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금요일은 어떠세요? 몇 사람 오지 않아요. 파름 대공비가 오시는데, 참 사랑스러운 분이죠. 물론 저는 사랑스럽지 않은 분이라면 당신께 만나시라 청하지도 않을 테고요.”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 애쓰는 중간 사회 등급들에서는 내던져지지만, 가문이라는 것은 이를테면 하급 중산층이나 반쯤 왕족에 가까운 귀족 같은 어떤 정체된 등급들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몫을 한다. 뒤엣것은 스스로를 더 높이 끌어올리려 애쓸 수 없으니, 제 특유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위로는 더 높은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빌파리지 이모’와 로베르가 내게 보여 준 우정은, 어쩌면 늘 저희끼리, 늘 같은 작은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게르망트 부인과 그 벗들에게, 나를, 내가 짐작조차 못 한 어떤 기이한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두 친척에 대해, 친숙하고 일상적이며 스스럼없는 종류의 앎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런 앎 안에 우리 자신이 우연히 포함되면, 우리의 행동은 눈에서 티끌이 튕겨 나가거나 기도(氣道)에서 물방울이 튀어나오듯 곧바로 쫓겨나기는커녕, 오히려 새겨진 채 남아 있을 수 있어서, 우리 자신은 이미 잊어버린 지 여러 해가 지난 뒤에도, 값을 매길 수 없는 서명 수집품 사이에 끼어 있는 제 손으로 쓴 편지처럼, 그 앎이 고이 간직되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놀라게 되는 그 궁전 안에서, 여전히 이야기되고 화제에 오를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저 유행을 좇을 뿐인 사람들이라면, 너무 자유로이 드나드는 문에 파수꾼을 세워 둘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르망트가의 문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낯선 사람이 그 앞을 지나갈 일은 거의 없었다. 어쩌다 한 번, 누군가가 공작부인에게 소개되더라도, 그녀는 그 사람이 가져다줄 사교적 부가가치 따위로 마음 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으니, 그런 것은 그녀가 베푸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오직 그 사람의 진짜 됨됨이만을 생각했다. 빌파리지 부인과 생루가 모두 나의 됨됨이를 증언해 주었다. 물론 그녀는, 그 두 사람이 나를 부르고 싶어 할 때조차 좀처럼 나를 붙잡아 오지 못하며, 따라서 내가 세속적인 일에 아무 중요성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동시에 눈치채지 못했더라면,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공작부인에게는, 그 낯선 사람이 그녀가 이른바 '괜찮은 사람들'에 속한다는 표시로 보였던 것이다.
그녀가 탐탁잖아하는 여자들 이야기를 그녀에게 꺼냈을 때, 이를테면 그런 여자들 가운데 하나와 관련해 그녀의 동서(同壻) 같은 사람의 이름이라도 대면, 그녀의 얼굴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볼만했다. '어머, 그분은 매력적이에요!' 하고 공작부인은 사려 깊고 확신에 찬 어조로 외치곤 했다. 그녀가 내세우는 유일한 근거란, 그 부인이 쇼스그로 후작부인과 실리스트리 대공비에게 소개받기를 거절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부인이 자기 자신, 곧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소개받는 것마저 거절했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실이 그러했고, 그때 이후로 공작부인의 마음은 그토록 알기 어려운 여자의 속내를 풀어 보려 애쓰느라, 그 부인의 집에 초대받아 방문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사교계 사람들은 남에게 떠받들리는 데 어찌나 익숙한지, 자기들을 피하는 사람은 불사조처럼 보여 대뜸 그들의 관심을 독차지해 버린다.
이렇게 나를 초대한 게르망트 부인의 마음속 진짜 동기가, (이제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는데) 그녀의 친척들이 겉보기에 나를 뒤쫓는 듯한데도 정작 나는 그들을 뒤쫓지 않는다는 데 있었을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를 초대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그녀는 자기가 부를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람들로 나를 대접하고 싶어 했고, 내가 다시 오지 않도록 만들 만한 친구들, 지루하다고 그녀가 여기는 이들은 멀리 떼어 두고 싶어 했다. 그녀가 자신의 별자리 궤도에서 벗어나 내 곁에 와 앉는 것을 보고, 저녁 식사에 나를 초대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녀의 방향 전환을 무엇에 돌려야 할지 알지 못했으니, 이런 점에서 우리를 밝혀 줄 특별한 감각이 없는 탓에 원인 모를 결과였다. 우리는, 우리를 어렴풋이 알 뿐인 사람들을, 이를테면 나의 경우 게르망트 공작부인 같은 이들을, 그들이 우리에게 눈길을 주는 드문 순간에만 우리를 생각하는 존재로 그려 본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그들에게 잊혀 있으리라고 그려 보는 그 이상적인 망각이란, 순전히 우리 쪽의 자의적인 관념일 뿐이다. 그리하여 구름 한 점 없는 밤의 고요 같은 우리의 외로운 침묵 속에서, 우리는 사교계의 여러 여왕들이 아득히 먼 거리에서 하늘을 가로질러 제 길을 나아가고 있다고 상상하지만, 그 별들의 높이에서 우리에게로, 마치 우리가 금성이나 카시오페이아 자리에서는 알려져 있지 않으리라 여겼던 우리 이름이 새겨진 운석처럼, 저녁 식사 초대장이나 악의에 찬 험담 한 조각이 떨어져 내리면, 우리는 얼떨결에 놀라거나 기뻐하는 몸짓을 어쩌지 못한다.
어쩌면 이따금, 에스테르서에 따르면 자기를 섬기는 데 열성을 보인 신하들의 이름이 적힌 기록부를 서기들에게 읽히던 페르시아 군주들의 본을 따라, 게르망트 부인이 자기에게 호의를 가진 이들의 명단을 들여다보다가 내 이름에 이르러 이렇게 혼잣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저녁 식사에 불러야 할 사람.' 그러나 다른 생각들이 그녀의 마음을 딴 데로 돌려놓았다
(밀려드는 근심에 시달리는 군주의 마음은
늘 새로운 일들로 쏠리기 마련이니)
그러다 마침내 궁전 문 앞에 모르드개처럼 홀로 앉아 있는 나를 발견한 순간에 이르렀고, 나를 본 것이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 놓자, 그녀는 아하수에로스처럼 나에게 선물을 아낌없이 베풀려 했던 것이다.
동시에 덧붙여 두어야 할 것은, 게르망트 부인이 자기와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고 청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느낀 놀라움에 뒤이어, 전혀 다른 종류의 놀라움이 하나 더 따라왔다는 사실이다. 나로서는 이 처음의 놀라움을 감추기보다 오히려 그것이 내게 준 기쁨의 표현을 과장하는 편이, 더 겸손하고 또한 감사할 줄 아는 태도로 보이리라 판단했으므로 그렇게 했다. 그러자 또 다른, 마지막 야회로 막 넘어가려던 참이던 게르망트 부인은, 내가 자기와 저녁 식사를 하자는 초대에 그토록 놀라워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히 알지 못할까 봐, 거의 해명하듯 이렇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저는 당신과 그토록 절친한 로베르 드 생루의 이모예요. 게다가 우리는 전에 만난 적도 있고요.' 나는 그것을 알고 있다고 답하면서, '발베크와 파리에서 나에게 무척 잘해 준' 샤를뤼스 씨도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게르망트 부인은 어리둥절해 보였고, 그녀의 눈은 이 말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이미 다 채워져 넘겨진 자기 내면의 사건 기록부 어느 페이지를 향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럼 당신이 팔라메드를 안다는 거예요?' 이 이름은 게르망트 부인의 입에서 커다란 매력을 띠었으니, 사교적으로는 그토록 눈부신 인물이지만 그녀에게는 시동생이자 함께 자란 사촌에 지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그 본능적인 소박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삶이 이루던 어수선한 잿빛 위로, 팔라메드라는 이 이름은, 그녀가 소녀 시절 게르망트의 정원에서 그와 함께 놀던 기나긴 여름날의 광채 같은 것을 드리웠다. 게다가 그들 삶의 그 오래전 지나가 버린 시절에, 오리안 드 게르망트와 그 사촌 팔라메드는 훗날 그들이 된 모습과는 무척 달랐다. 특히 샤를뤼스 씨는 예술적 탐구에 온통 빠져 있었는데, 뒷날의 삶에서는 그것을 어찌나 철저히 억눌러 버렸던지, 공작부인이 마침 그 순간 펼쳐 보이던, 검고 노란 붓꽃이 그려진 커다란 부채를 그린 사람이 바로 그였다는 것을 알고 나는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또 그가 언젠가 그녀를 위해 지어 준 작은 소나티나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남작이 이 모든 재능을 지녔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니, 그는 그런 이야기를 도무지 입에 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김에 한마디 해 두자면, 샤를뤼스 씨는 가족들이 자기를 '팔라메드'라고 부르는 것을 조금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메메'라는 형태가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어리석은 약칭들은 귀족이 제 자신의 시적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는 철저한 무능함의 표시이다(유대 사회에서도 같은 결점을 볼 수 있으니, 이스라엘스 부인의 조카 하나는 이름이 모세인데 흔히 '모모'라고 불렸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귀족적인 것에 어떤 중요성도 두는 듯 보이지 않으려는 조바심과 나란히 존재하는 결점이다. 그런데 샤를뤼스 씨는 이 점에서 더 풍부한 시적 상상력과 더 노골적인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메메'를 싫어한 까닭은 이것일 수 없었으니, 그 혐오는 팔라메드라는 훌륭한 이름에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진실은 이러했다. 자신이 대공 가문의 혈통에서 났음을 헤아리고 또 알고 있던 그는, 마리아멜리 왕비와 오를레앙 공작이 자기 아들과 손자, 형제와 조카를 '주앵빌, 느무르, 샤르트르, 파리'라고 부르던 것처럼, 자기 형과 형수가 자기를 '샤를뤼스'라고 불러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메메는 정말 엉큼한 사람이라니까요!' 하고 그녀가 외쳤다. '우리는 몇 시간이나 당신 이야기를 그이에게 했어요. 그이는 당신과 알고 지내면 정말 기쁘겠다고 하더라고요, 마치 당신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듯이 말이에요. 그이가 별나다는 건 당신도 인정해야 해요. 그리고, 내가 이토록 아끼고 정말이지 무척이나 존경하는 시동생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게 그리 곱게 보이진 않겠지만, 그이는 때때로 조금 정신이 나가 있기도 하답니다.'
이 마지막 표현이 샤를뤼스 씨에게 적용된 것에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고, 어쩌면 이 반쯤의 광기가 몇몇 일을 설명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혼잣말을 했다. 이를테면 내가 블로크를 시켜 그 어머니를 매질하게 하라는 자기 제안에 그토록 흡족해하던 일 같은 것 말이다. 나는 샤를뤼스 씨가, 그가 하는 말들 때문만이 아니라 그 말을 하는 방식 때문에도, 조금 정신이 나간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었다. 변호사나 배우의 말을 처음 들을 때면, 우리는 대화체와는 그토록 다른 그 어조에 놀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아주 자연스럽게 여기는 듯한 것을 보고는, 우리는 그 점을 남에게 말하지 않고, 사실 자기 자신에게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그저 드러난 재능의 정도를 음미하는 데 만족한다. 기껏해야 테아트르 프랑세의 어느 배우를 두고 이렇게 생각할 수는 있을 것이다. '왜 저 사람은 치켜든 팔을 자연스럽게 떨구지 않고, 적어도 십 분 동안이나 사이사이 멈추어 가며 잘게 끊어 내리는 걸까?' 혹은 어느 라보리를 두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왜 저 사람은 입만 열면, 가장 단순한 것을 말하는 데도 저토록 비극적이고 뜻밖의 소리를 내는 걸까?' 그러나 모두가 그런 행동을 필요하고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는 까닭에, 우리는 그것에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리하여 곰곰이 따져 본 끝에, 우리는 샤를뤼스 씨가 조금도 예사로운 말투가 아닌 어조로, 지나친 힘을 주어 제 이야기를 한다고 혼잣말을 했다. 아무 때고 그의 말을 이렇게 가로막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십니까? 왜 그리 무례하십니까?' 다만 모두가 그것이 괜찮은 일이라고 암묵적으로 합의해 둔 듯했다. 그리고 우리도 그의 격한 열변에 갈채를 보내는 무리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분명, 어떤 순간에는 낯선 사람이라면 미치광이의 헛소리를 듣고 있다고 여겼을 법도 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착각하시는 게 아닌 게 정말 확실해요? 정말로 제 시동생 팔라메드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하고 공작부인이 말을 이었는데, 그 타고난 소박함 위에 얼마간의 건방짐이 접붙어 있었다.
나는 절대적으로 확실하다고, 그리고 샤를뤼스 씨가 내 이름을 미처 알아듣지 못했던 것이 틀림없다고 답했다.
'그럼, 이제 그만 가 봐야겠어요.' 하고 게르망트 부인이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 말했다. '리뉴 대공비 댁에 잠깐 얼굴을 비쳐야 하거든요. 당신은 거기 안 가시죠? 안 가신다고요? 야회를 좋아하지 않으시는군요? 현명하세요, 말도 못 하게 지루하니까요. 나만 안 가도 된다면 좋으련만. 하지만 그분은 내 사촌인걸요. 안 가면 예의가 아니죠. 순전히 내 욕심으로, 내 처지에서 아쉬운 게, 당신을 거기 데려갔다가 나중에 다시 모셔다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요. 그러니 이제 작별 인사를 할게요, 금요일을 기대하고 있겠어요.'
샤를뤼스 씨가 다르장쿠르 씨에게 나와 함께 있는 모습을 들키고 얼굴을 붉힌 것이야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자기를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자기 형수에게, 게다가 내가 그의 이모와 조카 양쪽 모두의 벗이라는 점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나와의 친분을,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다니, 그것은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일에 관한 이야기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게르망트 부인에게는 참된 위대함이 있었다는 말로 맺으려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라면 어렴풋이 잊었을 뿐일 것을 그녀는 기억에서 온전히 지워 버린다는 데 있었다. 내가 그녀를 기다렸다가 뒤쫓고, 아침 산책에 나선 그녀를 추적하는 것을 그녀가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해도, 나의 날마다의 인사에 성난 조바심으로 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해도, 생루가 나를 집에 초대해 달라고 간청했을 때 그녀가 거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해도, 그녀가 지금 나를 이보다 더 고결하거나 더 정중한 태도로 맞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지난 일을 돌이키는 해명이나 넌지시 던지는 말, 암시나 애매한 미소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과거를 되짚는 일도 스스럼도 없는 지금의 그 상냥함 속에는, 그녀의 위엄 있는 자태만큼이나 당당하게 곧은 무언가가 있었으며, 게다가 그녀가 과거에 누군가에게 품었을 법한 원한은 어찌나 남김없이 재로 스러졌던지, 그 재조차 그녀의 기억에서, 적어도 그녀의 태도에서 너무나 온전히 떨쳐 내어져, 그토록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라면 케케묵은 반감과 앙갚음을 되살릴 구실이 되었을 일을 더없이 절묘하게 덜어 내어 다룰 때마다,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노라면 지극히 순수한 정신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에 대한 그녀의 견해에 일어난 변화가 나를 놀라게 했다면, 그녀에 대한 나의 감정에서 그와 비슷하되 훨씬 더 큰 변화를 발견한 것은 얼마나 더 나를 놀라게 했던가. 언젠가 나는, 늘 새로운 공중누각을 쌓으면서, 그녀의 집에 초대받도록 주선해 주고 이 첫 은혜에 이어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내 마음을 위해 또 다른 많은 초대를 얻어다 줄 누군가를 찾아야만 삶과 기운을 되찾을 수 있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거기서 아무런 통로도 찾지 못한 탓에 나는 파리를 떠나 로베르 드 생루를 만나러 동시에르로 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나를 동요시킨 것은 다름 아닌 그가 보낸 편지의 결과였지만, 이번에는 게르망트 부인이 아니라 스테르마리아 부인 때문이었다.
이 야회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며칠 뒤에 뒤집히기는 했으나 두고두고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한동안 블로크와의 우정을 끊어 놓았으며, 그 자체로 이 저작의 다음 편에서 해명을 보게 될 기묘한 역설 가운데 하나를 이루는 한 사건이 거기서 일어났다는 것을 덧붙여 두겠다. 빌파리지 부인 댁의 이 야회에서, 블로크는 샤를뤼스 씨가 자기에게 보여 준 다정한 관심을 나에게 자꾸 자랑해 댔다. 그의 말로는, 샤를뤼스 씨가 길에서 자기와 마주칠 때면 마치 자기를 알아보기라도 하는 듯 정면으로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고, 몸소 알고 지내고 싶어 했으며, 자기가 누구인지 아주 잘 알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미소를 지었으니, 발베크에서 블로크가 바로 그 샤를뤼스 씨에 대한 경멸을 그토록 격하게 드러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블로크가 베르고트를 두고 자기 아버지가 그랬듯이 남작을 '실제로 알지는 못하면서 아는' 것이려니, 그리고 그가 다정한 눈길로 여긴 것은 딴생각에 잠긴 방심 탓이려니 짐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마침내 블로크가 어찌나 구체적으로 말하고, 샤를뤼스 씨가 두세 번이나 자기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다고 어찌나 자신 있게 굴던지, 나는 내가 남작에게 내 친구 이야기를 했던 일, 그리고 남작이 바로 이 집에서 함께 걸어 나오던 길에 마침 그에 관해 이런저런 것을 물었던 일을 떠올리고서, 블로크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며, 샤를뤼스 씨가 그의 이름을 듣고 그가 내 친구임을 알아차렸다는 것 따위를 알게 되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하여 얼마 뒤 어느 날 저녁 극장에서, 나는 샤를뤼스 씨에게 블로크를 소개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그가 허락하자 내 친구를 찾으러 갔다. 그러나 샤를뤼스 씨는 그를 보자마자, 이내 억눌리기는 했으나 놀라움의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고, 그것은 타오르는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블로크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블로크가 말을 걸 때마다 더없이 무례한 태도로, 성나고 모욕적인 어조로 대답했다. 그리하여 블로크는, 자기 말로는 그때까지 남작에게서 미소밖에 받은 것이 없었으므로, 내가 샤를뤼스 씨의 격식을 좋아하는 성미를 알고서 그를 데려가 소개하기 전에 짤막하게 내 친구 이야기를 하던 그 말에서, 사실은 그를 칭찬하기는커녕 헐뜯은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블로크는, 늘 재갈을 물어 버리려 드는 말에 올라타려 애쓰던 사람처럼, 혹은 자기를 자꾸만 자갈밭으로 되밀어 붙이는 파도를 거슬러 헤엄치려 애쓰던 사람처럼, 기가 꺾인 채 우리 곁을 떠났고, 그 뒤로 여섯 달 동안 나에게 다시 말을 걸지 않았다.
스테르마리아 부인과의 저녁 식사를 앞둔 나날은 나에게 결코 즐겁지 않았으니, 사실 그날들을 견뎌 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대체로 우리가 세워 둔 목표에서 우리를 갈라놓는 간격이 짧을수록 그것이 더 길게 느껴지는 법인데, 우리가 거기에 더 촘촘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거나, 그저 그것을 재어 볼 생각이 문득 떠오르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교황청은 세기로 헤아리며, 어쩌면 시간을 헤아릴 생각조차 하지 않을지도 모르니, 그 목표가 영원 속에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목표는 사흘밖에 남지 않았고, 나는 초 단위로 헤아렸으며, 애무의 첫 몸짓이라 할 그런 상상들에, 여자 자신으로 하여금 되돌려 완성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 우리를 미칠 듯이 안달하게 하는 그런 애무, 다른 모든 것을 제쳐 둔 바로 그 애무의 상상들에 나를 내맡겼다. 그리고 사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욕망의 대상에 이르기 어려운 것이 그 욕망을 부추긴다는 것은 옳다(어려움이지 불가능함은 아니니, 불가능함은 욕망을 아예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순전히 육체적인 욕망의 경우에는, 그것이 정해진, 그리 멀지 않은 시점에 이루어지리라는 확실함도 불확실함 못지않게 사람을 들뜨게 한다. 애태우는 의심에 거의 맞먹을 만큼, 의심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반드시 오고야 말 쾌락을 기다리는 시간을 견딜 수 없게 만드는데, 그 기다림을 헤아릴 수 없이 여러 번 되풀이해 본 성취로 바꾸어 놓고, 미리 그려 보는 그 표상들의 잦음으로 인해 시간을, 고통이 새겨 낼 수 있을 만큼이나 잘디잔 토막들로 나누어 놓기 때문이다. 내가 원한 것은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차지하는 것이었으니, 지난 며칠 동안 쉼 없는 활동으로 나의 욕망들이 상상 속에서 이 쾌락을, 오직 이 쾌락만을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종류의 쾌락도(곧 다른 여자와 누리는 쾌락도) 채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터인데, 쾌락이란 앞선 소망의 실현일 뿐이고, 그 소망은 늘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공상이 이루는 끝없는 조합, 기억의 우연, 기질의 상태, 욕망의 변덕에 따라 달라지며, 가장 최근에 채워진 욕망은 그 충족의 실망이 어느 정도 잊힐 때까지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채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니, 이미 나는 일반적인 욕망들의 큰길에서 벗어나 어느 특정한 욕망의 오솔길로 접어들어 있었다. 다른 만남을 바라려면, 큰길로 되돌아가 또 다른 길로 접어들기 전에 너무 멀리 되짚어 가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그녀에게 함께 저녁을 들자고 청한 불로뉴 숲 속의 섬에서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차지하는 것, 이것이 매 순간 내가 새로이 그려 보던 쾌락이었다. 그 섬에서 스테르마리아 부인 없이 저녁을 먹었더라면 그 쾌락은 절로 스러졌을 것이고, 그녀와 함께라도 다른 어딘가에서 저녁을 먹었더라면 어쩌면 그만큼이나 줄어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어떤 쾌락을 마음속에 그려 보는 그 정황들은, 그 쾌락을 안겨 줄 여자보다, 그런 여자의 유형보다 먼저 존재한다. 그 정황들이 쾌락을 지시하고, 장소마저 지시하며, 그런 까닭에 우리의 변덕스러운 공상 속에서, 다른 주에는 경멸하며 물리쳐 버렸을 이 여자 저 여자, 이 장면 저 장면, 이 방 저 방을 번갈아 앞으로 불러낸다. 어떤 여자는 자기를 낳은 그 정황의 자식이어서, 우리가 그 곁에서 평온을 얻는 커다란 침대 없이는 우리 마음을 끌지 못하고, 또 어떤 여자들은 더 은밀한 뜻으로 어루만져지기를 바라며, 바람에 흩날리는 잎사귀, 밤에 잔물결 이는 물을 요구하니, 그 여자들은 그것들만큼이나 여리고 덧없다.
물론 예전에는, 생루의 편지를 받기 훨씬 전, 스테르마리아 부인이라는 문제가 아직 있지도 않았을 무렵, 불로뉴 숲 속의 그 섬은 나에게 유난히 쾌락을 위해 마련된 곳처럼 보였으니, 정작 그 그늘 아래에서 누릴 쾌락이 하나도 없다는 쓰라림을 맛보러 거기로 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 섬으로 건너가는 호숫가, 여름의 마지막 몇 주 동안 아직 시골로 떠나지 않은 파리의 부인들이 바람을 쐬러 나오는 그 호숫가를 따라, 그녀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몰라, 혹은 그녀가 이미 파리를 떠난 것은 아닌지 몰라, 사람들은 철의 마지막 무도회에서 사랑에 빠졌던, 그러나 이듬해 봄이 오기까지는 어느 응접실에서도 다시 마주칠 기회가 없을 그 아가씨가 지나가는 것을 볼까 하는 바람으로 거니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의 떠남이 내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전날임을 느끼며, 사람들은 몸을 떠는 물가를 따라, 벌써 첫 붉은 잎 하나가 마지막 장미처럼 피어나는 그 매혹적인 오솔길을 걷고, 저 지평선을 훑는데, 그것은 파노라마에서 쓰이는 방식과는 정반대의 방식이다. 파노라마에서는 둥근 지붕 아래 앞쪽에 놓인 밀랍 인형들이 그 너머의 그림 그린 화폭에 깊이와 부피가 있는 듯한 착각을 주지만, 여기서는 우리 눈이 손질된 정원에서 뫼동과 몽 발레리앙의 자연스러운 언덕으로 아무런 이음매도 없이 옮겨 가느라, 어디에 경계를 두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자연 그대로의 들판이 정원사의 손길이 미친 곳을 넘어 침범하게 만들며, 그 인공적인 매력을 정원의 경계 너머 멀리까지 던져 놓으니, 마치 식물원에서 놓아 기른 진귀한 새들이 날마다 날개 달린 나들이의 자유를 누리며 둘레의 숲들 사이로 날아들어 이국의 가락 한 자락을 울리는 것과도 같다. 여름의 마지막 잔치와 겨울의 유배 사이에서, 사람들은 우연한 만남과 연인의 우수(憂愁)로 이루어진 그 낭만적인 세계를 애타게 헤매며, 그곳이 지도에 그려진 우주 바깥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을 듣더라도, 베르사유에서 테라스 너머로, 반 데르 묄런의 화법처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구름이 뭉게뭉게 몰려든 어느 천문대를 굽어보다가, 그렇게 자연의 경계 위로 솟아오른 뒤에, 저 큰 운하의 끝에서 자연이 다시 시작되는 곳, 바다처럼 눈부신 지평선 위로 간신히 알아볼 듯 말 듯하던 그 마을들이 플뢰뤼스니 니메그니 하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놀라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 마차마저 굴러가 버리고, 이제 그녀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가슴 저린 아픔과 함께 느낄 때면, 사람들은 그 섬으로 저녁을 먹으러 간다. 응답 없는 저녁의 끝없는 신비를 넌지시 일러 주는 듯 몸을 떠는 포플러 나무들 위로, 분홍빛 구름 하나가 고요한 하늘에 마지막 생기의 자취를 그린다. 몇 방울의 빗방울이 소리 없이 물 위로 떨어지는데, 그 물은 오래되었으되 여전히 신성한 어린 시절 속에 잠긴 채, 언제나 날씨에 따라 물들며 구름과 꽃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잊는다. 그리고 제라늄이 제 진홍빛을 더욱 짙게 하여 몰려드는 어둠에 맞서 보려 부질없이 애쓴 뒤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이제 잠든 섬을 감싸고, 사람들은 물가를 따라 축축한 어스름 속을 거니는데, 거기서 기껏해야 백조 한 마리가 소리 없이 지나가는 것이 사람을 흠칫 놀라게 하니, 마치 밤중에 침대에서, 잠들어 있으리라 여겼던 아이가 한순간 눈을 크게 뜨고 재빨리 짓는 미소가 그러하듯 말이다. 그럴 때면 사람들은 곁에 사랑하는 동무 하나를 두고 싶어지니, 자신이 홀로임을 느끼고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상상할 수 있는 만큼 더욱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