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빅토르 위고는 졸라만큼 사실적이지는 않지요?” 파름 대공비가 물었다. 졸라라는 이름에도 드 보트레이 씨의 얼굴 근육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장군의 반드레퓌스주의는 너무 뿌리 깊어서 굳이 그것을 표현하려 들 것도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 이런 화제를 꺼낼 때 그가 지키는 선량한 침묵은, 사제가 당신의 종교적 의무를 입에 올리지 않으려 조심할 때, 금융가가 자기가 좌우하는 회사에 투자하라고 권하지 않도록 삼갈 때, 힘센 사내가 어린 양처럼 온순하게 굴며 당신의 턱을 후려치지 않을 때 보이는 것과 똑같은 섬세함의 증거로서, 속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당신이 쥐리앙 드 라 그라비에르 제독의 친척이라는 걸 알아요.” 파름 대공비의 시녀인 드 바랑봉 부인이 은근히 공모하는 듯한 태도로 내게 속삭였다. 그녀는 훌륭하지만 소견이 좁은 여인으로, 지난날 공작의 어머니가 대공비를 위해 구해 준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때까지 내게 한마디도 건넨 적이 없었는데, 그 뒤로 나는 대공비의 타이름과 나 자신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 아카데미 회원인 제독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끝내 그녀의 머릿속에서 지워 낼 수 없었다. 그 제독은 내게 전혀 낯선 사람이었는데도 말이다. 파름 대공비의 시녀가 나를 쥐리앙 드 라 그라비에르 제독의 조카로 보기를 고집스레 그치지 않는 것은, 그 자체로는 아주 흔한 종류의 어리석음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저지른 그 오해는, 사교계가 한 사람의 이름에 써서 붙여 주는 꼬리표에 따라붙는, 더 사소하고 더 공들여진, 무의식적이거나 고의적인 온갖 다른 오해들의 정점에 놓인 한 사례일 뿐이었다. 나를 몹시 만나고 싶어 하던 게르망트가의 어떤 친구가, 그 이유로 내가 자기 사촌인 드 쇼스그로 부인과 아주 절친하기 때문이라고 댔던 일이 떠오른다. “매력적인 분이지요, 당신을 무척 좋아하고요.” 나는 드 쇼스그로 부인을 알지 못하니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다고, 꼼꼼히, 그러나 아무 소용 없이 우겼다. “그럼 그 언니를 아는 거겠지요. 결국 같은 얘기예요. 스코틀랜드에서 당신을 만났다던데요.” 나는 스코틀랜드에 가 본 적이 없었고, 정직한 탓에 이 사실을 상대에게 알려 주는 헛된 조심성을 부렸다. 나를 안다고 말한 것은 드 쇼스그로 부인 자신이었고, 처음의 어떤 혼동 탓에 그녀는 분명 그렇게 진심으로 믿었으니, 그때부터 그녀는 나를 볼 때마다 어김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드나드는 사교계가 바로 드 쇼스그로 부인이 드나드는 그 세계였으니, 내가 사양한 것은 앞뒤도 조리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쇼스그로 집안과 가깝다고 말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는 오해였지만, 사교적 관점에서는 내 위치와 맞먹는 것을 말하는 셈이었다. 당시 나처럼 어린 사람에게 사교적 위치라는 것을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러니 게르망트가의 이 친구가 나에 관해 온통 사실이 아닌 것만 늘어놓는다 해도 조금도 상관없었다. 그가 나에 대해 계속 품고 있는 관념 속에서, 그는 (세속적 관점에서) 나를 낮추지도 높이지도 않았으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직업 배우가 아닌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 대해 그릇된 관념을 품을 때,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부인과 벗이라고 상상하고, 우리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어느 이국 여행의 즐거운 여정에서 그 부인을 만났다고 전해질 때, 마치 우리가 무대에 오르기라도 하는 듯, 늘 같은 인물로 살아가는 권태가 한순간 걷힌다. 스스로 불어나면서도 해롭지 않은 오해들, 다만 드 파름 부인의 그 아둔한 시녀가 저질렀고 내 부인에도 불구하고 평생토록 계속 저지른 이 오해가 지닌 저 굽힐 줄 모르는 완고함만 없다면 말이다. 그녀는 내가 그 성가신 쥐리앙 드 라 그라비에르 제독의 친척이라는 믿음에 영영 뿌리를 박고 있었다. “저 여자는 머리가 그리 튼튼하지 못해요.” 공작이 내게 털어놓았다. “게다가 술을 너무 많이 들이켜서도 안 되고. 내 생각엔, 바쿠스의 기운이 살짝 돈 것 같소.” 사실 드 바랑봉 부인은 물밖에 마시지 않았으나, 공작은 자기가 즐겨 쓰는 비유의 표현을 펼칠 자리를 찾기 좋아했다. “하지만 졸라는 사실주의자가 아니에요, 마님, 시인이지요!”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그녀는 요 몇 해 사이에 읽은 비평문에서 영감을 끌어와 그것을 제 나름의 재능에 맞게 손질하고 있었다. 그때껏 이 재치의 목욕, 곧 자기를 위해 휘저어진, 그날 저녁 자기가 몸을 담그고 있는, 그리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제 건강에 각별히 좋을 그 목욕 속에서 기분 좋게 이리저리 부딪히며, 잇달아 말려 올랐다 부서지는 역설의 물결에 몸을 내맡기고 있던 파름 대공비는, 그 모든 물결 가운데 가장 거대한 이 물결 앞에서 뒤집힐까 겁이 나 화들짝 뛰어올랐다. 그리고 그녀는 이제 숨이 아주 넘어가는 듯 목이 멘 소리로 헐떡였다. “졸라가 시인이라니!” “그럼요.” 공작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숨넘어가는 이 모습에 넋을 잃은 채였다. “대공비께서도 그가 손대는 것마다 얼마나 크게 부풀리는지 눈치채셨겠지요. 그가 손대는 게 하필 무엇이냐고 물으실 테지만, 아이참, 그런 생각은 접어 두시고요! 아무튼 그는 그것을 어마어마한 무언가로 만들어 내요. 그의 것은 서사시적인 두엄 더미랍니다. 그는 하수구의 호메로스예요! 캉브론의 그 말을 찍어 내자면 대문자가 모자랄 지경이지요.” 그녀가 느끼기 시작한 극도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대공비는 매혹되었다. 이보다 더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 그녀는 게르망트 부인 댁의 이 신성한 만찬, 그토록 넉넉히 뿌려진 아티카의 소금으로 활기가 도는 이 만찬을, 쇤브룬 궁의 초대와도 바꾸지 않았으리라. 비록 그 초대야말로 그녀를 진정 우쭐하게 하는 단 하나였는데도 말이다. “그이는 그걸 대문자 C로 쓴답니다.” 다르파종 부인이 외쳤다. “대문자 M이겠지, 내 생각엔, 얘야.” 게르망트 부인이 대꾸하면서, 먼저 남편과 유쾌한 눈길을 주고받았는데 그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저런 얼간이가 다 있나?” “잠깐만요.” 게르망트 부인이 내게로 돌아서며, 다정하고 미소 띤 눈길을 내게 고정했다. 노련한 안주인답게 그녀는, 나를 특히 흥미롭게 하는 그 화가에 대한 자기 나름의 지식을 뽐내고 싶었고, 또 내가 원한다면 내 지식을 펼쳐 보일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다. “잠깐만요.” 그녀가 깃털 부채를 살랑살랑 부치며 나를 채근했다. 이 순간 그녀는 접대의 의무를 남김없이 다하고 있음을 몹시 의식하고 있었고, 그중 어느 하나도 소홀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하인들에게도 아스파라거스와 무슬린 소스를 내게 더 갖다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가만있자, 졸라가 실은 엘스티르에 관한 글을 한 편 썼던 것 같아요. 아까 당신이 그림을 보고 있던 그 화가 말이에요. 그이의 작품 중에 내가 마음에 두는 건 정말 그것들뿐이지만요.” 그녀가 말을 맺었다. 사실 그녀는 엘스티르의 작품을 몹시 싫어했지만, 제 집 안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에서든 남다른 가치를 발견하곤 했다. 나는 게르망트 씨에게, 군중을 그린 그림 속에 등장하는 키 큰 모자를 쓴 신사의 이름을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사람이, 게르망트가 역시 소장해 다른 그림 곁에 걸어 둔 초상화 속 인물과 동일 인물임을 알아보았는데, 두 그림 모두 엘스티르의 개성이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그가 마네에게서 어느 정도 영감을 얻던, 대략 같은 초기 시기의 것이었다. “이런, 그럼요.” 그가 대답했다. “제법 이름난 자에다 제 분야에선 바보도 아니라는 건 알지만, 나는 통 이름을 기억하질 못해요. 혀끝에서 뱅뱅 도는데, 무슈… 무슈… 아, 뭐, 아무래도 좋소,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구려. 스완이라면 알려 줄 수 있을 거요, 게르망트 부인더러 그 물건들을 죄다 사게 한 게 바로 그자니까. 이 사람은 늘 너무 마음이 좋아서, 부탁을 거절하면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겁을 내지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자가 우리한테 쓸모없는 것들을 잔뜩 떠안긴 것 같소. 내가 말해 줄 수 있는 건, 당신이 말하는 그 신사가 엘스티르 씨에게는 일종의 마이케나스 노릇을 해 왔다는 거요. 그자가 그를 세상에 내보냈고, 그림을 주문해 여러 번 궁지에서 건져 주었지. 이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답시고, 그런 걸 경의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 엘스티르는 그자를 저 군중 속에 우두커니 세워 그렸는데, 나들이옷 차림새의 그 모습이 유난히 묘한 느낌을 자아내지. 그자가 제 나름으로는 거물일지 몰라도, 실크해트를 쓸 때와 장소가 따로 있다는 건 도무지 모르는 게 분명해. 그런 걸 머리에 얹고, 모자도 안 쓴 처녀들 사이에 끼여 있으니, 흥청망청 놀러 나온 시골의 좀팽이 변호사처럼 보인단 말이오. 한데 말해 보시오, 당신은 그의 그림에 아주 푹 빠진 모양이구려. 진작 알았더라면, 나도 그 방면을 제대로 공부해 두었을 텐데. 하기야 앵그르의 샘이나 폴 들라로슈의 탑 속의 왕자들을 놓고 그러듯이, 엘스티르 씨 작품의 의미를 두고 머리를 싸맬 필요는 없지만 말이오. 그의 작품에서 눈여겨보게 되는 건, 관찰이 예리하고, 재미있고, 파리적이라는 것, 그러고는 다음 것으로 넘어가면 그만이지. 그런 걸 보는 데는 전문가일 필요도 없소. 물론 그것들이 한낱 밑그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내 보기엔 그가 거기에 충분히 공을 들이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스완은 우리더러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을 꼭 사야 한다고 우겼소. 실제로 그건 며칠 동안 집에 놓여 있었지. 그림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없고, 지금 당신이 먹고 있는 것과 똑같은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뿐이었소. 하지만 나로서는 엘스티르 씨의 아스파라거스를 도저히 삼킬 수 없었다고 말해야겠구려. 그자는 그걸 삼백 프랑에 달라고 했소. 아스파라거스 한 다발에 삼백 프랑이라니. 아무리 철이 지났대도 그것들 값어치는 기껏해야 일 루이짜리요. 좀 지나치다 싶었지. 게다가 그림 속에 실제 사람들까지 집어넣으면, 그자에게는 어딘가 상스럽고 어딘가 해로운 데가 있어 도무지 내 마음에 들지 않소. 당신 같은 섬세한 정신, 뛰어난 두뇌가 그런 걸 흠모하는 걸 보니 놀랍구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 바쟁.” 공작부인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제 방에 놓인 것을 누가 헐뜯는 소리를 듣기 싫어했다. “엘스티르의 그림에 남다른 데가 하나도 없다는 건 결코 인정 못 해요. 좋으면 갖고 싫으면 마는 거지요. 하지만 늘 재능이 모자란 건 아니에요. 그리고 내가 산 것들이 유난히 아름답다는 건 당신도 인정해야 할걸요.” “글쎄, 오리안, 그런 류의 것이라면 나는 우리가 수채화 전시회에서 본 비베르 씨의 그 자그마한 습작이 천 배는 더 낫겠소. 대단할 것 없다면 없고, 손바닥에 올려놓을 만한 크기지만, 그자가 속속들이 영리하다는 게 눈에 보인단 말이오. 씻지도 않은 허수아비 같은 선교사가, 제 강아지에게 재주를 부리게 하는 매끈한 고위 성직자 앞에 서 있는데, 그야말로 정교함의 완벽한 작은 시 한 편이고, 실은 정말 깊은 데까지 파고든단 말이지.” “당신은 엘스티르 씨를 아는 것 같던데요.” 공작부인이 내게 말을 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꽤 유쾌한 이예요.” “머리는 좋지.” 공작이 말했다. “그자와 얘기를 나눠 보면, 그림이 어쩌면 그리 저속한가 놀랄 지경이오.” “머리가 좋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상당히 영리해요.” 공작부인이, 제가 하는 말을 잘 안다는 사람다운 자신에 찬 비평가의 어조로 말했다. “그이가 언젠가 당신 초상화를 그리다 만 적이 있지 않아요, 오리안?” 파름 대공비가 물었다. “네, 새우 살빛으로요.” 게르망트 부인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걸로 그이 이름이 후세에 남지는 못할 거예요. 끔찍한 물건이거든요. 바쟁은 그걸 없애 버리고 싶어 했지요.” 이 마지막 말은 게르망트 부인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다른 때에는 그 그림에 대한 그녀의 평이 달라졌다. “나는 그이 그림을 좋아하지 않지만, 언젠가 내 초상화만은 잘 그려 주었어요.” 앞의 평은 대개 공작부인에게 그 초상화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고, 뒤의 평은 그것을 입에 올리지 않아 그녀가 그 존재를 알려 주고 싶어 하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앞의 것은 교태에서, 뒤의 것은 허영에서 우러난 말이었다. “당신 초상화를 끔찍하게 그리다니. 아니, 그렇다면 그건 초상화가 아니라 거짓이지요. 나는 붓의 어느 쪽이 어느 쪽인지도 모르지만, 내가 당신을 그린다면, 그저 보이는 대로 옮겨 놓기만 해도 틀림없이 걸작을 만들어 낼 거예요.” 파름 대공비가 순진하게 말했다. “그이는 아마 내가 나를 보는 대로, 아무 매력도 없이 나를 보는 거겠지요.”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우수 어리고 겸손하며 어리광 부리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표정이야말로 엘스티르가 그린 모습과 자기가 달라 보이게 하는 데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그녀는 여겼다. “그 초상화라면 드 갈라르동 부인 마음에 들 만하겠구려.” 공작이 말했다. “그 사람이 그림을 아무것도 몰라서요?” 파름 대공비가 물었다. 그녀는 게르망트 부인이 제 사촌을 한없이 경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아주 좋은 사람이잖아요?” 공작이 몹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바쟁, 대공비께서 당신을 놀리시는 게 안 보여요?” (대공비는 그런 짓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저 갈라르도네트가 케케묵은 독종이라는 건 대공비께서도 당신만큼이나 잘 아셔요.” 게르망트 부인이 말을 이었다. 대체로 이런 옛 표현들로 한정되어 있는 그녀의 어휘는, 팜필의 맛깔스러운 책에서나 만날 수 있을 뿐 실생활에서는 아주 드물어진 그런 요리들만큼이나 감칠맛이 있었다. 젤리도, 버터도, 육즙도, 메추라기도 죄다 진짜이고 어떤 불순물도 섞이지 않았으며, 소금조차 브르타뉴의 염전에서 특별히 가져오는 그런 요리 말이다. 그녀의 억양에서, 그녀가 고르는 말에서, 공작부인의 대화의 바탕이 곧장 게르망트에서 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점에서 공작부인은, 그토록 많은 새로운 관념과 표현의 먹이가 된 조카 생루와는 깊이 달랐다. 칸트의 관념과 보들레르의 갈망으로 정신이 어지러운 사람이 앙리 4세의 정묘한 프랑스어를 쓰기란 어려운 법이니, 이는 공작부인의 언어가 지닌 바로 그 순수함이 곧 한계의 표시라는 것, 그녀에게서는 지성도 감수성도 그 어떤 혁신에도 물들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뜻했다. 여기서도 게르망트 부인의 정신은, 바로 그것이 배제한 것(그것이야말로 내 사유의 내용이었다) 때문에, 그리고 그 배제 덕분에 지켜 낼 수 있었던 모든 것, 곧 지치도록 생각해야 할 필요도, 도덕적 불안이나 신경증적 동요도 일그러뜨린 적 없는 저 유연한 육체의 매혹적인 활기 때문에 나를 끌어당겼다. 나보다 훨씬 앞선 형성 과정을 지닌 그녀의 정신은, 내게는 바닷가를 따라 줄지어 가던 작은 무리의 처녀들이 내게 안겨 준 것과 맞먹는 것이었다. 게르망트 부인은, 타고난 예의와 남의 지적 가치에 바치는 존중으로 길들여지고 억눌린 채, 콩브레 근방 어느 귀족 집안의 잔인한 계집아이가 지녔을 온갖 활력과 매력을 내게 안겨 주었다. 어릴 적부터 말안장 위에서 자라며 고양이를 괴롭히고 토끼의 눈알을 후벼 냈으며, 비록 정절의 표상으로 남기는 했으나, 이제는 꽤 여러 해 전 일이 되었을 그 시절이라면 사강 대공의 더없이 빛나는 정부가 되었을 법도 한 그런 계집아이 말이다. 다만 그녀는, 내가 그녀에게서 찾던 것, 곧 그 유서 깊은 이름의 매력과, 내가 그녀에게서 발견한 그 매력의 아주 작은 조각, 게르망트에서 살아남은 어떤 촌스러운 잔재를 도무지 깨닫지 못했다. 우리 관계는, 내 경의가 그녀 스스로 믿고 있는 비교적 우월한 여인을 향하는 대신, 그와 똑같이 평범하고 똑같은 무의식적 매력을 풍기는 다른 어떤 여인에게로 돌려지는 순간 어김없이 드러나고 말 어떤 오해 위에 세워져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오해, 나 같은 젊은 몽상가와 사교계 여인 사이에는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인 오해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아직 제 상상력의 본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연극에서든 여행에서든 실은 사랑에서든, 사람들에게서 맛보게끔 되어 있는 저 피할 수 없는 환멸의 제 몫을 아직 치르지 못한 동안은, 그를 깊이 뒤흔드는 오해였다. 게르망트 씨가 (엘스티르의 아스파라거스에 이어, financière 닭 요리 뒤에 돌려진 아스파라거스에 이어) 노지에서 자란 초록 아스파라거스, 곧 E. 드 클레르몽토네르라 서명하는 그 매력적인 작가가 참으로 재치 있게 말했듯 “제 자매들이 지닌 그 인상적인 뻣뻣함이 없는” 아스파라거스는 달걀과 함께 먹어야 한다고 단언하자, “누군가에게 약이 누군가에겐 독이라고들 하지 않소.” 드 브레오테 씨가 대꾸했다. “중국 광둥 지방에서는, 완전히 썩은 멧새 알 요리야말로 손님상에 올릴 수 있는 최고의 진미라오.” 르뷔 데 되 몽드에 실린 모르몬교도에 관한 논문의 필자인 드 브레오테 씨는, 오로지 최상류 귀족 사회에만 드나들었으되 그 안에서도 지성으로 어느 정도 이름난 집에만 발을 들였으므로, 어느 부인의 집에 그가 조금이라도 규칙적으로 드나든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부인이 “살롱”을 거느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사교계를 몹시 싫어하는 척했고, 자기가 드나드는 공작부인들에게 차례차례, 자기가 찾아오는 것은 오로지 그녀의 재치와 아름다움 때문이라고 다짐해 두었다. 그들은 모두 그 말을 믿었다. 죽을 맛으로 마지못해 파름 대공비의 큰 야회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을 때면, 그는 용기를 북돋우려 그 부인들을 죄다 불러 동행시켰고, 그리하여 늘 가까운 무리 한가운데서만 움직이는 듯 보였다. 지성인이라는 자기 평판이 사교적 성공보다 오래 살아남도록, 그는 게르망트 특유의 어떤 처세훈을 좇아, 무도회 철이 한창일 때 멋쟁이 부인들을 데리고 긴 학술 탐사에 나서곤 했으며, 속물이어서 아직 뚜렷한 지위도 없는 어떤 여자가 여기저기 드나들기 시작하면, 그는 그녀를 알기를, 그녀에게 소개받기를 거부하는 데 사나운 고집을 부렸다. 속물에 대한 그의 증오는 실은 제 속물근성에서 파생된 것이었으나, 그 덕에 어수룩한 자들은(바꿔 말하면 모든 사람은) 그가 속물근성에서 벗어나 있다고 믿게 되었다. “바발은 언제나 뭐든지 다 안다니까요.” 게르망트 공작부인이 외쳤다. “달걀 장수가 정말로 썩은 달걀, 그 혜성이 나타난 해의 달걀을 틀림없이 대 주는 나라라니, 참 멋지겠어요. 거기에 버터 바른 빵을 찍어 먹는 내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하기야 마들렌 고모 댁에서도” (빌파리지 부인 댁이었다) “똑같은 걸 얻을 수 있지요. 거기선 달걀을 포함해 뭐든 다 썩은 상태로 나오니까요.” 그러자 다르파종 부인이 항의하니, “아니, 얘 필리야, 너도 나만큼이나 잘 알잖니. 달걀 속에 병아리가 다 비쳐 보인다니까. 내가 이해 못 하는 건, 그것들이 어떻게 밖으로 안 굴러 나오느냐는 거야. 거기서 나오는 건 오믈렛이 아니라 닭장이라고. 어제 그 집 만찬에 안 온 건 참 잘한 일이야, 석탄산에 조린 가자미가 나왔거든! 정말이지, 그건 식탁이 아니라 차라리 수술대에 훨씬 가까웠어. 정말이지 노르푸아는 충성을 영웅적인 데까지 밀어붙이더구나. 글쎄 더 달라고까지 하지 뭐야!” “그 집 만찬에서, 저 사람이 블로크 씨를 몰아세우던 그때 당신을 본 것 같은데” (게르망트 씨는, 아마 유대식 이름에 더 이국적인 울림을 주려는 듯, 블로크의 ch를 k처럼이 아니라 독일어 hoch에서처럼 발음했다) “그자가 어떤 시읜가” (시인) “무언가를 두고 숭고하다고 말했을 때 말이오. 샤텔로가 블로크 씨의 정강이를 걷어차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그 친구는 도무지 못 알아듣고 내 조카의 발길질이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자를 겨눈 거라고 여겼다오.” (이 대목에서 게르망트 씨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자는 그렇게 ‘숭고하다’는 말을 여기저기 아무 데나 내던져 우리 고모를 짜증나게 하는 줄도 몰랐소. 요컨대, 할 말은 하고야 마는 마들렌 고모가 그자에게 대뜸 이러셨지. ‘그래요, 선생, 그럼 드 보쉬에 씨한테는 대체 어떤 형용사를 남겨 두시려고?’ ” (게르망트 씨는 유명한 이름을 입에 올릴 때 “무슈”라는 경칭과 ‘드’ 같은 귀족 소사를 붙이는 것이 지극히 “구식”이라고 여겼다.) “그 말에 그자는 아주 코가 납작해졌지.” “그래서 그 블로크 씨는 뭐라고 대답했어요?” 게르망트 부인이 무심한 어조로 물었다. 마침 독창적인 생각이 바닥난 그녀는 남편의 게르만식 발음을 흉내 내야겠다고 여겼던 것이다. “아! 장담하는데, 블로크 씨는 더는 기다리지도 않았소, 아직도 내빼는 중일걸.” “그래요, 그날 저녁 거기서 당신을 본 게 아주 또렷이 기억나요.” 게르망트 부인이, 자기 입에서 나온 이 회상 속에 나로서는 무척 우쭐할 만한 무언가가 담겨 있기라도 한 듯 힘주어 말했다. “우리 고모 댁은 언제나 그렇게 흥미롭지요. 고모가 마지막으로 연 야회, 그야 물론 내가 당신을 만난 그날인데, 우리가 앉아 있던 곳을 지나간 그 노신사가 프랑수아 코페가 아니었느냐고 당신한테 물어보려던 참이었어요. 당신은 누가 누군지 다 알 테니까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시인들 및 시와 맺은 나의 인연을 진심으로 부러워해서이기도 했고, 또 나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문학에 그토록 밝은 젊은이를 다른 손님들 눈에 더 나은 자리에 앉히고 싶어서이기도 했다. 나는 공작부인에게, 빌파리지 부인의 야회에서 어떤 명사도 눈여겨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저런!” 그녀가, 문인에 대한 존경과 사교계에 대한 경멸이 말로 하는 것보다, 어쩌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얄팍했음을 드러내는 당혹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저런! 거기 이름난 작가가 하나도 없었다고요! 놀라운걸요! 아니, 나는 온갖 어처구니없는 사람들을 다 봤는데!” 나는 문제의 그날 저녁을, 그 야회에서 벌어진 지극히 사소한 한 사건 때문에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빌파리지 부인이 블로크를 알퐁스 드 로칠드 부인에게 소개했는데, 내 친구는 그 이름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가 조금 정신 나간 늙은 영국 부인과 이야기하고 있는 줄 알고 그 유서 깊은 미인의 수다스러운 말에 그저 단음절로만 대꾸하고 있었다. 그때 빌파리지 부인이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면서 이번에는 아주 또렷이 말했다. “알퐁스 드 로칠드 남작부인이세요.” 그러자 블로크의 혈관 속으로, 나누어 따로따로 흘려보내는 편이 더 현명했을 수백만금과 사회적 지체에 관한 그토록 많은 관념이 느닷없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말하자면 그는 심장과 뇌가 동시에 한순간 멎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 정겨운 노부인 앞에서 큰 소리로 외치고 말았다. “진작 알았더라면!” 그 어리석음 때문에 그는 그 뒤로 적어도 일주일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말은 그리 흥미로운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것을, 이 세상에서 때로 사람들은 남다른 감정에 짓눌릴 때 마음속에 든 것을 그대로 내뱉기도 한다는 증거로 기억해 두었다. “내 생각에 빌파리지 부인은 아주… 정숙한 분은 아닌 것 같아요.” 파름 대공비가 말했다. 그녀는 지체 높은 사람들이 공작부인의 고모를 찾지 않는다는 것과, 방금 공작부인이 한 말로 미루어 그 부인에 대해 마음 놓고 이야기해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게르망트 부인이 이 비평을 달가워하지 않는 듯 보이자, 그녀는 얼른 덧붙였다. “하기야 물론, 그만한 경지에 이른 지성은 뭐든 다 용서받게 하지요.” “하지만 대공비께서도 우리 고모를 두고 다들 하는 것과 똑같이 보시는군요.” 공작부인이 대꾸했다. “그건 정말이지 큰 오해예요. 바로 어제 메메가 내게 하던 말이 그거였어요.”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회상이 그녀의 눈에 어렸다. 나는 드 샤를뤼스 씨가 그녀에게 내 초대를 취소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가 로베르를 보내 내게 그녀의 집에 가지 말라고 청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공작이 제 동생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의 뺨을 물들였던 그 홍조 역시 내게는 마찬가지로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같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리라는 인상을 받았다. “가여운 우리 고모, 고모는 언제까지나 구식 부인, 반짝이는 재치와 걷잡을 수 없는 정열을 지닌 부인이라는 평판을 달고 다니겠지요. 하지만 정말이지 파리에 그토록 부르주아답고, 착실하고, 평범한 정신의 소유자도 없어요. 고모는 예술의 후원자로 후세에 남을 텐데, 그 말인즉 한때 어느 위대한 화가의 정부였다는 뜻이지요. 하기야 그 화가는 그림이 무엇인지 끝내 고모에게 이해시키지 못했지만요. 그리고 사생활로 말하자면, 고모는 타락한 여자이기는커녕, 어찌나 결혼에 딱 맞게 생겨먹었고 요람에서부터 어찌나 살림꾼 기질이던지, 남편을 붙들어 두는 데는 실패했으나, 하기야 그 남편이란 게 상것이었지만, 어떤 연애든 신성한 혼인이나 다름없이 진지하게, 똑같은 예민함과 똑같은 다툼과 똑같은 정절로 대하지 않은 적이 없답니다. 그런 걸 보면, 그런 관계야말로 흔히 가장 진실하지요. 실은 위로받지 못하는 남편보다 위로받지 못하는 연인이 더 많은 법이거든요.” “하지만 오리안, 방금 당신이 말하던 시동생 팔라메드의 경우를 보자면요. 세상 어떤 정부도 그 가엾은 드 샤를뤼스 부인이 애도받은 것만큼 애도받기를 꿈조차 꿀 수 없을 거예요.” “아!” 공작부인이 대답했다. “대공비께서는 제가 그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것을 허락해 주셔야겠어요. 사람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애도받기를 바라는 건 아니고, 저마다 제 나름의 취향이 있으니까요.” “그래도 그이는 부인이 죽은 뒤 그녀를 아예 신처럼 떠받들었잖아요. 하기야 사람들은 산 사람에게는 하지 않았을 일을 죽은 사람에게는 이따금 하기도 하지요.” “우선,” 게르망트 부인이, 놀리려는 속셈과는 어긋나는 꿈결 같은 어조로 되받았다. “우리는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는 가잖아요, 산 사람을 위해선 결코 안 하는 일이지요!” 게르망트 씨는, 공작부인의 재치에 웃음을 터뜨리라고 부추기기라도 하듯 드 브레오테 씨에게 짓궂은 눈길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솔직히 인정하는데,” 게르망트 부인이 말을 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남자에게서 애도받고 싶은 방식은 우리 시동생이 택한 그런 방식은 아닐 거예요.” 공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아내가 경솔한 판단을 입에 올리는 것을, 특히 드 샤를뤼스 씨에 관해 그러는 것을 듣기 싫어했다. “당신은 참 까다롭구려. 그 사람의 슬픔은 누구에게나 본보기가 되었소.” 그가 딱딱하게 그녀를 나무랐다. 그러나 공작부인은 남편을 다룰 때, 맹수 조련사가, 혹은 미치광이와 함께 살면서 그를 화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는 그런 종류의 대담함을 지니고 있었다. “아, 좋아요, 당신 좋으실 대로. 그이가 본보기가 되는 건 맞아요, 아니라고 한 적 없어요, 날마다 묘지에 가서 오찬에 몇 사람이나 불렀는지 부인에게 얘기하고, 그녀를 엄청나게 그리워하지요, 다만 사촌이나, 할머니나, 누이를 애도하듯 그러는 거예요. 그건 남편의 슬픔이 아니에요. 하기야 그 두 사람은 성인 같은 부부였으니, 그 점이 이 모든 걸 좀 유별나게 만들긴 하지요.” 아내의 수다에 격분한 게르망트 씨는, 이미 잔뜩 벼른 두 눈을 무시무시하게 꼼짝 않고 그녀에게 고정했다. “가여운 메메를 헐뜯을 생각은 없어요, 그이는 오늘 저녁엔 못 왔지만요.” 공작부인이 말을 이었다. “그이만 한 사람이 없다는 건 얼마든지 인정해요, 사랑스러운 이지요. 여느 남자들에게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섬세함, 마음의 따뜻함을 지녔어요. 그이는 여자의 마음을 지녔다니까요, 메메는!” “당신 말은 터무니없소.” 게르망트 씨가 날카롭게 말을 잘랐다. “메메에게 여자 같은 데라곤 하나도 없어, 나는 그이만큼 사내다운 사람을 알지 못하오.” “그렇다고 그이가 조금이라도 여자 같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적어도 내가 하는 말을 좀 알아들으려는 수고는 해 주세요.” 공작부인이 되받았다. “누가 제 동생 얘기만 꺼내면 늘 저런다니까요.” 그녀가 파름 대공비에게로 돌아서며 덧붙였다. “참 보기 좋은걸요, 듣기에도 흐뭇하고요. 서로 아끼는 두 형제만큼 좋은 것도 없지요.” 대공비가, 훨씬 지체 낮은 사람이라도 했을 법한 말로 대답했다. 태생으로는 대공가에 속하면서 동시에 정신으로는 지극히 서민적인 부류에 딸려 있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