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빌파리지 부인은 샤를뤼스 씨의 방문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고모의 성격에 심각한 결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러나 이따금 분노에, 혹은 상상 속 원한에 휩쓸리면, 그는 충동을 억누르려 애쓰지도 않은 채 자리에 앉아, 그때까지는 눈여겨본 적조차 없어 보이던 사소한 일들을 한껏 부풀린, 더없이 격렬한 욕설로 가득한 편지를 그녀에게 써 보내곤 했다. 다른 여러 예 가운데, 내가 발베크에 머무는 동안 알게 된 다음 일화를 들 수 있겠다. 빌파리지 부인은 발베크에서 휴가를 늘려 지낼 만큼 돈을 넉넉히 가져오지 못한 것이 아닐까 걱정했으나, 알뜰한 성미라 쓸데없는 지출을 꺼렸고 파리에서 돈을 부쳐 오게 하고 싶지도 않아, 샤를뤼스 씨에게서 삼천 프랑을 빌렸다. 한 달 뒤, 사소한 이유로 고모에게 화가 난 그는 그 돈을 전신환으로 갚아 달라고 청했다. 그는 이천구백구십몇 프랑을 받았다. 며칠 뒤 파리에서 고모를 만난 그는, 다정한 대화를 나누던 중, 더할 나위 없이 정중하게, 돈을 부칠 때 그녀의 은행원이 저지른 실수를 일깨워 주었다. “하지만 실수 같은 건 없었어.” 빌파리지 부인이 대답했다. “전신환 수수료가 육 프랑 칠십오 상팀이었으니까.” “아, 그야 물론, 일부러 그러신 거라면 괜찮습니다.” 샤를뤼스 씨가 말했다. “혹시 모르실까 봐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만약 그랬다면, 은행이 저만큼 고모님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했다가는 불쾌한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아니야, 실수는 없었네.” “어쨌든 고모님 말씀이 옳습니다.” 샤를뤼스 씨는 대수롭지 않게 마무리 지으며 몸을 굽혀 고모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실제로 그는 아무 앙심도 품지 않았고, 그녀의 이 자잘한 알뜰함을 그저 재미있어했을 뿐이다. 그러나 얼마 뒤, 어떤 집안 문제에서 고모가 자기를 이겨 먹으려 하고 자기를 상대로 “제대로 된 음모를 꾸몄다”고 믿게 되자, 게다가 그녀가 어리석게도, 자기를 파멸시키려고 공모했다고 그가 의심하던 변호사들 뒤로 몸을 숨기자, 그는 오만과 격분이 끓어오르는 편지를 써 보냈다. “복수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추신으로 덧붙였다. “반드시 고모님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드리지요. 내일 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전신환 이야기와, 내가 빌려 드린 삼천 프랑에서 고모님이 떼어 두신 육 프랑 칠십오 상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고모님을 망신 주겠어요.” 그러나 그렇게 하기는커녕, 그는 이튿날 고모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으니, 정말 끔찍한 말을 써 버린 그 편지를 이미 후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점을 접어 두더라도, 대체 그가 누구에게 그 전신환 이야기를 할 수 있었겠는가? 이제 복수가 아니라 진정한 화해를 바라던 터라, 지금이야말로 그가 입을 다물어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는 고모와 더없이 좋은 사이로 지내던 무렵에 이미 그 이야기를 여기저기 떠들고 다닌 뒤였다. 그는 아무 악의 없이, 농담 삼아, 그리고 워낙 입이 가벼운 위인이었던 탓에 그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다만 빌파리지 부인이 모르게 되풀이했을 뿐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그가 제 입으로 그녀가 옳게 처신했다고 말한 거래를 공개해 자기를 망신 주려 한다는 것을 그의 편지에서 알고는, 그가 처음부터 자기를 속여 왔으며 좋아하는 척한 것도 거짓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이 폭풍은 이제 가라앉았으나, 두 사람 다 상대가 자기를 정확히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런 간헐적인 다툼은 물론 다소 예외적인 것이다. 블로크와 그 친구들의 다툼은 종류가 달랐다. 곧 보게 되겠지만, 빌파리지 부인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한 샤를뤼스 씨의 다툼은 또 다른 종류였다.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품는 견해, 벗이나 친척과 맺는 관계는 겉보기에만 그럴 뿐 결코 항구적이지 않으며, 바다 그 자체처럼 영원히 유동한다는 것을. 늘 더없이 완벽하게 화합해 보이던, 그리고 머지않아 다시 서로를 애정 어린 말로 이야기할 부부 사이에서 온갖 이혼 소문이 도는 것도 그 때문이요, 떼어 놓을 수 없는 사이인 줄 알았던, 그리고 우리가 놀라움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화해한 모습으로 마주치게 될 벗을 두고 한쪽이 온갖 끔찍한 말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이며, 그토록 짧은 시간 만에 나라와 나라 사이의 온갖 동맹이 깨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봐요, 저쪽에서 우리 외삼촌하고 스완 부인이 열이 오르고 있네요!” 생루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가 순진하게도 저리로 건너가 두 분을 방해하는 걸 좀 봐요. 맑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맑다더니, 원!”
나는 샤를뤼스 씨를 유심히 살폈다. 희끗한 머리칼 한 술, 외알 안경 때문에 미소를 지으려는 듯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간 그 아래의 눈, 단춧구멍에 꽂힌 붉은 꽃, 이런 것들이 이를테면 경련하듯 강렬한 삼각형의 움직이는 세 꼭짓점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감히 그에게 인사하지 못했으니, 그가 나를 알아보는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가 나를 보았다고 확신했다. 스완 부인에게 무슨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그녀의 화려한 팬지빛 망토가 실제로 남작의 무릎 위로 드리워져 있었는데, 언제 “형사”가 나타나나 줄곧 살피는 길거리 행상꾼의 눈길처럼 이리저리 구르는 그의 눈은, 방 안 구석구석을 어김없이 훑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눈여겨보아 두었던 것이다. 샤텔로 씨가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을 때에도, 그 젊은 공작이 실제로 자기 앞에 설 때까지 샤를뤼스 씨의 얼굴에는 그를 보았다는 어떤 기색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이만한 규모의 제법 많은 모임에서 샤를뤼스 씨는 뚜렷한 방향도 특정한 대상도 없는 미소를 거의 끊임없이 내걸고 있었는데, 새로 온 이들의 인사에 앞서 이미 존재하던 그 미소는, 그들이 그 영역 안으로 들어설 때 그들을 향한 어떤 다정함의 기색도 없이 그대로 있었다. 그렇더라도 스완 부인에게 건너가 말을 붙이는 것이 명백히 나의 도리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마르상트 부인과 샤를뤼스 씨를 이미 아는지 어떤지 확신하지 못한 터라, 아마도 내가 그들에게 소개해 달라고 청할까 봐 두려워, 눈에 띄게 쌀쌀했다. 그리하여 나는 샤를뤼스 씨에게로 발걸음을 옮겼고, 곧 그것을 후회했으니, 그가 나를 못 보았을 리 없는데도 아무런 기색도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자, 그의 몸에서, 쭉 뻗은 팔 길이만큼 나를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으며 손가락 하나가 돌출해 있는 것이 보였는데, 마치 주교의 반지를 여읜 듯한 그 손가락은, 신자들의 입맞춤을 위해 그 성별된 자리를 내미는 듯했고, 나는 남작의 허락도 없이, 그가 나에게 두고두고 책임을 물을 침범 행위로써, 그의 미소가 익명으로 하염없이 흩뜨려 놓은 그 빈 영역에 뛰어든 꼴이 되고 말았다. 이런 쌀쌀함은 스완 부인이 자신의 쌀쌀함을 누그러뜨리도록 부추길 만한 것이 도무지 못 되었다.
“어쩌면 그렇게 지치고 근심스러워 보이니.” 마르상트 부인이, 샤를뤼스 씨에게 인사하러 다가왔던 아들에게 말했다.
과연 로베르의 눈빛은 시시각각 어떤 깊은 바닥에 이르렀다가, 바닥을 짚은 잠수부처럼 이내 거기서 솟아오르는 듯했다. 로베르가 그 바닥을 짚을 때면 어찌나 아팠던지 곧바로 떠났다가 잠시 뒤 다시 돌아가곤 하던 그 바닥이란, 자기가 정부와 다투었다는 생각이었다.
“괜찮아.” 어머니가 아들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아. 우리 아들 다시 보니 참 좋구나.”
그러나 이 애정 표현이 로베르를 짜증 나게 하는 듯하자, 마르상트 부인은 아들을 데리고 방 저편 끝으로 갔는데, 그곳 노란 비단을 두른 벽감에는 보베산 안락의자들이 한데 모여, 미나리아재비 밭의 보랏빛 붓꽃처럼 제 보라색 태피스트리를 무리 지어 놓고 있었다. 혼자 남은 스완 부인은 내가 생루의 친구임을 알아채고는, 손짓으로 나를 불러 곁에 앉게 했다. 그토록 오래 그녀를 보지 못한 터라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양탄자 위에 어지러이 놓인 모자들 틈에서 내 모자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게르망트 공작의 것이 아니면서도 안감에 대문자 G 위에 공작의 관이 얹혀 있는 것을 보고, 막연한 호기심에 대체 누구 것일까 자문했다. 나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다 알았으나, 이 모자가 누구 것일지는 도무지 떠올릴 수 없었다.
“노르푸아 씨는 참 유쾌한 분이에요.” 나는 그 대사를 바라보며 스완 부인에게 말했다. “로베르 드 생루는 그분이 성가신 사람이라고 하지만, 하지만…”
“그이 말이 맞아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무언가 내게 감추는 생각을 하고 있음을 눈치챈 나는 질문을 퍼부었다. 그녀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 방에서 누군가에게 크게 관심을 쏟는 듯 보이는 만족감을 위해, 나를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생루 씨가 말한 게 분명 이거예요.”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이런 말을 했다고 절대 그이에게 말하면 안 돼요. 그이는 나를 입이 싸다고 여길 테고, 나는 그이의 존경을 아주 소중히 여기니까요. 나는, 아시다시피,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거든요. 며칠 전에 샤를뤼스가 게르망트 대공비 댁에서 저녁을 들었어요. 어쩌다 그랬는지 모르지만, 당신 이름이 화제에 올랐지요. 노르푸아 씨가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모양이에요, 정말 말도 안 되게 어이없는 얘기니 죽자고 속 태우지는 말아요,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았고 그런 말을 한 그 심술궂은 혀가 어떤 것인지 다들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이 위선적이고 아첨이나 떠는 조무래기라고요.”
내 아버지의 친구인 노르푸아 씨 같은 사람이 나를 두고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아연실색했는지는 훨씬 앞에서 적어 둔 바 있다. 하지만 오래전 그날 저녁, 내가 그에게 스완 부인과 질베르트에 관해 물었을 때의 내 감정이, 내 존재조차 결코 들어 본 적 없으리라 여겼던 게르망트 대공비에게까지 알려졌다는 것을 알고는 더욱 놀랐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 우리의 말 한 마디, 우리의 태도 하나하나는, 그것을 직접 지각하지 못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상”으로부터, 투과성이 한없이 다양하고 우리 자신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어떤 매질에 의해 차단되어 있다. 우리가 널리 퍼지기를 간절히 바라던 어떤 중요한 발언이 (이를테면 내가 한때 스완 부인을 두고 만나는 사람마다 기회 있을 때마다 늘어놓던 그 열렬한 찬사들이), 흔히 다름 아닌 우리의 조바심 탓에, 곧바로 됫박 아래 감춰지고 마는 것을 경험으로 배운 우리로서는, 우리 자신이 잊어버린 어떤 하찮은 한마디가, 혹은 우리가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 없이 오직 다른 말이 불완전하게 굴절되는 도중에 빚어진 어떤 말이, 어떤 장애물에도 한 번 멈추는 일 없이 무한한 거리까지, 이 경우에는 게르망트 대공비에게까지 실려 가서, 우리를 안줏거리 삼아 신들의 향연을 흥겹게 만드는 데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는 얼마나 더 헤아리기 어렵겠는가. 우리가 실제로 우리 행동에 관해 기억하는 것은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남고, 우리가 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말, 아니 우리가 한 번도 하지 않은 말이 저 다른 행성에서까지 웃음을 자아내려 날아가며, 남들이 우리의 행동거지를 두고 그려 내는 상은 우리 자신이 그리는 상과 조금도 닮지 않았으니, 그것은 마치 검은 선이 있어야 할 한 자리에 빈틈이 있고 빈 공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영문 모를 윤곽이 잡힌, 원본과 조금도 닮지 않은 서투른 모사가 원화와 닮지 않은 것과 같다. 그렇지만, 옮겨 그려지지 않은 것이 실은 우리의 눈먼 자존심으로만 바라보던 존재하지도 않는 특징일 수도 있고, 우리에게 덧붙여진 듯 보이는 것이 실은 우리 자신의 일부, 그것도 너무나 본질적이어서 우리 눈에는 띄지 않던 부분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와 그토록 닮은 데가 없어 보이는 이 기묘한 판화가, 때로는 X선으로 찍은 사진처럼, 그다지 우쭐하게 해 주지는 않으나 심오하고 유용한, 진실의 각인을 똑같이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기서 우리 자신을 알아보아야 할 까닭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준수한 얼굴과 다부진 체격에 미소 짓곤 하는 사람에게 그 방사선 사진을 보여 준다면, 자기 자신의 상이라는 딱지가 붙은 그 뼈다귀 묵주를 마주하고서, 화랑을 찾은 관람객이 어느 처녀의 초상 앞에 이르러 안내책자에서 “쉬고 있는 단봉낙타”라는 글귀를 읽을 때와 똑같은 오류의 의심을 품을 것이다. 우리의 초상화 사이의 이런 어긋남을, 그것을 그린 것이 우리 자신의 손이냐 남의 손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이 어긋남을, 나는 훗날 나 아닌 다른 이들의 경우에서도 확인하게 되었으니, 그들은 자신이 손수 찍은 사진들에 둘러싸여 태평하게 지내고 있건만 그 둘레에서는 대개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얼굴들이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어서, 어쩌다 사고라도 나 “이게 바로 당신이오” 하는 경고와 함께 그 얼굴들이 드러나기라도 하면 그들은 아연실색하고 마는 것이었다.
몇 해 전이었다면 나는 노르푸아 씨에게 어떤 연유로 알랑거렸는지를 스완 부인에게 기꺼이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 연유란 그녀를 알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제 그 바람을 느끼지 않았고, 더는 질베르트를 사랑하지 않았다. 한편 나는 스완 부인을 내 어린 시절의 분홍색 옷을 입은 여인과 하나로 겹쳐 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순간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여인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 전에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보셨어요?” 나는 스완 부인에게 물었다.
그러나 공작부인은 마주쳐도 스완 부인에게 인사하지 않았기에, 스완 부인은 그녀를 방 안에 있어도 눈여겨볼 것조차 없는 하찮은 사람으로 여기는 척하기로 했다.
“모르겠어요. 그이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녀는 잉글랜드에서 빌려 온 표현을 써 가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는 게르망트 부인뿐 아니라 그녀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에 관한 정보에도 목이 말라, (영락없이 블로크처럼) 대화에서 남을 즐겁게 하기보다 순전히 이기심에서 자기에게 흥미로운 사실을 캐내려 드는 사람 특유의 무례함으로, 게르망트 부인의 생활을 정확히 그려 보려는 노력 속에서 빌파리지 부인에게 르루아 부인에 관해 물었다.
“아, 그래, 누굴 말하는지 알겠네.” 그녀는 경멸을 짐짓 꾸며 대답했다. “그 부유한 목재상 딸 말이지. 요즘 들어 제법 여기저기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들었네만, 내 이 말은 해 둬야겠네, 나는 이제 새로 사람을 사귀기에는 좀 늙었다네. 나는 살아오면서 하도 흥미롭고 하도 유쾌한 사람들을 알고 지낸 터라, 정말이지 르루아 부인이 내가 이미 가진 것에 무엇 하나 보태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네.” 후작부인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던 마르상트 부인이 나를 대공에게 소개했고, 그러는 사이 노르푸아 씨도 더없이 극진한 말로 나를 소개했다. 어쩌면 그는 내가 방금 소개받은 터라 자기 체면을 조금도 깎을 리 없는 호의를 내게 베푸는 것이 편했는지도 모르고, 어쩌면 외국인은, 아무리 지체 높은 외국인이라도, 프랑스 사교계에 어두워 자기가 소개하는 것이 유행에 밝은 젊은이라고 여길지 모른다고 생각해서였는지도 모르며, 어쩌면 대사로서 자기 개인의 추천이라는 무게를 보태는 특권 가운데 하나를 행사하기 위해서였는지도, 아니면 그의 옛것 취미에서, 누군가를 소개하려면 후원자가 둘 있어야 한다는, 대공의 지위에 걸맞은 옛 관습을 그를 기려 되살리려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빌파리지 부인은 자기가 르루아 부인을 모른다 해서 아쉬워할 것이 전혀 없다는 확언을 내가 그에게서 들어야 한다고 여겨, 노르푸아 씨에게 호소했다.
“제 말이 맞지요, 대사님, 르루아 부인은 조금도 흥미로운 데가 없지 않나요, 여기 오는 사람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지요. 제가 그이와 사귀지 않은 게 잘한 일이지요, 그렇지 않아요?”
소신에서였는지 아니면 지쳐서였는지, 노르푸아 씨는 그저 공손하기 그지없으나 아무 뜻도 담기지 않은 목례로만 대답했다.
“대사님,” 빌파리지 부인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우스꽝스러운 사람들이 다 있답니다. 글쎄, 오늘 오후에 어떤 신사가 저를 찾아와서는, 젊은 여자 손보다 제 손에 입 맞추는 것이 더 즐겁다고 저를 설득하려 들지 뭐예요?”
나는 그것이 르그랑댕임을 대번에 알아챘다. 노르푸아 씨는 눈꺼풀을 살짝 떨며 미소 지었는데, 마치 그런 말이 워낙 자연스러운 색정에서 나온 것이라 그것을 입에 담은 사람을 나무랄 수 없다는 듯, 거의 그것이, 부아즈농이나 젊은 크레비용 같은 짓궂은 관용으로 부추기지는 못할지언정 눈감아 줄 만한 어떤 연애담의 서두이기라도 한 듯한 미소였다.
“많은 젊은 여자의 손도 저기 저것은 해내지 못할 겁니다.” 대공이 빌파리지 부인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수채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최근 전시된 팡탱라투르의 꽃 그림들을 보았느냐고 물었다.
“그것들은 일급이고, 요즘 사람들 말마따나 뛰어난 화가, 팔레트의 거장 가운데 하나임을 보여 주지요.” 노르푸아 씨가 단언했다. “그렇더라도 저는 이것들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봅니다. 이쪽에서는 꽃의 빛깔을 알아보기가 더 쉽거든요.”
설령 옛 연인의 편애, 사람들에게 아첨하는 버릇, 좁은 모임에서나 통할 비평의 잣대가 이 옛 대사에게 이런 말을 시킨 것이라 치더라도, 그것은 사교계 사람들의 판단이 얼마나 참된 취향의 완전한 공백 위에 서 있는지를 입증해 주었으니, 그 판단은 어찌나 제멋대로인지 아주 하찮은 것 하나로도 더없이 터무니없는 소리로 치닫게 마련이고, 그리로 가는 도중에 진정으로 느낀 인상이란 것이 그것을 막아 세우는 일도 없는 것이다.
“꽃에 관해 안다고 뽐낼 것은 없어요, 저야 평생을 들판에서 살았으니까요.” 빌파리지 부인이 겸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대공 쪽으로 몸을 돌리며 상냥하게 덧붙였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 아이들이 흔히 그러는 것보다 꽃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면, 그건 대공님의 뛰어난 동포이신 폰 슐레겔 선생 덕분이에요. 제가 코르델리아 고모님(카스텔란 원수 부인 말이에요, 아시지요?)과 함께 한때 브로이에 머물 때 그분을 만났답니다. 르브룅 씨, 살방디 씨, 두당 씨가 그분에게 꽃 이야기를 청하던 것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저는 어린 계집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분 말씀을 다 따라가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그분은 저와 놀아 주기를 좋아하셨고, 대공님 나라로 돌아가실 때 아름다운 식물학 책을 한 권 보내 주셨어요, 우리가 함께 파에통 마차를 타고 발 리셰로 나들이 갔던 일을, 제가 그분 무릎에서 잠들었던 일을 잊지 말라고요. 그 책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데, 그 덕분에 꽃에 관해 그러지 않았으면 눈여겨보지 못했을 많은 것을 관찰하게 되었지요. 바랑트 부인이 브로이 부인의 편지 몇 통을 펴냈을 때, 그이답게 매력적이면서도 꾸민 티가 나는 그 편지들 속에서, 저는 폰 슐레겔 선생과 나눈 그 대화의 어떤 기록이라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어요. 하지만 그이는 자연에서 종교를 뒷받침할 논거밖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는 여자였지요.”
로베르가 자기와 어머니가 있는 방 저편 끝으로 나를 불렀다.
“자네가 나한테 참 잘해 줬어.” 내가 말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 내일 같이 저녁 먹을까?”
“내일? 그래, 좋아. 하지만 블로크하고 같이여야 해. 방금 문간에서 그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지난번 편지 두 통에 답을 깜빡 잊어버린 탓에 처음엔 나한테 좀 뻣뻣하게 굴더군. (하기야 그것 때문에 화가 났다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나는 눈치챘지.) 그러더니 나중엔 어찌나 다정하게 구는지 도저히 실망시킬 수가 없더라고. 우리끼리 얘기지만, 적어도 그 친구 쪽에서는, 목숨을 건 우정이라는 게 느껴져.” 로베르가 아주 틀렸다고는 나도 생각지 않는다. 블로크의 경우 사나운 험담은 흔히, 되받지 못한 줄 알았던 애정이 격렬한 탓에 생기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남의 삶을 상상하는 힘이 거의 없어서, 상대가 아팠거나, 집을 비웠거나, 달리 바빴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한 채, 일주일의 침묵을 대뜸 일부러 냉대하는 것으로 해석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벗으로서, 훗날에는 작가로서 그가 터뜨리는 가장 격렬한 발작조차 그리 깊은 데서 나온 것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았다. 그 발작은 얼음장 같은 위엄으로 응수하거나, 그가 공세를 배로 퍼붓게 부추기는 상투적인 말로 받으면 극에 달했지만, 따뜻이 공감하는 태도에는 곧잘 누그러지곤 했다. “잘해 줬다는 얘기 말인데,” 생루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나한테 잘해 줬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조금도 잘해 준 게 없어. 고모님 말씀이, 자네가 오히려 고모님을 피하고,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더군. 자네가 당신한테 무슨 서운한 게 있는 건 아닌지 궁금해하시더라고.”
다행히도, 설령 내가 이 말에 넘어갔다 한들, 곧 닥치리라 여기던 발베크행 출발 탓에 나는 게르망트 부인을 다시 만나려는 어떤 시도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아무 서운함이 없음을 확인시켜 드리고, 그리하여 오히려 나에게 서운한 것이 있는 쪽은 그녀임을 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시도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자기 엘스티르 그림들을 보여 주겠다는 제안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만 떠올리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이것은 실망도 아니었다. 나는 그녀가 그 그림들 이야기를 내게 꺼내리라고는 한 번도 기대한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내가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가 언젠가 나를 좋아하게 되리라는 희망 따위는 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바랄 수 있었던 가장 큰 것이라야, 그녀의 친절 덕분에, 파리를 떠나기 전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할 터이니, 지금 이 자리에서, 불안과 슬픔으로 얼룩진 기억 대신, 발베크까지 언제까지고 고이 간직해 갈 수 있는 온전히 흐뭇한 인상을 받는 것뿐이었다.
마르상트 부인은 로베르와 나누던 이야기를 자꾸만 끊고서, 그가 나에 관해 얼마나 자주 이야기했는지,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들려주었다. 그녀는 나를 거의 아플 만큼 깍듯이 대했는데, 그것이 나 때문에, 온종일 얼굴도 보지 못한, 그래서 단둘이 있고 싶어 안달인 이 아들과 사이가 틀어질까 하는 두려움에서 나온 것임을 나는 느꼈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녀는 자기가 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내 것에 못 미쳐 내 것을 달래야 한다고 여겼음이 틀림없었다. 그날 오후 앞서 내가 블로크의 큰아버지 니심 베르나르 씨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마르상트 부인은, 그가 한때 니스에서 살던 바로 그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그이는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거기서 마르상트 씨를 알았겠네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제 남편이 그이를 두고 참으로 훌륭한 사람, 섬세하고 너그러운 천성을 지닌 사람이라고 곧잘 이야기했거든요.”
“그 사람이 평생 한 번 거짓말을 안 했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이것이 블로크였다면 했을 법한 말이다.
이러는 내내 나는 마르상트 부인에게, 로베르가 나보다 그녀를 한없이 더 아낀다는 것을, 그리고 설령 그녀가 나에게 적의를 보였더라도 그녀에게서 그를 등 돌리게 하거나 떼어 놓으려 드는 것은 내 천성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 게르망트 부인이 방을 나간 터라 나는 한결 여유롭게 로베르를 살필 수 있었고, 그제야 나는 처음으로, 또다시 일종의 분노의 홍수 같은 것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며 그의 엄하고 침울한 이목구비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그가 그날 오후 극장에서의 그 장면을 떠올리며, 정부에게 그토록 모질게 다루어지고도 아무 대꾸조차 못 한 것을 내 앞에서 굴욕스러워하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별안간 그는 자기 목에 팔을 두른 어머니에게서 몸을 빼내더니, 내게로 다가와, 빌파리지 부인이 다시 자리를 잡은 그 자잘한 꽃으로 뒤덮인 탁자 뒤로 나를 이끌고 가서는, 더 작은 방으로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내가 그를 뒤쫓아 서두르는데, 내가 그 집을 떠나는 줄로 여겼음이 틀림없는 샤를뤼스 씨가, 그때껏 이야기를 나누던 폰 파펜하임 대공에게서 홱 돌아서더니, 잽싸게 한 바퀴 돌아 나와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나는 그가 안감에 대문자 G와 공작의 관이 든 그 모자를 집어 든 것을 보고 흠칫 놀랐다. 작은 방으로 들어가는 문간에서 그는 나를 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자네가 이제 사교계에 발을 들인 모양이니, 나를 찾아오는 기쁨을 꼭 주게. 그런데 이게 좀 까다로워.” 그는 넋 나간 듯 잰 체하며 말을 이었는데, 마치 그 기쁨이, 그것을 실현할 방편을 나와 마련할 기회를 한 번 놓치면 다시는 잡지 못할까 두려운 그런 기쁨이기라도 한 듯했다. “나는 집에 있는 일이 아주 드무니, 나한테 편지를 하게. 하지만 좀 더 차분히 자네한테 설명하는 편이 낫겠군. 나는 이제 막 나가려던 참이야. 나와 함께 잠깐 걸어 주겠나? 잠깐이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