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히 그런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대신 그의 벗에 관한 물음으로 스완을 몰아세웠다. “저,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누구인지 말씀해 주실 수 있어요?”
“배우? 글쎄, 그건 모르겠구나. 하지만 이건 안다. 무대에 선 사내 가운데 그가 라 베르마에 견줄 만하다고 여기는 이는 하나도 없어. 그녀를 누구보다 위에 두지. 너는 그녀를 본 적 있니?”
“아니요, 아저씨, 부모님이 극장에 가는 걸 허락하지 않으세요.”
“그거 안됐구나. 졸라 봐야지. 페드르의 라 베르마, 르 시드의 라 베르마 말이다. 뭐, 정 그렇다면 그녀야 한낱 배우에 지나지 않지만, 알다시피 나는 예술의 ‘위계’라는 걸 그다지 믿지 않거든.”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전에도 그가 할머니의 자매들과 나누던 대화에서 곧잘 느꼈던 바를 알아챘다. 그는 진지한 문제를 이야기할 때면, 어떤 중대한 주제에 대해 뚜렷한 견해를 내비치는 듯한 표현을 쓸 때면, 언제나 그것을 특유의 억양, 기계적이고 반어적인 억양으로 따로 떼어 내어 무균 처리하듯 했으니, 마치 그 어구나 낱말을 인용부호 안에 넣어 두고 거기에 대한 자기 몫의 책임은 한사코 부인하려는 듯, ‘이른바 그 「위계」라는 것 말이야, 왜, 어리석은 자들이 그렇게들 부르는’ 하고 말하는 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이 그토록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어째서 그는 ‘위계’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까? 잠시 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녀의 연기는 세상 어떤 예술의 걸작 못지않은 고귀한 감흥을 네게 줄 게다, 이를테면, 오, 글쎄다,” 그러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샤르트르의 왕비상들이라고나 할까?” 그때까지 나는, 진지한 의견을 내놓기를 꺼리는 그의 태도가, 할머니 자매들의 시골스러운 독단과는 대비되는, 파리풍의 세련된 무엇이라고 여겼다. 또한 그것이 스완이 몸담은 사교계의 삶에 대한 정신적 태도의 특징이라고도 상상했으니, 그 사교계에서는 앞선 세대들의 ‘서정적’ 열광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동으로, 예전에는 상스럽게 여기던 자잘하고 정확한 사실들에 지나친 중요성을 부여하고, ‘미문 짓기’ 같은 부류의 것은 죄다 금기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일반론과 마주할 때마다 스완이 어김없이 취하는 이 태도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의견을 갖는 위험조차 무릅쓰려 하지 않는 듯했고, 오직 정확하되 대수롭지 않은 어떤 세부를 세심하기 그지없게 내놓을 수 있을 때에만 마음이 편한 듯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는, 바로 그럼으로써 자기 역시 하나의 의견을 내놓는 것이며, 무언가를 위해 (이른바) 변론을 맡는 것이고, 자기가 대는 세부의 정확성 그 자체에 나름의 중요성이 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나는 그날 밤의 만찬을 다시 떠올렸다. 엄마가 내 방으로 올라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그토록 서글펐던 밤, 그가 레옹 대공비가 여는 무도회를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던 그 밤을. 그러면서도 정작 그가 제 삶을 바치고 있던 것은 바로 그런 종류의 오락이었다. 대체 어떤 다른 삶을 위해 그는, 사물에 대한 생각을 온전히 진지하게 말하는 의무를, 인용부호 안에 넣지 않을 판단을 내리는 의무를 아껴 두고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그는 언제쯤에야, 스스로 터무니없다고 우기던 그 소일거리에 자신을 내맡기기를 그만두려는 것인가? 나는 또한, 스완이 내게 베르고트에 대해 말하는 태도에서, 그의 명예를 위해 덧붙이자면 그만의 것이 아니라 그 무렵 그 작가를 흠모하던 모든 이가, 적어도 어머니의 벗과 뒤 불봉 박사가 함께 지녔던 무언가를 알아챘다. 스완처럼 그들도 베르고트를 두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 사람은 매력적인 정신의 소유자야, 어찌나 독특한지, 자기만의 말투가 있어서, 좀 억지스럽긴 해도 참 유쾌하지. 속표지에서 이름을 찾아볼 것도 없어, 그 글은 대번에 알아본다니까.” 하지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아직 “그는 위대한 작가야, 대단한 재능을 지녔어”라고까지 말한 이는 없었다. 그에게 재능이 있다고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새 작가의 남다른 면모에서, 우리의 관념 박물관에 ‘대단한 재능’이라는 딱지가 붙은 그 유형을 알아보는 데 몹시 더디다. 그 면모가 새롭고 낯설다는 바로 그 이유로, 우리는 거기서 우리가 흔히 재능이라 부르는 것과의 닮은 점을 찾아내지 못한다. 우리는 차라리 독창성이니, 매력이니, 섬세함이니, 힘이니 하고 말한다. 그러다 어느 날 이것들을 죄다 합산해 보고는, 그것이 그저 재능에 다름 아님을 알아차린다.
“베르고트가 라 베르마에 대해 쓴 책이 있나요?” 하고 나는 스완 씨에게 물었다.
“있을 게다, 라신에 관한 그 짤막한 평론에 말이지. 하지만 절판됐을 거야. 그래도 어쩌면 재판이 나왔을지도 모르지. 알아봐 주마. 아무튼 다음번에 그가 우리 집에 저녁을 들러 오면 네가 알고 싶은 걸 죄다 직접 물어봐 줄 수 있단다. 그는 해가 바뀌도록 한 주도 거르는 법이 없거든. 내 딸아이와 둘도 없는 벗이라, 함께 다니며 오래된 도시며 대성당이며 성들을 둘러본단다.”
나는 아직 사교계 위계의 여러 등급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터라, 아버지가 스완의 아내와 딸을 우리가 도무지 만날 수 없는 일로 여긴다는 사실이, 오랫동안 도리어 그 반대의 효과를 내어, 그들을 우리와는 엄청난 심연으로 갈라진 존재로 상상하게 만들었고, 그로써 그들의 위엄과 무게가 내 눈에 한껏 높아졌다. 나는 어머니가, 이웃인 사즈라 부인이 스완 부인은 남편이 아니라 드 샤를뤼스 씨의 마음에 들려고 그런다고 하던 것처럼, 머리를 물들이고 입술을 붉게 칠하지 않는 것이 서운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에게는 멸시의 대상일 것이 틀림없다고 느꼈으니, 특히 그 딸 때문에 그것이 유난히 마음 아팠다. 듣자 하니 그토록 어여쁜 소녀라는 그 아이를, 나는 곧잘 꿈에 그리며, 늘 같은 이목구비와 모습을 그려 주었는데, 순전히 내 멋대로 붙인 것이었으나 그 효과는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날 오후, 스완 양이 그토록 드물고 복된 형편 속에 사는 존재임을, 그녀가 저를 둘러싼 자연스러운 원소인 양 온갖 특권의 바다에 잠겨 있어, 혹여 오늘 저녁 손님이 오느냐고 부모에게 물으면, 천상의 빛으로 눈부신 두 음절, 그녀에게는 한낱 집안의 오랜 벗에 지나지 않는 그 황금빛 손님의 이름, 곧 베르고트라는 이름을 답으로 듣게 되리라는 것을, 그녀에게는 식탁에서 나누는 정겨운 대화가, 내게 대고모의 대화가 그러하듯, 그가 자기 글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한 온갖 주제에 대해, 내가 그의 입에서 신탁을 들었으면 싶은 그 주제들에 대해 늘어놓는 베르고트의 말이 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다른 도시들을 찾아갈 때면, 옛날 하늘에서 인간들 틈에 내려와 살던 신들처럼,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나 영광에 싸인 그가 그녀 곁에 나란히 걸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스완 양 같은 존재의 드문 값어치를, 그리고 동시에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상스럽고 무지하게 비칠지를 함께 깨달았다. 그리고 그녀의 벗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일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불가능한 일일지를 어찌나 사무치게 느꼈던지, 나는 동경과 절망에 한꺼번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대개, 이때부터 그녀를 떠올릴 때면, 나는 그녀가 어느 대성당의 현관 앞에 서서 조각상마다 무엇을 뜻하는지 내게 설명해 주고, 내게 더없는 찬사와도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자기 벗이라 하여 베르고트에게 소개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리고 언제나, 대성당을 떠올릴 때면 내 안에 일던 온갖 공상의 매력이, 일드프랑스의 언덕과 골짜기의 매력이, 노르망디 벌판의 매력이, 내가 마음속에 그려 낸 스완 양의 모습 위로 밝음과 아름다움을 뿜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그녀를 알고 사랑하는 일뿐이었다. 어떤 이가 우리로서는 미지인 어떤 삶에 몫을 지녔고, 우리를 향한 그 사람의 사랑이 우리를 그 삶에 들게 해 주리라고 우리가 한번 믿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이 요구하는 온갖 예비 조건 가운데 사랑이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이며, 나머지에 대해서는 사랑을 너그럽게도 무심하게도 만드는 조건이다. 사내를 오직 겉모습으로만 판단한다고 우기는 여자들조차, 그 겉모습에서 어떤 특별한 삶의 방식이 뿜어 나오는 것을 본다. 바로 그래서 그녀들은 군인이나 소방수와 사랑에 빠지는데, 제복이 그 얼굴에 대한 그녀들의 까다로움을 덜어 주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입 맞추며, 그 짓누르는 흉갑 아래 남들과는 다른, 더 씩씩하고 더 모험적이고 더 다정한 심장이 뛰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젊은 왕이나 왕세자는 외국을 여행하며 더없이 흐뭇한 정복들을 거둘 수 있으되, 감히 말하건대 장외 중개인에게라면 없어서는 안 될 그 반듯하고 고전적인 옆얼굴은 전혀 갖추지 못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정원에서 책을 읽는 동안, 그것은 대고모로서는 일요일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을 노릇이었으니, 일요일이야말로 진지한 일에 몰두하는 것이 금지된 날이요, 그녀 자신도 바느질감을 밀쳐 두는 날이었기에(평일이었다면 그녀는 “아니 어쩌자고 책 따위로 시간을 죽이고 있니, 오늘은 일요일도 아닌데!” 하며, ‘시간을 죽인다’는 말에 어린애 같고 부질없다는 뜻을 담았으리라), 레오니 고모는 욀라리가 올 때가 되기까지 프랑수아즈와 수다를 떨곤 했다. 고모는 방금 구필 부인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고 일렀다. “우산도 없이, 요전 날 샤토됭에서 지어 입은 그 비단옷 차림으로 말이야. 저녁 기도 전에 갈 길이 멀다면 옷을 제대로 흠뻑 적시고 말겠어.”
“그럴지도 모르죠”가(이는 “그렇지 않을지도 모르죠”라는 뜻이기도 했다) 대답이었으니, 프랑수아즈는 더 나은 쪽의 가능성을 딱 잘라 배제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참, 그러고 보니,” 고모가 이마를 치며 말을 이었다. “그 여자가 오늘 아침 성체 거양 전에 성당에 닿았는지 못 들었네. 욀라리한테 꼭 물어봐야겠다… 프랑수아즈, 저 종탑 뒤 시커먼 구름 좀 봐, 슬레이트 지붕에 빛이 얼마나 시원찮은지, 오늘 해 지기 전에 틀림없이 비가 올 거야. 이대로 갈 리가 없지, 너무 더웠으니까. 게다가 빠를수록 좋아, 소나기가 쏟아지기 전엔 내 비시 물이 도무지 ‘내려가질’ 않을 테니까,” 하고 고모는 말을 맺었으니,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비시 물의 소화를 재촉하려는 바람이 구필 부인의 새 옷이 망가지는 걸 보게 될까 하는 걱정보다 비할 데 없이 더 중대했던 것이다.
“그럴지도 모르죠.”
“게다가 알다시피 광장에 비가 오면 몸 피할 데가 그리 넉넉지 않잖니.” 별안간 고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니, 세 시라니!” 그녀가 외쳤다. “저녁 기도가 벌써 시작됐겠구나, 그런데 펩신을 깜빡했어! 이제야 왜 그 비시 물이 속에 얹혀 있었는지 알겠다.” 그러고는 금빛 걸쇠가 달린 자줏빛 벨벳 장정의 기도서에 부랴부랴 달려들어, 서두르는 통에 그 안에서 노르스름한 종이의 레이스 술로 가장자리를 두른 작은 그림들을, 교회의 큰 축일 자리를 표시해 두던 그 그림들을 우수수 떨어뜨리면서, 고모는 물약을 삼키는 한편, 성스러운 경문을 쏜살같이 중얼거리기 시작했으니, 그 뜻은 그녀 머릿속에서 다소 흐려져 있었다. 펩신을 비시 물보다 그토록 한참 뒤에 먹었으니 과연 그것을 따라잡아 ‘내려보낼’ 수 있을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까닭이다. “세 시라니! 세월 참 쏜살같기도 하지.”
창문에 무언가가 날아와 부딪친 듯 톡 하는 작은 소리가 나더니, 이어 넉넉히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그렇지만 마치 위층 창에서 한 줌 모래가 뿌려지듯 가벼운 소리였다. 이윽고 그 쏟아짐이 번지며 질서를, 가락을 얻어, 물기를 머금고, 요란하고, 북을 두드리듯, 음악처럼, 무수히, 온 사방에 울렸다. 비였다.
“거 봐라, 프랑수아즈, 내가 뭐랬니? 어쩜 저리 퍼붓는지! 그런데 아무래도 정원 문 종소리가 들린 것 같은데, 어서 가서 이런 날씨에 밖에 나와 있는 게 누군지 좀 보고 오렴.”
프랑수아즈가 갔다 돌아왔다. “아메데 부인이세요”(내 할머니였다). “산책 나가시는 길이라고 하시네요. 이렇게 비가 억수로 오는데도요.”
“하나도 놀랍지 않구나,” 고모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늘 하던 말이지만 그 사람은 여느 사람들하곤 조금도 같지 않아. 그래도 이런 빗속에 밖에 나가 있는 게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니 다행이다.”
“아메데 부인은 언제나 남들하곤 정반대시죠,” 하고 프랑수아즈가 모나지 않게 말했으니, 다른 하인들과 단둘이 있게 될 때까지는 내 할머니가 “머리가 좀 어떻게 되셨다”는 제 속내를 입에 올리기를 삼갔던 것이다.
“강복이 다 끝났구나! 이제 욀라리는 영영 안 오겠어,” 고모가 한숨지었다. “날씨에 겁을 먹고 못 오는 게지.”
“하지만 아직 다섯 시도 안 됐는걸요, 옥타브 부인, 이제 겨우 네 시 반이에요.”
“겨우 네 시 반이라고! 그런데도 나는 이렇게, 한 줄기 햇빛이라도 들이려고 작은 커튼을 젖혀야 하는 신세라니. 네 시 반에 말이다! 기원절을 겨우 일주일 앞두고. 아아, 가엾은 프랑수아즈, 하느님께서 우리한테 단단히 노하셨나 봐. 요즘 세상은 너무 지나쳐. 가엾은 옥타브가 늘 하던 말마따나, 우리가 하느님을 너무 자주 잊었으니 그분이 우리한테 앙갚음을 하시는 게지.”
고모의 두 뺨에 화사한 홍조가 돌았다. 욀라리였다. 하필 운 나쁘게도, 그녀가 고모 앞에 들자마자 프랑수아즈가 다시 나타나더니, 자기가 전하는 소식이 고모를 기쁘게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듯 그 기쁨에 온전히 함께한다는 뜻을 담은 미소를 지으며, 한 음절 한 음절 또박또박, 비록 간접화법으로 옮겨야 하는 처지이나 착실한 하인답게 새 손님이 몸소 쓴 바로 그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임을 보이려는 듯 이렇게 아뢰었다. “신부님께서, 옥타브 부인께서 지금 쉬고 계시지 않고 뵐 수 있으시다면 더없이 기쁘고 반가우시겠답니다. 신부님께서는 옥타브 부인을 성가시게 해 드리고 싶지는 않으시고요. 신부님은 아래층에 계세요. 제가 응접실로 드시라고 했습니다.”
실은, 신부의 방문이 고모에게 프랑수아즈가 짐작하는 것만큼 황홀한 기쁨을 주는 것은 아니었고, 그의 도착을 알려야 할 때마다 얼굴에 어김없이 환하게 띠우던 그 희색이, 병약한 고모가 실제로 느끼는 바와 온전히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다. 신부는(훌륭한 분이었고, 예술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으나 어원만은 아주 많이 알던 터라, 이제 와 생각하면 그와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쉽다) 지체 높은 손님들에게 자기 성당을 두루 구경시키는 버릇이 있었고(그는 콩브레 본당의 역사를 엮어 볼 계획까지 세웠다), 그 끝없는 설명으로 고모를 지치게 하곤 했는데, 그 설명은 게다가 눈곱만큼도 달라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방문이 마침 욀라리의 방문과 딱 겹칠 때면 그것은 고모에게 대놓고 성가신 일이 되었다. 고모는 욀라리를 실컷 우려먹고 싶었지, 자기를 찾는 이들을 한꺼번에 죄다 곁에 두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감히 신부를 물러가게 하지는 못하고, 다만 욀라리에게 신부가 갈 때 함께 가지 말라고 눈짓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니, 그가 떠난 뒤 잠시나마 그녀를 독차지하려는 심산이었다.
“신부님, 이게 무슨 소린가요, 어떤 화가가 성당에 이젤을 세워 놓고 창문 하나를 베끼고 있다니요? 이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살면서 그런 얘긴 들어 본 적도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대체 세상이 다음엔 또 어찌 되려는지, 원! 그것도 성당을 통틀어 제일 흉한 걸 하필 골라서 말이에요.”
“그게 아주 제일 흉하다고까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생틸레르 성당에는 볼만한 것도 더러 있으니까요. 하지만 내 가엾은 성당에는, 온 교구에서 유일하게 한 번도 보수를 받아 본 적 없는 이 성당에는, 이제 몹시 낡은 것들도 있지요. 하느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현관은 지저분하고 케케묵었어요. 그래도 위엄만은 당당하답니다. 이를테면 저 에스테르 태피스트리를 보세요, 나 개인으로야 그 두 폭에 서 푼어치 값도 안 매기겠습니다만, 전문가들은 상스의 것들 다음으로 친다지요. 게다가 얼마쯤, 이거야 원, 좀 사실적이라 할 몇몇 세부만 빼면, 그것들이 진정한 관찰력을 증언하는 면모를 보인다는 것도 잘 알겠어요. 하지만 창문 이야긴 내게 꺼내지 마세요. 여쭙습니다만, 온 햇빛을 다 가로막고, 게다가 어디에 두 조각도 같은 높이에 놓인 데가 없는 바닥에다 뭐라 이름 붙이기도 난감한 색깔의 얼룩을 던져 눈까지 어지럽히는 창문을 그대로 두는 게 온당한 노릇입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더러 바닥을 새로 깔지 못하게 한답니다. 아 글쎄, 그것들이 콩브레의 수도원장들과 게르망트가 영주들의, 왜, 그 브라방의 옛 백작들, 지금 게르망트 공작의 직계 조상들이자, 공작부인 또한 게르망트가의 여인으로 사촌과 혼인했으니 그 조상들의 묘석이라나요.”(내 할머니는 ‘사람’에 관한 일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기로 한 끝에 이름과 작위를 죄다 뒤죽박죽 섞어 버렸던지라, 누가 게르망트 공작부인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녀가 빌파리지 부인과 친척뻘일 거라고 우기곤 했다. 그러면 온 식구가 웃음을 터뜨렸고, 할머니는 어느 세례식이나 장례식 초대를 다시 들먹이며 “거기 어디쯤 게르망트가 사람이 하나 끼어 있었던 게 분명해” 하고 제 말을 우겨 보려 했다. 그리고 이 한 번만은 나도 다른 이들 편에 서서 그녀에게 맞섰으니, 그녀의 학교 동무와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후손 사이에 무슨 인연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루생빌을 보십시오,” 하고 신부가 말을 이었다. “요즘이야 그저 농사꾼들의 본당에 지나지 않지만, 옛날에는 펠트 모자와 시계 장사로 제법 대단한 곳이었을 겁니다.(덧붙이자면 나는 루생빌의 어원에는 확신이 없어요. 그 이름이 본디 Radulfi villa에서 온 루빌이었으면 하고 어지간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왜, 샤토루가 Castrum Radulfi인 것과 비슷하게 말이지요. 하지만 그 얘긴 다음에 하기로 합시다.) 아무튼 그곳 성당에는 더할 나위 없는 창들이 있는데, 거의 다 아주 근래 것이지요. 그중에도 저 위풍당당한 ‘루이필리프의 콩브레 입성’이라는 창은, 아무래도 콩브레에 있는 편이 더 어울릴 법한데, 듣자 하니 샤르트르의 그 이름난 창들에 조금도 못지않게 훌륭하다더군요. 바로 어제 이런 것에 조예가 깊은 페르스피에 박사의 아우를 만났는데, 그도 그것을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으로 본다고 하더이다. 하지만 내가 그 화가한테도 그랬듯이, 그 사람으로 말하면 아주 상냥한 친구인 데다 붓 솜씨로는 어지간한 명수인 모양입디다만, 대체 이 창에서, 굳이 따지자면 다른 창들보다 좀 더 칙칙하기까지 한 이 창에서 뭐가 그리 대단해 보이느냐고 내가 물었지요.”
“주교님께 청하시면,” 하고 고모가 체념한 어조로 말했으니, 이제 슬슬 ‘지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새 창 하나쯤은 결코 마다하지 않으실 텐데요.”
“그야 믿으셔도 좋습니다, 옥타브 부인,” 하고 신부가 대답했다. “아 글쎄, 그 창을 두고 처음 소동을 일으키신 분이 바로 그 주교님이셨으니까요. 그 창이 게르망트가의 영주이자 게르망트가의 딸 주느비에브 드 브라방의 직계 후손인 악한 질베르가 생틸레르 성인에게 사죄를 받는 장면을 그린 것임을 밝혀내셨지요.”
“하지만 생틸레르 성인이 거기 어떻게 나온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아니, 왜요, 창 귀퉁이에 노란 옷을 입은 부인이 있는 걸 못 보셨습니까? 그게 바로 생틸레르 성인이지요, 기억하시겠지만 이분은 고장에 따라 생틸리에, 생텔리에, 심지어 쥐라 지방에서는 생틸리라고도 불린답니다. 그러나 Sanctus Hilarius가 이렇게 갖가지로 어그러진 것쯤은, 복된 성인들의 이름에 일어난 변형 가운데 결코 가장 신기한 축에 들지도 못해요. 예를 들어, 나의 착한 욀라리, 바로 자네의 수호성인인 Sancta Eulalia를 봅시다. 그분이 부르고뉴에서 무엇이 되셨는지 아나? 다름 아닌 생텔루아라오! 부인이 사내가 되어 버린 게지. 들었나, 욀라리, 자네도 죽고 나면 사람들이 자네를 사내로 만들어 놓겠어!”
“신부님도 참, 늘 그렇게 농이시라니까.”
“질베르의 아우 말더듬이 샤를은 경건한 군주였습니다만, 일찍이 아버지 미치광이 페팽을, 정신이 온전치 못한 탓에 세상을 떠난 그 아버지를 여읜 터라, 젊어서 아무런 훈육도 받지 못한 자의 온갖 오만함으로 지고의 권력을 휘둘렀지요. 어찌나 심했던지, 어느 고을에서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사람을 보기만 하면 그 고장을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몰살해 버릴 정도였답니다. 질베르는 샤를에게 앙갚음하려고 콩브레 성당을, 그러니까 본디의 성당을 불태워 버렸어요. 그 성당은 테오드베르가, 여기서 가까운 티베르지(물론 Theodeberiacus지요)의 시골 별저를 떠나 궁정과 함께 부르고뉴인들과 싸우러 나가면서, 성인이 자기에게 승리를 안겨 주면 생틸레르 성인의 무덤 위에 세우겠노라 약속했던 것이랍니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지하 묘실뿐인데, 아마 테오도르가 부인을 그리로 데려간 적이 있을 겁니다, 나머지는 죄다 질베르가 태워 버렸으니까요. 끝내 그는 정복왕 윌리엄의 도움을 받아 그 가엾은 샤를을 무찔렀는데,” 신부는 이 이름을 ‘윌럼’이라 발음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 사람들이 이곳을 그토록 많이 찾아온답니다. 하지만 그가 콩브레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지는 못한 모양이에요, 사람들이 미사를 마치고 나오는 그를 덮쳐 목을 베어 버렸으니까요. 테오도르한테 이 이야기를 죄다 적은 작은 책이 있는데, 사람들한테 빌려주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 성당에서 무엇보다 단연 놀라운 것은 종루에서 내려다보는 경치인데, 그야말로 웅장하기 그지없지요. 물론 부인의 경우엔 몸이 그리 튼튼하지 못하시니, 저 아흔일곱 계단을 오르시라고는 결코 권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이름난 밀라노 대성당 계단의 딱 절반쯤 되는 수지요. 아무리 기운찬 사람에게도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더구나 머리통을 깨뜨리고 싶지 않으면 손과 무릎으로 기어올라야 하고, 계단의 거미줄을 죄다 옷에 묻히게 되니까요. 아무튼 단단히 몸을 감싸셔야 합니다,” 하고 그는, 자기 종루에 오를 수 있으리라는 말만으로도 치미는 고모의 노기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꼭대기에 이르면 바람이 아주 세거든요. 어떤 이들은 거기서 죽음의 한기를 느꼈다고까지 하더군요. 아무려나, 일요일이면 언제나 여러 모임이며 단체가, 그중에는 먼 길을 마다 않고 우리의 이 아름다운 전경을 보러 오는 이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흐뭇해하며 돌아간답니다. 이번 일요일에도, 날씨만 궂지 않으면, 기원절이라 틀림없이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걸 보시게 될 겁니다. 정말이지 저기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동화 속 같다고 인정하실 수밖에 없어요, 이를테면 벌판을 따라 죽 트인 전경이라 할 만한 것이 저만의 각별한 정취를 지녔거든요. 맑은 날엔 베르뇌유까지 내다보인답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평소엔 하나를 보면 다른 하나는 못 보던 곳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요, 이를테면 비본 강줄기와 생타시즈레콩브레의 도랑들이 그런데, 실은 그 둘 사이가 높다란 나무들의 장막으로 가로막혀 있지요. 또 하나 예를 들면, 주이르비콩트의 온 운하들이 다 보이는데, 그곳이 Gaudiacus vicecomitis라는 건 부인도 물론 아시겠지요. 주이에 갈 때마다 나는 한쪽에서 운하 한 자락을 보고, 모퉁이를 돌아 또 한 자락을 보곤 했지만, 두 번째 것을 볼 때면 첫 번째 것은 더 이상 보이지 않더군요. 그 둘이 서로 어떻게 놓여 있는지 그려 보려 애써 봐도 도무지 안 됐지요. 하지만 생틸레르 꼭대기에서라면 얘기가 아주 달라져요. 온 고장이 지도처럼 눈앞에 펼쳐지니까요. 다만 물만은 분간할 수가 없는데, 마을 여기저기에 커다란 틈이 갈라져 그것을 어찌나 말끔히 저며 놓았는지, 다 썰어 놓고도 아직 한 덩이로 붙어 있는 빵 덩어리처럼 보인답니다. 그 모두를 온전히 다 얻으려면 두 곳에 한꺼번에 있어야 할 겁니다, 여기 생틸레르 꼭대기와 저 아래 주이르비콩트에 말이지요.”
신부가 고모를 어찌나 진을 빼 놓았던지, 그가 가기가 무섭게 고모는 욀라리마저 돌려보내야 했다.
“자, 가엾은 욀라리,” 고모가 손닿는 데 놓아 둔 작은 지갑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그저 자네가 기도할 때 나를 잊지 말라고 주는 거야.”
“아이, 하지만 옥타브 부인, 그러시면 안 되는데요. 제가 그것 때문에 여기 오는 게 아닌 줄 잘 아시잖아요!” 욀라리는 그렇게, 일요일마다 똑같은 망설임과 똑같은 겸연쩍음으로, 마치 그 유혹이 매번 처음인 양 대답하곤 했는데, 그 언짢은 기색이 고모의 기운을 돋우었을망정 조금도 언짢게 하지는 않았으니, 혹여 욀라리가 돈을 받을 때 여느 때보다 조금 덜 뾰로통해 보이기라도 하면, 고모는 나중에 “대체 욀라리가 왜 저러나 모르겠다. 늘 주던 그 푼돈을 그대로 줬는데도 도무지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었어” 하고 말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