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사람한테 마차를 주었다고!” 고모가 숨을 헐떡였다.
“어머, 저야 몰랐죠. 그냥 그런 줄 알았어요. 어제 그 사람이 아르타방처럼 의기양양하게 무개마차를 타고 루생빌 장으로 가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옥타브 부인이 준 것이려니 했지요.”
그렇게 차츰차츰, 마침내 사냥감과 사냥꾼인 프랑수아즈와 고모는 서로의 술수를 앞질러 막으려는 짓을 결코 그치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을 괴롭히는 고모에 대해 프랑수아즈가 정말로 증오심을 품게 될까 봐 두려워했다. 어찌 되었든 프랑수아즈는 점점 더, 고모의 사소한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까지 한없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무언가를 그녀에게 청해야 할 때면, 어떻게 말문을 여는 게 가장 좋을지 마음을 정하느라 먼저 오랫동안 머뭇거렸다. 그리고 청을 입 밖에 내고 나면, 고모를 몰래 살피며 그 얼굴 표정에서 그녀가 그것을 어떻게 여기는지, 또 무어라 대답할지 헤아려 보려 했다. 그리하여 (17세기의 회고록을 읽으며 위대한 루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하던 어느 예술가라면, 자신의 혈통을 어느 유서 깊은 가문에서 끌어낸 족보를 지어낼 때, 또는 유럽의 현직 군주 가운데 하나와 서신을 주고받을 때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며, 그러면서 한낱 겉모습을 정확히, 따라서 생기 없이 베껴 냄으로써 닮음을 이루려는 데서 자신이 저지르는 잘못에는 눈을 감았을 터인데) 어느 작은 시골 마을의 중년 부인은, 그저 자신의 억누를 수 없는 별난 기벽과, 완전한 무위의 삶이 빚어낸 짓궂은 심사에 온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루이 14세는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이, 제 나날의 더없이 하찮은 일과인 아침 몸단장이며 점심이며 오후 낮잠이, 그 전제적인 유별남 덕분에 생시몽이 베르사유 궁정 삶의 “기계 장치”라 부르던 것에 깃든 흥미 같은 것을 띠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한 그녀는, 어느 신하나 심지어 그의 가장 높은 귀족들이 베르사유의 어느 가로수길 모퉁이에서 왕에게 청원을 올렸을 때 왕의 침묵과 기분 좋음과 오만이 그러했듯, 자신의 침묵과, 낯빛에 어린 한 가닥 기분 좋음이나 오만이 프랑수아즈에게 열정과 두려움으로 팽팽한 마음속 논평의 소재를 제공하리라고 스스로 믿을 수도 있었다.
어느 일요일, 고모가 본당 신부와 욀라리의 방문을 한꺼번에 받고 나서 홀로 남아 쉬게 되었을 때, 온 식구가 위층으로 올라가 그녀에게 저녁 인사를 했고, 어머니는 두 손님을 언제나 같은 시각에 그녀의 문 앞으로 데려오는 그 얄궂은 우연을 두고 조심스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오늘도 일이 또 어긋났다고 들었어요, 레오니.” 어머니가 다정하게 말했다. “손님들이 죄다 한꺼번에 오셨다면서요.”
그러자 큰고모가 끼어들어 말했다. “좋은 것도 너무 많으면…” 딸이 병든 뒤로 큰고모는 늘 밝은 쪽으로 눈길을 돌려 줌으로써 딸의 기운을 될 수 있는 대로 북돋아 주어야 한다고 스스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온 식구가 이렇게 함께 모인 김에,” 그가 말했다. “여러분한테 따로따로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하지 않아도 되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고 싶군요. 아무래도 우리가 르그랑댕 씨의 눈 밖에 난 모양이오. 오늘 아침엔 나한테 인사 한마디 건네려 하질 않더군요.”
나는 아버지 이야기의 끝을 들으려 기다리지 않았으니, 우리가 르그랑댕 씨를 지나쳤을 때 미사 뒤에 나 자신도 아버지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아래층 부엌으로 내려가 저녁 식단을 물어보았는데, 그 식단은 날마다 신문 기사처럼 내게 새록새록 흥미로웠고, 다가올 축제의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나를 들뜨게 했다.
성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르그랑댕 씨가, 우리가 얼굴만 알고 지내던 이웃의 어느 시골 저택 여주인 곁에서 나란히 걸으며 우리 가까이를 지나쳤을 때, 아버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다정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르그랑댕 씨는 그 예의에 겨우 답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마치 우리를 알아보지 못한 듯 놀란 기색을 띠었는데, 그것은 상냥하게 굴고 싶지 않은 사람들 특유의 저 아득한 눈빛으로, 그런 이들은 문득 뒤로 물러나는 듯한 눈 속 깊은 곳에서, 끝없이 곧게 뻗은 길 저 멀리 끝에서, 그것도 아주 먼 거리에서 당신을 언뜻 알아본 것만 같아, 인형만 한 당신의 자그마한 크기에 걸맞게 거의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고개를 까딱해 보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르그랑댕과 나란히 걷던 그 부인은 덕망의 본보기로, 널리 알려지고 크게 존경받는 이였으므로, 그가 연애 놀음에 나섰다가 들켜서 언짢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아버지는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우리 벗의 심기를 거슬렀을까 자문했다.
“그가 우리한테 화가 났다고 느낀다면 그만큼 더 마음이 아플 거요.” 그가 말했다. “나들이옷을 차려입은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짧은 연미복에 부드러운 넥타이를 맨 그에게는 어딘가, 그토록 ‘치레하지’ 않은, 참으로 꾸밈없는 데가 있으니 말이오. 거의 천진해 보이는 분위기랄까, 정말이지 사람을 끄는 데가 있소.”
그러나 가족 회의의 표결은 만장일치로, 아버지가 그 모든 것을 지어냈거나, 아니면 르그랑댕이 그 순간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으리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아버지의 걱정은 바로 이튿날 저녁이 되기도 전에 말끔히 가셨다. 긴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퐁비외 근처에서 르그랑댕 본인을 보았는데, 그는 휴가철이라 콩브레에서 며칠을 더 지내는 참이었다. 그는 손을 내밀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책벌레 도련님,” 그가 내게 물었다. “폴 데자르댕의 이 시구를 아시나?
이제 숲은 온통 검으나, 하늘은 아직 푸르다.
이런 순간을 참으로 멋지게 옮겨 놓은 것 아닌가? 아마 자넨 폴 데자르댕을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겠지. 읽어 보게, 얘야, 읽어 봐. 요즘 그는 설교하는 수사가 되었다고들 하네만, 예전엔 더없이 매력적인 수채화 같은 필치를 지녔더랬지,
이제 숲은 온통 검으나, 하늘은 아직 푸르다.
젊은 벗이여, 부디 늘 머리 위로 푸른 하늘을 보게나. 그러면 언젠가, 지금 내게 다가오고 있는 그때가, 숲이 온통 검어지고 밤이 빠르게 내려앉는 그때가 오더라도, 자넨 내가 지금 그러듯 하늘을 우러러봄으로써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걸세.”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고 오랫동안, 두 눈을 지평선에 붙박은 채 서 있었다. “잘들 있게, 벗들이여!” 그가 문득 소리치고는 우리 곁을 떠났다.
내가 여느 때 저녁거리가 무엇인지 알아보러 아래층에 내려갈 무렵이면 벌써 저녁 준비가 시작되어 있었고, 거인들이 부엌데기로 품을 파는 옛이야기에서처럼 온갖 자연의 힘을 부하로 거느린 대령 격인 프랑수아즈는, 숯불을 뒤적이고 감자를 쪄 올리며, 알맞은 때에 불 위에서 그 요리 걸작들을 마무리하곤 했는데, 그 걸작들은 애초에 옹기장이 솜씨의 개가라 할 그 굉장한 그릇들 가운데 몇몇에서 손질되기 시작한 것으로, 그 그릇들은 함지며 솥이며 가마솥이며 생선 냄비에서부터 사냥 고기 단지며 과자 틀이며 크림을 담는 자그마한 종지에 이르기까지, 온갖 모양과 크기의 냄비며 팬을 죄다 갖춘 한 벌이었다. 나는 부엌데기가 완두콩을 까 놓은 식탁 곁에 멈춰 서서, 놀이를 위해 늘어놓은 초록빛 자그마한 구슬처럼 줄지어 정렬해 번호가 매겨진 완두콩 부대들을 살펴보곤 했다. 그러나 나를 사로잡은 것은 아스파라거스였으니, 그 머리 쪽에서부터 흘러내리는 군청빛과 장밋빛 분홍을 띠고, 연보라와 하늘빛으로 곱게 점점이 물들어, 알아챌 수 없는 일련의 변화를 거쳐, 아직 밭흙에 조금 물든 흰 발치에까지 이르는 그것은, 이 세상 것이 아닌 무지갯빛 사랑스러움이었다. 나는 이 천상의 빛깔이, 기꺼이 채소의 모습을 취한 어떤 빼어난 존재들이 거기 있음을 알려 준다고 느꼈으니, 그 존재들은 단단하고 먹을 수 있는 제 살을 가린 변장을 통해, 이 새벽녘의 광채와, 이 어렴풋한 무지개와, 이 푸른 저녁 그늘 속에서, 내가 그것들을 먹은 저녁 식사 뒤로 밤새도록 그 존재들이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속 요정들처럼 서정적이면서도 짓궂게 농지거리하며) 내 초라한 방을 향긋한 내음의 정자로 바꾸어 놓는 장난을 벌일 때 다시 알아보게 될 그 값진 특질을, 내가 알아차릴 수 있게 해 주었다.
스완이 이름 붙인 대로 가엾은 ‘조토의 자비’는, 프랑수아즈에게서 그것들을 식탁에 낼 채비를 하라는 일을 맡아, 그것들을 광주리에 담아 제 곁에 뉘어 놓고는, 세상의 온갖 슬픔이 제 위에 쌓이기라도 한 듯 구슬픈 얼굴로 앉아 있곤 했다. 그리고 분홍 저고리 위로 아스파라거스 순을 덮은 옅은 하늘빛 왕관은, 파도바에 있는 조토의 프레스코에서 꽃들이 이마를 두르거나 그의 ‘미덕’의 광주리에 무늬를 이루고 있듯, 별 하나하나처럼 곱게 따로따로 윤곽을 드러내곤 했다. 그러는 동안 프랑수아즈는 오직 그녀만이 구울 줄 아는 그런 닭 가운데 한 마리를 꼬챙이에 꿰어 돌리곤 했는데, 그 닭들은 그녀의 재주가 지닌 달콤한 냄새를 콩브레에서 저 멀리까지 실어 날랐으며, 그녀가 그것들을 식탁에서 우리에게 내어 주는 동안이면 내 마음속 그녀의 성품에 대한 그림에서 잠시나마 다정함이라는 자질을 도드라지게 만들었으니, 그녀가 그토록 기름지고 그토록 부드럽게 만들 줄 알던 그 익힌 살의 향내는, 내게는 그녀의 숱한 미덕 가운데 하나가 마땅히 지닌 향기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가 르그랑댕과의 그 야릇한 만남을 두고 식구들과 상의하던 동안 내가 부엌으로 내려갔던 그날은, ‘조토의 자비’가 얼마 전의 해산 뒤로 여전히 몹시 쇠약하고 앓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던 그런 날 가운데 하루였다. 도와줄 사람이 없던 프랑수아즈는 일이 밀려 있었다. 내가 들어섰을 때, 나는 안뜰로 통하는 뒤채 부엌에서 그녀가 닭 한 마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닭의 필사적이고 지극히 자연스러운 저항은, 귀 밑으로 그 목을 따려 하며 분에 겨워 어쩔 줄 모르던 프랑수아즈가 “더러운 것! 더러운 것!” 하는 앙칼진 고함으로 거들었는데, 그 저항 탓에 우리 하녀의 성스러운 다정함과 자애로움은, 이튿날 저녁 그 닭이 제의처럼 금실로 수놓인 껍질을 두르고 나타나 그 값진 국물이 성합에서 따르듯 한 방울 한 방울 부어질 때만큼 도드라지지는 못했다. 닭이 죽자 프랑수아즈는 줄줄 흐르는 그 피를 훔쳐 냈는데, 그러면서도 제 원한만은 그 속에 잠기게 두지 않았으니, 또 한 차례 분노를 터뜨리며 제 원수의 주검을 내려다보고는 마지막으로 “더러운 것!” 하고 내뱉었기 때문이다.
나는 온몸을 떨며 부엌에서 살금살금 빠져나와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때 나는 프랑수아즈를 당장 내쫓아 달라고 빌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누가 나를 위해 그토록 따끈한 빵을 굽고, 그토록 향기로운 커피를 끓이며, 심지어 그토록 맛난 닭까지 구워 준단 말인가? 그리고 실은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이미 똑같이 비겁한 셈속을 차렸던 터였다. 레오니 고모는 (나는 아직 이를 몰랐지만) 프랑수아즈가, 제 딸이나 조카들을 위해서라면 군말 없이 목숨이라도 내놓았을 그 프랑수아즈가, 세상의 다른 이들을 대할 때는 유별나게 무자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모는 여전히 그녀를 곁에 두었으니, 그녀의 잔혹함을 알면서도 그녀의 봉사만은 높이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차츰, 성당 창유리에 두 손 모아 무릎 꿇은 모습으로 그려진 왕과 왕비의 치세가 실은 압제와 유혈로 얼룩졌음을 역사가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듯, 프랑수아즈의 다정함과 뉘우침, 그 미덕의 총합이 이런 뒤채 부엌의 비극을 숱하게 감추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제 혈육을 빼고 나면, 인류의 고통이 그녀에게 불러일으키는 연민이 고통받는 이와 그녀 자신 사이를 가르는 거리에 정비례하여 커진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그녀가 신문에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불행을 읽을 때 봇물처럼 쏟아지던 눈물은, 그 피해자들의 모습을 마음속에 좀 더 또렷이 그려 볼 수 있게 되기만 하면 이내 멎어 버렸다. 해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밤, 부엌데기가 더없이 끔찍한 통증에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그 신음을 듣고 일어나 프랑수아즈를 깨웠으나, 프랑수아즈는 조금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채, 그 온갖 아우성이 한낱 꾀병이며 그 처녀가 집 안에서 “안주인 행세”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발작을 염려했던 의사는, 우리 집에 있던 의학 사전의, 그 증상이 적힌 쪽에 갈피표를 끼워 두고는, 그 대목을 펼쳐 보면 취해야 할 “응급” 처치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일러 두었다. 어머니는 프랑수아즈를 보내 그 책을 가져오게 하며 갈피표가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시간이 지나도록 프랑수아즈가 돌아오지 않자, 어머니는 그녀가 도로 잠자리에 든 줄 알고 언짢아하며, 나더러 손수 책장으로 가서 그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했고, 거기서 프랑수아즈를 발견했는데, 그녀는 갈피표가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한 나머지 이 산후통에 대한 임상 기술을 읽기 시작했고, 이제 그녀에게 낯선 종류의 병이 문제가 되자 격하게 흐느끼고 있었다. 글쓴이가 언급하는 고통스러운 증상 하나하나마다 그녀는 부르짖었다. “어머, 어머, 성모님, 하느님께서 이 가엾은 인간을 이토록 고통받게 하시다니 이럴 수가 있나요? 아이고, 저 불쌍한 것!”
그러나 내가 그녀를 부르고 그녀가 조토의 ‘자비’ 곁으로 되돌아오자, 그녀의 눈물은 이내 그쳤다. 그녀는 신문을 읽으며 여러 번 느껴 익히 알던 그 다정하고 가련한 감정의 즐거운 자극을 도무지 찾아내지 못했고, 부엌데기 때문에 한밤중에 침대에서 끌려 나온 데서 오는 피로와 짜증 속에서도 같은 종류의 다른 어떤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활자로 읽으면 눈물짓게 하던 바로 그 고통을 눈앞에 두고서도, 그녀가 내놓는 것이라곤 심술궂은 중얼거림에 쓰디쓴 빈정거림을 뒤섞은 말뿐이었으니, 우리가 안 들리는 데로 갔거니 여길 때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흥, 저 지경이 될 짓을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지! 그때는 꽤나 좋았겠지, 내 장담하네! 이제 와서 유난 떨 것 없어. 그건 그렇고 저런 것을 쫓아다니다니 참 못난 젊은이로군. 저런, 저런, 우리 가엾은 어머니 고향에서 늘 하던 말 그대로일세.”
뱀이며 달팽이며 강아지 꼬리며,
지저분한 계집들이 넘쳐나도,
젊은이 코엔 장미보다 더 향긋하다네
마음이 갓 스물한 살일 적엔.”
손자가 코감기라도 살짝 걸리면, 그녀는 자기가 아플지라도 잠자리에 드는 대신 밤길을 나서서 손자에게 부족한 것이 없는지 살피러 갔고, 동트기 전에 십 마일을 걸어 제 일을 시작할 시간에 맞춰 돌아오곤 했다. 그러면서도 제 식구를 향한 그 똑같은 사랑과, 제 가문의 앞날의 영화를 탄탄한 토대 위에 세우려는 그 욕망은 다른 하인들을 대하는 처세에서는 언제나 한결같은 한 가지 원칙으로 나타났으니, 그것은 결코 누구도 고모 방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다른 누구도 고모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데 일종의 자부심을 지녀서, 자기가 아플 때에도 부엌데기에게 안주인 앞에 나설 권리를 내주느니 차라리 침대에서 일어나 손수 비시 광천수를 떠다 드리기를 택했다. 파브르가 관찰한 막시류(膜翅類)의 한 종, 곧 굴을 파는 나나니벌은 제가 죽은 뒤 새끼에게 신선한 먹이를 대주려고 본능적 잔혹함의 수단을 넓히고자 해부학의 지식까지 끌어들여, 바구미와 거미들을 모아 놓고는 놀라운 앎과 솜씨로 그것들의 운동 능력이 (그러나 다른 어떤 생명 기능도 아니고 오직 그것만이) 매인 신경 중추를 찔러 마비시킨다. 그리하여 알을 그 곁에 낳아 두면, 마비된 벌레는 부화한 애벌레에게 도망칠 수도 저항할 수도 없이 길들여진 무해한 먹잇감을, 그러면서도 저장고에 두기에 더없이 싱싱한 먹이를 마련해 준다. 꼭 그와 같이 프랑수아즈도 다른 어떤 하인에게든 이 집을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려는 자신의 확고부동한 결심을 밑받침하려고 교활하고 무자비한 계략을 여럿 채택해 두었다. 여러 해가 지나서야 우리는, 그 계절 내내 날마다 아스파라거스를 먹은 까닭이, 그것을 다듬어야 했던 가엾은 부엌데기가 그 냄새 탓에 격렬한 천식 발작을 일으켜 끝내 고모의 집을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었음을 알아차렸다.
아아! 우리는 르그랑댕 씨에 대한 생각을 확실히 고쳐야만 했다. 퐁비외에서 그와 마주친 뒤, 아버지가 자신의 오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일이 있고 나서 이어진 어느 일요일, 미사가 끝나갈 무렵, 햇살과 바깥세상의 소음과 더불어 다른 무언가가, 도무지 성스럽지 않은 분위기가 성당 안으로 밀려들자, 구필 부인, 페르스피에 부인을 비롯해, 조금 전 내가 늦게 들어섰을 때만 해도 기도서에 눈을 박은 채 꼼짝 않고 앉아 있어서, 만일 자리로 가는 것을 가로막던 작은 무릎 받침대를 발로 슬며시 밀어 치워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들이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지도 못했으리라 여겼을 그 모든 사람들이, 마치 우리가 벌써 광장 밖에 나와 있기라도 한 듯 큰 소리로 온갖 세속적인 이야기를 우리와 나누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볕에 달구어진 현관 계단 위에 서서 장터의 알록달록한 소란을 굽어보는 르그랑댕을 보았는데, 지난번 그와 함께 있던 그 부인의 남편이 마침 그를 그 고장의 또 다른 큰 지주의 아내에게 소개하려던 참이었다. 르그랑댕의 얼굴에는 유별난 열의와 생기가 어려 있었다. 그는 깊이 허리를 굽혔다가, 등을 처음 자세보다 오히려 뒤로 젖히며 화들짝 곧추세우는 부수적인 동작을 곁들였는데, 그것은 필경 그의 누이 캉브르메르 부인의 남편에게서 익힌 몸짓이었으리라. 이 재빠른 복귀로 르그랑댕의 엉덩이 위로 일종의 팽팽한 근육의 물결이 일렁였는데, 나는 그의 엉덩이가 그토록 살진 줄은 몰랐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순전한 물질의 이 일렁임, 정신적 의미라곤 조금도 깃들지 않은 이 온전히 육체적인 유연함, 가장 비루한 종류의 아첨과 굽실거림의 바람에 미친 듯 채찍질당한 이 물결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른 르그랑댕이 있을 수 있음을 내 마음에 문득 일깨웠다. 부인이 그에게 마부에게 전할 말을 맡겼고, 그가 부인의 마차 쪽으로 내려서는 동안에도 소개가 그의 얼굴에 새겨 놓은 소심하고 경건한 기쁨의 빛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는 일종의 꿈에 휩쓸린 듯 미소 지었고, 이윽고 부인에게로 서둘러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빠른 걸음이었고, 어깨는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이 앞뒤로, 좌우로 흔들렸다. 그는 다른 모든 것은 아랑곳없이 그 기쁨에 온전히 몸을 내맡긴 나머지, 마치 제 행복이 조종하는 생명 없는 꼭두각시처럼 보였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현관을 지나 나오는 중이었고, 그의 바로 곁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그는 너무나 예의 바른 사람이라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는 않았으나, 갑자기 예언자의 것으로 바뀐 눈길을, 제 환영의 깊이에 잠긴 그 눈길을, 우리를 볼 수 없어 우리 존재를 아는 척하지 않아도 되는 그토록 먼 지평의 한 점에 고정했다. 그의 얼굴은, 저 자신의 뜻과는 달리 잘못 이끌려 혐오스러운 화려함 속에 처박힌 것을 스스로 의식하는 듯한 반듯하고 나긋한 웃옷 밖으로, 여전히 순진한 기색을 띤 채 솟아나 있었다. 그리고 광장의 미풍에 나부끼는 얼룩무늬 넥타이가, 그의 도도한 고독과 고귀한 독립의 깃발처럼 르그랑댕 앞에서 계속 펄럭였다. 집에 막 다다랐을 때 어머니는 우리가 “생토노레”를 깜빡했음을 알아채고는, 아버지에게 나를 데리고 되돌아가 곧바로 보내 달라고 일러 주라 했다. 성당 가까이에서 우리는 마차까지 배웅하며 그 같은 부인과 함께 우리 쪽으로 오는 르그랑댕과 마주쳤다. 그는 우리 곁을 스쳐 지나면서도 부인에게 하던 말을 끊지 않았으나, 파란 눈꼬리로 우리에게 작은 신호를 보냈다. 그것은 말하자면 눈꺼풀 안에서 시작되어 눈꺼풀 안에서 끝나는 신호여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라곤 조금도 없었기에 부인에게는 전혀 눈치채이지 않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토록 좁은 표현의 자리를 감정의 강렬함으로 벌충하려는 듯, 그는 우리만을 위해 마련된 그 파란 틈새를, 한낱 장난기를 훌쩍 넘어 거의 짓궂음의 경계에 닿을 만큼 다정함으로 반짝이게 했다. 그는 살가움의 세심함을 공모의 눈짓으로, 암시로, 숨은 뜻으로, 은밀한 양해로, 음모에 가담한 온갖 비밀로 정묘하게 갈고닦더니, 마침내 우정의 다짐을 애정의 고백으로, 나아가 사랑의 선언으로까지 드높여, 그의 다른 쪽에 있던 그 지체 높은 부인은 볼 수 없는 은밀하고 나른한 불꽃으로, 오직 우리를 위해, 얼음 같은 얼굴 속에서 사랑에 빠진 눈동자 하나를 밝혀 보였다.
바로 그 전날 그는 부모님께 그 같은 일요일 저녁에 나를 저녁 식사에 보내 달라고 청했었다. “늙은 벗과 함께 지내러 오게.” 그가 내게 말했다. “다시는 가지 못할 어느 땅에서 나그네가 보내 주는 꽃다발처럼, 와서 내가 그대 소년기의 먼 나라로부터, 여러 해 전 나 또한 거닐던 그 봄꽃들의 향기를 들이마시게 해 주게. 앵초와 함께, 참나물과 함께, 애기미나리아재비와 함께 오게. 발자크의 화초 속에서 사랑의 정표로 꽃다발을 이루는 돌나물과 함께 오게. 부활절 아침의 그 꽃, 부활절 데이지와 함께 오게. 사순절의 마지막 눈이 흙에서 녹기도 전에 그대 종조모 정원의 오솔길을 그 향기로 물들이기 시작하는 불두화의 흰 뭉치와 함께 오게. 솔로몬에게나 어울릴 차림새, 백합의 눈부신 비단옷과 함께 오게. 알록달록 칠보 같은 팬지와 함께 오게.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직 겨울의 마지막 서리에 식은 봄바람과 함께 오게. 아침 내내 밖에서 기다린 두 마리 나비를 위해, 첫 예리코 장미의 닫힌 문을 살며시 열어젖히는 그 봄바람과 함께.”
집에서는 이런저런 점을 두루 헤아려 볼 때 그래도 나를 르그랑댕 씨에게 저녁 식사에 보내야 할지 말지가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가 무례했을 리 없다고 믿기를 마다했다.
“너희 스스로도 그가 성당에 저리 소박한 차림으로 나온다고 인정하지 않느냐. 도무지 멋 부리는 사람 같지 않던데.” 할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어쨌든 설령 최악의 경우 그가 짐짓 무례하게 굴었다 해도, 우리로서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척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사실 아버지 자신도, 르그랑댕이 취한 태도에 우리 가운데 누구보다 언짢아하면서도, 그 참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마지막까지 얼마쯤 판단을 미루어 두었을지 모른다. 그것은 사람의 깊고 숨은 성품을 드러내는 온갖 태도나 행동이 다 그렇듯한 것이었다. 그런 태도는 그가 앞서 한 말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우리는 당사자의 증언으로 우리 의심을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는 아무것도 시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직 우리 감각의 증거에 기댈 수밖에 없어, 이 동떨어지고 앞뒤 없는 기억의 조각을 마주하고는, 정말 우리 감각이 환각의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 묻게 된다. 그리하여 그런 태도야말로, 오직 그런 것들만이 성품을 가리키는 데 중요한데도, 우리를 가장 곤혹스럽게 남겨 두기 십상인 것이다.
나는 르그랑댕과 그의 집 테라스에서 달빛을 받으며 저녁을 먹었다. “이 고요함에는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그가 내게 말했다. “내 것처럼 상처받은 마음에는, 언젠가 그대도 읽게 될 어느 소설가가 말하기를, 침묵과 그늘 말고는 다른 약이 없다더군. 그리고 보게나, 얘야, 모든 삶에는, 그대는 아직 거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지친 눈이 오직 한 가지 빛만을 견딜 수 있는 때가 오는 법이니, 그것은 이런 고운 저녁이 어둠의 증류실에서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는 빛이며, 귀가 침묵의 피리를 통해 달빛이 불어 내는 가락 말고는 어떤 음악도 들을 수 없게 되는 때라네.”
나는 르그랑댕 씨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가 하는 모든 말이 그렇듯 그 말도 매혹적으로 들렸다. 그러나 나는 얼마 전 처음으로 본 어느 부인의 기억에 마음이 어지러웠다. 그리고 르그랑댕이 그 고장 귀족 여럿과 가까이 지낸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어쩌면 그 부인도 그의 아는 이들 가운데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온 용기를 그러모아 그에게 말했다. “저, 여쭙는데요, 선생님은 혹시 그 부인을, 게르망트가의 부인들을 아시는지요?” 그리고 나는 기뻤으니, 그 이름을 소리 내어 부름으로써, 그것을 내 꿈에서 끌어올려 입 밖으로 나온 사물들의 세계에 객관적 존재로 세워 놓았다는 그 하나의 행위만으로 나는 그 이름에 대한 일종의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게르망트라는 말소리가 나자, 나는 우리 벗의 파란 두 눈 한복판에 저마다 작은 갈색 옴폭이가, 마치 보이지 않는 바늘 끝에 찔리기라도 한 듯 나타나는 것을 보았고, 한편 눈동자의 나머지 부분은 그 충격의 반동으로 넘쳐흐르는 하늘빛을 받아들여 안으로 삼켰다. 술 장식 같은 그의 눈꺼풀이 어두워지며 아래로 처졌다. 쓰디쓴 주름으로 굳고 그을렸던 그의 입이 먼저 되살아나 미소 지었으나, 두 눈은 아직도 온몸에 화살이 꽂힌 잘생긴 순교자의 눈처럼 고통으로 가득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