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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19)

3권 제2부 · 제2장

게르망트 는 그녀가 내 관심을 끄는 화제를 그토록 능란하게 알고서 나와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아내의 당당한 태도를 바라보고 프란츠 할스에 관해 그녀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며 이렇게 생각했다. “저 사람은 무엇이든 거침없이 밟고 지나가는군! 우리 젊은 친구는 집에 돌아가서, 오늘날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정한 의미의 옛 기풍을 지닌 대귀부인을 눈앞에서 보았다고 말할 수 있겠어.” 이렇게 나는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으니, 오래전 나는 게르망트라는 그 이름 속에서 그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으리라 그려 보았건만, 이제는 다른 남자들, 다른 여자들과 다를 바 없이, 다만 동시대인들보다 조금 뒤처져 있을 뿐이었고, 그나마도 고르지 않게 뒤처져 있었으니, 포부르의 숱한 집안이 그러하듯 아내는 역사의 황금기에 머무는 고상한 취향을 지녔고 남편은 도금(鍍金)의 저속한 시대로 내려앉는 불운을 겪어, 그녀는 여전히 루이 15세인데 그 짝은 거들먹거리며 루이필리프인 식이었다. 게르망트 부인이 다른 여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처음엔 내게 실망이었으나, 이제는 자연스러운 반동으로, 게다가 이 좋은 포도주들의 도움까지 곁들여, 거의 기적처럼 여겨졌다. 오스트리아의 돈 후안이나 이사벨라 데스테는, 우리에게는 이름의 세계에 자리 잡은 존재로서, 역사의 위대한 페이지들과는, 마치 메제글리즈 쪽이 게르망트 쪽과 그러하듯 거의 통하지 않는다. 이사벨라 데스테는 실상 아주 하찮은 공녀(公女)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니, 루이 14세 치세에 궁정에서 아무런 특별한 자리도 얻지 못한 부류의 여인들과 비슷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녀가 유일무이한, 따라서 견줄 데 없는 본질을 지닌 존재로 보이므로, 우리는 그녀가 조금이라도 덜 위대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 루이 14세와의 만찬은 우리에게 그저 제법 흥미로운 일로만 비칠 뿐이나, 이사벨라 데스테와의 만찬이라면, 만일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로맨스에 나오는 초자연적 여주인공을 제 눈으로 바라보는 처지에 놓이게 되리라. 그런데 이사벨라 데스테를 연구하면서, 그녀를 이 동화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참을성 있게 옮겨 심으면서, 그녀의 삶과 사유 속에 그 이름이 우리에게 암시했던 신비로운 낯섦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음을 확인하고 나면, 이 실망이 완전해지고 나서야 우리는 이 공녀에게 한없는 감사를 느끼게 되니, 그녀가 만테냐의 그림에 관해, 여태 우리가 업신여겨 왔고 프랑수아즈라면 흙보다도 못하다고 말했을, 라프네스트르 의 그것과 거의 맞먹는 지식을 지녔던 까닭이다. 게르망트라는 이름의 오를 수 없는 봉우리를 다 올라간 뒤, 공작부인의 삶이라는 안쪽 비탈을 내려오면서, 나는 그곳에서 다른 데서라면 낯익은 이름들, 빅토르 위고, 프란츠 할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비베르 같은 이름을 발견하고는, 탐험가가 느끼는 것과 똑같은 놀라움을 느꼈으니, 그것은 중앙아메리카나 북아프리카의 어느 야생의 골짜기에서 그 지리적 외딴 위치와 기이한 식물상을 헤아려 원주민 풍습의 유별남을 그려 보다가, 거대한 알로에나 만치닐 나무 울타리를 헤치고 나아간 끝에, (더러는 로마 극장의 폐허 한가운데 비너스에게 바쳐진 기둥 아래에서) 메로프알지르를 읽고 있는 주민들을 발견하는 그런 탐험가의 놀라움이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내가 알던 중산층의 교양 있는 여인들과는 그토록 동떨어지고, 그토록 구별되며, 그토록 훨씬 뛰어난, 그 비슷한 교양, 게르망트 부인이 아무런 속셈도 없이, 어떤 야심을 채우려는 것도 아니면서 스스로를 낮추어 결코 알게 되지도 않을 사람들의 수준까지 내려가 보이던 그 교양은, 정치가나 의사가 지닌 페니키아 고대 유물에 대한 박식과 같은 성격을, 곧 온전히 쓸모없기에 도리어 갸륵하고 거의 뭉클하기까지 한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정말 훌륭한 걸 보여 드릴 수도 있었는데,” 여전히 할스 이야기를 하며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어떤 이들은 세상에 남은 것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고들 하는 그림인데, 독일인 사촌이 내게 남겨 준 거예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그림이 성(城)에 ‘봉토로 묶여’ 있는 것으로 밝혀졌지 뭐예요, 당신도 그 표현을 모르실 테고, 나 역시 모르지만요,” 하고 그녀는 덧붙였는데, 이는 스스로 근대적으로 보이리라 여기며 (정작 자신은 무의식적으로나마 열렬히 매달려 있던) 옛 관습을 놀림감 삼기 좋아하는 그녀의 성벽에서 나온 것이었다. “제 엘스티르 그림들을 보셨으니 기쁘긴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 ‘봉토로 묶인’ 할스 그림을 대접해 드릴 수 있었더라면 훨씬 더 기뻤을 거예요.” “그 그림 압니다,” 폰 대공이 말했다, “헤센 대공의 할스 그림이지요.” “그렇지요. 그의 형제가 내 누이와 결혼했고,” 게르망트 가 말했다, “그의 어머니와 오리안의 어머니도 사촌지간이었소.” “하지만 엘스티르 로 말하자면,” 대공이 말을 이었다, “저는 그의 작품을 알지 못해 그에 대해 아무 견해도 없습니다만, 실례를 무릅쓰고 한마디 하자면, 황제가 그를 그토록 미워하며 몰아세우는 것이 제가 보기엔 그에게 불리하게 셈해져서는 안 될 듯합니다. 황제는 놀라운 지성을 지닌 분이니까요.” “그래요, 저는 그분과 만찬에서 두 번 마주쳤어요, 한 번은 사강 숙모 댁에서, 또 한 번은 라지빌 숙모 댁에서요, 정말 예사롭지 않은 분이더군요. 조금도 소탈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그분에게는 뭔가 재미있는 구석이, 뭔가 ‘억지스러운’ 데가 있어요,” 하고 그녀는 그 낱말을 또박또박 떼어 말했다, “마치 초록빛 카네이션 같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저를 놀라게는 하지만 그리 크게 즐겁게 하지는 않는 것, 누군가 그런 걸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게 놀랍긴 해도 없었더라도 그만이었겠다 싶은 것 말이에요. 제 말이 당신을 언짢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황제는 놀라운 지성을 지닌 분입니다,” 대공이 다시 말했다, “예술을 열렬히 사랑하고, 예술 작품에 대해서는 거의 틀림이 없는 안목을 지니셨지요, 어떤 것이 훌륭하면 그분은 대번에 알아보고는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분이 무언가를 몹시 싫어한다면, 그건 더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 물건은 걸작인 겁니다.” 모두가 미소 지었다. “덕분에 마음이 놓이는군요,” 공작부인이 말했다. “황제를 견주어 보고 싶은 대상이 있는데,” 대공이 말을 이었으니, 그는 ‘고고학자’라는 낱말을 제대로 발음할 줄 몰랐지만 (곧 ‘고고학자’라고 발음해야 마땅한 것을) 그 낱말을 쓸 기회를 결코 놓치는 법이 없었다, “우리 베를린에 있는 어느 늙은 고고학자” (그러나 대공은 ‘고고샥자’라고 발음했다) “입니다. 그를 진짜 아시리아 고대 유물 앞에 세워 두면 그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근대의 위조품이면, 정말로 오래된 것이 아니면, 그는 눈물을 흘리지 않지요. 그래서 어떤 고고샥학 유물이 정말로 오래된 것인지 알고 싶을 때면, 사람들은 그것을 그 늙은 고고샥자에게 가져갑니다. 그가 눈물을 흘리면 그 물건을 박물관에 사들이고요. 그의 눈이 마른 채로 있으면 상인에게 되돌려 보내고 사기죄로 고발하지요. 자, 제가 포츠담에서 만찬을 들 때마다, 황제가 어느 연극을 두고 제게 ‘대공, 저건 꼭 보셔야 하오, 천재의 작품이오’라고 하시면, 저는 그걸 보러 가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에 새겨 둡니다. 그리고 그분이 어느 전시회를 두고 성토하는 걸 들으면, 저는 되도록 빠른 기회에 그걸 보러 달려가지요.” “노르푸아는 영불(英佛) 화해에 찬성하는 편이지요, 안 그렇소?” 게르망트 가 말했다. “그게 당신들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국인이라면 견디지 못하는 폰 대공이 짜증과 능청이 뒤섞인 어조로 물었다. “영국인들은 어찌나 멍청안지 모릅니다. 물론 그들이 군인으로서 당신들을 도울 거라는 얘기가 아니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의 장군들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보면 그들을 판단할 수 있지요. 제 친구 하나가 얼마 전에 보타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시다시피 보어인들의 지도자 말입니다. 그가 제 친구에게 이러더랍니다. ‘저런 군대라니, 끔찍한 노릇이오. 사실 나는 영국인을 제법 좋아하는 편이지만, 한낱 농사꾼에 지나지 않는 내가 싸움마다 그들을 이겼다니 한번 생각해 보시오. 게다가 마지막 싸움에서는, 내 병력의 스무 배나 되는 힘 앞에서 물러날 때, 나 자신은 어쩔 수 없어 항복하면서도 포로 이천 명을 사로잡았단 말이오! 나는 고작 농사꾼들의 군대를 지휘했을 뿐이니 그만하면 훌륭한 셈이지만, 저 딱한 얼간이들이 언젠가 유럽의 군대와 맞서야 하는 날이면, 그들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오!’ 게다가 당신도 나만큼이나 잘 아는 그들의 왕이 영국에서 얼마나 위인 행세를 하는지만 봐도 알 만하지요.” 나는 이런 이야기들에 좀처럼 귀 기울이지 않았으니, 노르푸아 가 내 아버지에게 들려주던 것과 같은 부류의 이야기들이었다. 그것들은 내가 즐겨 하는 사색에 아무런 양식도 되어 주지 못했다. 게다가 설령 그것들이 갖추지 못한 요소들을 갖추고 있었다 한들, 내가 내 살갗과 곱게 빗어 넘긴 머리칼과 풀 먹인 셔츠 앞자락 속에 깃들어 지내던 그 시간 동안, 다시 말해 내게 삶의 즐거움을 이루던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던 그 시간 동안 내 내면의 삶이 깨어나려면, 그 이야기들은 어지간히 짜릿한 것이어야 했으리라. “어머, 저는 당신 생각에 조금도 동의하지 않아요,” 이 독일 대공이 눈치가 없다고 느낀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저는 에드워드 왕이 매력적이라고 봐요, 참으로 소탈하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영리하지요. 게다가 왕비로 말하자면, 지금도 여전히 제가 이 세상에서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분이랍니다.” “하지만 공작부인 마님,” 성을 내면서도 자신이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는 줄은 모르는 대공이 말했다, “웨일스 공이 만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를 배척하지 않을 클럽은 하나도 없었을 테고, 아무도 그와 선뜻 악수하려 들지 않았으리라는 건 인정하셔야 합니다. 왕비는 매력적이지요, 더없이 상냥하지만 그릇이 좁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말 그대로 제 백성들에게 얹혀사는 왕실 부부, 마땅히 제 손으로 치러야 할 비용을 몽땅 큰손 유대인 금융가들에게 떠맡기고 그 대가로 그들에게 준남작 작위를 내려 주는 왕실 부부에게는 뭔가 충격적인 데가 있어요. 불가리아 대공과 마찬가지지요…” “그이는 우리 사촌이에요,” 공작부인이 끼어들었다. “영리한 사람이지요.” “제게도 사촌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좋은 사람으로 여기지는 않지요. 아니요, 당신들이 벗으로 삼아야 할 상대는 바로 우리입니다, 그것이 황제의 간절한 소망이에요, 다만 그분은 그것이 진심에서 우러나오기를 고집하시지요.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내 손을 마주 잡은 손이지, 허공에 모자를 흔드는 손이 아니오.’ 그리하면 당신들은 천하무적이 될 겁니다. 그편이 노르푸아 가 설교하는 영불 우호보다 훨씬 실속 있을 테고요.” “당신도 물론 그분을 아시지요,” 나를 대화에서 소외시키지 않으려고 공작부인이 내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노르푸아 가 언젠가 내가 자기 손에 입을 맞추고 싶어 하는 듯 보였다고 말했던 일을 떠올리며, 그가 이 이야기를 게르망트 부인에게도 틀림없이 되풀이했으리라, 그리고 어쨌든 내 아버지와 벗이면서도 나를 그토록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 서슴지 않았으니 나에 관해서라면 오직 악의를 담아서만 그녀에게 이야기했을 것이라 생각하며, 나는 세상 물정에 밝은 사람이라면 했을 법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라면 자기가 노르푸아 를 몹시 싫어했고 그것을 그에게 내비쳤노라 말했으리라. 그렇게 말함으로써 자신이 그 대사(大使)의 중상을 자초한 장본인인 양 꾸며, 그 중상을 한낱 거짓되고 계산된 앙갚음으로 만들어 버렸으리라. 나는 그와는 달리,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노르푸아 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완전히 잘못 아신 거예요,” 공작부인이 대답했다, “그분은 당신을 정말로 무척 좋아하세요. 바쟁에게 물어보셔도 좋아요, 사람들이 나더러는 좋은 말만 한다고들 하지만 그이는 결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그이도 우리가 노르푸아 씨한테서, 그분이 당신에 관해 우리에게 말한 것만큼 누군가를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할 거예요. 게다가 바로 얼마 전에도 그분은 당신에게 부처(部處)의 좋은 자리를 주려고 하셨답니다. 당신이 그리 건강하지 못해 그 자리를 받을 수 없다는 걸 아셨기에, 당신 아버님께 그 친절한 생각을 말씀하지 않는 배려까지 하셨지요, 그분은 당신 아버님을 한없이 흠모하시거든요.” 노르푸아 야말로 내가 무슨 실질적인 도움을 베풀어 주리라고는 가장 기대하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실은 이러했다. 그는 남을 비웃기 좋아하는, 실로 다소 악의적인 기질의 소유자였던 터라, 참나무 아래에서 정의를 베푸는 성(聖) 루이 같은 그의 겉모습에, 지나치게 가락 고운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와 손쉽게 연민의 빛을 띠던 그 목소리에, 나처럼 속아 넘어갔던 사람들은, 언제나 말에 온 마음을 쏟는 듯 보이던 그 사람이 자기들을 두고 중상을 내뱉었다는 걸 알게 되면 그것을 일부러 저지른 배신으로 여겼다. 이런 중상은 그에게 제법 잦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누군가에게 끌림을 느끼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을 칭찬하거나, 그들에게 쓸모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며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분이 당신을 높이 산다고 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놀라는 건 아니에요,”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다, “영리한 분이니까요. 그리고 나는 충분히 이해가 가요,” 하고 그녀는, 내가 전혀 들은 바 없는 어떤 혼인 이야기를 넌지시 비추며 나머지 손님들이 들으라고 덧붙였다, “오래전부터 옛 정부(情婦)로서 그분을 즐겁게 해 주지 못하게 된 내 숙모가, 젊은 아내로서도 그분에게 그리 쓸모 있어 보이지는 않으리라는 걸 말이에요. 더구나 내가 알기로 정부로서도 이제 여러 해 전부터 아무런 실질적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됐고, 무엇보다 신앙에 파묻혀 지내니까요. 보아즈노르푸아는 빅토르 위고의 말을 빌려 이렇게 읊을 수 있겠지요.

Voilà longtemps que celle avec qui j’ai dormi,
O Seigneur, a quitté ma couche pour la vôtre!

정말이지, 가여운 내 숙모는 평생 아카데미에 맞서 버티다가 끝내는 제 나름의 자그마한 아카데미를 차리는 전위(前衛) 예술가들이나, 자그마한 사사로운 종교를 만들어 내는 환속한 사제들과 같아요. 사제복을 계속 걸치든가, 아니면 그 직분에 매달리지 말든가 해야지요. 그리고 누가 알겠어요,” 공작부인이 사색에 잠긴 태도로 말을 이었다, “어쩌면 과부살이를 준비하는 것인지도요, 걸칠 자격도 없는 상복(喪服)만큼 서글픈 것도 없으니까요.” “아! 빌파리지 부인이 노르푸아 부인이 되기라도 한다면, 우리 사촌 질베르는 정말이지 앓아누워 버릴 거예요,” 몽세르푀유 장군이 말했다. “게르망트 대공은 매력적인 분이지만, 정말이지 가문이며 예법 같은 문제에 지나치게 마음을 쏟지요,” 파름 대공비가 말했다. “제가 시골로 며칠 그분들과 지내러 내려간 적이 있는데, 하필 그때 대공비가 몸져누워 있었어요. 저는 프티트를 데리고 갔지요.” (이는 몸집이 엄청나게 뚱뚱했던 까닭에 뒤놀스탱 부인에게 붙은 별명이었다.) “대공은 층계 아래까지 나와 나를 맞으면서, 프티트는 못 본 척했어요. 우리는 이 층으로, 응접실로 통하는 문 앞까지 올라갔는데, 그러자 대공이 내게 길을 내주려 뒤로 물러서면서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오, 안녕하시오, 뒤놀스탱 부인?’ (그이는 그녀가 별거한 뒤로 지금은 늘 그렇게 부른답니다) 마치 프티트를 그제야 처음 본 척하면서요, 층계 아래까지 그녀를 맞으러 내려온 게 아니라는 걸 그녀에게 내보이려는 속셈이었지요.” “난 조금도 놀랍지 않소. 새삼 말할 것도 없지만,” 스스로를 지극히 근대적이라 여기고, 한낱 가문 따위는 세상 누구보다 경멸하며, 실제로 공화파였던 공작이 말했다, “나는 내 사촌과 생각이 그리 많이 맞지 않소. 우리가 대개의 문제에서 밤과 낮만큼이나 의견이 갈린다는 건 마님도 짐작하실 거요. 하지만 내 숙모가 노르푸아와 결혼한다면, 이번만은 나도 질베르와 같은 생각일 거라고 말해야겠소. 플로리몽 드 기즈의 딸로 태어나서 그런 결혼을 한다는 건, 말마따나 고양이가 다 웃을 노릇이지, 더 무슨 말을 하겠소?” 공작이 으레 문장 한복판에서 내뱉곤 하던 이 마지막 말은 여기서는 아주 군더더기였다. 그러나 그는 그 말을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끊임없는 욕구를 느꼈던 터라, 달리 끼워 넣을 자리를 찾지 못하면 그것을 말 끝으로 미뤄 두곤 했다. 그 말은 그에게, 무엇보다도, 거의 운율(韻律)의 문제이기도 했다. “하지만 잊지 마시오,” 그가 덧붙였다, “노르푸아 집안은 훌륭한 지위에, 좋은 혈통을 지닌 의젓한 신사들이라는 걸 말이오.”

“내 말 좀 들어 봐요, 바쟁, 질베르와 똑같은 말을 할 거라면 그이를 놀려 봤자 아무 소용도 없어요,” 게르망트 부인이 말했으니, 그녀에게 한 가문의 ‘훌륭함’이란 포도주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그 연륜에 달린 것이었다. 그러나 사촌보다는 덜 솔직하고 남편보다는 더 섬세했던 그녀는, 말할 때 결코 게르망트 정신에 어긋나지 않으려 애썼으니, 입으로는 지체를 업신여기면서도 행동으로는 기꺼이 그것을 떠받들 채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두 분은 어떻게든 사촌지간 아니오?” 몽세르푀유 장군이 물었다. “노르푸아가 라 로슈푸코 가문 여자와 결혼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식은 전혀 아니오, 그 여자는 라 로슈푸코 공작가 계통에 속했고, 내 할머니는 두도빌 공작가 출신이었소. 그분은 집안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인 에두아르 코코의 친할머니셨지,” 지혜에 대한 견해가 다소 얄팍했던 공작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 두 계통은 루이 14세 시절 이후로 서로 혼인한 적이 없으니, 그 인연이란 꽤 먼 셈이오.” “저런, 흥미롭군요. 난 전혀 몰랐소,” 장군이 말했다. “어쨌든,” 게르망트 가 말을 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내가 알기로 몽모랑시 공작의 누이였고, 원래는 라 투르 도베르뉴 가문 사람과 결혼했었소. 하지만 그 몽모랑시가는 몽모랑시가라 하기도 어렵고, 그 라 투르 도베르뉴가는 아예 라 투르 도베르뉴가가 전혀 아니니, 그것이 그에게 무슨 대단한 지체를 안겨 준다고는 볼 수 없소. 그는 자기가 생트라유의 후손이라고, 그리고 이건 더 요긴한 얘긴데, 우리 자신이 그 직계 후손이니…라고 하지.”

콩브레에는 생트라유 거리가 있었는데, 나는 그때껏 그 거리를 다시 떠올려 본 적이 없었다. 그 거리는 브르토느리 거리에서 루아조 거리로 이어졌다. 그리고 잔 다르크의 전우였던 생트라유가 게르망트 가문 사람과 결혼함으로써 그 집안에 콩브레 백작령을 가져다주었던 까닭에, 그의 문장(紋章)은 생틸레르 성당 창문 가운데 하나의 아래쪽에 게르망트 가문의 문장과 나란히 넷으로 갈라 새겨져 있었다. 나는 다시 검은 사암(砂巖) 계단의 환영을 보았고, 그러는 동안 어떤 음(音)의 굴곡이 내 귀에 게르망트라는 그 이름을, 오래전 내가 듣곤 하던 잊힌 가락으로 실어다 주었으니, 그것은 오늘 저녁 함께 만찬을 드는 상냥한 주인 내외를 가리키는 데 쓰이던 가락과는 사뭇 달랐다. 게르망트 공작부인이라는 이름이 내게 하나의 집합적 이름이었다면, 그것은 그 이름을 잇달아 지녀 온 모든 여인들이 쌓여 이루어진 역사 속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짧은 생애 동안에도 그러했으니, 그 생애는 이미 이 하나의 게르망트 공작부인 안에 그토록 많은 서로 다른 여인들이 겹겹이 포개지는 것을, 그리고 그때마다 다음 여인이 충분한 실체를 갖추기가 무섭게 앞선 여인이 사라져 버리는 것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낱말은 여러 세기가 지나도, 이름이 우리에게 단 몇 해 사이에 바뀌는 만큼 그 뜻이 바뀌지는 않는다. 우리의 기억과 마음은 끝까지 충실할 수 있을 만큼 크지 못하다. 우리의 정신이라는 밭에는 산 자와 더불어 죽은 자까지 간직해 둘 자리가 넉넉하지 못하다. 우리는 앞서 사라진 것 위에 새로 지을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묻힌 것은 오직 우연한 발굴로만 다시 드러나거니와, 방금 생트라유라는 이름이 내 마음속에 일으킨 발굴이 바로 그러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설명해 봐야 소용없으리라 느꼈고, 실은 조금 전 게르망트 가 내게 “우리 늙은 아첨꾼을 모르시오?”라고 물었을 때 대답하지 않음으로써 넌지시 거짓말을 한 셈이었다. 어쩌면 그는 내가 그를 안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저 교양에서 우러나 그 물음을 더 캐묻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게르망트 부인이 내 사색에서 나를 끌어냈다. “정말이지, 나는 그런 이야기는 다 너무 따분해요. 들어 봐요, 우리 집 모임이 늘 이렇게 지루하기만 한 건 아니에요. 그 보상으로 곧 다시 만찬을 들러 와 주셨으면 해요, 다음번엔 족보 이야기는 없이요,” 하고 그녀는 중얼거렸는데, 그녀는 내가 그녀의 집에서 찾아낼 수 있던 그런 종류의 매력을 헤아릴 줄도 몰랐고, 지난날의 식물들로 가득 찬 식물 표본집으로서만 내 마음을 끄는 것에 만족할 만큼 겸허하지도 못했다.

게르망트 부인이 내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라 여겼던 바로 그것이야말로, 도리어 끝내는, 공작과 장군이 이제 쉼 없이 족보 이야기를 이어 갔던 까닭에, 내 저녁나절이 온전한 실망으로 끝나 버리지 않게 구해 주었다. 그때껏 내가 어찌 달리 느낄 수 있었겠는가? 만찬에 함께한 손님들은 저마다, 내가 멀리서만 알고 꿈꾸어 오던 그 신비로운 이름을,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과 비슷하거나 못한 몸뚱이와 정신으로 뒤덮어 버림으로써, 햄릿을 열렬히 흠모하는 이라면 누구나 덴마크의 항구 엘시노어에 들어설 때 받게 될 그 밋밋한 범속함의 인상을 내게 안겨 주었다. 그들의 이름 속에 숲속의 빈터와 고딕식 종루를 심어 넣은 그 지리적 고장들과 그 아득한 과거가, 어느 정도는 그들의 얼굴과 지성과 편견을 빚어냈으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결과 속에 원인이 남아 있는 방식으로만, 다시 말해 머리로는 뽑아낼 수 있으되 상상으로는 결코 감지할 수 없는 무엇으로만 그들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 옛적의 편견들은, 게르망트 와 게르망트 부인의 벗들에게 그 사라졌던 시정(詩情)을 한순간에 되돌려 주었다. 분명, 귀족들이 지닌 지식, 곧 그들을 낱말이 아니라 이름의 언어를 다루는 학자요 어원학자로 만들어 주는 그 지식은 (게다가 이는 어디까지나 무지한 중산층 대중에 견주어 상대적으로만 그러하니, 같은 평범한 수준에서라면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자유사상가보다 전례(典禮)의 세부에 관한 물음을 더 잘 견뎌 낼 테지만, 반대로 반교권주의 성향의 고고학자는 흔히 제 본당 신부에게조차 그 신부의 성당에 얽힌 온갖 일을 두고 한 수 가르쳐 줄 수 있는 법이다), 그 지식은, 우리가 진실에, 다시 말해 그 정신에 국한해 말한다면, 이 대귀족들에게는 미천한 태생의 사람에게라면 지녔을 그런 매력을 지니지 못했다. 그들은 아마 나보다도 더 잘, 기즈 공작부인이 클레브, 오를레앙, 포르시앵 등등의 대공비임을 알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은 이 모든 이름을 알기 훨씬 전부터 기즈 공작부인의 얼굴을 알고 있었고, 그때부터 그 이름들은 그 얼굴을 그들에게 되비추어 줄 뿐이었다. 나는 요정에서 시작했으니, 비록 그 요정이 머지않아 스러질 운명이었다 해도 그러했다. 그들은 여인에서 시작했다.

중산층 집안에서는 손아래 누이가 손위 누이보다 먼저 시집가면 이따금 시샘이 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처럼 귀족 사회도, 특히 쿠르부아지에 집안이 그러했지만 게르망트 집안 또한, 제 고귀한 위대함을 한낱 집안 내부의 우열로 깎아내렸으니, 이는 내가 애초에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내게는 그것의 유일한 매력이었는데) 책 속에서 마주친 그런 아이들 장난 같은 방식에 따른 것이었다. 탈망 데 레오가, 게메네 가 제 아우에게 “여기는 들어와도 좋다, 여기는 루브르가 아니니까!”라고 외친 일이며, (클레르몽 공작의 사생아였던 까닭에) 로한 기사(騎士)를 두고 “어쨌든 그도 대공이야”라고 한 일을 뚜렷한 만족을 내비치며 이야기할 때, 그것은 마치 로한 집안이 아니라 게르망트 집안 이야기를 하는 것과 꼭 같지 않은가? 이 모든 이야기 가운데 나를 괴롭힌 유일한 것은, 그 매력적인 뤽상부르 세습대공에 관해 나돌던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이 생루의 벗들 사이에서만큼이나 이 응접실에서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알게 된 일이었다. 그것은 아마 한두 해 이상은 가지 않을 전염병 같은 것이었으나, 그러는 동안 모두를 물들여 놓은 게 분명했다. 사람들은 똑같은 케케묵은 이야기들을 되풀이하거나, 거기에 못지않게 거짓된 다른 이야기들을 보태 살을 붙였다. 내가 알아챈 바로는, 뤽상부르 대공비 자신이, 겉으로는 제 조카를 두둔하는 척하면서도, 그 공격에 쓸 무기를 대 주고 있었다. “당신이 그를 두둔하는 건 잘못이오,” 게르망트 가, 앞서 생루가 내게 그랬듯이, 내게 말했다. “아니, 그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우리 집안의 견해는 제쳐 두더라도, 그의 하인들과 이야기만 해 봐도 될 일이오, 결국 그를 가장 잘 아는 건 그들이니까. 뤽상부르 가 자기 조카에게 어린 흑인 시동(侍童)을 주었소. 그 흑인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돌아와서는, ‘대공님이 나 때렸어요, 나 나쁜 애 아니에요, 대공님 나쁜 사람이에요’ 하더라니, 정말이지 너무하지 않소. 그리고 나도 어느 정도 알고 하는 말인데, 그는 오리안의 사촌이오.” 그건 그렇고, 나는 이날 저녁 내내 ‘사촌’이라는 낱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한편으로, 게르망트 는 누군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거의 빠짐없이 “하지만 그는 오리안의 사촌이오!” 하고 외쳤으니, 그것은 숲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이, 금속 팻말 위에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두 화살표 끝에, 그것도 꽤 적은 킬로미터 수와 더불어 적힌 “카지미르페리에 전망대”와 “그랑브뇌르 십자로”라는 글자를 읽고는, 자기가 옳은 길에 들어섰음을 깨닫는 그런 사람의 느닷없는 기쁨과도 같았다. 다른 한편으로 ‘사촌’이라는 낱말은, 만찬 뒤에 들어온 터키 대사 부인에 의해 전혀 다른 맥락으로 쓰였는데 (이것이 여기서는 통상의 규칙에 대한 예외였다). 사교적 야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지식을 실제로 제 것으로 만드는 힘을 타고난 그녀는, ‘1만 인의 퇴각’ 이야기든 새들 사이의 성적 도착(倒錯)에 관한 세부든 똑같이 손쉽게 주워 담곤 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독일 서적이라면, 그것이 정치경제학을 다루든, 정신 이상을 다루든, 갖가지 형태의 자위행위를 다루든, 에피쿠로스 철학을 다루든, 그 무엇으로도 그녀를 말문 막히게 하기란 불가능했으리라. 그건 그렇고 그녀는 그 말에 귀 기울이기엔 위험한 사람이었으니, 늘 틀린 소리를 해 대는 통에, 나무랄 데 없이 정숙한 여인들을 두고는 품행이 더없이 헤프다고 짚어 대고, 속셈이 더없이 정직한 신사를 두고는 조심하라 일러 주며, 늘 무슨 책에서 튀어나온 듯한 일화들을, 그것이 무슨 대단한 얘기라서가 아니라 하도 터무니없이 있을 법하지 않아서 그런 듯한 일화들을 들려주곤 했다.

준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