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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②

3권 제2부 · 제2장

“제 생각엔, 그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에요. 그게 가장 나은 해결책, 가장 멋들어진 출구라고 봐요.”

이는 어찌나 새롭던지, 어찌나 뚜렷이, 그녀에게 여태 알려지지 않은 땅 위를 그토록 변덕스럽게 떠돌았음을 짐작케 하는 충적토(沖積土) 같던지, “제 생각엔”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알베르틴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고, “라고 봐요”라는 말에서 그녀를 내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다.

물론 교양이 웬만한 여자들이 박식한 남자와 결혼하면서 그런 표현들을 혼수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일도 있다. 그리고 첫날밤에 뒤따르는 변신을 겪은 직후, 그들이 남을 방문하기 시작하고 처녀 시절 벗들과 수줍게 이야기를 나눌 때면, 어떤 사람을 똑똑하다고 판단하면서 그 낱말의 l 두 개를 또렷이 발음하기라도 하면, 사람들은 그들이 어엿한 부인으로 탈바꿈했음을 놀라며 알아차린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신분이 바뀌었다는 표시인데, 나는 내가 옛적에 알던 알베르틴의 어휘를 떠올리면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어휘로 말하자면, 가장 대담한 비상이라야 별난 사람을 두고 “저 사람 참 별종이야”라고 하거나, 누가 카드놀이를 하자고 하면 “난 잃을 돈이 없어”라고 하거나, 아니면 벗 가운데 누가 그녀가 억울하다고 여기는 말로 그녀를 나무라면 “그것참 굉장하네!”라고 하는 정도였다. 이 마지막 표현은 이런 경우에 “마니피카트”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일종의 중산층 관습이 시키는 대로 나온 것으로, 조금 심사가 뒤틀린 채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처녀가, 흔히들 말하듯 “아주 자연스럽게”, 다시 말해 어머니에게서 그 말을 배웠기에 내뱉는 것이니, 마치 기도문을 외거나 벗에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듯 배운 것이다. 이 모든 표현을 봉탕 부인은, 유대인에 대한 증오, 그리고 언제나 어울리고 무난한 검은색에 대한 애착과 함께, 딸에게 물려주었으니, 딱히 격식을 갖춘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어미 방울새의 지저귐이 갓 부화한 새끼들의 지저귐에 본보기가 되어 그 새끼들도 이윽고 참된 방울새로 자라나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선택”은 나에게 낯선 데서 자라난 것으로 보였고 “라고 봐요”는 고무적으로 보였다. 알베르틴은 더는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그것은 곧 그녀가 어쩌면 예전과 같은 식으로 행동하지도, 반응하지도 않으리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제 그녀에게 아무 사랑도 느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발베크에서였다면 마음 썼어야 할 것, 곧 그녀 안에 있는 나를 향한 애정을 깨뜨릴 위험 따위도 더는 헤아릴 필요가 없었으니, 그 애정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나에게 아주 무심해졌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한때 그토록 애타게 들어가기를 바랐고 마침내 받아들여져 그토록 기뻐했던 저 “작은 무리”의 일원으로 나를 이제 그녀가 결코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발베크 시절 같은 꾸밈없는 서글서글함마저 이제 없었으므로, 나는 별다른 거리낌을 느끼지 않았다. 그래도 끝내 나를 결심하게 한 것은 또 하나의 문헌학적 발견이었지 싶다. 내 은밀한 욕망을 감추던 겉도는 대화의 사슬에 새 고리를 계속 이어 붙이면서, 나는 이제 알베르틴을 내 침대 모퉁이에 붙잡아 둔 채, “작은 무리”의 처녀들 가운데 하나, 다른 아이들보다 몸집이 작으면서도 내가 꽤 예쁘다고 여겼던 처녀 이야기를 꺼냈다. “맞아요,” 알베르틴이 대답했다. “그 애는 mousmé 같은 데가 있죠.” 내가 알베르틴을 처음 알았을 때만 해도 그녀가 mousmé라는 말을 들어 봤으리라는 낌새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아마 일이 예사롭게 흘러갔다면 그녀는 그 말을 결코 배우지 못했을 테고, 나로서는 그것을 조금도 아쉬워할 까닭이 없었으리니, 이 나라 말에 그보다 더 끔찍한 낱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 소리만 들어도 입에 얼음을 너무 큰 숟갈로 떠 넣었을 때처럼 이가 시리다. 그러나 그토록 예쁜 모습으로 앉아 있는 알베르틴의 입에서 나오니, “mousmé”조차 나에게 거슬리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난 입문의 계시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안에서 일어난 진화의 계시로 느꼈다. 그러나 딱하게도, 그녀가 저녁 시간에 맞추어 집에 이르고 나 역시 내 저녁 시간에 맞추어 자리를 털고 옷을 갖추어 입으려면, 이제 그녀에게 작별을 고할 때였다. 저녁을 준비하고 있던 사람은 프랑수아즈였는데, 그녀는 저녁을 미루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부모님이 안 계신 사이에 알베르틴이 나를 그토록 오래 찾아와 온갖 일을 늦어지게 하는 것을 이미 자기 규범의 한 조항을 어기는 짓으로 여겼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무스메’ 앞에서는 이 모든 이유가 맥없이 무너져, 나는 서둘러 이렇게 말했다.

“글쎄 말이야, 난 조금도 간지럼을 안 타. 한 시간 내내 간질여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을걸.”

“정말요?”

“장담하지.”

그녀는 틀림없이 이것이 내 욕망의 어설픈 표현임을 알아챘을 것이다. 마치 감히 부탁하지는 못했으나 이야기하는 품으로 보아 그것이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눈치챈 상대에게, 먼저 소개해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처럼.

“제가 한번 해 볼까요?” 그녀는 여자다운 다소곳함으로 물었다.

“네 좋을 대로. 그렇지만 침대에 제대로 눕는 편이 더 편할 거야.”

“이렇게요?”

“아니. 완전히 위로 올라와.”

“저 너무 무겁지 않아요?”

그녀가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문이 열리고, 램프를 든 프랑수아즈가 들어왔다. 알베르틴은 가까스로 제 의자로 몸을 젖힐 겨를밖에 없었다. 어쩌면 프랑수아즈는 문에서 엿듣거나 열쇠 구멍으로 훔쳐보기까지 하다가, 우리를 낭패에 빠뜨리려고 바로 이 순간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그런 것을 가정할 필요는 없었다. 자기 본능이 능히 알아챘을 것을 눈으로까지 확인하는 일을 그녀는 하찮게 여겼을 법하니, 나와 부모님과 더불어 살아온 세월이 그녀에게, 뱃사람이 바다를, 사냥꾼이 사냥감을, 그리고 병에 대해서는 의사는 몰라도 흔히 환자만은 알듯이, 우리 모두에 대한 그 본능적이고 거의 예언적인 앎을 마침내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용케 알아낸 지식의 양은, 옛사람들이 이렇다 할 정보의 원천이 거의 없었는데도 어떤 기예와 학문에서 이룬 저 앞선 경지가 그러하듯, 낯선 이라면 놀라 마지않을 만한 것이었고, 놀랄 만한 이유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녀의 원천 또한 그보다 크지 않았다. 그것은 저녁 식탁에서 오간 우리 대화의 스무 분의 일도 채 안 되는 몇 마디를 집사가 날아가는 김에 주워 부엌에 부정확하게 옮긴 것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녀의 오류도, 그들의 오류처럼, 플라톤이 믿었던 우화들처럼, 손에 쥔 자료가 모자라서라기보다 세계에 대한 그릇된 관념과 선입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실험실이라곤 드나든 적 없고 아무런 기구도 쓰지 않은 한 학자가 곤충의 습성에 관한 더없이 중대한 발견을 해낼 수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녀의 미천한 처지에서 오는 불리함이, 그 궁극의 목표인 기예, 곧 자신이 알아낸 것을 우리에게 알림으로써 우리를 낭패에 빠뜨리는 그 기예에 없어서는 안 될 지식의 밑천을 쌓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면, 그녀가 처한 제약은 그 이상의 일을 했다. 이 경우 그 걸림돌은 그녀의 상상력이 날아오르는 것을 마비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크게 북돋웠던 것이다. 물론 프랑수아즈는 이를테면 말투나 몸가짐 같은 온갖 인위적인 수법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우리가 하는 말은, 믿어 주기를 바라면서도 결코 믿지 않았으면서) 자기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라면 누구든 하는 말은, 아무리 터무니없어도,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생각에는 아무리 충격적일지라도 조금의 의심도 없이 참으로 받아들였으므로, 우리의 주장을 듣는 그녀의 태도가 그 못 미더워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듯이, 어느 식모가 자기 주인들을 온 세상 앞에서 흙먼지처럼 취급하며 을러대어 온갖 특권과 양보를 얻어 냈다고 그녀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옮길 때의 그 말투는 (간접화법을 쓰는 덕에 그녀는 아무 탈 없이 우리에게 더없이 치명적인 모욕을 퍼부을 수 있었다) 그 이야기가 그녀에게는 복음이나 다름없음을 드러냈다. 프랑수아즈는 심지어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했다. “내가 그 집 마님이었으면 나도 어지간히 부아가 났을 거예요.” 우리가 처음엔 사층에 사는 그 부인에게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았으면서도, 이토록 충격적인 본보기를 전하는 그 이야기에, 있음직하지 않은 우화를 대하듯 어깨를 으쓱해 보아도 소용없었으니,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는 더없이 확고하고 더없이 부아를 돋우는 단언의, 짓누르고 후벼 파는 힘으로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대한 작가들이, 정치적 자유나 문학적 무정부 상태 아래서라면 면할 수 있었을 응축의 힘을, 군주나 어느 시파(詩派)의 폭정에, 운율법이나 국교(國敎)의 엄격함에 얽매일 때 흔히 이르게 되듯이, 프랑수아즈 또한 우리에게 대놓고 대꾸할 수 없던 탓에 테이레시아스처럼 말하고 타키투스처럼 썼으리라. 그녀는 곧이곧대로 드러낼 수 없는 온갖 것을, 우리가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서는 흠잡을 수 없는 한 문장에, 아니 한 문장에도 못 미치는 것에, 침묵에, 물건을 방에 놓아두는 그 방식에 담아낼 줄 알았다.

그리하여 내가 어쩌다 실수로, 다른 편지들 더미 속에, 그녀가 결코 보아서는 안 될 편지 한 통을 내 탁자 위에 두고 나갔을 때, 이를테면 그 편지가 그녀를 미워하는 투로 언급하고 있어 그것을 쓴 이뿐 아니라 받는 이에게도 같은 감정이 있으리라는 짐작을 안겨 주는 그런 편지였을 때, 그날 저녁 내가 켕기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곧장 내 방으로 가면, 편지들 위에, 좌우 반듯하게 가지런히 쌓인 그 더미 맨 위에, 그 난처한 문서가 내 눈을 사로잡았으니, 프랑수아즈가 그것을 바로 맨 꼭대기에, 나머지와는 거의 따로 떼어, 그 자체로 하나의 말이자 그 나름의 웅변을 지닌 도드라진 자리에 놓아두었기에, 프랑수아즈의 눈에 그러했듯 내 눈에도 띄지 않을 수 없었고, 나는 문간에 선 채 외마디 소리에라도 놀란 듯 몸서리를 쳤다. 그녀는 이런 무대 효과를 꾸미는 데 뛰어났으니,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도 보는 이를 미리 일깨워, 이윽고 자기가 나타날 즈음이면 이미 그가 그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알게끔 하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생명 없는 물건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어빙이나 프레데리크 르메트르의 저 영감 어리면서도 공들인 기예를 지니고 있었다. 이번에도 알베르틴과 나 위로, 처녀의 몸이 이불에 파 놓아 아직 눈에 보이는 그 우묵한 자국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 캐묻는 듯한 빛줄기를 뿜는 켜진 램프를 치켜든 프랑수아즈는, ‘죄악을 비추는 정의’라는 그림을 떠올리게 했다. 알베르틴의 얼굴은 이 빛에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그 빛은 발베크에서 나를 매혹했던 그 볕에 그은 윤기를 그녀의 두 뺨에 되살려 놓았다. 이 알베르틴의 얼굴은, 바깥에서는 그 전체 인상이 이따금 우윳빛 창백함 같은 것이었으나, 이제 램프가 비추는 데 따라, 어찌나 눈부시게, 어찌나 고르게 물들고, 어찌나 탄탄하고, 어찌나 이글거리는 면들을 드러내던지, 어떤 꽃들의 짙게 이어지는 살빛에 견줄 만했다. 그러는 사이 프랑수아즈의 뜻하지 않은 등장에 당황한 나는 이렇게 외쳤다.

“뭐야? 벌써 램프를? 이런, 빛이 참 세네!”

짐작하다시피 나의 속셈은, 두 번째 외침으로는 나의 당혹을 둘러대고, 첫 번째 외침으로는 내가 늦도록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변명하려는 것이었다. 프랑수아즈는 잔혹한 어정쩡함으로 대꾸했다.

“불을 꺼트려 드릴깝쇼?”

“꺼뜨려요.” 알베르틴이 내 귀에 살짝 속삭이며 “트려”를 “뜨려”로 바로잡았고, 나는 그 정겨운 발랄함에 매혹되고 말았으니, 그녀는 나를 대뜸 선생이자 공범으로 삼아, 마치 문법 문제라도 묻듯이 이 심리적 단언을 슬며시 끼워 넣은 것이었다.

프랑수아즈가 방을 나가고 알베르틴이 다시 내 침대에 앉았을 때,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너에게 입 맞추고 싶은 유혹을 못 참을까 봐 그래.”

“그거참 딱한 노릇이겠네요.”

나는 이 초대에 곧바로 응하지 않았다. 다른 남자라면 그런 초대가 아예 불필요하다고까지 여겼을지도 모른다. 알베르틴이 말을 발음하는 방식은 어찌나 관능적이고 어찌나 사람을 호리는지, 그저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당신을 어루만지는 듯했으니까. 그녀의 한마디는 은총이었고, 그녀와의 대화는 당신을 입맞춤으로 뒤덮었다. 그런데도 이 초대는 내게 몹시도 매력적이었다. 알베르틴 또래의 어여쁜 아가씨라면 누구에게서 나온 것이든 그러했으리라. 그러나 알베르틴이 이제 이토록 내게 다가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내게 단순한 기쁨 이상을 주었고, 아름다움의 각인이 찍힌 일련의 영상을 내 눈앞에 불러왔다. 나는 처음의 알베르틴을 떠올렸다. 나와 바닷가 사이에 서서, 바다를 배경으로 거의 그려 넣은 듯하던 그 모습을. 그때 그녀는 무대 위에서 보이는 인물들이 그렇듯 내게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등장하기로 되어 있는 여배우 본인을 보고 있는 것인지, 잠시 주역을 대신하는 대역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환등기가 비춘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인물들 말이다. 그러다 실제의 여자가 그 빛나는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와 내게로 다가왔고, 그 결과 나는 다만 그녀가 실제 삶에서는 마술 그림 속에 찍혀 있으리라 여겼던 그 사랑스러운 순종성을 조금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나는 그녀를 만질 수도, 껴안을 수도 없으며, 그저 말을 나눌 수 있을 뿐임을, 내게 그녀는 한때 식탁을 장식하는 유행이었던 저 먹을 수 없는 비취 포도송이가 실은 과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아님을 배웠다. 그런데 이제 그녀는 세 번째 국면에서 내게 나타나고 있었다. 두 번째 경험에서처럼 실재하되, 첫 번째에서처럼 손쉬운 모습으로. 손쉬웠고, 오래도록 그렇지 않으리라 여겨 왔던 만큼 더욱 감미롭게 손쉬웠다. 삶에 대한 나의 늘어난 앎은(내가 처음 짐작했던 것보다 덜 한결같고 덜 단순한 삶에 대한 앎은) 나를 잠정적으로 불가지론 쪽으로 기울게 했다. 처음에 그럴듯하다 여겼던 것이 이내 거짓으로 드러나고, 세 번째에 가서는 참으로 밝혀질 때, 사람이 무엇을 확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아아, 알베르틴에 관한 나의 발견은 아직 끝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삶이 하나씩 차례로 드러내 보이는 더 풍부한 국면들의 이 폭로가 지닌 낭만적 매력이 없었다 하더라도(그것은 생루가 리브벨에서 함께 저녁을 들 때 느꼈던 것과는 정반대의 매력이었다. 그는 삶의 흐름이 어느 차분한 얼굴 위에 덧씌운 가면 아래에서, 한때 자기 입술이 닿았던 이목구비를 알아보곤 했으니 말이다), 알베르틴의 뺨에 입 맞추는 일이 가능하다는 앎은 어쩌면 실제로 입 맞추는 것보다도 더 큰 기쁨이었다. 한낱 살덩이에 지나지 않기에 오직 제 몸만을 갖다 대는 여자를 소유하는 것과, 어느 날들에는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어울린 모습을 보면서도 어째서 다른 날이 아닌 바로 그날 그녀를 보게 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다시는 그녀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치게 만들던 그 아가씨를 소유하는 것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삶은 이 어린 소녀의 로맨스를 그 온 폭에 걸쳐 친절히 드러내 보여 주었고, 그녀를 살펴보라고 먼저 하나의 광학 도구를, 그다음엔 또 다른 도구를 빌려주었으며, 나의 육체적 욕망에 그것을 백 배로 불리는 반주를 더해 주었다. 그 반주는 더 정신적이고 더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 저 다른 욕망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욕망들은 육체적 욕망이 한낱 살덩이의 정복만을 노릴 때에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고 육체적 욕망 홀로 움직이게 내버려 두지만, 유배의 비참을 느껴 온 저 기억의 온 영토를 손에 넣으려 할 때에는 그 둘레에서 폭풍처럼 일어나 그것을 키우고 넓힌다. 그 욕망들은 육체적 욕망을, 찾아 헤매는 형태로는 이룰 수도 동화할 수도 없는 어느 비물질적 실재의 완성에까지 뒤따라가지는 못하지만, 그 욕망을 중도에서 기다렸다가 회상의 순간, 되돌아옴의 순간에 다시금 제 호위로 그것을 감싼다. 아무리 시원하고 싱그럽다 한들 이름도 없고 비밀도 없고 특별함도 없는, 처음 마주친 여자의 뺨 대신에, 내가 그토록 오래 꿈꾸어 온 그 뺨에 입 맞추는 일은, 내가 끝없이 바라보아 온 어느 빛깔의 맛을, 그 향미를 아는 일이리라. 사람은 삶의 장식적 배경 속의 한낱 영상에 불과한 여자를, 이를테면 바다를 배경으로 윤곽 지어진 알베르틴 같은 여자를 보고서, 그 영상을 붙들어 떼어 내어 제게로 가까이 끌어당기고, 마치 입체경의 렌즈 뒤에 놓아둔 것처럼 차츰 그 견고함과 빛깔을 분간할 수 있게 된다. 조금 까다로운 여자들, 그 저항을 단번에 꺾을 수 없는 여자들, 아니 애초에 언젠가 꺾을 수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여자들만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 여자들을 알아 가고, 다가가고, 정복하는 일은 인간의 영상을 형태에서, 크기에서, 부조에서 일렁이게 하는 일이요, 하나의 영상을 헤아리는 데에서의 상대성의 한 예이니, 그 영상이 제 삶의 배경 속에서 실루엣의 가느다란 비례를 되찾았을 때 다시 보는 일은 즐겁다. 무엇보다 먼저 매음굴에서 만나는 여자들이 흥미롭지 않은 것은 그들이 변함없이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알베르틴은 내가 각별히 좋아하던 일련의 바다 풍경에 관한 내 온갖 인상을, 제게서 떼어 낼 수 없이 붙인 채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가씨의 두 뺨에서 발베크의 바닷가 전부에 입 맞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말 입 맞춰도 괜찮다면, 나는 좀 미뤄 두었다가 좋은 때를 골랐으면 해. 다만 내가 그래도 된다고 네가 말했다는 걸 잊으면 안 돼. 증서가 하나 있어야겠어. ‘입맞춤 한 번에 유효함.’ ”

“거기 서명을 해야 하나요?”

“그런데 지금 받아 두면, 나중에 한 장 더 받을 자격이 생기는 거야?”

“증서 얘기를 하시니 정말 웃음이 나네요. 이따금 새 걸로 한 장씩 발행해 드릴게요.”

“하나만 더 물어볼게. 발베크에서 말이야, 내가 너한테 소개되기 전에, 넌 곧잘 딱딱하고 뭔가 따지는 듯한 표정을 짓곤 했잖아. 그렇게 볼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어?”

“아니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잠깐, 이러면 생각날지도 몰라. 어느 날 네 친구 지젤이 두 발을 모으고서 어떤 노신사가 앉아 있던 의자를 뛰어넘었잖아. 그 순간 네 머릿속에 뭐가 있었는지 떠올려 봐.”

“지젤은 우리가 가장 뜸하게 어울리던 애였어요. 무리에 속하긴 했겠지만 제대로는 아니었죠. 아마 나는 걔가 아주 버릇없고 천하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 그게 다야?”

입 맞추기 전에 나는 분명, 그녀를 알기 전 바닷가에서 내게 지녔던 그 신비로 그녀를 다시 채울 수 있기를, 그녀가 그보다 더 앞서 살았던 곳을 그녀 안에 잠재된 채로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으리라.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적어도 그 자리에 나는 발베크에서 우리가 보낸 삶의 온갖 기억을, 창 아래로 밀려와 부서지던 파도 소리를, 아이들의 외침을 대신 놓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녀 뺨의 매혹적인 분홍빛 둥근 면 위로, 검게 쌓아 올린 머리채의 첫 산기슭 아래로 잦아들며 이어지는 그 완만히 굽은 표면들 위로 내 눈길을 미끄러뜨리자, 그 머리채는 물결치는 산맥을 이루고 깎아지른 성벽을 내밀며 깊은 골짜기의 우묵한 곳들을 빚어내고 있었는데, 나는 이렇게 되뇌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이제 마침내, 발베크에서 실패한 뒤에, 나는 알베르틴의 뺨에 피어난 비밀스러운 장미의 향기를 알게 되리라.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사물과 사람들을 통과시킬 수 있는 주기란 비교적 적으니, 어쩌면 이제 나는 내 주기가 그 끝에 가까워졌다고 여겨야 할지도 모른다. 다른 모든 것 가운데서 내가 골라낸 그 꽃피는 얼굴을 아득한 곳에서 떠오르게 하여, 마침내 내 입술로 그것을 촉각으로 경험하게 될 이 새로운 국면으로 데려왔으니 말이다.” 나는 입술로 얻는 앎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었기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살로 된 장미의 맛을 알게 되리라 스스로에게 말했다. 성게보다도, 아니 고래보다도 분명 덜 원시적인 구조를 지녔을 인간이 그럼에도 여전히 몇몇 필수 기관을 갖추지 못했으며, 특히 입맞춤에 쓸 기관이라고는 하나도 지니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한 번도 멈춰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없는 이 기관의 자리를 인간은 제 입술로 메우며, 그로써 어쩌면 뿔 같은 엄니로 사랑하는 이를 어루만지는 데 그치는 경우보다는 조금 더 흡족한 결과에 이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맛을 돋우는 것의 맛을 입천장에 실어 나르도록 만들어진 한 쌍의 입술은, 제 잘못을 결코 깨닫지도 제 실망을 인정하지도 못한 채, 그저 표면을 헤매다가 뚫을 수 없으면서도 뿌리칠 수 없는 뺨의 장벽 앞에서 멈추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런 순간에, 살과 살이 실제로 맞닿는 순간에, 입술은, 설령 더 능란하고 더 잘 갖추어졌다 한들, 아마 자연이 그들에게 결코 정말로 붙잡지 못하게 막아 둔 그 향미를 더 잘 맛보지는 못하리라. 제게 알맞은 양식을 찾을 수 없는 그 황량한 지대에서 입술은 홀로이니 말이다. 시각이, 그다음엔 후각이 이미 오래전에 입술을 저버렸다. 우선, 내 입이 눈이 입 맞추라 일러 준 그 뺨을 향해 차츰 다가가기 시작하자, 자리를 바꾼 내 눈은 다른 한 쌍의 뺨을 보았다. 더 가까이서, 마치 확대경을 통해서인 양 살펴본 목은, 그 거친 결에서 얼굴의 성격을 바꿔 놓는 어떤 억셈을 드러냈다.

사진술의 가장 최근의 응용들을 제쳐 둔다면(사진술은 우리가 가까이 서 있을 때면 몇 번이고 탑 높이에 거의 닿을 듯 보이던 온갖 집들을 대성당 발치에 웅크리게 하고, 그 유명하고 낯익은 건축물들을 한 연대처럼 종대로, 산개해서, 밀집해서 훈련시키고 배치하며, 조금 전만 해도 그토록 멀리 떨어져 있던 피아체타의 두 기둥을 맞닿게 하고, 이웃한 살루테의 둥근 지붕을 밀쳐 내며, 창백하고 밋밋한 배경 속에 다리 하나의 폭 안에, 창의 후미 안에, 전경에 서서 더 힘찬 색조로 그려진 나무의 잎사귀들 사이에 광막한 지평 전체를 담아내고, 같은 교회를 배경으로 다른 모든 교회의 아치형 벽들을 차례로 놓아 준다), 나는 입맞춤만큼 효과적으로, 우리가 하나의 뚜렷한 모습을 지녔다고 믿는 어떤 것으로부터, 그것이 똑같이 될 수 있는 다른 백 가지 것들을 불러낼 수 있는 것을 달리 떠올릴 수 없다. 그 하나하나는 못지않게 정당한 하나의 시선에 결부되어 있으니 말이다. 요컨대, 발베크에서 알베르틴이 내게 곧잘 다르게 보였듯이, 이제 나는, 마치 여러 차례의 만남에서 한 사람이 우리에게 내보이는 모습의 변화와 색조의 변화를 그 속도를 미친 듯 가속하여, 그 전부를 몇 초의 공간 안에 담아냄으로써, 동류의 개별성을 다채롭게 하는 현상을 실험적으로 재현하고, 그것이 품은 온갖 가능성을 상자 속의 상자처럼 하나에서 또 하나를 끄집어내려 한 것처럼, 그녀의 뺨을 향한 내 입술의 이 짧은 여정에서 열 명의 알베르틴을 보았다. 여러 개의 머리를 가진 여신 같은 이 한 아가씨는, 내가 마지막으로 본 머리에 다가가려 하면 어느새 또 다른 머리에 자리를 내주었다. 적어도 내가 그 머리를 만지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그것을 볼 수 있었고, 그로부터 희미한 향기가 내게 닿았다. 그러나 아아(입맞춤에 관한 한 우리의 콧구멍과 눈은 우리 입술이 놓인 모양새만큼이나 자리를 잘못 잡았으니), 문득 내 눈이 보기를 멈추었다. 이어 부딪혀 짓눌린 내 코는 더는 아무 향기도 알아채지 못했고, 그렇다고 내가 욕망하던 장미의 맛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또렷한 관념을 얻지도 못한 채, 나는 이 언짢은 징후들로부터, 마침내 내가 알베르틴의 뺨에 입 맞추고 있는 참임을 알았다.

우리가 발베크에서 함께 겪은 장면의 정반대를(고체가 회전하는 것에 견주어 설명할 수 있듯이) 재연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곧 이제 침대에 누운 쪽은 나였고 내 곁에 앉은 쪽은 그녀였으며, 어떤 거친 공격도 피할 수 있고 제 쾌락을 내게 지시할 수 있는 처지였기에, 그녀는 지난번엔 그토록 위압적인 찌푸림으로 거절했던 것을 이제 이토록 손쉽게 내게 허락한 것일까?(하기야 바로 그 찌푸림과, 이제 내 입술이 다가오자 그녀 얼굴에 떠오른 그 관능적인 표정은, 그 선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미세하게 어긋난 정도로만 달랐을 뿐이다. 그러나 그 어긋남 속에는, 부상한 자를 ‘끝장내는’ 몸짓과 그를 구완하는 몸짓 사이의, 숭고한 초상과 흉측한 초상 사이의 온갖 격차가 다 담길 수 있는 법이다.) 지난 몇 달 동안 파리에서든 발베크에서든 나를 위해 애써 준 어떤 무심한 은인에게 이 태도의 변화를 돌려 고마워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나는 이제 우리가 놓인 각각의 처지가 그것을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그러나 알베르틴이 내게 내놓은 설명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요컨대 이러했다. “아, 그게, 그때 발베크에선 내가 당신을 제대로 몰랐잖아요. 어쩌면 나쁜 마음을 먹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거고요.” 이 말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알베르틴은 분명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으리라. 여자란, 벗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제 팔다리의 움직임에서, 제 몸이 느끼는 감각에서, 낯선 이가 자기를 타락시키려 꾀한다고 생각하면 몸서리쳤을 그 알 수 없는 죄를 알아보기가 그토록 어려운 법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