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여름에도 흔히 안개가 끼던 이 섬에, 이제 추운 철이, 늦가을의 끝자락이 온 마당에, 나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얼마나 더 기꺼이 데려오고 싶었던가. 일요일부터 이어진 날씨가 그것만으로도, 다른 철들이 내 상상을 향긋하고 환하고 이탈리아풍으로 물들이던 것과 달리, 내 상상이 깃들어 사는 풍경들을 잿빛의 바닷가 풍경으로 만들어 놓지 않았더라도, 며칠 뒤면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내 것으로 만들리라는 희망만으로도, 한결같이 상사병에 잠긴 내 상상 속에 한 시간에도 스무 번씩 안개의 장막을 드리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아무튼 어제부터 파리에조차 피어오른 그 안개는, 내가 저녁 식사에 초대한 젊은 여인의 고향을 끊임없이 떠올리게 했을 뿐 아니라, 도시의 거리보다 훨씬 더 짙게 해가 진 뒤 숲을, 특히 호숫가를 뒤덮고 있을 것이 뻔했으므로, 그 안개가 나에게는 백조의 섬을, 그 바닷가의 안개 낀 대기가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스테르마리아 부인의 창백한 윤곽을 옷처럼 감싸던 그 브르타뉴의 섬 같은 것으로 만들어 주리라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우리가 젊을 때, 곧 내가 메제글리즈 쪽을 거닐던 시절에 이르렀던 나이에는, 우리의 욕망과 믿음이 한 여자의 옷차림에 저마다의 개성을, 궁극의 정수(精髓)를 부여한다. 우리는 실재를 좇는다. 그러나 그것이 자꾸만 빠져나가게 내버려 두다 보면, 마침내 우리는 아무런 결실도 없던 그 온갖 헛된 노력 끝에도, 무언가 단단한 것이 남아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줄곧 찾던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가려내고 알아보기 시작하며, 비록 술수를 써서라도 그것을 손에 넣으려 애쓴다. 그러다 사라져 버린 우리의 믿음이 없는 자리를, 의도된 착각으로써 옷차림이 메운다. 나는 집에서 반 시간 거리 안에서 브르타뉴에 있게 될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스름 녘 섬의 물가에서 스테르마리아 부인과 팔짱을 끼고 걷노라면, 나는 수도원의 담을 뚫고 들어갈 수 없어, 여자를 안기 전에 적어도 그 여자에게 수녀의 옷을 입혀 보는 다른 사내들처럼 행동하는 셈이 되리라.
나는 그 부인과 나란히 앉아 물결이 찰싹이는 소리를 듣게 되기까지 기대할 수 있었으니, 우리의 저녁 식사 전날 파리에 폭풍이 몰아쳤기 때문이다. 나는 섬으로 가서 방을 잡고(하기야 이맘때면 섬은 텅 비고 식당도 손님이 없었지만) 이튿날 저녁 식사에 낼 음식을 주문하기에 앞서 면도를 시작하던 참인데, 프랑수아즈가 들어와 알베르틴이 찾아왔다고 알렸다. 나는 곧바로 그녀를 들어오게 했으니, 까칠하게 돋은 턱수염으로 볼썽사나워진 내 모습을 그녀에게 보이는 것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발베크에서 나는 그녀 앞에서만은 도무지 말끔하다고 느껴 본 적이 없었고, 그녀는 그때 나에게 지금 스테르마리아 부인이 안겨 주는 것만큼이나 많은 동요와 괴로움을 안겨 주었건만. 스테르마리아 부인만은, 우리의 그날 저녁 자리에서 되도록 좋은 인상을 안고 돌아가게 해야 한다고 나는 마음먹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알베르틴에게 지금 당장 나와 함께 섬으로 가서 음식을 주문하자고 청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바치는 여자는 어찌나 빨리 다른 여자로 대체되는지, 앞으로 아무런 보답도 바랄 수 없이 매 순간 가진 것을 죄다 새로 내주고 있는 자신을 보고 우리는 놀라게 된다. 내 제안에, 눈썹까지 아주 낮게 눌러쓴 알베르틴의 납작한 모자 아래 미소 띤 발그레한 얼굴이 망설이는 듯했다. 아마도 그녀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녀는 그것을 기꺼이 희생한 셈인데, 나로서는 무척 흡족한 일이었으니, 나보다 저녁 식사 주문에 대해 훨씬 더 잘 아는 젊은 살림꾼을 곁에 두는 것을 나는 더없이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녀가 발베크에서는 나에게 전혀 다른 무언가를 뜻했다는 것은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여자와의 친밀함은, 당시에는 그것이 충분히 가깝지 않다고 여길 때조차, 사랑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를 아프게 하던 온갖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우리 사이에 우리의 사랑보다도, 나아가 그 사랑의 기억보다도 더 오래 남는 사회적 유대를 맺어 놓는다. 그렇게 되면, 이제 우리에게 다른 이들에게로 다가가는 수단, 통로에 지나지 않게 된 그 여자를 두고, 그 이름이 애초에 그 시절의 우리였던 저 다른 존재에게 무엇을 뜻했는지를 우리 기억에서 알게 될 때, 우리는 꼭, 마부에게 카퓌신 대로나 뒤 바크 거리의 주소를 일러 주며 거기서 만날 사람만을 생각하다가, 그 이름들이 한때는 각각 그 자리에 수도원이 서 있던 카퓌친 수녀들의 이름이었고 센 강을 건너는 나루의 이름이었음을 문득 떠올릴 때처럼, 그만큼 놀라고 또 재미있어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의 발베크 시절 욕망들은 알베르틴의 몸을 아낌없이 무르익게 하여, 그 안에 그토록 싱그럽고 달콤한 맛들을 모아 쟁여 두었으므로, 우리가 마차를 타고 숲을 지나는 동안, 바람이 알뜰한 정원사처럼 나무들을 흔들어 열매를 떨구고 진 잎을 쓸어 담는 사이, 나는 혼잣말을 했다. 만에 하나 생루가 잘못 알았거나 내가 그의 편지를 잘못 이해해서, 스테르마리아 부인과의 저녁 식사가 아무런 흡족한 결말에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나는 같은 날 저녁 더 늦은 시각에 알베르틴과 약속을 잡아 두어, 순전히 관능적인 한 시간 동안, 내 호기심이 이미 오래전에 그 온갖 매력을 헤아리고 가늠해 둔, 그리고 이제 그 매력이 넘쳐흐르는 몸을 품에 안고서,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향한 이 첫 단계 사랑의 설렘을, 그리고 어쩌면 그 회한마저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고. 그리고 만약 스테르마리아 부인이 첫 만남에서는 나에게 어떤 호의도 베풀지 않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면, 나는 그녀와의 저녁에 대해 다소 우울한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우리가 알지도 못한 채 욕망해 온 여자, 그녀의 아직 낯선 실제 모습보다 그녀가 잠겨 있는 그 특별한 종류의 삶을 오히려 사랑하는 그런 여자를 향한 사랑의 첫 단계에서 우리 안에 일어나는 두 국면이, 사실들의 세계에서, 곧 이제 더는 우리 자신 안이 아니라 그녀와의 만남 속에서 얼마나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치는지를, 나는 경험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그녀와 이야기 한 번 나눠 본 적도 없이, 그녀가 우리에게 지녔던 그 시적 매혹에 이끌려 망설였다. 이 여자로 할까, 다른 여자로 할까? 그러다 어느새 우리의 꿈은 그녀를 둘러싸고 굳어져, 그녀와 따로 떨어진 존재이기를 그친다. 곧 뒤따를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 움트는 사랑을 비추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마치 우리의 물질적 삶에도 그 첫 시기가 있어야만 한다는 듯이, 우리는 이미 그녀에게 반해 있으면서도 더없이 시시껄렁하게 그녀에게 말을 건다. '이 섬으로 저녁을 드시러 오시라 한 건 이 언저리가 재미있으실 것 같아서였어요. 딱히 드릴 말씀이 있는 건 아니고요. 그런데 좀 눅눅하네요, 추우실지도 모르겠어요.' '아, 아니에요, 전혀요!' '그냥 예의로 그러시는 거죠. 좋아요, 부인, 십오 분만 더 추위와 싸우시도록 두겠어요, 성가시게 해 드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십오 분 뒤엔 억지로라도 모셔 가겠어요. 감기 드시게 두고 싶지 않거든요.' 그리고 우리는 더 말없이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며,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기껏해야 그 눈빛 하나쯤을 기억하면서도, 오직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만을 한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남에서(그 유일한 기억이던 눈빛조차 다시 찾지 못하면서도, 그럼에도 오직 그녀를 다시 만날 생각만을 해 왔건만), 첫 단계는 지나가 버린다. 그사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식당이 편안하니 어떠니 하는 이야기 대신, 우리 눈에는 영락없이 밋밋해 보이지만 그녀 삶의 매 순간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으리라 믿고 싶은 그 새로운 사람을 우리 말이 놀라게 하는 기색도 없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앞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를 이겨 내려면 우리도 애를 좀 써야겠어요. 우리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우리의 적들을 이기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뭐 그런 것들을 다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나 처음에는 시시하다가 이내 사랑을 넌지시 비추는 이런 대화의 실마리들은 필요 없을 터였다. 그 점은 생루의 편지를 믿을 수 있었다. 스테르마리아 부인은 첫날부터 나에게 몸을 맡길 터였으니, 나로서는 그날 저녁 늦게 알베르틴을 임시방편으로 불러들일 필요가 없었다. 그것은 쓸데없는 일일 터였다. 로베르는 결코 과장하는 법이 없었고, 그의 편지는 분명했다.
알베르틴은 내 생각이 딴 데 가 있음을 눈치채고 거의 말이 없었다. 우리는 빽빽이 우거진 나무들이 이루는, 거의 바닷속 같은 푸르스름한 동굴 안으로 걸어서 조금 들어갔는데, 그 둥근 우듬지 위로 바람이 몰아치고 비가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개껍데기처럼 흙 속으로 짓밟혀 든 낙엽을 발밑에 밟았고, 성게처럼 가시 돋친 떨어진 밤송이를 지팡이로 쿡쿡 찔러 보았다.
나뭇가지에 마지막까지 매달린 잎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제 줄기가 허락하는 데까지만 바람을 뒤따랐다. 그러나 이따금 그 줄기가 끊어지면, 잎들은 땅으로 떨어져 그 위를 내달으며 바람을 따라잡으려 했다. 나는 이 날씨가 이어진다면 섬이 이튿날에는 얼마나 더 멀어져 있을지, 그리고 어차피 완전히 텅 비어 있으리라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헤아렸다. 우리는 마차로 돌아왔고, 폭풍이 지나간 터라 알베르틴은 나에게 생클루까지 데려다 달라고 청했다. 땅 위에서 낙엽이 흩날리듯, 저 위 하늘에서는 구름이 바람을 뒤쫓고 있었다. 그리고 떠나가는 저녁들의 흐름이, 하늘을 가른 일종의 원뿔 단면이 분홍빛, 푸른빛, 초록빛으로 층층이 겹쳐 보이게 하는 그 저녁들이, 더 따뜻한 고장으로 떠날 채비를 하며 한데 모여 있었다. 제 받침돌에서 막 뛰어오르는 모습으로 새겨진, 그리고 자기에게 바쳐진 듯한 넓은 숲속에 홀로 서서, 그 미쳐 날뛰는 도약의, 반은 짐승 같고 반은 신 같은 신화적 공포로 숲을 가득 채우는 대리석 여신상을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알베르틴은 풀 덮인 비탈을 기어 올라갔고, 나는 길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아래에서 올려다본 그녀는, 며칠 전 내 침대 위에서, 내 눈이 그녀 몸에 다가갈 때 그 렌즈에 목의 살결이 도드라져 보이던 그때처럼 우툴두툴하고 통통하지 않고, 오히려 곱게 다듬어진 섬세한 모습이어서, 발베크에서 함께 보낸 우리의 행복한 시간들이 그 위에 고운 녹빛을 입혀 놓은 작은 조각상 같았다. 다시 집에 홀로 있게 되어, 그날 오후 알베르틴과 함께 마차를 탔다는 것을, 이틀 뒤에는 게르망트 부인과 저녁을 들기로 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질베르트의 편지에 답장을 써야 한다는 것을, 곧 한때 내가 저마다 사랑했던 세 여자를 떠올리며, 나는 혼잣말을 했다. 우리의 사교적 삶이란 화가의 화실과도 같아서, 위대한 사랑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한순간 영원한 형태로 담아낼 수 있으리라 여겼던 버려진 밑그림들로 가득하다고. 그러나 그 밑그림이 너무 오래된 것만 아니라면, 때로 우리가 거기로 되돌아가, 처음에 계획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이튿날은 춥고 맑았다. 겨울 기운이 감돌았고, 실은 철이 어찌나 깊었던지, 이미 약탈당한 숲에서 금빛 도는 초록 둥근 나뭇잎 무리를 몇 군데나마 보게 된 것이 기적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동시에르의 병영 창문에서 보던 것처럼, 햇빛 속에 흥겹게 걸려 있는, 실솜사탕처럼 촘촘하고 달콤한 한결같은 새하얀 안개를 보았다. 이윽고 해가 물러가자 안개는 오후 들어 더욱 짙어졌다. 밤은 일찍 내렸고, 나는 저녁 식사 채비를 했으나 나서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나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 마차를 보내기로 했다. 내 동행을 그녀에게 억지로 떠안기고 싶지 않아 몸소 마차로 그녀를 데리러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부 편에 그녀에게 짤막한 쪽지를 들려 보내 내가 데리러 가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커튼 위쪽으로는 이제 점점 희미해져 가는 한 줄기 가느다란 햇빛뿐이었다. 나는 그 헛되이 흘려보내는 시간을, 쾌락의 널따란 대기실을, 발베크에서 알고 즐기게 된 그 어둡고 감미로운 공허를 알아보았다. 그때도 지금처럼 방 안에 홀로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저녁을 먹고 있는 사이, 나는 커튼 위로 햇빛이 스러지는 것을 아쉬움 없이 바라보았으니, 이내 극지방의 밤처럼 짧은 밤이 지나고 나면 리브벨의 불 밝힌 방들에서 한층 눈부신 광채로 그것이 되살아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검은 넥타이를 매고 머리에 솔질을 했으니, 이는 발베크에서 나 자신이 아니라 리브벨에서 보게 될 여자들을 마음에 두고, 방 한구석에 비스듬히 놓인 거울 속 그녀들에게 미리 미소를 지어 보이며 뒤늦게 매무새를 다듬던 마지막 몸짓들이었고, 그런 까닭에 음악과 불빛이 어우러지는 어떤 여흥을 예고하기를 멈추지 않던 몸짓들이었다. 그 몸짓들은 마법의 표지처럼 그 여흥을 불러냈으니, 아니 오히려 이미 눈앞에 펼쳐 보였다. 그 덕분에 나는, 콩브레에서 칠월에 포장 상자에 망치질하는 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으며, 어둑한 방의 서늘함 속에서 따뜻함과 햇살의 느낌을 누렸던 그때만큼이나, 그 여흥이 지닌,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경박한 매력을 온전히 누렸다.
게다가, 내가 무엇보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은 이제 꼭 스테르마리아 부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날 저녁을 그녀와 함께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보니,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 거의 마지막 저녁이었던 만큼, 차라리 그 저녁이 자유롭게 남아 나 혼자 리브벨에서 만났던 여자들 몇을 찾아 나서는 편이 나았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손을 한 번 더 마지막으로 씻고는, 쾌감이 나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통에, 덧문을 닫은 식당을 가로질러 걸으며 손을 닦았다. 식당에는 불 밝힌 현관으로 통하는 문이 열려 있는 듯 보였지만, 내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밝은 빛이라 여겼던 것은, 사실 그 문은 닫혀 있었으니,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제자리에 붙이려고 벽에 기대어 두었던 거울에 내 수건이 비쳐 반짝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집 안 여기저기에서 발견했던 그와 같은 온갖 착각을 떠올렸는데, 그것들은 시각적인 것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처음 그곳에 왔을 때 나는 옆집 사람이 개를 기르는 줄로만 알았으니, 수도꼭지를 틀 때마다 부엌의 어느 관에서 끊임없이, 거의 사람 소리 같은 낑낑거림이 새어 나왔기 때문이다. 바깥 층계참으로 통하는 문은, 계단의 바람결에 걸려 저 혼자 아주 살며시 닫힐 때면, 언제나 탄호이저 서곡 끝머리에서 순례자들의 합창 위로 울려 퍼지는 저 끊어질 듯한, 관능적이고 흐느끼는 듯한 악절을 어김없이 자아냈다. 게다가 나는 수건을 걸이에 막 도로 걸어 놓았을 때 이 눈부신 교향적 단편을 새로이 한 번 더 들을 기회를 얻었으니, 초인종이 울리자 나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의 답을 가지고 온 마부에게 문을 열어 주려고 서둘러 나갔던 것이다. 나는 그가 전할 말이 “부인께서 아래층에 계십니다”라거나 “부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편지가 들려 있었다. 나는 스테르마리아 부인이 무어라 썼는지 보기 전에 잠시 머뭇거렸다. 펜을 손에 쥐고 있는 동안에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으련만, 이제 그녀에게서 떨어져 나온 그것은 운명의 기관이 되어, 그녀로서는 도무지 바꿀 힘이 없는 길을 홀로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마부에게 잠시 아래층에서 기다려 달라고 청했다. 그는 안개를 욕하고 있었지만. 그가 가자마자 나는 봉투를 뜯었다. 알릭스 드 스테르마리아 자작부인이라 새겨진 명함에 손님은 이렇게 적어 놓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오늘 저녁 불로뉴 숲 섬에서 함께 식사하기로 한 약속을 공교롭게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고대하고 있었는데요. 스테르마리아에서 제대로 편지를 올리겠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삼가 인사드립니다.” 나는 받은 충격에 얼이 빠진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발치에는 명함과 봉투가, 총알이 발사되고 난 뒤 총에서 튀어나온 빈 탄피처럼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주워 들고 그녀의 전갈을 헤아려 보려 했다. “그녀는 불로뉴 숲 섬에서는 나와 함께 식사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어딘가에서라면 함께 식사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새길 수 있겠다. 내가 굳이 그녀를 데리러 갈 만큼 눈치 없이 굴지는 않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제법 그럴듯한 해석이다.” 그리고 지난 며칠 동안 내 생각은 스테르마리아 부인과 더불어 미리 그 불로뉴 숲 섬에 가 있었던 터라, 나는 그 생각을 지금 내가 있는 곳으로 도로 데려올 수가 없었다. 내 욕망은 벌써 몇 시간째 줄곧 그것을 끌어당기던 그 인력에 저절로 응하고 있었고, 이 전갈은 그 힘을 거스르기에는 너무 방금 온 것이어서, 나는 마치 시험관에게 낙제 판정을 받고도 문제 하나를 더 풀어 보려는 수험생처럼, 본능적으로 계속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프랑수아즈에게 내려가 마부에게 삯을 치르라고 이르기로 했다. 복도를 지나가 봐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고, 식당을 가로질렀는데, 그곳에서 문득 맨바닥을 딛던 내 발소리가 나던 것을 멈추고 고요 속에 잦아들었으니, 그 까닭을 채 깨닫기도 전에 나는 숨이 막히고 갇힌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양탄자였다. 부모님이 돌아오실 것에 대비해 하인들이 다시 깔기 시작한 그 양탄자, 화창한 아침이면 그 어수선함 가운데 햇살이 시골로 점심을 먹으러 데려가려고 찾아온 벗처럼 머물러 기다리며, 그 위에 숲의 얼룩진 빛과 그늘을 드리우는, 그토록 보기 좋던 그 양탄자가, 이제는 도리어 겨울 감옥의 첫 채비였으니, 나는 집에서 살고 집에서 끼니를 들어야 할 처지라, 마음 내킬 때 그곳을 벗어날 자유를 이제 더는 누리지 못할 것이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도련님. 아직 못을 안 박았어요.” 프랑수아즈가 나를 불렀다. “불을 켜 놨어야 했는데. 아이고, 벌써 ‘구울’ 말이네요, 좋은 날은 다 갔어요.” 눈 깜짝할 새 겨울이었다. 창 한 귀퉁이에는, 갈레 유리에서처럼, 얼어붙은 눈의 결이 서리고, 샹젤리제에조차 만나기를 기다리는 아가씨들 대신 외로운 참새들뿐이었다.
스테르마리아 부인을 만나지 못하게 된 내 괴로움을 더한 것은, 그녀의 답장으로 미루어 보건대, 일요일 이래로 나는 시시각각 오로지 이 저녁 식사만을 위해 살아왔건만 그녀는 아마 그것을 다시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으리라는 짐작이었다. 훗날 나는 그녀가 어느 젊은 남자와 느닷없이 맺은 어처구니없는 연애결혼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그 남자를 그녀는 분명 이 무렵에 이미 만나고 있었을 터이고, 그가 아마도 그녀로 하여금 내 초대를 잊게 만들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어차피 내가 보내기로 되어 있지도 않던 마차를 굳이 기다렸다가 자기가 다른 약속이 있다고 알려 오는 일은 결코 없었을 테니까. 안개 낀 섬 위의 젊은 봉건 시대 처녀에 대한 내 몽상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사랑에 이르는 길을 닦아 놓았던 것이다. 이제 내 실망과 분노, 방금 나를 거절한 그녀를 되찾고 싶다는 절박한 욕망은, 내 감수성을 작동시킴으로써, 그때까지는 내 상상만이, 그것도 훨씬 헐겁게 내게 내밀던 그 있을 법한 사랑을 뚜렷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우리 기억 속에는, 그리고 우리가 잊어버린 것 가운데는, 저마다 다른 이 소녀들과 젊은 여인들의 얼굴이 얼마나 많은가. 오로지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우리 손을 빠져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어떤 매력과 그들을 다시 보고 싶다는 미칠 듯한 욕망을 덧입힌 그 얼굴들이. 스테르마리아 부인의 경우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으니, 이제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에는 그녀를 다시 만나 그토록 생생하되 너무나 짧던 그 인상들을 되살리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런 되살림이 없이는 내 기억이 우리가 떨어져 있을 때 그것들을 살아 있게 지킬 힘이 없을 터였다. 사정은 내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나는 그녀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내가 사랑한 것은 그녀가 아니었으나, 얼마든지 그녀였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내게 닥쳐올 그 큰 사랑을 아마도 가장 잔인하게 만든 것 가운데 하나는, 이 저녁을 떠올릴 때면 내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뇌곤 했다는 점이다. 내 사랑은 아주 평범한 상황이 조금만 달라졌더라면 다른 곳으로,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로 향할 수도 있었으니, 그토록 머지않아 내게 그 사랑을 불어넣은 여인에게 그것이 적용된 것은, 내가 그토록 간절히 믿고 싶고 믿어야만 했던 것과는 달리, 절대적으로 필연이거나 예정된 것은 아니었다고.
프랑수아즈는 내가 불을 피우기도 전에 거기 그러고 있는 게 어리석은 짓이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나를 식당에 홀로 남겨 두었다. 그녀는 내 저녁상을 차리러 갔으니, 부모님이 돌아오시기 전이라도 바로 이날 저녁부터 나의 칩거가 시작될 참이었다. 나는 아직 둘둘 말린 채 찬장 한쪽 끝에 기대어 세워진 커다란 양탄자 뭉치를 보고는, 그 속에 머리를 파묻고, 유대인들이 상중에 재로 머리를 뒤덮던 것처럼 내 눈물과 함께 그 먼지를 삼키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몸을 떤 것은 방이 추워서만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눈물이 뚜렷한 체온 저하를 불러오기 때문이었다. 그 눈물은 우리 눈에서 방울방울, 가늘고 스며드는 얼음 같은 비처럼 떨어지며, 도무지 그칠 줄 모르고 흐를 것만 같은데, 우리는 그 위험에 대해, 그리고 덧붙이자면 결코 불쾌하지만은 않아서 굳이 맞서 떨쳐 내려 하지 않는 그 느낌에 대해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는다. 문득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되나? 프랑수아즈가 자네 식당에 있을 거라더군. 자네 목에 나쁘지 않다면 어디 나가서 저녁이나 함께 들지 않겠나 해서 들여다봤네. 밖에는 칼로 벨 수 있을 만큼 안개가 자욱해.”
그것은, 내가 아직 모로코에 있거나 바다 위에 있으려니 여기던 바로 그가 그날 아침 파리에 도착한 것이었으니, 로베르 드 생루였다.
나는 우정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미 말한 바 있다(사실 발베크에서, 로베르 자신이 아무런 의도 없이 나로 하여금 이 결론에 이르도록 거들어 주었다). 곧 우정이란 너무나 하찮은 것이어서, 니체 같은 얼마간 천재라 할 만한 사람들이 거기에 어떤 지적 가치를 부여하고, 그리하여 지적인 존경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우정을 스스로 마다할 만큼 어수룩했다는 것을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 자기 자신에 대한 성실함을 어찌나 높은 경지까지 밀어붙였던지 양심의 가책 때문에 바그너의 음악을 스스로 끊어 버린 사람이, 대체로 우리의 행위가, 특히 우정의 행위가 내놓는, 본디 막연하고 미흡한 표현 방식으로 진리에 다다를 수 있으리라 여기거나, 자기 일을 내려놓고 벗을 만나러 가서 루브르가 불탔다는 헛소문을 듣고 그와 더불어 눈물을 흘리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으리라 상상하는 것은, 내게 늘 놀라운 노릇이었다. 나는 발베크에서, 한 무리의 소녀들과 어울려 노는 즐거움이, 적어도 정신적 삶에 낯선 채로 남아 있는 만큼, 우정보다는 그 삶을 덜 파괴한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우정의 노력은 온통, 우리 자신의 유일하게 참되고 (예술이라는 통로를 빼면) 전할 길 없는 부분을, 어떤 피상적 자아에 희생시키도록 우리를 몰아가는 데로 향하는데, 그 피상적 자아는 다른 자아처럼 제 안에서 어떤 기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버팀목에 떠받쳐지고 낯선 인격에게 융숭히 대접받는다는 느낌 속에서 막연하고 감상적인 이끌림을 느낄 뿐이며, 거기서 베풀어지는 보호에 흡족해하며 제 안락을 따뜻한 인정 속에 내뿜고, 제 안에서라면 결점이라 규탄하며 고치려 들 성질들에 감탄한다. 게다가 우정을 비웃는 자들도, 아무런 환상 없이, 그러나 회한이 없지는 않게,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벗이 될 수 있다. 마치 걸작을 머릿속에 품은 예술가가, 차라리 살아남아 제 작업을 이어 가는 것이 제 의무라 느끼면서도,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혹은 정말로 이기적인 사람이 될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려고, 부질없는 명분을 위해 제 목숨을 바치되, 그것을 바치지 않는 편을 택했을 이유들이 사심 없는 것이었던 만큼 더욱 늠름하게 바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정에 대한 내 의견이 어떠하든, 그것이 내게 안겨 준 즐거움만을 말하자면, 그 즐거움은 육체적 탈진과 정신적 권태의 중간쯤 되는 무언가처럼 하찮은 질의 것이지만, 아무리 치명적인 독한 술이라도 어떤 순간에는, 우리에게 꼭 필요했던 자극, 우리 스스로는 자아낼 수 없는 온기를 줌으로써, 값지고 원기를 북돋는 것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이제 내 머릿속에는 생루에게 (한 시간 전만 해도 그토록 가고 싶었던 것처럼) 리브벨 여자들 몇을 보러 데려가 달라고 청할 생각 따위는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 스테르마리아 부인에게 실망하며 남은 상처가 아직 너무 새것이어서 그리 쉽게 아물 리 없었지만, 내 마음속에서 행복할 아무런 이유도 더는 느껴지지 않던 바로 그 순간에 생루가 불쑥 들이닥친 것은, 내게는 외적인 것이 분명하되 나에게 제 몸을 내밀며 오직 내 것이 되기만을 청하는 친절과 유쾌함과 생기가 홀연 나타난 것과도 같았다. 그는 내가 터뜨린 감사의 외침도, 애정의 눈물도 스스로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외교관이든 탐험가든 비행사든, 아니면 생루처럼 군인이든, 이런 벗들 가운데 하나만큼 알 수 없이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이튿날 시골로 떠나 거기서 또 어디로 갈지 하늘이나 알 그들은, 우리에게 바치는 저녁 동안 어떤 인상을 스스로 빚어내는 듯한데, 그것이 그토록 드물고 덧없는 것이면서도 그들에게 그리도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놀라워하고, 또 그것이 그들을 그토록 기쁘게 하는데도 그들이 그 저녁을 더 늘리거나 더 자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을 놀라워한다. 그 자체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우리와의 한 끼 식사가, 이 여행자들에게는 우리네 큰길이 아시아 사람에게 주는 것과 똑같은 야릇하고 절묘한 즐거움을 안긴다. 우리는 함께 저녁을 들러 나섰고, 나는 계단을 내려가며 저녁마다 로베르를 그의 식당에서 만나곤 하던 동시에르를, 그리고 내가 잊고 있던 그곳의 작은 식당들을 떠올렸다. 나는 그중 한 곳, 그때껏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생루가 저녁을 들던 호텔이 아니라 다른 곳, 훨씬 초라한, 여인숙과 하숙집의 중간쯤 되는, 안주인과 그 하녀 한 명이 시중을 들던 그 식당을 떠올렸다. 언젠가 나는 눈보라를 피해 그곳에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날 저녁 로베르는 호텔에서 저녁을 들지 않을 참이었고 나도 더 멀리 갈 마음이 없었다. 내 음식은 위층, 나무 벽이 그대로 드러난 작은 방으로 날라져 왔다. 저녁을 드는 동안 등불이 꺼지자 하녀가 촛불 두 개를 밝혔다. 나는 접시를 내밀며 잘 보이지 않는 척하다가, 그녀가 감자를 덜어 주는 사이 마치 그녀를 이끌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의 드러난 팔뚝을 손으로 잡았다. 그녀가 팔을 빼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그것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녀를 통째로 내게로 끌어당기고는, 촛불을 불어 끄고 내 주머니를 뒤져 돈을 챙기라고 일렀다. 그 뒤 며칠 동안 육체의 쾌락은, 제대로 누리려면 이 하녀뿐 아니라 그토록 외지고 쓸쓸한 그 판자벽 식당까지 있어야 한다고 내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내가 저녁마다 돌아간 곳은, 동시에르를 떠날 때까지, 습관의 힘과 그들에 대한 우정에서, 생루와 그의 벗들이 저녁을 들던 다른 그 식당이었다. 그러나 그가 벗들과 끼니를 들던 이 호텔조차도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생각하지 않게 되었으니,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좀처럼 쓰지 않고, 여름 어스름이나 겨울의 이른 밤 속에, 그래도 어떤 평온이나 즐거움의 요소가 담겨 있을 성싶던 그 시간들을 써 보지도 않은 채 내버려 둔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아주 헛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즐거움의 순간들이 찾아와 우리에게 노래할 때, 그것들만으로는 똑같이 앙상한 윤곽인 채 스쳐 지나갈 텐데, 지난 시간들이 되살아나 그 순간들에 바탕을, 풍요로운 관현악 편성의 단단한 밀도를 실어 준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우리가 이따금씩만 되찾되 여전히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는 저 행복의 한 유형으로 이어진다. 지금의 경우 그 유형이란,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 안락한 곳에서 저녁을 드는 것이었으니, 그곳은 기억의 도움을 받아 자연의 한 정경 속에 여행이 주는 보상의 암시를 담고 있고, 함께한 벗은 온 힘과 애정으로 우리의 잠든 삶을 뒤흔들어, 우리 자신의 노력이나 사교적 소일거리에서 얻을 수 있는 그 무엇과도 사뭇 다른 감정의 즐거움을 우리에게 전해 줄 참이며, 우리는 오직 그를 위해서만 존재하려 하고, 그 시간의 테두리 안에서 태어나 그 안에 갇힌 채 이튿날이면 아마 지켜지지 않을 우정의 맹세를 뇌려 한다. 그러나 나는 생루 앞에서 그런 맹세를 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있을 필요가 없었으니, 상당한 분별과 우정이란 제 깊이를 파헤칠 수 없다는 예감이 뒤섞인 어떤 용기를 지닌 그는, 이튿날이면 떠나고 없을 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