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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③

3권 제2부 · 제2장

어쨌든, 그녀의 삶에 최근 어느 때 일어난 변화가 무엇이었든, 그것이 어쩌면 어째서 그녀가 발베크에서는 내 사랑에조차 소스라치며 허락하지 않던 것을 이제 한순간의 순전히 육체적인 욕망에는 선뜻 내주는지 설명해 줄지도 모르지만, 그날 저녁 알베르틴에게서는 훨씬 더 놀라운 또 다른 변화가 드러났다. 그녀의 애무가 내게, 그녀도 알아차리지 못했을 리 없는 그 충족을 안겨 주자마자 말이다. 실은 나는 그 충족이 그녀에게서, 샹젤리제의 월계수 덤불 뒤에서 그에 상응하는 순간에 질베르트가 보였던 그 본능적인 혐오와 상한 수치의 몸짓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워하던 참이었다.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이미, 내가 그녀를 처음으로 내 침대에 눕히고 어루만지기 시작했을 때부터, 알베르틴은 내가 그녀에게서 본 적 없던 어떤 태도를, 고분고분한 선의와 거의 어린애 같은 천진함의 태도를 짓고 있었다. 그녀의 여느 때의 근심과 관심의 온갖 자취를 지워 버리며, 쾌락에 앞선 그 순간은, 이 점에서 죽음 뒤의 순간과 흡사하게, 젊어진 그녀의 이목구비에 마치 갓난 유년의 순진무구함 같은 것을 되돌려 주었다. 그리고 저마다 지닌 특별한 재능이 문득 발휘되는 사람은 누구나 겸손해지고 헌신적이 되고 매력적으로 변하는 법이다. 더욱이 그 재능으로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음을 알 때면, 그 자신도 그것을 펼쳐 보이는 데서 행복해하며, 되도록 온전한 모습으로 그것을 우리에게 내보이고 싶어 안달한다. 그러나 알베르틴 얼굴의 이 새로운 표정에는, 한낱 사심 없음이나 양심이나 너그러움의 내보임, 일종의 관습적이고 뜻밖의 헌신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의 유년기보다도 더 먼, 종족의 유아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 것이었다. 육체의 완화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결국 그것을 얻어 낸 나와는 사뭇 다르게, 알베르틴은, 물질적 쾌락이 도덕적 감정을 동반하지 않을 수 있다거나 무언가를 끝맺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믿는 듯 보이는 것은 제 쪽의 어떤 상스러움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느끼는 것 같았다. 조금 전만 해도 그토록 서두르던 그녀가, 이제, 짐작건대 입맞춤이 사랑을 함의하며 사랑이 다른 모든 의무에 앞선다고 느꼈기에, 내가 그녀에게 저녁 약속을 일깨우자 이렇게 말했다.

“아, 그런 건 조금도 상관없어요. 저는 시간이 아주 많은걸요.”

그녀는 방금 일어난 일이 있은 뒤에 곧바로 일어나 가 버린다는 생각에 겸연쩍어하는 듯했고, 예절에 걸려 난처해하는 듯했다. 마치 프랑수아즈가, 목이 마르지도 않으면서 쥐피앙이 권한 포도주 잔을 짐짓 흐뭇한 기색으로 받아 들여야만 한다고 느꼈을 때, 아무리 급한 볼일이 부른다 한들 마지막 한 방울이 비워지자마자 그를 두고 자리를 뜨는 일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과 마찬가지로. 알베르틴은(그리고 이 점이야말로, 독자가 때가 되면 알게 될 또 다른 이유와 더불어, 내가 나도 모르게 그녀를 원하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생탕드레데샹에서 돌에 새겨진 모습을 볼 수 있는 저 어린 프랑스 시골 처녀의 화신 가운데 하나였다. 머지않아 그녀의 철천지원수가 될 프랑수아즈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녀에게서 벗에게든 낯선 이에게든 베푸는 예의를, 정숙함의 감각을, 병상에 대한 공경을 알아보았다.

고모가 죽은 뒤로 오직 애처로운 어조로만 말해야 한다고 여기던 프랑수아즈는, 제 딸의 결혼을 앞둔 몇 달 동안, 젊은 두 사람이 함께 밖에 나설 때 딸이 연인의 팔짱을 끼지 않기라도 하면 몹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내 곁에 꼼짝 않고 누운 알베르틴이 말했다.

“머릿결이 참 곱네요, 눈도 참 예쁘고요. 당신은 다정한 사람이에요.”

시간이 늦어 간다고 일러 준 뒤에 내가 “내 말을 못 믿어?” 하고 덧붙이자, 그녀는, 어쩌면 참말이되 다만 조금 전부터, 그리고 앞으로 몇 시간 동안만 참일 수 있는 말로 대답했다.

“저는 늘 당신 말을 믿어요.”

그녀는 내게 나에 대해, 내 가족과 내 사회적 지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가 말했다. “아, 당신 부모님이 아주 좋은 분들과 알고 지내신다는 걸 알아요. 당신은 로베르 포레스티에와 쉬잔 델라주의 친구잖아요.” 그 순간 이 이름들은 내게 아무것도 떠올려 주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나는 어린 시절 샹젤리제에서 로베르 포레스티에와 실제로 놀았으며, 그 뒤로는 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쉬잔 델라주로 말하자면, 그녀는 블라탱 부인의 종손녀였고, 나는 한때 무용 수업에 나가기로 되어 있었으며, 그녀의 어머니 응접실에서 상연되던 연극에서 작은 배역을 맡기로 약속까지 했었다. 그러나 웃음보가 터지거나 코피가 날까 두려운 나머지 나는 사양했고, 그래서 그녀를 끝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모자에 깃털을 꽂은 스완가의 가정교사가 한때 델라주가에 있었다는 말을 언젠가 들었던 듯한 어렴풋한 생각이 들 뿐이었으나, 어쩌면 그것은 그 가정교사의 자매이거나 친구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로베르 포레스티에와 쉬잔 델라주가 내 삶에서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할 뿐이라고 알베르틴에게 항변했다.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두 분 어머니끼리 친구시잖아요, 그걸로 당신을 자리매길 수 있어요. 저는 메신 거리에서 쉬잔 델라주를 곧잘 지나치는데, 그녀의 맵시가 참 멋져요.” 우리 어머니들이 아는 사이라는 것은 오직 봉탕 부인의 상상 속에서일 뿐이었다. 그녀는 내가 한때 로베르 포레스티에와 놀았고, 듣자 하니 그에게 곧잘 시를 읊어 주었다는 말을 듣고서, 그로부터 우리가 집안끼리 얽힌 사이라고 단정해 버린 것이다. 내가 짐작하기로 그녀는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 그럼요, 그분은 델라주 포레스티에 무리에 드시죠.” 그러면서 내 부모에게, 그럴 만한 일이라곤 아무것도 한 적 없는데도 좋은 점수를 매겨 주었다.

이것 말고도 알베르틴의 사교 관념은 더없이 어리석었다. 그녀는 n을 겹으로 쓰는 시모네가 사람들을, n을 하나만 쓰는 시모네가 사람들보다는 물론이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못하다고 여겼다. 자기 가문에 속하지도 않으면서 자기와 같은 이름을 지녔다는 것은 그를 업신여길 더없이 훌륭한 이유가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두 시모네가 사람이(무슨 주제로든 말을 나눌 필요를 느끼는 어떤 모임에서, 이를테면 묘지로 향하는 장례 행렬에서처럼 사람이 본능적으로 낯선 이에게 호의를 품게 되는 자리에서 서로 소개받고서) 이름이 같다는 것을 알고는, 서로 정답게, 그러나 성과 없이, 있을 법한 연고를 찾아보려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외일 뿐이다. 수상쩍은 인물은 많고도 많지만,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거나 아무 관심도 없다. 그러나 만일 이름이 비슷한 탓에 그들에게 갈 편지가 우리 집 문 앞에 배달되거나 그 반대의 일이 생기면, 우리는 이내 그들의 도덕적 됨됨이에 대해, 흔히 근거 있는 불신을 품게 된다. 우리는 그들과 혼동될까 두려워, 누가 우리 앞에서 그들을 입에 올리기라도 하면 넌더리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미리 그 오해를 막으려 든다. 신문에서 그들이 지닌 우리 자신의 이름을 읽을 때면, 그들이 그것을 도용한 것만 같다. 사회라는 유기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저지른 잘못에는 우리는 냉담하다. 그 짐을 우리는 우리와 동명인 자들에게 더 무겁게 지운다. 다른 시모네가 사람들에게 우리가 품는 미움은, 그것이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유전으로 물려받은 것인 만큼 더욱 사무친다. 두 세대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우리 조부모가 다른 시모네가 사람들을 입에 올릴 때 짓던 넌더리의 표정만을 기억할 뿐, 그 까닭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것이 살인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을 듣는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드물지 않은 일이지만, 아무 혈연도 없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시모네가 사람이 혼인으로 맺어져 그 틈을 기워 놓는 때가 오고야 만다.

알베르틴은 내게 로베르 포레스티에와 쉬잔 델라주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의 몸이 가까워질 때 생겨나는 그 털어놓고 싶은 충동에 이끌려, 곧 처음, 그 충동이 한 사람의 다른 사람을 향한 각별한 이중성과 조심스러움을 아직 낳기 전에, 제 집안과 앙드레의 삼촌 가운데 한 사람에 얽힌 이야기를 자청해서 내게 들려주었다. 발베크에서는 그에 대해 한마디도 하려 들지 않던 이야기였다. 이제 내가 함께할 수 없는 비밀 따위는 하나도 없는 척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이 순간부터, 그녀의 더없이 가까운 벗이 그녀에게 나를 헐뜯는 말을 했다면, 그녀는 그것을 내게 알리는 것을 제 의무로 삼았으리라. 나는 그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다그쳤고, 마침내 그녀는 갔지만, 나의 무례가 제 탓이기라도 한 양 몹시 부끄러워하며, 마치 나를 두둔이라도 하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 파티에 정장도 하지 않은 채 찾아온 손님을 두고, 그래도 좋게 봐주면서도 내심 언짢아하는 안주인처럼.

“나를 비웃는 거야?” 내가 물었다.

“비웃는 게 아니라, 당신을 보고 미소 짓는 거예요.” 그녀가 사랑스럽게 대답했다. “언제 또 볼 수 있죠?” 그녀는 말을 이었다. 방금 우리 사이에 일어난 일이, 대개는 그것이 마지막을 장식하는 완성인데도, 적어도 어떤 커다란 우정의, 이미 존재하기에 우리가 발견하고 고백해야만 할, 그리고 그것만이 우리가 서로에게 내어 준 몸의 내맡김을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런 우정의 서곡쯤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듯이.

“그래도 좋다고 하니, 틈이 나는 대로 사람을 보내 너를 부를게.” 나는 모든 일을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만날 기회에 종속시키고 있다는 것을 감히 그녀에게 알릴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아주 촉박하게 알릴 수밖에 없을 거야.” 나는 말을 이었다. “나도 미리는 도무지 알 수가 없으니. 저녁에, 내가 시간이 날 때 사람을 보내 너를 데려오게 해도 될까?”

“조금만 지나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이제 저도 제 열쇠를 하나 갖게 될 거거든요. 하지만 바로 지금은 안 돼요. 어쨌든 내일이나 모레 오후에 제가 들를게요. 바쁘시면 저를 안 만나셔도 되고요.”

문가에 이르러, 내가 먼저 그러지 않은 것에 놀라며, 그녀는 이제 서로 입 맞추자고 부추길 거친 육체적 욕망 따위는 조금도 필요 없다는 듯 내게 뺨을 내밀었다. 방금 우리가 나눈 그 짧은 관계는, 더없는 친밀함과 진심 어린 선택이 흔히 다다르는 그런 부류의 것이었기에, 알베르틴은 우리가 내 침대에서 주고받은 입맞춤에, 고딕 시대 음유시인의 머릿속에서라면 그리 그려졌을 법한 기사와 그의 귀부인에게 그 입맞춤이 상징이 되었을 그 정감을, 즉흥으로 지어내어 잠정적으로 보태야 한다고 느낀 것이다.

생탕드레데샹의 성상 조각가가 제 현관 위에 새겨 넣었을 법한 이 젊은 피카르디 처녀가 나를 떠나자, 프랑수아즈가 내게 편지 한 통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나를 기쁨으로 가득 채웠으니,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서 온 것으로, 그녀가 내 저녁 초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서, 곧 내게는 실제의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서라기보다는, 알베르틴이 오기 전 온종일 내가 생각하던 그 여인에게서. 사랑의 무서운 기만이란, 그것이 처음에 우리를 바깥세상의 여자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에 빚어져 간직된 인형과 놀게 하며 시작된다는 데 있다. 게다가 그 인형이야말로 우리가 늘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유일한 그녀의 모습이요, 우리가 언젠가 소유하게 될 유일한 모습이며, 상상력의 힘 못지않게 거의 절대적인 기억의 제멋대로인 힘이, 내 꿈속의 발베크가 실제의 발베크와 그러했듯이 실제의 여자와는 딴판으로 만들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인위적 창조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차츰, 우리 자신에게 해가 되도록, 실제의 여자를 그와 닮은 모습으로 억지로 몰아가게 된다.

알베르틴 때문에 어찌나 늦었던지, 내가 빌파리지 부인의 응접실에 들어섰을 때는 마침 연극이 막 끝난 참이었다. 게르망트 공작이 아내와 갈라선다는, 이미 이루어졌다는 그 굉장한 소식을 화제 삼으며 쏟아져 나오는 손님들의 물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안주인과 인사를 나눌 기회가 올 때까지 바깥방의 빈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때 다른 방에서, 아마도 맨 앞줄에 제 의자를 두었을 그 방에서, 커다란 검은 양귀비꽃들이 도드라진 노란 새틴의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걸친, 위엄 있고 풍만하며 훤칠한 공작부인 본인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이제 나를 조금도 흔들어 놓지 못했다. 한때 어머니가 내 이마에 손을 얹고서(내 마음을 다칠까 저어할 때면 늘 그러던 버릇이었다) 이렇게 말하던 날이 있었다. “게르망트 부인을 만나 보겠다고 얼쩡거리는 짓은 정말 그만두어야 한다. 온 동네가 네 얘기를 하고 있어. 게다가 할머니가 저리 편찮으신 걸 보렴, 너를 비웃기나 하는 여자를 길목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 있잖니.” 그러자 이내, 사람이 저 멀리 있다고 상상하던 나라에서 그를 데려와 눈을 뜨게 해 주는 최면술사처럼, 또는 사람을 의무와 현실의 감각으로 불러내어, 제 공상에 탐닉해 오던 상상의 병을 낫게 해 주는 의사처럼, 어머니는 지나치게 오래 끌어 온 꿈에서 나를 깨워 주었다. 그날의 남은 시간은 내가 단념하려는 이 병에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데 바쳐졌다. 나는 몇 시간이고 내리, 노래하며 눈물지으면서, 슈베르트의 「이별」의 슬픈 노랫말을 불렀다.

잘 가라, 낯선 목소리들이 너를 부르는구나
내게서 멀리, 천사들의 정다운 누이여.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났다. 나는 아침 산책을 그만두었는데, 어찌나 수월했던지, 살아가는 동안 한 여자를 더는 보지 않는 데에 나는 쉽사리 익숙해지리라는 예언을(뒤에 가서 이것이 거짓으로 드러나게 됨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스스로 정당하다 여길 정도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쥐피앙이 제 장사를 넓히고 싶어 이 근방에서 가게 자리를 찾고 있다고 프랑수아즈가 내게 전했을 때, 그를 위해 하나 찾아 주고 싶어(더구나, 이미 침대에서부터 사람 붐비는 바닷가처럼 환하게 왁자한 소리로 들려오던 어느 거리를 거닐다가, 들어 올려진 우유 가게의 철제 덧문 뒤로 흰 소매를 걷은 젊은 우유 파는 아가씨들을 보는 것이 무척 흐뭇했기에) 나는 이 나들이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의 거리낌도 느끼지 않았으니, 이제는 게르망트 부인을 만날 요량으로 밖에 나가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정부를 둔 동안에는 끝없이 조심을 다하던 유부녀가, 그와 갈라선 날부터는 그의 편지를 아무렇게나 흩어 놓아, 죄를 짓기를 그친 순간 더는 겁나지 않게 된 그 불륜을 제 남편에게 드러낼 위험조차 무릅쓰듯이. 이제 나를 심란하게 한 것은, 거의 모든 집이 어떤 불행한 사람을 품고 있다는 발견이었다. 어느 집에서는 아내가 늘 눈물지었으니 남편이 그녀를 배신했기 때문이었다. 이웃집에서는 그 반대였다. 또 어느 집에서는 부지런한 어머니가 술주정뱅이 아들에게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얻어맞으면서도, 제 고통을 이웃의 눈에서 감추려 애쓰고 있었다. 인류의 꼭 절반은 눈물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절반을 이루는 사람들을 알게 되자, 나는 그들이 어찌나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지, 도리어 옳은 쪽은 저 간통한 남편과 아내(그들이 그리된 것은 다만 정당한 행복을 빼앗겼기 때문이요, 그들은 저마다의 아내와 남편을 뺀 모든 이에게는 다정하고 신실한 모습을 보였으니)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이윽고 나는 아침 배회를 이어 갈, 쥐피앙에게 쓸모가 된다는 구실조차 잃고 말았다. 우리 안뜰의 가구장이가, 그 작업장이 쥐피앙의 가게와 고작 얄팍한 칸막이 하나로만 갈려 있었는데, 망치질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로 머지않아 공작의 대리인에게서 ‘나가라는 통고’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쥐피앙으로서는 이보다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 작업장에는 목재를 쟁여 두는 지하 창고가 있었고, 그것은 우리 지하실과 통해 있었다. 그는 거기에 석탄을 둘 수 있고, 칸막이를 헐어 버리면 하나로 트인 커다란 가게를 가지게 될 터였다. 그러나 그를 위해 집을 보러 다니는 재미가 없어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점심 전마다 밖에 나갔다. 쥐피앙 자신도, 게르망트 가 부르는 세가 터무니없다고 여겨, 세를 들 사람을 못 구해 낙심한 공작이 더 낮은 값을 받아들이기로 마음먹기를 바라며 가게를 둘러보게 내버려 두고 있었다. 프랑수아즈는, 세를 들 만한 사람이 찾아올 리 없는 시각에도 문지기가 빈 가게 문을 걸쇠만 걸어 둔 채 열어 두는 것을 눈여겨보고는, 그것이 게르망트가 하인과 약혼한 젊은 여자를 꾀어들이려고(그리로 연인들의 밀회 장소를 삼으려고) 그가 놓은 덫이며, 그 둘을 현장에서 붙잡으려는 수작이라고 냄새 맡았다.

어찌 되었든, 이제 쥐피앙에게 새 가게를 찾아 줄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나는 여전히 점심 전에 밖에 나갔다. 이 나들이에서 나는 곧잘 노르푸아 를 마주쳤다. 걸으며 어느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가 내게 한 번 눈길을 던져, 내 사람됨을 샅샅이 뜯어본 뒤, 내게 미소를 보내지도, 이전에 나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듯 그 어떤 알은체의 기색도 내비치지 않은 채 다시 제 길동무에게로 눈길을 돌리는 일이 있곤 했다. 이 지체 높은 외교관들에게 어떤 식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들이 당신을 보았다는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곁에 있는 동료와 논의할 어떤 중대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리려는 뜻이니 말이다. 집 근처에서 내가 곧잘 마주치던 어느 키 큰 여자는 나에게 그보다 덜 삼갔다. 나는 그녀를 알지도 못했건만, 그녀는 나를 보려고 돌아서곤 했고, 상점 진열창 앞에서 부질없이 나를 기다리며, 곧 내게 입이라도 맞출 듯 미소 짓고, 온전히 몸을 내맡기겠다는 몸짓을 지어 보였다. 아는 사람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그녀는 내게 얼음장 같은 냉담을 되찾았다. 어느덧 오래도록, 이 아침 산책에서, 신문 한 부를 사는 더없이 하찮은 볼일일지언정 오직 내가 해야 할 일만을 생각하며, 나는 가장 가까운 길을 골랐다. 그 길이 공작부인이 산책에서 다니던 여느 경로 바깥에 있어도 아쉬울 것이 없었고, 반대로 그 경로를 따라 나 있어도 거리낌이나 숨김이 없었으니, 그 길은 이제 내게, 은혜를 모르는 여자에게서 그녀를 제 뜻과 무관하게 바라보는 은총을 낚아채야 할 금단의 길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회복이, 나를 게르망트 부인에 대한 정상적인 태도로 되돌려 놓으면서, 그녀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영향을 미쳐, 내가 이제 아무 관심도 없는 다정함을, 아니 우정까지도 가능하게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조차 못 했다. 그때까지는, 나를 그녀와 이어 주려 온 세상이 한데 뭉쳐 애쓴다 한들, 불운한 사랑이 걸어 놓는 그 사악한 주술을 풀 수는 없었으리라. 사람보다 더 힘센 요정들은, 그런 경우엔 우리가 “나는 이제 사랑하지 않아”라는 주문을 진심으로, 마음속 깊이 내뱉는 날이 오기 전에는 그 무엇도 우리를 도울 수 없다고 정해 놓았다. 나는 생루가 나를 제 이모에게 데려가 주지 않은 것에 부아가 나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다른 누구보다 더 마법을 풀 재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게르망트 부인을 사랑하는 동안에는, 남들에게서 받는 정중함의 표시도, 그들의 찬사도 실은 나를 괴롭혔으니, 그것이 그녀에게서 온 것이 아니어서만이 아니라 그녀가 결코 그것을 전해 듣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기야 설령 그녀가 그것을 알았다 한들 내게는 조금도 쓸모가 없었으리라. 실로, 사랑의 성공을 돕는 자잘한 보조 수단 가운데서는, 부재나, 저녁 초대의 사양이나, 뜻하지 않은 무의식적인 매정함이 세상의 온갖 화장품과 고운 옷보다 더 도움이 되는 법이다. 사람들에게 이런 이치를 따라 성공하는 기술을 가르친다면, 사교적 성공이야 얼마든지 넘쳐 나리라.

내가 앉아 있던 방을 가로질러 스쳐 지나며, 내가 알지도 못하고 어쩌면 이내 다른 어느 파티에서 만나게 될 벗들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한 채로, 게르망트 부인은 소파에 앉은 나를 알아보았다. 진심으로 무심하며 그저 예의를 차리려 할 뿐인 나를. 사랑에 빠져 있던 동안에는 무심한 척해 보이려 그토록 필사적으로 애쓰고도 끝내 못 하던 내가 말이다. 그녀는 옆으로 방향을 틀어 내게로 다가왔고, 오페라코미크에서의 그 저녁에 지었던 미소를, 자기가 마음 두지 않은 이에게 마음을 받고 있다는 그 언짢은 느낌이 이제는 그것을 지워 버리려 곁에 없었기에 그대로 되살려 지으며 말했다. “아니, 일어나지 마세요. 잠깐 곁에 앉아도 괜찮겠죠?” 그러면서 그러지 않았다면 소파 전체를 덮었을 그 널따란 치마를 우아하게 여며 안았다.

그녀보다 키가 작은 데다, 드레스의 부피로 한층 더 부풀어 오른 그녀 곁에서, 나는 금빛 안개처럼 끊임없이 연기 오르듯 헤아릴 수 없는 잔털이 여리게 돋아 있는 그녀의 아리따운 맨팔에, 그리고 내 위로 향기를 흩뿌리는 그녀의 고운 머리채 술에 거의 스칠 듯했다. 앉을 자리가 겨우 났을 뿐이라 그녀는 나를 마주하도록 몸을 편히 돌릴 수 없었고, 그리하여 내 쪽보다는 정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어, 초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아련하고 다정한 표정을 지었다.

“로베르 소식은 좀 있나요?” 그녀가 물었다.

그때 빌파리지 부인이 방으로 들어왔다.

“아니, 이런, 모처럼 이곳에서 뵙나 했더니 참 좋은 때에 오셨군요!” 그러고는 내가 제 조카딸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 어쩌면 우리가 자기가 짐작한 것보다 더 가까운 사이라고 결론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니, 오리안과 나누던 이야기를 끊게 하려는 건 아니에요.” 그러더니(뚜쟁이 노릇의 이런 배려야말로 완벽한 안주인의 소임 가운데 하나이니) “목요일에 여기서 이 사람과 함께 저녁을 드시지 않겠어요?”

그날은 내가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대접하기로 한 날이어서, 나는 사양했다.

“그럼 토요일은요?”

어머니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돌아오시기로 되어 있어, 저녁마다 집에 머물러 어머니와 함께 식사하지 않을 수는 도무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 초대도 사양했다.

“아, 붙들기가 여간 어려운 분이 아니시네요.”

“어째서 저를 한 번도 보러 오지 않으세요?” 빌파리지 부인이 출연자들을 치하하고 주연 여배우에게 장미 한 다발을 건네러 우리 곁을 떠나자, 게르망트 부인이 물었다. 그 장미 다발은, 그것을 건네는 손이 온 값어치를 실어 주었으니, 그도 그럴 것이 값이라야 고작 이십 프랑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기야 이는 어느 예술가가 단 한 번만 공연했을 때 그녀가 쓰는 최고 액수였다. 한 철 내내 그녀의 온갖 오후 모임과 야회에서 재능을 베푼 이들은 후작부인이 손수 그린 장미를 받았다.)

“남의 집에서가 아니면 서로 통 만날 수 없다니 참 따분한 일이에요. 제 이모 댁 만찬에서는 저를 안 만나시겠다니, 그럼 저와 함께 저녁을 드시는 건 어때요?” 이런저런 핑계로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 있던 몇몇 사람들이, 마침내 자리를 뜨려던 참에, 공작부인이 두 사람이 겨우 들어앉을 만치 좁은 자리에 젊은 남자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이 잘못 들었던 것이 틀림없다고, 갈라서기를 바라는 쪽은 공작이 아니라 공작부인이며, 그것도 나 때문이라고 여겼다. 그러고는 서둘러 이 소식을 사방에 퍼뜨렸다. 그것이 거짓임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 근거가 있었다. 그러나 나 자신도, 아직 완결되지 않은 별거가 막 효력을 미치기 시작하는 그런 껄끄러운 시기에, 공작부인이 사교계에서 물러나기는커녕 그토록 얕게 아는 사람을 굳이 청하려 든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를 집에 들이는 것에 반대해 온 이는 오로지 공작뿐이었으며, 이제 그가 그녀를 떠나는 마당이라 그녀는 제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제 둘레를 채우는 데 더는 아무 걸림돌도 보지 않는 것이라는 짐작이 내 머리를 스쳤다.

조금 전만 해도 게르망트 부인이 내게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하물며 함께 저녁을 들자고 청하리라는 말을 누가 했다면 나는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게르망트가의 응접실이, 그 집 주인들의 이름에서 내가 뽑아낸 그 특별한 정취를 갖추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을지언정, 그곳이 내게 금단의 땅이었다는 사실은, 소설에서 묘사를 읽었거나 꿈에서 그 모습을 본 응접실들에 우리가 부여하는 것과 똑같은 종류의 존재를 그곳에 부여하도록 나를 몰아세워, 그곳이 여느 응접실과 다를 바 없다고 확신할 때조차도 그것을 사뭇 다른 것으로 그려 보게 만들었다. 나와 그곳 사이에는 현실이 끝나는 저 장벽이 놓여 있었다. 게르망트가와 함께 저녁을 든다는 것은, 오래도록 보고 싶어 하던 어느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이요, 어느 욕망을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내 눈앞에 형체를 갖추게 하는 일이며, 하나의 꿈과 사귀는 일이었다. 기껏해야 나는, 주인이 손님을 청하며 “꼭 오세요, 그야말로 우리 식구밖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하고 말하는 그런 만찬 가운데 하나이려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말은, 자기네가 다른 벗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에 스스로 느끼는 불안을 그 천덕꾸러기의 것인 양 돌려씌우며, 실은 어찌해 볼 길 없이 촌스러워 자기들이 거두어 주는 그 외부인의 격리를, 오직 절친한 이들에게만 허락되는 부러운 특권인 양 둔갑시키려는 것이다. 반대로 나는, 게르망트 부인이 내게 베풀 수 있는 더없이 즐거운 사교를 내가 누리기를 바라고 있음을 느꼈으니, 그녀가 말을 이으며, 마치 파브리스의 이모를 찾아가는 보랏빛 어린 아름다움과 모스카 백작에게 소개되는 기적을 내 눈앞에 펼쳐 보이듯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