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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⑬

3권 제2부 · 제2장

똑똑하고 교양 있고 재치 있는 여자가, 좀처럼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 한번 들리지 않는 수줍은 촌뜨기와 결혼한 경우, 게르망트 부인은 어느 날 문득 그 아내를 깎아내리는 데서뿐 아니라 남편을 “발견해내는” 데서 보기 드문 지적 쾌감을 얻곤 했다. 이를테면 캉브르메르 집안을 두고, 만일 그녀가 그 무렵 그쪽 사교계에 살았더라면, 캉브르메르 부인은 어리석고, 정말로 흥미로운 사람은 오해받고 있으나 사랑스럽고, 수다스러운 아내 탓에 침묵을 선고받았지만 실은 아내 천 명보다 나은 후작 쪽이라고 단언했으리라. 그리고 이렇게 선언하면서 공작부인은, 사람들이 칠십 년 동안 에르나니를 칭송해온 끝에 자기는 르 리옹 아무뢰가 더 좋다고 고백하는 비평가와 같은 종류의 시원함을 맛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똑같은, 제멋대로인 새것을 향한 병적인 욕구에서, 어느 나무랄 데 없는 아내, 참으로 성녀 같은 여인이 소녀 적부터 못된 남편과 산다고 모두가 가엾이 여겨왔다면, 게르망트 부인은 어느 날 그 못된 남자가 어쩌면 경박한 사람이기는 해도 마음만은 황금 같은 이인데, 아내의 가차 없는 매정함이 그를 온갖 앞뒤 안 맞는 짓으로 내몬 것이라고 우기곤 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비평이란 여러 세기에 걸쳐 서로 다른 작품들을 두고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작품의 서로 다른 부분들을 두고서도 벌어지는 것이며, 너무 오래 빼어나다 여겨져온 것을 도로 그늘 속으로 밀어넣고, 영영 묻힐 운명인 듯 보이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는 것을. 나는 벨리니, 빈터할터, 예수회 건축가들, 왕정복고기의 어느 가구장이가 “한물갔다”고 불리는 천재들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한물간 까닭은 단지 신경쇠약자가 늘 지쳐 있고 늘 변덕을 부리듯, 지식인들의 게으른 정신을 지치게 했다는 것뿐이었다. 나는 또 생트뵈브에게서 비평가와 시인이 번갈아 높이 평가되는 것을, 뮈세가 시인으로서는 아주 하찮은 소품 몇 편을 빼고는 배척당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어떤 평론가들은 르 시드폴리왹트의 가장 유명한 장면들보다, 오래된 지도처럼 그 시절 파리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르 망퇴르의 어느 대사를 위에 두는 잘못을 범한다. 하지만 그들의 편애는, 아름다움의 견지에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기록으로서의 관심으로는 정당화되므로, 미쳐 날뛰는 우리네 비평에 비하면 여전히 너무 이성적이다. 이 비평은 몰리에르 전부를 레투르디의 한 줄과 맞바꾸려 들고, 바그너의 트리스탄을 지루하다고 선고하면서도 사냥 행렬이 지나가는 대목의 “호른의 매혹적인 한 소절”만은 예외로 친다. 이런 취향의 타락 덕분에 나는 게르망트 부인이 보여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네 세계의 어떤 남자, 좋은 사람이지만 바보로 통하던 이를 두고 실은 사람들이 여기는 것보다 영악한 이기심의 화신이라고 단정하는가 하면, 너그럽기로 널리 알려진 또 다른 이가 실은 인색함 그 자체일지 모른다고, 좋은 어머니가 제 아이들에게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고, 흔히 악덕에 찌든 줄로만 아는 어떤 여자가 실은 더없이 고귀한 감정에 이끌려 움직인다고 단정하곤 했다. 사교 생활의 공허함에 물들기라도 한 듯, 게르망트 부인의 지성과 감식안은 너무나 변덕스러워서, 도취 뒤에는 이내 환멸이 꽤 빠르게 뒤따르지 않을 수 없었고(그러면서도 그녀는 자기가 번갈아 찾았다 버렸다 하던 종류의 영리함에 다시금 이끌릴 채비가 되어 있었다), 어느 다정한 남자에게서 느낀 매력도, 그가 너무 자주 그녀를 찾아오고 그녀가 도저히 줄 수 없는 지시를 너무 스스럼없이 청하면 이내 짜증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짜증이 자기를 흠모하는 이 때문에 생긴다고 믿었으나, 실은 오로지 즐거움을 좇기만 할 뿐 달리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도무지 즐거움을 찾을 수 없다는 데서 온 것이었다. 공작부인의 오락가락하는 판단은 그 누구도 봐주지 않았으나, 남편만은 예외였다. 오직 그만이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고, 그녀는 그에게서 늘 쇠 같은 성정을 느꼈다. 그녀가 부리는 변덕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미모를 대수롭잖게 여기며, 사납고, 결코 굽히지 않는 의지를 지닌, 신경질적인 사람들이 오직 그 아래에서만 평온을 찾을 수 있는 그런 부류였다. 한편 게르망트 는 오직 한 가지 유형의 여성미를 좇았으되 끊임없이 갈아치우는 정부들에게서 그것을 구했는데, 그녀들을 떠나고 나면 그녀들을 비웃어 보이기 위한 것으로는 언제나 변함없이 똑같은 동반자 하나만이 곁에 있었다. 그 동반자는 수다로 그를 자주 짜증나게 했으나, 세상 모두가 그녀를 가장 아름답고 가장 정숙하며 가장 영리하고 가장 박식한 귀족으로 여긴다는 것을, 자기 게르망트 가 찾아낸 것이 더없는 행운이랄 아내로, 자기의 온갖 탈선을 덮어주고, 세상 누구도 못 하게 손님을 접대하며, 자기네 응접실이 포부르 생제르맹에서 으뜸가는 지위를 지키게 해주는 아내로 여긴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세간의 평을 그 자신도 함께했으니, 그녀에게 종종 심사가 뒤틀리면서도 그녀를 자랑스러워했다. 까다로운 만큼이나 인색했던 그는 그녀의 자선이나 하인들에게 쓸 아주 하찮은 돈은 내주지 않으면서도, 그녀에게 더없이 호사스러운 옷을 입고 파리에서 가장 좋은 말들이 끄는 마차를 타라고 고집했다. 게르망트 부인은 어느 친구의 장점과 단점을 느닷없이 뒤바꿔 놓는 참신하고 맛깔난 역설을 막 저지르고 나면, 그것을 음미할 줄 아는 사람들 앞에서 시험해보고 싶어, 그 심리적 독창성을 드러내고 경구 같은 광채를 반짝이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물론 이 새로운 견해들에 담긴 진실이 대개 옛것보다 더할 것도 없고 흔히 덜했지만, 바로 그 안에 담긴, 제멋대로이고 종잡을 수 없는 새로움이라는 요소가 그것들에 어떤 지적인 무언가를 부여했고, 그 덕분에 그것을 남에게 전하는 일이 짜릿해졌다. 다만 공작부인이 심리 솜씨를 부리는 대상인 그 환자는 대개 절친한 벗이었고, 그녀가 자기 발견을 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그가 더는 그녀의 총애의 정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견줄 데 없는 벗, 정 많고 다정하며 헌신적인 벗이라는 게르망트 부인의 평판은 그녀 스스로 공격에 나서기를 어렵게 했다. 기껏해야 그녀는 나중에, 마지못한 척, 달래는 대답을 하며 끼어들어, 겉으로는 반박하되 실은 스스로 나서서 그녀를 자극하는 역을 떠맡은 상대편을 편들 수 있을 따름이었다. 바로 이 역할에 게르망트 는 능란했다.

사교 활동으로 말하자면, 게르망트 부인은 그에 관해 뜻밖의 판단들을 내뱉으며 또 다른 형태의, 제멋대로이고 볼만한 쾌감을 느꼈으니, 그 판단들은 파름 대공비를 끊임없이, 절묘한 놀라움으로 찔러댔다. 그러나 공작부인의 이 쾌감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나는 문학 비평의 도움을 빌리기보다는 정치 생활과 의회 토론 기사를 좇아가며 이해해보려 했다. 게르망트 부인이 잇달아, 서로 모순되는 포고로 제 세계 사람들 사이의 가치 서열을 끊임없이 뒤엎어도 이제 그것만으로는 심심풀이가 되지 않자, 그녀는 자기 사교 처신을 정하는 방식에서, 유행에 관한 제 아주 사소한 결정을 표명하는 방식에서도 그런 인위적인 감정을 맛보려, 의회의 감각을 자극하고 정치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그런 부수적 의무를 다하려 애썼다. 우리는 안다. 어느 장관이 하원에서, 이튿날 아침 신문으로 회의록을 읽는 상식 있는 사람에게는 사실 지극히 떳떳해 보이는 어떤 처신을 따르면서 자기는 옳게 행동한다고 믿었노라 해명할 때, 그럼에도 이 상식 있는 독자는 문득 마음이 흔들리고, 그 장관의 처신을 옳다고 여긴 것이 과연 잘한 일인지 의심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가 그렇게 되는 것은, 그 장관의 연설이 격한 소란 속에서 경청되고, 이름과 직함이 어찌나 긴지 모를 어느 의원이 내지른 “심히 중대한 일이오!” 같은 규탄의 외침으로 중간중간 끊겼으며, 회의록에서는 그 외침에 어찌나 힘준 몸짓들이 뒤따랐던지, 그 소동 전체에서 정작 “심히 중대한 일이오!”라는 말이 차지하는 자리가 알렉상드랭 시행에서 반행(半行)이 차지하는 자리보다도 작다는 것을 볼 때이다. 이를테면 게르망트 가 데 롬 대공으로서 하원에 몸담고 있던 시절, 파리 신문에서는 이따금, 비록 주로 메제글리즈 선거구를 겨냥해 그곳 유권자들에게 자기들이 무능하거나 목소리 없는 대리인에게 표를 준 것이 아님을 보이려는 것이긴 했으나, 이런 기사를 읽곤 했다.

(게르망트부용 씨, 데 롬 대공: “중대한 일이오!” 중앙석과 우파 의석 일부에서 “옳소, 옳소!” 극좌파에서 요란한 고성.)

상식 있는 독자는 아직 현명한 장관에 대한 한 가닥 믿음을 간직하고 있으나, 답변하려 일어선 이의 첫마디에 그의 가슴은 새삼스러운 두근거림으로 요동친다.

“제가 놀라움을, 아니 경악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감정을 느낀 것은” (우파 의석에서 격한 반응) “제 짐작으로는 아직도 정부의 일원인 분의 말씀 앞에서였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 그러자 몇몇 의원 아닌 우편전신부 정무차관들이 장관석 둘레로 몰려들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끄덕여 그렇다는 뜻을 표했다.

이 “우레와 같은 박수”는 상식 있는 독자의 마음속 마지막 저항의 한 조각까지 쓸어가 버린다. 그는 그 자체로는 아무 대수롭지도 않은 어떤 절차를, 하원에 대한 모욕이자 실로 끔찍한 짓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것은 이를테면 부자가 가난한 이보다 더 내게 하거나, 어떤 불의를 들추어내거나, 전쟁보다 평화를 택하는 따위의 지극히 정상적인 처사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괘씸하게 여기고, 거기서 어떤 원칙들에 대한 침해를 보게 된다. 사실 그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인간의 마음에 새겨져 있지도 않은 원칙들이건만,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갈채와 그것들이 그러모으는 탄탄한 다수 때문에 그를 강하게 뒤흔드는 것이다.

동시에 인정해야 할 것은, 게르망트 무리를, 그리고 훗날 사교계의 다른 무리들을 내게 설명해준 이 정치가의 섬세함이란, 흔히 “행간을 읽는다”고 일컫는 어떤 해석의 예민함이 변질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의 기관에 이 자질의 변질로 말미암은 어리석음이 있다면, 그것이 모자란 탓에 생기는 어리석음도 똑같이 있으니, 모든 것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중이 그러하다. 그들은 어느 고관이 “본인의 요청으로” 관직에서 물러날 때 그것이 파면임을 의심하지 않고, “물러나게 해달라고 청한 것이 본인인데 파면일 리가 없지”라고 말한다. 러시아군이 전략적 이동으로 미리 마련해둔 더 튼튼한 진지로 물러날 때 그것이 패배임을 알아채지 못하고, 어느 지방이 독일 황제에게 독립을 요구하자 황제가 그 지방에 종교적 자치를 허락할 때 그것이 거절임을 알아채지 못한다. 게다가 (하원의 이 회의로 돌아가자면) 회의가 열릴 때 의원들 자신도 훗날 발표된 회의록을 읽을 상식 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파업 중인 몇몇 노동자가 장관과 담판하러 대표를 보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은 서로 천진하게 물을지 모른다. “저런, 무슨 이야기를 했으려나. 다 잘 마무리됐으면 좋으련만.” 바로 그때 장관 자신이, 이미 인위적인 감정을 자아내기 시작한 엄숙한 정적 속에서 연단에 오른다. 장관의 첫마디, “제가 정부의 소임을 너무나 무겁게 여기는 터라, 제게 맡겨진 권한으로는 인정할 수 없는 대표단을 접견하지 않았음을 하원에 굳이 아뢸 필요는 없겠습니다”는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이것이야말로 의원들의 상식이 미처 떠올리지 못한 유일한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그 극적인 효과 때문에 그 말은 어찌나 큰 박수로 맞아들여지는지, 장관은 몇 분이 지나서야 겨우 제 목소리를 들리게 할 수 있고, 그러고는 제자리로 돌아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다. 우리는 그 똑같은 장관이 야당을 지지하던 시의회 의장을 큰 공식 연회에 초대하지 않았던 날만큼이나 깊이 감동하여, 이번에도 저번처럼 그가 참된 정치가의 수완으로 처신했노라고 단언한다.

게르망트 는 생애의 이 시절, 쿠르부아지에가가 크게 개탄하게도, 장관을 축하하러 나서는 의원들 무리에 자주 끼어 있었다. 나는 훗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가 하원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장관직이나 대사직 물망에 오르던 때조차, 어느 벗이 청탁하러 찾아오면 그는 한없이 소탈했고, 하필 게르망트 공작이 아닌 다른 어떤 이보다도 훨씬 덜 거물 정치가답게 처신했다는 것이다. 귀족 신분 따위 아무 상관 없다느니, 동료 의원들을 대등하게 여긴다느니 말하기는 했어도 그는 그것을 한순간도 믿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는 정치적 중요성을 좇고 소중히 여기는 척했으나 실은 경멸했으며, 제 눈에는 여전히 게르망트 였던 까닭에, 그 중요성이 다른 정치가들을 가까이하기 어렵게 만드는 그 고관의 무거운 짐으로 그를 휘감지는 못했다. 그리하여 그의 자존심은 온갖 침해로부터, 짐짓 친근한 체하는 그의 몸가짐뿐 아니라 그가 실제로 지녔을 법한 진짜 소탈함까지도 지켜주었다.

정치가들이 내리는 것 같은 그 인위적이고 마음을 흔드는 결정으로 돌아가자면, 게르망트 부인 역시 게르망트가와 쿠르부아지에가, 포부르 생제르맹 전체를, 그리고 그 누구보다 파름 대공비를 못지않게 당황케 했으니, 종잡을 수 없는 포고를 내리는 버릇 때문이었다. 그 포고 뒤에는 어떤 잠재된 원칙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덜 예상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새로 부임한 그리스 공사가 가장무도회를 열면, 다들 의상을 고르며 공작부인은 무엇을 입고 올지 서로에게 물었다. 누구는 그녀가 부르고뉴 공작부인 차림으로 나타나리라 여겼고, 누구는 뒤자바르 공주 모습이 그럴듯하다 했으며, 또 누구는 프시케를 짐작했다. 마침내 어느 쿠르부아지에가 사람이 그녀에게 “오리안, 뭘 입고 갈 거예요?” 하고 묻자, 아무도 생각지 못한 단 하나의 대답이 튀어나왔다. “뭘 입긴, 아무것도 안 입어요!” 이 말은 당장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렸으니, 새로 온 그리스 공사의 참된 사교적 지위와 그를 대하는 마땅한 태도에 관한 오리안의 견해를, 곧 진작에 내다봤어야 할 견해를, 다시 말해 공작부인쯤 되면 이 신출내기 공사가 여는 가장무도회에 “참석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내가 굳이 그리스 공사 댁에 갈 까닭을 모르겠어요. 그 사람을 알지도 못하고, 나는 그리스 사람도 아니잖아요. 아무 상관도 없는 그런 이들 집에 왜 가야 하죠?” 공작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다들 갈 텐데요, 아주 근사할 거라잖아요!” 갈라르동 부인이 외쳤다. “그래도 이따금은 제집 난롯가에 앉아 있는 편이 그만큼 근사하답니다.” 게르망트 부인이 대꾸했다.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은 이 말에 어이없어했으나, 게르망트가 사람들은 흉내는 내지 않으면서도 사촌의 태도를 옳게 여겼다. “하기야 누구나 오리안처럼 온갖 관례를 깰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 하지만 어느 모로 보면, 어디서 굴러왔는지도 모를 이 온갖 외국 사람들 발치에 우리가 너무 굽실댄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게 딱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 물론 이런저런 태도가 반드시 불러일으킬 말들의 물결을 잘 알기에, 게르망트 부인은 안주인이 감히 그녀의 참석을 기대하지 못한 모임에 나타나는 데서, 혹은 “다들 가는” 모임이 있는 날 밤 집에 머물거나 남편과 연극을 보러 가는 데서, 혹은 또 사람들이 그녀가 어느 역사적인 보관(寶冠)으로 최상급 다이아몬드마저 무색하게 하리라 상상할 때, 장신구 하나 없이 슬며시 방에 들어서고,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잘못들 여기던 것과는 딴판인 차림을 하고 나타나는 데서 그만큼의 쾌감을 맛보았다. 그녀는 반드레퓌스파였으면서도(드레퓌스의 무죄를 믿는 마음은 간직한 채였으니, 이는 그녀가 사교계에서 오로지 추상적인 관념만을 믿으며 살아간 것과 마찬가지였다), 리뉴 대공비 댁 모임에서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우선 메르시에 장군이 방에 들어설 때 부인들이 모두 일어섰는데도 홀로 앉아 있었고, 이어 어느 국수주의 웅변가가 좌중을 향해 연설을 시작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마차를 청함으로써, 사교계가 정치를 논하는 자리라고는 여기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어느 성금요일 음악회에서는 모든 이의 고개가 그녀 쪽으로 돌아갔으니, 볼테르주의자이면서도 그리스도를 무대에 올리는 것이 온당치 못하다 여겨 끝까지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다, 사교계의 위대한 여왕들에게조차 한 해 중 사교 행사가 시작되는 그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어찌나 중요한지, 무슨 말이든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일종의 강박에다 눈치까지 없어 늘 웃음거리가 되던 다몽쿠르 후작부인은, 아버지 몽모랑시 의 죽음에 조문하러 찾아온 누군가에게 실제로 이렇게 대꾸했을 정도다. “게다가 더 서글픈 건, 하필 거울이 초대장으로 미어터지는 철에 이런 일이 닥쳤다는 거예요!” 자, 사교철의 바로 이 시기에, 사람들이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선약이 없는지 온갖 애를 써서 확인하고 만찬에 초대하면, 그녀는 사교계의 누구도 결코 떠올리지 못했을 단 하나의 이유를 대며 사양했다. 마침 그녀는 그토록 흥미로운 노르웨이 피오르를 도는 유람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사교계 사람들은 아연했고, 공작부인을 본받을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그녀의 행동에서 칸트를 읽을 때 느끼는 그런 해방감을 얻었다. 결정론을 더없이 엄밀하게 논증한 끝에 필연의 세계 위에 자유의 세계가 있음을 발견할 때의 그 해방감을. 일찍이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발명은 그로부터 아무 득도 볼 수 없는 사람들의 흥미마저 자극하는 법이다. 증기선 항해라는 발명도 “사교철”이라 불리는, 다들 눌러앉아 지내는 그 시기에 증기선 항해를 써먹는 것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노르웨이 피오르를 구경하겠다고 백 번의 만찬이나 오찬을, 그 두 배의 오후 다과회를, 세 배의 야회를, 오페라 극장의 더없이 화려한 월요 공연과 프랑세 극장의 화요 공연을 제 발로 마다한다는 발상은,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에게는 해저 2만 리라는 발상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것이었으나, 그와 비슷한 독립과 매력의 인상을 그들에게 안겨주었다. 그리하여 하루도 빠짐없이 누군가 이렇게 묻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 그저 “오리안의 최신 농담 들었어요?”만이 아니라 “오리안의 최신 소식 알아요?”라고도 물었다. 그리고 “오리안의 최신 농담”에나 “오리안의 최신 소식”에나 한결같이 이런 말이 뒤따랐다. “정말 오리안답지 뭐예요!” “이거야말로 순 오리안 아니에요?” 예컨대 오리안의 최신 소식이란 이런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애국 단체를 대신해 마콩의 주교 X⸺ 추기경(게르망트 는 그를 말할 때면 이것이 “고풍스러운 프랑스어”인 줄 알고 한결같이 “마스콩 씨”라 불렀다)에게 편지를 써야 했을 때, 다들 그 편지가 어떤 투가 될지 상상해보려 하면서도 첫머리 말은 “예하(猊下)”와 “각하” 사이에서 고르면 그만이라 어려울 것이 없었으나 그다음이 난감했는데, 오리안의 편지는 모두를 놀라게도 이렇게 시작했다. “추기경 귀하”, 이는 옛 학술 서식을 따른 것이었다. 아니면 “나의 사촌에게”, 이 표현은 교회의 대공(大公)들과 게르망트가와 대관(戴冠)한 군주들 사이에서 쓰이던 것으로, 그들은 하느님께 서로가 하나하나 “그분의 합당하고 거룩한 보살핌” 안에 들기를 빌었다. 사람들을 “오리안의 최신 소식”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데는 이런 일이면 충분했다. 온 파리가 모여든, 더없이 매력적인 연극이 상연되던 공연에서, 파름 대공비와 게르망트 대공비를 비롯해 그녀를 초대한 숱한 부인들의 특별석에서 게르망트 부인을 찾다가, 정작 그녀가 막이 오르기도 전에 와서 홀로, 검은 옷차림에 조그만 모자를 쓴 채 아래층 일반석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는 일 말이다. “들을 만한 가치가 있는 연극이라면 이 자리에서가 더 잘 들리거든요.”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고, 쿠르부아지에가 사람들은 이를 개탄했으나, 게르망트가 사람들과 파름 대공비는 감탄 어린 어리둥절함에 빠져, 연극의 첫머리부터 보는 이 “유행”이 큰 만찬 뒤에 마지막 막에 맞춰 도착해 먼저 어딘가에 “들렀다” 오는 것보다 더 앞선 것이며, 더 큰 독창성과 지성의 증거임을(오리안에게서 나온 일이니 놀랄 것도 없지만) 문득 깨달았다. 파름 대공비가 게르망트 부인에게 문학이나 사교에 관한 물음을 던지면 각오해야 함을 스스로 알던 갖가지 놀라움이 이런 것들이었고, 그 한 가지 결과로, 오리안 댁의 이런 만찬 동안 대공비 전하는 밀려드는 두 파도 사이에서 몸을 내미는 해수욕객의 그 불안하고도 황홀한 조심스러움을 지니지 않고서는 어떤 사소한 화제도 감히 꺼내지 못했다.

라이프니츠가 저마다의 모나드는 온 우주를 비추면서도 거기에 제 나름의 무언가를 보탠다고 했듯, 포부르 생제르맹의 유행을 이끌던 엇비슷한 서너 곳의 다른 응접실에는 없어서 게르망트 공작부인의 응접실을 그것들과 구별해주던 요소들 가운데, 가장 볼품없는 하나는 으레 한둘의 빼어난 미녀들로 채워졌다. 그 미녀들이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라곤 제 미모와 게르망트 가 그들을 써먹은 일밖에 없었고, 그들의 존재는, 다른 응접실에서 달리 설명할 길 없는 어떤 그림들이 그러하듯, 이 집의 바깥주인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열렬히 감식하는 사람임을 대번에 드러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엇비슷했으니, 공작은 조각상 같으면서도 팔다리가 늘씬한 큰 키의 여인, 밀로의 비너스사모트라케의 승리상 사이 어디쯤의 유형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흔히 금발이고 드물게 흑발이며 이따금 적갈색 머리였으니, 이번 만찬에 와 있던 가장 최근의 여인 다르파종 자작부인이 그러했다. 공작은 그녀를 어찌나 아꼈던지 오랫동안 그녀에게 하루 열 통이나 되는 전보를 보내게 했고(공작부인은 이를 다소 못마땅해했다), 게르망트에 있을 때는 전서구로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게다가 오랫동안 그녀에게서 몸을 떼어놓지 못해, 파르마에서 한 겨울을 나야 했을 적에는 그녀를 보러 매주 꼬박꼬박 이틀을 기차에서 보내며 파리로 되돌아오곤 했다.

대개 이 아름다운 “단역들”은 그의 정부였으나 이제는 아니거나(다르파종 부인의 경우가 그러했다) 곧 그 관계가 끝나려는 참인 여자들이었다. 어쩌면 그녀들 눈에 비친 공작부인의 위세와 그녀 집에 초대받으리라는 기대가, 비록 그녀들 자신도 어엿한 귀족 태생이기는 해도 아직 일류라고는 할 수 없는 가문 출신이었던 만큼, 공작의 잘생긴 용모나 후함보다도 더, 그의 욕망에 응하도록 그녀들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공작부인이 그녀들이 제 문턱을 넘는 것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걸림돌로 막았을 리는 없다. 그녀는 그들 가운데 한둘에게서 협력자를 얻었음을, 그 덕분에 자기가 바라던, 그러나 게르망트 가 딴 여자에게 빠져 있지 않은 한 아내에게 매정하게 내주지 않던 숱한 것들을 손에 넣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공작과의 친밀함이 이미 한참 무르익기 전까지는 공작부인이 그녀들을 초대하지 않았던 까닭은 주로, 그가 사랑의 깊은 물에 뛰어들 때마다 짧은 불장난 이상은 그려본 적이 없었고, 그 대가로는 아내의 초대만으로도 차고 넘친다고 여겼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훨씬 더 적은 것을 대가로, 실은 첫 입맞춤을 대가로 그 초대를 내놓기도 했으니, 미처 예상치 못한 저항이 끼어들었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아무 저항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에서는 흔히 고마움이,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상대의 기대나 잇속으로는 미처 헤아릴 수 없던 한계 너머로까지 우리를 너그럽게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이 약속의 이행이 서로 어긋나는 사정들로 가로막혔다. 우선, 게르망트 의 사랑에 응한 여자들은 모조리, 때로는 아직 그에게 몸을 내맡기기도 전부터, 그가 하나둘 세상으로부터 떼어놓았다. 그는 더는 그녀들이 누구도 만나지 못하게 했고, 거의 모든 시간을 그녀들 곁에서 보냈으며, 그녀들 아이들의 교육을 돌보았는데, 훗날 어떤 빼닮은 얼굴들로 미루어 보건대 이따금 그 아이들에게 어린 동생을 하나 안겨줄 일도 있었다. 그리하여 관계의 초입에는, 공작의 머릿속에는 한 번도 스친 적 없던 게르망트 부인에게 소개되리라는 기대가 정부의 마음속에는 적잖이 자리 잡았더라도, 관계 자체가 그 부인의 관점 전부를 바꿔놓았다. 공작은 그녀에게 더는 그저 파리에서 가장 세련된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 새 정부인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였고, 게다가 더 호사스러운 생활의 수단과 그런 마음을 안겨주고, 사교적 이점과 물질적 이점의 문제가 그녀 마음속에서 갖는 상대적 무게를 뒤바꿔놓은 남자였다. 그런가 하면 이따금은 이 온갖 요인이 뒤섞인, 게르망트 부인을 향한 복합적 질투가 공작의 정부들을 들쑤셨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무엇보다 드물었다. 게다가 소개하기로 정한 날이 마침내 다다르면(대개 공작은 그 일에 대한 관심을 거의 다 잃어버린 뒤였으니, 그의 행동도 누구나 그렇듯 애초의 동기는 이미 사라져버린 이전 행동에 따라 정해지곤 했다), 도리어 게르망트 부인 쪽에서 그 정부와 사귀기를 청한 일이 잦았다. 그 정부에게서 그녀는 무서운 남편에 맞설 귀중한 협력자를 찾아내기를 바랐고, 또 그토록 절실히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게르망트 가 아내와의 겉으로 드러나는 관계에서 이른바 예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드문 순간들만은 예외였으니, 제집에서 공작부인이 말이 너무 많다 싶으면 그는 몇 마디를 툭 내뱉거나, 더 끔찍하게는 그녀를 말문 막히게 하는 침묵을 지켰던 것이다.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칫 오해하기 쉬웠다. 이따금 도빌의 경마와 온천 요양, 그리고 사냥철에 맞춰 게르망트로 돌아가는 일 사이, 사람들이 파리에서 보내는 몇 주 동안, 공작부인이 카페콩세르를 좋아했던 터라 공작은 그녀와 함께 그중 한 곳에서 저녁 나절을 보내러 가곤 했다. 관객들은 딱 두 사람 자리밖에 없는 그 조그만 개방형 특별석 하나에서, “스모킹” 차림의 이 헤라클레스를 대번에 알아보았다(프랑스에서는 대체로 영국풍인 것에는 하나같이, 정작 영국에서는 붙지 않는 이름을 붙이기 때문이다). 그는 외알 안경을 눈에 끼우고, 통통하되 곱게 빠진 손, 그 약손가락에서 사파이어가 빛나는 손에는 굵은 시가를 들어 이따금 한 모금씩 연기를 빨았으며, 시선은 거의 무대에 두었으나,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관객석으로 눈길을 떨굴 때면 온화함과 조심스러움, 정중함과 배려의 기색으로 그 눈빛을 부드럽게 누그러뜨렸다. 어떤 노랫말이 재미있으면서 지나치게 상스럽지는 않다 싶으면, 공작은 미소 지으며 아내 쪽으로 돌아앉아, 사람 좋게 알겠다는 듯 눈을 반짝여, 그 새 노래가 자기 안에 불러일으킨 천진한 즐거움을 그녀와 나누곤 했다. 그리하여 구경꾼들은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남편이 없고, 공작부인보다 더 부러운 이가 없다고 믿었을 법하다. 정작 그 여자야말로 공작의 삶의 온갖 관심이 죄다 그 바깥에 놓여 있는 여자, 그가 사랑하지 않으며 한결같이 배신해온 여자였건만. 공작부인이 피곤해하면 사람들은 게르망트 가 일어나 손수 그녀에게 망토를 걸쳐주고, 목걸이가 안감에 걸리지 않도록 매만져주며, 거리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는 것을 보았다. 그 살뜰하고 정중한 시중을 그녀는, 그런 행동을 그저 판에 박힌 예의로만 보는 사교계 여인의 냉담함으로, 때로는 더 깨뜨릴 환상이라곤 남지 않은 환멸에 찬 아내의 살짝 빈정대는 씁쓸함으로 받았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에도 불구하고(이는 의무를 우리 존재의 심층에서 표면으로 끌어올린 그 예법의 또 다른 한 요소로, 이미 아득한 시대의 것이건만 그 잔존자들에게는 여전히 이어지던 것이다) 공작부인의 삶은 결코 편치 않았다. 게르망트 는 새 정부가 생길 때 말고는 결코 너그러워지거나 인정스러워지지 않았고, 그 새 정부는 대개 그렇듯 공작부인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면 공작부인은 아랫사람들에게 다시 후하게 굴 수 있게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게 되며, 나중에는 자기 몫으로 새 호화 자동차까지 가질 수 있게 됨을 보았다. 그러나 너무 고분고분하다 싶은 사람들에게 대개 꽤 빠르게 이는 게르망트 부인의 짜증에서 공작의 정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머잖아 공작부인은 그녀들에게 싫증이 났다. 바로 이 무렵, 때를 같이하여 공작과 다르파종 부인의 친밀함도 끝나가고 있었다. 또 다른 정부가 지평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