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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27)

3권 제1부 · 제1장

“조심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그에게 일러 주었다. “실수로 다른 사람 모자를 집으셨어요.”

“내 모자를 집는 걸 자네가 막겠다는 건가?” 나는, 얼마 전 나 자신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터라, 누군가 그의 모자를 집어 가는 바람에 그가 맨머리로 집에 가지 않으려고 아무거나 하나 집었는데, 내가 그 속임수를 들춰내 그를 곤란하게 만든 것이려니 짐작했다. 나는 그에게 생루에게 몇 마디 해야겠다고 말했다. “그 친구는 아직도 저 얼간이 게르망트 공작하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나는 덧붙였다. “그것참 근사하군. 내 아우한테 이야기해 줘야겠어.” “아! 그게 샤를뤼스 의 흥미를 끌 거라고 보시나요?” (나는 그에게 아우가 있다면 그 아우도 샤를뤼스라 불리려니 상상했다. 생루가 발베크에서 그의 가계도를 설명해 준 적이 있으나 세세한 것은 잊어버린 터였다.) “누가 자네한테 샤를뤼스 이야기를 하던가?” 남작이 오만한 어조로 대꾸했다. “로베르에게 가 보게.”

“듣자니,” 그가 말을 이었다. “자네가 오늘 아침 그 친구가 자기를 욕보이는 어떤 여자와 벌이는 그 난잡한 술판에 끼었다더군. 자네가 그 친구에게 영향력을 잘 발휘해서, 우리 이름을 진창에 끌고 다니는 짓이 그 가엾은 어머니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는지 깨닫게 해 주면 좋겠네.”

나는 이 망신스러운 오찬에서 오간 이야기라고는 온통 에머슨과 입센과 톨스토이뿐이었으며, 그 젊은 여자는 로베르에게 물 말고는 아무것도 마시지 못하게 훈계했노라고 대꾸하고 싶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리라 느껴지는 로베르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고자, 나는 그의 정부를 위한 변명거리를 찾으려 애썼다. 나는 바로 그 순간, 그녀에 대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그가 스스로에게 온갖 자책을 퍼붓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선량한 남자와 하찮은 여자 사이의 다툼에서조차, 그리고 옳음이 온통 한쪽에 있을 때조차, 언제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법이니, 어떤 사소한 일이 불쑥 튀어나와 그 여자가 어느 한 가지 점에서만은 잘못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해 준다. 그리고 그녀가 다른 모든 점은 모른 체하는 까닭에, 남자가 그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을 느끼기 시작하거나 그녀와 떨어져 지내는 데 지치는 순간, 그의 나약함은 그의 양심을 한층 까다롭게 만들어, 그에게 던져진 그 터무니없는 비난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이 정말 아무 근거도 없는 것은 아닐까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그 목걸이 일은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결론에 이르렀어.” 로베르가 내게 말했다. “물론 나는 단 한순간도 나쁜 짓을 하려던 게 아니었지. 하지만 나도 잘 알아, 남들은 나 자신처럼 사물을 보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젊었을 때 몹시 힘들게 지냈어. 그녀 눈에 나는, 돈이면 뭐든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여기는, 가난한 사람은 도무지 겨룰 수 없는, 부슈롱을 구슬리는 일에서든 소송에서든 당해 낼 재간이 없는, 딱 그런 부자로 비칠 수밖에 없었던 거야. 물론 그녀는 나한테 끔찍하게 모질게 굴었지, 나는 오직 그녀 잘되기만 바랐는데도 말이야. 하지만 이제 똑똑히 알겠어, 그녀는 내가 돈으로 자기를 붙들어 둘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하려 했다고 믿고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야. 게다가 그녀는 나를 그토록 아껴 주는데, 지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가엾은 것, 자네가 알기만 한다면, 그녀는 어찌나 사랑스러운 데가 있는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어, 나를 위해 더없이 어여쁜 일들을 얼마나 많이 해 주었는지. 지금 얼마나 비참할까! 어쨌든,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나는 그녀가 나를 파렴치한으로 여기게 두고 싶지 않아. 부슈롱한테 달려가서 그 목걸이를 가져올 거야. 모르는 일이지, 어쩌면 내가 그걸 든 걸 보면 그녀가 자기가 잘못했다고 인정할지도. 알겠나, 바로 이 순간 그녀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그 생각을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자기가 겪는 괴로움이야 스스로 아니까 아무것도 아니지. 하지만 그녀는, 그녀가 괴로워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뇌면서도 그녀가 무얼 느끼는지 도무지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이러다 나는 곧 미쳐 버릴 것만 같아, 그녀를 괴롭게 하느니 차라리 다시는 안 보는 게 훨씬 나아. 그녀는 나 없이도 행복할 수 있어, 그래야 한다면.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들어 봐, 자네도 알다시피, 나한테는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엄청나게 중요해, 우주적인 것이 돼 버려. 나는 보석상한테 달려갔다가 그녀한테 가서 용서를 빌 거야. 하지만 내가 거기 내려갈 때까지 그녀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가는 길이라는 걸 그녀가 알기만 한다면! 자네가 거기 내려가서 그녀한테 말해 주면 어떨까? 그것으로 이 일이 죄다 마무리될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그는 그토록 목가적인 가능성을 감히 믿기 어렵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셋이 다 함께 시골에서 저녁을 들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아직은 모르는 일이야. 나는 도무지 그녀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겠어. 가엾은 것, 어쩌면 나는 그녀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아프게 하기만 할지도 몰라. 게다가 그녀의 결심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고.”

로베르는 나를 다시 어머니에게로 데려갔다.

“안녕히 계세요.”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이제 가 봐야 해요. 언제 또 휴가를 받을지 모르겠어요. 아마 한 달은 못 받을 거예요. 알게 되는 대로 편지할게요.”

확실히 로베르는, 어머니와 함께 외출할 때면 낯선 이들에게 베푸는 미소와 인사에 걸맞게 어머니에게는 짜증스러운 태도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여기는 그런 부류의 아들과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 자기 가족에게 무례하게 구는 것이 격식 차린 처신의 자연스러운 짝이라고 믿는 듯한 자들이 저지르는 이 가증스러운 복수극처럼 흔한 것도 없다. 가엾은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든, 아들은 마치 제 뜻과 달리 억지로 그 집에 끌려온 양, 자기가 그 자리에 있는 값을 톡톡히 치르게 하려는 양, 어머니가 겁먹은 채 조심스레 내놓은 말을 빈정대는, 야멸차고 잔인한 반박으로 그 자리에서 뒤집어엎는다. 그러면 어머니는 대번에, 그렇다고 아들의 무장을 풀지도 못한 채, 이 잘난 존재의 의견에 따르고 마는데, 정작 그가 없는 자리에서는 그 아들이 사랑스러운 천성을 지녔다고 두고두고 모두에게 자랑하면서도, 그 아들은 어머니에게 자기의 가장 날카로운 일격들을 하나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생루는 전혀 이렇지 않았다. 그러나 라셸의 부재가 그의 마음에 불러일으킨 고뇌 탓에, 다른 이유에서였을 뿐, 그는 앞서 내가 묘사한 아들들이 제 어머니에게 그러는 것 못지않게 자기 어머니에게 모질게 굴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동안, 나는 아들이 처음 방에 들어섰을 때 마르상트 부인이 억누르지 못했던, 힘찬 날갯짓 같던 바로 그 떨림이 다시 한번 그녀의 온몸을 뒤흔드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 그녀가 아들에게 붙박은 것은 근심 어린 얼굴, 비탄으로 커다래진 두 눈이었다.

“뭐라고, 로베르, 너 가려고? 정말로? 내 어린 아들아! 겨우 하루 널 본 것뿐인데!”

그러고는 아주 나직이, 더없이 자연스러운 어조로, 아들에게 어쩌면 괴로울, 아니면 소용없고 그저 짜증만 돋울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슬픔이라고는 모조리 몰아낸 목소리로, 마치 순전히 상식에서 우러난 말이기라도 한 듯 그녀는 덧붙였다.

“너도 알겠지만, 이건 조금도 착한 짓이 아니란다.”

그러나 이 소박함에 그녀는 어찌나 많은 조심스러움을 더했던지, 자기가 아들의 자유를 침범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려고, 또 자기가 그의 즐거움을 망친다고 아들이 나무라지 않도록 어찌나 많은 애정을 더했던지, 생루로서는 자기 안에서 비슷한 애정의 물결이 일 가능성을, 다시 말해 자기가 그 여인과 저녁을 보내는 데 걸림돌이 될 무언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화가 났다.

“유감이지만, 착하든 안 착하든, 이미 이렇게 된 걸 어쩌겠어요.”

그러고는 필경 자기 자신이야말로 받아 마땅하다고 느꼈을 그 비난들을 어머니에게 잔뜩 퍼부었다. 이기주의자가 늘 마지막 말을 차지하는 것은 이런 식이다. 자기 결심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못 박아 둔 터라, 그 결심을 버리게 하려고 사람들이 호소하는 그의 내면의 감정이 건드려지면 건드려질수록, 그는 정작 그 호소에 저항하는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기를 저항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사람들에게 더욱더 잘못을 돌리는 것이니, 그리하여 그 자신의 완강함은 극도의 잔인함에까지 치달을 수 있고, 이는 도리어 그의 눈에, 상처받고, 옳고, 그리하여 그로 하여금 타고난 연민의 본능을 거스르는 아픔을 치르게 하는 몰인정을 저지른 그 사람의 죄를 더욱더 무겁게 할 뿐이다. 그러나 마르상트 부인은 스스로 더는 조르기를 그만두었으니, 아들을 붙들 수 없으리라 느꼈기 때문이다.

“저는 여기서 이만 물러갈게요.” 그가 내게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 이 친구를 오래 붙들면 안 돼요, 곧 다른 데 가 봐야 하거든요.”

나는 내가 함께 있어 봐야 마르상트 부인에게 아무런 즐거움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로베르와 함께 가지 않음으로써, 그녀에게서 아들을 앗아 가는 그 즐거움에 내가 한몫 끼어 있다고 그녀가 여기지 않게 하는 편을 택했다. 나는 그녀의 아들의 처신을 두고 무슨 변명거리라도 찾아 주고 싶었으나, 그것은 그를 향한 애정에서라기보다 그녀를 향한 연민에서였다. 그러나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녀였다.

“가엾은 것.” 그녀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 애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한 게 틀림없어요. 아시다시피, 선생님, 어머니란 참 이기적인 존재랍니다, 그 애는 그러잖아도 낙이라고는 별로 없고, 파리에도 그렇게 뜸하게밖에 못 오는데. 아, 세상에, 그 애가 벌써 가 버리지 않았다면 붙잡고 싶었을 거예요, 물론 붙들려는 게 아니라, 그저 내가 그 애한테 화나지 않았다고, 그 애가 아주 잘한 거라고 말해 주려고요. 잠깐 층계 너머를 좀 살펴보고 와도 될까요?”

나는 그녀를 거기까지 바래다주었다.

“로베르! 로베르!” 그녀가 불렀다. “아니구나, 가 버렸어. 우리가 너무 늦었네.”

그 순간 나는, 몇 시간 전에 로베르를 정부와 아주 눌러살게 하려고 나섰던 것 못지않게, 이번에는 기꺼이 그를 정부와 갈라서게 하는 임무라도 맡았을 것이다. 한쪽 경우라면 생루는 나를 거짓된 벗으로 여겼을 테고, 다른 쪽 경우라면 그의 가족은 나를 그의 악령이라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몇 시간 사이를 두고 똑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응접실로 돌아갔다. 생루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빌파리지 부인은 노르푸아 와, 지나치게 질투하는 아내나 지나치게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를 (구경거리로 삼는 바깥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광경을) 서로 손가락질할 때 짓는, 그 미심쩍고 비웃음 어린, 그다지 딱해하지도 않는 눈길을 주고받았으니, 이렇게 말하는 셈이었다. “거봐요, 한바탕 소동이 있었네요.”

로베르는 정부에게 갔으니, 양쪽에서 그런 말이 오간 뒤였으므로 마땅히 그녀에게 주어서는 안 될 그 근사한 장신구를 지니고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마찬가지 결과가 되었으니, 그녀는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두 사람이 화해한 뒤에조차 그는 결코 그녀에게 그것을 받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베르의 몇몇 친구들은 그녀가 내보인 이런 무욕의 증거들이 그를 자기 쪽으로 더 바싹 끌어당기려고 일부러 꾸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녀는, 아마도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쓸 수 있는 것을 빼면, 돈을 탐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녀가 곤궁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앞뒤 없이 더없이 정신 나간 적선을 베푸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지금 이 순간,” 로베르의 친구들은 라셸의 무욕한 행동을 자기들의 심술궂은 말로 상쇄해 보려고 그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지금 이 순간 그 여자는 폴리베르제르의 산책로에 나가 있을걸. 그 계집은 수수께끼야, 영락없는 스핑크스라니까.” 하기야, 남자들에게 얹혀사는 까닭에 무욕하다고는 할 수 없는 여자들 가운데, 그 추저분한 삶에서 피어난 어떤 섬세함으로, 제 손수 애인들의 후한 씀씀이에 자잘한 한도를 수천 개나 그어 놓는 여자를 우리가 얼마나 많이 보아 왔던가?

로베르는 정부의 부정을 거의 하나도 알지 못했으며, 라셸의 진짜 삶, 그가 그녀 곁을 떠난 뒤에야 날마다 비로소 시작되는 그 삶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두고 마음을 들볶았다. 그는 이런 부정을 거의 하나도 알지 못했다. 누군가 그에게 그것들을 일러 준다 해도 라셸에 대한 그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해 우리가 완전한 무지 속에 산다는 것은, 가장 복잡한 사회 유기체의 한복판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자연의 어여쁜 법칙이니 말이다. 거울 이쪽 편에서 연인은 이렇게 되뇐다. “그녀는 천사야, 결코 내게 몸을 허락하지 않을 거야, 나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아껴 줘, 어찌나 아껴 주는지 어쩌면, 아니 아니야,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어.” 그러고는 욕망의 도취 속에서, 기다림의 고뇌 속에서, 그는 이 여인의 발치에 얼마나 많은 보석을 던지는지, 그녀를 곤경에서 구하려고 얼마나 이리저리 돈을 꾸러 다니는지. 한편 칸막이 저편에서는, 수족관의 유리벽 밖에서 관람객들이 주고받는 말이 안으로 전해지지 않듯 두 사람의 대화가 결코 전해지지 않는 그 칸막이 저편에서는, 사람들이 이렇게 떠들어 댄다. “자네, 저 여자 몰라? 축하하네, 저 여자가 등쳐 먹고, 아니 아예 거덜을 낸 남자가 몇인지 나도 몰라. 파리에 저보다 못된 계집은 없어. 흔해 빠진 사기꾼이라니까. 게다가 교활하기가 말도 못 하지!” 그리고 어쩌면 사람들이 그 마지막 말을 쓴 것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이지,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는 않고 그저 끌리기만 하는 회의적인 남자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니까. “아니야, 아니야, 이 사람아, 저 여자는 조금도 창녀 같은 게 아니야, 그야 한두 번 바람을 안 피웠다고는 안 하겠네만, 돈으로 사는 여자는 아니야, 만약 그런 여자였다면 지독하게 비쌌을 테지. 저 여자한테는 오만 프랑이 아니면 아예 안 되니까.” 그런데 그는 그녀에게 오만 프랑을 썼고, 그녀를 한 번 가졌으나, 그녀는 (게다가 남자 자신이 기꺼이 공범이 되어 준 덕분에) 그가 공짜로 그녀를 가진 축에 든다고 그를 믿게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세상이란 이런 것이어서, 우리 저마다에게 두 가지 얼굴이 있고, 가장 빤한, 가장 널리 알려진 결점조차, 어떤 다른 사람에게는 오직 껍데기 속에 파묻히고 그 껍데기의 보호를 받은 채로만, 매끄러운 고치, 자연의 감미로운 진기함으로만 알려지는 법이다. 파리에는 생루가 더는 인사를 건네지 않는, 목소리를 떨지 않고서는 입에 올리지도 못하는, 여자를 등쳐 먹는 자들이라 부르는 더없이 점잖은 남자 둘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둘이 다 라셸에게 거덜이 났기 때문이었다.

“딱 한 가지만은 스스로를 탓하게 되네요.” 마르상트 부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건 그 애한테 나한테 다정하지 않았다고 말한 거예요. 그토록 사랑스럽고, 둘도 없는 아들인데, 세상에 그 애 같은 아이는 또 없는데, 겨우 그 애를 보는 그 하루에, 나한테 다정하지 않았다고 말해 버리다니, 차라리 그 애가 나를 때렸으면 좋았을 거예요, 오늘 저녁 그 애가 무슨 낙을 누리든, 그나마도 별로 없는 그 낙이, 그 매정한 한마디로 그 애한테는 잡쳐 버릴 게 뻔하니까요. 하지만, 선생님, 급하시다니 더 붙들면 안 되겠네요.”

마르상트 부인은 근심스레 내게 작별을 고했다. 이 심정은 로베르에 관한 것이었고, 그녀는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진심을 거두고 다시 대귀부인이 되었다.

“선생님과 이렇게 잠깐 이야기 나눠서 정말 즐거웠고, 정말 기뻤답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리고 그녀는 겸손한 태도로, 마치 나와의 대화가 평생 맛본 가장 짜릿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라도 되는 양, 감사와 환희가 어린 눈길을 내게 붙박았다. 이 매혹적인 눈길은 그녀의 흰 치마에 놓인 검은 꽃무늬와 더없이 잘 어울렸으니, 제 일을 훤히 아는 귀부인의 눈길이었다.

“하지만 저는 조금도 급하지 않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게다가 샤를뤼스 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과 함께 갈 참이거든요.”

빌파리지 부인이 이 마지막 말을 엿들었다. 그 말이 그녀를 언짢게 한 듯싶었다. 만일 문제의 사안이 도저히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없는 것이 아니었더라면, 그 순간 빌파리지 부인 안에서 놀란 듯 보이던 것이 그녀의 정숙함이었다고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가설은 내 머릿속에 떠오르지조차 않았다. 나는 게르망트 부인에게, 생루에게, 마르상트 부인에게, 샤를뤼스 에게, 빌파리지 부인에게 흐뭇해하고 있었다. 나는 곰곰 따져 보려 멈추지 않고, 마음 가벼이 되는대로 지껄였다.

“여기서 나가실 때 제 조카 팔라메드와 함께 가신다고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녀가 그토록 높이 사는 조카와 내가 친밀한 사이임을 알면 빌파리지 부인에게 대단히 호의적인 인상을 주리라 생각하여, “그분이 저더러 함께 집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나는 쾌활하게 대답했다. “정말 기쁩니다. 게다가 저희는 부인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가까운 벗이고, 앞으로 더욱 가까워지리라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습니다.”

언짢아하던 빌파리지 부인은 이제 불안해진 듯 보였다. “그 애를 기다리지 마세요.” 그녀는 무언가에 골몰한 기색으로 내게 말했다. “그 애는 지금 파펜하임 와 이야기 중이에요. 틀림없이 당신에게 한 말을 잊어버렸을 거예요. 지금 그 애가 등을 돌린 사이에 얼른 가시는 편이 훨씬 나아요.”

빌파리지 부인이 처음 내보인 감정은, 정황만 아니었다면, 상한 정숙함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그녀의 고집, 그녀의 반대는, 얼굴만 들여다본다면, 미덕에서 우러난 것처럼 보였을 법도 했다. 나 자신은 로베르와 그의 정부에게 합류하려고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빌파리지 부인이 내가 가는 일을 어찌나 중히 여기는 듯 보이던지, 어쩌면 조카와 의논할 중대한 용건이 있는 모양이라 생각하여 나는 그녀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녀 곁에는 게르망트 가, 당당하고 올림포스의 신 같은 모습으로, 묵직하게 앉아 있었다. 그의 온몸 구석구석에 편재한 막대한 재산의 관념이 그에게 유별난 밀도를 부여한다고, 마치 그 재산이 도가니 속에서 녹아 하나의 인간 주괴로 뭉쳐 이토록 값이 어마어마한 이 사람을 빚어낸 것이라고 말할 만했다. 내가 그에게 작별을 고하는 순간 그는 정중하게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는 그의 케케묵은 프랑스식 교양이 움직여 들어 올려 내 앞에 세워 놓은 삼천만의 죽은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페이디아스가 순금으로 주조했다고 전해지는 저 올림포스의 제우스 상을 바라보는 듯했다. 좋은 가문의 교양이 게르망트 에게, 적어도 게르망트 의 몸뚱이에 지닌 위력이 이러했으니, 공작의 정신에까지 같은 지배력을 미치지는 못했던 까닭이다. 게르망트 는 제 농담에는 웃었으나 남의 농담에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층계를 내려가는데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날 기다린다는 게 고작 이거요?”

샤를뤼스 였다.

“잠깐 걸어도 괜찮겠소?” 안뜰에 이르렀을 때 그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내 마음에 드는 삯마차를 찾을 때까지 걸읍시다.”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셨습니까, 선생님?”

“아 그렇소, 사실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몇 가지 있었소만, 이제는 정말 그 말을 할지 어떨지 나도 잘 모르겠소. 자네로 말하자면, 그 말이 자네를 헤아릴 수 없는 이득으로 이끌 출발점이 될 수도 있으리라 나는 확신하오. 그러나 그 말이, 한 사람이 평온을 소중히 여기기 시작하는 나이에, 내 삶에 막대한 시간 낭비와 큰 번거로움을 끌어들이리라는 것도 나는 알겠소. 나는 자네가 내가 자네에게 쏟아야 할 그 모든 수고만한 값어치가 있는지 자문하는데, 그렇다고 말할 만큼 자네를 잘 아는 기쁨을 아직 누리지 못했소. 어쩌면 자네 자신에게도 내가 자네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내가 이토록 큰 수고를 자청할 만큼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모르오. 솔직히 다시 말하지만 내게 그것은 오로지 수고일 따름이니 말이오.”

나는 그렇다면 그런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마시라고 극구 사양했다. 이렇게 논의를 대뜸 끝맺는 것이 그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듯했다.

“그런 예의 차림 따위는 아무 의미도 없소.” 그가 차갑게 나를 나무랐다. “값어치 있는 사람을 위해 수고를 감수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소. 우리 가운데 가장 나은 자들에게조차, 예술 연구며 옛것에 대한 취미며 수집이며 정원 가꾸기며 하는 것들은 죄다 한낱 대용품이요 대체물이요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소. 우리는 제 통 속에서, 디오게네스처럼, 사람을 찾아 외치는 것이오. 우리가 베고니아를 기르고 주목을 다듬는 것은, 주목과 베고니아가 손질에 순순히 따르기에 하는 최후의 방편일 뿐이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수고를 들일 값어치가 있다고 확신만 할 수 있다면, 인간이라는 초목에 우리의 시간을 바치고 싶은 것이오. 문제는 오로지 그것이오. 자네는 자네 자신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야 하오. 자네는 내 수고를 들일 값어치가 있소, 없소?”

“선생님,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선생님께 근심거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하지만 저로 말하자면, 선생님에게서 제게 오는 모든 것이 제게는 더없이 큰 기쁨이 되리라 믿으셔도 좋습니다. 이렇게 저를 눈여겨보시고 도우려 하시는 그 친절에 저는 깊이 감동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이 말에 거의 격정적으로 감사하며, 발베크에서 이미 나를 놀라게 했던, 그리고 그의 차가운 어조와는 그토록 대조를 이루던 그 이따금씩의 허물없음으로, 제 팔을 내 팔에 꿰었다.

“자네 나이에 흔한 그 분별없음 탓에,” 그가 내게 말했다, “자네는 이따금 우리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을 벌려 놓을 말을 하기 쉽소. 반대로 자네가 방금 한 말은 바로 나를 감동시키는 종류의 것이며, 자네를 위해 많은 것을 해주고 싶게 만드는 말이오.”

나와 팔짱을 낀 채, 경멸이 배어 있으면서도 그토록 다정한 이 말을 뱉으며, 샤를뤼스 는 이제, 발베크의 카지노 앞에서 그를 처음 본 그날 아침, 그리고 실은 그보다 여러 해 전 탕송빌의 정원에서 분홍빛 산사나무 사이로, 당시 나는 그의 정부인 줄 알았던 스완 부인 곁에 서 있던 그를 보았을 때 나를 놀라게 했던 그 강렬한 응시로 내게 시선을 붙박았다가, 이제는 그 시선을 제 둘레로 흘려보내, 이 시각이면 마구간으로 돌아가느라 꽤 많이 지나다니던 삯마차들을 살피는데, 어찌나 뚫어지게 바라보았던지 몇 대가 멈춰 서서, 마부들은 그가 마차를 잡으려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샤를뤼스 는 곧바로 그것들을 물렸다.

“저것들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오.” 그가 내게 설명했다. “죄다 등불의 빛깔이며 마차가 가는 방향에 달린 문제요. 선생,” 그가 말을 이었다, “내가 자네에게 하려는 이 제안이 순전히 사심 없고 자비로운 성질의 것임을 자네가 결코 곡해하지 않기를 바라오.”

나는 그의 말투가 스완의 말투와 닮은 데에 놀랐는데, 발베크에서보다 지금 더 닮아 있었다.

“자네는, 내가 사교계가 아쉬워서, 고독이나 권태가 두려워서 자네에게 의지하는 것이라고 상상하지 않을 만큼은 영리하리라 짐작하오. 나는 여느 때 같으면 내 이야기를 하기를 즐기지 않소만, 자네도 어쩌면 들었을지 모르오.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타임스 사설에서도 넌지시 언급되었소만, 늘 우정으로 나를 아껴 주시고 기꺼이 나와 사촌 간의 정을 이어 가자 고집하시는 오스트리아 황제께서, 얼마 전 공개된 어느 회견에서, 만일 샹보르 백작 곁에 유럽 정치의 저류에 나만큼 훤히 통달한 사람이 있었더라면 그가 오늘날 프랑스 왕이 되었으리라고 밝히셨소. 선생, 나는 종종 생각했소. 내 안에는, 나 자신의 보잘것없는 재능 덕이 아니라 언젠가 자네가 알게 될 기회가 있을지 모를 사정 덕에, 값을 헤아릴 수 없는 일종의 비밀 기록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몸소 쓸 자유가 있다고 느끼지는 못했으나, 내가 삼십 년 넘게 모아 온 것, 어쩌면 나 홀로만 지닌 그것을 몇 달 안에 물려줄 젊은이에게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소득이 되리라고 말이오. 나는 오늘날의 미슐레라면 그것을 알기 위해 제 목숨의 몇 해라도 내놓을 어떤 비밀들을 배우는 데서, 그리고 그 빛에 비추면 어떤 사건들이 그에게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그런 비밀들을 배우는 데서 자네가 얻을 지적 즐거움은 말하지 않겠소. 그리고 나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만이 아니라 여러 정황의 사슬을 말하는 것이오.” (이것은 샤를뤼스 가 즐겨 쓰는 표현이어서, 그는 이 말을 쓸 때면 흔히 기도하듯 두 손을 맞잡았으나, 손가락은 뻣뻣이 세워, 마치 그가 굳이 밝히지 않는 그 정황들과 그것들을 잇는 사슬의 얽힘을 그 손가락의 복잡함으로 그려 보이려는 듯했다.) “나는 자네에게 아무도 꿈꾸지 못한 설명을, 과거만이 아니라 미래에 대해서도 해줄 수 있소.” 샤를뤼스 는 말을 멈추고, 제 고모의 응접실에서 화제에 올랐을 때 귀 기울이는 기색은 없었으나 그래도 들었던 블로크에 대해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 빈정대는 억양으로 어찌나 능란하게 제 말을 떼어 놓던지, 그는 전혀 딴생각을 하는 듯, 그저 예의상 기계적으로 말하는 듯 보였다. 그는 내 친구가 젊은지, 잘생겼는지 따위를 물었다. 만일 블로크가 그 말을 들었다면, 노르푸아 를 대할 때보다도 더, 다만 전혀 다른 까닭에서, 샤를뤼스 가 드레퓌스 편인지 반대편인지 알아내느라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삶을 배우고자 한다면, 벗들 가운데 이따금 외국인 하나쯤 끼워 두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오.” 나에 대한 물음을 끝낸 샤를뤼스 가 말을 이었다. 나는 블로크가 프랑스인이라고 대답했다. “저런,” 샤를뤼스 가 말했다, “나는 그를 유대인으로 알았는데.”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듯한 그의 단언에, 나는 샤를뤼스 가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더한 반드레퓌스파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는 드레퓌스에게 씌워진 반역의 죄목에는 반박했다. 다만 그의 반박은 이런 식이었다. “신문들은 드레퓌스가 제 조국에 죄를 지었다고 말하는 모양이오. 내 이해로는 그렇다는 것인데, 나는 신문 따위에 마음을 두지 않소. 손을 씻듯 신문을 읽을 뿐, 내가 하는 일에 굳이 관심을 둘 값어치가 있다고 여기지 않으니 말이오. 어쨌거나 그 죄란 있지도 않은 것이오. 자네 친구의 동족이라면 유대 땅을 배반했을 때 죄를 지은 셈이 되겠으나, 그가 프랑스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나는 만일 전쟁이 난다면 유대인들도 남들과 똑같이 동원되리라고 지적했다. “그럴지도 모르오만, 그것이 경솔한 일이 아니라고는 장담 못 하겠소. 우리가 세네갈인이며 마다가스카르인을 데려온다 한들, 그들의 마음이 프랑스를 지키는 일에 있으리라고는 나로선 도무지 여겨지지 않으니, 하기야 당연한 노릇이오. 자네의 드레퓌스는 차라리 손님을 맞는 법도를 어긴 죄로 유죄를 받는 편이 나을 것이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굳이 할 것 없소. 어쩌면 자네가 자네 친구에게 부탁해서, 내가 성전에서 열리는 어느 큰 축제에, 할례식에, 유대 성가와 함께 자리할 수 있게 해줄 수도 있겠구려. 그가 홀이라도 하나 빌려서, 생시르의 처녀들이 루이 14세를 즐겁게 하려고 라신이 시편에서 딴 장면들을 공연했듯이, 내게 성서극 여흥을 베풀어 줄 수도 있을 테고. 우리를 실컷 웃길 놀이판을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오. 가령 자네 친구와 그 아비 사이의 한판 싸움 같은 것 말이오. 다윗이 골리앗을 치듯 그가 아비를 후려치는 거지. 그거야말로 제법 우스운 익살극이 되겠소. 이왕 하는 김에 그 할망구(내 늙은 유모라면 ‘해거트’라 했을) 어미에게도 실팍한 매질을 몇 대 안겨 줄 수도 있겠고. 그거야말로 훌륭한 구경거리이며, 우리에게도 그리 언짢지 않을 것이오. 그렇잖소, 젊은 친구? 우리는 이국의 진기한 구경거리를 좋아하고, 저 유럽 밖의 족속을 흠씬 두들기는 것은 늙은 낙타에게 마땅한 벌을 주는 셈이 될 테니 말이오.” 이 끔찍하고 거의 실성한 듯한 말을 쏟아내며, 샤를뤼스 는 내 팔이 아프도록 움켜쥐었다. 나는 그가 방금 그 몰리에르풍 어휘를 인용한 이 늙은 유모에게 그가 얼마나 놀라우리만치 다정한지를 그의 집안사람들이 내게 들려준 온갖 이야기를 떠올렸고, 한 마음속에 깃든 선함과 악함 사이의, 지금껏 내가 느끼기에 별로 연구된 바 없는 그 연관은, 아무리 갖가지라 해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되리라고 혼자 생각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