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경우는 그중에서도 가장 드물었다. 게르망트가 응접실의 주된 알맹이를 이루는 뛰어난 인물의 전형은, 게르망트의 재치와, 게르망트의 정중함과, 아무리 느슨하게 짜였을지언정 어떤 ‘단체’에도 거슬리는 그 형언할 수 없는 매력에 어긋나는 다른 모든 것을 스스로(적어도 저희 생각으로는) 저버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지난날 공작부인 응접실의 이 단골들 가운데 하나가 살롱의 금메달을 받았다는 것, 또 하나는 변호사회 서기로서 하원에서 눈부신 출발을 했다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대리공사로 프랑스에 훌륭히 봉사했다는 것을 아는 이라면, 이제 이십 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그들을 ‘낙오자’로 여길 법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사정을 잘 아는’ 이는 드물었고, 정작 당사자들이야말로 남에게 그 일을 떠올리게 할 마음이 가장 없었으니, 바로 이 게르망트식 재치에 비추어 그런 옛 영예를 이제 하잘것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재치는 신문마다 늘 그 칭송이 넘쳐 나는 두 걸출한 장관을, 하나는 좀 근엄하고 하나는 말장난에 빠진 그 둘을 각각 따분한 자니 문지기니, 장돌뱅이니 하며 깎아내리지 않았던가. 게르망트 부인은 어느 경솔한 안주인이 만찬 자리에서 그 둘 중 하나를 제 옆에 앉히기라도 하면 하품을 하며 못 견뎌 하는 기색을 보이기 시작하곤 했다. 일급의 정치가라는 것이 공작부인의 총애를 사는 데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았으므로, ‘관직’이나 ‘공직’을 아주 그만두고 하원에도 나선 적 없는 그녀의 벗들은, 날마다 이 대단한 벗과 점심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러 오거나 왕족들의 집에서 그녀를 마주칠 때면, 그리고 정작 그 왕족들은 대수롭잖게 여기면서도(적어도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들이야말로 더 나은 몫을 골랐다고 느꼈다. 다만 그 흥겨움 한복판에서조차 감도는 그들의 우수 어린 기색이 어쩐지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스스로 되묻는 듯했다.
게르망트가 사교 생활의 세련됨, 그 담소의 미묘함에도 아무리 얄팍할지언정 얼마간의 실속이 담겨 있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그 어떤 공식 직함도, 아무리 세도 있는 장관들조차 제 집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게르망트 부인의 가려 뽑은 몇몇 벗의 인정에 맞먹지 못했다. 이 응접실에서 그토록 많은 지적 야심이, 그토록 고귀한 노력마저 영영 묻혀 버렸다 해도, 적어도 그 잿더미에서 문명 사회의 더없이 귀한 꽃들이 피어났다. 물론 스완 같은 재사들은 자신이 진짜 값어치를 지닌 이들보다 위라 여기며 그들을 업신여겼지만, 그것은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무엇보다 높이 산 것이 지성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 따르면 그것은 인간 지성의 더 우월하고 더 정교한 형태, 곧 말재간이라는 변종으로까지 드높여진 것, 다름 아닌 재치였다. 그리고 오래전 베르뒤랭네에서 스완이 브리쇼와 엘스티르를, 하나는 학식을 다른 하나는 천재성을 다 갖췄는데도 하나는 현학자로 다른 하나는 어릿광대로 몰아붙였을 때, 그가 그들을 그렇게 분류하게 만든 것은 게르망트 정신의 스며듦이었다. 그는 결코 그 둘 중 누구도 감히 공작부인에게 소개하려 들지 않았으니, 그녀가 브리쇼의 독백과 엘스티르의 트집 같은 세세한 따짐을 어떤 낯빛으로 들을지 본능으로 알았던 것이다. 게르망트 정신은 짐짓 잰 체하며 장황한 말이라면 진지한 투든 익살스러운 투든 하나같이 더없이 못 견딜 얼간이짓으로 여겼다.
본디 피와 살을 지닌 진짜 게르망트가 사람들로 말하자면, 이를테면 모두가 말을 발음하는 방식,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 따라서 생각하는 방식마저 함께 나누는 저 문단 무리에서 흔히 보듯, 게르망트 정신이 그들을 그처럼 온통 빨아들이지는 못했는데, 그것은 결코 순전한 사교 집단에서 독창성이 더 강해서라거나 거기서 흉내를 가로막는 무엇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흉내란 것은 이겨 낼 수 없는 독창성이 없어야 할 뿐 아니라, 나중에 흉내 낼 것을 먼저 알아챌 수 있게 해 주는 상대적으로 예민한 귀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게르망트가에는 이 음악적 감각이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 못지않게 아예 없는 이가 여럿 있었다.
흉내라는 말의 또 다른 뜻, 이른바 ‘흉내 내 보이기’(게르망트가에서는 ‘흉내질’이라 불렀다)를 예로 들면, 게르망트 부인은 이를 더할 나위 없이 해내는데도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마치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토끼 떼이기라도 한 듯, 공작부인이 본떠 보이려는 그 남다른 결점이나 말투를 알아챌 눈이 애초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녀가 리모주 공작을 ‘흉내 내 보이면’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은 항의했다. “어머, 아니에요, 그분은 정말 저렇게 말하지 않아요. 바로 어제도 베베트네 만찬에서 다시 만났는데, 저녁 내내 제게 이야기했지만 조금도 저렇게 말하지 않던걸요!” 반면에 조금이라도 교양 있는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외쳤다. “아이고, 오리안은 어쩜 저리 재밌을까! 묘한 건, 저이가 그분을 흉내 낼 때면 영락없이 그분을 빼닮는다는 거야! 꼭 그분 말을 듣는 것 같다니까. 오리안, 리모주를 조금만 더 해 봐요!” 그런데 이 게르망트가 사람들이(공작부인이 리모주 공작을 흉내 낼 때 감탄하며 “아, 정말 제대로 잡았어요”라거나 “딱 그분이에요”라고 하던, 반드시 그 집안의 몇 안 되는 참으로 빼어난 이들만은 아니었다) 게르망트 부인의 말대로라면 정말 재치라곤 없었을지도 모르나(이 점에서 그녀가 옳았다), 그녀의 말을 듣고 되뇌다 보니 그녀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남을 흉보는 방식, 스완이 공작 자신처럼 그녀의 ‘말투’라 부르던 그 방식을 어지간히 흉내 내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담소에는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에게 ‘오리안의 재치와 어쩌면 저리 똑같은지 무서울’ 지경으로 보이는, 그래서 그들이 뭉뚱그려 ‘게르망트의 재치’라 부르는 무언가가 담겼다. 이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그녀에게 그저 친척일 뿐 아니라 숭배자이기도 했으므로, 오리안은(나머지 집안 식구들은 매몰차게 멀찍이 두었고, 처녀 시절 그들이 자기에게 퍼부은 모욕을 이제 그 경멸로 되갚고 있었다) 이따금, 대개는 철 따라 공작과 함께 마차로 나들이할 때 그들을 찾아갔다. 이 방문은 역사에 남을 사건이었다. 아래층 큰 응접실에서 ‘접견’하던 데피네 대공비는, 마치 해롭지 않은 불의 첫 불빛이나 뜻밖의 침공을 ‘정찰’하는 병사처럼, 넋을 앗을 듯한 모자를 쓰고 여름 향내가 쏟아지는 양산을 비스듬히 든 공작부인이 안뜰을 가로질러 비스듬한 걸음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멀리서 알아보면 가슴이 더 빠르게 뛰었다. “어머, 오리안이 오네” 하고 그녀는 ‘경계!’라도 외치듯 말했으니, 손님들에게 슬며시 일러 주어 그들이 허둥대지 않고 질서 있게 물러나 방을 비울 겨를을 주려는 것이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의 절반은 감히 남지 못하고 곧장 일어나 가려 했다. “아니, 왜요? 다시 앉으세요, 조금만 더 붙들어 두겠어요” 하고 대공비는(스스로 대단한 귀부인임을 보이려고) 무심하고 편안한 척하는 투로 말했으나, 그 목소리는 문득 거짓으로 울렸다. “하지만 서로 나눌 이야기가 있으실 텐데요.” “정말 바쁘세요? 아, 그럼 좋아요, 제가 찾아뵙지요” 하고 안주인은, 실은 떠나 주어 오히려 반가운 이들에게 대답했다. 공작과 공작부인은, 여러 해 동안 거기서 늘 보아 왔으되 그렇다고 조금도 더 알게 되지는 않은 이들에게 아주 정중히 인사했고, 그들은 그들대로 그게 더 조심스럽다 여겨 겨우 안녕하시냐고만 했다. 그들이 방을 나서기가 무섭게 공작은 그들이 누구냐고 서글서글하게 묻기 시작했으니, 운명의 어긋남이나 오리안의 형편없는 신경 탓에 정작 제 집에서는 볼 일 없는 이들의 본바탕에 관심을 두는 척하려는 것이었다. “이보게, 분홍 모자를 쓴 저 자그마한 부인은 누구였나?” “어머, 사촌, 수백 번은 보셨잖아요, 라마르젤 태생인 투르 자작부인이에요.” “한데 말이야, 꽤 곱던데. 영리해 보이기도 하고. 윗입술에 흠이 조금만 없었더라면 여간 매력덩어리가 아니겠어. 투르 자작이란 사람이 있다면 그리 나쁠 것 없는 팔자겠군. 오리안, 저 부인의 눈썹하고 머리 난 모양이 누굴 떠올리게 했는지 알아? 자네 사촌 에드비주 드 리뉴 말이야.”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자기 아닌 다른 여자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면 늘 시들해졌으므로 그 말을 흘려 버렸다. 그녀는 제 집에 오지 않는 사람들에 관해 다 안다는 걸 내보이기 좋아하는 남편의 약점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으니, 남편은 그로써 자기가 아내보다 더 진중한 사람임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한데,” 그가 문득 힘주어 말을 이었다. “자네가 라마르젤이라는 이름을 댔지. 내가 하원에 있을 적에 참으로 놀라운 연설을 들은 기억이 나는군….” “그건 방금 보신 저 젊은 부인의 삼촌이에요.” “그래! 대단한 재능이었지! 아니, 이보게,” 하고 그는, 게르망트 부인이 도무지 견디지 못하는데도 데피네 대공비의 응접실에서 물러나기는커녕 기꺼이 몸을 낮춰 하녀 노릇을 자청하며(그러고는 집에 돌아가 제 하녀의 뺨을 후려칠 참이면서) 어쩔 줄 몰라 눈물까지 글썽이면서도 공작 부부가 방에 있는 동안 버티고 남아, 외투를 받아 들고 쓸모 있어 보이려 애쓰며 슬며시 옆방으로 물러가겠노라 하던 데그르몽 자작부인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우리에게 차를 끓여 줄 것 없어요, 그저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나 합시다, 우리는 정말이지 소탈한 사람들이니까요.” “게다가,” 하고 그는(데그르몽 부인은 얼굴을 붉히며 겸손하고 야심 차고 열의에 찬 채로 남겨 두고) 데피네 대공비 쪽으로 돌아앉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겨우 십오 분밖에 못 있어요.” 이 십오 분은 지난 한 주 동안 공작부인이 한 재치 있는 말들을 죄다 늘어놓는 일종의 전시로 고스란히 채워졌으니, 그런 말들을 정작 본인은 결코 입에 올리지 않았을 테지만, 남편이 아주 능란하게, 그런 말을 나오게 한 사건들을 두고 짐짓 나무라는 척하며 그녀에게 마지못한 듯 그 말들을 되풀이하게 만든 것이었다.
제 사촌을 아끼고 그녀가 칭찬에 약하다는 걸 아는 데피네 대공비는 그 모자며 양산이며 재치에 넋을 잃고 감탄했다. “옷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실컷 해도 좋아요” 하고 공작은, 짐짓 시무룩한 투를 쓰되 이제 그 앙심이 진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비꼬는 웃음을 곁들여 말했다. “하지만 제발 그 사람 재치 얘기만은 말아 줘요, 나는 이토록 재치 있는 아내를 안 두었으면 좋겠다니까요. 아마 저 사람이 내 동생 팔라메드를 두고 한 그 고약한 말장난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하고 그는, 대공비도 나머지 식구들도 아직 그 말장난을 듣지 못한 걸 뻔히 알면서, 제 아내를 자랑할 기회가 생긴 게 반가워 말을 이었다. “우선 나는, 이따금, 인정하건대, 제법 그럴듯한 말도 하는 사람이 시시한 말장난이나 하는 건 그 사람답지 못한 일이라고 봐요. 하필 내 동생을 두고서라니, 걔는 무척 예민한 앤데, 이러다 걔가 나하고 틀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못 견딜 노릇이지요.” “어머, 우린 한마디도 못 들었어요! 오리안의 말장난이라니! 분명 기막힐 거예요. 아, 어서 들려줘요!” “아니, 아니,” 하고 공작은 여전히 시무룩하되 웃음은 더 넓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대들이 못 들었다니 나야 다행이지요. 진담인데, 나는 내 동생을 무척 아낀답니다.” “들어 봐요, 바쟁,” 하고 이제 남편의 신호를 받을 차례가 된 공작부인이 끼어들었다. “왜 그게 팔라메드를 언짢게 하리라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그럴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 그 앤 조금도 무례할 것 없는 시시한 농담 따위에 성낼 만큼 어리석지 않아요. 당신이 내가 무슨 못된 말이라도 한 것처럼 만드시잖아요. 나는 그저 조금도 우습지 않은 말을 한마디 했을 뿐인데, 당신이 그걸로 성을 내니 대단한 일처럼 보이는 거지요. 당신을 정말 모르겠어요.” “그대들 애가 타겠구먼, 대체 무슨 얘기냐고?” “아, 뻔히 별것 아니에요!” 하고 게르망트 씨가 외쳤다. “내 동생이 제 아내한테서 받은 브레제 땅을 누이 마르상트에게 주겠다고 했다는 얘긴 그대들도 들었을 거요.” “네, 그런데 누이분은 그걸 원치 않았다면서요, 그 지방을 좋아하지 않고 기후도 안 맞는다고요.” “그래요, 누군가 내 아내한테 그 얘기를 다 해 주면서, 내 동생이 이 땅을 누이한테 주는 건 그녀를 기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약 올리려는 거라고 했다지요. 〈그 사람은 정말 약 올리기 선수야, 샤를뤼스는〉 하고 실제로 그렇게들 말했다는 거요. 그런데 그대들도 브레제를 알잖소, 왕가의 영지 아니오, 수백만은 나갈 거요, 예전엔 왕실 소유지의 일부였고, 프랑스 전체에서 손꼽히는 숲도 끼여 있지요. 그런 식으로 약 올림을 당한다면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소. 그래서 샤를뤼스가 그런 훌륭한 땅을 내주는 걸 두고 〈약 올리는 사람〉이라는 말이 붙었다는 얘길 듣자, 오리안은 저도 모르게 이렇게 내뱉지 않을 수 없었던 거요, 정말이지 아무 뜻 없이, 조금의 심술도 없이, 번갯불처럼 튀어나온 말이었소. 〈약 올리는 사람이라고, 약 올린다고? 그럼 심술쟁이 오만공(公)이겠네!〉” 그러고서 그는(제 아내의 재담이 어떤 효과를 냈는지 가늠하려고 먼저 방 안을 휘 둘러본 뒤, 데피네 부인이 고대사를 얼마나 아는지 미덥지 못하다는 듯) 다시 시무룩한 투로 말을 이었다. “알겠지요, 저건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를 빗댄 거요. 너무 시시한, 서투른 말장난이지, 오리안답지 못하게. 게다가 말이오, 나는 아내보다 신중해서, 그 사람만 한 재치는 없어도 뒷일을 생각한다오. 누군가 경솔하게 이 말을 내 동생한테 옮기기라도 하면 야단이 날 거요. 더구나,” 하고 그는 말을 이었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팔라메드는 여간 도도하고 까다로운 게 아니라 남 얘기하기 좋아하고 어쩌고 하니, 브레제를 내주느냐 마느냐를 떠나서라도 〈심술쟁이 오만공〉이 그 애한테 딱 들어맞는다는 건 인정해야 할 거요. 바로 그 점이 내 아내의 말을 정당화해 주지요. 저 사람은 거의 상스러운 데까지 내려앉을 때조차 늘 재치가 있고, 정말이지 사람을 제대로 그려 낸다니까요.”
그리하여 어느 때는 〈심술쟁이 오만공〉 덕에, 또 어느 때는 다른 무엇 덕에, 공작 부부가 친척들에게 하는 방문은 일화의 재고를 채워 주었고, 이 방문이 불러일으킨 감흥은 그 반짝이는 부인과 그녀의 ‘연출자’가 떠난 뒤로도 오래 남았다. 안주인은 우선, 그 모임에 있었던(방에 남아 있던) 특별한 이들과 더불어 오리안이 한 재치 있는 말들을 다시금 곱씹곤 했다. “〈심술쟁이 오만공〉 못 들으셨어요?” 하고 데피네 대공비가 물었다. “들었어요” 하고 바브노 후작부인이 말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사르시나 대공비(라로슈푸코 가문 쪽 말이에요)께서 제게 말씀해 주셨죠, 꼭 같은 말은 아니었지만요. 하지만 물론 제 사촌이 방에 있는데 그렇게 되풀이되는 걸 듣는 편이 훨씬 흥미로웠지요” 하고 그녀는, 마치 작곡가가 몸소 반주해 준 노래를 이야기하듯 말을 이었다. “오리안이 방금 한 최신작 얘기를 하던 참이었어요, 방금 여기 계셨거든요” 하고 안주인은, 한 시간 일찍 오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할 손님 하나를 맞으며 말했다. “네? 오리안이 여기 왔었다고요?” “네, 조금만 더 일찍 오시지 그랬어요” 하고 데피네 대공비는, 나무라는 게 아니라 그 굼뜸 탓에 무엇을 놓쳤는지 헤아리게 해 주며 일러 주었다. 천지창조 자리에도, 카르발로 부인의 마지막 공연에도 함께하지 못한 것은 오로지 제 탓이라는 듯이. “오리안의 최신작,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정말이지 〈심술쟁이 오만공〉이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러고서 그 ‘재담’은 이튿날 점심상에, 일부러 부른 몇몇 가까운 벗 앞에 식은 채로 다시 올랐고, 한 주 내내 갖가지 소스를 얹고 되풀이해 나타났다. 실제로 대공비는 마침 그 주에 파름 대공비를 해마다 하는 방문차 찾아간 김에, 전하께서 그 말장난을 들으셨는지 여쭙고는 그대로 되풀이해 들려주었다. “아! 심술쟁이 오만공이라니” 하고 파름 대공비는, 절로 우러난 감탄으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으나, 그 감탄은 보충 설명을 청하는 것이었고, 데피네 부인은 기꺼이 그것을 채워 주었다. “저는 〈심술쟁이 오만공〉이 그 〈말투〉로 보아 무척 마음에 들어요” 하고 그녀는 마무리했다. 사실 ‘말투’라는 말은 이 말장난에 조금도 들어맞지 않았으나, 게르망트 정신을 제 몫만큼 익혔노라 자부하던 데피네 대공비는 오리안에게서 ‘말투를 살린’이니 ‘말투’니 하는 표현을 빌려다 가리는 것 없이 마구 써 댔다. 그런데 데피네 부인을 도무지 좋아하지 않아 밉상이라 여기고, 인색한 줄 알며, 쿠르부아지에가의 말만 믿고 심술궂다고 여기던 파름 대공비는, 게르망트 부인이 쓰는 걸 들은 적은 있으나 스스로는 언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을 이 ‘말투’라는 말을 알아들었다. 대공비는 정말로 〈심술쟁이 오만공〉의 매력을 이루는 것이 다름 아닌 그 ‘말투’라는 인상을 받았고, 밉상에 인색한 그 부인에 대한 반감을 아주 잊지는 못하면서도, 그토록 짙게 게르망트 정신을 타고난 사람을 향한 감탄이 북받쳐, 하마터면 데피네 대공비를 오페라에 초대할 뻔했다. 그녀를 붙든 것은 오직, 아무래도 먼저 게르망트 부인과 상의하는 편이 현명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편 쿠르부아지에가와 달리 오리안에게 끝없이 마음을 쓰고 그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서도, 그 지체 높은 벗들을 시샘하고 공작부인이 제 인색함을 두고 뭇사람 앞에서 놀려 대는 것에 얼마쯤 부아가 나 있던 데피네 부인은, 집에 돌아와서, 파름 대공비에게 〈심술쟁이 오만공〉의 요점을 알아듣게 하느라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늘어놓으며, 저런 얼간이를 벗으로 두다니 오리안이 어지간한 속물이 틀림없다고 잘라 말했다. “설령 내가 원했다 한들 파름 대공비와는 그리 자주 볼 수도 없었을 거예요” 하고 그녀는 함께 만찬을 들던 벗들에게 일렀다. “데피네 씨가 그 부인의 부도덕함 때문에 한시도 허락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고 그녀는, 대공비의 순전히 지어낸 어떤 방탕을 빗대며 설명했다. “하지만 설령 내 남편이 그만큼 깐깐하지 않았다 해도, 나는 도저히 그 부인과는 벗이 될 수 없었을 거예요. 오리안이 어떻게 저러듯 하루걸러 그 부인을 만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일 년에 한 번 가는데, 그 한 번 앉아 있는 것도 겨우 버틴다니까요.” 게르망트 부인이 방문한 날 마침 빅튀르니엔네에 있던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로 말하자면, 공작부인이 오면 대개 달아나 버렸으니, 거기서 그녀에게 바쳐지는 ‘우스꽝스러운 굽신거림’에 진저리가 났던 것이다. 오직 한 사람만이 〈심술쟁이 오만공〉의 오후에 남아 있었다. 그는 요점을 온전히 알아채지는 못했으나, 배운 사람인지라 얼마쯤은 알아들었다. 그리고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은 오리안이 팔라메드 삼촌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 불렀다고 여기저기 옮기고 다녔는데, 그들 말로는 그것이 그를 꽤나 잘 그린 말이라는 것이었으나, 대체 왜 오리안을 두고 이리 끝없이 떠들어 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여왕을 두고도 이보다 더 야단은 못 떨 거라면서. “대관절 오리안이 뭐라고? 게르망트가가 유서 깊은 집안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 쿠르부아지에가도 지체나 연조나 혼인으로 보아 조금도 뒤질 게 없어. 잊지 말아야 할 게, 저 금란(金襴)의 들에서 잉글랜드 왕이 프랑수아 1세에게 그 자리에 있는 영주들 가운데 누가 가장 고귀하냐고 물었을 때, 프랑스 왕이 이렇게 말했지. 〈폐하, 쿠르부아지에올시다.〉” 그러나 설령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이 모두 방에 남아 그 말을 들었다 한들, 오리안의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려졌을 것이니, 대개 그런 말을 낳는 사건들을 그들은 전혀 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어느 쿠르부아지에가 부인이 야회 도중에 의자가 모자라거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손님을 엉뚱한 이름으로 맞거나, 하인 하나가 어리석은 말을 하면, 그 쿠르부아지에가 부인은 몹시 언짢아 얼굴이 벌게지고 흥분에 떨며 그런 딱한 일을 한탄했다. 그리고 방에 손님이 있는데 오리안이 오기로 되어 있으면, 그녀는 근심스럽고도 다그치는 투로 이렇게 묻곤 했다. “이분을 아세요?” 손님이 그녀를 모르면 그 존재가 오리안에게 언짢은 인상을 줄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게르망트 부인은 도리어 그런 일들에서 이야깃거리를 뽑아내어 게르망트가 사람들을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도록 웃겼으니,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녀가 의자가 모자랐던 것을, 스스로 실수를 저지르거나 하인이 저지르게 내버려 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이를 야회에 부른 것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위대한 작가들이 남자들에게 멀리 밀려나고 여자들에게 배신당한 일을, 그 굴욕과 고통이 그들 천재의 곧바른 자극제까지는 아니었을지언정 적어도 그 작품의 밑감이 되었을 때, 우리가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듯이 말이다.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은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사교 생활에 끌어들인 혁신의 정신, 곧 오류 없는 본능에 따라 그것을 그때그때의 필요에 맞추어 예술적인 무언가로 빚어내던 그 정신의 수준에는 도무지 이르지 못했다. 반면 딱딱하게 굳은 규칙을 순전히 이성적으로 적용하기만 했다면, 연애든 정치든 성공하겠다고 뷔시 다부아즈의 무용담을 제 일상에서 그대로 재현하려 드는 사람이 맞닥뜨릴 법한 낭패스러운 결과나 얻었을 것이다. 쿠르부아지에가에서 집안끼리 만찬을 열거나 어느 대공을 맞는 만찬을 열 때, 이름난 재사(才士) 하나나 아들의 친구 하나를 자리에 더하는 일은 그들에게는 더없이 끔찍한 결과를 부를 수 있는 파격으로 여겨졌다. 아버지가 제정(帝政) 시절의 장관이었던 어느 쿠르부아지에가 부인은 마틸드 공주를 맞는 오후 모임을 열어야 하자, 기하학 공식이라도 풀듯 보나파르트파 말고는 아무도 초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그녀는 사실상 한 명도 알지 못했다. 아는 세련된 부인들, 재미있는 남자들은 모조리 가차 없이 배제되었으니, 정통왕조파의 견해나 인맥을 지닌 그들이 쿠르부아지에식 논리로 보면 자칫 황녀 전하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그 황녀는 제 집에서 포부르 생제르맹의 정수(精髓)를 접대하던 사람이라, 쿠르부아지에 부인 댁에서 남편이 옛 제국 지사였던 소문난 늙은 여자 식객 하나와, 우편국장의 미망인과, 나폴레옹에 대한 충성과 어리석음과 따분함으로만 알려진 몇몇을 마주하고는 적잖이 놀랐다. 그렇지만 마틸드 공주는 이 가련한 허수아비들에게도 군주다운 은총의 너그럽고 시원한 소나기를 조금도 아끼지 않고 뿌려주었다. 반면 게르망트 공작부인은 제 차례가 되어 그 공주를 접대할 때면 이런 사람들은 결코 부르지 않도록 조심했고, 보나파르트주의에 관한 추상적 추론 따위는 접어둔 채 그 대신 온갖 미인과 재능과 명사들의 가장 눈부신 광채를 불러 모았다. 어떤 미묘한 육감(六感)이 그녀에게 일러주기를, 이들이라면 설령 실제로 왕가에 속한 이들일지라도 황제의 조카딸 마음에 들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도말 공작도 빠지지 않았고, 물러갈 무렵 공주는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추고 그 존귀한 손에 입 맞추려던 게르망트 부인을 일으켜 세워 양 볼에 입을 맞추었으니, 이보다 더 즐거운 오후를 보낸 적도, 이토록 유쾌한 모임을 본 적도 없다고 진심으로 공작부인에게 장담할 수 있었다. 파름 대공비는 사교의 일에서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쿠르부아지에가와 같았으나, 쿠르부아지에가와 달리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끊임없이 안겨주는 놀라움은 그녀 안에 그들에게서와 같은 반감이 아니라 감탄을 자아냈다. 이 놀라움은 대공비가 받은 교육이 한없이 뒤떨어진 상태였던 탓에 한층 더 커졌다. 게르망트 부인 자신도 스스로 여기는 것보다는 훨씬 덜 앞선 사람이었다. 하지만 파름 부인을 아연하게 만들기에는 그녀보다 조금만 앞서 있어도 충분했으니, 세대마다 비평가들이 앞 세대가 인정한 진리와 정반대되는 주장을 고수하는 데 그치듯, 그녀도 부르주아의 철천지원수인 플로베르가 실은 뼛속까지 부르주아였다거나, 바그너 안에 이탈리아 음악이 잔뜩 들어 있다고 말하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매번 되풀이되는 신경 소모를 대가로, 폭풍 이는 바다에서 헤엄치는 이의 눈앞에 펼쳐지듯, 대공비 앞에 상상조차 못 할 지평이, 그러나 언제까지고 어렴풋하게 남는 지평이 열리는 것이었다. 이 아연함은 예술 작품에 관해서뿐 아니라 아는 사람들이나 당대의 사교계 사건에 관해 내뱉는 역설에서도 비롯되었다. 물론 파름 부인이 게르망트가 사람들의 진짜 재치와, 어설프게 익힌 그 재치의 몇몇 형태를 가려내지 못한 무능(그 때문에 그녀는 어떤 게르망트가 사람들, 특히 몇몇 여자들을 두고 지적으로 대단히 높이 평가했는데, 공작부인이 웃으며 그들이 한낱 얼간이일 뿐이라고 털어놓는 것을 듣고는 어리둥절해했다)은, 게르망트 부인이 남을 흉보는 것을 들을 때마다 대공비가 늘 느끼던 놀라움의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도 있었다. 그 무렵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알고 삶보다 문학을 더 잘 알던 나는 이렇게 풀이했다. 공작부인이 영위하는 이 사교 생활은 그 한가함과 불모(不毛)함이 진정한 사교 활동에 대해, 예술에서 비평이 창작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았고, 그녀는 자기를 둘러싼 사람들에게까지 그 관점의 불안정함을, 곧 너무 메말라버린 정신을 달래려고 그저 꽤 새롭기만 하면 어떤 역설이든 찾아 나서고, 정말로 위대한 이피제니는 글루크가 아니라 피치니의 것이라거나, 아쉬운 대로 진짜 페드르는 프라동의 것이라는 시원한 견해를 떠받치는 데 조금도 거리끼지 않는 논객의 불안한 갈증을 옮겨놓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