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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②

3권 제2부 · 제1장

“아! 얘야, 이렇게 화창하고 볕 좋은 날 바깥바람을 쐬고 싶은데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너무 딱하구나. 네가 나가지 못하게 하니 분해서 우는 거란다.”

그러나 그녀는 눈에 어린 그 고뇌의 빛도, 이마의 땀도, 이내 억눌리는 사지의 발작적 경련도 떨쳐 낼 수는 없었다.

“아무 데도 안 좋은 데 없다. 그저 자리가 편치 않아서 투정하는 거야. 머리가 헝클어진 것 같고, 가슴이 좀 안 좋고, 벽에 부딪혔거든.”

그리고 어머니는, 침대 발치에서 그 고통받는 형체에 못 박힌 듯, 마치 고통에 젖은 그 이마를, 그 속에 사악한 것을 감춘 그 몸뚱이를 시선으로 꿰뚫음으로써 그 사악한 것에 가닿아 그것을 앗아 갈 수 있기라도 할 듯이, 어머니는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엄마, 우리가 엄마를 그렇게 아프게 두지 않을 거예요. 그걸 없앨 무언가를 찾아낼 테니, 잠깐만 참으세요. 엄마, 입 맞추게 해 주세요. 아니, 움직이시면 안 돼요.”

그리고 침대 위로 몸을 숙여, 무릎을 굽히고 거의 바닥에 꿇다시피 하여, 마치 그 겸허함의 행위로써 자기 자신을 바치는 그 열렬한 헌신을 더 잘 받아들여지게 하려는 듯, 어머니는 성합(聖盒)에 담기듯 자기 얼굴에 담긴 자신의 온 생명을 할머니를 향해 낮게 기울였다. 그 얼굴은 도드라진 보조개와 주름살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어찌나 열렬하고, 어찌나 애처롭고, 어찌나 부드럽던지, 그것이 입맞춤의 끌로 새겨진 것인지, 흐느낌의 끌로 새겨진 것인지, 미소의 끌로 새겨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 또한 어머니의 얼굴을 향해 자기 얼굴을 들어 올리려 했다. 그 얼굴은 어찌나 달라졌던지, 필경 그녀가 외출할 만큼 기운이 있었더라도 사람들은 그저 모자에 꽂힌 깃털로나 그녀를 알아보았으리라. 그녀의 이목구비는 조각가의 손에 든 진흙처럼, 다른 모든 것에서 그녀를 떼어 놓는 어떤 안간힘을 다해, 우리로서는 알아볼 수 없는 어떤 특정한 본을 따르려 안달하는 듯 보였다. 이 빚어내는 작업은 이제 거의 끝나 가고 있었으니, 그 과정에서 할머니의 얼굴은 오그라들었으되 동시에 굳어졌다. 그 표면 아래로 뻗은 핏줄은 대리석의 것이 아니라 무언가 더 거친 돌의 것 같았다. 숨쉬기의 곤란함에 끊임없이 앞으로 떠밀리고, 또 그만큼 끊임없이 탈진에 못 이겨 베개로 도로 밀려나면서,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고 야위고 무섭도록 표정이 풍부하여, 원시적인, 거의 선사시대의 조각에 새겨진, 어느 야만의 무덤지기의 그 거칠고 붉게 상기된 자줏빛 절망 어린 얼굴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온 과업이 아직 다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다음으로는 그녀의 저항이 꺾여야 했고, 그녀가 그토록 힘겹게, 그 팽팽한 수축으로 지켜 온 그 무덤에, 그 입구로 들어서야 했다.

어느 성인에게 빌어야 할지 모른다는 그 속담대로의 어떤 순간에, 할머니가 기침과 재채기를 어지간히 해 대는지라, 우리는 어느 친척의 조언을 받아들였는데, 그는 X⸺ 전문의를 부르기만 하면 그가 그런 것쯤은 이틀 만에 씻은 듯 낫게 해 줄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람들은 제 주치의를 두고 곧잘 그런 소리를 하고, 그 벗들은, 프랑수아즈가 늘 신문 광고를 곧이곧대로 믿듯이, 그 말을 곧이듣는다. 전문의는 마치 아이올로스의 가죽부대처럼 자기 다른 환자들의 온갖 감기와 기침을 그득 채운 가방을 들고 왔다. 할머니는 자기 몸을 진찰하게 하기를 딱 잘라 거절했다. 그리고 우리는, 공연히 헛걸음한 그 의사를 생각해서, 우리 코를 하나씩 차례로 들여다보고 싶다는 그의 뜻을 받아들였으니, 실은 그중 어느 것도 아무런 탈이 없었건만. 그런데 그의 말로는, 탈이 있다는 것이었다. 두통이든 복통이든, 심장병이든 당뇨병이든, 무엇이든 다 잘못 진단된 코의 병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 하나하나에게 말했다. “저 작은 각막을 한 번 더 봐야겠소. 너무 미루지 마시오. 뜨거운 바늘로 금방 없애 드리리다.” 우리는 물론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문했다. “무얼 없앤다는 거지?” 한마디로, 우리 코는 저마다 병들어 있었다. 그의 잘못은 오직 현재 시제를 쓴 데 있었다. 이튿날이 되자 그의 진찰과 임시 처치가 효험을 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 콧물감기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거리에서 기침으로 몸을 반으로 접은 내 아버지와 마주치자, 그는 무지한 문외한이라면 그 발작을 자기 처치 탓으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었다. 그는 우리가 이미 병들어 있던 바로 그때에 우리를 진찰했던 것이다.

할머니의 병은 여러 사람이 넘치거나 모자라는 동정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것은 이런저런 사람이 우리로서는 미처 짐작도 못 했던 정황의, 혹은 실은 교분의 연결 고리를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게 한 그 우연 못지않게 우리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집으로 안부를 물으러 찾아든 사람들이 보인 관심의 표시는, 그때까지 우리가 할머니 방에서 받던 그 무수한 괴로운 인상들에서 미처 충분히 떼어 내지 못했던 이 병의 위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었다. 전보로 부름을 받고도 할머니의 자매들은 콩브레를 떠나기를 마다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훌륭한 실내악 연주회를 열어 주는 어느 음악가를 찾아냈던 터라, 그 연주를 듣는 편이 병자의 머리맡에서보다 더 나은 사색의 양식을, 아무리 좋게 말해도 그 형태가 유별난 어떤 우수 어린 고양을 찾을 수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사즈라 부인은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으나, 그 어조는 (파혼의 원인이 그녀의 드레퓌스주의였던) 갑작스러운 약혼 파기로 누군가와 영영 갈라선 사람의 그것이었다. 반면에 베르고트는 날마다 찾아와 나와 여러 시간을 보냈다.

그는 늘 얼마간 정기적으로 같은 집에 드나드는 버릇을 붙여, 그리하여 그곳에서는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게 해 두곤 했다. 그러나 예전에 그것은 그가 방해받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면, 이제는 그가 이야기하기를 요구받지 않은 채 마음 내키는 만큼 오래도록 잠자코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몹시 아팠던 까닭이다. 어떤 이들은 할머니처럼 단백뇨증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설로는 종양이 있다고 했다. 그는 나날이 눈에 띄게 쇠약해져 갔다. 우리 집 층계를 올라오는 것도 힘겨워했고, 내려가는 것은 더욱 힘겨워했다. 난간을 붙잡고 있으면서도 그는 자주 발을 헛디뎠으니, 나는 그가, 바깥출입하는 버릇을, 바깥출입할 능력을 아예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지 않았더라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리라 믿는다. 그리 오래지 않은 전에 내가 그토록 기민한 모습으로 보았던 그 “수염을 조금 기른 그 사람”이 말이다. 그는 이제 완전히 눈이 멀었고 말조차 자주 막혔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정반대의 과정을 밟아, 스완 부인이 그것을 퍼뜨리려는 그 수줍은 애씀을 후원하던 시절에는 몇몇 문인들에게만 알려져 있던 그의 작품 전체가, 이제는 만인의 눈앞에서 그 몸집과 힘을 키워, 일반 대중 사이에서 남다른 확산력을 얻게 되었다. 물론 대개의 통례란, 작가가 유명해지는 것은 죽은 뒤에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가는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 아직 이르지 않은 죽음을 향해 더디게 나아가는 동안에, 자기 작품이 명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죽은 작가는 적어도 아무런 수고 없이 명성을 누릴 수 있다. 그 이름의 광휘는 그 무덤 위의 돌에 막혀 그친다. 영원한 잠의 귀먹음 속에서 그는 영광에 시달리지 않는다. 그러나 베르고트에게는 그 대비가 아직 온전하지 못했다. 그는 그 소란에 시달릴 만큼 아직 존재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 비록 힘겹게나마 움직이고 있었고, 그러는 동안 그의 책들은, 사랑스럽지만 그 격정적인 젊음과 시끌벅적한 즐거움이 사람을 지치게 하는 딸들처럼 그의 둘레를 뛰놀며, 날이면 날마다 그의 바로 그 머리맡으로 새로운 찬미자들의 무리를 실어 왔다.

그가 이제 우리에게 하기 시작한 방문은 내게는 여러 해 늦게 찾아온 것이었으니, 나는 더는 예전만큼 그를 흠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명성이 자라나는 것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의 작품이 온전히 이해되고 성공을 거두는 일이란, 아직 무명인 또 다른 작가의 작품이 더 까다로운 어떤 이들의 마음속에서, 거의 추종받기를 그친 옛 숭배를 대신할 새로운 숭배를 심어 놓기 시작한 뒤에야 이루어지는 법이다. 내가 끊임없이 다시 읽던 베르고트의 책들에서 그의 문장은 마치 나 자신의 생각처럼, 내 방의 가구며 거리의 마차들처럼 내 눈앞에 또렷이 떠올랐다. 그 모든 세부가 아주 손쉽게 보였으니, 어쩌면 늘 보아 오던 바로 그 모습 그대로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이제 익히 보아 온 그 모습으로는 보였다. 그런데 근래에 한 새로운 작가가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는데, 거기서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가 내게 그것들을 이어 주던 관계와 어찌나 달랐던지 나는 그가 쓴 것을 거의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호스들은 도로의 말끔한 손질에 감탄했다” (여기까지는 단순했고, 나는 그 도로를 따라 그를 매끄럽게 좇아갔다) “그 도로는 브리앙과 클로델로부터 오 분마다 출발했다.” 그 대목에서 나는 이해하기를 그쳤으니, 나는 어떤 장소의 이름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대신 어떤 사람의 이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문장이 잘못 지어진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다다르는 데 필요한 힘과 능력이 모자란 것은 나 자신임을 느꼈다. 나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여, 사물들을 그 새로운 관계 속에서 보게 될 그 꼭대기로 기어오르려 이를 악물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매번 문장을 절반쯤 지나고 나면, 나는 다시 굴러떨어지곤 했으니, 훗날 내가 군에 들어갔을 때 “다리사다리”라 불리는 훈련을 해 보려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새 작가에게, 체조에서 한 번도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는 서투른 소년이 자기보다 더 날랜 다른 소년을 지켜볼 때 느끼는 그 흠모를 느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베르고트에게 예전만큼의 흠모를 느끼지 않게 되었으니, 그 명료함이 이제 내게 부족한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프로맹탱이 그린 그림 속의 사물은 아주 손쉽게 알아보면서도, 르누아르가 그린 것은 도무지 알아보지 못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취향과 안목이 있는 이들은 오늘날 르누아르가 지난 세기의 위대한 화가 가운데 하나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 그들은 ‘시간’이라는 요소를, 그리고 르누아르가 위대한 예술가로 떠받들어지기까지 이번 세기에 접어들도록 숱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렇게 인정받는 데 성공하려면, 독창적인 화가, 독창적인 작가는 안과 의사들이 택하는 방식을 따른다. 그들이 자기 그림으로, 혹은 자기 산문으로 우리에게 베푸는 그 치료의 과정은 늘 우리에게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이 끝날 때 그 시술자는 우리에게 말한다. “자, 이제 보시오!” 그러면, 보라,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그것은 단번에 영영 창조된 것이 아니라, 독창적인 예술가가 태어날 때마다 그만큼 새로이 창조된다) 옛 세계와는 전혀 다르게, 그러나 더없이 또렷이 우리 눈에 나타난다. 거리에는 여자들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지나가니, 그들이 르누아르이기 때문이요, 우리가 한사코 여자로 보기를 마다하던 그 르누아르풍 여인들이기 때문이다. 마차들도 르누아르이고, 물도, 하늘도 그러하다. 우리는 그 숲으로 산책을 나가고 싶어지니, 그 숲은 우리가 처음 보았을 때는 세상 어떤 것 같았으되 결코 숲 같지는 않았던, 이를테면 헤아릴 수 없는 색조로 짜였으나 정작 숲에 어울리는 색조만은 빠진 어느 태피스트리 같았던 저 다른 숲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방금 창조된, 새롭고도 스러지기 쉬운 우주다. 그것은 독창적 재능을 지닌 새로운 화가나 작가가 다음번 지질학적 대격변을 재촉할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내 애정 속에서 베르고트의 자리를 차지한 이 작가는, 그 연상들의 부조리함이 아니라 새로움으로써 나를 지치게 했으니, 그 연상들은 더할 나위 없이 조리 있었건만 내 정신이 그것을 좇도록 길들여지지 못했던 것이다. 언제나 똑같은 지점에서 내가 손잡이를 놓쳐 버림을 느꼈다는 사실은, 내가 늘 기울여야 했던 그 노력들에 어떤 공통된 성격이 있음을 가리켰다. 게다가 천 번에 한 번, 내가 그 작가를 문장 끝까지 좇는 데 정말로 성공하고 나면, 거기서 내가 본 것은 언제나, 오래전 베르고트를 읽으며 찾아냈던 것과 비슷한 어떤 해학이요, 어떤 진실이요, 어떤 매력이었으니, 다만 한결 더 흐뭇한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내가 그의 후계자가 빚어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과 같은 세계의 재구성을, 다름 아닌 베르고트 자신이 나를 위해 이룩해 준 것이 그리 여러 해 전의 일도 아니라고. 그러다가 나는 급기야, 예술은 호메로스의 시대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고 하면서 끊임없이 진보하는 과학과 늘 구별을 짓곤 하는 우리의 그 구별에 과연 어떤 진실이 있는 것인지 자문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도리어 예술도 이 점에서는 과학과 같은 것인지도 몰랐다. 새로운 작가마다 내게는 자기 바로 앞선 이의 단계를 넘어 더 나아간 것처럼 보였으니, 이십 년 뒤에 내가 오늘의 이 신인을 힘들이지도 애쓰지도 않고 좇을 수 있게 될 때, 또 다른 이가 나타나, 그가 다가오면 이 신인 또한 이번에는, 자기의 등장이 베르고트를 몰아넣었던 그 망각의 변두리로 밀려나지 않으리라고 내가 어찌 장담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에게 그 새로운 작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나에게 그 작가에 대한 반감을 심어 주었는데, 그의 예술이 거칠고 안이하며 공허하다고 말했을 때보다도, 그를 직접 본 적이 있는데 (닮은 정도가 어찌나 심했던지) 하마터면 블로크로 착각할 뻔했다고 말했을 때 더욱 그러했다. 그 순간부터 내 친구의 이목구비가 인쇄된 지면 위에 겹쳐 떠올랐고,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쓸 아무런 의무도 느끼지 못했다. 베르고트가 그를 내게 헐뜯었다면,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성공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의 작품을 몰랐던 탓이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거의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그의 사유의 대부분은 오래전에 그의 두뇌에서 그의 책들로 옮겨 가 버렸다. 그는 마치 외과 수술로 그것들을 뽑아내기라도 한 듯 여위어 있었다. 그의 생식 본능은, 이제 그가 자신의 거의 모든 생각에 독립된 존재를 부여해 버린 마당이라, 더 이상 그를 어떤 활동으로도 몰아가지 않았다. 그는 회복기 환자의, 해산한 여인의 식물 같은 삶을 살았다. 그의 아름다운 눈은 움직임 없이, 어렴풋이 멍한 채로, 바닷가에 누워 막연한 몽상 속에서 부서지는 잔물결 하나하나만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처럼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예전에 내가 느꼈을 법한 것보다 덜 흥미롭다 해도, 나는 그 점에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워낙 습관의 동물이어서, 가장 단순한 습관이든 가장 정교한 습관이든 일단 몸에 배면 얼마 동안은 그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이 되었다. 무엇이 그를 맨 처음 우리 집에 오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뒤로 날마다 그가 온 것은 그저 그 전날에도 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카페에라도 가듯 우리 집에 왔는데,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도록, 그리고 그 자신이 아주 드물게나마 말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요컨대 이토록 부지런한 방문에서 어떤 결론을 끌어내려 한다면, 그의 행동에서 그가 우리의 근심에 공감하려는 마음이 동했다는 표시나, 그가 나와 함께 있기를 즐긴다는 표시를 찾아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병상에 누운 이에게 바치는 경의로 여겨질 만한 모든 것에 예민한 내 어머니에게 어김없이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날마다 어머니는 나에게 일렀다. “그분께 고맙다는 인사 정중히 하는 것 잊지 말아라.”

우리에게는 또한, 화가의 정부가 그림 그리는 짬짬이 화실로 날라 오는 다과와도 같은 은근한 여성적 배려로서, 남편이 직업상 우리에게 베푸는 것에 정중히 덧붙는 보탬으로, 코타르 부인의 방문이 있었다. 그녀는 자기 집 “몸종”을 우리에게 내주겠다고, 혹 우리가 남자 하인을 원한다면 온 동네를 “뒤져서라도” 구해 주겠다고 제의하러 왔고, 우리가 사양하자 무엇보다도 이것이 우리 쪽의 한낱 “핑계”, 곧 그녀의 세계에서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짓 구실을 뜻하는 그 말이 아니기를 정말 바란다고 했다. 그녀는 집에 있을 때는 결코 환자 이야기를 하지 않는 교수님이, 마치 앓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도 되는 양 그 일로 슬퍼하고 있다고 우리에게 장담했다. 설령 그것이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남편들 가운데 가장 부실하면서도 가장 자상한 이의 고백치고는 지극히 사소한 동시에 상당한 고백이었으리라는 점을, 우리는 때가 되면 보게 될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친절하면서도, 그것이 담긴 형식(더없이 높은 지성과 더없이 따뜻한 공감, 그리고 보기 드문 표현의 묘가 어우러진 것이었다) 덕분에 한없이 더 가슴을 울린 위로가, 뤽상부르 세습대공으로부터 나에게 전해졌다. 나는 발베크에서 그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는 이모 가운데 한 사람인 뤽상부르 대공비를 찾아왔던 것이고, 그 자신은 그 무렵 한낱 나사우 백작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몇 달 뒤 또 다른 뤽상부르 대공비의 매력적인 딸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어마어마한 제분소를 소유한 어느 대공의 외동딸이었기에 대단한 부자였다. 이에 자식이 없고 조카 나사우를 끔찍이 아끼던 뤽상부르 대공은, 그 젊은이를 자신의 후계자로 선언하는 데 대해 의회의 승인을 얻어 냈다. 이런 종류의 모든 결혼이 그러하듯, 신부가 지닌 재산의 출처는 걸림돌인 동시에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했다. 나는 이 나사우 백작을 내가 만난 가장 인상적인 젊은이 가운데 하나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때 이미 그는 약혼녀를 향한 어둡고도 타오르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었다. 할머니가 앓는 동안 그가 날마다 나에게 써 보낸 편지들에 나는 깊이 감동했고, 어머니 자신도 감정이 북받쳐, 당신 어머니의 표현 하나를 슬프게 인용했다. “세비녜라도 이보다 잘 쓰지는 못했을 게다.”

엿새째 되던 날 어머니는 할머니의 간청에 못 이겨 잠시 곁을 떠나 눕는 척했다. 나는 (할머니가 잠들 수 있도록) 프랑수아즈가 아주 가만히 있으면서 움직여 할머니를 깨우지 않기를 바랐다. 내 간곡한 부탁에도 그녀는 일어나 방을 나갔다. 그녀는 진심으로 할머니를 위했다. 그 섬뜩한 통찰과 타고난 비관으로 그녀는 할머니를 가망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녀는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온갖 정성을 다 바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마침 집에 전기공이 와 있다는 전갈이 온 참이었다. 그는 그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 가운데 하나였고, 회사의 우두머리는 그의 처남이었으며, 그는 여러 해 동안 일해 온 이 건물 전체에서, 특히 쥐피앙에게 크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할머니가 앓기 전에 부르기로 되어 있던 이였다. 내 생각에는 그를 그냥 돌려보내거나 기다리라고 해도 될 성싶었다. 그러나 프랑수아즈의 예법으로는 그런 일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 훌륭한 사람에 대한 결례가 될 터였고, 할머니의 상태 따위는 대번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십오 분을 기다리다 못해 참을성을 잃고 부엌으로 그녀를 찾으러 갔을 때, 나는 그녀가 뒤 계단 층계참에서 그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문은 열려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 가운데 누가 나타나더라도 그들이 마침 작별 인사를 나누는 중이라고 여기게 하는 이점이 있는 반면, 온 집 안에 끔찍한 외풍을 들이는 결점도 있는 장치였다. 프랑수아즈는 그 인부에게서 몸을 떼어 냈는데, 그러면서도 급한 김에 잊었던 그의 아내와 처남에게 보내는 갖가지 안부를 그의 등 뒤로 외쳐 내려 보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의에 모자라는 법이 없어야 한다는 전형적인 콩브레식 결벽, 프랑수아즈가 국제 정치에까지 확장하던 그 결벽이었다.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사회 현상의 방대한 규모가 인간 영혼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 절호의 기회를 준다고 상상한다. 그들은 오히려, 단 하나의 인격의 밑바닥을 헤아려 봄으로써 비로소 그 현상들을 이해할 가망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아야 마땅하다. 프랑수아즈는 콩브레의 정원사에게 전쟁이야말로 가장 무분별한 범죄이며 목숨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고 수천 번도 더 말했었다. 그런데 정작 러일 전쟁이 터지자, 그녀는 차르를 떠올리며, 우리가 “가엾은 러시아 사람들”을 돕기 위해 함께 참전하지 않은 것을 못내 부끄러워했다. “우리가 그이들하고 동맹을 맺었으니 말이에요” 하고 그녀는 우리에게 상기시켰다. 그녀는 이런 방관이 늘 “우리에 대해 그렇게 좋은 말을 해 주던” 니콜라이 2세에게 그다지 예의 바르지 못한 처사라고 느꼈다. 그것은 같은 예법의 필연적 귀결이었으니, 그 예법은 소화를 “버려 놓을” 줄 뻔히 알면서도 쥐피앙이 주는 브랜디 한 잔을 거절하지 못하게 하던 바로 그것이었고, 또한 이제 할머니가 죽음의 문턱에 누워 있는 마당에, 프랑스가 일본에 대해 중립을 지킴으로써 저지른다고 그녀가 여기던 바로 그 옹졸함을, 만일 그토록 애를 먹은 이 착한 전기공에게 몸소 가서 사과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자신에게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던 바로 그 예법이었다.

우리로서는 다행스럽게도, 프랑수아즈의 딸이 몇 주 동안 떠나 있어야 했던 덕에 우리는 곧 그녀에게서 벗어났다. 콩브레 사람들이 환자의 가족에게 으레 건네는 판에 박힌 충고, 곧 “그이를 잠시 어디로 데려가 보지 그랬어요… 바람도 좀 쐬고 말이죠… 입맛도 돋우고… 뭐 그런 거요?”에다, 그녀는 자기 나름의 상상 속에서 특별히 지어낸, 거의 유일무이한 착상을 덧붙여, 우리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되풀이했는데, 마치 거듭 우겨 대면 사람들의 두꺼운 머리통을 뚫고 들어가기라도 하리라 기대하는 듯했다. “그 어른은 처음부터 근본적으로 몸을 추슬렀어야 했어요.” 그녀는 그저 그것이 “근본적”이기만 하다면 이 요법 저 요법 가운데 어느 하나를 특별히 권하지는 않았다. 정작 프랑수아즈 자신은, 우리가 할머니에게 약을 그다지 많이 쓰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녀 생각으로는 약이란 위장을 망칠 뿐이었으므로 그 점은 무척 다행스러워했지만, 동시에 그만큼 더 굴욕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녀에게는 프랑스 남부에, 형편이 비교적 넉넉한 사촌들이 있었는데, 그 집 딸은 한창 자라날 무렵 병이 나 스물셋에 죽었다. 몇 해 동안 그 부모는 딸이 숨을 거둘 때까지 약값에, 이 의사 저 의사에게, 이 온천장 저 온천장으로의 순례에 재산을 탕진했다. 그런데 이제 이 모든 것이 프랑수아즈에게는, 그 부모에게 있어 마치 경주마나 시골 별장을 소유한 것과도 같은 일종의 사치처럼 여겨졌다. 그들 자신도 비탄 한가운데서 그토록 아낌없이 쏟아부었다는 생각에서 어떤 뿌듯함을 얻었다.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재산인 자식이 남지 않았지만, 자기들이 이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이들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딸을 위해 애썼노라고 남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은 즐거워했다. 그 가엾은 처녀가 몇 달에 걸쳐 하루에도 몇 번씩 쬐어야 했던 자외선이 무엇보다도 그들을 흐뭇하게 했다. 아버지는 그 모든 영예에 슬픔 속에서도 우쭐해져서, 때로는 자기 딸을, 그 애를 위해 자기가 파산이라도 한 오페라의 명배우 이야기하듯 말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수아즈도 이토록 풍성한 무대 효과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할머니의 병상을 두른 것은 그녀 눈에 다소 초라해 보였고, 차라리 어느 시골 소극장 무대에나 어울릴 병치레 감으로 비쳤다.

할머니의 요독증이 눈에까지 미치는 때가 왔다. 며칠 동안 할머니는 전혀 보지 못했다. 그 눈은 결코 장님의 눈 같지 않았고, 예전과 똑같이 그대로였다. 할머니가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오직 어떤 반가움의 미소가 지닌 낯섦으로 미루어 알 수 있었다. 누가 문을 여는 순간부터 그 사람이 다가와 손을 잡을 때까지 할머니가 짓던 그 미소는, 너무 일찍 시작되어 입술 위에 판에 박힌 채 붙박여 있으면서도, 언제나 정면을 향하고 사방 어디에서나 보이려고 애쓰는 미소였으니, 이는 할머니가 더 이상 시각에 기대어 그 미소를 조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알맞은 순간과 올바른 방향을 가늠하고, 미소를 초점에 맞추며, 들어온 사람의 위치나 표정의 변화에 따라 미소를 달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미소는, 방문객의 주의를 조금이나마 그 미소에서 딴 데로 돌려 줄, 눈 속에 곁들여진 미소도 없이 홀로 동떨어져 있었기에, 그 어색함 속에서 부당하게 큰 비중을 띠어, 지나치게 다정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윽고 할머니의 시력은 온전히 회복되었으나, 그 떠도는 병이 눈에서 귀로 옮아갔다. 며칠 동안 할머니는 귀가 먹었다. 그리고 미처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들은 누군가가 갑자기 들어와 자기를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워, 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누워 있으면서도 온종일 문 쪽으로 홱홱 고개를 돌리곤 했다. 그러나 그 목의 움직임은 서툴렀으니, 소리를 실제로 보지는 못할지언정 눈으로 듣도록, 이렇게 기능이 뒤바뀌는 일에 며칠 사이에 적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통증은 덜해졌으나 말의 장애는 더 심해졌다. 우리는 할머니가 하는 말을 거의 다 되풀이해 달라고 청해야 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