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이제 할머니는, 우리가 더 이상 자기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하려는 시도를 아예 그만두고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나를 언뜻 보면 할머니는 갑자기 숨을 쉴 수 없게 된 사람처럼 발작하듯 흠칫했지만, 알아들을 만한 소리는 하나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자신의 순전한 무력함에 짓눌려, 할머니는 머리를 베개 위로 떨구고 침대에 반듯이 뻗은 채, 대리석 얼굴처럼 근엄한 얼굴을 하고, 손은 홑이불 위에 움직임 없이 놓아두거나 손수건으로 손가락을 닦는 따위의 순전히 물리적인 동작에만 쓰였다. 할머니는 생각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러다 끊임없는 동요의 상태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쉴 새 없이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우리는 할머니가 자기가 얼마나 마비되었는지 알아차릴까 두려워, 할 수 있는 한 그것을 못 하게 말렸다. 어느 날 잠시 할머니를 혼자 두었을 때, 나는 잠옷 바람으로 마룻바닥에 서서 창문을 열려고 하는 할머니를 발견했다.
언젠가 발베크에서, 바다에 몸을 던진 어느 과부가 제 뜻과 달리 구조된 일이 있었을 때, 할머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어쩌면, 우리를 둘러싼 유기적 생명의 신비, 그럼에도 그토록 모호한 그 신비 속에서 때때로 우리가 어렴풋이 알아차리는, 그리고 그 안에 우리 자신의 미래가 예시되어 있는 듯한 그런 예감 가운데 하나에 이끌린 것이었으리라). 스스로 택한 죽음에서 어느 가엾은 사람을 억지로 떼어 내어 살아 있는 순교로 되돌려 놓는 것만큼 잔인한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우리는 마침 제때에 할머니를 붙잡았다.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거의 사납다 할 만큼 저항하다가, 이윽고 제압되어 억지로 안락의자에 앉혀지자, 죽기를 바라는 것도 살아 있음을 한탄하는 것도 그치고, 얼굴은 다시 무표정을 되찾았으며, 누군가 어깨에 걸쳐 준 털외투에서 잠옷에 묻은 털을 힘겹게 하나하나 떼어 내기 시작했다.
눈빛은 완전히 달라졌다. 자주 불안하고 애처롭고 초췌한 그 눈빛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눈빛이 아니라, 노망 난 노파의 뚱한 표정이었다…
머리를 매만져 드리고 싶지 않으시냐고 거듭 물은 끝에, 프랑수아즈는 그 청이 할머니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스스로 믿게 되었다. 그녀는 솔과 빗, 오드콜로뉴, 화장 가운으로 무장했다. “아메데 부인, 이만한 걸로는 탈 안 나요” 하고 그녀는 혼잣말했다. “그저 빗겨 드리는 것뿐인걸요. 아무리 편찮으셔도 머리 한번 곱게 빗는 게 대수인가요.” 다시 말해, 남이 제 만족을 위해 머리를 빗겨 줄 수 없을 만큼 기력이 없는 사람은 결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방에 들어섰을 때, 나는 프랑수아즈의 잔인한 두 손 사이에서, 마치 할머니를 건강으로 되돌려 놓기라도 하는 양 더없이 행복해하는 그 손길 아래, 빗질을 견뎌 낼 힘조차 없는 성긴 백발의 가느다란 비 같은 머리카락 밑으로, 억지로 놓인 자세를 지탱하지 못한 채 순전한 쇠약과 고통의 경련이 번갈아 이는 끊임없는 소용돌이 운동으로 이리저리 구르는 머리를 보았다. 나는 프랑수아즈가 일을 끝낼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지만, 감히 “그만하면 됐어”라고 일러 그것을 재촉하지는 못했으니, 그녀가 내 말을 듣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머니가 머리가 마음에 들게 되었는지 볼 수 있도록 프랑수아즈가 천진한 잔혹함으로 거울을 가져왔을 때만은, 나는 억지로라도 끼어들었다. 나는 우리가 조심스레 거울 없이 지내게 해 온 할머니가, 그녀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낯선 얼굴을 어쩌다 언뜻이라도 보기 전에, 제때에 그것을 낚아채는 데 성공한 것을 그 순간만은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아, 잠시 뒤 그토록 모질게 다루어진 그 사랑스러운 이마에 입 맞추려고 몸을 숙였을 때, 할머니는 어리둥절하고 미심쩍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 집 의사에 따르면, 이것은 할머니의 뇌 울혈이 심해지고 있다는 징후였다. 어떻게든 그것을 덜어 주어야 했다.
코타르는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프랑수아즈는 처음에 “정혈(淨血) 부항”을 붙이리라 기대했다. 그녀는 이 치료법의 효과를 내 사전에서 찾아보았으나 아무런 항목도 발견하지 못했다. 설령 “정혈”이 아니라 “사혈(瀉血)”이라고 말했더라도 역시 이 낱말을 찾지 못했을 터인데, 그녀는 그것을 ㅅ 항목에서 찾아보기를 ㅈ 항목에서보다 조금도 더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 “정혈”이라고 말하기는 했으나, 정작 쓸 때는 (따라서 인쇄된 낱말도 그러하리라 여겨) “엇정혈”이라고 적었던 것이다. 코타르는, 그녀를 실망시키게도, 큰 기대는 없이 거머리 쪽을 택했다. 몇 시간 뒤 내가 할머니 방에 들어갔을 때, 목과 관자놀이와 귀에 달라붙은 자그마한 검은 뱀들이, 메두사의 머리에서처럼 피에 젖은 머리채 사이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창백하고 평온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그 얼굴에서 나는, 예전 그대로의(어쩌면 앓기 전보다도 더 지성의 빛으로 가득한, 왜냐하면 말을 할 수도 움직여서도 안 되었기에 할머니는 오직 눈에만 자기 생각을, 한때는 우리 안에서 엄청난 자리를 차지하며 꿈에도 몰랐던 보물을 안겨 주다가도 또 한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줄어들었다가 몇 방울의 피를 뽑아냄으로써 마치 자연발생처럼 되살아나기도 하는 그 생각을 맡겼으므로) 활짝 열린, 빛나고 고요한 할머니의 그 아름다운 눈을 보았다. 기름을 담은 두 웅덩이처럼 부드럽고 촉촉한 그 눈에서, 다시 지펴져 이제 타오르는 불이 병자의 얼굴 앞에 되찾은 우주를 비추어 냈다. 할머니의 평온함은 더 이상 절망의 지혜가 아니라 희망의 지혜였다. 할머니는 자신이 나아지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조심하려, 움직이지 않으려 했으며, 내 손을 가만히 눌러 쥐면서, 자기가 한결 나아졌음을 내가 알도록 오직 매혹적인 미소 하나만을 나에게 선사했다.
나는 할머니가, 어떤 짐승들은 만지기는커녕 보기만 해도 역겨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가 더 높은 유익을 생각해서 거머리를 견디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프랑수아즈가, 아기를 어르며 까르르 웃게 하려고 짓는 그 웃음을 지으며 할머니에게 “어머, 마님 몸에 조그만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것 좀 보세요” 하고 되풀이하는 것을 듣자니 나는 화가 치밀었다. 게다가 이것은 우리 환자를 마치 노망 든 어린애 다루듯 존중이 모자라게 대하는 짓이었다. 그러나 스토아 철학자의 고요한 의연함을 띤 할머니의 얼굴은 그 말을 듣는 기색조차 없었다.
아! 거머리를 떼어 내기가 무섭게 울혈이 되돌아왔고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할머니가 이토록 위중한 이 고비에 프랑수아즈가 노상 자취를 감추는 것을 보고 놀랐다. 실은 그녀가 상복을 한 벌 맞추어 놓고서 재봉사를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다수 여인의 삶에서는 무엇이든, 심지어 가장 큰 슬픔조차도 결국 “가봉(假縫)”의 문제로 귀결되고 만다.
며칠 뒤, 내가 자리에 누워 잠들어 있던 이른 새벽, 어머니가 나를 부르러 왔다. 큰 위기의 순간에, 슬픔에 짓눌린 사람들이 남의 아주 사소한 불편에까지 보이는 그 애틋한 배려로,
“자는 걸 깨워 미안하구나” 하고 어머니가 말했다.
“안 자고 있었어요” 하고 나는 잠에서 깨며 대답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행위가 우리 안에 일으키는 그 커다란 변화는, 우리를 또렷한 의식의 삶으로 들여보내는 데 있다기보다는, 우리 정신이 바다의 유백색 심연에서처럼 쉬고 있던 그 또 다른, 한결 더 흐릿한 빛에 대한 온갖 기억을 잃게 하는 데 있다. 우리의 지각에서 반쯤 가려진 채, 방금 전까지도 우리가 그 위를 떠돌던 사유의 밀물은, 우리를 충분히 움직이는 상태로 유지시켜 그것을 깨어 있음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실제로 깨어날 때면 기억의 단절이 일어난다. 조금 뒤 우리는 그런 상태들을, 더 이상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기에 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잠든 이의 등 뒤로, 깨어나는 순간 그의 잠 전체를 비추는 저 밝은 별이 빛날 때면, 그것은 그로 하여금 잠깐 동안 이것이 잠든 상태가 아니라 깨어 있는 상태였다고 상상하게 만든다. 덧붙이건대 그것은 유성(流星)이어서, 그 빛이 스러지면서 거짓 존재뿐 아니라 우리 꿈의 겉모습마저 지워 버리고, 깨어난 이로 하여금 고작 “내가 잠들어 있었구나” 하고 혼잣말하게 할 뿐이다.
어머니는, 나를 아프게 할까 두려워하는 듯 더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나를 너무 지치게 하지는 않겠느냐고 물으며, 내 두 손을 어루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가엾은 것, 이제 너를 도와줄 사람은 아빠와 엄마밖에 없단다.”
우리는 병실로 들어갔다. 침대 위에 반원으로 굽은, 할머니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 할머니의 머리카락을 뒤집어쓴 채 그 이불 속에 웅크린 일종의 사나운 짐승이, 헐떡이고 신음하며 경련으로 담요를 들썩이게 하면서 누워 있었다. 눈꺼풀은 감겨 있었는데, 나에게 더 가까운 쪽 눈꺼풀이 아예 떠서라기보다는 제대로 닫히지 않은 탓에, 흐릿하고 막이 낀, 유기적 시각의 어렴풋함과 감추어진 내면의 고통을 함께 비추는 한 줄기 눈이 보였다. 이 모든 몸부림은, 자기가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우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일 거기서 꿈틀거리는 것이 한낱 짐승일 뿐이라면, 할머니는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 나는 이제 얼굴의 나머지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졌으나 그 한쪽 모서리에는 여전히 점 하나가 붙어 있는 그 코의 모양을, 그리고 예전 같으면 담요가 짓누른다는 뜻이었겠으나 이제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는 몸짓으로 자꾸만 담요를 밀쳐 내는 그 손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할머니의 이마를 적셔 줄 식초 탄 물을 조금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것만이 할머니를 시원하게 해 준다고 어머니는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머리카락을 뒤로 밀어 넘기려 애쓰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하인 하나가 문간에서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할머니가 임종의 고비에 이르렀다는 소식이 온 집 안에 들불처럼 번져 있었다. 특별한 때에 하인들의 부담을 덜어 주려고 사람들이 불러들이는 그런 “임시 일손” 가운데 하나가(임종의 자리에 사교 행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게 하는 관행이다) 방금 게르망트 공작에게 현관문을 열어 주었고, 공작은 이제 홀에서 기다리며 나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를 피할 수 없었다.
“여보게, 방금 자네의 비통한 소식을 들었네. 위로의 뜻으로 자네 아버님과 악수라도 나누고 싶은데.” 나는 지금은 아버지를 방해할 형편이 못 된다고 둘러댔다. 게르망트 씨는 마침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려는 참에 불쑥 나타난 방문객 같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우리에게 베푸는 예의의 중요성을 어찌나 절실하게 느꼈던지, 그 때문에 다른 모든 것에 눈이 멀어, 응접실로 안내되기를 고집했다. 대체로 그는 누군가에게 영예를 베풀기로 마음먹은 격식을, 트렁크가 다 꾸려졌든 관이 다 준비되었든 아랑곳없이, 단호히 끝까지 치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사람이었다.
“디욀라푸아는 부르러 보냈나? 아니라고? 그건 큰 실수야. 나한테 부탁만 했어도 내가 오게 했을 텐데. 그 사람은 나한테는 무엇 하나 거절하는 법이 없거든. 전에 샤르트르 공작부인은 거절한 적이 있으면서도 말이야. 알겠나, 나는 나 자신을 왕족 공주보다 위에 놓는 셈이지.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평등하니까.” 그가 이렇게 덧붙인 것은, 할머니가 자기와 대등해진다는 뜻을 넌지시 비치려던 것이 아니라, 아마도 디욀라푸아에 대한 자기 영향력이며 샤르트르 공작부인에 대한 자기 우위를 길게 늘어놓는 것이 그리 점잖은 처사가 못 되리라고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충고는 나를 조금도 놀라게 하지 않았다. 나는 게르망트 사교계에서 디욀라푸아라는 이름이, 저마다의 분야에서 “단연 최고”인 다른 상인들의 이름들 사이에 (다만 약간 더 존경을 담아) 으레 거론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게르망트 태생의 노(老)모르트마르 공작부인은(그런데 말이 나온 김에, 공작부인 이야기만 나오면 어째서 거의 예외 없이 “아무개의 노(老)공작부인”이라 하고, 반대로 아직 젊으면 섬세한 바토풍 어조로 “아무개의 어린 공작부인”이라 하는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위중한 경우에는 눈꺼풀을 내리깔며 거의 기계적으로 “디욀라푸아, 디욀라푸아!” 하고 처방하곤 했으니, 마치 아이스크림 먹을 데를 찾으면 “푸아레 블랑슈”를, 자잘한 과자를 찾으면 “르바테, 르바테”를 일러 주듯 했다. 그러나 나는 사실 아버지가 방금 디욀라푸아를 부르러 보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때, 할머니가 좀 더 편히 숨 쉬도록 도와줄 산소통 몇 개를 애타게 기다리던 어머니가, 게르망트 씨가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홀로 몸소 나왔다. 나로서는, 할 수만 있었다면 그를 숨기고 싶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긴요한 일은 없으며, 이것이 어머니를 더없이 흡족하게 하고 완벽한 신사라는 자기 평판을 지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마음속으로 확신한 그는, 내 팔을 우악스레 붙들고, 내가 습격이라도 당한 듯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하고 거듭 항변하며 버텼는데도, 나를 어머니 쪽으로 끌고 가면서 말했다. “부인께 나를 소개해 주는 크나큰 영광을 베풀어 주시겠소?” 그러면서 마지막 낱말에 이르러서는 손을 조금 늦추었다. 그리고 그 영광이 어머니 쪽 것이라는 게 그에게는 어찌나 분명했던지, 근엄한 표정을 짓는 와중에도 어머니에게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이름을 대는 수밖에 없었고, 그 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굽실굽실 절을 하기 시작해, 막 완전한 인사 예법을 펼치려던 참이었다. 그는 대화를 나눌 셈인 듯했으나, 슬픔에 짓눌린 어머니는 나에게 어서 오라 이르고는 게르망트 씨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방문객으로 맞아지리라 기대했다가 도리어 홀에 홀로 남겨진 그는, 마침 그때 그날 아침 파리에 도착해 소식을 물으러 부랴부랴 우리 집에 온 생루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물러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야, 이거 운이 좋군!” 하고 공작은 신이 나서 외치며, 다시 홀을 가로지르던 내 어머니가 있는 것도 아랑곳없이, 조카의 소맷자락을 붙들어 하마터면 뜯어낼 뻔했다. 생루는, 나에 대한 그의 태도로 보건대, 진심 어린 동정에도 불구하고 나를 마주치지 못한 것을 그리 서운해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삼촌에게 이끌려 집을 나섰는데, 삼촌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할 말이 있어 그 말을 하려고 하마터면 일부러 동시에르까지 내려갈 뻔했던 터라, 그토록 큰 수고를 덜게 된 것에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이거 참, 마당만 가로지르면 여기서 자넬 만나리라고 누가 나한테 말해 줬더라면, 나는 무슨 굉장한 농담인 줄 알았을 걸세. 자네 친구 블로크 씨 말마따나, 이거야말로 완전한 익살극이로군.” 그리고 로베르의 어깨를 붙든 채 계단을 내려가 사라지면서 그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말이야, 내가 교수형 밧줄이라도 만졌던 게 틀림없어. 나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운이 좋단 말이야.” 게르망트 공작이 배려가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남의 처지에 자기를 놓아 볼 줄 모르는 부류의 사람 가운데 하나였으니, 그 점에서 장의사나 대다수 의사와 닮은 데가 있어, 표정을 가다듬고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라고 말한 뒤, 필요하다면 껴안아 주고 좀 쉬라고 권한 다음에는, 임종의 자리나 장례식을, 잠시 억눌렸을 뿐인 쾌활함으로 자기 자신의 자잘한 볼일을 이야기할 상대, 혹은 자기를 다른 누군가에게 소개해 줄 상대, 혹은 돌아갈 때가 되면 마차에 “태워” 줄 상대를 방 안 여기저기서 찾는, 어느 정도 한정된 사교 모임쯤으로밖에 여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게르망트 공작은, 자기를 조카의 품으로 불어다 준 그 “고마운 바람”을 스스로 대견해하면서도, 내 어머니가 자기에게 보인 대접에(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었는데도) 어찌나 놀랐던지, 나중에 가서는, 내 아버지가 상냥한 만큼이나 어머니는 무뚝뚝하더라,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도중 말 그대로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듯한 “멍한 발작”을 일으키더라, 자기가 보기에 어머니는 침착함이라곤 없고 심지어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르겠더라고 떠들어 댔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이런 심리 상태를, 적어도 얼마쯤은 상황 탓으로 돌릴 만반의 채비가 되어 있어, 내 어머니가 그 슬픈 일로 몹시 “심란해” 보이더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미처 다 쓰지 못한 절과 예의의 온갖 찌꺼기를 여전히 온몸에 쟁여 두고 있었으며, 어머니의 슬픔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어찌나 몰랐던지, 장례식 전날 나에게 어머니 기분이라도 풀어 드리려고 뭔가 하고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성직에 몸담은 할머니의 이복 오라비가, 자기 수도회의 수장이 있는 오스트리아로 전보를 쳐, 특별한 특전으로 허락을 얻어 그날 도착했다. 슬픔에 짓눌린 채, 그는 침상 곁에 앉아 책에서 기도문과 명상록을 읽었으나, 그러면서도 송곳 같은 눈길을 병자의 얼굴에서 떼지 않았다. 한번은 할머니가 의식을 잃었을 때, 이 성직자의 슬픔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파 와서 나는 그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 그는 내 연민에 놀란 듯하더니,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고통스러운 명상에 잠긴 사람처럼 두 손을 얼굴 앞에 모았는데, 내가 그러면 더는 자기를 지켜보지 않으리라 여겼는지, 내가 눈여겨보니, 손가락 사이에 자그마한 틈을 남겨 두었다. 그리고 내 시선이 그의 얼굴을 떠나는 순간, 나는 그의 날카로운 눈이, 손 뒤편의 그 유리한 자리를 이용해 내 동정이 진심인지 살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마치 고해실의 어둠 속에 있듯 거기 숨어 있었다. 그는 내가 여전히 보고 있음을 알아채고 이내, 열어 두었던 그 격자창을 꽉 닫아 버렸다. 그 뒤로 나는 그를 다시 만난 적이 있지만, 우리 둘 중 누구도 그 순간을 입에 올린 적은 없다. 내가 그가 나를 엿보고 있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합의된 셈이었다. 사제에게는 정신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예심 판사 같은 구석이 있다. 게다가, 아무리 소중한 벗이라 한들, 그와 우리의 공통된 과거 속에, 그가 틀림없이 잊어버렸으리라 믿는 편이 우리에게 편리한 그런 삽화 하나쯤 없는 벗이 어디 있겠는가?
의사는 할머니에게 모르핀 주사를 놓았고, 숨쉬기를 덜 괴롭게 하려고 산소통을 지시했다. 어머니와 의사, 간호 수녀가 그것들을 손에 들고, 하나가 다 떨어지면 다른 것을 그 자리에 대었다. 나는 몇 분 동안 방을 비웠다. 돌아왔을 때 나는 하나의 기적과 마주하게 되었다. 쉼 없는 웅얼거림을 약음기 낀 악기처럼 반주 삼아, 할머니는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빠르고 가락 있는 길고도 더없이 행복한 노래로 우리를 맞이하는 듯했다. 나는 곧, 이것이 방을 나서기 전에 들었던 쉰 목소리의 그렁거림 못지않게 무의식적이며 그만큼이나 순전히 기계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것은 모르핀이 가져온 어떤 미미한 호전을 얼마간 반영한 것이었으리라. 그러나 주로는 (공기가 기관지를 지나는 방식이 완전히 같지는 않아졌으므로) 호흡의 음역이 바뀐 결과였다. 산소와 모르핀의 이중 작용으로 풀려난 할머니의 숨은 더 이상 힘겨워하지도, 헐떡이지도, 신음하지도 않고, 재빠르고 가볍게, 마치 스케이트 타는 이가 미끄러지듯 그 감미로운 물줄기를 따라 내달렸다. 어쩌면 갈대의 빈 줄기를 지나는 바람처럼 무의식적인 그 숨결에는, 죽음이 다가올 때 놓여나, 이미 느끼기를 그친 정신 속에서도 우리로 하여금 고통이나 행복의 인상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좀 더 인간다운 한숨 몇 가닥이 이 노래에 섞여 들었으리라. 그리고 이 한숨들은 이제, 그 리듬을 바꾸지는 않은 채, 산소를 찾아 가벼워진 가슴에서 솟아올라 더 높이 오르다가 이윽고 잦아들고 다시 새로이 터져 나오는 그 긴 악구에 한결 가락진 억양을 더해 주었다. 그러다 그토록 높은 음정까지 오르고 그토록 힘차게 이어지던 그 노래는, 황홀경 한복판에서 새어 나오는 애원의 웅얼거림과 뒤섞이며, 이따금 흐르기를 멈춘 샘처럼 아주 그쳐 버리는 듯했다.
프랑수아즈는 큰 슬픔에 잠기면,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느끼면서도, 그 욕구가 부질없는 만큼이나 단순한 그 표현의 재주는 지니지 못했다. 할머니의 경우를 아주 가망 없다고 여긴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 안달한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개인적 감상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배춧국을 너무 많이 담아 먹었을 때 “속이 얹힌 것 같아요” 하고 말하던 바로 그 어조로 “어쩐지 몸이 다 이상해요” 하고 되뇌는 것뿐이었으니, 두 감각은 모두 그녀가 여기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토록 서투르게 표현되기는 했어도 그녀의 슬픔은 그럼에도 아주 컸으며, 게다가 콩브레에 붙들려 있는(이 젊은 파리내기 딸은 이제 콩브레를 “캉브루스”라 불렀고 거기서 자기가 점점 “페트루스”해진다고, 곧 화석이 되어 간다고 여겼다) 딸이 장례식에 제때 돌아오지 못하리라는 짐작에 더욱 심해졌으니, 프랑수아즈가 느끼기에 그 장례식은 틀림없이 굉장한 볼거리가 될 것이었다. 우리가 속을 잘 털어놓는 편이 아님을 아는 그녀는, 쥐피앙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주 저녁마다 시간을 비워 두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그녀는 그가 장례식 시각에는 다른 데 볼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적어도 그가 돌아오면 그와 함께 그 일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리라” 마음먹은 것이다.
벌써 며칠 밤째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우리 사촌 하나가 밤을 새우며 낮에도 결코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의 끊임없는 헌신은 끝내 무관심의 가면을 쓰게 되었고, 임종의 자리를 둘러싼 그 끝없는 무료함은 그들로 하여금, 기차간에 오래 갇혀 있을 때면 으레 따라붙는 그런 잡담에 빠져들게 했다. 아무튼 이 사촌은(내 종조모의 조카였다) 그가 마땅히 받을 만하고 또 대체로 누리던 존경만큼이나 강한 반감을 내 안에 불러일으켰다. 그는 큰일이 있을 때면 늘 “불려 오는” 사람이었고, 죽어 가는 이를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던지, 상을 당한 집안에서는 그가 다부진 겉모습과 굵은 목소리, 곤두선 수염에도 불구하고 몸이 약하다는 구실을 붙여, 으레 관례적인 완곡한 말로 부디 묘지에는 오지 말아 달라고 그에게 청하곤 했다. 나는 벌써, 가장 짓누르는 슬픔 한가운데서도 남을 생각하는 어머니가, 그가 그런 자리에서 늘 듣던 말을 이내, 그러나 아주 다른 형태의 말로 그에게 건네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에게 약속해 주세요, ‘내일’은 오지 않으시겠다고요. 부디 ‘그 애를 위해서’요. 적어도 ‘끝까지’ 따라가지는 않으시겠지요. 그게 그 애가 바랐을 일이에요.”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맨 먼저 “그 집에” 당도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까닭에 우리는 모르는 다른 모임에서 그에게 “화환은 사절”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일에 참례하기에 앞서 늘 “모든 일을 챙겨 두었으니”, 그 덕에 “무어라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는 상투적 인사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뭐라고?” 하고 가는귀가 좀 먹은 할아버지가, 사촌이 방금 아버지에게 한 말을 놓치고 큰 소리로 물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하고 사촌이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콩브레에서 소식을 들었다고요. 거긴 날씨가 아주 고약하다는데, 여기는 햇볕이 너무 좋네요, 하고 말한 거예요.”
“그런데도 기압계는 아주 낮은걸” 하고 아버지가 끼어들었다.
“어디 날씨가 나쁘다고 했지?” 하고 할아버지가 물었다.
“콩브레요.”
“아! 그럴 만하지. 여기가 나쁘면 콩브레는 좋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거든. 원, 이런! 콩브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르그랑댕한테 알리는 걸 누가 잊지 않고 챙겼나?”
“예, 그건 염려 마세요, 다 해 두었어요” 하고 사촌이 대답했는데, 걷잡을 수 없이 자라난 수염으로 거뭇해진 그의 두 뺨이 “챙겨 두었다”는 흡족함에 살포시 보조개를 지었다.
이때 아버지가 방에서 급히 나갔다. 나는 갑작스러운 변화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일어났으려니 생각했다. 그저 디욀라푸아 박사가 방금 도착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마치 다음 차례로 무대에 오를 배우처럼 그를 맞으러 응접실로 갔다. 우리가 그를 부른 것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의 법적인 자격으로 확인해 주기 위해서였다. 디욀라푸아 박사는 과연 위대한 의사요 놀라운 교수였을지 모르나, 그가 뛰어났던 이 여러 배역에다 그는 세 번째 배역을 더했으니, 그 배역에서 그는 사십 년 동안 맞수 없이 군림했다. 그것은 따지기 좋아하는 자나 어릿광대나 점잖은 아버지 역만큼이나 독창적인 배역으로, 임종이나 죽음을 확인하러 오는 일이었다. 그의 이름 소리만으로도 그가 그 배역을 떠받칠 위엄이 예고되었고, 하인이 “디욀라푸아 씨 오셨습니다” 하고 알리면, 사람들은 자기가 몰리에르의 연극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태도의 위엄에는,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완벽한 몸매의 유연함이 더해졌다. 그 자체로는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이 애처로운 상황에 걸맞은 절제로 가라앉아 있었다. 프록코트의 검은담비 같은 위엄에 싸여 교수는 방으로 들어섰는데, 꾸밈없이 우수에 젖어, 겉치레로 여겨질 법한 조문의 말은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고, 재치의 규칙을 티끌만큼도 어기지 않았다. 임종의 자리 발치에서 대귀족은 게르망트 공작이 아니라 바로 그였다. 할머니를 진찰하되 지치게 하지는 않도록, 그리고 이 병을 맡아 온 의사에 대한 예의로서 지나칠 만큼 삼가며, 그는 아버지에게 몇 마디를 나직이 건네고, 어머니에게 정중히 절을 했는데, 나는 아버지가 “디욀라푸아 교수님”이라고 소개하고 싶은 것을 애써 참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 방문객은 이미, 소개를 청하는 듯 보이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태도로 방을 나섰는데, 그저 그의 손에 슬며시 쥐여진 봉인된 봉투 하나만을 지녀 갔다. 그는 그것을 보지도 못한 듯했고, 우리 자신도, 우리가 정말 그것을 그에게 건네주었던가 하고 한순간 의아해할 지경이었으니, 그토록 요술쟁이 같은 날렵함으로 그는 그것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했으면서도, 실크 옷깃이 달린 긴 프록코트 차림에 고귀한 연민으로 가득 찬 그 잘생긴 머리를 한, 이 위대한 자문의(諮問醫)로서의 무게를 조금도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 무게를 더하기까지 했다. 그 몸짓의 느긋함과 생기는, 설령 그가 치러야 할 다른 왕진이 백 군데나 있고 기다리는 환자가 있다 하더라도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려 하지 않음을 드러냈다. 왜냐하면 그는 재치와 지성과 친절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걸출한 인물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다른 의사들, 다른 교수들이 그에 맞먹었을지도, 아니 실로 그를 능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지식과 타고난 자질과 품위 있는 몸가짐이 그를 빛나게 하던 그 “역량”은, 그 자리를 대신할 만한 후계자가 없어 이제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머니는 디욀라푸아 씨가 온 것조차 알아채지 못했으니, 할머니가 아닌 모든 것은 어머니에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한다(여기서 앞질러 말하자면), 묘지에서 우리가, 어머니가 초자연적인 환영처럼 겁먹은 듯 무덤으로 다가가 이미 멀리 날아가 버린 어떤 형체의 뒤를 좇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을 보았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노르푸아 영감이 집에도, 성당에도, 여기까지도 왔더구려. 아주 중요한 위원회 회의까지 접고 온 거요. 정말이지 그이한테 한마디 건네야 하오, 그러면 무척 흡족해할 테니” 하고 이르자, 대사가 어머니 앞에 서서 절을 했을 때, 어머니는 그저 눈물기 없는 얼굴을 가만히 숙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 이틀 전에(다시 한 번 앞질러 말하고 나서, 방금 우리가 있던 곳, 할머니가 죽어 가며 누워 있던 그 침대 곁으로 되돌아가자면), 시신을 지키던 밤에, 유령을 아주 안 믿는 것은 아니어서 아주 작은 소리에도 겁을 내던 프랑수아즈가 “저건 마님이신가 봐요” 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내 어머니 안에 두려움이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감미로움을 불러일으켰으니, 어머니는 죽은 이가 돌아와 이따금이라도 아직 자기 곁에 어머니를 있게 해 준다면 더없이 기뻤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그 마지막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처제들이 우리에게 보낸 전보 이야기는 들으셨소?” 하고 할아버지가 사촌에게 물었다.
“그럼요, 베토벤, 그 얘기는 들었지요. 액자에 걸어 둘 만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도 그 애들을 아꼈던 가엾은 내 아내가.” 할아버지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그 애들을 탓해선 안 되지. 둘 다 완전히 미친 것들이야, 내가 늘 말해 왔듯이. 그런데 왜 그러나, 산소를 계속 넣지 않는 건가?”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 하지만 그러면 엄마가 다시 숨쉬기 힘들어하실 텐데요.”
의사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아, 아닙니다! 산소의 효과는 앞으로도 한참은 갈 겁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시작하면 됩니다.”
내게는 그가 죽어 가는 사람을 두고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좋은 효과가 이어질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 할머니를 살려 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산소의 쉭쉭거리는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숨결이 빚어내는 행복한 탄식은 꾸준히 흘러나왔다, 가볍고, 불안하고, 끝맺지 못한 채, 끝없이, 다시금 새로 시작하며. 이따금 모든 것이 끝난 듯이, 그 숨이 멎었다, 잠든 사람의 호흡에서 일어나는 저 다른 옥타브로의 전위 때문인지, 아니면 자연스러운 중단, 의식 잃음의 결과, 질식의 진행, 심장의 어떤 쇠약 때문인지. 의사가 몸을 굽혀 할머니의 맥을 짚었으나, 이미, 마른 강바닥으로 지류가 물줄기를 쏟아붓듯이, 중단된 마디에서 새로운 노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첫 번째 노래가 똑같이 다함 없는 힘으로 다른 음높이에서 다시 이어졌다. 누가 알겠는가, 정작 할머니는 그것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채로, 고통에 짓눌려 있던 행복하고 다정한 기억의 헤아릴 수 없는 무리가, 오래도록 실린더 속에 압축되어 있던 저 가벼운 기체들처럼, 지금 그녀에게서 빠져나오고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를? 그녀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장황함으로, 이 간절함으로, 이 넘쳐남으로 그녀가 우리를 향해 말을 건네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단말마의 헐떡임 하나하나에 온몸이 뒤틀리며, 울지는 않으나 이따금 눈물에 흠뻑 젖은 채, 침대 발치에 선 어머니는, 비가 후려치고 바람이 그 줄기에서 빙빙 돌려 대는 한 잎사귀의 하염없는 비탄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할머니에게 다가가 입 맞추기 전에 눈물을 닦게 했다.
“하지만 이제 아무것도 못 보시는 줄 알았는데?”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그건 결코 장담할 수 없지요.” 하고 의사가 대답했다.
내 입술이 그녀의 얼굴에 닿자, 할머니의 두 손이 떨렸고, 긴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어쩌면 반사작용으로, 어쩌면 어떤 애정은 감각이 거의 필요치도 않으면서 사랑하게 되는 그것을 의식의 장막 너머로 알아보는 고유의 과민함을 지니고 있기에. 별안간 할머니가 반쯤 몸을 일으키며, 마치 자기 목숨을 앗아 가려는 시도에 저항하려 몸부림치듯이 격렬한 안간힘을 썼다. 프랑수아즈는 그 광경을 견디지 못하고 흐느껴 울음을 터뜨렸다. 방금 의사가 한 말을 떠올리며 나는 그녀를 방에서 내보내려 했다. 그 순간 할머니가 눈을 떴다. 나는 부모님이 병자에게 말을 건네는 사이, 프랑수아즈의 눈물을 가리려 서둘러 그녀 앞으로 몸을 던졌다. 산소 소리가 멎어 있었다. 의사가 침대 곁에서 물러났다. 할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한두 시간 뒤 프랑수아즈는 마지막으로, 조금도 아프게 하지 않으면서, 이제 막 세기 시작했을 뿐 여태 할머니 자신만큼 늙어 보이지도 않던 그 아름다운 머릿단을 빗어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도리어, 다시 젊어진 얼굴 위에 나이의 관을 씌우는 것은 오직 그 머리카락뿐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통이 새겨 놓았던 주름과 경련과 부기와 당김과 움푹 팬 자국이 사라진 그 얼굴에서. 그녀의 부모가 그녀를 위해 신랑감을 골라 주던 저 아득한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순결과 순종이 섬세하게 그어 놓은 이목구비를, 정결한 기대로, 행복의 환영으로, 심지어 순진한 명랑함으로 발그레해진 두 뺨을 지니고 있었다, 세월이 차츰차츰 허물어뜨렸던 그 모든 것을. 삶이 그녀에게서 물러나면서 삶의 환멸도 함께 데려가 버렸다. 할머니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도는 듯했다. 그 장례의 침상 위에서, 죽음은, 중세의 조각가처럼, 그녀를 한 젊은 처녀의 모습으로 뉘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