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파펜하임 대공은 어수룩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코타르 박사라면 “대단한 외교관”이라 불렀을 사람이었고, 노르푸아 씨 또한 자기 못지않게 대단한 사람이며, 굳이 일러 주지 않아도 후보에게 표를 줌으로써 그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다는 것쯤은 절로 알아차릴 사람임을 알고 있었다. 대공은 여러 대사관에서, 또 외무장관으로서, 이번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 어디까지 나아갈 각오가 되어 있으며 어느 지점에서 확답을 삼갈지를 미리 알고 임하는 그런 대화를 수없이 이끌어 온 터였다. 그는 이 외교 언어에서 “말한다”는 것이 곧 “제안한다”는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노르푸아 씨가 성 안드레아 훈장을 받도록 손을 써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 뒤 노르푸아 씨와 나눈 대화를 자기 정부에 보고해야 했다면, 그는 공문에 이렇게 적었으리라. “나는 내가 일을 그르쳤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노르푸아 씨는 학사원 얘기로 돌아오자마자 이렇게 되뇌었기 때문이다.
“저로서는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제 동료들에게도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테고요. 그들은, 제 생각에는, 대공께서 자기들을 떠올려 주셨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영광스러워해야 마땅합니다. 이건 참으로 흥미로운 입후보이며, 우리의 여느 관례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지요. 아시다시피 아카데미란 지극히 인습적이어서, 조금이라도 새로운 울림을 지닌 것이라면 무엇에든 겁을 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를 개탄합니다. 저는 얼마나 자주 제 동료들에게 그 점을 말할 기회가 있었던지요! 하느님 용서하소서, 저는 언젠가 한 번쯤 ‘고루하다’는 말을 입 밖에 내고 만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무대 위 한 장면에서처럼 거의 방백하듯, 못마땅한 듯한 미소를 띠고 낮은 목소리로 덧붙이며, 노련한 배우가 관객에게 미치는 효과를 살피듯 그 푸른 눈으로 대공에게 재빠른 곁눈질을 던졌다. “대공, 아시겠지만, 저는 대공처럼 그토록 걸출한 분께서 처음부터 가망 없는 모험에 뛰어드시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 동료들의 생각이 시대에 그토록 뒤처져 있는 한, 저는 삼가는 편이 더 현명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언젠가, 하나의 능묘로 변해 가고 있는 그 학회에서, 조금이라도 더 현대적이고 조금이라도 더 생기 있는 정신을 발견하게 된다면, 대공의 당선에 조금이라도 승산이 보인다면, 그것을 대공께 가장 먼저 알려 드릴 사람은 바로 저일 것입니다. 그 점은 믿으셔도 좋습니다.”
“그 훈장이 실수였어.” 대공은 생각했다. “교섭은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어. 그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던 게야. 나는 아직 맞는 열쇠를 짚어 내지 못했어.”
이것은 대공과 같은 학교에서 길러진 노르푸아 씨 역시 능히 할 법한 종류의 추론이었다. 노르푸아 부류의 외교관들이, 실질적으로는 아무 의미도 없는 어떤 공식적 문구 하나를 두고 황홀경에 빠지는 그 현학적 어리석음을 두고 사람들은 비웃을 만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그 유치함에는 이런 보상이 있다. 외교관들은, 유럽의, 혹은 그 밖의 균형, 곧 우리가 평화라 부르는 그 균형을 지탱하는 저울판 위에서, 호의며 그럴듯한 연설이며 간곡한 탄원 따위는 거의 무게가 나가지 않으며, 무거운 추, 참된 결정 요인은 다른 데, 곧 상대가 (그럴 만한 힘이 있다면) 누리거나 누리지 못하는 어떤 가능성, 즉 제가 원하는 무언가와 맞바꾸어 상대의 어떤 욕망을 채워 줄 수 있는 가능성에 있음을 안다. 나의 할머니처럼 지극히 사심 없는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했을 이런 종류의 진리를, 노르푸아 씨와 파펜하임 대공은 자주 다루어 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가 전쟁 직전까지 갔던 나라들에서 대리공사로 있던 노르푸아 씨는, 사태가 어떤 국면으로 접어들지 노심초사하면서도, 그것이 “평화”라는 말로도, “전쟁”이라는 말로도 자기에게 드러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다른 어떤 말, 공포나 축복의 말로 드러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외교관은 자기 암호의 도움을 빌려 그 말을 즉시 읽어 내고, 프랑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에 못지않게 평범한 또 다른 말로 응답할 터였고, 다만 그 말 아래에서 적국의 장관은 이내 “전쟁”이라 쓰인 것을 보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서로 혼인을 약속한 두 젊은이의 첫 만남에 짐나즈 극장 공연에서의 우연한 마주침이라는 형식을 부여하던 그 오랜 관습과 비슷하게, 운명이 “전쟁”이라는 말을 혹은 “평화”라는 말을 받아쓰게 할 그 대화는, 대개 장관 집무실이 아니라 어느 쿠어가르텐의 벤치에서 이루어졌으니, 거기서 장관과 노르푸아 씨는 저마다 따로 광천 샘으로 가, 그 원천에서 조그만 잔에 담긴 약효 있는 물을 마시곤 했다. 일종의 암묵적 관례에 따라 그들은 저마다 요양 시각에 맞춰 만나서는, 겉보기에는 천진해 보이나 그 자리의 두 화자 모두가 동원령만큼이나 비극적이라 여기던 짤막한 산책을 함께 나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번 학사원 선출 지명처럼 사사로운 일에서도, 대공은 자기 공적 이력에서 소용닿았던 바로 그 귀납의 방식을, 겹겹이 포개진 상징 아래를 읽어 내는 그 방법을 그대로 써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물론, 나의 할머니와, 그녀를 닮은 몇 안 되는 이들만이 이런 종류의 계산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잘못일 터이다. 우선, 처음부터 그 길이 정해져 있는 어떤 직업에 종사하는 보통 사람이란, 직관이 모자란 탓에, 나의 할머니가 그 드높은 무사무욕에서 얻은 그 무지에 가까워지기 마련이다. 겉보기에 더없이 순진해 보이는 행동이나 말의 숨은 동기가 실은 사욕에, 그저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는 벌거벗은 필요에 있음을 발견하려면, 흔히 “몸을 파는” 사람, 남자든 여자든 그런 이들에게까지 내려가 보아야 한다. 어떤 남자인들 모르랴, 자기가 돈을 대 주려는 여자가 “우리 돈 얘기는 하지 말아요” 하고 말할 때, 그 말이 음악에서 이른바 “쉬는 박자”라 불리는 것으로 여겨야 함을, 그리고 나중에 그녀가 “당신은 너무 성가셔요, 늘 나한테 뭔가를 숨기고 있잖아요, 이제 당신하곤 끝이에요” 하고 선언한다면, 이는 “다른 누군가가 더 많은 것을 주겠다고 했다”는 뜻으로 새겨야 함을. 그런데 이것은 그저 행실이 헤픈 여인의 언어일 뿐, 사교계 부인들과 그리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다. 파리의 불량배는 더욱 극명한 예를 보여 준다. 그러나 노르푸아 씨와 그 독일 대공은, 설령 불량배들과 그 수법은 몰랐을지언정, 여러 나라와 같은 지평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니, 나라들이란 또한, 그 위대함에도 불구하고, 이기심과 교활함의 피조물로서, 오직 힘에 의해서만, 살인으로까지 몰아갈 수 있는 물질적 이해타산을 헤아림으로써만 질서가 잡히는 존재이며, 그 살인은 흔히 상징적인 것이기도 하니, 싸움을 머뭇거리거나 마다하는 것만으로도 한 나라에는 “멸망”이라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황서나 그 밖의 갖은 빛깔로 표지를 두른 백서들에 적혀 있지는 않은 만큼, 국민 전체는 본디 평화를 사랑한다. 설령 그들이 호전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본능적으로, 증오에서, 상처받았다는 느낌에서 그러할 뿐, 그들의 통치자가 자기 노르푸아의 조언을 좇아 마음을 정하게 된 그런 이유들 때문은 아니다.
이듬해 겨울 대공은 중병을 앓았다. 그는 회복했지만, 심장은 영영 상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그는 속으로 말했다. “학사원 일로 꾸물거릴 시간이 없어. 너무 오래 기다리다간 나를 뽑아 주기도 전에 죽어 버릴지도 몰라. 그건 정말이지 여간 언짢은 일이 아닐 테지.”
그는 지난 이십 년간의 외교 정치를 두고 Revue des Deux Mondes에 실을 논문 한 편을 썼는데, 그 글에서 그는 노르푸아 씨를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더없이 아첨하는 말투로 언급했다. 그 프랑스 외교관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그를 찾아왔다. 대공은 이 고마움을 어찌 표해야 할지 모르겠노라고 덧붙였다. 대공은, 뻑뻑한 자물쇠에 이 열쇠 저 열쇠를 맞춰 보던 사람처럼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직도 맞는 게 아니야!” 그리고 노르푸아 씨를 문까지 바래다주며 어쩐지 숨이 가빠 오는 것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제기랄, 이자들은 나를 들여보내 주기는커녕 무덤에 들어가는 꼴부터 보고 말겠군. 서둘러야겠어.”
그날 저녁 그는 오페라 극장에서 노르푸아 씨를 다시 만났다.
“대사님.” 그가 그에게 말을 꺼냈다. “오늘 낮에 당신은 제 고마움에 보답하려면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하셨지요. 그건 지나친 말씀이었습니다, 당신이 제게 빚진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말씀을 곧이곧대로 붙잡을 만큼 무례를 좀 부려 볼까 합니다.”
노르푸아 씨는 대공의 재치를, 대공이 자기 재치를 높이 사는 것 못지않게 높이 샀다. 그는 파펜하임 대공이 자기에게 내놓으려는 것이 부탁이 아니라 제안임을 대번에 알아차렸고, 환한 상냥함으로 그것을 들을 채비를 했다.
“자, 이제 당신은 저를 무척 경솔한 사람이라 여기시겠지요. 제가 몹시 아끼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잠시 뒤면 아시게 되겠지만 그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두 사람 모두 최근 파리에 자리를 잡았고, 앞으로도 거기 눌러앉을 작정입니다. 바로 제 아내와, 존 대공비이지요. 두 사람은 만찬을 몇 차례 열 생각인데, 주로 영국 국왕 내외를 기리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세상 무엇보다도 바라던 것은, 손님들에게, 알지도 못하면서 둘 다 크게 흠모하고 있는 어느 분과 자리를 함께하는 기쁨을 베풀어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저는 그 소원을 어떻게 이루어 줄지 몰라 막막하던 차에, 방금 참으로 뜻밖의 우연으로, 당신이 바로 그분과 벗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지극히 은거하는 삶을 살며 아주 소수의 사람만, 스탕달의 말을 빌리자면 ‘행복한 소수’만 만난다는 것은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늘 제게 보여 주신 그 너그러움으로 저를 밀어 주신다면, 그분은 틀림없이 당신이 저를 그분께 소개하고 존 대공비와 제 아내 두 사람의 뜻을 전하는 것을 허락하실 겁니다. 어쩌면 영국 왕비가 오실 때 저희와 만찬을 함께해 주실지도 모르고, 그러고 나서 (모를 일이지요) 저희가 그분을 너무 지루하게 해 드리지만 않는다면, 볼리외에 있는 존 대공비 댁에서 저희와 함께 부활절 휴가를 보내 주실지도 모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그분은 빌파리지 후작부인이라고 합니다. 고백하건대, 그처럼 재기 넘치는 사교의 전당에 드나드는 사람의 하나가 되리라는 희망은 제게 위안이 되고, 학사원에 도전하려던 시도를 접더라도 아쉬움 없이 바라볼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듣자 하니 그분 댁에서도 지성과 눈부신 담론이 끊임없이 흘러넘친다니 말입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 속에서 대공은, 자물쇠가 더는 버티지 않고 마침내 열쇠가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 대안까지는 전혀 필요 없습니다, 대공.” 노르푸아 씨가 대답했다. “학사원과 그보다 더 어울리는 곳은 없으니까요. 말씀하신 그 댁이야말로 회원들이 우글거리는 온상이지요. 대공의 청을 빌파리지 후작부인께 전하겠습니다. 부인은 틀림없이 우쭐해하실 겁니다. 부인이 대공과 만찬을 함께하는 것으로 말하자면, 부인은 좀처럼 바깥출입을 하지 않으시니, 그건 아마 성사시키기가 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대공을 부인께 소개해 드릴 테니, 대공께서 몸소 청을 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카데미는 결코 단념하셔서는 안 됩니다. 마침 보름 뒤에, 저는 르루아볼리외 씨 댁에서 오찬을 함께하고 그와 더불어 중요한 모임에 갈 참인데, 그가 없이는 아무도 선출될 수 없는 분이지요. 저는 이미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대공의 성함을 슬쩍 흘려 두었고, 그도 당연히 그 이름을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몇 가지 이의를 달더군요. 하지만 마침 그가 다음 선거에서 우리 편의 지지를 필요로 하고 있으니, 저는 다시 한번 밀어붙일 작정입니다. 저는 그에게, 우리를 잇는 더없이 도타운 정을 숨김없이 털어놓고, 만약 대공께서 나서신다면 제 벗들 모두에게 대공께 표를 던지라 부탁하겠다는 것을 감추지 않겠습니다.”(여기서 대공은 안도의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는 제게 벗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그의 도움을 얻어 내는 데 성공한다면 대공의 승산은 아주 커지리라 봅니다. 그날 저녁 여섯 시에 빌파리지 부인 댁으로 오십시오. 제가 대공을 부인께 소개해 드리겠고, 그 자리에서 그와 나눈 이야기도 들려드릴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하여 파펜하임 대공은 빌파리지 부인을 찾아오게 된 것이었다. 나의 깊은 환멸은 그가 입을 열었을 때 일어났다. 역사의 한 시대가, 하나의 국적이 지닌 것보다 더 강한, 저마다 특수하고도 일반적인 면모를 지니는 까닭에, 삽화가 곁들여진 어느 인명사전에서는, 미네르바의 진짜 초상까지도 실을 만큼 정밀한 그런 사전에서는, 가발을 쓰고 주름 깃을 두른 라이프니츠가 마리보나 사뮈엘 베르나르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이는 반면, 하나의 국적은 하나의 계급이 지닌 것보다 더 강한 특수한 면모를 지닌다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번 경우에 그것은, 내가 그를 보기 전에 기대했던 대로 요정들의 살랑거림과 코볼트들의 춤사위를 들려주는 어떤 담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또렷이 그 시적 출신을 입증해 주는 하나의 전치에 의해 내 앞에 드러났으니, 곧, 키가 작고 얼굴이 붉으며 뚱뚱한 그 라인그라프가 빌파리지 부인의 손 위로 허리를 숙이며 알자스 짐꾼 같은 억양으로 그녀에게 “부인께도 그러시기를요, 마탐 라 마르키즈” 하고 말한 그 사실이었다.
“제가 차 한 잔이나 이 케이크를 조금 권해도 될까요? 정말 맛있답니다.” 게르망트 부인이, 되도록 다정하게 보이고 싶어 하며 내게 물었다. “저는 이 댁에서 꼭 제 집인 양 안주인 노릇을 한답니다.” 그녀는, 목쉰 웃음을 억누르려는 듯 목소리에 살짝 걸걸한 소리를 섞어 가며 빈정거리는 어조로 설명했다.
“대사님.” 빌파리지 부인이 노르푸아 씨에게 말했다. “아카데미 일로 대공께 하실 말씀이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게르망트 부인은 눈을 내리깔고, 시간을 보려고 손목을 반원으로 돌렸다.
“어머나! 생페레올 부인 댁에 가려면 지금 당장 날듯이 서둘러야겠어요, 게다가 르루아 부인 댁에서 저녁까지 먹기로 했거든요.”
그러고서 그녀는 내게 작별 인사도 없이 일어섰다. 그녀는 방금 스완 부인을 알아본 참이었는데, 스완 부인은 이 방에서 나를 발견하고 적잖이 난처해하는 기색이었다. 스완 부인은, 자기가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한다고 내게 맨 처음 장담한 사람이 다름 아닌 자기였음을 아마 떠올렸으리라.
“어머니가 나를 스완 부인에게 소개하는 건 싫어요.” 생루가 내게 말했다. “저 여잔 왕년의 화냥년이거든. 남편은 유대인이고, 그런데 여기 와서는 국수주의자인 척하고 있어. 아, 저기 팔라메드 삼촌이 오시네.”
스완 부인의 등장은 내게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그것은 며칠 전에 일어난 어떤 일 때문이었고, 그 일은 훗날 훨씬 뒤에 가서 가져올 결과들 때문에라도 여기 적어 두지 않을 수 없으니,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독자도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빌파리지 부인을 이렇게 찾아뵙기 며칠 전에, 나는 뜻밖의 손님을 하나 맞았으니, 다름 아닌 샤를 모렐, 내 종조부의 늙은 하인의 아들이었다(나는 그런 아들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 종조부(내가 분홍빛 옷을 입은 여인을 만났던 바로 그 집의 주인)는 그 전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 하인은 한 번 이상 나를 찾아뵙겠다는 뜻을 밝혀 온 터였다. 나는 그가 무슨 일로 오려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를 만나면 반가웠을 것이니, 프랑수아즈에게서 그가 내 종조부의 추억을 진심으로 우러르며 그가 묻힌 묘지로 꼬박꼬박 순례하듯 찾아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강상의 이유로 시골 자기 집으로 물러나 한동안 거기 머물러야 했던 그는, 그 소임을 아들에게 맡긴 것이었다. 나는 내 방으로 들어서는, 값비싸다뿐이지 안목 있다고는 할 수 없는 옷차림을 한, 그러나 그럼에도 세상 무엇으로 보이든 신사의 하인 아들로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 열여덟 살의 잘생긴 젊은이를 보고 놀랐다. 게다가 그는, 우리 대화가 시작되자마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서 자기가 콩세르바투아르에서 일등상을 받았노라 알림으로써, 자기가 나온 그 하인 계급과의 모든 연을 끊으려 애썼다. 그가 나를 찾아온 목적은 다음과 같았다. 그의 아버지가 내 아돌프 삼촌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내 부모님께 보내기는 아무래도 마땅치 않으나 동시에 내 또래 젊은이의 흥미를 끌 법한 물건 몇 가지를 따로 챙겨 두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유명한 여배우들과, 내 삼촌이 알고 지내던 이름난 화류계 여인들의 사진이었으니, 삼촌이 자기 가정생활과는 물샐틈없는 칸막이로 갈라 놓았던 그 한량다운 방탕한 삶의, 이제는 빛바랜 마지막 자취였다. 젊은 모렐이 그것들을 내게 보여 주는 동안, 나는 그가 마치 대등한 사람에게 말하듯 나를 대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내 부모님께 말할 때 3인칭 말고는 감히 다른 말을 써 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둔 사람이 으레 느낄 만한 그 즐거움을, 되도록 자주 나에게 “당신”이라 하고 되도록 드물게 “나리”라 함으로써 맛보고 있었다. 이 사진들에는 거의 다 “나의 가장 좋은 벗에게” 따위의 헌사가 적혀 있었다. 다른 여자들보다 덜 고마워하고 더 신중했던 어느 여배우는 “벗들 가운데 가장 좋은 이에게”라고 써 놓았는데, 이는 훗날 그녀가 (내가 들은 바로는) 내 삼촌이 결코 자기의 가장 좋은 벗이었던 적이 없고, 그저 자기에게 자잘한 시중을 가장 많이 들어 준 벗, 자기가 부려 먹은 벗, 사람 좋고 친절한 남자, 다시 말해 늙은 바보였을 뿐이라고 둘러댈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 젊은 모렐이 제 미천한 출신을 아무리 벗어던지려 애써 본들 헛일이었으니, 늙은 하인의 눈에는 우러러 마지않을 만큼 거대했던 내 아돌프 삼촌의 그림자가, 거의 성스러운 환영처럼, 그 아들의 유년과 소년기 위를 한시도 떠나지 않고 맴돌아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사진들을 뒤적이는 동안 샤를 모렐은 내 방을 살폈다. 그리고 내가 그것들을 어디다 둘까 자리를 찾고 있으려니, “어떻게” 하고 그가 물었다(그 어조에는 굳이 나무람을 드러낼 것도 없었으니, 그 말 자체에 이미 나무람이 그토록 배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 방에는 삼촌 사진이 한 장도 안 보이지요?” 나는 피가 뺨으로 치솟는 것을 느끼며 더듬거렸다. “글쎄, 그런 게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뭐라고요, 그토록 당신을 아끼시던 아돌프 삼촌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고요! 제 주인어른 것으로 한 장 보내 드리지요, 그분한텐 그런 게 잔뜩 있으니까요. 부디 저 서랍장 위, 상석에 모셔 두시길 바랍니다. 저 서랍장도 삼촌한테서 물려받으신 거잖아요.” 하기야 내 방에는 아버지나 어머니의 사진조차 한 장 없었으니, 아돌프 삼촌의 사진이 없다 한들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늙은 모렐에게는, 그리고 그가 같은 사고방식으로 길러 낸 그 아들에게는, 내 삼촌이야말로 집안에서 중요한 인물이고 내 부모님은 그저 삼촌에게서 나온 희미한 빛을 되비출 뿐임을, 어렵잖이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더 큰 총애를 받았던 것은, 삼촌이 늘 내가 장차 일종의 라신이나 볼라벨 같은 인물이 될 거라 말하곤 했기 때문이니, 모렐은 나를 거의 삼촌의 양자, 삼촌이 골라 들인 아이처럼 여겼다. 나는 이 젊은이가 무척 “수완가”임을 이내 알아차렸다. 그리하여 이 첫 만남에서 그는, 자기도 얼마간 작곡을 하고 짧은 시에 곡을 붙일 줄 안다면서, 사교계에서 좋은 지위를 지닌 시인을 아느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한 사람을 일러 주었다. 그는 이 시인의 작품을 알지 못했고 그 이름조차 들어 본 적이 없었으나, 그것을 적어 두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그 얼마 뒤 그 시인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가, 곧 모렐이 그의 작품을 열렬히 흠모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소네트 한 편에 곡을 붙였으니, 그것을 아무개 백작부인 댁에서 연주할 수 있도록 작가께서 주선해 주시면 고맙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좀 지나치게 서두른 것이자 제 속셈을 드러낸 짓이었다. 시인은 기분이 상해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샤를 모렐에게는 야심 말고도 좀 더 구체적인 현실에 대한 강한 끌림이 있는 듯했다. 그는 안뜰을 지나오다가 쥐피앙의 조카딸이 조끼를 짓고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고, 나에게는 그저 마침 그때 멋진 조끼가 하나 갖고 싶던 참이었다고만 둘러댔지만, 나는 그 처녀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음을 알아챘다. 그는 서슴없이 내게 아래층으로 내려가 자기를 그녀에게 소개해 달라고 청했다. “단, 당신 집안과 얽힌 사람으로는 말고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제 아버지 얘기는 끌어들이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그냥 당신이 아는 이름난 예술가라고만 해 주세요, 장사치들한테 좋은 인상을 심어 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잖아요.” 그는 내게 넌지시 말해 두기를, 나로서는 그를 “친애하는 벗”이라 부를 만큼 잘 아는 사이는 아님을 자기도 잘 안다면서, 그 처녀 앞에서라면 나더러 그를 “물론 친애하는 선생이라고는 말고,… 하기야… 정 뭣하면, 친애하는 이름난 예술가라고” 하는 식으로 불러도 좋다는 것이었으나, 정작 가게에 들어서자 나는, 생시몽이라면 그리 표현했을 법하게, 그에게 무슨 “칭호를 붙이는” 일을 피하고, 그저 그에게 “당신”이라 되풀이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는 여러 벨벳 견본 가운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새빨간, 그리고 어찌나 요란한지 그 나쁜 안목으로도 막상 다 지어진 그 조끼를 끝내 한 번도 입지 못한 것을 골랐다. 처녀는 두 “견습공”과 더불어 다시 일에 몰두했지만, 나는 그 인상이 서로에게 오간 것이며, 그녀가 자기와 같은 “처지”라 여긴(다만 더 말쑥하고 더 넉넉할 뿐인) 샤를 모렐이 그녀에게 유난히 매력적으로 비쳤음을 알아챘다. 그의 아버지가 내게 보내온 사진들 가운데, 엘스티르가 그린 미스 사크리팡(곧 오데트)의 초상화 사진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몹시 놀랐던 터라, 바깥문까지 그를 배웅하며 샤를 모렐에게 말했다. “당신이 알 리야 없겠지만, 혹시 우리 삼촌이 이 부인을 잘 알고 지냈나요? 삼촌 생애의 어느 대목에 이 사람을 정확히 끼워 넣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스완 씨 때문에 이게 궁금하거든요.…” “아 참, 하마터면 말씀드리는 걸 잊을 뻔했네요, 아버지가 특별히 그 부인 사진에 당신 눈길을 끌어 달라고 신신당부하셨거든요. 실은 당신이 삼촌을 마지막으로 뵙던 그날, 그 부인이 삼촌과 ‘점심’을 들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당신을 들여보내 드릴지 말지 망설이셨대요. 당신이 그 계집한테 대단한 인상을 남겼던 모양이라, 그 여자가 당신을 더 보고 싶어 했다더군요. 그런데 마침 그때 집안에 무슨 말썽이 있었다고, 아버지 말씀이 그러시던데, 그래서 당신은 두 번 다시 삼촌을 뵙지 못한 거고요.” 그는 말을 끊고, 안뜰 너머로 쥐피앙의 조카딸에게 작별의 미소를 보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그 갸름한 얼굴과 반듯한 이목구비, 금빛 머리칼과 반짝이는 눈을 아마 감탄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스완 부인을 떠올리고는, 이제부터 그녀를 저 “분홍빛 옷을 입은 여인”과 하나로 겹쳐 보아야 하리라는 것을, 내 기억 속에서 둘이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고 그토록 달랐던 만큼 놀라워하며 속으로 되뇌었다.
샤를뤼스 씨는 오래지 않아 스완 부인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가 나타나는 모든 사교 모임에서, 남자들에게는 업신여기는 태도를 보이고 여자들에게는 떠받들어지며, 그는 이내 그중 가장 맵시 있는 여자에게 딱 붙었는데, 그 여자의 옷차림을 마치 제 몸을 꾸미는 장식인 양 걸치다시피 했으니, 남작의 프록코트나 연미복은, 검은 옷을 입었으되 그 곁 의자 위에 화려한 빛깔의 망토를, 곧 어느 가장무도회에서 곧 걸칠 그 망토를 던져 둔 사내를 어느 대가가 그린 초상화를 떠올리게 했다. 대개는 어느 왕가의 부인과 짝을 이루는 이 동반은, 샤를뤼스 씨에게 그가 누리기 좋아하던 갖가지 특권을 안겨 주었다. 이를테면 그 한 가지 결과로, 그의 여주인들은 연극이나 음악회에서 남작 한 사람만은 부인들 틈에 맨 앞자리를 차지하게 해 주는 반면, 나머지 남자들은 방 뒤편에 한데 몰려 있게 했다. 게다가 또, 넋을 잃은 그 부인에게 목청껏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온통 골몰한 듯 보이는 샤를뤼스 씨는, 굳이 다른 누구와 악수를 나누러 갈 필요를 면제받았으니, 다시 말해 온갖 사교적 의무에서 풀려나 있었다. 그가 고른 미인이 그를 감싼 그 향기로운 장벽 뒤에서, 그는 사람들로 붐비는 응접실 한복판에서, 마치 붐비는 극장이나 음악당에서 특별석의 방벽 뒤에 있듯 홀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 그에게 인사하러 다가올 때면, 이를테면 그 동반한 미인을 거쳐서 다가올 때면, 그는 부인과 나누던 이야기를 끊지도 않은 채 아주 퉁명스럽게 대꾸해도 괜찮았다. 물론 스완 부인은 그가 이렇게 곁에 두고 뽐내기 좋아하던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감탄을 표했고, 스완에게는 우정을 품었으며, 그녀가 자기의 관심을 우쭐하게 여기리라는 것을, 그리고 자기가 방 안에서 가장 예쁜 여자와 엮여 구설에 오르는 것이 자기로서도 우쭐한 일임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