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제2장 ⑨

3권 제2부 · 제2장

그리하여 대공비는 선을 베풀 수 없는 순간에조차, 무언의 온갖 겉 신호를 통해, 자기가 우연히 함께 놓이게 된 사람들보다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고, 아니 차라리 그렇게 믿게 하려고 애썼다. 그녀는 그들 하나하나를, 교양 있는 이들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 보이는 그 매력적인 예의로 대했고, 도움이 되려고 끊임없이 자리를 넓히려 의자를 뒤로 밀고, 내 장갑을 들어 주고, 평민의 자존심이라면 굽죄일 온갖 시중을 나에게 베풀었는데, 그런 시중은 군주다운 부인들이 기꺼이 들거나, 혹은 본능적으로, 몸에 밴 직업적 습관으로, 물러난 하인들이 드는 법이었다.

그러나 이미 공작은 소개의 순회를 서둘러 마치려는 듯, 나를 또 다른 꽃처녀에게로 이끌고 갔다. 그녀의 이름을 듣고 나는 발베크에서 멀지 않은 그녀의 시골 저택 앞을 지나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아, 제가 직접 안내해 드렸더라면 참으로 기뻤을 텐데요.” 그녀는 겸손을 돋보이려는 듯 거의 속삭이듯, 그러나 자못 각별한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놓친 아쉬움에 흠뻑 젖은 깊은 감정의 어조로 나에게 말하고는, 의미심장한 눈길로 이어 갔다. “언젠가 꼭 다시 와 주시기를 바라요. 하지만 당신께 더더욱 흥미로울 곳은 제 브랑카스 고모님 댁이라고 해야겠네요. 그 집은 망사르가 지었고, 이 지방의 보배랍니다.” 그녀 자신만이 기꺼이 자기 집을 나에게 구경시켜 주려 했던 것이 아니라, 브랑카스 고모 역시 못지않게 흔쾌히 자기 집을 나에게 보여 주는 영예를 누렸으리라고, 이 부인은 나에게 장담했는데, 그녀는 분명, 특히 토지가 세상 물정 모르는 금융가들의 손에 넘어가는 경향을 보이는 이 시대에는, 대귀족들이 아무런 부담도 지지 않는 말치레로써 영주다운 환대의 드높은 전통을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그녀가, 자기 세계의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말을 건네는 상대를 가장 기쁘게 할 말들을 하려 했기 때문이니, 곧 상대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더없이 높은 자부심을 심어 주고, 편지를 써 주는 것만으로 남들에게 아첨을 베푸는 셈이며, 자기를 대접하는 이들에게 오히려 영예를 안겨 주는 것이고, 누구나 자기와 알고 지내고 싶어 안달한다고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남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이런 흐뭇한 생각을 심어 주려는 욕구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중간 계급 사이에도 존재한다. 거기서도 우리는 그 상냥한 기질을, 어떤 다른 결점을 벌충하는 개인적 미덕의 형태로 발견하는데, 애석하게도 가장 미덥직한 남자 친구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어쨌든 가장 마음에 드는 여자 벗들 사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거기서는 어쨌든 그것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피어날 뿐이다. 반면 귀족 사회의 중요한 한 부분에서는 이 특성이 더 이상 개인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으니, 교육으로 길러지고, 그 어떤 굴욕도 두려워할 것 없고 맞수를 모르며, 상냥하게 굴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음을 알고 또 그리하기를 즐기는, 개인적 위대함의 관념에 떠받쳐져, 그것은 한 계급의 일반적 특징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너무나 상반된 종류의 개인적 결점 탓에 그것을 가슴속에 간직하지 못하는 이들조차, 그 무의식적 흔적을 자기 말투나 몸짓 속에 지니고 있다.

“저분은 참으로 착한 분이시지.” 게르망트 공작이 파름 대공비를 두고 말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도 ‘귀부인’ 노릇을 잘하실 수 있는 분이야.”

내가 부인들에게 소개되고 있는 동안, 일행 중 한 신사가 여러 가지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으니, 바로 아니발 드 브레오테콩살비 백작이었다. 늦게 도착한 그는 모임의 구성을 살필 겨를이 없었던 터라, 내가 방에 들어서자, 공작부인의 단골 무리에 속하지 않으니 필시 이 자리에 들 만한 아주 특별한 자격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손님을 나에게서 보고는, 내가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알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며 눈썹의 궁륭 아래에 외알 안경을 끼워 넣었다. 그는 게르망트 부인이 (참으로 뛰어난 여인들만이 지니는 값을 매길 수 없는 특권으로) 이른바 ‘살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음을, 다시 말해 이따금 자기 패거리의 사람들에 더하여, 무언가에 대한 새 치료법을 발견했다거나 걸작을 내놓아 최근 두각을 나타낸 어떤 명사를 곁들이곤 함을 알고 있었다. 포부르 생제르맹은 공작부인이 영국 국왕 내외를 맞이하려고 연 접견회에 서슴없이 데타유 를 초대했다는 소식을 듣고 받은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초대받지 못한 포부르의 영리한 여인들은 위로할 길 없이 애를 태웠으니, 그 기이한 천재와 마주하는 일이란 얼마나 감미롭게 짜릿했을 것인가. 쿠르부아지에 부인은 리보 도 거기 왔었다고 우겼는데, 이는 오리안이 남편의 대사직을 노리고 있다고 사람들이 믿게 하려는 순전한 지어낸 이야기였다. 끝으로, 추문의 마지막 결정타로, 게르망트 는 삭스 원수에게도 걸맞았을 정중함으로 코메디 프랑세즈의 분장실로 몸소 가서, 레솅베르 에게 국왕 앞에서 낭송해 달라고 청했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짐으로써 사교 모임의 연대기에 유례없는 사건이 되었다. 이 모든 놀라운 일들을 떠올리며, 게다가 그것들은 그의 전적인 찬동을 얻은 것이었고, 그 자신의 참석은 한낱 장식이 아니라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참석과 마찬가지로 어느 응접실에나 하나의 봉헌과도 같았으니, 브레오테 는 내가 도대체 누구일지 자문하며 탐색의 영역이 매우 넓다고 느꼈다. 한순간 비도르 의 이름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으나, 그는 내가 오르간 연주자가 되기에는 나이가 모자라고, 또 비도르 는 이런 자리에 ‘초대받을’ 만큼 대단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대체로는 나를 그저 그가 소문으로 들은 스웨덴 공사관의 새 대사관 참사관쯤으로 보는 편이 더 그럴듯해 보였고, 그리하여 그는 여러 번 극진히 환대받은 적이 있는 오스카르 왕의 근황을 나에게 물으려 채비하고 있었는데, 공작이 나를 소개하며 브레오테 에게 내 이름을 대자, 그는 그 이름이 자기에게 전혀 낯선 것임을 알고는, 내가 이런 자리에 있는 이상 필시 어떤 종류의 명사임에 틀림없다고 더는 의심하지 않았다. 오리안은 결코 명사가 아닌 사람은 초대하지 않았고,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인물들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이는 재주가 있었으되, 물론 그 비율이 일 퍼센트를 넘는 법은 없었으니, 그러지 않았다면 살롱의 품격을 떨어뜨렸을 것이다. 그리하여 브레오테 는 입맛을 다시며 게걸스럽게 공기를 킁킁대기 시작했는데, 그의 식욕은 믿고 기대할 만한 훌륭한 만찬뿐 아니라, 내 존재가 어김없이 흥미롭게 만들어 줄, 그리고 이튿날 샤르트르 공작의 오찬 식탁에서 그에게 재기 넘치는 이야깃거리를 대 줄 그 모임의 성격에 의해 돋우어진 것이었다. 그는 내가 암을 고치는 혈청 실험을 막 벌이던 그 사람인지, 아니면 그 무렵 프랑세 극장에서 연습 중이던 새 ‘개막극’의 작가인지 아직 마음속으로 정하지 못했으나, 대단한 지식인이자 ‘여행자의 이야기’를 열심히 모으는 수집가로서, 점점 더 늘어나는 절 세례며, 서로 통한다는 신호며, 외알 안경 유리를 거른 미소를 끊임없이 펼쳐 보였다. 그것은, 나 같은 지위의 사람이라면, 그에게 곧 브레오테콩살비 백작에게 정신의 특권이 태생의 특권 못지않게 존경받을 만하다는 환상을 내게 불어넣는 데 성공할 경우 그를 더 높이 평가하리라는 잘못된 생각에서였거나, 아니면 그저 자기 만족감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과 그것을 표현하기 어려운 데서, 나에게 어떤 말로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서 나온 것이었으니, 마치 정말로 그가 자기 배가 좌초한 미지의 나라의 ‘원주민’ 하나와 얼굴을 맞대고 선 것과 다름없었고, 그 원주민에게서 끝내 이문을 볼 요량으로, 그동안 그들의 진기한 풍습을 흥미롭게 살피며, 우정의 표시를 멈추지 않은 채, 혹은 그들처럼 큰 소리를 내지르며, 자기 유리구슬을 주고 타조 알과 향신료를 얻어 내려 애쓰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의 기쁨에 나름껏 화답한 뒤, 나는 이어 샤텔로 공작과 악수했는데, 그는 내가 이미 빌파리지 부인 댁에서 만난 적이 있는 이로, 일러 준 바로는 “둘도 없이 약아빠진” 사람이었다. 그는 금발 머리, 활처럼 휜 옆얼굴, 뺨의 살갗이 핏기를 잃는 그 부위들에서 전형적인 게르망트가 사람이었으니, 이 모든 것은 16세기와 17세기로부터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그 집안의 초상화들에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공작부인을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젊은 남자의 모습으로 되살아난 그녀는 나에게 아무런 매력도 주지 못했다. 나는 샤텔로 공작의 코가 이룬 그 갈고리를, 오래 연구했으나 이제는 조금도 흥미가 없어진 어느 화가의 서명이라도 되는 양 읽어 냈다. 다음으로 나는 푸아 대공에게도 저녁 인사를 건넸고, 짓눌리고 으스러진 채 빠져나온 내 손가락 마디들을 희생하면서, 노르푸아 의 벗인 파펜하임 대공의, 빈정거리는 듯도 하고 사람 좋아 보이기도 하는 미소를 곁들인 독일식 악수라는 그 죔쇠에 손을 붙들리게 두었는데, 이 대공은 이 무리에 만연한 별명 벽 덕분에 어디서나 ‘폰 대공’으로 통하여 자기 편지에도 스스로 “폰 대공”이라 서명하거나, 가까운 이들에게 쓸 때는 “폰”이라 서명하곤 했다. 그렇지만 이 줄임은 그의 세 겹으로 된 이름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 그보다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마치 또 다른 세계가 “키키들”로 우글거리듯, “엘리자베트”를 어떤 때는 “릴리”로, 어떤 때는 “베베트”로 바꾸어 부르게 만든 까닭이었다. 이 사람들이, 비록 대개는 한가롭고 경박하기 짝이 없다 해도, “몽테스키우”를 발음하는 데 걸릴 그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고 “키우”를 쓰게 되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사촌 하나를 “페르디낭” 대신 “디낭”이라 부름으로써 그들이 무엇을 아꼈는지는 그리 쉽게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별명을 지어낼 때 게르망트가 사람들이 언제나 음절을 줄이거나 겹치는 식으로만 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몽페루 백작부인과 벨뤼드 자작부인 두 자매는 둘 다 엄청나게 뚱뚱했는데, 관습이 워낙 오래 굳어진 터라 당사자들 쪽에서 조금도 언짢은 기색 없이, 또 남들 쪽에서도 조금의 재미있어하는 기색 없이, 언제나 “프티트”와 “미뇬”이라 불렸다. 몽페루 부인을 몹시 아끼던 게르망트 부인은, 만약 그 벗이 중병에 걸렸다면 눈물을 글썽이며 그 자매에게 달려가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프티트가 몹시 위중하다면서요!” 귀를 완전히 가리도록 머리를 땋아 내린 레클랭 부인은 오직 “빈 위장”이라고만 불렸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를 가리키려고 그저 남편의 성이나 이름 끝, 또는 앞에 a를 붙이기도 했다. 포부르에서 가장 인색하고, 가장 추잡하고, 가장 인정머리 없는 남자가 라파엘이라는 세례명을 받았던 터라, 그의 매혹자, 역시 바위에서 돋아난 그의 꽃은 언제나 “라파엘라”라고 서명했다. 그러나 이것들은 수없이 많은 규칙에서 뽑아낸 몇 가지 표본에 지나지 않으니,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 다시 돌아와 그 가운데 몇몇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공작에게 아그리장트 대공에게 나를 소개해 달라고 청했다. “아니! 자네 설마 우리 훌륭한 그리그리를 모른단 말인가!” 게르망트 가 소리치고는 아그리장트 에게 내 이름을 대 주었다. 프랑수아즈가 그토록 자주 입에 올리던 그의 이름은, 나에게 언제나 투명하고 빛깔 있는 유리판처럼 보였는데, 그 유리 너머로 나는 보랏빛 바다 기슭에서 황금빛 태양의 비스듬한 햇살을 받아 빛나는, 어느 고대 도시의 장밋빛 대리석 육면체들을 바라보았고, 나는 그 도시의 절대적 군주가 바로 그 대공, 곧 기적 같은 한순간 파리를 지나가고 있는 그 대공 자신이라고, 환하게 시칠리아답고 찬란하게 무르익은 그 군주라고 조금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 내가 소개받은 그 천박한 게으름뱅이, 스스로 우아하다 여기는 굼뜬 여유로 몸을 돌려 나에게 저녁 인사를 건넨 그자는, 자기 이름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으니, 마치 그 아름다움의 흔적을 제 몸에 조금도 지니지 못한 채, 어쩌면 한 번도 멈춰 서서 살펴본 적조차 없이 소유했을 어떤 예술품과 상관없듯이 그러했다. 아그리장트 대공은 대공다운 그 무엇도, 지르젠티를 떠올리게 할 그 무엇도 어찌나 철저히 결여했던지, 그의 이름은, 그 자신과는 완전히 별개이고 그의 인격에는 아무 끈으로도 묶여 있지 않으면서, 여느 사람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이 사람 안에 있었을 그 어렴풋한 시적 요소 전부를 제게로 끌어당겨, 그 작업을 마친 뒤 마법 걸린 음절들 속에 따로 가두어 버리는 힘을 지녔던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만약 그런 작업이 정말 행해졌다면, 그것은 분명 더없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졌으니, 이 게르망트가의 친척에게서는 끌어낼 매력이라곤 티끌만큼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세상에서 아그리장트 대공인 유일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 가운데 어쩌면 가장 아그리장트 대공답지 않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가 지금의 자신인 것을 무척 기뻐했으나, 그것은 은행가가 어느 광산의 주식을 여러 주 쥐고 있음을 기뻐하되, 그 광산이 아이반호나 프림로즈라는 매력적인 이름으로 불리든, 그저 프리미어라 불리든 개의치 않는 것과 같았다. 그러는 동안, 이렇게 옮기는 데는 이토록 오래 걸렸으나 내가 방에 들어서면서 시작되어 겨우 몇 초밖에 이어지지 않은 이 소개들이 끝나 가고, 게르망트 부인이 거의 애원하다시피 한 어조로 나에게 “바쟁이 이렇게 자네를 끌고 다니며 자네를 지치게 하는 게 분명해요. 우리는 자네가 우리 벗들을 알아 두기를 바라지만, 자네가 다시 자주 와 줄 수 있도록 자네를 지치게 하지 않기를 훨씬 더 바란답니다”라고 말하고 있을 때, 공작은 다소 어색하고 머뭇거리는 손짓으로 (지난 한 시간 동안, 나로서는 그의 엘스티르 그림들을 바라보느라 채워졌던 그 시간의 어느 때고 그는 기꺼이 그 신호를 보냈으련만) 이제 만찬을 차려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덧붙이자면 손님 중 한 사람, 그루시 가 아직 오지 않았는데, 게르망트 태생인 그의 아내는 혼자 도착해 있었고, 남편은 온종일 사냥을 하던 시골에서 곧장 오기로 되어 있었다. 이 그루시 는, 워털루 전투 초반의 부재가 나폴레옹 패배의 주된 원인이었다고 아주 부당하게 일컬어져 온 제1제정 시대의 동명 인물의 후손으로, 훌륭한 집안 출신이었으나 순수 혈통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몇몇 사람들의 눈에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그리하여 게르망트 대공은, 훗날 그 자신의 취향이 한결 쉽게 만족될 것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조카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 가엾은 게르망트 부인”(그루시 부인의 어머니인 게르망트 자작부인 말이다) “은 제 자식 중 누구 하나 시집 장가 보내지 못했으니 이 무슨 불행이냐.” “하지만 큰아버지, 맏딸은 그루시 와 결혼했잖아요.” “나는 그런 걸 남편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래도 너희 프랑수아 삼촌이 막내에게 청혼했다니, 어쩌면 다들 노처녀로 죽지는 않겠구나.” 만찬을 차리라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여럿이 한꺼번에 거대하게 회전하는 소리와 더불어 식당의 두 짝 문이 활짝 열렸다. 시종장 같은 풍모의 한 시종이 파름 대공비 앞에서 절하고는, “마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할 때나 썼을 법한 어조로 “마님, 대령하였습니다”라는 소식을 알렸으나, 그것이 좌중에 아무런 침울함도 드리우지 않았으니, 여름철 ‘로뱅송’에서처럼 거리낌 없는 흥겨움 속에서 짝들이 하나씩 앞뒤로 식당을 향해 나아가, 급사들이 뒤에서 의자를 밀어 넣어 주는 각자의 자리에 이르면 갈라섰기 때문이다. 맨 마지막으로 게르망트 부인이 내가 그녀를 식탁으로 이끌 수 있도록 나에게로 다가왔는데, 나는 두려워했을 법한 소심함의 그림자조차 조금도 느끼지 못했으니, 뛰어난 근육의 힘 덕분에 우아한 몸놀림이 손쉬운 일이 된 여자 사냥꾼처럼, 내가 그녀의 엉뚱한 쪽에 서 있음을 필시 알아채고, 그녀가 나를 중심으로 어찌나 정확히 몸을 돌렸던지, 어느새 그녀의 팔이 내 팔에 얹혀, 더없이 자연스럽게 정밀하고 기품 있는 움직임의 율동에 맞추어져 있었다. 나는 한결 선선히 그 움직임에 몸을 내맡겼는데, 게르망트가 사람들이 그것을, 참으로 박식한 사람이 학식에 부여하는 정도 이상으로는 중히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런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얼뜨기와 함께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덜 주눅이 드는 법이다. 다른 문들이 열리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가 들어왔으니, 마치 만찬이, 늦게 도착한 젊은 손님이 인형극 조종자의 신호에 따라 온갖 기계 장치를 움직이게 만드는, 정교한 기계 장치의 인형극 극장에서 열리고 있기라도 한 듯했다.

소심할 뿐 위풍당당하게 군주다운 데라곤 없었던 것이 공작의 이 신호였는데, 거기에 응하여 그 거대하고 정교하며 순종적이고 호사스러운, 기계적이면서 인간적인 태엽 장치가 풀려 움직였다. 그 몸짓의 우유부단함도 나에게는 그에 뒤따르는 광경의 효과를 망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몸짓을 머뭇거리고 멋쩍게 만든 것이, 만찬을 시작하려면 오직 나만을 기다리고 있으며 이미 얼마간 기다려 왔다는 사실을 나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두려움임을 나는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데, 그것은 게르망트 부인이, 그토록 많은 그림을 본 뒤라 내가 피곤해할까 봐, 그리고 남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개로 나를 붙들면 내가 그들 사이에서 편히 쉬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이 몸짓에 위엄이 없다는 바로 그 점이 그 몸짓의 참된 위엄을 드러내 주었다. 공작이 자기 주위의 화려함에 보인 그 무관심 역시, 아무리 하찮을지라도 그가 예우하고자 한 손님에 대한 그의 정중함과 대조를 이루며 그러했다.

그렇다고 게르망트 가 어떤 면에서 철저히 진부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니, 그는 실로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어처구니없는 약점 몇 가지를, 벼락출세한 자의 오만함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가 결코 벼락출세한 자는 아니었는데도 그러했다. 그러나 관리나 사제가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저 힘들, 곧 프랑스 정부와 가톨릭 교회에 의해 자신의 보잘것없는 재능이 무한히 부풀려지는 것을(마치 파도가 그 뒤에서 밀어붙이는 바다 전체에 의해 그러하듯) 보듯이, 게르망트 도 저 또 다른 힘, 곧 가장 참된 형태의 귀족적 예의에 실려 나아갔다. 이 예의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선을 그었다. 게르망트 부인이라면 캉브르메르 부인이나 포르슈빌 를 자기 집에 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가(나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게르망트 세계에 들 자격이 있어 보이는 순간, 이 예의는 그 유서 깊은 방들이나 거기 남아 있던 놀라운 가구들보다도, 만약 그럴 수 있다면, 한층 더 눈부신 환대의 소박함이라는 보물들을 드러내 보였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고자 할 때면, 게르망트 는 이런 식으로, 그 손님을 그 순간 그 자리의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상황과 장소를 최대한 살리는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게르망트에서라면 그의 ‘각별한 대접’과 ‘호의’는 분명 또 다른 형태를 띠었을 것이다. 그는 만찬 전에 자기와 단둘이 나를 태우고 나가 마차 나들이를 시키라고 명했으리라. 어쨌든 그의 몸가짐에는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것은 그 시대의 회고록을 읽을 때 루이 14세가, 자기 은혜를 청하러 온 누군가에게 사람 좋게, 미소 지으며, 거의 절을 하다시피 하며 대답하는 그의 몸가짐에 감동하는 것과 같았다. 그렇지만 두 경우 모두, 이 ‘예의’가 그 말의 엄격한 의미를 넘어서지는 않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루이 14세는(그 시대의 순수 귀족을 고집하는 이들은 그럼에도 그가 예법을 소홀히 여긴다고 흠잡았으니, 생시몽에 따르면 그는 필리프 드 발루아나 샤를 5세 같은 군주들에 견주면, 왕이라 해도 아주 보잘것없는 왕에 지나지 않았다), 왕족과 대사들이 어떤 군주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지 알 수 있도록 더없이 세세한 지침을 작성하게 했다. 어떤 경우에는 결정에 이르기가 불가능하여, 루이 14세의 아들 므세뇌르가 어떤 외국 군주들을 오직 집 밖, 탁 트인 야외에서만 접대함으로써, 집에 들어설 때 누가 누구보다 앞섰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는 타협이 마련되기도 했다. 또 팔츠 선제후는 슈브뢰즈 공작을 만찬에 대접하면서, 손님에게 길을 내주지 않아도 되도록 병이 난 척하여, 실제로 그와 함께 식사를 하기는 하되 누운 채로 식사함으로써 그 난처함을 피한다. 므슈 르 뒤크가 무슈에게 문안 인사를 드릴 기회를 요리조리 피하자, 무슈는 자기 형이자 게다가 그에게 몹시 정이 든 국왕의 조언에 따라, 구실을 잡아 그 사촌을 자기 기상 알현에 참석시켜 억지로 자기에게 속옷을 건네게 만든다. 그러나 감정이 깊어지면, 마음이 얽히면, 예의만이 걸려 있을 때는 그토록 요지부동이던 이 의무의 규칙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가 가장 애틋이 사랑한 사람 중 하나였던 이 아우가 죽은 지 몇 시간 뒤, 몽포르 공작의 말마따나 무슈의 몸이 “아직 식지도 않았을” 때, 루이 14세는 오페라 가락을 토막토막 흥얼거리며, 슬픔을 감추기 어려워하는 부르고뉴 공작부인이 그토록 시름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음에 놀라고, 궁정의 흥겨움이 곧바로 되살아나 신하들이 노름판에 둘러앉도록 부추기고자, 부르고뉴 공작에게 브를랑 판을 벌이라 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게르망트 의 사교적이고 집중된 활동에서뿐 아니라, 더없이 자연스러운 말투에서, 그의 일상적 관심사에서, 그가 시간을 쓰는 방식에서도,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대조를 발견했다.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다른 인간들보다 슬픔에 더 민감할 것이 없었으니, 실은 그들의 실제 감수성이 더 낮았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반면 그들의 이름은 골루아의 사교란에 날마다 실렸는데, 그 엄청난 수의 장례식들 때문이었으니, 그들은 그 장례식에 자기 참석이 기록되지 않는 것을 의무의 소홀로 여겼을 것이다. 여행자가 크세노폰이나 성 바울로의 눈에 비쳤을 법한, 뗏장으로 지붕을 인 집들과 테라스들을 거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발견하듯이, 예의로써 사람의 마음을 녹이고 냉혹함으로써 그 마음을 뒤엎던 사람인 게르망트 의 몸가짐에서도, 나는 두 세기가 넘게 지난 뒤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루이 14세 치하 궁정 생활 특유의 그 편향을, 곧 온갖 양심의 거리낌을 애정과 도덕의 문제에서 떼어 내어 순전히 형식적인 문제들에 옮겨 붙이는 그 편향을 발견했다.

파름 대공비가 내게 보인 상냥함의 또 다른 이유는 좀 더 개인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가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집에서 보는 모든 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결같이, 자기 집에 있는 어떤 것보다도 우월한 품질을 지녔다고 미리부터 굳게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하기야 그녀는 자기가 아는 다른 모든 집에서도 마치 그런 것처럼 굴기는 했다. 아무리 소박한 요리, 아무리 흔한 꽃을 두고도 그녀는 황홀해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이튿날 아침 자기 수석 요리사나 수석 정원사를 보내 조리법을 베끼거나 그 꽃의 품종을 살펴보게 해달라고 청하곤 했는데, 이들은 많은 봉급을 받고 제 마차까지 부리는 신사들로서, 자기들이 하찮게 여기는 요리를 물으러 가거나, 자기들이 오래전부터 대공비를 위해 길러온 것에 비하면 반도 곱지 못하고 그런 장식 같은 줄무늬도 없으며 그만큼 큰 꽃송이도 피우지 못하는 패랭이꽃 따위를 적어 오는 일에 깊은 모욕을 느꼈다. 그러나 대공비의 경우, 어디를 가든 이렇게 지극히 평범한 것들을 보고 놀라는 태도는 꾸며낸 것으로, 자기가 지위와 부의 우월함에서 어떤 오만을, 곧 어린 시절 스승들이 금하고 어머니가 늘 감추었으며 창조주가 보시기에 견딜 수 없는 그 오만을 끌어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려는 것이었던 반면,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응접실을 오직 놀라움에서 기쁨으로만 옮겨갈 수 있는 특별한 곳으로 여긴 것은 진심에서였다. 하기야 어느 정도는, 이런 심경을 정당화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다른 귀족 사회와 달랐고, 더 드물고 더 세련되었다. 그들은 첫눈에 내게 정반대의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들을 속되다고, 다른 모든 남녀와 다를 바 없다고 느꼈는데, 그것은 그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그들에게서, 발베크나 피렌체나 파르마에서처럼, 오직 이름만을 보았기 때문이다. 분명 이 응접실에서, 내가 도자기 인형 같으리라 상상했던 여인들은 하나같이 여느 여자들의 대다수와 오히려 더 닮아 있었다. 그러나 발베크나 피렌체가 그러했듯, 게르망트가 사람들도, 그 이름보다는 제 동류를 닮았다는 이유로 처음엔 상상력을 실망시킨 뒤, 나중엔, 비록 덜한 정도이긴 해도, 어떤 독특한 특징들로 지성에 호소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몸의 생김새, 살갗의 빛깔, 때로 보랏빛으로 번지는 유별난 분홍빛, 남자들에게서조차 부드러운 금빛 다발로 뭉쳐 있는, 반은 벽에 돋는 이끼 같고 반은 고양이 털 같은, 가늘게 자아낸 머리카락의 거의 번쩍이는 듯한 어떤 금발(이 빛나는 광채에는 어떤 지적인 광채가 대응했으니, 사람들이 게르망트가의 살빛, 게르망트가의 머리카락을 이야기하듯, 게르망트가의 재치를 모르트마르가의 재치처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루이 14세 시대 이전부터 그 우월한 섬세함으로 이름났고, 그들 스스로 그 명성을 퍼뜨렸으므로 더욱 널리 인정받은 어떤 사교적 자질이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그 재료 자체가 아무리 값진 것일지라도,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여전히 알아볼 수 있고, 벽옥이나 마노 덩어리에 창백하게 줄무늬를 긋는 결처럼, 아니 그보다도, 이끼마노의 옆면을 따라 유연한 빛살처럼 뻗어가는 그 풀린 빛의 타래가 나긋이 물결치는 모양처럼, 쉽게 가려내고 뒤쫓을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