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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20)

3권 제2부 · 제2장

이 무렵 그녀는 사교계에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었다. 몇 주 전부터 게르망트 공작부인 같은, 진정 사교적 광채를 지닌 여인들의 집을 드나들기 시작하기는 했으나, 대개는 어쩔 수 없이, 가장 지체 높은 가문들 가운데서도 게르망트가가 왕래를 끊어 버린 이름 없는 후예들에게로 발길을 한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기와 벗으로 지내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더없이 유서 깊은 이름들을 들먹임으로써 정말로 세련된 티를 내려 했다. 그러면 곧바로 게르망트 는 그녀가 자기 식탁에서 자주 만찬을 들던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 여기고, 다시금 눈에 익은 이정표가 보이는 것에 기쁨으로 몸을 떨며 이렇게 집결의 외침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는 오리안의 사촌이오! 나는 그를 내 이름만큼이나 잘 아오. 그는 바노 거리에 살지. 그의 어머니는 뒤제스 이었소.” 대사 부인은 자기가 든 표본이 더 하찮은 사냥감에서 골라 온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게르망트 의 자취를 가로지르며 제 친구들을 그의 친구들과 이어 보려 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잘 알아요. 아니에요, 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은 사촌지간이지요.” 그러나 그 딱한 대사 부인이 일으킨 이 맞물살은 얼마 흘러가지 못했다. 흥미를 잃은 게르망트 가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누구 얘길 하는지 모르겠소.” 대사 부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으니, 그녀가 정작 직접 알아야 마땅한 사람들의 ‘사촌’보다 더 가까운 이는 도무지 아는 법이 없었을뿐더러, 그 ‘사촌’이라는 이들조차 아주 흔히 실은 아무런 친척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시 게르망트 의 입술에서 “하지만 그 여자는 오리안의 사촌이오!”라는 새로운 물결이 흘러나오곤 했으니, 그 말은 공작에게, 로마 시인들에게 육보격(六步格)에 필요한 장단단격이나 장장격을 마련해 주어 요긴하던 어떤 상투적 형용어구들과 똑같은 실용적 값어치를 지니는 듯했다. 적어도 “하지만 그 여자는 오리안의 사촌이오!”라는 그 폭발은, 실제로 공작부인과 아주 가까운 친척이었던 게르망트 대공비에게 적용될 때는 내게 자못 자연스러워 보였다. 대사 부인은 이 대공비를 그리 탐탁잖게 여기는 듯했다. 그녀는 나직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여자는 어리석어요. 아니, 그렇게까지 아름답지도 않고요. 그런 평판은 가로챈 거예요. 아무튼,” 하고 그녀는 사색하는 듯하면서도 물리치는 듯, 그러면서도 단호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여자가 영 마음에 안 들어요.” 그러나 흔히 그 사촌 관계는 이보다 훨씬 멀리까지 뻗쳤으니, 게르망트 부인은 적어도 루이 15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서는 공통의 여자 조상을 찾을 길이 없는 부인들을 두고도 “숙모님”이라 부르는 것을 하나의 체면치레로 삼았다. 그것은 마치, 시절의 ‘각박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억만장자 여인이, 오리안의 고조부가 그랬듯이 그 고조부가 루부아의 딸과 혼인했던 어느 대공과 결혼하게 될 때면, 그 어여쁜 미국 여인의 가장 큰 기쁨 가운데 하나가, 게르망트 저택을 처음 방문하고 나서, 그곳에서 그녀는 그건 그렇고 다소 쌀쌀맞은 대접을 받으며 호된 심문을 당했지만, 그 뒤로 게르망트 부인을 두고 “숙모님”이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이었고, 게르망트 부인은 어머니다운 미소를 지으며 그러도록 내버려 두었던 것과도 같다. 그러나 게르망트 와 몽세르푀유 에게 가문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내게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으니, 그들이 그 주제를 두고 나누던 대화에서 나는 오직 시적인 즐거움만을 찾고 있었다. 그들 자신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마치 흙이나 조수(潮水)를 두고 이야기하는 두 일꾼이나 뱃사람처럼 내게 이 즐거움을 마련해 주었으니, 그 흙이나 조수란 그들 자신의 삶에서 너무나 덜 떨어져 있는 현실이어서, 정작 나 자신은 거기서 아름다움을 뽑아내는 참이었건만 그들은 그 아름다움을 누릴 줄을 몰랐다.

때로 이름은 어떤 가문보다는 어떤 특정한 사실을, 어떤 날짜를 내게 떠올려 주었다. 게르망트 가 브레오테 의 어머니는 슈아죌 가문 사람이었고 할머니는 뤼생주 가문 사람이었다고 회상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밋밋한 진주 단추가 달린 그 흔해 빠진 셔츠 아래로, 두 개의 수정 구슬 속에서 여전히 피 흘리고 있는 그 존엄한 유물, 곧 프라슬랭 부인과 베리 공작의 심장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또 어떤 것들은 더 관능적이었으니, 탈리앵 부인이나 사브랑 부인의 곱고 하늘거리는 머리채가 그러했다.

제 조상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에 관해 아내보다 더 잘 알고 있던 게르망트 는, 자기 대화에 진짜 보물은 다 뜯겨 나갔으되 여전히 그림으로 가득 찬, 진품이면서 대수롭지 않으면서도 위엄 있는, 그리고 전체로 보면 놀랄 만큼 근사해 보이는 어느 옛 저택 같은 멋스러운 분위기를 안겨 주는 기억들의 소유자였다. 아그리장트 대공이, 폰 대공이 도말 공작을 두고 “내 삼촌”이라 말한 까닭을 묻자, 게르망트 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의 외숙부인 뷔르템베르크 공작이 루이필리프의 딸과 결혼했으니까.” 그 순간 나는 카르파초나 멤링이 그리곤 하던 것과 같은 성물함(聖物函) 하나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 첫 번째 널판에서는 공주가, 오라비인 오를레앙 공작의 혼례 잔치에서, 시라쿠사 대공에게 자기 손을 청하러 보냈던 사절들이 빈손으로 돌아온 것을 본 데 대한 원망을 나타내려고 수수한 정원용 드레스를 입은 채 나타나 있었고, 마지막 널판에 이르러서는 그 공주가 팡테지라 불리는 성(城)에서 방금 아들 하나, 곧 뷔르템베르크 공작(만찬에서 내가 만난 대공의 사촌)을 낳은 참이었으니, 그 성은 어떤 가문들만큼이나 귀족적인 그런 장소들 가운데 하나였다. 게다가 그런 장소들은 사람의 한 세대보다 오래 살아남아, 저마다 한 사람 이상의 역사적 인물을 제게 결부시켜 지니게 된다. 특히 이 성에는, 바이로이트 변경백부인의 기억과, 남편의 성 이름이 남달리 마음을 끌었다고들 하던 이 또 다른 다소 별난 공주(오를레앙 공작의 누이)의 기억과, 바이에른 왕의 기억과, 마지막으로 폰 대공의 기억이 나란히 살아남아 있었으니, 폰 대공에게 그것은 그저 자신의 우편 주소일 뿐이어서, 방금 그는 게르망트 공작에게 그리로 편지를 보내 달라고 청한 참이었고, 그가 그 성을 물려받아 오직 바그너 축제 기간에만, 또 한 사람의 유쾌한 ‘공상가’인 폴리냐크 대공에게 세를 놓았던 것이다. 게르망트 가 다르파종 부인과 자기가 어떻게 친척이 되는지 설명하느라, 그토록 멀리까지 그토록 간단하게, 서너 명 혹은 대여섯 명 여자 조상들의 맞잡은 손이 이룬 사슬을 타고 콜베르가의 마리루이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때에도, 매번 마찬가지였다. 하나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란 그저 스쳐 지나가듯, 가면을 쓴 채, 부자연스럽게, 오그라든 모습으로, 어느 영지(領地)의 이름 속에, 어느 여인의 세례명 속에 나타날 뿐이었으니, 그 여인이 그렇게 골라진 것은 그녀가 루이필리프와 마리아멜리의 손녀였던 까닭이거니와, 이때 그 두 사람은 이제 프랑스인의 왕과 왕비로서가 아니라, 오직 조부모의 자격으로 유산을 물려주었다는 그만큼의 범위에서만 헤아려지는 것이었다. (다른 까닭에서지만 우리는 발자크 작품 인명 사전에서도 이와 비슷한 것을 보게 되니, 그곳에서는 더없이 이름난 인물들도 오직 인간 희극과 맺은 관련에 따라서만 등재되는 터라, 나폴레옹조차 라스티냐크에게 배정된 자리보다 훨씬 좁은 자리를 차지하며, 그나마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오로지 그가 한때 생시뉴 가문의 젊은 아가씨들에게 말을 건넸다는 이유에서일 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귀족 사회는, 창이 드물게 뚫려 햇빛이 인색하게 들어오는 그 육중한 구조 속에서,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축과 똑같이 위로 솟아오를 줄 모르는 무능함을, 그러면서도 똑같이 묵직하고 맹목적인 힘을 드러내며, 우리의 온 역사를 제 안에 담고, 그것을 가두어 두고, 그 위로 육중하게 내리뻗어 있다.

그리하여 내 기억의 빈 공간들은, 차츰차츰, 질서를 잡아 가며, 서로 관련지어 스스로를 짜 맞추어 가며, 점점 더 많은 연결로 서로를 이어 가는 이름들로 뒤덮여 갔으니, 그 이름들은 단 한 획도 홀로 떨어져 있지 않고, 모든 부분이 저마다 나머지 부분들로부터 정당성을 얻는 동시에 그것을 다시 그들에게 부여하는, 그런 완성된 예술 작품들을 닮아 있었다.

대화가 오가는 동안 뤽상부르 의 이름이 다시 나오자, 터키 대사 부인은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젊은 신부의 할아버지(밀가루와 곡물로 그 엄청난 재산을 이룬 사람)가 뤽상부르 를 오찬에 초대하자, 뤽상부르 는 사양하는 편지를 쓰면서 봉투에 “아무개 , 방앗간 주인 귀하”라고 적었고, 이에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는 것이다. “친애하는 벗이여, 자네가 오지 못한 게 더더욱 아쉽구먼, 나로서는 자네와 아주 허물없이 어울릴 수 있었을 테니 말일세, 우리끼리 참으로 단출한 모임이어서, ‘방앗간 주인과 그 아들, 그리고 자네’뿐이었을 테니까.” 이 이야기는, 나의 소중한 나사우 가 자기 아내의 할아버지(더구나 그는 그 할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방앗간 주인”이라 부르기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던 내게 몹시 역겨웠을 뿐 아니라, 그 어리석음이 처음부터 빤히 드러나 보였으니, “방앗간 주인”이라는 말은 뻔히 라 퐁텐 우화의 제목으로 끌어가려는 속셈에서 억지로 끌어들여진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부르 생제르맹에는, 악의까지 겹치면 어찌나 대단한지 모를 어리석음이 있어서, 그들은 하나같이 그 편지가 정말로 보내졌으며, 그 할아버지가, 이제 모두가 자신 있게 대단한 사람이라 단언하던 그 할아버지가, 손녀사위보다 더 멋들어진 재치를 보였노라 단정 지어 버렸다. 샤텔로 공작은 이 이야기를 빌미 삼아, 내가 카페에서 들었던 그 이야기, 곧 “모두가 드러누워야 했다니까!”라는 이야기를 꺼내려 했다. 그러나 그가 채 말을 시작하기도, 또 뤽상부르 가 제 아내 앞에서는 게르망트 도 마땅히 일어서 있어야 한다고 우겼다는 대목을 옮기기가 무섭게, 공작부인이 이렇게 항변하며 그를 가로막았다. “아니에요, 그이가 몹시 우스꽝스럽긴 해도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아요.” 나는 뤽상부르 를 깎아내리는 이 모든 이야기가 하나같이 거짓이며, 그 소문 속의 당사자나 목격자라는 이들 가운데 누구와 마주치든 나는 똑같은 반박을 듣게 되리라고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긴 해도 나는, 방금 게르망트 부인이 내뱉은 그 반박이 진실을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자존심에서 나온 것인지 자문해 보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그 자존심은 악의에 무릎을 꿇고 말았으니, 그녀가 웃으며 이렇게 말을 이었기 때문이다. “나라고 그이를 살짝 놀려 준 적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이가 나를 오찬에 초대하면서, ‘뤽상부르 대공비’를 내게 소개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이는 제 숙모에게 편지를 쓸 때 자기 아내를 그런 식으로 부르는 고상한 취향을 지녔지요. 나는 유감을 나타내는 답장을 보내면서 이렇게 덧붙였어요. ‘뤽상부르 대공비’(따옴표를 쳐서요)로 말하자면, 나를 보러 오시겠다면 나는 목요일마다 다섯 시 이후에 집에 있다고 그분께 전해 달라고요. 나는 또 한 번 살짝 놀려 준 적도 있어요. 마침 뤽상부르에 가 있게 되어, 전화를 걸어 그이더러 내게 전화해 달라고 청했지요. 전하께서는 오찬을 들러 가시는 중이라거나, 방금 오찬을 마치고 일어나셨다거나 하면서, 두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썼지요. ‘나사우 백작더러 와서 나와 통화하라고 전해 주시겠어요?’ 하고요. 그러자 급소를 찔린 그이가 바로 그 순간 수화기 앞에 나와 있더군요.” 모두가 공작부인의 이야기에, 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이야기들, 다시 말해 (나는 그렇게 확신하거니와) 똑같이 거짓된 이야기들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 뤽상부르나사우보다 더 총명하고 더 선량하며 더 세련된, 한마디로 더 빼어난 사람을 나는 이제껏 만난 적이 없었다. 뒤에 가서 드러나겠지만 옳았던 것은 바로 나였다. 다만 인정해야 할 것은, 게르망트 부인이 그토록 몰아붙이는 와중에도 그를 위한 다정한 한마디만은 남겨 두었다는 점이다. “그이가 늘 그랬던 건 아니에요,” 그녀가 우리에게 일러 주었다. “자기가 왕이 되었다고 여기는 옛날이야기 속 사내처럼 정신이 나가 버리기 전까지는, 그이도 바보가 아니었고, 실제로 약혼 초기에는 자기가 꿈에도 그려 보지 못한 일이라며 그 얘기를 정말이지 꽤 근사하게 하곤 했어요. ‘꼭 동화 같군, 나는 요정의 마차를 타고 뤽상부르로 입성해야겠는걸’ 하고 그이가 자기 삼촌 도르네상에게 말했더니, 삼촌은 이렇게 대답했지요, 알다시피 뤽상부르는 그리 큰 곳이 아니니까요. ‘요정의 마차라니! 이보게, 그건 아무래도 안으로 들여놓지도 못할 걸세. 내 생각엔 자네, 염소 수레를 타는 게 낫겠네.’ 이 말은 나사우를 언짢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그이가 맨 먼저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함께 웃었답니다.” “도르네상은 재치 있는 사람이에요, 그럴 만도 하지요, 그이 어머니가 몽죄 가문 사람이었으니까요. 지금은 형편이 아주 안 좋아요, 가여운 도르네상.” 이 이름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끝없이 이어졌을 케케묵은 재담의 물줄기를 끊어 놓는 마술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실은 게르망트 가, 도르네상 의 증조모가 티몰레옹 드 로렌의 아내인 마리 드 카스티유 몽죄의 누이였고 따라서 오리안의 대고모뻘이 된다고 설명해야 했던 터라, 대화는 다시 계보 쪽으로 흘러갔고, 그러는 동안 그 얼간이 같은 터키 대사 부인이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당신, 공작 눈에 아주 단단히 든 모양이던데요, 조심하세요!” 그래서 내가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그녀가 말했다. “내 말은,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만, 그이는 딸이라면 안심하고 맡길 만하지만 아들은 맡기지 못할 그런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도리어, 여자를 열렬히 그리고 오직 여자만을 사랑하는 사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면, 그건 틀림없이 게르망트 공작이었다. 오류의 상태, 어리석게도 진실로 믿어 버린 거짓, 그것이야말로 이 대사 부인에게는 그 밖으로는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하나의 생명의 원소 같은 것이었다. “그이의 동생 메메는, 하필이면 전혀 다른 까닭에서” (그는 그녀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내게 몹시 마뜩잖은 사람인데, 그 메메마저 공작의 품행을 진심으로 딱하게 여기고 있어요. 그들의 숙모 빌파리지도 그렇고요. 아, 그런데 그분이라면 나는 정말 흠모한답니다! 그야말로 성녀 같은 여인이지요, 지난날 대귀부인의 참된 본보기예요. 그분의 실제 미덕도 그토록 훌륭하지만, 그 절제야말로 그러하답니다. 그분은 날마다 만나는 노르푸아 대사에게도 여전히 ‘무슈’라고 부르시는데, 그 노르푸아로 말하면, 그건 그렇고, 터키에서 아주 훌륭한 인상을 남기고 온 사람이지요.”

나는 대사 부인에게 대답조차 하지 않은 채 가계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이야기들이 다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대화가 오가는 중에, 게르망트 가 내게 일러 주기로는 격에 맞지 않는 혼인이면서도 나름의 매력이 없지 않은, 그런 뜻밖의 결합 하나가 화제에 올랐다. 7월 왕정 아래에서 게르망트 공작과 페장사크 공작을 어느 이름난 항해가의 거부할 수 없는 두 딸과 맺어 준 그 혼인은, 두 공작부인에게 이국적으로 중산계급다운, ‘루이필리프풍’으로 인도풍인 우아함이라는 짜릿한 새로움을 안겨 주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루이 XIV세 치하에서, 어느 노르푸아 가문 사람이 모르트마르 공작의 딸과 혼인한 일도 있었는데, 그 딸의 혁혁한 가문명은 그 아득한 시대의 저편에서, 내가 밋밋하고 근대의 것이려니 여겼을 법한 노르푸아라는 이름 위에 옛 메달의 아름다움을 깊이 새겨 놓았다. 게다가 이런 경우에는 덜 알려진 이름만이 그 결합으로 덕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그 광채 탓에 오히려 진부해져 버린 다른 이름은, 이 새롭고 한결 낯선 면모 속에서 더욱 강하게 내게 와닿았다. 마치 뛰어난 색채화가가 그린 초상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이 이따금 온통 검은빛 일색인 그림이듯이. 이 모든 이름들이, 내가 서로 동떨어져 있으려니 여겼던 다른 이름들 곁으로 뛰어들어 제자리를 잡으면서 문득 얻은 듯한 이 갑작스러운 유동성은, 비단 나의 무지에서만 비롯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벌이던 시골풍 군무를, 그 이름들은 어느 시대에나 그에 못지않게 자연스럽게 추어 왔으니, 그 시대에는 작위란 언제나 한 조각 땅에 매여 있어서 이 가문에서 저 가문으로 그 땅을 따라 옮겨 다니곤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컨대 느무르 공작이나 슈브뢰즈 공작이라는 작위의 저 훌륭한 봉건적 구조물 속에서, 나는, 소라게가 깃드는 너그러운 거처 속에서처럼, 차례로 숨어든 기즈가 하나, 사부아 대공 하나, 오를레앙가 하나, 뤼인가 하나를 찾아낼 수 있었다. 때로는 여럿이 하나의 껍데기를 두고 다투기도 했다. 오랑주 공국을 놓고는 네덜란드 왕가와 메이넬 집안이, 브라방 공국을 놓고는 샤를뤼스 남작과 벨기에 왕가가, 그리고 나폴리 대공, 파르마 공작, 레조 공작이라는 작위를 놓고는 또 다른 여러 사람이 겨루었다. 때로는 그 반대이기도 했다. 그 껍데기가 오래전에 죽은 소유주들에 의해 하도 오래 비어 있었던 탓에, 이런저런 시골 저택의 이름이, 따지고 보면 그리 멀지 않은 어느 시대에는 한 가문의 이름이었으리라고는 내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게르망트 가 몽세르푀이 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을 때, 곧 “아니오, 내 사촌은 광신적인 왕당파였소. 그 여자는 슈앙 봉기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페테른 후작의 딸이었지”라고 했을 때, 발베크에 머문 이래로 내게는 어느 시골 저택의 이름이었던 이 페테른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한 가문의 이름으로 바뀌는 것을 보고, 나는 동화를 읽을 때와 똑같은 놀라움을 느꼈다. 그 동화 속에서는 작은 탑들과 테라스가 생명을 얻어 남자와 여자로 변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역사가, 심지어 한낱 가문의 역사조차, 저택의 낡은 돌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고 말할 수 있다. 파리 사교계에는, 그 사회에서 그에 못지않게 큰 역할을 하고, 그 고귀함이나 재치로 더 많은 사람의 환심을 사며, 게르망트 공작이나 라 트레무이유 공작에 못지않게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망각 속에 잠겨 버렸으니, 후손을 남기지 못한 탓에,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 그들의 이름이 낯선 이름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그것은, 그 밑에서 어떤 사람의 이름을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어느 사물의 이름으로서, 어느 시골 저택이나 외딴 마을에 남아 있을 뿐이다. 부르고뉴 한복판의 샤를뤼스라는 작은 마을에 성당을 보러 들른 나그네가, 부지런하지 못하거나 너무 서두른 나머지 그곳의 묘비들을 살펴보지 않은 채, 이 샤를뤼스라는 이름이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한 사람의 이름이었음을 모르고 떠나 버릴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 나는 이제 떠날 때가 되었음을, 그리고 게르망트 가 가계를 늘어놓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이에, 그의 동생을 찾아뵙기로 약속한 시각이 다가오고 있음을 떠올렸다. “누가 알겠는가,” 나는 계속 생각에 잠겼다, “언젠가는 게르망트라는 이름조차도, 우연히 콩브레에 들러 악인 질베르의 창문 아래 서서, 테오도르의 후계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참을성 있게 귀 기울이거나 본당 신부의 안내서를 읽는 고고학자들에게가 아니고서는, 한낱 지명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게 되지 않으리라고?” 그러나 위대한 이름이 사멸하지 않는 한, 그것은 그 이름을 지닌 남자들과 여자들을 대낮의 환한 빛 속에 붙들어 둔다. 그리고 이 가문들의 혁혁함이 내 눈에 그들에게 부여한 관심이, 어느 정도까지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곧 오늘날에서 출발하여, 그들이 밟아 올라간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14세기를 훌쩍 넘어선 지점까지 좇아갈 수 있다는 것, 샤를뤼스 의, 아그리장트 대공의, 파름 대공비의 모든 선조들의 일기와 서한을, 중산계급 가문이라면 그 기원이 뚫을 수 없는 어둠에 가려졌을 과거 속에서 되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거 속에서 우리는, 한 이름을 거슬러 비추는 환한 빛의 투영 속에서, 어느 게르망트 사람의 특정한 신경증적 기질이며, 특정한 악덕이며, 온갖 무질서의 기원과 그 존속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병리학적으로 오늘날의 동명 후손들과 거의 똑같은 그들은, 팔라틴 공비나 모트빌 부인보다 앞선 이들이든 리뉴 대공보다 뒤선 이들이든, 한 세기 한 세기 그들과 서신을 주고받은 이들의 깜짝 놀란 관심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나의 역사적 호기심은 나의 미적 쾌감에 비하면 희미한 것이었다. 입에 오른 이름들은 공작부인의 손님들에게서 육신을 벗겨 내는 듯한 효과를 냈다. 그들이 스스로를 아그리장트 대공이니 시스티라 대공이니 일컫는다 해도, 살로 된 가면과 평범한 지성 혹은 지성의 결핍이 그들을 여느 인간으로 바꾸어 놓았기에, 결국 나는 공작가의 문 앞 깔개에 발을 내려놓은 것이, (내가 여기던 대로) 어느 문턱 위가 아니라, 이름들로 이루어진 마법의 세계의 가장 먼 변경에 발을 디딘 것이었던 셈이다. 아그리장트 대공 그 자신도, 그의 어머니가 모데나 공작의 손녀인 다마스 가문 사람이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가로막던 얼굴과 말투로부터, 마치 불안정한 화학 합금에서 풀려나듯 벗어나, 그 자체로는 한낱 작위에 지나지 않는 다마스와 모데나와 더불어 한없이 더 매혹적인 결합을 이루었다. 어떤 이름이든, 서로 아무런 친연도 없으리라 여겼던 다른 이름의 이끌림에 자리를 옮겨, 익숙함이 그것을 무디게 만들어 놓았던 내 머릿속의 붙박이 자리를 떠나서는, 모르트마르가나 스튜어트가나 부르봉가에 합류하려 서둘러 달려가, 그들과 더불어 더없이 우아한 무늬와 끊임없이 변하는 빛깔의 가지들을 그려 냈다. 게르망트라는 이름 자체도, 이제야 비로소 그것과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 그 모든 아름다운 이름들로부터, 곧 이미 사멸했기에 그만큼 더 환하게 되살아난 그 이름들로부터, 새로운 의미와 지향을, 순전히 시적인 의미와 지향을 얻었다. 기껏해야 나는, 그 드높은 줄기에서 움튼 잔가지 하나하나의 끝에서, 그 이름이 어느 현명한 왕이나 이름난 공주의 얼굴로, 이를테면 앙리 IV세의 아버지나 롱그빌 공작부인의 얼굴로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얼굴들은, 이 점에서 내 주위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과는 달리, 육체적 경험이나 사교계다운 범속함의 흔적으로 빛이 바래지 않았으므로, 그 수려한 윤곽과 무지개빛 영롱함을 간직한 채, 게르망트의 가계수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저마다 다른 빛깔로 떨어져 나오던 그 이름들과 한결같은 결을 유지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은, 투명하고 번갈아 달리며 갖가지 빛깔을 띤 봉오리들을, 어떤 이질적이거나 불투명한 것으로도 흐리지 않았으니, 그 봉오리들은 (옛 이새의 나무 창에서 예수의 조상들이 그러하듯) 유리로 된 나무 양편에서 피어났다.

나는 이미 여러 차례 슬그머니 빠져나가려 해 보았는데, 그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내가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그 모임에 부여되는 하찮음 때문이었다. 비록 그것이, 내가 오래도록 그토록 아름다우리라 상상해 온 그런 모임 가운데 하나였음에도, 곧 거추장스러운 목격자가 끼어 있지 않았더라면 틀림없이 그러했을 그런 모임이었음에도 그랬다. 적어도 내가 떠나면 다른 손님들은, 그 불경한 침입자가 더 이상 그들 사이에 없게 되는 순간, 마침내 은밀한 밀담의 무리를 이룰 수 있으리라. 그들은 저희끼리 모인 목적인 그 비의를 마음껏 거행할 수 있으리라. 왜냐하면 그것이 프란스 할스나 인색함을 논하기 위해서, 그것도 중산계급 사회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논하기 위해서였을 리는 분명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찮은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는데, 틀림없이 내가 그 방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어여쁜 여인들이 죄다 저만치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며, 내가 있음으로 해서 그들이, 그 가장 진귀한 살롱에서, 포부르 생제르맹의 신비로운 삶을 이어 가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음을 얼마간 자책하며 느꼈다. 그러나 내가 시시각각 이루어 보려 한 이 떠남을, 게르망트 부인은 자기희생의 정신을 발휘하여 나를 방에 붙들어 둠으로써 미루기까지 했다. 더욱 기이한 일은, 기뻐하며 아름답게 차려입고 별자리처럼 보석을 두른 채 서둘러 참석하러 온 여러 부인들이, 오로지 나의 탓으로 포부르 생제르맹 아닌 다른 곳에서 열리는 모임들과 본질적으로 아무 차이도 없어져 버린 그 모임에서, 마치 발베크에서 제 눈에 익은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곳에 있다고 느끼는 것과 다름없이, 실망할 이유가 충분했음에도 조금도 실망하지 않고 물러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게르망트 부인에게 그 즐거운 저녁에 대해 더없이 극진히 감사를 표했으니, 마치 다른 날들에는, 곧 내가 없던 날들에는, 그 이상의 무슨 일이 벌어지곤 했다는 듯이 말이다.

준비 중…