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에게 다가가려고 내 탁자를 옮기고 길을 막고 있던 다른 탁자들까지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 “왜 자리를 옮겼나? 작은 방보다 여기서 저녁을 드는 게 더 좋아서? 아니, 이 딱한 친구야, 얼어붙겠구먼. 저 문 좀 잠가 두게, 부탁이니.” 그는 주인을 돌아보았다. “당장 그리하겠습니다, 후작님. 손님들은 이 방을 지나가시려면 저쪽 문으로 드나드시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열성을 더 잘 보이려고 그는 이 일에 수석 급사 하나와 부하 몇을 배치하고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 가장 무서운 벌을 내리겠노라 온갖 위협을 큰 소리로 늘어놓았다. 그는 내게 지나칠 만큼 공손한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공손함이 내가 왔을 때가 아니라 생루가 온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내가 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부유하고 지체 높은 손님이 내게 보인 다정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내가 여길까 봐, 그는 이따금 나에게 남몰래 자그마한 미소를 지어 보였으니, 그것은 오로지 개인적인, 나 한 사람만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듯했다.
내 뒤에서 저녁을 들던 손님 하나가 한 말에 나는 잠시 고개를 돌렸다. “닭 날개 하나, 아주 좋고, 샴페인 한 잔, 다만 너무 드라이하지 않은 걸로”라는 말 대신, 나는 뜻밖의 말을 들었던 것이다. “글리세린이 낫겠소. 그래, 뜨겁게, 아주 좋소.” 나는 이런 식이 요법을 스스로에게 지우는 그 금욕가가 대체 누구인지 보고 싶었다. 그 기이한 식성의 사내에게 얼굴이 알려지지 않도록 나는 얼른 생루 쪽으로 다시 몸을 돌렸다. 그는 다름 아니라 내가 마침 아는 어느 의사였고, 안개를 틈타 여기 카페에서 그를 붙들어 세운 또 다른 손님이 그에게 진료 상담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증권 중개인들처럼, 의사들도 일인칭 단수를 쓴다.
그러는 동안 나는 생루를 살펴보고 있었고, 내 생각은 나름의 길을 따라 흘러갔다. 이 카페에는, 나 스스로도 예전에 여러 곳에서, 온갖 부류의 외국인, 지식인, 갓 피어나는 갖가지 천재들을 숱하게 보아 왔으니, 그들은 젠체하는 망토며 1830년식 넥타이며, 더욱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몸짓 때문에 사람들의 웃음을 사면서도 그것을 체념하고 받아들였고, 심지어 그 웃음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 일부러 그 웃음을 자아내기까지 했으나, 실은 참된 지적·도덕적 가치와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들은, 특히 그중의 유대인들, 곧 동화되지 않은 유대인들은 (동화된 쪽은 여기서 논할 바가 아니므로), 겉모습의 어떤 기이함이나 별남도 견디지 못하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일으켰다 (블로크가 알베르틴에게 그러했듯이). 대체로 사람들은 나중에야 깨닫는 법인데, 그들에게 너무 길게 기른 머리칼, 지나치게 큰 코와 눈, 과장된 연극적 몸짓이 있다 해도, 오직 그것만으로 그들을 판단하는 것은 유치한 일이며, 그들은 넘치는 지성과 재기를 지녀 결국에는 가까이 사귈 만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그 부모와 친족이 마음의 따뜻함과 넓은 도량을 지니지 않은 이가 드물었으니, 그에 견주면 생루의 어머니와 게르망트 공작은 그 메마름, 가장 드러난 추문만을 규탄하는 겉치레뿐인 신앙심, 그리고 (순전히 타산적인 정신이라는 뜻밖의 경로를 거쳐) 어김없이 엄청난 재산과의 결혼으로 귀결되는 그들의 기독교 옹호로 말미암아 가장 초라한 몰골을 드러냈다. 그러나 생루로 말하면, 뭐라고 하든, 그 친족들의 결점이 아무리 새로운 성격으로 뒤섞여 빚어졌다 한들, 그의 안에는 더없이 매혹적인 정신과 마음의 열림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영원한 영광을 위해 솔직히 인정하건대) 이러한 자질이 순수하게 프랑스인인 사람에게서 발견될 때면, 그가 귀족이든 평민이든, 그것은 꽃피어난다, 활짝 만발한다고 하면 지나친 말이겠지만 (거기에는 여전히 절도의 감각과 어떤 자제가 있으므로), 아무리 존경할 만한 외국 손님이라도 우리에게 보여 주지 못하는 그런 우아함과 더불어 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도덕적 자질을 남들도 저마다 나누어 지녔음은 틀림없고, 우리가 먼저 거부감이나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이겨 내야 한다 해도 그 자질은 조금도 덜 소중하지 않다. 그러나 어쨌든, 공정의 관점에서 훌륭한 것, 마음과 정신에 값진 것이 무엇보다 먼저 눈에 매력적이고, 어여쁜 빛을 띠며, 더없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안의 완전함을 실체로나 형식으로나 겉으로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어쩌면 오직 프랑스에만 고유한, 기분 좋은 일이다. 나는 생루의 이목구비를 살펴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안의 우아함을 예비해 줄 육신의 우아함이 모자라지 않을 때, 그리고 날개 돋친 콧방울이 콩브레 근처 들꽃 위를 맴도는 작은 나비들의 날개만큼이나 섬세하고 완벽한 균형으로 펼쳐져 있을 때, 그것은 기뻐할 만한 일이라고. 또 참된 opus francigenum, 13세기에도 그 비밀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우리 성당들이 무너진다 해도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지 않을 그것은, 생탕드레데샹의 돌 천사들에 있다기보다는, 노귀족이든 시민이든 농민이든 프랑스의 젊은 아들들, 그 이름난 성당 정문에서만큼이나 여기 오래도록 전통으로 이어져 왔으되 지금도 여전히 창조적인, 그 섬세함과 대담함으로 얼굴이 새겨진 그들에게 있다고.
주인은 몸소 문 닫는 일과 우리 저녁 주문을 살피려고 잠시 우리 곁을 떠났다가 (닭고기는 아마 내세울 만한 게 못 되었던지, 그는 우리에게 “정육점 고기”를 고르라고 몹시 강조했다) 돌아와서는, 푸아 대공께서 후작님 곁 탁자에서 저녁을 들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그것을 영광으로 여기시겠다고 우리에게 알렸다. “하지만 자리가 다 찼는데,” 하고 로베르가, 내 자리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탁자들을 눈으로 훑으며 반대했다. “그런 건 조금도 문제가 안 됩니다, 후작님만 원하신다면, 이 손님들께 다른 탁자로 옮겨 달라고 얼마든지 청할 수 있습지요. 후작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늘 기쁨이니까요!” “하지만 자네가 정하게,” 하고 생루가 내게 말했다. “푸아는 좋은 친구야, 자네를 지루하게 할 수도, 안 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저들 대부분만큼 얼간이는 아닐세.” 나는 로베르에게 물론 그의 벗을 만나고 싶긴 하지만, 모처럼 이렇게 그와 단둘이 저녁을 들며 더없이 행복한 지금은, 그를 오롯이 나 혼자 차지하는 편이 그만큼 좋겠다고 말했다. “대공은 아주 근사한 망토를 가지고 있지요,” 하고 주인이 우리 의논에 끼어들었다. “그래, 나도 알아,” 하고 생루가 말했다. 나는 로베르에게 샤를뤼스 씨가 자기 제수에게 나를 전혀 모른다고 잡아뗐다는 이야기를 하고 그 까닭이 무엇일지 물어보려 했으나, 푸아 씨가 오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자신의 청이 받아들여졌는지 보러 온 그가 우리 탁자 곁에 서 있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로베르는 우리를 서로 인사시켰으나, 우리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방해받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뜻을 벗에게 숨기지 않았다. 대공은 물러가면서, 내게 건네는 작별의 목례에, 생루를 겨눈 미소 하나를 곁들였는데, 그 미소는 대공 자신은 더 오래 이어지길 바랐을 이 만남이 짧게 끝난 책임을 생루에게 떠넘기는 듯했다. 대공이 돌아서 가려는데, 불현듯 어떤 생각이 떠오른 듯 로베르가 벗의 뒤를 쫓아 달려가며 내게 “자넨 여기 그대로 앉아 저녁이나 들고 있게, 곧 돌아올 테니” 하고는 작은 방으로 사라졌다. 나는 내 곁에 앉은, 알지도 못하는 그 말쑥한 젊은이들이 젊은 뤽상부르 세습대공(예전의 나사우 백작)을 두고 더없이 터무니없고 심술궂은 이야기들을 되뇌는 것을 듣고 마음이 아팠으니, 그는 내가 발베크에서 만난 인물이며 할머니가 병들었을 때 내게 그토록 섬세한 위로의 정을 보여 준 사람이었다. 그 젊은이들 가운데 하나의 말로는, 그가 게르망트 공작부인에게 “내 아내가 지나갈 때는 모두가 일어서 주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했고, 이에 공작부인이 (설령 그런 말을 정말 했다 한들, 젊은 대공비의 할머니가 늘 더할 나위 없이 예의 바른 분이었으니, 재치만큼이나 사실과도 거리가 먼 대꾸로) 이렇게 받아쳤다는 것이다. “부인이 지나갈 때 일어선다고요? 저런, 그건 그 할머니 시절과는 딴판이군요. 그분은 신사들이 누워 있기를 바라셨는데.” 그러자 또 누군가는, 그가 발베크로 이모인 뤽상부르 대공비를 뵈러 내려가 그랑 호텔에 묵었을 때, 호텔 앞 바다 위로 뤽상부르 왕가의 깃발이 걸려 있지 않다고 지배인(내 친구)에게 항의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깃발이 영국이나 이탈리아 것보다 덜 알려지고 덜 쓰이는 터라, 그것을 구하는 데 며칠이나 걸려 젊은 대공을 크게 언짢게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한 마디도 믿지 않았으나, 발베크에 가는 대로 지배인에게 물어 그것이 순전한 지어낸 말임을 확인하리라 마음먹었다. 생루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주인에게 빵을 좀 갖다 달라고 했다. “그럼요, 남작님!” “나는 남작이 아니오,” 하고 내가 말했다. “아이고, 실례했습니다, 백작님!” 나는 두 번째로 항의할 겨를도 없었으니, 그랬다간 필시 후작의 지위로까지 올려놓았으리라. 곧 돌아오겠다던 약속에 충실히, 생루가 푸아 대공의 두툼한 비쿠냐 망토를 팔에 걸친 채 문간에 다시 나타났는데, 나를 따뜻하게 해 주려고 대공에게서 빌려 온 것이려니 나는 짐작했다. 그는 내게 일어나지 말라는 손짓을 하고 다가왔으나, 그가 자기 자리로 가려면 내 탁자를 또 옮기거나 내가 자리를 바꿔야 할 판이었다. 큰 방으로 들어서며 그는 벽을 빙 두른 붉은 플러시 천 의자 가운데 하나로 가볍게 뛰어올랐는데, 그 자리에는 나 말고는 다른 방에 자리를 잡지 못한 자키 클럽의 젊은이 서너 명, 그의 벗들만이 앉아 있었다. 탁자들과 벽 사이에는 일정한 높이로 전깃줄이 걸쳐져 있었으나, 생루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장애물 경마의 말처럼 날렵하게 그것을 뛰어넘었다. 그것이 오로지 나를 위해, 내가 몸을 조금 움직이는 수고를 덜어 주려고 행해진 것이 민망하면서도, 나는 벗이 이 공중 곡예를 해내는 정확함에 감탄했다. 그리고 감탄한 것은 나만이 아니었으니, 필시 더 미천하게 태어나 덜 후한 손님이 같은 재주를 부렸다면 별 감탄도 하지 않았을 주인과 그 종업원들이, 경마장 관람석의 구경꾼들처럼 홀린 듯 서 있었던 것이다. 부하 하나는 마치 땅에 뿌리내린 듯, 바로 곁에서 어느 일행이 기다리고 있는 접시를 손에 든 채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생루가 벗들을 지나가야 하는 통에 그들 뒤의 좁은 턱에 올라서서 두 팔로 몸의 균형을 잡으며 그 위를 달려가자, 방 안 여기저기서 조심스러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내가 앉은 자리에 이르자 그는 군주의 옥좌 앞에 선 속국의 족장 같은 정확함으로 걸음을 뚝 멈추고는, 몸을 굽혀 정중하고도 공손한 태도로 그 비쿠냐 망토를 내게 건넸으며, 잠시 뒤 내 곁에 자리를 잡고서 내가 손 하나 까딱할 것도 없이 가볍고도 따뜻한 숄처럼 그것을 내 어깨에 둘러 주었다.
“참, 생각난 김에 말인데, 우리 샤를뤼스 삼촌이 자네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더군. 내일 저녁에 자네를 보내 드리겠다고 약속했네.”
“마침 나도 그분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었네. 하지만 내일 저녁엔 자네 숙모 게르망트 부인 댁에서 저녁을 들기로 되어 있어.”
“그래, 내일 오리안 댁에서 거창한 잔치가 있지. 난 초대받지 못했네만. 아무튼 우리 팔라메드 삼촌은 자네가 거기 가는 걸 원치 않으셔. 뭐, 안 갈 수는 없겠지? 그럼 어쨌든 그다음에 삼촌 댁으로 가게. 삼촌은 정말로 자네를 보고 싶어 하시는 게 틀림없어. 이봐, 11시쯤이면 넉넉히 갈 수 있을 걸세. 11시야, 잊지 말게. 내가 삼촌께 알려 두지. 삼촌은 몹시 까다로운 분이야. 자네가 안 나타나면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거야. 게다가 오리안 댁 모임은 늘 꽤 일찍 끝나거든. 거기서 저녁만 들 거라면 11시엔 넉넉히 삼촌 댁에 닿을 수 있어. 나야말로 오리안을 찾아가 모로코에서 옮겨 가는 일을 좀 부탁해야 해. 전속을 원하거든. 숙모는 그런 일이라면 아주 잘 봐주시고, 그 부서를 맡은 생조제프 장군한테서 원하는 건 뭐든 얻어 내실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얘긴 숙모께 아무 말도 말게. 파름 대공비께 이미 말씀드려 두었으니 다 잘될 걸세. 모로코는 흥미로운 곳이야. 자네한테 들려줄 이야기가 많다네. 거기엔 아주 훌륭한 사내들이 있어. 정신적으로 자기와 대등하다는 느낌이 들거든.”
“독일이 그 일로 전쟁을 일으키리라고는 생각지 않나?”
“아니. 저들은 우리에게 화가 나 있지, 하기야 화낼 만도 하고. 하지만 황제는 평화를 바라고 있어. 저들은 늘 우리에게 자기들이 전쟁을 원하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데, 그건 우리를 굴복시키려는 수작이야. 순전한 허세지, 알잖나, 포커처럼. 빌헬름의 앞잡이 가운데 하나인 모나코 대공이 찾아와 독일이 우리를 칠 거라고 은밀히 일러 준단 말이야. 그러면 우리가 물러서지. 하지만 우리가 물러서지 않는다면 어떤 형태로든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걸세. 요즘 같은 시대에 전쟁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구경거리일지 생각만 해 보게. 그건 대홍수와 신들의 황혼을 하나로 합친 것보다 더 큰 재앙일 테지. 다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그는 내게 우정, 애정, 아쉬움을 이야기했으나, 그와 같은 부류의 모든 방문객이 그렇듯 그도 이튿날 아침이면 몇 달을 시골에서 보내러 떠날 참이었고, 모로코로 (혹은 다른 어딘가로) 돌아가는 길에 파리에는 고작 이틀 밤만 머물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흘려 놓은 말들은, 이날 저녁 뜨겁게 달아오른 내 마음의 화덕 속에 떨어져 그 안에 기분 좋은 불빛을 지폈다. 우리의 드문 만남, 그중에서도 특히 이날의 만남은 그 뒤로 내 기억 속에 하나의 또렷한 삽화로 남았다. 그에게나 나에게나, 이날은 우정의 저녁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 내가 그에게 느낀 우정은, 내가 두렵건대 (그리고 그런 생각에 얼마간 자책이 들었으나), 그가 불러일으키고 싶어 했을 그런 우정은 거의 아니었다. 그가 나를 향해 껑충껑충 달려와 목적지에 이르러 우아하게 멈춰 서는 모습을 본 기쁨으로 여태 가득 찬 채, 나는 이 기쁨이, 그가 벽을 따라, 의자를 따라 펼쳐 보인 그 일련의 동작 하나하나에 저마다 의미가 있고, 그 까닭이 어쩌면 생루 자신의 개인적 천성에도 있겠으나 그보다 더욱, 그가 태생과 자라남으로 자기 혈통에게서 물려받은 것에 있음을 내가 알아본 데에 있음을 느꼈다.
미(美)의 영역이 아니라 몸가짐의 영역에서의 어떤 취향의 확실성, 곧 낯선 상황의 조합과 마주쳤을 때 (마치 한 번도 본 적 없는 곡을 연주해 보라는 부탁을 받은 음악가처럼) 요구되는 감정과 몸짓을 교양 있는 이가 단번에 파악하여 알맞은 장치와 기교를 적용하게 해 주는 그 확실성. 그리고 그 취향으로 하여금, 관습을 무시함으로써 낯선 이들의 눈에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벗들의 눈에 지나치게 굽실대는 것으로 비칠까 하는 두려움에 중산층의 여느 젊은이라면 옴짝달싹 못 했을 그런 다른 어떤 고려의 속박도 없이 스스로를 드러내게 해 주는 그 확실성. 로베르에게서 이 속박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도도한 경멸이었으니, 그것은 분명 그가 마음속으로는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되 몸으로 물려받은 것이며, 아랫사람들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그 태도가 상대를 우쭐하게 하고 홀리기만 하리라 여겼던 그의 조상들의 몸가짐을 빚어낸 바로 그것이었다. 끝으로, 그의 끝없는 타고난 이점을 조금도 셈에 넣지 않는 어떤 고귀한 너그러움이 있었으니 (이 식당에서 아낌없이 돈을 쓴 덕에 그는 여기서도 다른 데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대접받는 손님이자 모두의 사랑을 받는 이가 되어 있었고, 웨이터들뿐 아니라 이곳의 가장 콧대 높은 젊은 단골들까지 곳곳에서 그에게 표하는 경의가 그 지위를 뚜렷이 드러냈다), 그 너그러움은 그로 하여금 그것들을 발밑에 짓밟게 했으니, 그가 자줏빛으로 장식된 그 의자들을, 오직 벗인 나에게 더 우아하고 더 빠르게 다다르게 해 준다는 이유로만 마음에 든 개선의 길처럼, 실제로나 상징으로나 밟고 지나갔던 것과 꼭 같았다. 이런 것들이 바로 귀족성에 없어서는 안 될 자질이었으니, 그것들은 이 육신의 껍질을 통해 (내 것이었다면 불투명하고 흐릿했을 그 껍질이 아니라, 뜻으로 가득 차고 맑은 그 껍질을 통해) 마치 예술 작품을 통하듯, 그것을 빚어낸 부지런하고 힘찬 기운을 전하며, 로베르가 벽을 따라 밟아 간 이 날렵한 질주의 동작들을 대리석 부조 위에 늘어선 기사들의 동작만큼이나 알아볼 만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아아!” 하고 로베르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태생을 경멸하며 자라나, 오직 정의와 지성만을 우러르고, 나를 위해 마련된 벗들의 무리 밖에서, 말주변만 있다면 어설프고 남루한 이들을 벗으로 골라 온 것이, 겨우 내 안에 드러난 단 하나의 인격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그 인격이, 온 힘을 다한 갸륵한 노력으로 내 뜻이 나를 닮게 빚어낸 그것이 아니라, 내가 만든 것도 아니요 심지어 나 자신도 아니며 내가 늘 싫어하여 이겨 내려 애써 온 그것이 되게 하려던 것이었단 말인가. 내가 고른 벗을 이토록 사랑한 것이, 그가 내게서 찾아낼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 나보다 훨씬 더 보편적인 무엇을 발견하는 기쁨, 곧 (그의 말대로라면, 그러나 그 자신도 진심으로 믿지는 못할 테지만) 결코 우정의 기쁨이 아니라 지적이고 초연한, 일종의 예술적 기쁨이 되게 하려던 것이었단 말인가?” 이것이 바로 생루가 이따금 이렇게 생각했을까 봐 내가 이제 와 두려워하는 바이다. 만일 그랬다면, 그는 잘못 안 것이다. 만일 그가 (실제로 한결같이 그러했듯이) 자기 육신에 타고난 유연함보다 더 고귀한 무엇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더라면, 만일 그가 그토록 오래도록 고귀한 태생에 따르는 오만함을 멀리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그 날렵함 속에도 무언가 더 꾸민 티, 어떤 무거움이 있었을 테고, 그의 몸가짐에도 잘난 체하는 천박함이 배어 있었으리라. 빌파리지 부인이 자신의 대화와 회고록에 지성에서 우러나는 그 경박함의 감각을 담아내려면 짙은 진지함의 결이 필요했듯이, 생루의 육신에 그토록 많은 고귀함이 깃들려면, 먼저 그 고귀함이 더 높은 것을 지향하던 정신을 떠나, 그의 육신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 거기에 무의식적이고 고귀한 선(線)으로 아로새겨져야 했다. 이렇게 하여 그의 정신의 기품은 그렇지 않았다면 온전하지 못했을 육신의 기품에서 빠져 있지 않았다. 예술가가 자기 정신의 자질을 작품에 드러내기 위해 반드시 그 정신을 작품 속에 곧이곧대로 표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신에 대한 가장 높은 찬양은 무신론자의 신 부정에 있다는 말도 있으니, 그는 창조가 하도 완벽하여 창조자 없이도 능히 이루어질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벽을 따라 자신의 질주라는 부조를 펼쳐 보이는 이 젊은이에게서 내가 감탄하고 있는 것이 한낱 예술 작품만은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나를 위해 방금 떠나보낸 그 젊은 대공 (나바르 여왕이자 샤를 7세의 손녀인 카트린 드 푸아의 후손), 그가 내 발치에 내려놓는 태생과 재산의 온갖 자질, 그가 지금 떨고 있는 내 몸에 따뜻한 모직 망토를 둘러 주는 그 침착함과 날렵함과 정중함 속에 살아남은 당당하고 훤칠한 조상들, 이 모든 것은 그의 삶에서 더 오래된 벗들 같은 것이어서, 나는 그것들이 우리를 영영 갈라놓으리라 짐작했을 법한데, 도리어 그는 정신의 가장 드높은 자리에서만 내릴 수 있는 선택으로, 로베르의 동작이 그 형상이었던 저 지고한 자유로써, 그것들을 나를 위해 희생하고 있었으니, 바로 거기에서 완전한 우정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게르망트가의 사람과 허물없이 지내다 보면 얼마나 천박한 오만이 드러날 수 있는지를, 나는 볼 기회가 있었다. 로베르에게서는 그것이 하나의 기품이었으니, 그에게 대물림된 인간 경멸이란 참된 도덕적 겸손을 감싼, 무의식적 매력으로 바뀐 겉옷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천박한 오만을 나는 샤를뤼스 씨에게서가 아니라 (그에게는 내가 아직 그 까닭을 헤아리지 못한 어떤 특유의 결점들이 귀족적 습성 위에 덧씌워져 있었다) 게르망트 공작에게서 보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역시, 여러 해 전 빌파리지 부인 댁에서 할머니가 그를 한 번 만났을 때 그토록 강하게 거부감을 일으킨 그 흔해 빠진 인상 속에, 얼핏 내비치는 역사적 웅대함을 품고 있었으니, 그것을 나는 생루와 함께 보낸 저녁의 이튿날 저녁 그의 집에 저녁을 들러 갔을 때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가 그 이모의 응접실에서 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공작에게서도 공작부인에게서도 그런 것이 내 눈에 드러나지 않았으니, 이는 내가 라 베르마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를 다른 배우들과 갈라놓는 차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더구나 그녀에게서는 그 개성이 어떤 사교계 명사에게서보다도 한없이 두드러졌으되, 이러한 구별이란 대상이 더 실재적이고 지성으로 더 잘 헤아릴 수 있을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법이다. 그렇지만 사교상의 구별의 결이 아무리 미미하다 해도 (그것이 하도 미미한지라, 생트뵈브처럼 정밀한 묘사가라도 조프랭 부인, 레카미에 부인, 부아뉴 부인의 살롱 사이의 미묘한 차이를 짚어 내려 하면 그것들이 서로 어찌나 닮아 보이는지, 저자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의 탐구에서 떠오르는 으뜸가는 진실이란 그런 삶의 형식이 지닌 공허함일 정도이다), 그들에게서도, 라 베르마에게서와 똑같은 까닭으로, 게르망트가가 더는 내게 감흥을 주지 못하게 되고 그들의 독창성이라는 그 작은 물방울이 더는 내 상상으로 증발되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아무리 헤아릴 수 없는 것이라도 그것을 증류하여 분석할 수 있었다.
공작부인이 이모의 야회에서 내게 말을 걸 때 남편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던지라, 나는 떠도는 이혼 소문을 생각하며 그가 만찬에 나올지 어떨지 궁금했다. 그러나 내 의심은 이내 풀렸으니, 현관에 죽 늘어서 있던 하인들의 무리 사이로 (그들은 그때까지 나를 쫓겨난 가구장이의 아이들쯤으로, 곧 어쩌면 주인보다는 더 동정 어린 눈으로 보되 이 집에 들일 수 없는 사람으로 여겼을 것이 틀림없으니, 이 사회적 혁명이 대체 무슨 까닭인가 스스로 묻고 있었을 것이다) 게르망트 씨가 몸소 내게로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는 내가 오기를 지켜보고 있다가 문턱에서 나를 맞아 제 손으로 내 외투를 벗겨 주려던 참이었다.
“게르망트 부인이 무척 기뻐할 겁니다,” 하고 그는 술술 넘어가는 다정한 어조로 나를 맞았다. “외투 벗는 걸 도와드리지요.” (그는 서민들의 말투를 쓰는 것이 정답고도 익살맞다고 여겼다.) “집사람은 당신이 날짜까지 정해 놓고도 혹 우리를 바람맞히지나 않을까 조금 걱정했답니다. 우리는 온종일 서로 이렇게 말했지요. ‘틀림없어, 저 사람은 끝내 안 나타날 거야.’ 솔직히 말하면, 게르망트 부인이 나보다 더 용한 예언가였습니다. 당신은 도무지 붙들기 어려운 사람이라, 나는 당신이 우리를 저버리리라 확신했거든요.” 그리고 공작은 사람들 말로는 하도 못된 남편이요 심지어 잔인하기까지 한 사람이어서, 사악한 이들이 이따금 베푸는 마음의 친절에 고마움을 느끼듯, 그가 마치 공작부인 위로 보호의 날개를 펼쳐 그녀를 자기와 한 몸으로 만들려는 듯 “게르망트 부인”이라고 부르는 그 말에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는 동안 그는 허물없이 내 손을 잡고 앞장서서 나를 자기 집안으로 이끌어 들이기 시작했다. 어떤 무심한 한마디가 농부의 입에서 나올 때, 그것이 지역의 오랜 전통이 살아남았음을 가리키거나, 정작 그렇게 넌지시 말하는 이 자신은 모를 어떤 역사적 사건의 자취를 드러내면 우리를 기쁘게 하듯이, 게르망트 씨의 이 정중함은, 더구나 그가 그날 저녁 내내 내게 한결같이 보여 준 그 정중함은, 여러 세기에 걸쳐 자라난 습속, 특히 17세기의 습속이 살아남은 것으로서 나를 매혹했다. 지나간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에게 한없이 멀어 보인다. 우리는 그들이 겉으로 표현하는 것 말고 어떤 속뜻을 지녔으리라 여길 근거가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호메로스의 영웅에게서 오늘 우리가 느끼는 것과 얼마간 닮은 감정을 마주치거나, 칸나이 전투에서 한니발이 적을 기습해 에워싸려고 일부러 자기 측면을 밀리게 한 그 교묘한 전술적 기만을 보게 되면 우리는 놀란다. 우리가 그 서사시인과 카르타고 장군을 마치 동물원에서 보는 짐승만큼이나 우리 자신에게서 동떨어진 존재로 그려 왔던 듯싶다. 루이 14세 궁정의 어떤 인물들에게서조차,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아랫자리 사람에게 써 보낸 편지에서 예의의 흔적을 발견하면, 우리는 어리둥절해진다. 그것이 이 대귀족들 사이에, 그들이 결코 곧이곧대로 드러내지는 않으나 그들의 행동을, 특히 예의상 어떤 감정을 꾸며 보이고 우정의 어떤 의무를 더없이 세심하게 지켜야 한다는 믿음을 지배하는 온 세계의 신념이 존재함을 문득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