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가면서 나는 동시에르의 저녁들을 다시 살고 있었는데, 거리에 이르자 이내, 이제 거의 완전한 어둠, 안개가 등불을 꺼 놓은 듯한, 바로 곁에 다가서야만 아주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것을 겨우 알아볼 수 있는 그 어둠이, 나를 무언지 모를 어떤 밤의 도착으로, 콩브레로 데려갔다. 그곳 거리들이 아직 아주 긴 간격을 두고서만 불이 밝혀지던 시절, 성탄절 구유의 어둠처럼 축축하고 따뜻하며 성스러운 어둠, 여기저기 촛불만큼도 밝지 않은 심지 하나가 겨우 알아볼 만하게 별처럼 점점이 박힌 그 어둠 속을 더듬어 나아가던 시절로. 정확한 날짜를 붙일 수 없는 내 콩브레 시절의 그 해와, 한 시간 전 내 드리운 커튼 위로 비쳐 오던 리브벨의 저녁들 사이에는, 얼마나 큰 차이의 세계가 있는가! 그것들을 알아차리며 나는 어떤 열광을 느꼈는데, 만약 내가 홀로 남겨졌더라면 그 열광은 열매를 맺어, 이 여러 권의 책이 그 역사를 이루는 저 보이지 않는 소명이 내게 드러나기까지 내가 아직 지나야 했던 여러 헛된 세월의 불필요한 우회를 면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만약 그 계시가 이날 저녁에 내게 찾아왔더라면, 내가 앉아 있던 마차는 페르스피에 박사의 마차보다도 더 기억할 만한 것으로 꼽힐 만했으리라. 나는 그 마차 마부석에서 마르탱빌 종탑에 대한 저 작은 소묘를 지었고, 마침 최근에 그 원고를 다시 손에 넣어 고쳐서는 피가로에 부질없이 보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난 세월을 날마다 이어지는 연속 속에서가 아니라, 어느 아침이나 오후의 서늘함이나 볕에 타는 열기에 매달리고, 어느 외진 곳의 그늘을 받아들이며, 다른 모든 것과 동떨어져 갇히고 붙박이고 멈추고 길 잃은 채 남아 있는 기억 속에서 되사는 까닭에, 그리하여 바깥 세계뿐 아니라 우리의 꿈과 변해 가는 성격 속에서도 어느새 이루어진 변화들, (우리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삶을 가로질러 하나의 시간에서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시간으로 데려간 그 변화들이) 필연적으로 지워지는 까닭에, 만약 우리가 다른 해에서 꺼낸 또 하나의 기억을 되살린다면, 우리는 그 둘 사이에서, 공백들 덕분에, 광대한 망각의 벌판들 덕분에, 이를테면 고도의 차이라는 심연, 혹은 서로 다른 두 성질, 곧 우리가 들이쉬는 공기와 우리 눈앞 정경의 빛깔이라는 두 성질의 어긋남을 발견하게 되는 것일까? 그러나 이제 차례로 내게 떠오른 콩브레와 동시에르와 리브벨의 기억들, 그 하나하나 사이에서 나는 그 순간 시간상의 거리 이상의 것을, 곧 그 안의 물질적 요소가 서로 같지 않은 두 개의 별개 우주 사이에 놓일 법한 거리를 의식하고 있었다. 만약 내가 리브벨에 대한 가장 하찮은 기억들이 새겨진 채 나타나던 그 요소를 되살리려 했다면, 나는 여태껏 콩브레의 거칠고 검은 사암 벽에 비길 만하던 어떤 물질을, 장밋빛 결로 아로새기고, 동시에 반투명하고 촘촘하고 상쾌하고 낭랑한 것으로 빚어내야 했으리라. 그러나 로베르가 마부에게 일러 두기를 마치고 이제 마차 안 내 곁에 올라탔다. 내 앞에 나타났던 관념들은 날아가 버렸다. 관념이란 이따금 홀로 있는 인간에게, 길모퉁이에서, 심지어 잠든 침실에서까지, 문간에 서서 그에게 그들 소식의 수태 고지를 전할 때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기를 기꺼워하는 여신들이다. 그러나 길동무가 그에게 다가서기가 무섭게 그들은 사라져 버리니, 제 동류들 틈에서 그 여신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우정 쪽으로 내던져졌다. 로베르는 처음 나타났을 때 밖에 안개가 꽤 끼었다고 일러 주기는 했으나, 우리가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안개는 꾸준히 짙어져 있었다. 그것은 이제 내가 섬에서 피어올라 스테르마리아 부인과 나를 감싸 주기를 고대하던 그 옅은 안개가 아니었다. 우리에게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가로등이 지워지더니 이내 밤이 되었다. 탁 트인 들판에서처럼, 숲속에서처럼, 아니 차라리 내가 기꺼이 가고 싶었던 어느 포근한 브르타뉴 섬 위에서처럼 캄캄한 밤이. 나는 길을 잃었다. 외딴 여인숙에 다다르기까지 스무 번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어느 북쪽 바다의 황량한 해안에서처럼. 안개는 사람이 찾아 헤매는 신기루이기를 그치고, 맞서 싸워야 할 저 위험들 가운데 하나가 되어, 우리는 길을 찾아 안전한 피난처에 이르는 데서, 그것을 잃을 위협을 받지 않는 이에게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안전이 어리둥절하고 밤길에 갇힌 여행자에게 주는 그 어려움과 불안, 그리고 마침내 기쁨을 맛보았다. 다만 한 가지가 이 모험 같은 마차 길에서 내 즐거움을 하마터면 망칠 뻔했으니, 그것이 잠시 나를 성난 놀라움 속에 몰아넣었기 때문이다. “있잖아, 내가 블로크한테 말했네.” 생루가 불쑥 알려 왔다. “자네가 정말로 그 친구를 대단찮게 여긴다고, 이따금 좀 천박하다고 생각한다고 말이야. 난 그런 사람이야, 알겠나, 사람들이 제 처지를 분명히 알았으면 하거든.” 그는 흡족한 낯빛으로, 대꾸를 허락하지 않는 어조로 말을 맺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나는 생루를, 그 우정의 충실함을 더없이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는데 그가 블로크에게 한 말로 그것을 저버렸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야말로 그런 짓을 하지 못하도록 제 결점으로나 미덕으로나, 예의를 밀어붙여 급기야 솔직함의 결핍에 이르게까지 할 수 있던 저 놀라운 교양의 겉치레로나 마땅히 억눌렸어야 할 사람으로 내게는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 의기양양한 낯빛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줄 알면서 한 일을 인정할 때의 어떤 겸연쩍음을 감추려고 짓는 그런 것이었을까, 아니면 완전한 무의식을 뜻하는 것이었을까. 내가 그에게서 연상한 적 없던 결점을 미덕으로 둔갑시키는 어리석음, 우리 우정을 끝장내라고 그를 부추기는 나를 향한 한때의 언짢음, 아니면 블로크와 어울리는 자리에서 무언가 언짢은 소리를 해 주어야겠다고 느낀 그가, 그로 인해 내가 곤경에 빠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뱉은 한때의 언짢음을 말로 옮긴 것이었을까. 어떻든 간에, 이 천박한 말을 내뱉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무시무시한 굴곡이 파여 들었으니, 그것은 내가 그를 알고 지낸 온 세월 동안 한두 번밖에 보지 못한 것으로, 대략 얼굴 한가운데를 따라 내리흐르기 시작해 입술에 이르면 그것을 뒤틀어, 비열함의, 거의 짐승 같은 흉측한 표정을 입술에 새겨 놓았는데, 그것은 아주 덧없고 필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런 순간이면, 아마 한 해 걸러 한 번쯤이나 되풀이되었을 그런 순간이면, 어느 조상의 인격이 그를 가로질러 지나가며 그의 참된 자아를 부분적으로 가리는 일식이 일어났음에 틀림없으니, 그 조상의 그림자가 그에게 드리운 것이었다. 그 흡족한 낯빛 못지않게, “사람들이 제 처지를 분명히 알았으면 한다”는 그 말도 똑같은 의심을 부추겼고 마땅히 비슷한 단죄를 받았어야 했다. 나는 그에게, 사람들이 제 처지를 분명히 알기를 바란다면 그런 솔직함의 발작은 제 일에나 국한할 일이지 남을 대가로 너무 손쉬운 공적을 얻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느새 마차는 식당 앞에 멈춰 섰고, 유리를 두르고 빛이 넘쳐흐르는 그 거대한 정면만이 홀로 어둠을 뚫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안개마저도, 불 밝힌 실내의 아늑한 밝음 곁에서, 마치 그 주인의 손님 맞는 본성을 낯에 비추는 하인들의 기쁨을 띠고, 바깥 보도에서 안으로 드는 길을 일러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더없이 섬세한 빛의 결로 물든 그 안개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던 불기둥처럼 길을 가리켰다. 마침 그 백성 가운데 여럿이 안에 있었으니. 왜냐하면 이곳이 바로, 블로크와 그의 벗들이, 적어도 한 해에 한 번뿐인 율법의 단식만큼이나 허기진 굶주림에 시달리며, 커피와 정치적 호기심의 충족을 좇아 저녁마다 찾아들곤 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온갖 정신의 흥분은 다른 것들을 넘어서는 가치를, 제 습관의 나머지보다 우월한 성질을 만들어 내는 법이라, 아무리 예민하게 발달한 취향이라도 이렇게 제 둘레에 하나의 사회를 그러모으지 않는 것이 없으니, 그 사회는 취향으로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저마다의 성원이 삶에서 무엇보다 먼저 구하는 것은 동류들의 존경이다. 여기, 그들의 카페에서, 그것이 어느 시골 소도시에 있든, 여러분은 열정적인 음악 애호가들을 만나게 되리라. 그들의 시간 태반과 남는 돈은 온통 실내악 연주회에, 음악 토론 모임에, 음악 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관현악단원들과 어깨를 맞대는 카페에 쓰인다. 또 다른 이들은 비행에 열을 올려, 비행장 꼭대기에 얹힌 유리 바에서 늙은 웨이터와 가까이 지내려 애쓴다. 등대의 유리 상자 안에서처럼 바람을 피한 그들은, 그날 올라가지 않는 어느 비행사와 더불어, 공중제비를 연습하는 조종사의 곡예를 뒤쫓을 수 있고, 그러는 사이 조금 전만 해도 보이지 않던 또 한 대가 아라비아의 로크 새 같은 거대한 날갯소리를 내며 홀연 급강하해 착륙한다. 졸라 재판이 불러일으킨 덧없는 감정들을 오래 이어 가고 파헤쳐 보려고 모여든 그 작은 무리도 바로 이 카페에 그와 비슷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그들은 나머지 손님을 이루던, 얄팍한 난간에 화초 한 줄을 얹어 다른 방과 갈라놓은 두 번째 방을 차지한 젊은 귀족들에게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드레퓌스와 그 지지자들을 반역자로 여겼으니, 비록 이십오 년 뒤, 관념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을 시간을 얻고 드레퓌스주의가 역사의 빛 속에서 어떤 품격을 얻자, 바로 이 젊은 귀족들의 아들, 춤에 미친 볼셰비스트들이, 자기들에게 묻는 ‘지식인들’에게 자기들이 그때 살아 있었더라면 틀림없이 드레퓌스 편에 섰으리라고 단언하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대사건이 대체 무엇을 둘러싼 것이었는지, 자기들이 태어날 무렵 이미 스러진 또 다른 명사들인 에드몽 드 푸르탈레스 백작부인이나 갈리페 후작부인보다 조금도 더 또렷이 알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안개 낀 밤에, 이윽고 이 젊은 지식인들의, 곧 뒤늦은 드레퓌스파들의 아버지가 될 이 카페의 귀족들은 아직 총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부유한 결혼이라는 생각이 그들 모두의 집안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그들 가운데 아직 아무도 그런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했다. 아직 가능성으로만 남은 이 부유한 결혼이, 그들 여럿이 동시에 품은 야심이 (과연 눈독 들일 만한 상속녀도 여럿 있었으나 어쨌든 큰 지참금의 수는 그것을 노리는 이들의 수보다 훨씬 적었다) 낳은 유일한 효과란, 이 젊은이들 사이에 얼마간의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뿐이었다.
운수 사납게도, 생루가 저녁 뒤에 우리를 다시 데리러 오라고 마부에게 이르느라 잠시 밖에 남은 통에, 나는 혼자서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우선, 나는 익숙하지 않은 회전문에 한번 발을 들이고 나자, 도무지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만 같아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말의 정확함을 아끼는 이들을 위해 여기 적어 두거니와, 문제의 그 장치는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영어 “revolving door”에서 온 “리볼버”라 불린다.) 이날 저녁 주인은 밖의 궂은 날씨에 맞설 엄두도, 손님들을 저버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입구 가까이 선 채로, 새로 드는 손님마다 터뜨리는 즐거운 푸념을, 어렵사리 한곳에 다다르고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다 온 사람들 특유의 흡족함으로 환히 빛나는 그 푸념을 듣는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 띤 살가운 환대는, 빙빙 도는 유리판에서 몸을 빼내지 못하는 어느 낯선 이의 모습에 흩어지고 말았다. 사교적 무지의 이 명백한 표시는, Dignus est intrare.라는 문구를 읊어 주지 않겠다고 벼르는 시험관처럼 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귀족 전용으로 마련된 방에 자리를 잡으러 갔다가, 모든 웨이터가 즉각 따라 하는 무례한 태도로 그에게서 대뜸 쫓겨나, 다른 방의 한 자리를 지정받았다. 그 자리가 붐비는 줄 한복판인 데다, 내 맞은편에는 히브리인 전용 문이 있어, 그 문은 회전식이 아니라 시시각각 열리고 닫히며 나를 지독한 외풍 속에 두었으므로, 나는 더더욱 그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주인은 나를 옮겨 주기를 마다하며 이렇게 말했다. “안 됩니다, 손님. 손님 한 분 때문에 온 자리를 뒤엎을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이내 그는 이 때늦고 성가신 손님을 잊어버렸으니, 새로 드는 손님마다 (이제는 저녁 시간이 한참 지난 터라) 맥주나 식은 닭 날개, 뜨거운 그로그를 청하기 전에, 옛 무용담에서처럼 먼저, 방금 벗어난 위험들과의 대비가 저 화롯가 둘레에 흥겨운 화음을 자아내는 그 명랑함과 동료 의식을 감돌게 하는, 온기와 안전의 이 피난처에 들어선 순간 겪은 제 모험담을 늘어놓아 제 몫의 값을 치러야 했으므로, 그는 손님마다의 그 이야기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어떤 이는 제 마차가 콩코르드 다리에 다다른 줄 알고 앵발리드를 세 바퀴나 빙 돌았노라 전했고, 또 어떤 이는 제 마차가 샹젤리제 거리를 내려가려다 롱푸앵의 나무 덤불에 처박혀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 사십오 분이나 걸렸노라 전했다. 뒤이어 안개와 추위, 거리의 죽은 듯한 적막에 대한 한탄이 쏟아졌는데, 하나같이 유난히 흥겨운 낯빛으로 오가는 그 한탄은, 내가 앉은 자리만 빼면 따뜻하던 방의 쾌적한 공기와, 이미 보지 못하는 데 익숙해진 눈을 껌뻑이게 하는 눈부신 불빛, 그리고 먹먹해진 귀에 다시 활기를 되찾아 주는 웅성거림으로 설명되는 것이었다.
새로 든 손님들은 도무지 잠자코 있을 수가 없었다. 저마다 자기만 겪은 줄 아는 봉변의 유별남이 혀를 근질거리게 했고, 말을 붙일 상대를 찾아 그들의 눈이 두리번거렸다. 주인마저 온갖 신분의 분별을 잃어버렸다. “푸아 대공께서 생마르탱 문에서 오시다 세 번이나 길을 잃으셨답니다.” 그는 웃으며 서슴없이 그렇게 말하고는, 마치 한쪽을 다른 쪽에 소개하기라도 하듯, 그 명망 높은 귀족을 어느 유대인 변호사에게 실제로 가리켜 보였는데, 그 변호사로 말하면 이날 저녁이 아닌 다른 어느 저녁이었다면 저 화초 울타리보다 훨씬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그와 갈라져 있었을 사람이었다. “세 번이나요, 저런!” 변호사가 모자에 손을 대며 말했다. 이런 개인적 관심의 표시가 대공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동료 귀족을 대상으로 할 때조차, 그들이 최고위 반열이 아닌 한, 무례를 부리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게 할 만한 소일거리로 여기는 어느 귀족 무리의 하나였던 것이다. 인사에 답하지 않기, 그리고 정중한 낯선 이가 다시 그 결례를 되풀이하면 비웃음 섞인 경멸로 낄낄대거나 노기 어린 낯으로 고개를 홱 젖히기,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었을 법한 어느 나이 지긋한 이를 모르는 척하기, 악수는 공작들과, 그 공작들이 소개해 준 정말 가까운 벗들에게만 아껴 두기, 이런 것이 이 젊은이들의, 특히 푸아 대공의 태도였다. 그런 태도는 젊은 시절 특유의 균형 잃은 심성이 (중간 계급에서조차 은인이 아내를 잃은 뒤 몇 달이나 편지를 쓰기를 잊었다가, 일을 간단히 하려고 이번에는 길에서 그에게 목례하기마저 그만두는 통에 배은망덕해 보이고 상놈처럼 구는 그런 시절이) 부추긴 것이었으나, 무엇보다 지나치게 날 선 계급적 속물근성이 불어넣은 것이었다. 어떤 신경성 질환의 증상이 만년에는 덜 두드러지듯이, 이 속물근성도 대체로 젊은 시절 그토록 참기 힘들던 사내들에게서 훗날에는 그리 거슬리는 형태로는 더 이상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젊음을 벗어나고 나면, 누구든 무례에 갇혀 있는 일은 드물다. 그는 그것이 세상에 유일한 것인 줄 알았다가, 문득, 아무리 대공이라 한들, 음악이며 문학이며, 심지어 의회 출마 같은 것도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인간 가치의 척도가 그에 따라 바뀌고, 그는 한때라면 번갯불 같은 눈길로 베어 버렸을 사람들과 담소를 나눈다. 그것은 참고 기다린, 그리고 스무 살에 냉랭히 거절당한 정중함과 환대를 마흔 줄에 받으며 기쁨을 느낄 만큼 성격이 여문 후자의 사람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내가 푸아 대공 이야기를 꺼낸 김에, 그가 열두어 명에서 열대여섯 명쯤 되는 젊은이들의 한 패거리에, 그리고 그 안의 네 사람으로 이루어진 핵심 무리에 속해 있었다고 덧붙여도 뜬금없지는 않으리라. 그 열두어 명에서 열대여섯 명은 (내 짐작에 대공에게는 없던) 이런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었으니, 저마다 세상을 두 얼굴로 마주했다는 것이다. 눈까지 빚에 잠긴 그들은, 상인들이 그들을 “백작님”, “후작님”, “공작님”이라 부르기를 즐겼음에도, 그 상인들의 눈에는 아무 값어치가 없었다. 그들은 이름난 그 부유한 결혼으로 (“돈자루”라는 표현이 아직 쓰이던 시절이었다) 제 가산을 되찾기를 바랐는데, 그들이 탐내던 두둑한 지참금은 기껏해야 네댓 개뿐이었던 터라, 그들 중 여럿이 같은 아가씨에게 은밀히 포문을 겨누고 있곤 했다. 그리고 그 비밀은 어찌나 잘 지켜졌던지, 그들 중 하나가 카페에 들어서며 “이보게들, 난 자네들이 다들 너무 좋아서 앙브르사크 양과 약혼했다는 걸 알리지 않을 수가 없네”라고 알리면, 왁자하니 소동이 일었으니, 다른 여럿이 저마다 그 결혼이 자기와 앙브르사크 양 사이에 벌써 다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상상하고 있던 터라, 얼떨떨함과 노기의 절로 터진 외침을 억누를 만한 자제력이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자네 결혼이 그렇게 좋은가, 비비?” 샤텔로 대공이 놀라움과 절망에 포크를 떨어뜨리며 저도 모르게 외쳤으니, 그는 바로 이 앙브르사크 양의 약혼이, 다만 자기, 샤텔로가 신랑으로 발표되기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가 비비의 어머니를 헐뜯으며 앙브르사크가에 얼마나 교활하게 귀띔해 두었는지는 하늘만이 알 노릇이었다. “그래, 결혼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단 말이지, 응?” 그는 비비에게 그 물음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비비는 그에 더 잘 대비하고 있었으니, 약혼이 반쯤 공식적인 단계에 이른 뒤로 취할 마땅한 태도를 정할 시간이 넉넉했던 터라,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건 결혼이라는 생각이 아니야, 그건 내겐 도통 끌린 적이 없었지. 다만 데이지 당브르사크와 결혼한다는 것, 난 그녀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 이 대답이 오가는 사이 샤텔로 씨는 평정을 되찾았으나, 그는 되도록 빨리 상속녀 명단의 두 번째와 세 번째인 라 카누르크 양이나 포스터 양 쪽으로 방향을 틀고, 앙브르사크가와의 결혼을 기대하던 채권자들을 어떻게든 달래며, 끝으로 자기 역시 앙브르사크 양이 매력적이라고 단언했던 사람들에게, 이 결혼이 비비에게야 아주 좋은 일이지만 자기가 그녀와 결혼했더라면 온 집안이 벽돌 한 짐처럼 자기를 짓눌렀으리라 해명해야겠다고 궁리하고 있었다. 솔레옹 부인이 실제로 그들을 제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더라고 (그는 그렇게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말이다.
그러나 상인들이나 식당 주인 따위의 눈에는 하찮아 보였을망정, 거꾸로 이중 인격의 존재인 그들이 사교계에 나타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기운 가산과 그것을 메우려고 손댄 지저분한 일들로 평가받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다시금 아무개 대공, 아무개 공작이 되었고, 오로지 그 문장의 격으로만 헤아려졌다. 사실상 억만장자에 가깝고 온갖 격조란 격조는 제 한 몸에 다 갖춘 듯한 어느 공작이 그들에게 윗자리를 내주었으니, 저마다 제 가문의 수장인 그들이 혈통으로 보면, 화폐를 주조할 권한 따위를 지닌 아주 조그마한 영지의 주권 대공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카페에서는 흔히 그들 중 하나가, 새로 든 이가 자기에게 인사하지 않아도 되게끔, 또 하나가 들어오면 눈을 내리깔았다. 부를 좇는 제 상상 속 추격에서 어느 은행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어떤 한량이든 이런 식으로 은행가와 관계를 맺을 때마다, 은행가는 그를 십만 프랑 더 가난하게 만들어 놓고 떠나지만, 그렇다고 그 한량이 곧바로 또 다른 은행가와 같은 짓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성당에 촛불을 밝히고 의사를 찾는다.
그러나 이미 부유하던 푸아 대공은, 이 열다섯 명 남짓의 멋쟁이 패거리뿐 아니라, 생루가 낀, 더 폐쇄적이고 떼려야 뗄 수 없는 네 사람의 무리에도 속해 있었다. 이들은 어디에도 따로 초대받는 법이 없었고, ‘네 명의 지골로’로 통했으며, 늘 함께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고, 시골 저택에서는 안주인들이 그들에게 서로 통하는 침실을 내주는 통에, 더욱이 넷 다 유난히 잘생긴 터라, 그들이 어느 정도로 가까운 사이인가를 두고 소문이 나돌았다. 나는 적어도 생루에 관해서만은 그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묘한 것은, 훗날 그 소문이 넷 모두에게 사실이었음이 밝혀지게 되면서도, 그 넷은 저마다 나머지 셋에 대해서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저마다 나머지에 대해 알아내려고, 어떤 욕망이나 (더 그럴듯하게는) 어떤 원한을 채우려고, 어떤 결혼을 막으려고, 혹은 그 비밀을 알아낸 벗에 대해 쥐고 흔들 거리를 얻으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다섯 번째 사람이 (이런 네 사람의 무리에는 결코 넷만 있는 법이 없으므로) 이 플라토닉한 모임에 끼어 있었는데, 그는 누구보다도 더 그러한 자였다. 그러나 신앙의 가책이 그를, 그 무리가 흩어지고 오랜 뒤까지 붙들어 두었고, 그 자신은 처자를 거느린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 루르드에서 다음 아이가 사내이기를, 아니면 계집이기를 열렬히 기도하며, 아이를 만드는 틈틈이 군인들의 뒤를 쫓아다녔다.
대공의 예법에도 불구하고, 변호사의 그 한마디가 그의 귀에 들리게 나오기는 했으되 그에게 곧장 건네진 것은 아니었던 까닭에, 그는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덜 화가 났다. 게다가 이날 저녁은 다소 예외적이었다. 끝으로, 그 변호사가 앞으로 푸아 대공과 알고 지내게 될 가망이란, 그 고귀한 나리를 식당까지 태워다 준 마부만큼도 없었다. 따라서 대공은, 안개 덕에, 하늘의 온갖 바람이 몰아치거나 안개에 뒤덮인 세상 끝 어느 바닷가에서 우연히 만난 길동무 처지가 된 이 낯선 이에게, 마치 ‘무대 밖’의 누군가에게 말하듯 오만한 어조로 대꾸해도 무방하다고 여겼다. “길을 잃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지요. 문제는, 다시 못 찾는다는 겁니다.” 이 경구의 지혜에 주인은 깊은 인상을 받았으니, 그날 저녁 이미 여러 차례 그것을 들었던 터였다.
사실 그는 늘 자기가 듣거나 읽은 것을 이미 낯익은 어떤 기준과 견주어 보는 버릇이 있어서, 아무런 차이도 찾아내지 못하면 감탄이 이는 것을 느꼈다. 이런 마음가짐은 결코 가벼이 볼 것이 아니니, 정치적 대화에, 신문 읽기에 적용되면 여론을 이루고, 그리하여 역사상 가장 큰 사건들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영국과 러시아가 독일을 ‘짓뭉개려 든다’고 어느 손님이나 신문이 말할 때 그 손님이나 신문에 감명을 받은 독일 지주들의 집합은, 그 자체만으로, 설령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을지언정, 아가디르 사건 무렵의 전쟁을 가능케 했다. 역사가들이 민족의 행위를 왕들의 의지로 돌리던 관행을 버린 것이 잘못이 아니라면, 그들은 그 자리에 아무 대수롭지 않은 인물의 심리를 대신 놓아야 마땅하다.
정치 문제에서, 이 카페의 주인은 얼마 전부터 드레퓌스 사건의 몇몇 특정한 세부 사항에 자신의 실습 교사 같은 정신을 집중해 오고 있었다. 손님의 이야기나 신문 지면에서 자기에게 익숙한 표현들을 찾아내지 못하면 그는 그 기사를 지루하다고 하거나 말하는 이를 진실하지 못하다고 단언하곤 했다. 그런데 푸아 대공은 어찌나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지, 그는 대공에게 말을 채 끝맺을 틈조차 주지 않았다. “옳습니다, 대공, 옳고말고요.” (이는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되풀이하셨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바로 그대로입니다!” 하고 그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인물들처럼 “포만의 극한까지” 부풀어 오르며 외쳤다. 그러나 그 무렵 대공은 이미 작은 방으로 사라진 뒤였다. 그러자, 아무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라도 그것이 지나가고 나면 삶이 제 평소의 흐름을 되찾듯이, 안개의 바다에서 빠져나온 이들은 저마다 먹고 마시고 싶은 것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자키 클럽의 젊은이들 한 무리가 있었는데, 상황이 하도 이례적인지라 그들은 서슴없이 큰 방의 두어 탁자에 자리를 잡았고, 그리하여 나와 아주 가까이 있게 되었다. 이렇게 대격변은 작은 방과 큰 방 사이에까지, 안개의 대양을 오래도록 헤맨 끝에 식당의 안락함으로 생기를 되찾은 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 오직 나만이 끼지 못한 어떤 친밀함을 자리 잡게 했으니, 그것은 노아의 방주 안에 감돌았을 법한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득 나는 주인의 몸이 연신 굽실굽실 절하는 꼴을, 그리고 수석 급사들이 그를 부축하려고 총출동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 광경은 모두의 눈길을 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서, 시프리앵을 이리 보내, 생루 후작님 자리를 차려 드려라” 하고 주인이 외쳤으니, 그에게 로베르는 푸아 대공의 눈에조차 실질적인 무게를 지닌 대귀족일 뿐 아니라, 이를테면 사두마차를 몰고 인생을 내달리며 이 식당에서 큰돈을 쓰는 손님이기도 했다. 큰 방의 손님들은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작은 방의 손님들은 그가 구두를 다 닦기가 무섭게 일제히 벗에게 인사를 외쳤다. 그러나 그가 막 작은 방으로 들어서려던 참에 큰 방에 있는 나를 알아보았다. “아니 저런,” 하고 그가 외쳤다. “자넨 대체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건가? 그것도 문을 활짝 열어 둔 채로?” 하고 그는 문을 닫으러 달려가는 주인을 성난 눈으로 흘기며 말을 이었고, 주인은 그 탓을 종업원들에게 돌렸다. “늘 닫아 두라고 이르는데도 이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