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이토록 멀게 느껴진다는 이 상상은, 어쩌면 위대한 작가들조차 맥퍼슨의 오시안 같은 어설픈 위작에서 영감 어린 아름다움을 찾아낸 까닭을 이해하게 해 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리라. 우리는 오래전에 죽은 음유시인들이 현대적 관념을 지닐 수 있으리라고는 거의 기대하지 않으므로, 우리가 고대 게일 송가로 믿는 것 속에서, 기껏해야 오늘날의 누군가가 재치 있게 지었으려니 여겼을 법한 시구를 마주치면 경탄한다. 재능 있는 번역가는 다소 충실히 옮겨 우리에게 소개하는 옛 작가에다, 만일 당대 이름으로 서명되어 따로 발표되었더라면 그저 재미있어 보이기만 했을 단편들을 그저 덧붙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단박에 그는 자기 시인에게 가슴 뭉클한 웅대함을 부여하며, 그리하여 그 시인은 여러 시대의 건반을 한꺼번에 두드리게 되는 것이다. 이 번역가는, 만일 그 책이 자신의 창작으로 발표되었더라면, 고작 평범한 책 한 권밖에 지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번역으로 내놓이자, 그것은 걸작의 번역인 듯 보인다. 과거는 덧없이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여전히 현재로 남아 있다. 전쟁이 터지고 겨우 몇 달 안에야 서두르지 않고 통과된 법률이 그 진로에 실효를 미칠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어둠에 묻힌 채로 있던 범죄가 저질러지고 겨우 열다섯 해 안에야 판사가 그 사건을 밝혀 줄 결정적 증거를 아직 찾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백 년, 수천 년이 지난 뒤에도, 머나먼 땅에서 지명이며 주민들의 관습을 연구해 온 학자는, 그 속에서 헤로도토스 시절에도 이미 이해할 수 없게 되었거나 잊히다시피 했던, 기독교 시대보다 훨씬 앞선 어떤 전설을, 하나의 바위에 붙은 이름 속에서, 하나의 종교 의식 속에서, 여전히 끄집어낼 수 있으니, 그 전설은 현재에 둘러싸인 채, 더 짙은 밀도를 지닌, 아득하고도 변함없는 발산물처럼 깃들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훨씬 덜 오래되긴 했으나, 궁정 생활의 어떤 발산물이 있었으니, 그것은 흔히 천박했던 게르망트 씨의 몸가짐에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그 몸가짐을 다스리는 정신 속에는 있었다. 조금 뒤 응접실에서 그와 어울렸을 때 나는 그것을 마치 고대의 향기처럼 다시 들이마시게 되었다. 나는 그리로 곧장 가지는 않았으므로.
바깥 현관을 나서며 나는 게르망트 씨에게 그의 엘스티르 그림들을 몹시 보고 싶다고 말해 두었었다. “얼마든지 보여 드리지요. 그럼 엘스티르 씨가 당신 친구입니까? 그렇다면 참 딱하게 됐군요, 나도 그와 조금 아는 사이인데. 유쾌한 사람이지요, 우리 아버지 세대가 ‘정직한 사람’이라 부르던 그런 이 말입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그에게 오늘 저녁 우리와 함께해 저녁을 들어 달라 청했을 텐데. 당신과 어울려 저녁을 보내자는 초대라면 그가 무척 우쭐했을 게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옛 법도의 몸가짐을 흉내 내려 할 때는 그것을 거의 떠올리게 하지 못하던 공작이, 무심결에 도로 그 법도로 빠져들었다. 그림을 보여 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은 뒤 그는 나를 그리로 데려갔는데, 문마다 우아하게 옆으로 비켜서서 내게 길을 내주고, 길을 안내하느라 앞장설 수밖에 없을 때는 사과를 했으니, 이 자그마한 광경은 (생시몽이 전하기를, 게르망트가의 한 조상이 신사의 그 하찮은 의무들을 똑같이 깍듯한 정확함으로 지키며 자기 저택을 손수 안내했다는 그 시절부터) 우리에게까지 차츰 내려오기 전에, 다른 수많은 게르망트가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손님들을 위해 되풀이해 왔음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내가 공작에게 그림들과 단둘이 몇 분만 있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준비가 되거든 응접실에서 자기를 찾으면 된다고 이르고는 조심스레 물러갔다.
막상 엘스티르 그림들과 마주하고 보니, 나는 만찬도 시간도 까맣게 잊어버렸다. 여기서도 발베크에서처럼, 나는 저 위대한 화가에게 고유한 사물을 보는 방식, 그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 그 기묘하게 물든 세계의 조각들을 눈앞에 두고 있었으되, 그의 말솜씨는 그 세계를 조금도 드러내 주지 못했다. 그의 붓에서 나온 그림들로 뒤덮인 벽면들은, 서로 온통 같은 결을 이루며, 어떤 환등기의 빛나는 영상들 같았으니, 이 경우 그 환등기란 곧 화가의 뇌였고, 그 기이함은 그 사람만을 알던 동안에는 결코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니, 그것은 마치 어떤 색유리 슬라이드도 홈에 끼워 넣기 전의, 등불을 감싼 쇠붙이 환등 상자만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이 그림들 가운데,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터무니없어 보이는 부류의 몇몇이 나머지보다 더 흥미로웠으니, 그것들은 우리가 얼마간 추론의 과정을 끼워 넣지 않는다면 결코 사물을 알아보는 데 이르지 못하리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저 착시들을 되살려 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마차를 몰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몇 걸음 앞에서 시작되는 길게 불 밝힌 거리를 마주치던가. 그러나 실제로 우리 눈앞에 있는 것이라곤 환한 빛이 비치는 네모난 벽 자락에 지나지 않아, 그것이 우리에게 깊이의 신기루를 안겨 주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상징의 어떤 재주로써가 아니라 인상의 바로 그 뿌리로 진솔하게 되돌아감으로써, 첫 착각의 순간에 우리가 어떤 사물을 다른 사물로 잘못 보았을 때, 그 하나를 바로 그 다른 것으로 그려 내는 것이 논리에 맞지 않겠는가? 면과 부피는 실은, 우리가 사물을 알아본 뒤 우리 기억이 거기에 씌우는 그 사물의 이름과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엘스티르는 자기가 방금 느낀 것에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을 억지로 떼어 내려 애썼으니, 그의 노력은 흔히 우리가 시각이라 부르는 저 인상의 덩어리를 부수는 데 있었다.
이 “끔찍한 것들”을 몹시 싫어하던 사람들은, 엘스티르가 샤르댕이며 페로노며, 그들, 곧 여느 사교계 남녀가 좋아하던 숱한 화가들을 흠모한다는 것을 알고는 놀랐다. 그들은 엘스티르 역시 (어떤 접근의 선들에 대한 자기 취향이라는 특유의 지표를 지닌 채) 현실을 재현하려 애쓰며 제 나름으로 샤르댕이나 페로노와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는 것, 그리하여 그가 자신을 위한 작업을 멈추었을 때 그들에게서 같은 종류의 시도, 이를테면 제 작품을 미리 내다보는 조각들을 흠모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다. 또 이 사교계 사람들은 엘스티르의 작품에 대한 자신들의 관념 속에, 그들로 하여금 샤르댕의 그림을 좋아하게, 적어도 거북함 없이 바라보게 해 준 저 시간적 원근을 넣어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들 가운데 나이 든 이들은, 살아오는 동안 세월이 자기들을 그것에서 멀리 실어 감에 따라, 앵그르의 걸작이라 여기던 것과 영영 “끔찍한 것”으로 남으리라 짐작하던 것 (이를테면 마네의 올랭피아) 사이의 건널 수 없던 심연이, 마침내 그 두 화폭이 쌍둥이처럼 보일 만큼 오그라드는 것을 차츰 보아 왔음을 스스로 떠올릴 수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우리는 어떤 교훈에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니, 개별에서 보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지혜가 우리에게 없는 탓이요, 우리는 늘 과거에 아무런 선례도 없는 경험을 겪고 있다고 여기는 탓이다.
나는 두 그림 (이쪽은 더 사실적이고 더 이른 시기의 방식으로 그려진) 속에서 같은 인물을 발견하고 마음이 움직였는데, 한 그림에서는 그가 자기 응접실에서 야회복 차림을 하고 있었고, 다른 그림에서는 프록코트에 높다란 모자를 쓴 채 그가 있을 까닭이 없어 보이는 어느 서민적인 보트 경주장에 있었으니, 이는 엘스티르에게 그가 단골 모델일 뿐 아니라 벗이자, 어쩌면 후원자였음을 말해 주었다. 엘스티르는 (마치 카르파초가 당대 베네치아의 이름난 인물들을, 그것도 꼭 닮은 초상으로 자기 그림에 끌어들이곤 했듯이) 그를 자기 그림 속에 끌어들이기를 즐겼던 것이니, 이는 베토벤이 아끼는 작품 첫머리에 사랑하는 루돌프 대공의 이름을 적어 넣으며 기쁨을 느낀 것과도 같았다. 이 물가의 축제에는 무언가 매혹적인 것이 있었다. 강물, 여인들의 드레스, 배들의 돛, 이것저것의 헤아릴 수 없는 반영들이, 엘스티르가 어느 눈부신 오후에서 오려 낸 이 자그마한 아름다움의 네모난 화폭 속으로 몰려들어 있었다. 더워서 숨을 고르느라 춤을 잠시 멈춘 여인의 드레스에서 사람을 홀리던 것이, 꼼짝 않는 돛의 화폭에서도, 작은 항구의 물에서도, 나무다리에서도, 나뭇잎에서도, 하늘에서도 꼭 같은 방식으로 거스를 수 없이 사람을 홀렸다. 발베크에서 본 그림 하나에서, 청금석 빛 하늘 아래 대성당 못지않게 아름다운 병원이, (이론가 엘스티르보다도, 취향가이자 중세 애호가인 엘스티르보다도 더 대담하게) “고딕이란 없다, 걸작이란 없다, 이 볼품없는 병원도 저 영광스러운 성당 정문 못지않게 훌륭하다”고 읊조리는 듯했듯이, 나는 이제 이렇게 읊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안목 있는 사람이라면 지나치며 눈길조차 주지 않을, 자연이 그 앞에 펼쳐 놓은 시적 구성에서 빼 버릴 그 다소 천박한 여인, 그녀의 드레스는 저 배의 돛이 받는 것과 똑같은 빛을 받고 있으며, 가치와 아름다움에 등급 따위는 없다. 흔해 빠진 드레스와, 그 자체로 아름다운 돛은 같은 빛을 되비추는 두 개의 거울이다. 가치란 온통 화가의 눈에 있다.” 이 눈은 저 빛나는 한순간에, 여인이 더위를 느껴 춤을 멈추었을 때, 나무가 그림자의 띠를 두르고 있을 때, 돛들이 금빛 유약 위를 미끄러지는 듯할 때, 그 시간의 흐름을 영원토록 붙들어 둘 재간이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려진 그 순간이 하도 강한 힘으로 우리를 짓눌러 오는 까닭에, 이토록 영속적인 화폭이 우리에게 더없이 덧없는 인상을 주었으니, 우리는 이내 그 여인이 화폭 밖으로 움직여 나가고, 배들이 떠내려가고, 밤이 다가오고, 기쁨이 끝나고, 삶이 흘러가며, 이토록 많은 빛이 한꺼번에 모여들어 밝힌 그 순간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느꼈다. 나는 또 다른 면모를, 사실 사뭇 다른 면모를, 이 방을 함께 꾸미고 있던, 엘스티르의 초기에 속하는 신화 주제의 수채화 연작에서 순간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해 알아보았다. 예술에 대해 “앞선” 견해를 지녔다는 사교계 사람들도 이 가장 이른 시기의 방식까지는 “받아들였으나”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것들은 분명 그가 해낸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으되, 이미 주제를 궁리해 낸 그 진솔함이 그 타고난 차가움을 녹여 놓고 있었다. 이를테면 뮤즈들은, 이제는 화석이 된 어떤 종에 속하는 생물처럼, 그러나 신화의 시대라면 저녁 무렵 둘씩 셋씩 어느 산길을 따라 지나가는 것을 보아도 놀랍지 않았을 그런 생물처럼 그려져 있었다. 여기저기서, 동물학자에게도 각별한 흥미를 끌 만한 종족의 (어떤 무성성으로 특징지어지는) 한 시인이 뮤즈와 더불어 거닐고 있었으니, 이는 자연에서 서로 다르되 가까운 종의 생물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다. 이 수채화 가운데 하나에는, 산에서 오래 헤매다 지친 시인을, 그를 만나 그 약함을 가엾이 여긴 켄타우로스 하나가 등에 업고 집으로 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또 다른 여러 그림에서는, 광대한 풍경이 (그 속에서 신화적 장면과 전설적 영웅들은 아주 작은 자리를 차지한 채 거의 파묻혀 있었다) 산꼭대기에서 바다에 이르기까지, 지는 해의 정확한 각도와 그림자의 덧없는 충실함 덕분에, 하루 중 어느 때인지를 시각을 넘어 바로 그 분까지 일러 주는 정확함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화가는, 그것을 한순간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자기 우화의 상징에다 실제로 살아진 무엇인 양 일종의 역사적 실재성을 부여하여, 그것을 그려 내고 과거의 어느 확실한 지점에 자리매김해 놓았다.
내가 엘스티르의 그림들을 살펴보는 동안, 도착하는 손님들이 울려대는 초인종이 쉴 새 없이 울리며 나를 기분 좋은 무의식 속으로 잠재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요란한 소리에 뒤이어 이미 얼마간 이어지고 있던 정적은, 린도르의 음악에 뒤따르는 정적이 잠든 바르톨로를 깨어나게 하듯, 사실 조금 더디긴 했으되 마침내 나를 몽상에서 깨우는 데 성공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벌써 만찬 자리에 앉은 것은 아닌지 겁이 나서 응접실로 서둘러 갔다. 엘스티르 화랑 문 앞에서 나는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하인 하나를 보았는데,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으나 그것이 나이 탓인지 분 탓인지는 알 수 없었고, 에스파냐 대신 같은 풍모를 지녔으면서도 왕에게 하듯 나를 정중히 대했다. 그의 태도로 미루어 그가 적어도 한 시간은 기다렸음이 틀림없다고 느꼈고, 내가 만찬 시중을 지체시킨 것을 생각하니 아찔했는데, 더구나 나는 열한 시까지 샤를뤼스 씨 댁에 가 있기로 약속한 터였다.
그 에스파냐 대신은 (가는 길에 나는 문지기에게 시달리던 그 하인도 마주쳤는데, 그는 내가 자기 애인의 안부를 묻자 기쁨에 겨워 얼굴이 환해지며, 바로 다음 날 둘 다 비번이어서 온종일 그녀와 함께 지낼 수 있다고 말하고는 공작부인 마님의 너그러움을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나를 응접실로 안내했는데, 거기서 나는 게르망트 씨가 언짢은 기분으로 있는 것을 보게 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는 오히려 어느 정도는 분명 꾸며낸 것이고 예의가 시킨 것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심이기도 한 기쁨으로 나를 맞이했는데, 그 진심은 그토록 오랜 지체로 슬슬 허기지기 시작한 그의 위장에서, 또 방을 가득 메운 다른 손님들 모두가 똑같이 안달하고 있음을 의식한 데서 비롯한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나중에 내가 그들을 거의 사십오 분이나 기다리게 했다는 말을 들었다. 게르망트 공작은 아마도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 분을 더 끌어봤자 모두의 고통이 더 심해지지는 않을 것이고, 예의 때문에 그토록 오래 식당으로 옮겨 갈 순간을 미룬 마당에, 만찬을 곧바로 알리지 않음으로써 내가 늦지 않았으며 아무도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고 나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 예의가 한결 완벽해지리라고. 그리하여 그는 마치 만찬까지 아직 한 시간이 남았고 일행 중 몇몇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처럼, 자기의 엘스티르 그림들을 어떻게 보았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자기 위장의 갈망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단 한 순간도 더 허비하지 않으려고, 공작부인과 발을 맞추어 소개의 의식으로 넘어갔다. 그제야 나는 내 주위에 하나의 환경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달았는데, 그 변화란 파르지팔을 느닷없이 꽃처녀들 한가운데로 데려다 놓는 것에 견줄 만한 것이었다. 이날 저녁까지 나는, 스완 부인의 응접실에서 겪은 견습을 빼면, 콩브레와 파리에 있는 어머니의 집에서 나를 어린애 취급하던 우리 중간 세계의 근엄한 부인들의, 감싸주거나 방어적인 태도에만 익숙해 있던 터였다. 지금 나를 둘러싼 여인들은 가슴을 온통 드러낸 채(맨살이 구불구불한 미모사 가지 양옆으로, 혹은 장미의 넓은 꽃잎 뒤로 드러나 있었다) 인사말 한마디 속삭이면서도 동시에 길고 어루만지는 듯한 눈길로 나를 적셨는데, 마치 수줍음만이 나에게 입 맞추는 것을 막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그들 중 다수는 도덕의 견지에서 보아도 대단히 존경할 만한 이들이었다. 다수이지 전부는 아니었으니, 가장 정숙한 여인들조차 좀 더 헤픈 부류에 대해 내 어머니라면 느꼈을 법한 혐오를 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증거가 뚜렷한데도 더 성인 같은 벗들이 부인해 주는 그런 처신의 방종은, 게르망트 세계에서는 한 사람이 유지해 온 교제 관계에 비하면 훨씬 덜 중요해 보였다. 안주인의 방문객 명단에 빈틈이 없기만 하면, 그 안주인의 몸이 아무에게나 내맡겨져 있다는 사실은 다들 모르는 척했다. 공작은 다른 손님들에게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으면서(그는 그들에 대해 알 만한 것은 이미 오래전에 다 알았고 그들 역시 그에 대해 그러했다) 유독 나에게만은 눈에 띄게 애를 썼는데, 그의 경험 밖에 있는 나의 그 남다른 우월함이 그의 마음속에, 루이 14세 궁정의 대귀족들이 평민 출신 대신들에게 느끼던 존경 비슷한 무언가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는 내가 다른 손님들을 모른다는 사실이, 적어도 내게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그들에게는 문제일지 몰라도, 그렇게 여기는 것이 분명했고, 나는 나대로 그를 생각해 내가 그들에게 줄 인상을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는 오직 자기 벗들이 나에게 줄 인상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맨 처음부터 나는 완전히 어리둥절해졌다.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게르망트 씨는 공작부인과 악수할 겨를조차 주지 않고, 마치 내가 상대 부인에게 반가운 깜짝 선물이라도 되는 듯, 그 부인에게 “당신 친구가 여기 있소! 보시오, 내가 목덜미를 잡아끌고 데려왔소”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양, 키가 자그마한 한 부인에게로 나를 이끌었다. 그러자, 공작에게 떠밀린 내가 그녀의 의자에 이르기 훨씬 전부터, 그 부인은 크고 부드러운 검은 눈에서, 어쩌면 우리를 알아보지 못했을지 모를 옛 친구에게 보내는 그 천 가지 이해의 미소를 끊임없이 나에게 반짝여 보내기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내 처지였으므로, 그리고 나는 도무지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리지 못했으므로, 다가가면서 나는 그녀에게서 눈길을 돌렸는데, 소개가 나를 이 곤경에서 풀어줄 때까지는 응답하지 않아도 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동안 그 부인은 나를 향한 그 미소를 위태로운 균형 속에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미소를 얼른 내려놓고 내가 이렇게 말해 주기를 애타게 바라는 듯 보였다. “아,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어머니께 당신을 만났다고 말씀드리면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나는 그녀의 이름을 알고 싶어 안달했고, 그녀는 그녀대로 내가 내 행동을 온전히 의식한 채 마침내 그녀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싶어 안달했으니, 그리하여 소리굽쇠의 음처럼 그녀가 한없이 붙들고 있던 그 미소가 마침내 놓여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나 게르망트 씨는 (적어도 내 생각에는) 일을 어찌나 서툴게 처리했던지, 나는 오직 내 이름이 불리는 것만 들은 듯했고 그 낯선 벗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실마리도 얻지 못했는데, 그 벗은 나를 완전히 어리둥절하게 만든 우리 친분의 근거가 그녀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해 보였던 나머지,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나에게 스스로 일러줄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실제로 내가 손 닿을 거리에 이르자마자 그녀는 내게 손을 내미는 대신 스스럼없이 내 손을 잡았고, 마치 그녀가 되짚어 가는 그 흐뭇한 추억들을 나도 그녀와 똑같이 의식하고 있기라도 한 듯 나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알베르(내가 짐작하기로 그녀의 아들이었다)가 나를 만나지 못한 것을 얼마나 아쉬워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나는 소년 시절에 알던 사람들 가운데 알베르라 불리던 이가 누구인지 떠올려 보려 했으나 블로크밖에 생각나지 않았는데, 눈앞의 이 부인이 블로크의 어머니일 리는 없었으니 그의 어머니는 이미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녀의 생각이 되돌아간, 그녀와 나에게 공통된 그 지난날의 경험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나는 헛되이 애썼다. 그러나 오직 그녀의 미소만이 그 표면을 뚫고 나오도록 허락하는, 크고 부드러운 눈동자의 반투명한 흑옥을 통해서는, 마치 그을린 유리 저편에 놓인 풍경을 아무리 햇빛이 쨍쨍 내리쬐어도 알아볼 수 없듯이, 나 역시 그것을 도무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 아버지가 너무 무리하시는 것은 아닌지, 언제 저녁에 알베르와 함께 극장에 오지 않겠는지, 이제는 몸이 좀 튼튼해졌는지 물었고, 내가 빠져 있던 정신적 어둠 속을 더듬으며 나온 내 대답들이, 그날 저녁 몸이 좋지 않다고 설명할 때에야 겨우 또렷해지자, 그녀는 손수 내게 의자를 밀어다 주며 부모님의 벗들이 하는 것을 본 적 없는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그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내게 준 것은 공작이었다. “저분은 자네가 매력 있다고 생각하시네.” 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는데, 그 귀는 어쩐지 전에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말은 빌파리지 부인이 우리가 뤽상부르 대공비와 인사를 나눈 뒤 할머니와 나에게 했던 말이었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지금 내가 마주한 부인은 뤽상부르 부인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으나, 이렇게 그녀를 내게 대접해 준 이의 말투에서 나는 그 짐승의 본성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은 왕족이었다. 그녀는 내 집안도 나 자신도 전에 들어본 적이 없었으나, 가장 고귀한 혈통의 후예이자 세상에서 가장 큰 재산을 지닌 몸으로서(파름 대공의 딸인 그녀는 그에 못지않은 대공가의 사촌과 결혼했으니까), 언제나 자신의 창조주에 대한 감사에서, 아무리 가난하고 미천한 이웃에게라도 자기가 그를 깔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썼다. 사실 나는 그녀의 미소만 보고도 이를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뤽상부르 대공비가 발베크 해변에서 작은 호밀 과자를 사서, 마치 동물원 우리 안의 사슴에게 주듯 할머니에게 건네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부인은 내가 소개받은 두 번째 왕족 공주에 지나지 않았으니, 내가 그녀에게서 위대한 이들의 상냥함이 지닌 공통 요소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너그러이 봐줄 만도 했다. 게다가 그들 스스로도 이 상냥함을 너무 믿지는 말라고 애써 나에게 일러주지 않았던가. 오페라코미크에서 장갑 낀 손으로 나에게 그토록 살가운 인사를 건네던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길거리에서 내가 인사를 하자 화가 난 듯 보였으니, 마치 한번 누군가에게 금화 한 닢을 준 사람이 그것으로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의무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는 것과 같았다. 샤를뤼스 씨로 말하자면, 그의 기복은 한층 더 뚜렷이 엇갈렸다. 그 뒤로 나는, 독자도 알게 되겠지만, 전혀 다른 부류의 전하와 폐하들을, 곧 왕비 노릇을 하되 자기 부류의 관례대로가 아니라 사르두 희곡 속 왕비들처럼 말하는 여왕들을 알게 되었다.
게르망트 씨가 그토록 서둘러 나를 소개한 것은, 어떤 연회에서 왕족과 직접 아는 사이가 아닌 누군가가 자리에 있다는 것은 단 한 순간도 끌어서는 안 될 참을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생루가 나에게 자기를 할머니께 소개시키라고 재촉했을 때 보였던 성급함과 비슷했다. 같은 이치로, 사교적 예의라 불리며 결코 피상적이지 않은, 아니 오히려 구심적 역전에 의해 표면 자체가 본질적이고 심오해지는, 궁정의 옛 생활이 조각조각 살아남은 그 흔적에 따라, 게르망트 공작 부부는 자선, 정결, 연민, 정의의 의무들(둘 중 적어도 한 사람은 그것들을 곧잘 소홀히 했지만)보다 더 본질적인 의무로, 더 바꿀 수 없는 법으로, 파름 대공비에게는 오직 삼인칭으로만 말을 건넨다는 것을 여겼다.
나는 평생 아직 파르마에 가본 적이 없었으므로(오래전 어느 부활절 휴가 이래로 나는 그곳으로의 순례를 몹시 하고 싶어 했다), 내가 알기로 그 견줄 데 없는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궁전을 소유한 그곳 대공비를 만나는 일은, 게다가 세상 나머지와 동떨어진 채 반들반들한 성벽 안에서 모든 것이 그 이름과 어우러져 있어야 할 그 도시, 그 야무지고 거의 물릴 만큼 감미로운 이름이 이탈리아 작은 마을 광장의 숨 막히는 여름 저녁처럼 답답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도시에서, 내가 그토록 자주 상상하려 애썼던 것을 대신하여, 파리에서 몸을 옮기지 않고도 나 자신이 그곳에 부분적으로 당도한 셈으로, 파르마에 실제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단숨에 눈앞에 데려다 놓았을 것이다. 그것은 코레조의 도시로 떠나는 여행이라는 대수식에서, 말하자면 그 미지수를 푸는 하나의 단순한 방정식이었다. 그러나 여러 해 동안 나는, 마치 향수 제조인이 굳은 기름 덩어리에 향을 배게 하듯, 파름 대공비라는 이 이름에 수천 송이 제비꽃의 향기를 빨아들이게 만들어 왔는데, 그 대가로, 그때까지 나라면 산세베리나 그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맹세라도 했을 그 대공비를 눈으로 보게 되자, 두 번째 과정이 시작되었으니, 그것은 몇 달이 지나서야 비로소 끝났다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새로운 화학적 결합을 통해 대공비의 이름에서 제비꽃의 정유와 스탕달풍의 향기를 모조리 몰아내고, 그 자리에 선행에 몰두하는 작고 가무잡잡한 여인의 모습을, 그 상냥함이 어찌나 겸손한지 그 상냥함이 얼마나 드높은 자긍심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대번에 느끼게 하는 그런 여인의 모습을 심어 넣는 일이었다. 게다가 몇 가지 다른 점을 빼면 그녀는 여느 귀부인과 똑같았는데, 그녀는 스탕달풍과는 거리가 멀어서, 예컨대 파리의 유럽 구역에 있는 파름 거리만큼이나 그러했으니, 그 거리는 파르마라는 이름보다 이웃한 거리들 그 어느 것과도, 아니 그 모두와 더 닮았고, 파브리스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수도원보다는 차라리 생라자르 역의 대합실을 훨씬 더 떠올리게 한다.
그녀의 상냥함은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했다. 그 첫째이자 더 일반적인 것은 왕들의 이 딸이 받은 교육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유럽의 모든 왕가와 혈연으로 이어져 있었을 뿐 아니라, 파르마 공작가와는 달리, 다스리는 그 어떤 대공비보다도 부유했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에게 복음적 속물근성의, 오만하리만치 겸손한 훈계들을 심어 넣었으니, 오늘날 그 딸의 얼굴 선 하나하나, 어깨의 곡선, 팔의 움직임이 모두 그 가르침을 되풀이하는 듯했다. “명심하여라, 하느님께서 너를 왕좌의 계단 위에 태어나게 하셨다 하여, 그것을 빌미로, 신의 섭리가(그 이름을 찬미할지어다) 너로 하여금 태생과 재산에서 우월하도록 정하신 그 사람들을 깔보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너는 미천한 이들을 품어야 한다. 네 조상은 647년부터 트레브와 윌리에의 대공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그 은혜로 네가 수에즈 운하의 주식을 사실상 전부 쥐고, 로열 더치 주식을 에드몽 드 로트실트보다 세 배나 더 갖도록 정하셨으며, 네 직계 혈통은 계보학자들에 의해 기원후 63년부터 확립되었고, 너에게는 두 황후가 올케로 있다. 그러므로 네 말투에서 결코 이 크나큰 특권들을 되새기는 티를 내지 마라. 그것들이 위태로워서가 아니라(혈통의 유구함은 그 무엇도 바꿀 수 없고, 세상은 언제나 석유를 필요로 할 테니까), 네가 남들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네 투자가 죄다 우량하다는 것을 굳이 짚어 봐야 소용없기 때문이니, 이 사실들은 이미 누구나 알고 있음이라. 궁핍한 이들을 도와라. 하늘의 은혜가 너를 위해 네 아래에 두어 준 모든 이에게, 네 지위를 잃지 않는 한도 안에서 줄 수 있는 만큼 베풀어라. 곧 돈의 형태로 돕고, 그들의 병상 곁에서 몸소 시중을 드는 것까지도 좋으나, 결코(똑똑히 새겨 두어라) 그들을 네 연회에 초대하지는 마라. 그것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네 자신의 지위를 약화시켜 네 선행의 효력을 떨어뜨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