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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브레 ⑨

1권 · 콩브레

“아니, 나는 그들을 모르네.” 그가 말했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할 것이 그토록 적은 그런 답, 이토록 단순한 정보를 그에 어울리는 자연스럽고 담담한 어조로 내놓는 대신, 그는 그것을 한 마디 한 마디에 따로따로 힘을 주어 낭송하듯 말했다.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고개를 숙인 채, 한편으로는 도무지 있을 법하지 않은 진술을 믿게 하려고 사람이 싣는 그 격정을 담아(마치 그가 게르망트가를 모른다는 사실이 오직 어떤 기묘한 운명의 우연 탓일 수밖에 없다는 듯),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괴로운 처지를 잠자코 덮어 둘 수 없어 차라리 그것을 소리 높여 선포하기로 하는 사람의 강조를 실어서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지금 하는 고백이 조금도 거북하지 않고 오히려 쉽고 유쾌하며 저절로 우러나온 것임을, 문제의 그 처지, 곧 게르망트 집안과의 교류가 없다는 그 사정이야말로 억지로 떠맡겨진 것이 아니라 실은 르그랑댕 자신이 일부러 꾀한 것이며, 어떤 집안의 전통이나 도덕적 원칙, 혹은 그들과 사귀는 것을 명백히 금하는 어떤 신비한 서약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음을 듣는 이에게 믿게 하려 했다.

“아니.” 그가 말을 이으며, 그 말이 나온 어조를 자기 말로 풀어 설명했다. “아니, 나는 그들을 모르네. 알고 싶었던 적도 없어. 나는 늘 완전한 독립을 지키는 것을 신조로 삼아 왔지. 그대도 알다시피, 속마음으로 나는 얼마쯤 급진파라네. 사람들은 늘 나를 두고, 게르망트에 가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느니, 그러다 보면 예의 없고 촌스러운, 늙은 곰처럼 보인다느니 잔소리를 하지. 하지만 그런 평판 따위로는 나를 겁줄 수 없어. 너무나 맞는 말이니까! 이제 나는 진심으로, 이 세상에서 성당 몇 채와, 두세 권의 책과, 어쩌면 그보다 조금 더 많은 그림 몇 점, 그리고 그대 것과 같은 싱그러운 젊음의 바람이 내 늙은 눈으로는 더는 가려낼 수 없는 꽃들의 향기를 실어 콧속으로 보내 줄 때의 달빛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네.”

나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집에 가지 않으려고 왜 굳이 제 독립에 매달려야 하는지, 또 그것이 어떻게 사람을 야만인이나 곰처럼 보이게 하는지 그다지 또렷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이해한 것은 이것이었으니, 르그랑댕이 자기는 오직 성당과 달빛과 젊음만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는 온전히 진실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시골 저택에 사는 사람들 또한 사랑했고, 그것도 아주 많이 사랑했으며, 그들과 함께 있을 때 그들의 노여움을 살까 몹시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 벗들 가운데 중산층 사람들, 변호사나 주식 중개인 집안 사람들도 끼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결코 감히 내보이지 못했다. 정 알아야겠다면, 그는 차라리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자기 귀에 닿지 않는 곳에서 그것이 드러나기를, 그리하여 (그래야 한다면) 자기가 궐석으로 유죄 판결을 받기를 바랐다. 한마디로 그는 속물이었다. 물론 그는 우리 식구와 내가 그토록 우러르던 그 시적인 언어로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결코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게르망트 집안을 아십니까?” 하고 물으면, 말꾼 르그랑댕은 “아니, 나는 그들을 알고 싶었던 적이 없네” 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말꾼은 이제 또 다른 르그랑댕에게 예속되어 있었으니, 이 또 다른 르그랑댕을 그는 제 가슴속에 조심스레 숨겨 두고 결코 일부러 내보이려 하지 않았다. 이 다른 르그랑댕은 우리의 르그랑댕과 그의 속물근성에 관한 이야기를, 그의 평판을 영영 망쳐 놓을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다른 르그랑댕은, 그 상처받은 눈빛으로, 그 굳어 버린 미소로, 그 몇 마디를 내뱉는 어조의 지나친 엄숙함으로, 우리의 르그랑댕이 속물근성의 성 세바스티아누스처럼 순식간에 꿰뚫려 병들게 한 그 수천의 화살로, 이미 내게 이렇게 답한 뒤였다.

“아아, 그대가 나를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아니, 나는 게르망트 집안을 모르네. 내 삶의 그 크나큰 슬픔을 일깨우지 말아 주게.” 그리고 이 다른 르그랑댕, 이 억누를 수 없고 지배적이며 독단적인 르그랑댕은, 설령 우리 르그랑댕의 그 매혹적인 어휘는 없을지언정, 이른바 “반사 작용”이라 불리는 것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는 데는 한없이 더 재빨랐다. 그러니 말꾼 르그랑댕이 그를 침묵시키려 들 때면 그는 이미 말을 마친 뒤였고, 우리 벗으로서는 자기 또 다른 자아의 폭로가 남겼을 나쁜 인상을 한탄해 봐야 소용이 없었으니,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을 누그러뜨리려 애쓰는 일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르그랑댕 가 속물들을 성토할 때 진심이 아니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적어도 제가 아는 한으로는) 자기 또한 속물이라는 것을 알 수 없었으니, 우리가 참으로 잘 아는 것은 오직 남의 정념뿐이며, 우리 자신의 정념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은 남들이 우리에게 보여 준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게는 그것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상상을 거쳐서만 작용하는데, 상상은 우리의 실제적이고 일차적인 동기를 그보다 덜 노골적이고 그래서 더 점잖은 다른, 이차적인 동기로 바꿔치기한다. 르그랑댕의 속물근성은 결코 그를 공작부인을 공작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즐겨 찾게끔 몰아간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그의 상상을 부추겨, 르그랑댕의 눈에 그 공작부인이 온갖 우아함을 갖춘 이로 보이게 만들었다. 그는 그 공작부인에게 이끌리면서도, 그동안 내내 자기는 그녀의 정신과 그 밖의 미덕들, 저 비루한 속물의 무리로서는 결코 알아볼 수 없는 그 미덕들의 매력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오직 그의 동류인 속물들만이 그가 자기네 축에 든다는 것을 알았으니, 그들은 그 사이에 낀 상상의 노고를 헤아릴 줄 몰라, 르그랑댕의 사교 활동과 그 일차적 원인을 나란히 붙여 놓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 집에서는 우리도 이제 르그랑댕 에 대해 아무런 환상도 품지 않게 되었고, 그와의 관계도 훨씬 서먹해졌다. 어머니는 그가 그토록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 계속 부르던 속물근성의 죄를 현장에서 붙잡을 때마다 무척 즐거워했다. 아버지로 말하자면, 르그랑댕의 그 잘난 체를 그처럼 가볍게, 그처럼 초연하게 넘기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어느 해, 나를 할머니와 함께 발베크로 보내 긴 여름휴가를 지내게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꼭 르그랑댕에게 네가 발베크에 간다고 말해서, 그가 제 누이에게 소개장을 써 주는지 봐야겠구나. 그자는 제 누이가 그곳에서 일 마일 거리에 산다고 우리에게 말한 것도 아마 잊었을 게다.”

바닷가에 가면 아침부터 밤까지 해변에 나가 짠 바닷바람을 맛보아야 하고, 방문이며 잔치며 나들이 따위는 마땅히 바닷바람의 몫이어야 할 시간을 그만큼 훔치는 것이니 그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된다고 여기던 할머니는, 부디 우리 계획을 르그랑댕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 아버지에게 청했다. 벌써 마음의 눈에는, 우리가 마침 고기잡이를 나서려는 참에 그의 누이 캉브르메르 부인이 우리 호텔 문 앞에서 마차를 내려, 오후 내내 방 안에 붙들려 그녀를 접대하게 만드는 광경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걱정을 비웃어 넘겼으니, 스스로도 그 위험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으며, 르그랑댕이 우리를 제 누이와 알게 해 주려고 유난히 안달할 리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 우리 가운데 누구도 발베크 이야기를 꺼낼 필요가 없었으니, 우리가 그 지방을 찾을 생각이 애초에 있었다는 것을 조금도 짐작하지 못한 채, 어느 날 저녁 우리가 비본 강가를 거니는 그와 마주쳤을 때, 청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덫으로 걸어 들어온 이가 바로 르그랑댕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 구름에 물든 저 빛깔들, 제비꽃빛과 파랑들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벗이여?” 그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특히 저 파랑은 대기의 것이라기보다 훨씬 더 꽃 같은, 시네라리아의 파랑이라, 하늘에서 보게 되니 놀랍구려. 그리고 저기 저 자그마한 분홍 구름은, 어느 꽃, 이를테면 카네이션이나 수국의 빛깔 그대로가 아니오? 노르망디가 브르타뉴로 스며드는 영국 해협의 기슭이 아니고서는, 아마 어디서도 나는 저 구름 속 식물 왕국이라 할 만한 것의 이토록 풍성한 예를 찾지 못했을 게요. 저 아래, 발베크 가까이, 아직도 저리 사람 손 타지 않은 그 모든 고장들 사이에, 매혹적으로 고요한 작은 만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는 오주 계곡의 저 붉고 금빛인 석양조차(그렇다고 내가 그 석양을 결코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흔하고 하찮게 여겨진다오. 그 축축하고 부드러운 대기 속에서는 이 천상의 꽃밭들이 저녁이면 잠깐 사이에 비할 데 없이 곱게 피어나, 흔히 몇 시간이나 스러지지 않고 이어지니 말이오. 어떤 것들은 이내 잎을 떨구는데, 그러면 그 헤아릴 수 없는 꽃잎들이 유황빛 노랑과 장밋빛 붉음으로 흩뿌려진 하늘을 보는 것이 한결 더 아름답다오. 사람들이 오팔 만이라 부르는 그 만에서는, 금빛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안드로메다처럼, 둘레를 에워싼 해안의 저 무서운 바위들에, 난파선의 수효로 이름난 저 음산한 기슭에 묶여 있는 까닭에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니, 그곳에서는 겨울마다 숱한 씩씩한 배가 바다의 재앙에 제물이 된다오. 발베크! 우리 땅 밑에 깔린 지질의 뼈대에서 가장 오래된 뼈, 참된 아르모르, 바다, 땅의 끝, 아나톨 프랑스가, 그 저작은 우리 젊은 벗이 꼭 읽어야 마땅한 어느 마술사인데, 마치 그것이 참으로 『오디세이아』 속 킴메르인의 땅이기라도 한 듯, 그 영원한 안개 밑에서 그토록 잘 그려낸 저 저주받은 고장이지. 발베크. 그렇소, 이제 그곳에 호텔들을 짓고 있소이다, 도무지 바꿀 수 없는 그 오래되고 매혹적인 흙 위에 그것들을 얹어 놓으며 말이오. 저 아래, 그토록 원시적이고 그토록 넋을 앗는 고장으로 단숨에 발을 들일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그렇습니까! 그럼 발베크에 아는 사람이 있으신지요?” 아버지가 물었다. “이 아이가 마침 두어 달 그곳에서 제 할머니와, 어쩌면 제 아내와도 함께 지낼 참인데요.”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던 순간에 그 물음에 허를 찔린 르그랑댕은, 시선을 옆으로 돌릴 수 없어, 슬프게 미소 지으면서, 물어 온 이의 눈에 그것을 점점 더 강하게 모아, 다정하고 솔직하며 상대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 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색으로, 마침내 아버지의 머리통을 유리알이라도 되는 양 꿰뚫고서, 그 순간 그 너머 저 멀리, 자신에게 정신적 알리바이를 대 줄 알록달록한 구름 하나를 보는 듯했으니, 그리하여 그는 발베크에 아는 이가 있느냐는 물음을 받았을 바로 그때 자기는 딴생각에 잠겨 그 물음을 듣지 못했다는 논리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대개 이런 술책은 물은 이로 하여금 “아니,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하고 되묻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나 캐묻기 좋아하고, 언짢아하고, 짓궂은 아버지는 되풀이했다. “그럼 그 근방에 벗들이 있으셔서 발베크를 그토록 잘 아시는 겁니까?”

마지막 필사의 안간힘으로, 미소 짓는 르그랑댕의 눈길은 그 다정함과 아련함과 순진함과 멍함의 끝까지 안간힘을 다해 나아갔다. 그러다 이제는 대답하는 것 말고 남은 길이 없음을 필경 깨닫고서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온 세상 어디에나 벗이 있다오,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는 나무들의 무리가, 저를 조금도 가엾이 여기지 않는 매정한 하늘을 향해 가련한 고집으로 함께 탄원을 올리려 모여 선 곳이면 어디에나.”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올시다.” 나무처럼 고집스럽고 하늘처럼 매정한 아버지가 말을 가로챘다. “저는, 혹여 제 장모님께 무슨 일이 생겨서, 저 땅끝 저 아래에서 당신이 아주 홀몸이 아니라고 느끼고 싶어 하실 때를 대비해, 그곳 사람들 가운데 아는 이가 있으신지 여쭌 것입니다.”

“거기서도 다른 데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모두를 알면서도 아무도 모른다오.” 아직 항복할 낌새라곤 조금도 없던 르그랑댕이 대답했다. “고장은 잘 알지만 사람은 아주 어렴풋이 알 뿐이지. 하나 저 아래에서는, 그 고장들 자체가 내게는 마치 사람들 같소이다, 드물고 놀라운 사람들, 삶이라는 선물을 받았더라면 오히려 타락하고 망가졌을 어느 섬세한 자질의 사람들 말이오. 어쩌면 그것은 벼랑 끝에서 마주치는 성이오, 길가에 우뚝 서서, 금빛 달이 떠오르는 아직 장밋빛인 저녁 하늘을 앞에 두고 제 슬픔을 곱씹으려 걸음을 멈춘 그 성 말이오. 그러는 사이 집으로 돌아가는 고깃배들이 해협의 물빛 비단에 주름을 지으며 그 삼각기를 돛대 끝에 올려 성의 빛깔을 실어 나른다오. 아니면 그것은 홀로 선 소박한 살림집이오, 차라리 볼품없고 겁먹은 듯하나 낭만으로 가득 차, 모든 눈을 피해 행복과 환멸의 어떤 사라지지 않을 비밀을 감춘 집 말이오. 진실을 알지 못하는 저 땅은,” 그가 마키아벨리식 교묘함으로 말을 이었다. “끝없는 허구의 저 땅은 어느 소년에게든 나쁜 읽을거리요. 이미 우울로 그토록 기울어 있고, 온갖 인상을 받아들일 채비가 이미 된 마음을 지닌 여기 이 내 젊은 벗에게, 결코 내가 고르거나 권할 것은 아니오. 사랑의 비밀과 부질없는 회한을 내뿜는 그런 풍토는, 나 같은 늙고 환멸한 사람에게는 맞을지 몰라도, 아직 여물지 않은 기질에는 언제나 치명적일 수밖에 없소. 내 말을 믿으시오,” 그가 힘주어 말을 이었다. “노르망디보다 브르타뉴에 더 가까운 그 만의 물은, 그 값어치조차 미심쩍긴 하나, 내 것처럼 더는 성하지 않은 마음, 그 상처를 이제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마음에는 진정 효과를 줄 수도 있소. 하지만 자네 나이에는, 얘야, 그 물은 금물이라네.… 그럼 잘들 자게, 이웃 양반들.” 그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얼버무리는 듯 불쑥함으로 우리에게서 멀어지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고는 우리 쪽으로 돌아서서, 경고하듯 의사 같은 손가락을 치켜들며 진찰을 다시 이었다. “쉰이 되기 전에는 발베크는 안 되네!” 그가 내게 외쳤다. “그리고 그때도 심장의 상태에 달린 일이고.”

아버지는 그를 만날 때마다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며 물음으로 그를 들볶았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위조 팔림프세스트를 만들어 내는 데 온갖 솜씨와 지식과 부지런함을 쏟아붓는, 그러나 그 백분의 일만으로도 더 벌이가 되면서 떳떳하기까지 한 일자리에 자리 잡을 수 있었을 저 박식한 사기꾼처럼, 르그랑댕 는, 우리가 더 다그쳤더라면, 발베크에서 일 마일 안에 제 누이가 제 집에 살고 있다고 실토하느니, 또 우리에게 소개장을 써 주어야 할 처지에 몰리느니, 차라리 하下노르망디의 온전한 윤리 체계와 천상의 지리학을 통째로 지어냈을 것이다. 그 소개장이라는 것도,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그것을 쓸 생각조차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할머니의 성품을 아는 그로서는 마땅히 확신했어야 옳고 정말로 확신할 수 있었더라면, 결코 그토록 그를 겁먹게 하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우리는 산책에서 늘 저녁 식사 전에 레오니 고모를 뵈러 갈 만한 시간에 맞춰 돌아오곤 했다. 콩브레에서 지내는 휴가의 첫 몇 주, 해가 일찍 저물던 무렵에는, 생테스프리 거리로 접어들며 아직 집 창문에 비친 서쪽 하늘의 노을과, 저 멀리 연못에 다시 어리던 칼베르 십자가상 발치의 자줏빛 띠를 볼 수 있었다. 그 이글거리는 노을은, 흔히 살을 에고 쏘는 추위와 함께여서, 내 마음속에서 바로 그 순간 산책에서 얻은 시적 즐거움을 대신해 잘 먹는 것과 온기와 쉼이라는 감각의 즐거움을 내게 마련해 줄 닭을 굽고 있던 불의 이글거림과 이어지곤 했다. 그러나 여름에, 집으로 돌아올 때면 해는 아직 지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우리가 위층에서 레오니 고모를 뵙고 있는 동안, 그 햇살은 가라앉다가 고모의 창턱에 닿아 그 위에 길게 누워, 커다란 안쪽 커튼과 그것을 벽에 붙들어 매는 띠에 걸려 쪼개지고 흩어지고 걸러졌다. 그러다 마침내는 고모의 서랍장 레몬빛 목재 위로 내려앉아 작은 금빛 조각들을 아로새기고, 지나는 길에 방을 숲의 나무줄기들 사이로 스며드는 것과 똑같은, 그 곱고 비스듬하며 그늘진 빛살로 밝혀 놓았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아주 드물기는 하나, 서랍장이 그 덧없는 장식을 벗은 지 이미 오래여서, 생테스프리 거리로 접어들어도 창유리들을 따라 타오르던 서쪽 하늘의 노을이라곤 더는 없었다. 칼베르 십자가상 아래의 연못도 그 이글거리는 빛을 잃었고, 때로는 벌써 젖빛 창백함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그 위로는 물결마다 굽고 끊기고 넓어진 긴 달빛의 리본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로놓여 있곤 했다. 그러면 집에 가까워지며 우리는 문간에 서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알아보았고, 어머니는 내게 말하곤 했다. “아이고! 프랑수아즈가 우리를 내다보고 있구나. 고모님이 걱정하시나 보다. 우리가 늦었다는 뜻이야.”

그리고 “겉옷” 벗느라 멈춰 서서 시간을 허비할 것도 없이 우리는 레오니 고모 방으로 날듯이 뛰어 올라가 고모를 안심시켰다. 우리가 몸소 나타났음으로써, 고모의 그 온갖 음울한 상상이 다 거짓임을, 도리어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으며 다만 “게르망트 쪽”으로 갔을 뿐임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었다. 아, 그 산책을 나서면, 몇 시에 돌아올지 도무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고모도 익히 알고 있었다.

“거봐, 프랑수아즈,” 고모가 말하곤 했다. “게르망트 쪽으로 갔을 게 틀림없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어? 세상에! 배들이 고프겠구나! 그리고 네가 잘 차려 놓은 양 다리 고기도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느라 이제 바싹 말라 버렸겠어. 이런 시간에 들어오다니! 그래, 게르망트 쪽으로 갔던 게냐?”

“어머, 레오니, 저는 아시는 줄 알았어요,” 어머니가 대답하곤 했다. “프랑수아즈가 저희 텃밭 쪽 작은 문으로 나가는 걸 본 줄 알았죠.”

콩브레 근방에는 우리가 산책 삼아 다니던 두 “쪽”이 있었는데, 어찌나 정반대로 마주 놓였던지 우리는 고른 쪽에 따라 아예 서로 다른 문으로 집을 나서곤 했다. 하나는 메제글리즈라비뇌즈 쪽 길로, 우리는 이 길을 “스완네 집 쪽”이라고도 불렀으니, 그리로 가려면 스완 영지의 경계를 따라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게르망트 쪽”이었다. 사실 메제글리즈라비뇌즈에 대해 나는 그리로 가는 길과, 일요일이면 콩브레로 바람을 쐬러 건너오던 낯선 사람들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이 사람들은, 이번만큼은 고모도 우리 가운데 누구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어서, 우리는 그들을 “메제글리즈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틀림없다”고 여기곤 했다. 게르망트로 말하자면, 나는 언젠가는 그곳을 꽤 잘 알게 될 참이었으나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 소년기 내내, 메제글리즈가 내게는 지평선처럼 다가갈 수 없는 무엇이어서, 아무리 멀리 가도 콩브레 언저리의 풍경과는 조금도 닮지 않은 어느 고장의 주름들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게르망트는 그와 달리 “게르망트 쪽”의, 실재라기보다 관념에 가까운 궁극의 목적지 이상이 아니어서, 북극이나 적도 같은 일종의 추상적인 지리 명칭이었다. 그리하여 메제글리즈에 이르려고 “게르망트 쪽”을 잡거나 그 반대로 하는 것은, 서쪽에 닿으려고 동쪽으로 도는 것만큼이나 말이 안 되는 짓으로 여겨졌으리라. 아버지가 늘 “메제글리즈 쪽”을 두고 자기가 어디서 본 것보다 가장 아름다운 평야의 경치를 품은 길이라 말하고, “게르망트 쪽”을 두고 강 풍경의 전형이라 말했으므로, 나는 그 둘을 이렇게 서로 별개의 실체로 떠올림으로써 저마다에게, 오직 마음의 허구에만 속하는 그 응집력과 통일성을 부여해 두었다. 그리하여 그 둘 어느 쪽이든 아무리 사소한 세부라도 내게는 전체의 각별한 뛰어남을 드러내는 값진 것으로 보였다. 반면 바로 그 곁에서, 산책의 첫 대목, 어느 한쪽의 성스러운 흙에 채 다다르기 전, 평야를 굽어보는 이상적 조망과 강의 이상적 풍경으로 점찍힌 그 지점들이 놓인 순전히 물질적인 그 길들은, 연극과 극예술을 열렬히 사랑하는 관객에게 극장 담을 스쳐 지나는 자잘한 골목들이 그렇듯, 눈여겨볼 만한 값어치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그 둘 사이에, 하나를 다른 하나에서 갈라놓는 그 마일과 야드와 인치의 거리보다 훨씬 또렷하게, 내가 그것들을 떠올리던 내 뇌의 두 부분 사이에 놓인 거리를, 시간이 늘려 놓기만 할 뿐인 그 마음의 거리들 가운데 하나를, 사물들을 서로에게서 돌이킬 수 없이 갈라놓아 영영 서로 다른 평면 위에 붙들어 두는 그 거리를 두었다. 그리고 이 구분은 한층 더 절대적이 되었으니, 우리에게는 같은 날, 같은 산책길에 두 쪽을 다 도는 법이 결코 없이 “메제글리즈 쪽”을 한 번, “게르망트 쪽”을 또 한 번 가는 습관이 있어, 이를테면 그 둘을 서로 멀찍이 떨어뜨려 서로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게, 그 사이에 아무 오감이 있을 수 없는, 따로따로인 오후들의 밀봉된 그릇 속에 가두어 두었기 때문이다.

“메제글리즈 쪽”으로 가기로 정한 날이면 우리는 (지나치게 서두르지 않고, 하늘이 흐렸더라도 아랑곳없이 나섰으니, 그 산책은 그리 길지 않아 집에서 너무 멀리 데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어디 딱히 가는 데가 없다는 듯, 생테스프리 거리로 난 고모 집 대문으로 나섰다. 총포상의 인사를 받고,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지나는 길에 테오도르에게 프랑수아즈의 말을 전하여 그녀가 기름이나 커피가 떨어졌다고 일러 주고는, 스완 정원의 흰 울타리를 따라 난 길로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 길에 이르기 전부터 우리는 낯선 이들을 맞으러 나온 그의 라일락 나무 향기와 마주치곤 했다. 라일락은 그 싱그러운 초록빛 이파리의 자그마한 심장 밖으로, 흰빛 또는 자줏빛 꽃의 깃털 장식을 정원 울타리 너머로 호기심 어린 듯 치켜올렸는데, 그 꽃은 그늘 속에서도 저를 멱 감긴 햇살로 환히 빛났다. 그 가운데 더러는, 스완의 문지기가 살던 ‘궁수의 오두막’이라 불리는 작은 기와집에 반쯤 가린 채, 그 고딕식 박공 위로 장밋빛 첨탑을 드리우고 있었다. 봄의 님프들도, 이 프랑스식 정원 안에서 페르시아 세밀화의 순수하고 생생한 빛깔을 간직한 이 젊은 후리들에 견주면 거칠고 상스럽게 보였으리라. 그 나긋한 자태를 두 팔로 안고, 향기로운 머리를 감싼 별빛 같은 머리채를 내게로 끌어당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우리는 멈추지 않고 그것들을 지나쳤다. 스완이 결혼한 뒤로 부모님이 탕송빌 방문을 그만두었기 때문이고, 또 그의 정원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우리는 그 경계를 따라 나 있다가 곧장 탁 트인 벌판으로 올라가는 길 대신, 같은 방향으로 나 있으나 빙 둘러 가서 집에서 오히려 너무 멀리 데려다 놓는 다른 길을 골랐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말했다. “스완이 어제 우리한테, 제 아내와 딸이 랭스로 떠나서 이참에 하루 이틀 파리에서 지낼 참이라고 하던 말 기억 안 나나? 부인들이 집에 없으니 우리가 정원 옆길로 가도 되겠구먼. 그러면 길이 좀 짧아질 걸세.”

우리는 잠시 울타리 곁에 멈춰 섰다. 라일락 철은 거의 끝나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아직도 키 큰 자줏빛 촛대처럼 그 자그마한 꽃 뭉치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으나, 잎사귀 사이 여러 곳에서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향기로운 거품처럼 물결지어 부서지던 그것들이, 이제는 다하고 시들어 빛이 바랜, 마르고 향기 없는 텅 빈 찌꺼기가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아버지에게, 이곳의 모습이 어떤 점에서는 아직 그대로이고 어떤 점에서는, 늙은 스완 와 함께 그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던 날 걸었던 그 산책 이래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짚어 주었다. 그리고 그 기회를 빌려 우리에게 그 산책 이야기를 다시 한번 들려주었다.

우리 앞으로는 한련화가 늘어선 오솔길이 온통 햇빛 속에서 집을 향해 솟아올랐다. 그러나 오른쪽으로는 정원이 평평한 땅 위로 멀리 뻗어 있었다. 둘레를 촘촘히 에워싼 키 큰 나무들에 그늘진, 스완의 부모가 만들어 놓은 ‘인공 못’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인위적으로 지어낸 것 속에서도 자연은 인간이 손대야 할 재료일 따름이니, 어떤 자리들은 기어이 저마다의 특별한 주권을 거느린 채로 남아, 사람이 “꾸며 놓은” 온갖 정원 풍경 한복판에서 저 태고의 깃발을 치켜들기 마련이다. 마치 어떤 사람의 간섭도 없이, 도처에서 되돌아와 그것들을 삼킬 수밖에 없는 고독 속에서 그리했을 것처럼, 그 드러난 자리의 필연에서 솟아나 사람 손의 작품 위에 저를 덧입히면서. 그리하여 이 인공 호수로 내려가는 오솔길 발치에는, 아래로는 뻗어 나가는 물망초로, 위로는 페리윙클 꽃으로 짜인 그 두 층의, 물의 님프들의 빛나고 그늘진 이마를 두르는 자연스럽고 여린 파란 화환이 보였다. 한편 붓꽃은 그 칼 같은 잎을 왕자다운 넉넉함으로 사방에 휘두르며, 짚신나물과 물가에 자라는 금매화 위로, 노랑과 자줏빛의 너덜너덜한 영광인 그 호수 왕국의 백합 홀笏을 펼쳐 놓았다.

스완 이 없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그토록 특권을 누리는 이 소녀가, 베르고트를 벗으로 두고 그와 함께 대성당을 보러 다니던 이 소녀가 산책로 하나에서 불쑥 나타나 나를 알아보고 경멸할지 모른다는 끔찍한 위험에서 나를 지켜 주었으므로, 이제 처음으로 허락된 탕송빌 탐방을 내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로 만들어 버렸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눈에는 그 영지에 신선하고도 덧없는 매력을 입히는 듯했고, (등산을 떠나려 할 때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처럼) 그날을 이쪽으로 산책하기에 유난히 좋은 날로 만드는 듯했다. 나는 그들의 예상이 빗나가기를, 기적처럼 스완 이 아버지와 함께, 우리가 미처 달아날 겨를도 없을 만큼 가까이 나타나,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그녀와 인사를 트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문득 물 위에 찌를 까딱이는 낚싯줄 옆 풀밭에 잊힌 채 놓인 밀짚 바구니 하나가 눈에 띄자, 나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시선을, 그녀가 어쩌면 이곳에 머물고 있을지 모른다는 이 표시에서 다른 데로 돌려놓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하지만 스완이, 집에 손님 몇이 묵고 있어 지금은 정말이지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했던 터라, 그 낚싯줄은 그 손님들 가운데 하나의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산책로에서도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키 큰 나무들 가운데 하나에서, 그 높이 어드메에 자리를 잡은 보이지 않는 새 한 마리가, 필사적으로 하루를 더 짧아 보이게 하려는 듯, 길고 끊이지 않는 한 가락으로 사방에서 조여드는 고독을 더듬고 있었으나, 곧바로 그토록 한결같은 응답을, 침묵과 정적의 그토록 강력한 메아리를 되받았기에, 마치 저 새가 좀 더 빨리 흘려보내려던 그 순간을 도리어 영원토록 붙들어 놓은 듯싶었다. 붙박인 하늘에서 햇빛이 어찌나 가차 없이 쏟아지는지 사람은 자연히 그 눈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슬며시 빠져나가고 싶어졌고, 잠든 물조차, 수면 위로 들끓는 벌레들에게 그 안식을 끊임없이 침범당하면서도 필시 어떤 상상 속 소용돌이를 꿈꾸며, 그 떠 있는 코르크 찌를 거울 같은 창공의 고요한 물결 위로 전속력으로 끌고 가는 듯 보임으로써, 그것을 바라볼 때 내 안에 일었던 불안을 한층 부추겼다. 이제 거의 곧추선 찌는 이내 시야 밖으로 곤두박질칠 듯했고, 나는 그녀와 인사를 트고 싶은 갈망과 두려움은 접어 두고라도, 스완 에게 고기가 물고 있다고 알려 주는 것이 실은 내 도리가 아닐까 자문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그때 나를 부르며, 내가 이미 들판 쪽 오르막으로 접어든 그들의 오솔길을 따라오지 않은 것을 의아해하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뒤쫓아 달려가야 했다. 나는 오솔길 전체가 산사나무 꽃향기로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 산울타리는 일련의 예배당들 같았으니, 그 벽은 제단 위에 쌓아 올린 꽃의 산더미에 파묻혀 더는 보이지 않았고, 그 아래에서는 햇살이, 마치 창을 통해 안으로 비쳐 든 듯 땅바닥에 네모난 빛을 드리웠다. 꽃들에서 내게로 밀려오는 향기는, 마치 내가 성모 제단 앞에 서 있기라도 한 듯 그윽하면서도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었고, 저마다 곱게 단장한 꽃들은 무심한 자태로 반짝이는 수술의 작은 다발을 내밀었는데, 그 곱고 사방으로 뻗은 ‘잎맥’은, 성당에서 성가대석으로 오르는 층계를 두르거나 창의 수직 격자 세공을 마무리하던 플랑부아양 양식 건축의 그것과도 같았으되, 여기서는 봄철의 딸기밭처럼 도톰하고 하얀 웅덩이로 활짝 펼쳐졌다. 이에 비하면, 몇 주 뒤 햇볕 속에서 이 같은 언덕길을 타고 올라, 첫 바람결에 풀어헤쳐져 흩날릴 발그레한 분홍빛 몸통의 매끈한 비단옷을 두른 들장미는 얼마나 수수하고 소박해 보일 것인가.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