들 가운데 하나, 다른 데서 따로 떼어 낸 세 번째인가 네 번째 대목은, 첫 대목에서 맛본 보잘것없는 기쁨과는 견줄 수도 없는 기쁨으로 나를 가득 채웠으니, 그것은 내 영혼의 가장 깊은 방에서, 온갖 장애와 칸막이가 말끔히 걷힌 듯한, 깊고 나뉘지 않고 광대한 자리에서 겪은 기쁨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하면, 이 대목에서 나는 앞선 대목들에도 있었으나 내 즐거움의 원천으로 헤아리지는 못했던, 흔치 않은 표현에 대한 같은 취향, 같은 음악의 분출, 같은 관념론 철학을 알아보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베르고트의 어느 작품 속 한 특정 대목, 내 마음의 표면에 이차원의 윤곽만을 그리는 대목과 마주한 느낌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모든 책에 두루 깃든 베르고트의 ‘이상적인 대목’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이제 그 안으로 녹아드는 앞선 비슷한 대목들이 모두, 거기에 일종의 밀도와 부피를 더해 주었고, 그로써 내 이해력 자체가 넓어지는 듯했다.

나만이 베르고트를 흠모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문학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한 벗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했고, 뒤 불봉 박사는 베르고트의 최신 작품을 다 읽을 때까지 환자들을 모두 기다리게 했다. 그리고 그의 진찰실에서, 또 콩브레 근처 공원 안의 어느 집에서, 그 시절만 해도 드물던 베르고트 취향의 씨앗들이 처음으로 몇 알 뿌려졌으니, 이제 그 취향은 어찌나 널리 퍼졌는지 유럽과 아메리카 어디서나, 아주 작은 마을에서까지 꽃피우고 있으며, 그 세련됨만은 여전히 드물다. 어머니의 그 벗이, 그리고 아마 뒤 불봉 박사가 베르고트의 글에서 무엇보다 좋아한 것은 바로 내가 좋아한 것과 같았다. 같은 선율의 흐름, 같은 예스러운 표현들, 그리고 아주 단순하고 낯익으면서도 그가 그토록 도드라지게 놓아 그 나름의 특별한 취향을 은근히 드러내는 몇몇 다른 표현들, 또한 그의 책 슬픈 대목들에 깃든 일종의 거칢, 거의 가혹하다 할 어조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분명 이것들이 자기의 주된 매력임을 알고 있었다. 후기 작품들에서 그는 어떤 위대한 진리에 이르거나 어느 유서 깊은 대성당의 이름에 맞닥뜨리면, 서술을 멈추고 기원이나 돈호(頓呼), 긴 기도를 통해, 앞선 책들에서는 산문의 형식 아래 묻힌 채 그 표면의 잔물결에서만 어렴풋이 드러나던, 어쩌면 그렇게 눈에서 가려져 있을 때가, 물살의 속삭임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스러지는지 독자가 짚어 낼 수 없을 때가 더욱 감미롭고 조화로웠던 그 넘쳐흐름을 마음껏 쏟아 냈다. 그가 즐긴 이런 대목들은 우리도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나로 말하면 그것들을 죄다 외우고 있었다. 그가 다시 서술의 실을 이어 갈 때면 나는 실망마저 느꼈다. 그때까지 내게 그 아름다움이 감추어져 있던 무언가를, 이를테면 소나무 숲이나 우박을, 파리의 노트르담을, 아탈리페드르를 이야기할 때면, 그는 어떤 심상 하나로 그 아름다움을 터뜨려 그 정수로 나를 흠뻑 적셨다. 그리하여, 이 우주에는 내 미약한 감각으로는 분간할 수 없는 무수한 요소들이 담겨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은 나는, 그가 그것들을 내 손닿는 데로 가져다주지 않겠는가 싶어, 세상 온갖 것에 대한, 특히 언젠가 내 눈으로 직접 볼 기회가 있을 법한 것들에 대한 그의 의견을, 그의 어떤 은유를 듣고 싶었다. 그런 것들 가운데서도 더욱이 프랑스의 몇몇 유서 깊은 건축물에 대한, 바다의 어떤 풍경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으니, 그가 책에서 그런 것들을 힘주어 언급한 것으로 보아 그것들을 의미와 아름다움이 풍부한 대상으로 여겼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 세상 거의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의견을 나는 알지 못했다. 그의 의견이 내 것과는 전혀 다르리라 나는 의심치 않았으니, 그의 의견은 내가 다다르려 애쓰던 미지의 영역에서 내려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들이 그 완성된 정신에게는 순전한 어리석음으로 비치리라 확신한 나머지, 나는 그것들을 죄다 지워 버렸으므로, 혹여 그의 어느 책에서 이미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무언가를 발견하면, 마치 어떤 신이 그 무한한 자비로 그것을 내게 돌려주며 아름답고 옳다고 선언하기라도 한 듯, 내 가슴은 감사와 자랑으로 벅차올랐다. 이따금 베르고트의 한 페이지가, 잠 못 이루는 밤에 할머니와 어머니에게 편지로 쓰려고 자주 떠올리던 바로 그 생각들을 그토록 간결하고 훌륭하게 담아내어, 그 페이지가 마치 내 편지 첫머리에 얹을 잠언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훗날, 내가 나 자신의 책을 짓기 시작했을 때, 몇몇 문장의 질이 너무도 미흡하게 느껴져 그 일을 이어 갈 결심이 서지 않을 때면, 나는 내 문장에 해당하는 것을 베르고트의 글에서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때, 그의 페이지에서 읽을 때뿐이었다. 그것을 지어낸 이가 나 자신일 때는, 그것이 내 마음에서 감지한 듯한 것을 고스란히 옮겨 놓기를 바라는 조바심과, 그것이 ‘실감 나게’ 나오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내가 쓰는 것이 읽기에 즐거울지 자문할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실로 내가 정말로 좋아한 언어도, 좋아한 관념도 이런 것들 말고는 없었다. 나의 그 열띠고 미흡한 시도들 자체가 내 사랑의 징표였으니, 아무런 즐거움도 안겨 주지 않으면서도 그럼에도 강렬하고 깊은 사랑이었다. 그리하여, 다른 이의 글에서 이와 비슷한 표현들을, 다시 말해 그 낯익은 동반자인 망설임과 억압과 자기 고문에서 벗어난 것들을 문득 마주쳤을 때, 나는 그런 것에 대한 내 식욕을 마음껏 채울 수 있었으니, 이따금 남을 위해 차릴 저녁이 없을 때 자기 배나 실컷 채울 짬을 내는 요리사와 같았다. 그리하여, 어느 날 베르고트의 책에서, 그의 엄숙하고 장려한 문체가 짙은 아이러니를 더한, 그러나 근본은 내가 프랑수아즈를 두고 할머니에게 곧잘 하던 말과 다르지 않은, 어느 늙은 집안 하인에 관한 농담을 발견했을 때, 또 언젠가는, 절대 진리의 거울과도 같던 그의 글 속에서, 우리의 벗 르그랑댕 에 관해 내가 한 적 있는 어떤 말과 비슷한 소견을 그가 곱씹을 만하다 여겼음을 알아챘을 때(더구나 프랑수아즈와 르그랑댕 에 관한 내 말들이야말로, 베르고트라면 조금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리라 믿고서 그를 위해서라면 가장 단호히 내던졌을 것들이었다), 그때 문득 내게 드러난 것은, 나의 이 보잘것없는 삶과 진리의 왕국이 내가 여겼던 것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며, 어떤 지점에서는 실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새로이 얻은 확신과 기쁨에 젖어, 나는 오래 잃었던 아버지의 품에 안긴 듯 그의 인쇄된 페이지 위에 눈물을 흘렸다.

그의 책들로 미루어 나는 베르고트를, 자식들을 잃고 끝내 아무런 위안도 찾지 못한, 병약하고 실의에 빠진 노인으로 그려 냈다. 그래서 나는 그의 문장들을, 어쩌면 그 자신이 뜻한 것보다 조금 더 돌체로, 조금 더 렌토로, 머릿속에서 읽었다기보다 노래했으며, 그의 더없이 단순한 표현조차 그 억양에 유난히 부드럽고 다정한 무언가를 담아 내 귀를 울렸다. 세상 그 무엇보다 나는 그의 철학을 소중히 여겼고, 평생을 바쳐 그것에 헌신하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그 때문에 나는 학교에서 ‘철학’이라 불리는 반에 들어갈 나이가 어서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나는 거기서 다른 무엇을 배우거나 하고 싶지도 않았고, 다만 존재하며 오롯이 베르고트의 정신에 이끌리기를 바랐다. 그때 만일 누군가, 실제로 내가 거기서 따르게 될 형이상학자들이 그와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고 말해 주었다면, 나는 평생의 정절을 맹세한 젊은 연인이 벗에게서 앞으로 두게 될 다른 정부들 이야기를 들었을 때와 같은 절망에 무너져 내렸으리라.

어느 일요일, 내가 정원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부모님을 뵈러 온 스완이 나를 방해했다.

“무얼 읽고 있니? 좀 봐도 될까? 아니, 베르고트잖아! 누가 이 사람 이야기를 해 주던?”

블로크가 그랬다고 나는 대답했다.

“아, 그래, 언젠가 여기서 본 그 아이, 벨리니가 그린 무함마드 2세의 초상을 어찌나 닮았던지. 놀랄 만큼 빼닮았더구나. 똑같이 아치를 그린 눈썹에 매부리코, 툭 불거진 광대뼈까지. 수염이 나면 영락없는 무함마드가 되겠어. 어쨌거나 안목은 있는 아이야, 베르고트는 매력적인 사람이니까.” 그러고는 내가 베르고트를 무척 우러르는 듯 보이자, 아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도무지 입을 열지 않던 스완이 나를 봐서 예외를 두어 말했다. “나는 그를 잘 알지. 네 책 속표지에 몇 자 적어 주었으면 싶으면 내가 부탁해 볼 수 있단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