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망트 양이 러시아 대공에게 던진, 진짜든 아니든, 그 응수는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며, 문제의 그 만찬에서 오리안이 얼마나 지나칠 만큼 멋들어지게 차려입고 나왔는지를 이야기할 구실이 되어주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함이(그리고 바로 이것이 쿠르부아지에가로서는 도저히 이를 수 없게 만든 점이었는데) 부에서가 아니라 낭비에서 솟아나는 것이라면, 그래도 낭비는 부의 한결같은 뒷받침을 누릴 때 더 오래가는 법이니, 부가 있어야 낭비도 제 불길을 마음껏 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안뿐 아니라 빌파리지 부인까지 드러내놓고 내세우던 원칙들, 곧 문벌은 아무것도 아니며, 지체를 두고 골머리를 앓는 것은 우스운 일이고, 부가 반드시 행복을 뜻하지는 않으며, 오직 지성과 마음과 재능만이 중요하다는 그 원칙들을 놓고 보면, 쿠르부아지에가로서는, 후작부인에게서 받은 그 가르침의 결과로 오리안이 사교계 밖의 누군가와, 예술가라든가, 법을 피해 달아난 자라든가, 건달이라든가, 자유사상가와 결혼해, 쿠르부아지에가에서 “해로운 것들”이라 부르던 부류로 아주 넘어가버리기를 바랄 만도 했다. 그들이 이 희망을 품을 근거는 더욱 컸으니, 빌파리지 부인은 바로 그 무렵, 사교적인 관점에서 곤란한 위기를 지나고 있었고(뒷날 내가 그녀의 응접실에서 만나게 될 몇 안 되는 빛나는 별들도 그때는 아직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하여 자기를 그렇게 멀리하는 사교계를 극도로 혐오한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아직 왕래하던 조카 게르망트 대공을 언급할 때조차, 그녀는 그가 제 족보에 그토록 홀려 있다는 이유로 그를 비웃기를 그칠 줄 몰랐다. 그러나 막상 오리안의 남편감을 찾는 문제가 되자, 이모와 조카가 드러내놓고 내세우던 원칙들이 아니라 그들 가문의 저 신비로운 “낯익은 수호신”이 일을 좌우했다. 마치 빌파리지 부인과 오리안이 문학적 가치니 성품의 깊이니 하는 것 대신 소작료 장부와 족보 이야기밖에는 한 적이 없다는 듯이, 또 마치 후작부인이, 며칠 동안, 훗날 끝내 그렇게 되고 말듯이, 죽어서 콩브레 성당의 관대 위에 놓여, 집안의 저마다가 한낱 게르망트가 사람으로 환원되고, 개성과 세례명을 잃어버려, 그 증거로 관을 덮은 그 널따란 검은 휘장 위에는 공작 관을 인 자줏빛 G 한 글자만이 새겨져 있기라도 한 듯이, 그 수호신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가장 부유하고 가장 고귀하게 태어난 남자,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가장 걸맞은 독신남, 게르망트 공작의 맏아들 데 롬 대공에게, 지적이고 비판적이며 복음을 설파하던 빌파리지 부인의 선택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혼례 날, 두어 시간 동안, 빌파리지 부인은 자기가 늘 비웃어오던, 그리고 자기가 초대한 갖가지 평민 친지들에게 그날도 여전히 비웃던 그 모든 귀한 분들을 제 응접실에서 맞이했는데, 데 롬 대공은 이내 그들에게 명함을 놓아두고는, 이듬해에 “관계를 끊을” 채비를 했다. 그러고는, 쿠르부아지에가의 쓰디쓴 잔이 넘치게도, 지성과 재능이야말로 사교적 우위의 유일한 자격이라 우기던 그 오랜 격언들이, 혼례 직후 곧바로 데 롬 대공비의 살림 속에서 그 교의로서의 힘을 되찾았다. 그리고 이 점에서, 지나는 길에 말해두자면, 생루가 라셸과 함께 살고, 라셸의 벗들과 어울리며, 라셸과 결혼하고 싶어 했을 때 내세운 관점은, 온 집안에 아무리 큰 공포를 불러일으켰을지언정, 대체로 게르망트가 젊은 아가씨들의 관점보다는 거짓이 덜한 것이었다. 그 아가씨들은 지성의 미덕을 설파하고, 인류가 평등하다는 데 누가 이의를 달 수 있으랴 하는 태도를 짐짓 내보였으나, 그 모든 것이 어느 지점에 이르면 결국, 정반대의 원칙을 내세웠을 때와 똑같은 결과, 곧 어마어마하게 부유한 공작과의 결혼으로 끝나고 말았다. 반대로 생루는 제 이론에 맞게 행동했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나쁜 길로 들어섰다고 수군댔다. 물론 도덕적인 관점에서 라셸이 온전히 흡족한 여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만일 그녀가, 그 못지않게 변변찮되 공작부인이거나 수백만의 상속녀였다면, 마르상트 부인이 이 혼사를 반기지 않았으리라고는 결코 장담할 수 없다.
자, 데 롬 부인(얼마 뒤 시아버지가 죽자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된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이 젊은 대공비의 이론들이 이렇게 그녀의 말속에만 머물 뿐 결코 그녀의 행실을 이끄는 법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쿠르부아지에가의 등에 얹힌 마지막 애끓는 지푸라기였다. 그리하여 이 철학(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은 게르망트가 응접실의 귀족다운 세련됨을 조금도 해치지 않았다. 물론 게르망트 부인이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충분히 영리하지 못해서 그렇다고 여겼고, 파르니의 시집 낡은 소본 한 권 말고는, 그것도 “시대풍”이라 하여 안쪽 방 탁자 위에 놓아두기만 했을 뿐 결코 펼쳐 읽지 않는 그 한 권 말고는 여태 책이라곤 가져본 적 없는 어느 부유한 미국 부인은,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오페라 극장에 모습을 드러낼 때 그녀에게 쏟아붓던 그 게걸스러운 눈길로써, 자기가 정신의 산물에 얼마나 큰 값을 두는지를 내보였다. 물론 게르망트 부인도 어떤 사람을 그 지성 때문에 골라 맞을 때는 진심이었다. 그녀가 어느 여인을 두고 “그이는 아주 매력적이라던데요!”라거나, 어느 남자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그녀는 그 매력이나 영리함 말고는 그들을 맞아들이는 데 동의할 다른 이유가 없다고 스스로 믿었고, 낯익은 수호신도 이 마지막 순간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더 깊이 뿌리내린 채, 게르망트가가 그 판단을 내리는 영역의 어두운 어귀에 자리 잡은 이 경계 어린 수호신은, 그 남자가 영리하다거나 그 여자가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만일 그들이 실제로든 잠재적으로든 아무 사교적 가치가 없다면, 미리 막아버렸다. 그 남자는 박식하다는 판정을 받되 사전(辭典) 같은 식이거나, 아니면 반대로 속되어서 외판원의 머리를 지녔다는 식이었고, 그 여자는 예쁘긴 하되 취향이 지독히 나쁘거나 말이 너무 많다는 식이었다. 아무런 확고한 지위도 없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그저 끔찍한 존재였으니, 그런 속물들이라니! 시골 저택이 게르망트 바로 곁에 있던 브레오테 씨는 전하(殿下) 급 아래로는 아무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그들을 비웃었고 오직 미술관에서 나날을 보내기만을 바랐다. 그래서 누가 브레오테 씨를 속물이라 하면 게르망트 부인은 발끈했다. “속물이라고요! 바발이? 원, 딱하기도 해라, 정신이 어떻게 됐군요, 정반대예요. 그이는 멋쟁이들을 질색해요. 누구한테도 소개받으려 들지 않는걸요. 우리 집에서조차 그래요! 내가 그이더러 모르는 사람을 만나보라 하면, 나한테 내내 욕을 퍼붓는다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실제로도 게르망트가가 영리함을 대하는 태도에서 쿠르부아지에가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게르망트가와 쿠르부아지에가 사이의 이 차이는 이미 아주 유망한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게다가 그토록 많은 시인이 공손한 거리에서 그녀를 꿈꾸게 한 그 신비에 감싸인 채, 내가 앞서 이야기한 바 있는 그 야회를 열었으니, 잉글랜드 왕이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도 그 자리에서 가장 흥겨워했다. 쿠르부아지에가의 머리로는 결코 떠오르지 않았을 착상으로, 그리고 쿠르부아지에가의 용기로는 뒷걸음질 쳤을 대담함으로, 그녀는 앞서 말한 인물들 말고도 음악가 가스통 르메르와 극작가 그랑무쟁을 초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성이 그 힘을 드러낸 것은 무엇보다 부정적인 관점에서였다. 데 롬 대공비에게서 초대받으려는 사람의 지체가 높아질수록 요구되는 영리함과 매력의 계수가 꾸준히 줄어들어, 그 사람이 유럽의 주요 대관(戴冠) 군주 가운데 하나일 때는 영(零)으로 사라져버렸다면, 거꾸로 이 왕족의 수준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계수는 높아졌다. 예컨대 파름 대공비의 야회에는, 전하께서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라서, 혹은 어느 공작부인의 친척이라서, 혹은 어느 군주를 시중드는 사람이라서 초대한 이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 자신은 능히 못생기거나 지루하거나 어리석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쿠르부아지에가라면 “파름 대공비의 총신”이라거나, “다르파종 공작부인의 외가 쪽 조카”라거나, “해마다 석 달을 스페인 왕비와 함께 지낸다”거나 하는 이유들 가운데 어느 하나만으로도 그런 사람들을 제 집에 초대하기에 충분했겠지만, 게르망트 부인은 파름 대공비의 집에서 십 년 동안 그들의 인사를 정중히 받아주면서도, 사교적인 의미에서든 물질적인 의미에서든 응접실에는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고 여겨, 단 한 번도 그들이 제 문지방을 넘도록 허락하지 않았으니, 응접실이란, 딱히 아름답지도 않으면서 그저 방을 채우려고, 그리고 주인의 부를 드러내는 표시로 놓아둔 가구 몇 점만으로도 흉하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런 응접실은, 저자가 제 학식이며 재기며 유창함을 광고하는 말투를 도무지 삼가지 못하는 책과도 같았다. 한 권의 책처럼, 한 채의 집처럼, “살롱”의 품격이란, 게르망트 부인이 생각하기에, 그리고 옳게도, 희생이라는 주춧돌 위에 서 있는 것이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여러 해 전부터 판에 박힌 인사나 명함을 돌려보내는 정도로만 대하며 한 번도 자기 야회에 부르지도, 그들의 야회에 가지도 않았던 파름 대공비의 친구들 가운데 많은 이가, 이런 소홀함을 대공비 전하께 은근히 하소연하곤 했고, 대공비는 게르망트 씨가 혼자 자신을 찾아오는 날이면 그에게 넌지시 그 뜻을 전했다. 그러나 이 교활한 귀족은, 정부를 여럿 둔다는 점에서는 공작부인에게 나쁜 남편이었으나 그녀 응접실의 질서(그리고 그 응접실의 으뜸가는 매력을 이루는 그녀 자신의 재치)에 관한 한 무엇보다 미덥고 든든한 벗이었는데, 이렇게 대답했다. “한데 제 아내가 그분을 압니까? 정말요? 아, 뭐, 알기야 알겠지요. 하지만 전하, 실은 오리안이 여자들과 나누는 이야기를 좋아하질 않습니다. 그 사람은 빼어난 지성들에 둘러싸여 지내지요. 저는 그 사람의 남편이 아니라 그저 첫째 하인일 뿐입니다. 아주 소수, 하나같이 참으로 영리한 몇을 빼고 나면, 여자들은 그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지요. 전하, 그 밝은 안목을 지니신 전하께서 설마 수브레 후작부인에게 무슨 지혜가 있다고야 하시겠습니까. 예, 잘 압니다, 대공비께서는 인정으로 그분을 맞으시는 게지요. 게다가 전하께서도 그분을 아시지 않습니까. 오리안이 그분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하시니, 그럴 법도 합니다만, 기껏해야 한두 번일 겁니다, 장담하지요. 그리고 전하께 말씀드려야겠는데, 실은 제 탓도 조금 있습니다. 제 아내는 워낙 쉬 지치는데, 늘 살갑게 굴고 싶어 해서 제가 내버려 두면 남들을 만나러 다니는 걸 그칠 줄을 모르지요. 바로 어제저녁만 해도, 열이 있는데도 부르봉 공작부인을 찾아가지 않으면 그분 마음이 상할까 봐 걱정하더군요. 정말이지 제가 이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마차를 대령하지 못하도록 아예 막아 버렸지요. 전하, 실은 오리안에게 전하께서 수브레 부인 이야기를 제게 하셨다는 걸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습니다. 제 아내는 전하께 어찌나 헌신적인지, 당장 달려가 수브레 부인을 집으로 부를 겁니다. 그러면 방문할 곳이 하나 더 늘고, 제가 남편은 잘 아는 그 언니와도 사귀지 않을 수 없게 되지요. 대공비께서 언짢지 않으시다면, 저는 오리안에게 이 일을 아예 입 밖에 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면 아내가 큰 수고와 흥분을 덜 수 있을 테고요. 그리고 그것이 수브레 부인에게도 조금도 손해가 아니라고 장담합니다. 그분은 어디든 드나들고, 가장 화려한 사교계를 누비니까요. 아시다시피 저희는 손님을 제대로 치르는 법이 없습니다, 그저 몇몇 정다운 만찬이나 할 뿐이라, 수브레 부인은 지루해 죽으려 할 겁니다.” 파름 대공비는 게르망트 공작이 자기 부탁을 공작부인에게 전하지 않으리라고 순진하게 믿고서, 수브레 부인이 바라던 초대를 얻어 주지 못한 것에 낙심하면서도, 그토록 배타적인 집안의 단골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에 그만큼 더 우쭐해졌다. 물론 이 만족에는 그 나름의 성가심도 따랐다. 그리하여 파름 대공비는 자기 야회에 게르망트 부인을 부를 때마다, 명단에 혹시라도 공작부인의 심기를 건드려 다시는 오지 않겠다 하게 만들 사람이 없는지 머리를 짜내야 했다.
보통 저녁이면(만찬 뒤에, 그녀는 옛 관습을 지켜 늘 아주 이른 시각에 단출한 이들과 만찬을 들었다) 파름 대공비의 응접실은 단골 손님들에게, 그리고 대체로 프랑스와 외국의 최고위 귀족 전체에게 열렸다. 그녀의 접견 순서는 이러했다. 식당에서 나오면 대공비는 커다란 원탁 앞 소파에 앉아, 함께 만찬을 든 부인들 가운데 가장 지체 높은 두 사람과 담소하거나, 잡지에 눈길을 던지거나, 때로는 카드놀이를(혹은 독일 궁정의 관습을 좇아 놀이하는 시늉을) 하곤 했는데, 혼자 하는 페이션스 놀이거나, 아니면 이름난 인물 하나를 진짜든 짐짓이든 상대로 골라 함께했다. 아홉 시가 되면 큰 응접실의 두 짝 문이 끊임없이 여닫히며, 대공비의 시간표에 맞추려고 집에서 조용히 만찬을 든(혹은 밖에서 만찬을 들었다면 이따 다시 오겠노라 약속하고 카페에서 서둘러 온, 실은 한쪽 문으로 들어와 다른 쪽 문으로 빠져나갈 작정인) 손님들을 들였다. 그동안 대공비는 놀이나 이야기에 마음을 붙인 채 새로 온 이들을 못 본 척하다가, 그들이 바로 코앞에 이르러서야 정답게 미소 지으며 우아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면 부인들은 이 꼿꼿이 선 존귀함 앞에 무릎을 꿇다시피 몸을 낮추어, 아주 낮게 드리운 그 고운 손에 입술을 대어 입 맞추었다. 그러나 그 순간 대공비는, 익히 잘 아는 격식인데도 매번 놀란 듯이, 무릎 꿇은 이를 억지로 일으키기라도 하듯 견줄 데 없는 기품과 다정함으로 끌어 올려 양 볼에 입을 맞추었다. 말하자면 그 기품과 다정함은 찾아온 손님이 얼마나 고분고분 무릎을 굽히느냐에 달린 조건부의 것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지체의 구별이 없는 사회에서는 예의가 사라지리라고들 하는데, 흔히 짐작하듯 교양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한쪽 계급에서는 효력을 지니려면 상상 속의 것이어야 하는 그 구별에 바치는 경의가 사라지고, 다른 쪽 계급에서는 받는 이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값어치를 지닌다고 여기는 동안에만 아낌없이 베풀던 상냥함이 더욱 온전히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평등에 바탕을 둔 세상에서라면 그 값어치는, 어음처럼 약속된 값밖에 없는 온갖 것이 그러하듯 이내 무로 떨어지고 말 테니까. 그러나 새로 짜인 사회에서 예의가 이렇게 사라지리라는 것은 결코 확실치 않으며, 우리는 때때로 지금 이대로가 유일하게 가능한 상태라고 너무 쉽게 믿는다. 일급의 지성을 지닌 이들도 공화국은 외교나 외국과의 동맹을 가질 수 없다고 여겼고, 더 근래에는 농민 계급이 정교분리를 견디지 못하리라고 여겼다. 따지고 보면 획일하게 고른 사회에서 예의가 살아남는다 한들, 철도가 실제로 성공한 것이나 전쟁에 비행기를 쓰는 것보다 더 기적일 것도 없다. 게다가 설령 예의가 사라진다 해도, 그것이 불행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끝으로, 사회는 겉으로 더 민주적이 될수록 은밀히 더 위계적이 되지 않겠는가. 그럴 법한 일로 보인다. 교황들의 정치적 권력은 그들이 영토도 군대도 갖지 못하게 된 뒤로 엄청나게 커졌다. 우리네 대성당들은 17세기의 독실한 가톨릭 신자에게 지녔던 뜻보다 20세기의 무신론자에게 훨씬 더 큰 뜻을 지닌다. 그러니 만약 파름 대공비가 한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였다면, 나는 분명 그녀를 두고 공화국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와 거의 같은 투로, 곧 아예 이야기하지 않는 식으로 말하고 싶어졌으리라.
청원자가 바닥에서 일으켜져 대공비의 포옹을 받고 나면, 대공비는 다시 자리에 앉아 페이션스 놀이로 돌아갔으나, 새로 온 이가 조금이라도 중요한 인물이면 우선 안락의자에 앉히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방이 지나치게 붐비면, 손님의 흐름을 다스려야 하는 시녀가 단골 손님들을 응접실과 이어진 널따란 홀로 이끌어 자리를 틔웠는데, 그 홀은 부르봉 왕가의 초상화와 자잘한 전리품으로 가득했다. 그러면 대공비의 가까운 벗들이 스스로 안내자를 자처해 흥미로운 일화들을 들려주었으나, 젊은 사람들은 죽은 군주들의 유물을 살피기보다 살아 있는 왕족을 구경하는 편에(그리고 시녀와 시녀관들을 통해 자신을 왕족에게 소개받을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에) 더 마음이 쏠려,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참을성이 없었다. 앞으로 맺을 수 있을 친분과 어쩌면 얻어 낼지도 모를 초대에 지나치게 골몰한 나머지, 그들은 이 값을 매길 수 없는 군주제 문서고의 박물관에 무엇이 있었는지 훗날에 이르러서도 전혀 알지 못했고, 다만 그곳이 선인장과 거대한 야자수로 꾸며져 이 사교적 우아함의 중심지에 아클리마타시옹 정원의 야자 온실 같은 분위기를 주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떠올릴 뿐이었다.
물론 게르망트 공작부인도 이따금 스스로를 낮추는 고행 삼아 이런 저녁에 나타나 대공비에게 ‘만찬 뒤’ 방문을 하곤 했고, 대공비는 그동안 내내 그녀를 곁에 붙들어 두고서 공작을 놀려 대곤 했다. 그러나 공작부인이 만찬에 오는 저녁이면, 대공비는 단골 손님들을 부르지 않도록 조심하고, 식탁에서 일어난 뒤로는 세상에 문을 닫아걸었으니, 손님을 너무 헤프게 골랐다가 까다로운 공작부인의 비위를 거스를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런 저녁에, 미리 언질을 받지 못한 단골 가운데 누군가가 왕가의 문 앞에 나타나면, 문지기가 “대공비 전하께서는 오늘 저녁 안 계십니다” 하고 일러 주었고, 그러면 그는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앞서, 대공비의 벗들 가운데 많은 이가 그날만은 자신이 이 집에 불리지 않으리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이런 야회는 특별한 부류의 모임이었고, 들고 싶어 안달했을 숱한 이에게는 막혀 있는 특권이었다. 배제된 이들은 뽑힌 자들의 명단을 거의 틀림없이 꼽아 낼 수 있었고, 저희끼리 짜증스레 말하곤 했다. “알잖아, 오리안 드 게르망트는 수행단을 통째로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어디도 안 간다니까.” 파름 대공비는 이 무리의 도움으로, 공작부인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을지 조금이라도 미덥지 못한 자들을 막는 보호 성벽처럼 공작부인을 에워싸려 했다. 그러나 공작부인의 총애를 받는 몇몇, 이 빛나는 ‘수행단’의 몇몇에 대해서는, 정작 그들이 자신에게는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데도 일부러 마음을 써 주어야 한다는 것을 파름 대공비는 못마땅해했다. 물론 대공비도, 게르망트 공작부인과 함께 있을 때가 자신과 함께 있을 때보다 더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은 기꺼이 인정할 참이었다. 공작부인의 접견일이면 늘 ‘북새통’을 이룬다는 것도, 자신에게는 명함이나 놓고 가면 그만이라고 여기는 왕족 서넛을 자신도 거기서 종종 마주친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리안의 재치 있는 말들을 아무리 외워 두고, 그 드레스를 본떠 입고, 제 다과회에 똑같은 딸기 타르트를 내놓아 본들, 오후 내내 시녀 하나와 어느 외국 공사관 참사관 하나만 데리고 홀로 남는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이를테면 예전의 스완이 그랬듯)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작부인네에 한두 시간을 보내러 가면서 파름 대공비에게는 이태에 한 번 방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공비는 오리안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라 해도, 그 스완이든 누구든 그런 이에게 만찬 초대라는 ‘호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았다. 한마디로, 공작부인을 제 집에 두는 것은 대공비에게 끝없는 걱정거리였으니, 오리안이 모든 걸 트집 잡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늘 시달렸다. 그러나 그 대신, 같은 이유로, 파름 대공비가 게르망트 부인네에 만찬을 하러 갈 때면 모든 것이 완벽하고 흐뭇하리라고 미리 확신할 수 있었으며, 다만 한 가지 두려움이 있다면 자신이 이해하고 기억하고 남을 흡족하게 할 능력이, 새로운 생각과 사람을 받아들일 능력이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나의 존재는 그녀의 주의를 끌고 탐심을 돋우었으니, 마치 과일 장식을 늘어뜨려 만찬 식탁을 꾸미는 새로운 방식이 그러하듯, 그녀는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식탁 장식이냐 나의 존재냐가 오리안 야회의 성공 비결이라 할 그 매력들 가운데 더 두드러진 하나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다음 만찬에서는 그 둘을 다 들여 보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게다가 파름 대공비가 공작부인네에 품고 온 그 넋을 앗기는 호기심을 온전히 정당화해 준 것은, 대공비가 불안과 충격과 환희를 뒤섞어 뛰어들곤 하던 그 요소, 재미있으면서도 위험하고 짜릿한 그 요소였다. (바닷가에서 인명 구조원들이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큰 물결’이 이는 날, 실은 그들 가운데 아무도 헤엄칠 줄 몰라서 하는 경고인 그런 날처럼) 대공비는 그 속에서 겁에 질렸다가 행복해져서, 젊어진 채로 헤어 나오곤 했으니, 그것이 바로 게르망트의 재치라 불리는 것이었다. 게르망트의 재치란, 스스로를 그것을 지닌 유일한 게르망트라 여긴 공작부인의 말대로라면 원을 사각형으로 만드는 일만큼이나 있지도 않은 것이었으되, 투르의 포크 파이나 랭스의 비스킷처럼 집안 대대로 이어진 명성 같은 것이었다. 물론 (지적인 특질은 머리칼 색조나 낯빛과 같은 통로로 대물림되지 않으므로) 공작부인의 핏줄이 아닌 몇몇 가까운 벗들도 이 재치를 타고났고, 반대로 어떤 재치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뻣뻣한 몇몇 게르망트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그것이 스며들지 못했다. 공작부인과 핏줄이 닿지 않으면서 이 게르망트의 재치를 지닌 이들은 대개, 예술이든 외교든 의회 웅변이든 군대든 어떤 출셋길에 어울리는 빼어난 사람이었으되 그 길보다 작고 정다운 무리의 삶을 택했다는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선택은 독창성이나 진취성, 의지력, 건강이나 운이 얼마쯤 모자란 탓으로, 혹은 속물근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떤 이들의 경우에는 (물론 이런 이들은 예외였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게르망트가의 응접실이 그들 출셋길의 걸림돌이 되었으되, 정작 본인들은 그것을 몰랐다. 그리하여 앞날이 창창하던 어느 의사, 어느 화가, 어느 외교관은, 대다수 경쟁자보다 오히려 더 눈부신 재능을 타고났는데도 저마다의 출셋길에서 성공하지 못했으니, 게르망트가와의 친분 탓에 앞의 두 사람은 멋쟁이로, 세 번째 사람은 반동분자로 여겨져, 세 사람 모두 동료들의 인정을 얻지 못한 까닭이었다. 학부의 선거인단이 여태 걸치는 중세풍 가운과 붉은 모자는, (적어도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까지는) 옹졸한 과거, 완고한 파벌주의에서 남은 한낱 겉치레 유물 이상의 무엇이었다. 금술이 달린 그 모자 아래, 마치 유대인의 원뿔형 관을 쓴 대사제처럼, ‘교수’들은 드레퓌스 사건에 앞선 그 몇 해 동안에도 여전히 철저히 바리새적인 관념에 뿌리 깊이 박혀 있었다. 뒤 불봉은 속마음은 예술가였으나, 사교계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안전했다. 코타르는 늘 베르뒤랭네에 있었다. 하지만 베르뒤랭 부인은 그의 환자였고, 게다가 그는 제 천박함 덕에 보호받았으며, 끝으로 제 집에서는 학부 바깥 사람은 아무도 부르지 않고 석탄산 냄새가 감도는 연회만 벌였다. 그러나 편견의 뻣뻣함이란 것이 실은 가장 고결한 정직과, 더 너그럽고 처음엔 더 자유롭던 공기 속에서 이내 문란해지고 마는 저 가장 드높은 도덕관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하는 값일 뿐인 강력한 단체들에서는, 담비 모피를 덧댄 진홍빛 새틴 가운을 걸친 교수는, 마치 도제 궁에 모셔진 베네치아의 도제(곧 공작)처럼, 덕이 높고 고귀한 원칙에 깊이 매인 사람이었으되, 우리가 생시몽 씨로 아는 저 훌륭하나 무서운 또 다른 공작만큼이나 이물질이라면 무엇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여기서 이물질이란, 딴 몸가짐과 딴 사교 관계를 지닌 저 세속의 의사였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딱한 사람은, 성공하려면 동료들에게 자기가 그들을 깔본다는(멋쟁이랍시고 품는 괴상한 생각이라니!) 비난을 사지 않으려고, 자기 게르망트 공작부인을 그들에게 감추면서도 의료계 인사와 사교계 인사를 뒤섞은 만찬을 열어 그들의 앙심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사형 선고에 스스로 서명하는 셈이라는 걸 그는 몰랐다. 아니, 나중에야 깨달았으니, 10인 위원회가 빈 의자를 채워야 할 때, 운명의 항아리에서 튀어나오는 것은 언제나 더 무난한, 어쩌면 뻔히 못한 또 다른 의사의 이름이었고, 그때 그 오래된 학부에서 ‘베토(Veto)’가 우렁차게 울렸으니, 몰리에르의 죽음을 알린 저 ‘유로(Juro)’만큼이나 엄숙하고 터무니없고 무서운 것이었다. 멋쟁이라는 딱지가 영영 붙어 버린 화가도, 예술에 손대는 사교계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예술가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성공하자 그와 마찬가지 신세가 되었고, 반동적인 교유가 너무 많던 외교관도 그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