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저 여자가 그리 불평할 처지는 아니지 싶은데요,” 하고 프랑수아즈는 무뚝뚝하게 한숨짓곤 했으니, 그녀는 고모가 저 자신이나 제 자식들에게 주는 것이라면 죄다 푼돈으로 여기면서, 일요일마다 욀라리의 손에 슬며시 쥐여 주는, 그러나 어찌나 은밀히 건네지는지 프랑수아즈로서는 도무지 볼 수 없던 그 자잘한 동전들만은, 응석받이에 배은망덕한 귀염둥이에게 흥청망청 낭비하는 보물로 여기는 버릇이 있었다. 고모가 욀라리에게 베푸는 돈을 저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미 고모가 가진 모든 것으로 넉넉히 흡족했으니, 마님의 재산이 절로 하녀를 세상 사람들 눈에 격상시키고 빛내 준다는 것을, 그리하여 고모의 수많은 농장과, 신부의 잦고도 긴 방문과, 그녀가 들이켜는 그 놀라운 수의 비시 물병 덕분에, 저 자신이 콩브레며 주이르비콩트며 그 밖의 뭇 고을에 두루 이름나 칭송받을 만한 몸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는 오직 고모를 위해서만 인색했다. 만일 그녀가 고모의 재산을 주무를 수 있었다면(그것이야말로 그녀의 더없는 야심을 채우고도 남았으련만) 어미의 사나움으로 남들의 침탈에서 그것을 지켜 냈으리라. 그러나 고칠 수 없이 후한 것을 잘 아는 고모가 제멋대로 나누어 주는 것쯤은, 다만 그 받는 이가 이미 부유한 자들이기만 했다면 그녀도 그리 큰 해로 여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그런 사람들이야 고모의 선물을 딱히 아쉬워할 처지가 아니니 그 때문에 고모에게 거짓 애정을 꾸민다는 의심을 받을 일도 없으리라 여겼는지 모른다. 게다가 사즈라 부인이나 스완 씨, 르그랑댕 씨, 구필 부인처럼 큰 재산과 지체를 지닌 이들에게, 고모와 ‘같은 부류’요 자연히 ‘그녀와 어울릴 법한’ 이들에게 건네는 선물이란, 프랑수아즈가 보기에 부자들이 누리는 저 낯설고 눈부신 삶의 장식 같은 관습 가운데 하나였으니, 그녀가 감탄 어린 미소로 바라보던, 사냥하고 총 쏘고 무도회를 열고 서로 방문을 주고받는 그런 삶 말이다. 그러나 이 왕후 같은 예의의 교환 대신 고모가 한낱 자선을 놓는다면, 그 수혜자가 프랑수아즈가 ‘나 같은 사람들’이라거나 ‘나보다 나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라 이름 붙일 부류라면, 그것은 결코 같은 일이 아니었으니, 그런 자들이 저를 늘 ‘프랑수아즈 부인’이라 불러 저희가 ‘못한 축’임을 내보이지 않기라도 하면 그녀는 더욱 그들을 업신여겼다. 그리하여 그 온갖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고모가 여전히 제멋대로, 두 손으로(적어도 프랑수아즈가 믿기로는) 받을 자격도 없는 것들에 돈을 뿌려 대는 것을 보게 되자, 그녀는 저 자신이 고모에게서 받는 선물이 욀라리에게 낭비되는 그 가공의 재물에 견주면 너무도 하찮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콩브레 근방에는, 욀라리가 고모를 찾아다녀 ‘벌어들인’ 밑천으로 두말없이 사들이지 못하리라고 프랑수아즈가 의심할 만큼 번창하고 대단한 농장이 하나도 없었다. 덧붙이자면 욀라리 또한 프랑수아즈의 방대하고 은밀한 재물에 대해 이와 똑같은 셈을 해 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일요일마다, 욀라리가 가고 나면 프랑수아즈는 가차 없이 그녀의 몰락을 점치곤 했다. 그녀는 욀라리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던지라, 욀라리가 있을 때면 ‘상냥한 낯’을 지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상대가 떠난 뒤엔 그 값을 톡톡히 치르게 했으니, 사실 결코 이름을 대 놓고 들먹이는 법은 없이, 무녀의 신탁처럼, 또는 전도자 코헬렛의 말처럼 두루뭉술한 언사로 그녀를 넌지시 겨냥하되, 그 각별한 겨냥이 고모의 귀를 벗어날 수 없도록 말을 골랐다. 욀라리가 등 뒤로 대문을 닫고 갔는지 커튼 자락 옆으로 내다본 뒤, “아첨꾼들은 제 잇속 차리고 부스러기 주워 담는 법을 잘도 알지, 하지만 두고 봐라, 두고 봐, 우리 하느님은 질투하시는 하느님이니, 좋은 날이 오면 그들에게 앙갚음하시리라!” 하고, 요아스가 오직 아탈리야만을 마음에 두고 이렇게 말할 때의 그 곁눈질하는 은근한 눈짓으로 읊조리곤 했다. 곧 이렇게.
번영이란
악인의 것은 급류처럼 흘러 지나가
이내 스러지고 마느니라.
그러나 신부까지 찾아와 그 끝없는 방문으로 고모의 기운을 죄다 앗아 간 이 잊지 못할 오후에는, 프랑수아즈가 욀라리를 따라 방을 나서며 이렇게 말했다. “옥타브 부인, 이만 쉬시게 두겠습니다. 아주 진이 다 빠져 보이세요.”
그러자 고모는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고, 이것이 마지막 숨인가 싶을 만큼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며, 이미 죽은 사람처럼 두 눈을 감은 채 누워 있었다. 그런데 프랑수아즈가 아래층에 채 내려서기도 전에, 있는 힘껏 잡아당긴 종소리가 네 번 온 집안에 울려 퍼졌고, 고모는 침대에 꼿꼿이 일어나 앉아 소리쳤다. “욀라리는 벌써 갔니? 세상에, 구필 부인이 성체 거양 전에 성당에 도착했는지 물어보는 걸 깜빡했지 뭐냐. 얼른 뒤쫓아가 보아라!”
그러나 프랑수아즈는 욀라리를 따라잡지 못하고 혼자 돌아왔다. “참으로 속상하구나.” 고모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필 꼭 물어봐야 할 그 한 가지를 말이다.”
이런 식으로 레오니 고모의 삶은 흘러갔다, 늘 한결같이, 그녀가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깊은 애정을 담아 자신의 “자잘한 일과”라 부르던 그 잔잔한 단조로움 속에서. 그녀의 일과는 누구에게나 존중받았는데, 좀 더 건강한 생활 방식을 권해 봐야 소용없음을 깨닫고 차츰 그 일과를 따르는 데 체념한 우리 집안 식구들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그러하여, 세 거리 떨어진 곳에서 포장 상자에 못을 박아야 하는 장사꾼조차 먼저 프랑수아즈에게 사람을 보내 고모가 “쉬고” 있지 않은지 확인하곤 했다. 그럼에도 이 “자잘한 일과”가 바로 그해에 한 번은 가차 없이 뒤흔들린 일이 있었다. 잎사귀 사이에 숨어 아무도 모르게 자라 익어 가다가 마침내 저절로 떨어지는 열매처럼, 어느 날 밤 부엌데기의 해산이 우리에게 닥쳐왔다. 그녀의 진통은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고, 콩브레에는 산파가 없었기에 프랑수아즈가 동트기 전에 티베르지까지 산파를 부르러 나서야 했다. 고모는 그 처녀의 비명 때문에 “쉬지” 못했고, 프랑수아즈는 거리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그녀의 손길이 몹시 아쉬웠다. 그리하여 오전이 지나는 동안 어머니가 내게 말했다. “위층에 얼른 올라가서 고모가 뭐 필요한 게 없는지 보고 오렴.”
나는 고모의 두 방 가운데 첫째 방으로 들어갔고, 열린 문 너머 다른 방에서 고모가 모로 누워 잠든 모습을 보았다. 거의 코 고는 소리라 할 만한 그녀의 숨소리가 들렸다. 막 살그머니 빠져나오려는데 무언가가, 아마도 내가 들어온 소리가 그녀의 잠을 방해해, 요즘 자동차를 두고 하는 말마따나 잠의 “속도를 바꾸어” 놓았다. 코 고는 소리의 가락이 한순간 멎었다가 한결 낮은 음으로 다시 이어졌던 것이다. 이윽고 고모가 깨어나 얼굴을 반쯤 돌렸고, 나는 처음으로 그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거기에는 일종의 공포가 새겨져 있었다. 분명 그녀는 방금 어떤 무시무시한 꿈에서 막 벗어난 참이었다. 누워 있는 자리에서 그녀는 나를 볼 수 없었고, 나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물러나야 할지 몰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녀는 현실감을 되찾아, 자신을 두렵게 한 환영이 헛것임을 알아차린 듯했다. 삶이 우리 꿈보다는 덜 잔혹하기를 기꺼이 허락하시는 하느님께 드리는 기쁨의 미소와 경건한 감사가 그녀의 얼굴을 희미하게 밝혔고, 혼자 있다고 여길 때면 반쯤 소리 내어 혼잣말하는 버릇대로 그녀는 중얼거렸다. “주님 감사합니다! 여기서 우리를 성가시게 할 것이라곤 부엌데기의 아기밖에 없으니. 그런데 가엾은 우리 옥타브가 되살아나서 날마다 나를 산책시키려 드는 꿈을 꾸었지 뭐냐!” 그녀는 작은 탁자 위에 놓인 묵주를 향해 손을 뻗었으나, 잠이 다시금 그녀를 사로잡아 거기에 닿을 힘조차 남겨 주지 않았다. 그녀는 평온하고 흡족한 채 잠들었고, 나는 발끝으로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왔으니, 내가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는 그날 이후 오늘까지 그녀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이 해산 같은 드문 일을 빼면 고모의 “자잘한 일과”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고 내가 말할 때, 그것은 규칙적인 간격을 두고 똑같은 형태로 되풀이되어, 실은 그녀 삶의 더 큰 단조로움 위에 일종의 한결같은 무늬를 찍어 놓는 데 지나지 않던 그런 변화들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토요일마다 프랑수아즈가 오후에 루생빌르팽 장에 가야 했으므로, 온 집안이 점심을 한 시간 일찍 먹어야 했다. 그리고 고모는 자신의 일상적 습관에 대한 이 주간의 예외를 어찌나 철저히 몸에 익혔던지, 나머지 습관 못지않게 이 예외에도 매달렸다. 프랑수아즈의 말마따나 고모는 여기에 어찌나 잘 “길들어” 있었던지, 만일 토요일에 점심을 여느 때 시각까지 기다려야 했다면, 평일에 점심을 토요일 시각으로 당겨야 하는 것만큼이나 “심기가 뒤틀렸을”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렇게 점심을 앞당기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토요일이라는 하루에 다정하고 자못 매력적인 고유한 성격을 부여했다. 여느 날 같으면 식사 시각을 알리기까지 아직 한 시간을 더 견뎌야 할 그 무렵에, 우리는 모두 몇 초 안에 앤다이브가 때 이르게 등장하고, 뒤이어 특별한 은혜인 오믈렛과 분에 넘치는 스테이크가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균형 잃은 토요일이 돌아오는 일은, 사건 없는 삶과 안정된 사회 질서 속에서 일종의 국민적 일체감을 빚어내고, 이야기꾼이 마음껏 살을 붙일 수 있는 대화와 우스갯소리와 일화의 애용 소재가 되는, 저 자잘하고 담장 안에 갇힌, 국지적이고 거의 시민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 가운데 누구라도 서사시적 정신을 지녔더라면, 그것은 곧바로 전설 한 편의 씨앗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동틀 무렵, 옷도 채 입기 전에, 별다른 까닭도 없이 그저 우리 결속의 힘을 확인하는 즐거움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유쾌하고 다정하며 애국적으로 외치곤 했다. “서둘러라, 지체할 틈이 없다, 잊지 마라, 오늘은 토요일이야!” 그러는 동안 고모는 프랑수아즈와 수다를 떨며, 오늘 하루가 여느 때보다 더 길겠거니 헤아리고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토요일이니까 저 애들한테 송아지 고기 좋은 걸로 좀 해 주려무나.” 열 시 반에 누군가 무심코 시계를 꺼내 들고 “이런, 점심까지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네”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대뜸 이렇게 되받을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나 어쩔 줄 몰랐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오늘이 토요일인 걸 잊었어?” 그러고는 십오 분 뒤에도 여전히 웃으며, 위층에 올라가 레오니 고모에게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들려주어 그녀를 즐겁게 해 드리자고 서로 다짐하곤 했다. 하늘의 얼굴마저 달라지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나면 해는 토요일임을 아는 듯 한 시간을 더 하늘 꼭대기에서 이글거렸고, 누군가 우리가 산책 나서기에 늦었다 여겨 “뭐야, 아직 두 시밖에 안 됐어!”라고 말하며 생틸레르 종탑에서 울려 오는 두 번의 묵직한 종소리가 자기 곁을 스쳐 가는 것을 느낄 때면 (그 종소리는 여느 때 이 시각이면 큰길에서는 아무도 스치지 못했으니, 점심이며 그 뒤에 이어지는 낮잠 때문에 길이 텅 비어 있었고, 낚시꾼조차 떠나 버린 맑고 쉼 없이 흐르는 냇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종소리는 아무도 거느리지 못한 채 텅 빈 하늘로 미끄러져 들었으며, 그곳에는 종소리를 맞이할 몇 조각 한가로운 구름만이 남아 있었다) 온 식구가 한목소리로 대답하곤 했다. “이런, 잊었구나. 우리는 점심을 한 시간 일찍 먹었잖니. 오늘이 토요일인 걸 뻔히 알면서.”
아버지와 이야기하려고 열한 시에 찾아왔다가 우리가 식탁에 앉아 있는 것을 본 어느 “야만인”(토요일의 특별한 관습을 모르는 이는 누구든 우리가 이렇게 불렀다)의 놀란 얼굴은, 어쩌면 프랑수아즈의 평생에 일어난 그 무엇 못지않게 그녀를 즐겁게 하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어리둥절해하는 방문객이 토요일에는 우리가 점심을 한 시간 일찍 먹는다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사실도 우습긴 했지만, 그보다 더 참을 수 없이 우스운 것은 아버지 자신이(프랑수아즈는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그 완고한 애향심에 진심으로 온전히 공감하면서도) 그 야만인이 이토록 간단한 일을 모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고, 우리가 벌써 식당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상대에게 더는 아무 설명도 없이 “보시다시피, 오늘은 토요일이잖소”라고 대답한 일이었다. 이야기가 이 대목에 이르면 프랑수아즈는 잠시 멈춰 웃다가 고인 눈물을 닦고는, 제 흥을 더 돋우려 대화를 늘여, “토요일”이라는 말이 아무 뜻도 전하지 못한 그 방문객이 다시 무어라 대꾸했을지 지어내곤 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덧붙임에 반대하기는커녕 이야기가 아직 충분히 길지 않다고 느껴, 이렇게 그녀를 부추기곤 했다. “아니, 그 사람이 분명 다른 말도 했을 텐데. 처음 들려줬을 땐 그보다 더 있었잖아.”
큰고모마저 하던 일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안경 너머로 우리를 바라보곤 했다.
그날에는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이 있었으니, 곧 5월 동안 우리가 토요일 저녁 식사 뒤에 “성모 성월” 신심 행사에 나가곤 했다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는 “요즘 들어 부추김을 받는 듯한 젊은이들의 개탄스러운 단정치 못함”에 대해 매우 엄격한 견해를 지닌 뱅퇴유 씨를 마주칠 법했으므로, 어머니는 먼저 내 차림새에 흐트러진 데가 없는지 살핀 뒤에야 우리는 성당으로 나섰다. 내가 산사꽃과 처음 사랑에 빠진 것을 기억하는 것은 바로 이 “성모 성월” 예배에서였다. 산사나무는 그저 성당 안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성당은 거룩한 땅이라 해도 우리 모두에게 드나들 권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제단 위에 놓여, 그것이 한몫하는 그 신비의 거행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어우러진 산사나무는, 초와 성기(聖器) 사이로 뻣뻣하고 축제다운 장식 방식에 따라 가로로 서로 묶인 가지들을 밀어 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지들은 짙은 잎사귀의 부채꼴 윤곽 덕분에 한층 더 사랑스러워졌으며, 그 잎 위로는 혼례의 끌리는 옷자락 위에 그러하듯 눈부시게 흰 자잘한 봉오리 송이들이 흐드러지게 흩뿌려져 있었다. 비록 나는 손가락 사이로밖에 감히 그것을 바라보지 못했지만, 그 짜임새 있는 장식이 살아 있는 것들로 이루어졌음을, 또 잎의 모양을 다듬고 저 눈 같은 봉오리라는 화룡점정의 장식을 더하여, 공적인 기쁨이자 동시에 엄숙한 신비이기도 한 그것에 걸맞은 장식을 만들어 낸 이가 다름 아닌 자연 그 자신임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제단 더 높은 곳에서는 꽃 한 송이가 여기저기 무심한 우아함으로 피어 있었는데, 마지막의, 거의 아지랑이 같은 치장인 양 아무렇지 않게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수술 다발을 달고 있어 꽃 자체를 흰 안개 속에 흐려 놓았으니, 그것을 눈으로 좇으며 내 안 어딘가에서 그 꽃이 피어나는 몸짓을 흉내 내 보려 하다가, 나는 그것을 흰옷 입은 어느 젊은 처녀가 무심하고도 생기 있게, 오므린 눈동자로 유혹하는 눈길을 던지며 빠르고 무심하게 고개를 놀리는 몸짓으로 그려 보았다.
뱅퇴유 씨는 딸과 함께 들어와 우리 곁에 앉았다. 그는 좋은 집안 출신으로, 한때 내 할머니의 자매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던 선생이었다. 그래서 아내를 잃고 얼마간의 재산을 물려받은 뒤 콩브레 근처로 물러나 살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를 자주 우리 집에 초대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지독한 결벽 탓에, 그의 말로 “요즘 유행인 듯한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한 스완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발길을 끊고 말았다. 어머니는 그가 “작곡을 한다”는 말을 듣고, 칭찬 삼아 그를 찾아가거든 그가 지은 곡을 하나 들려주어야 한다고 그에게 말했다. 뱅퇴유 씨로서는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없었으나, 그는 예의와 남에 대한 배려를 어찌나 극진히 하여 늘 상대의 처지에 자신을 놓았던지, 자기 바람을 실행에 옮기거나 그런 바람을 남이 눈치채게 하기라도 하면 상대를 지루하게 하거나 이기적으로 비칠까 봐 두려워했다. 부모님이 그를 찾아가던 날 나도 따라나섰는데, 부모님은 나를 바깥에 남아 있게 했고, 뱅퇴유 씨의 집인 몽주뱅은 관목이 뒤덮인 가파른 언덕을 실제로 파내어 만든 자리에 서 있었으므로, 나는 그 관목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위층 응접실과 같은 높이에, 그 창에서 겨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게 되었다. 하인이 들어와 부모님이 오셨다고 그에게 알리자, 나는 뱅퇴유 씨가 피아노로 달려가 눈에 띄도록 악보 한 장을 펼쳐 놓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부모님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그것을 얼른 낚아채어 한구석에 감추었다. 틀림없이 그는, 자기 곡을 몇 곡 들려줄 기회가 생겨서만 반가워한다고 부모님이 여길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방문하는 내내 어머니가 그의 연주 이야기로 되돌아갈 때마다 그는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누가 저걸 피아노 위에 올려놓았는지 통 모르겠군요. 저기는 놓을 자리가 전혀 아닌데.” 그러고는, 오로지 그 화제가 자신에게 덜 흥미롭다는 이유만으로 대화를 다른 이야기로 돌려 버렸다.
그의 유일무이한 열정은 딸을 향한 것이었는데, 다소 사내아이 같은 겉모습의 그 딸은 어찌나 튼튼해 보였던지, 늘 그녀의 어깨에 둘러 줄 여벌 숄을 챙겨 두는 등 아버지가 딸의 건강을 위해 취하던 조심스러움을 보노라면 미소를 참기가 어려웠다. 할머니는 그 밖으로는 무뚝뚝한 이 아이의, 온통 주근깨가 뿌려진 얼굴 위로 이따금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는 부드럽고 섬세하며 거의 수줍은 듯한 표정에 우리의 눈길을 이끌곤 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나면 곧바로 자신의 말을 듣는 이가 받아들였을 법한 뜻으로 되새겨, 혹여 오해가 생기지 않을까 놀라워했고, 그러면 그 “쾌활한 아이”라 할 만한 사내 같은 얼굴 아래로, 마치 투명한 막을 통해 보듯 또렷한 윤곽으로 눈물짓는 젊은 여인의 한결 고운 이목구비가 드러나 보였다.
성당을 나서려고 돌아서기 전에 제단 앞에서 무릎을 굽혀 절을 하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는 순간 나는 문득 산사꽃에서 달콤 쌉싸름한 아몬드 향이 내게로 슬며시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그제야 꽃송이 자체에 한결 크림빛을 띤 작은 얼룩들이 있음을 알아차렸으니, 아몬드 과자의 맛이 그 노릇하게 탄 부분에 깃들어 있듯, 뱅퇴유 양의 뺨의 달콤함이 그 주근깨 아래 깃들어 있듯, 이 향기도 그 얼룩 속에 숨어 있으려니 나는 상상했다. 산사나무의 무겁고 미동 없는 고요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훅훅 끼쳐 오는 향기는 내게 강렬한 생명력의 속삭임처럼 다가왔고, 그 생명력으로 제단 전체가 마치 살아 있는 더듬이들이 더듬어 나가는 길가 울타리처럼 떨리고 있었으니, 봄철의 독기를, 쏘아 대는 벌레들의 그 얼얼하게 하는 힘을 이제 꽃으로 옮겨 지닌 듯한, 거의 붉은빛을 띤 몇몇 수술을 보고 나는 그것을 떠올렸다.
성당 밖 현관에서 우리는 잠시 서서 뱅퇴유 씨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광장에서는 사내아이들이 서로 쫓고 쫓기며 뛰놀았고, 그는 끼어들어 작은 아이들 편을 들며 큰 아이들을 나무라곤 했다. 그의 딸이 굵고 넉살 좋은 목소리로 우리를 만나 얼마나 반가웠는지 말하기라도 하면, 곧바로 그녀 안에 숨어 있던 더 나이 들고 더 예민한 언니가, 어쩌면 우리로 하여금 그녀가 집으로 초대받으려고 수작을 부린다고 여기게 만들었을 이 경솔하고 학생다운 말에 얼굴을 붉히기라도 한 듯싶었다. 그러면 아버지가 그녀의 어깨에 외투를 여며 주었고, 두 사람은 그녀가 손수 모는 작은 이륜마차에 기어올라, 함께 몽주뱅의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우리로 말하자면, 이튿날이 일요일이라 대미사 전에 일어나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므로, 달 밝고 따뜻한 밤이면 아버지는 우리를 곧장 집으로 데려가는 대신, 남다르게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우리를 십자가상 쪽으로 멀리 돌아가는 긴 산책길로 이끌곤 했는데, 방향을 가늠하기는커녕 자신이 어느 길에 있는지조차 도무지 알지 못하는 어머니는 그것을 아버지의 전략적 천재성의 개가로 여겼다. 때로는 철도역에서 긴 돌다리를 성큼성큼 내딛기 시작하는 고가교까지 가기도 했는데, 그것은 내게 문명의 마지막 초소 너머 유배의 온갖 비참함을 상징했으니, 해마다 파리에서 내려올 때면 우리는 콩브레에 다다르거든 각별히 조심하여 역을 놓치지 말고 기차가 멈추기 전에 준비를 마치라는 당부를 들었기 때문이다. 기차는 이 분 만에 다시 떠나 고가교를 건너, 그리스도교 세계 밖으로 나아갈 터였는데, 콩브레는 내게 그 세계의 가장 먼 경계를 나타냈다. 우리는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장들이 늘어선 역전 대로를 지나 돌아오곤 했다. 그 정원마다 달빛은 위베르 로베르의 화법을 흉내 내어, 부서진 흰 대리석 계단이며 물 뿜는 분수며 마음을 끌듯 반쯤 열린 대문을 흩뿌려 놓았다. 달빛은 전신국을 쓸어 없애 버렸다. 거기 남은 것이라곤 반쯤 부서졌으되 영원토록 견디는 폐허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기둥 하나뿐이었다. 이쯤이면 나는 지친 팔다리를 끌며 졸음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보리수의 향긋한 냄새는 크나큰 고통과 탈진을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그 수고에 값하지는 못하는 위안처럼 여겨졌다. 멀찍이 떨어진 대문들에서, 고요 속 우리 발소리에 깨어난 집 지키는 개들이 서로 주고받듯 짖어 대곤 했으니, 지금도 이따금 저녁이면 그 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콩브레의 공원이 그 자리에 들어섰을 때) 역전 대로가 몸을 숨긴 곳도 바로 그 개들의 보호 아래였으리라. 내가 어디에 있든, 개들이 번갈아 도전하고 화답하기 시작하기만 하면, 나는 온갖 보리수와 달빛 아래 반짝이는 그 포도(鋪道)와 더불어 그 대로를 다시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문득 아버지는 우리를 멈춰 세우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지?” 산책으로 완전히 지쳐 버렸으면서도 여전히 남편을 자랑스러워하던 어머니는, 조금도 알지 못하겠다고 사랑스레 고백하곤 했다.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웃곤 했다. 그러고는, 마치 조끼 주머니에서 대문 열쇠와 함께 미끄러져 나오기라도 한 듯이, 우리 눈앞에 나타난 우리 집 정원의 뒷문을 가리켜 보였는데, 그 뒷문은 낯익은 생테스프리 거리 모퉁이와 손을 맞잡고 나와, 미지의 길을 헤매고 다닌 끝의 우리를 기다리며 맞이해 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감탄하여 중얼거렸다.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한 걸음도 더 뗄 필요가 없었으니, 오래전부터 내 행동이 더는 내 의지의 어떤 통제도, 하다못해 주의조차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그 정원에서, 땅이 내 발밑에서 저절로 앞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습관이 다가와 나를 두 팔에 안아 침대까지 죽 데려가서는, 어린아이처럼 거기 눕혀 주었다.
토요일은 한 시간 일찍 시작되고 프랑수아즈의 손길을 앗아 가는 탓에 고모에게는 다른 날보다 더디 흘러갔지만, 그럼에도 그날이 지나고 새 한 주가 시작되는 순간이면 고모는 그날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으니, 그것은 그녀의 여리고 병든 몸이 아직 견뎌 낼 수 있는 온갖 새로움과 기분 전환을 담고 있는 무엇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이따금 훨씬 더 큰 변화를 갈망하지 않았다거나, 지금 가진 것과는 다른 무언가를 목말라하는 그 별난 시간을 겪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럴 때면, 기력이나 상상력이 모자라 제 안에서 아무런 추동력도 일으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시계가 시각을 알리거나 우편배달부가 문을 두드릴 때, 소식을(설령 나쁜 소식일지라도), 어떤 감정을(설령 슬픔일지라도) 애타게 바라며 부르짖는다. 그럴 때면, 번영이 옆으로 치워 둔 하프처럼 잠재워 놓은 심금은, 설령 그것을 끊어 놓을 난폭한 손일지라도 어떤 손에 다시 튕겨져 울리기를 애타게 바란다. 그럴 때면, 제 충동을 억누르고, 제멋대로의 욕망과 그에 따르는 고통에 몸을 내맡길 권리를 단념하는 데 그토록 힘겹게 다다른 의지는, 자신을 이끄는 고삐를 강압적이고, 어쩌면 잔혹할지도 모를 상황의 손에 기꺼이 내던져 버리고 싶어 한다. 물론, 조금만 힘을 써도 완전히 바닥나 버리는 고모의 기력은 그녀의 휴식이라는 못 속으로 한 방울 한 방울씩만 되돌아왔으므로, 그 저수지는 아주 더디 채워졌고, 다른 사람들은 날마다의 활동으로 써 버리지만 그녀로서는 어찌 쓸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아니 결코 정하지 못하는 그 남는 기력에 이르기까지는 몇 달이 지나가곤 했다. 그리고 나는 의심치 않는데, 바로 그럴 때면, 마치 기분 전환 삼아 감자를 베샤멜 소스에 곁들여 먹고 싶다는 바람이 결국은 그녀가 결코 “물리는” 법 없던 그 으깬 감자가 날마다 다시 나오는 데서 얻는 즐거움에서 빚어지듯이, 그녀는 (그토록 의지하던) 그 단조로운 나날의 쌓임에서, 순식간에 일어나되 그녀에게 좋으리라 알면서도 그런 자극 없이는 결코 결심하지 못하던 변화 하나를 단번에 실행에 옮기도록 그녀를 다그칠 만큼은 격렬한, 어떤 집안의 대변동에 대한 간절한 기대를 끄집어내곤 했다. 그녀는 우리를 진심으로 아꼈다. 우리가 때 이르게 세상을 떠난다면 오래도록 우리를 위해 우는 호사를 누렸으리라. 그녀가 “몸이 좋다”고 느끼며 땀도 흘리지 않을 때 찾아드는 소식, 곧 집이 불길에 무너지고 있으며 그 불로 우리 나머지 식구는 이미 모두 죽었고, 머잖아 돌 하나 성한 채로 남기지 않을 그 불이지만 그래도 그녀 자신은 침대에서 곧장 일어나기만 하면 서두르지 않고도 넉넉히 빠져나올 시간이 있으리라는 소식은, 필시 그녀의 꿈을 자주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런 상상은 두 가지 사소한 이점, 곧 오랜 세월 상복을 입고 우리를 향한 애정을 마음껏 음미하게 해 준다는 것과, 짓눌렸으되 의연하고, 다 죽어 가면서도 꼿꼿이 우리의 장례를 치르러 나설 때 온 마을을 경악에 빠뜨린다는 것에 더하여, 무엇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은혜, 곧 지체할 틈도 마음 약해질 여지도 없이 바로 그 순간에 그녀를, 폭포가 있는 그 사랑스러운 미루그랭 농장으로 여름을 지내러 떠나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는 은혜와 어우러졌던 것이다. 이런 일은 한 번도 실제로 일어난 적이 없었기에, 비록 그녀가 혼자 누워 끝없는 혼자 카드놀이에 빠져 있으면서 그런 술책의 성사를 자주 곱씹었을 것이 분명하고 (또 그것이 막상 실현되는 첫 순간부터, 예기치 못한 자잘한 사실들 가운데 첫 번째부터, 재앙 같은 소식의 첫마디부터, 곧 그 울림이 뒷날 결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그 가능성의 논리적 추상과는 무섭도록 다른, 실제의 육체적 죽음의 낙인이 찍힌 온갖 것으로부터, 그녀를 절망에 빠뜨렸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녀는 이따금 제 삶에 흥미를 더하려고, 좀 더 사소한 다른 재난들을 상상하는 쪽으로 되돌아가, 그것들을 열정을 다해 뒤쫓곤 했다. 그녀는 프랑수아즈가 자신의 물건을 훔쳐 왔으며, 확인하려고 덫을 놓아 그 배신자를 현행범으로 붙잡았다는 느닷없는 의심으로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그리고 혼자 카드놀이를 꾸밀 때면 제 패와 상대의 패를 동시에 잡는 버릇대로, 먼저 프랑수아즈의 어설픈 변명을 더듬더듬 늘어놓고는, 이어 어찌나 불같은 분노로 거기에 대꾸했던지, 마침 그런 순간에 그녀에게 들어선 우리 가운데 누구든 땀에 흠뻑 젖고, 두 눈은 이글거리며, 가발이 비뚜로 밀려 이마의 벗어진 자리가 드러난 그녀를 보게 되었다. 프랑수아즈는 필시 옆방에서, 자신을 겨눈 이 신랄한 비아냥을 자주 들었을 텐데, 만일 그것이 순전히 형체 없는 상태로 머물러, 그녀가 반쯤 소리 내어 중얼거림으로써 거기에 더해 준 얼마간의 실체와 실감을 갖추지 못했더라면, 그저 말로 엮는 것만으로는 고모의 감정이 충분히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이불 위의 연극조차 고모를 만족시키지 못해, 그녀는 제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는 것을 보아야만 했다. 그리하여 어느 일요일이면, 온갖 문을 은밀히 닫아걸고서, 프랑수아즈의 정직함에 대한 의심과 그녀를 내쫓겠다는 결심을 욀라리에게 털어놓았고, 또 다른 날이면 욀라리의 불충에 대한 의심을 프랑수아즈에게 털어놓았는데, 그 욀라리에게는 머잖아 대문이 영영 닫히게 될 판이었다. 그러고 며칠이 더 지나면, 가장 최근의 심복에게 진저리를 내고는 그 배신자와 다시 “둘도 없는 사이”가 되었고, 그러는 사이 다음 공연에 앞서 두 사람은 또 한 번 배역을 바꾸어 놓곤 했다. 그러나 욀라리가 이따금 그녀 안에 지펴 놓는 의심은 지푸라기 불에 지나지 않아, 욀라리가 그녀와 한집에 살지 않는 이상 땔감이 없어 이내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의심의 대상이 프랑수아즈일 때는 사정이 아주 달랐으니, 고모는 자신과 한 지붕 아래 프랑수아즈가 있음을 늘 의식하고 있었으되, 침대에서 나섰다가 감기에 걸릴까 두려워 제 의심에 정말로 근거가 있는지 손수 확인하러 부엌으로 내려갈 엄두는 결코 내지 못했다. 그렇게 차츰차츰, 마침내 그녀의 마음은 하루의 매시간, 프랑수아즈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자신에게 숨기고 있는지 알아내려 애쓰는 것 말고는 다른 일이 없게 되었다. 그녀는 프랑수아즈의 낯빛에 스치는 아주 은밀한 움직임이며, 그녀가 하는 말 속의 어떤 모순이며, 그녀가 감추는 듯한 어떤 속셈을 알아채곤 했다. 그러고는 단 한 마디로 그녀에게 정체가 드러났음을 내보였는데, 그 한 마디에 프랑수아즈는 파랗게 질렸고, 고모는 그 말을 가엾은 하녀의 가슴에 박아 넣는 데서 잔혹한 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일요일, 욀라리의 어떤 폭로가, 마치 여태 다져진 길만 따라오던 어떤 새 학문에 뜻밖의 탐구 영역을 느닷없이 열어젖히는 그런 발견들처럼, 고모의 그 가장 고약한 의심조차 그 소름 끼치는 진실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그녀에게 입증해 보였다. “하지만 프랑수아즈야 그걸 알 텐데요.” 욀라리가 말했다. “이제 마님이 그 사람한테 마차까지 주셨으니 말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